송창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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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무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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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22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파일:송창무2021-22.png

송창무
宋昌茂

출생
1982년 12월 20일 (41세)
충청남도 보령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205cm|체중 115kg
직업
농구선수(센터 / 은퇴)
학력
개화초등학교 (졸업)
대명중학교 (졸업)
군산고등학교 (졸업)[1]
명지대학교 (졸업)
종교
불교
프로입단
2007년 드래프트 (2라운드 7순위, 창원 LG)
현역시절 등번호
12
병역
상무 농구단 (2009~2011.03)
소속
선수
창원 LG 세이커스 (2007~2014)
서울 삼성 썬더스 (2014~2016)
서울 SK 나이츠 (2016~2017)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7~2018)
서울 SK 나이츠 (2018~2022)

1. 개요
2. 고교-대학 시절
3. 프로 시절
4. 은퇴 이후
5. 플레이 스타일
6. 여담
7. 역대 프로필 사진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프로농구 선수이며, 전 서울 SK 나이츠 소속의 센터였다.


2. 고교-대학 시절[편집]


농구를 늦게 시작한 관계로 2년 늦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2] 장신임에도 신체밸런스가 좋아 장신센터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고3때 연맹회장기에서 군산고를 4강에 올려놓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명지대 진학 후 강을준의 스파르타 훈련을 참지 못하고 1학년 때 소풍[3]을 가기도 했으나 곧 복귀, 마산고 출신의 동기 김봉수와 명지대 사상 최고의 더블포스트를 구축하며 명지대 제 2의 전성기를 이끈다. 조성원, 조성훈, 박재일 졸업 이후 만년 하위권이던 명지대는 대학 4강권에 재 진입하였고, 2005,2006 농구대잔치 연속 4강 진출 및 명지대 농구부 창단 최초의 우승컵인 2005 종별선수권 대회[4]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송창무의 대학 시절이 황금세대로 불리던 김태술-이광재-양희종(이상 연세대), 강병현-박상오-윤호영-함지훈(이상 중앙대), 김영환-차재영(이상 고려대), 김민수(경희대), 정영삼(건국대)이 함께했던 시절이었단 것을 감안할 때, 명지대의 2년 연속 4강은 실로 엄청난 성적이었고 이때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강을준 감독이 창원 LG 감독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5]


3. 프로 시절[편집]



졸업 후 송창무는 2라운드 17순위로 창원 LG 세이커스에 지명되었으나, 2시즌동안 아이반 존슨이나 브랜든 크럼프, 크리스 알렉산더 같은 외인선수들에 밀려서 백업으로도 많은 시간을 출장하지 못하는, 경기당 6분 정도밖에 출장하지 못하는 가비지 타임 선수였으며, 2008-09 시즌 종료 후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 시절인 2009년과 2010년 주태수와 함께 골밑을 지키며 농구대잔치에서 연속 우승하는 등, KBL D리그와 아마추어농구에서는 괜찮은 활약을 펼치면서 KBL 복귀후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지만, 제대 후 복귀한 원소속팀 창원 LG가 2011-12 시즌을 앞두고 FA로 국보급 센터 서장훈과 블루워커 외인 올루미데 오예데지를 선발함에 따라 이번에도 송창무의 기회는 없어 보였....는데??

막상 2011-12 시즌에 들어서보니 서장훈은 느려진 발로 인해[6] 수비에서 완전히 구멍수준으로 전락했고 공격에서도 커리어로우 시즌을 보내면서 팀의 계륵이 되었고, 서장훈 맞춤형 외인으로 데려온 올루미데 오예데지의 스피드마저 너무 느리다보니 창원 LG는 트렌지션 게임에 속수무책인 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에 창원 LG 김진 감독은 결단을 내려 외인 올루미데 오예데지애런 헤인즈로 교체하고, 골밑 수비 강화를 위해 서장훈을 벤치로 보내고 송창무를 중용하는 전술 변화를 시도한다. 송창무는 평균4.2득점2.5리바운드로 식스맨 역할을 충실히 했다


송창무는 서장훈 만큼의 BQ와 공격센스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주태수와 같이 건실하고 좋은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진가를 발휘했다. 이후 서장훈이 부상을 입은 뒤에는 주전으로 도약했고, 올스타전에도 출장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올스타전에서는 뽀빠이 코스프레를 하고 덩크를 해 농구팬들의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파일:송창무 덩크.jpg

2012년 12월 1일의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당시 상무의 윤호영에게 처절하게 발리기도 했지만(…) 2012-2013시즌에도 나름대로 건실한 활약을 하다 중간에 부상을 입어 출장하지 못했고, 이후 2013-2014시즌에는 LG에서 뽑힌 신인 김종규에 밀려 다시 백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백업으로도 얼마 출장하지 못하는 상황.

이후 FA자격을 얻고 원 소속팀인 창원 LG 세이커스와 협상이 결렬되 2차 FA로 시장에 나왔는데, 기존의 대어로 분류되던 김태술, 함지훈, 정영삼, 양희종 등이 모두 재계약이나 재계약 후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했기 때문에, 남은 선수라곤 이한권, 한정원, 우승연 등 뿐이라 나름 최대어(…)였고, 결국 몇 게임 출장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못내 빈손으로 가기 아쉬웠던 서울 삼성 썬더스와 연 2억 3천만원에 3년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협상왕

서울 삼성 이적 후, 기존 주전 빅맨인 이동준의 백업으로 자주 출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갑자기 등장해 팀의 소년가장이 된 신인이 맹활약을 펼치며 송창무 본인은 제3의 빅맨으로 입지가 줄어들었고, 하승진을 전담 수비할 때나 주전들 체력 안배 타임때나 보게 되었다.

이동준이 이적하고 난 다음 시즌 역시 로스터엔 들어 있지만 출전하는 모습은 잘 보기 힘들어졌다. 용병 제도가 장단신제로 바뀌면서 가드 용병 론 하워드가 출전할 때 빅맨들의 체력 안배 때 출전하였으나 하워드가 언더사이즈 빅맨 에릭 와이즈로 바뀌면서, 더더욱 출전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2016년 6월 10일 이승준-이동준 형제가 은퇴하면서 빅맨진에 구멍이 생긴 서울 SK 나이츠가 송창무를 영입하였다. 시즌 초만 해도 김민수의 존재로 인해 서울 삼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벤치만 달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1월 25일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원정경기에서 원주 동부의 "들소" 웬델 맥키네스의 포스트업을 1:1로 가볍게(?) 막아내는 엄청난 파워를 보여주면서 중계진의 극찬을 받았고 이로인해 "서울 SK의 코뿔소"란 별명을 덤으로 얻기도 했다. 이 날 게임 이후 송창무는 상대 외국인빅맨 선수 매치업을 위해 출장기회가 대폭 증가했으며, 나올 때마다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외국인 센터 막는 토종 센터!!)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수비툴만 있어도 공수마진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진 않는데, 우리의 문응력은 그놈의 김민수를 끝내 고집하여 이기는 경기도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18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이승현, 장재석이 입대해 빅맨진이 약해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이적하였다. 계약조건은 연봉 1억 8천만원에 3년 계약. 3라운드 현재 많은 출전시간을 얻고 있지는 못하지만 작년처럼 종종 상대팀 외국인 빅맨 에이스특히 라틀리프를 잘 수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018년 11월 22일 SK 함준후와의 트레이드로 1시즌 반만에 SK에 복귀했다. 최준용, 김민수, 안영준의 부상으로 SK의 골밑이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에 출전시간이 많을 듯 하다.[7]

SK 이적 이후 12월 15일 경기에서 그야말로 미친 활약을 선보였다. 골밑을 당당하게 지키며 23득점 9리바운드(!!!)로 팀을 거의 먹여 살리는 인생경기를 펼쳤지만 팀이 졌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자신이 왜 KBL 3대 센터인지 실력으로 증명해낸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최준용이 완전히 망가진 이후 후반기에 자주 출전하며 제 상태로 복귀한 헤인즈와의 2:2 플레이와 포스트 장악력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부경마저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포스트진이 암울한 상황에서 홀로 SK의 포스트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최부경, 김민수 등의 빅맨진이 돌아온 상황에서도 자주 선발로 출전한다. 헤인즈가 정통 빅맨이 아닌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송창무의 기량이 발전했고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2019-20 시즌에는 주로 헤인즈와 콤비로 출전하며 헤인즈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게 된 뒤 SK와 계약기간 2년에 보수총액 1억 5백만원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1군 무대에서는 여전히 거의 보기 힘들다.

2020-21 시즌에는 D리그에서 상무의 179연승을 무너뜨리면서 우승에 기여했다.

2021-22 시즌에는 코로나로 빠진 자리에 5득점 2리바운드와 더불어 팀 우승을 함께 한 뒤 현역생활을 마쳤다.

파일:송창무 은퇴식.jpg
송창무 (SK, 2018~2022)

2022년 12월 10일 KCC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뤘다.


4. 은퇴 이후[편집]


현역 은퇴 후, 블랙라벨 소속으로 3x3 코트에 복귀하게 되었다. 지도자 생활 또한 준비 중이라고 한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토종 센터들 중 오세근에 이어 가장 피지컬이 뛰어난 선수 중 하나이다.[8] 웨이트가 115kg나 나가면서 체지방이 10%대 초반에 그칠 정도의 파워툴을 가진 덕에 근력만큼은 용병들과도 충분히 경합이 가능한 수준. 명지대 동기 김봉수와 함께 KBL에서 "힘" 하면 떠오르는 선수들중 하나. 웨이트 문제로 매번 지적받는 김종규, 이종현 등의 국대 센터들이 본받을 만한 면이다.

타고난 + 노력으로 만든 파워 덕분에, 국내선수만 출전하는 프로아마최강전이나 KBL D리그에서는 포스트업이 주무기다. KBL에서의 공격루트는 주로 컷인과 골밑에서의 A패스 받아먹기인데, 순간 스피드와 탄력이 좋아 이지샷을 잘 놓치지 않는 편이다. 경기 때는 시도하지 않지만 사실 운동능력도 있어 덩크를 못하는 편도 아니다. 포스트에서의 개인 스킬은 부족한편이나 2018-19 시즌 SK로 이적하면서 포스트 장악력이 발전했고, 훅슛이나 미들 점퍼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성공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최대 장점은 버티는 힘을 이용한 포스트업 수비이다. SK 나이츠 이적 이후부터는 이러한 장점을 특화시켜 전문 수비수로 나서고 있으며, 리그에서 1등을 다투는 외국인 빅맨 수비 스페셜리스트이다. 라건아, 맥키네스 등 뛰어난 외국인 빅맨들에게 대부분의 토종 빅맨들이 영혼까지 털리는 경우가 많은데, 송창무는 상당히 잘 막아내는 편이다.[9] 반면 사이드스텝이 느려 가로수비에는 조금 취약하고, 윙스팬이 짧아 미들슛 능력이 있는 빅맨들에게도 약한 편이다.


6. 여담[편집]



  • 입단할 때마다 팀에 거물 국내 빅맨이 들어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LG 시절 상무에서 병역을 마치고 돌아오니 서장훈에 이어 김종규가 입단, 삼성으로 이적하니 김준일이 입단, SK 시절에는 최준용이 팀에 들어왔다.

  • 국내농구 커뮤니티들에서는 송창무의 일취월장한 수비능력을 칭송하며 송창무톰보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었다.

  •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은 꽃창무인데, 그의 잘 생긴(?) 외모를 찬양하기 위해 붙은 별명이다. 농구판 이범호라고 해도 될 듯?[10]

  • SK를 나가자마자 팀이 우승, SK로 돌아왔을 때는 팀이 폭망이라는 드문 패턴의 이적을 한 선수. 미국에도 이걸로 유명한 선수가 있는데 양키스의 마이크 무시나다. 본인이 양키스에 들어오자마자 우승이 끊겼다가 본인이 나가자마자 우승했다 하지만 SK에 다시 오고나서 21-22 시즌에 통합우승을 함께 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 2018-19시즌 삼성의 외국인 선수인 유진 펠프스가 경기중 덩크슛을 해서 틀어져있던 골대를 본인의 힘으로 똑바로 되돌리는 신기한 재능을 선보였다(?). 뜻밖의 재능 심판들이 다시 길이를 재봤는데 너무 완벽하게 되돌려놔서 그대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 3×3 국가대표로 차출된 이승준, 동준 형제를 대신해서 터치플레이 임시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대학 빅맨들을 상대로 한 수 위의 기량을 과시하며, 전투력 측정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3이 되기 직전에 자퇴한 후 다시 입학해서 농구를 하느라 남들보다 2살이 많았는데 같은 나이인 선배들한테 이유없이 얻어맞거나 괴롭힘 당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7. 역대 프로필 사진[편집]


서울 SK 나이츠

파일:송창무2020-21.png


파일:송창무2021-22.png

2020-21 시즌
2021-22 시즌


8. 관련 문서[편집]


[1] 졸업은 군산고에서 했지만 첫 1학년과 2학년때는 충남해양과학고등학교에서 각각 요트부와 태권도부에 몸을 담았었고 3학년이 되기 직전에 자퇴했다. 자퇴 후 청양고등학교에서 입학식만 치르고 약속됐던 부여고등학교로 전학가서 2년간 농구선수 생활을 한 뒤 부여고의 선수 수급 문제로 군산고로 다시 전학가서 거기서 졸업했다.[2] 고3때 농구에 입문하는 바람에 자퇴 후 고등학교 1학년부터 다시 다녔다.[3] 팀을 무단이탈했다는 뜻의 은어다.[4] 일반적으로 종별선수권 대회는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 등 최강권 대학들은 참가하지 않는, 쉬어가는 대회다. 그래서 단국대, 동국대, 성균관대 등이 목숨을 건다.[5] 이때 명지대 주요멤버는 김영수-이시준-윤여권-변현수-김봉수-송창무였다.[6] 2011년 기준 만 37세였으니 당연하다. 2016년 현재 김주성의 나이가 만 37세인걸 비교해보면... 지금 김주성도 25분 넘게 뛰면 큰일난다.[7] 참고로 SK는 현재 3연패 중인데, 3연패의 공통점이 모두 상대팀 외국인 빅맨을 막지 못해서이다. 골밑은 최부경이 홀로 지키는 만큼 송창무가 가세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8] 얼굴이 좀 커서 그렇지, 팔이나 허벅지 근육 보면 장난이 아니다.[9] 외인 수비로 유명한 이승현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10] 2016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SK-kt 경기 중에 정용검 캐스터가 직접 꽃범호와 꽃창무를 연관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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