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씨) (r2021030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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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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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색은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다.
*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된 인구를 기준으로 한다.




1. 한국의 송씨 본관
1.2. 은진 송씨
1.3. 진천 송씨
1.4. 연안 송씨
1.5. 야성 송씨
1.6. 신평 송씨
1.7. 남양 송씨
1.8. 홍주 송씨
1.9. 청주 송씨
1.10. 화순 송씨
1.11. 기타
2. 실존 인물
2.1. 송씨를 예명으로 쓰는 인물
3. 가상 인물


1. 한국의 송씨 본관



송씨(宋氏)의 도시조(都始祖)는 당(唐)나라에서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이며, 그의 7세손인 송순공(宋舜恭)의 후손 자영(自英)이 세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 유익(惟翊)을 시조로 하는 여산송씨(礪山宋氏)와 둘째아들 천익(天翊)의 후손에서 은진군(恩津君) 대원(大原)을 시조로 하는 은진송씨(恩津宋氏)가 있고, 세째 문익(文翊)을 시조로 하는 서산송씨(瑞山宋氏)가 있다.
송씨(宋氏)의 도시조(都始祖)는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이다. 그의 7세손인 송순공(宋舜恭)의 후손 자영(自英)이 세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 유익(惟翊)은 여산 송씨(礪山宋氏)의 시조가, 둘째 아들 천익(天翊)의 후손 중 은진군(恩津君) 대원(大原)은 은진 송씨(恩津宋氏)의 시조가, 셋째 문익(文翊)은 서산 송씨(瑞山宋氏)의 시조가 되었다. 그 외 진천(鎭川), 신평(新平), 야성(冶城) 등 10여 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 여산, 은진, 진천 송씨에서 분파(分派)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모든 송씨는 도시조(都始祖)인 송주은(宋柱殷)의 후손이며, 오늘날에 와서도 송씨끼리는 이본(異本)이라도 통혼하지 않는 것이 관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출처 : 뿌리찾기운동본부 36 송씨편, 2001. 4. 1]

1.1. 여산 송씨


여산 송씨(礪山 宋氏)는 고려시대에 문과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고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진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한다. 증손 송송례(宋松禮)는 추성익대보리(推誠翼戴輔理) 동덕좌명공신(同德佐命功臣)에 책록되고 상장군(上將軍)에 올랐으며, 찬성사(贊成事) 중찬(中贊),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장남 송염(宋琰)은 충렬왕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고 차남 송분(宋玢)은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추성찬화안사공신(推誠贊化安社功臣)에 책록되고 낙랑공(樂浪公)에 봉해졌으며 정승(政丞)을 지냈다.

조선 중종송질(宋軼)은 영의정을, 송세형(宋世珩)은 대사헌을 거쳐 호조·이조판서를 지냈다. 선조송상현은 문과 급제하여 경성판관(鏡城判官)을 지내고 호조·예조·공조의 정랑(正郞) 등을 거쳐 동래부사(東萊府使)가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분전했으나 끝내 전사했다.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동래 안락서원(安樂書院)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송희립은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서 시종일관 활약한 군관으로 수군절도사를 지내고 세충사(世忠祠)에 배향되었다. 송시철(宋時喆)은 좌승지를 거쳐 형조·공조참의등을 현종송광연(宋光淵)은 문과급제후 예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이조참판등을 지냈고, 숙종송진명(宋眞明)은 호조·이조·예조판서를, 영조송인명(宋寅明)은 좌의정등을 지냈다.


1.2. 은진 송씨


은진 송씨(恩津 宋氏)는 고려시대에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源)을 시조로 한다. 증손 송명의(宋明誼)는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집단(司憲府執端)으로서 공명정대함에 포은 정몽주(鄭夢周) 등 제현(諸賢)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조선시대에 송유(宋愉)는 불과 열두살에 과거급제하여 종7품 부사정(副司正)에 오르고 회덕 배달촌에 자리 잡으면서 송촌(宋村) 지명이 생겼는데 이곳은 지금의 송촌동이다.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 송준길과 삼송(三宋)으로 일컬어진 송규렴(宋奎濂)은 문과급제로 승지 이조참판 부제학 대사성 예조판서등을 지내고 동춘당 송준길은 병조판서 우참찬 영의정등에 올랐다. 우암 송시열은 장원급제로 대군 사부에 임명받고 좌참찬 우찬성 우의정 좌의정등을 지냈다.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으며 송자(宋子)로 존숭되었다. 송준길과 송시열은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종사(宗師)되었다. 송상기(宋相琦)는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 대제학 공조 호조 예조 병조 이조판서를 두루 지냈으며 성리학의 대가로 선비들의 추앙을 받은 송인수(宋麟壽)는 대사헌 이조참판등을 지냈고 대사성때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했다. 송환기(宋煥箕)는 과거급제후 정조의 신임을 받아 승지에 특채되고 대사헌 공조, 이조판서 우찬성등을 지냈다. 송근수(宋近洙)는 이조참판 대사성을 거쳐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으며 송시열과 함께 종묘에 배향되었다.


1.3. 진천 송씨


진천 송씨(鎭川 宋氏)는 신라 헌강왕때 대아찬(大阿湌)을 지낸 송순공(宋舜恭)을 시조로 한다. 고려시대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를 지낸 송인(宋仁)은 진천 송씨의 중시조다. 송인은 찬화공신(贊化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으며 진천백(鎭川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의 손자 송국첨(宋國瞻)은 고려 강종(康宗)때 과거급제 하여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다. 금나라가 침입하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우군장(右軍將)이 되어 공을 세웠다. 정언(正言)을 거쳐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 형부상서(刑部尙書)등을 지냈다. 송순(宋恂)은 고려 고종(高宗)때 진강부전첨(晉康府典籤) 참지정사(參知政事) 지공거(知貢擧)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에 올랐다가 수태위(守太尉)를 더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로 치사(致仕) 하였다. 송언기(宋彦琦)는 고려 고종때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를 지냈다. 송광보(宋匡補)는 고려 공양왕때 예부상서를 송찬(宋贊)은 도승지 우참찬을 거쳐 판중추부사 형조참판 호조참판 우참찬등을 지냈으며 조선 4대조를 섬긴 중신으로 중종실록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송창(宋昌)은 병조좌랑 도승지 공조판서 좌참찬등을 역임했으며 사관이 평하길 훌륭한 인품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한다. 송영구(宋英耉)는 병조참판을 지내고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송사윤(宋思胤)은 열여덟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과 목사등을 지냈으며 진천 송씨는 조선시대에 18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1.4. 연안 송씨


연안 송씨(延安 宋氏)는 고려 공민왕(恭愍王)때 첨의부(僉議府) 찬성사(贊成事)를 지내고 연안부원군(延安府院君)에 봉해진 송경(宋卿)을 시조로 한다. 송경은 반란(叛亂)을 평정(評定) 하고 홍건적(紅巾賊)을 격퇴시킨 공(功) 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올랐으며 벽상에 도형 되었다. 이어 지밀직사사, 서북면 체찰사를 지내고 추성익대보국동덕좌명공신(推誠翼戴輔國同德佐命功臣)으로 연안부원군에 봉해졌다. 송경의 아들 송훈(宋勛)은 과거 급제해서 중의대부와 상서성 이조판서등을 역임하고, 손자 송광언(宋光彦)은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大司成)에 오르고 이후 공을 세워 연안군(延安君)에 추증되었다. 송운룡(宋雲龍)은 고려 말기에 문과 급제해서 신호위 보승중랑장 사천감등을 역임했고 송복륭(宋復隆)은 정당문학 은청광록대부 지추밀원사 호부상서등을 지냈다. 송운렴(宋雲濂)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예빈시 주부 제용 감주부 상원군수 성천진관병마절제도위등을 역임했다. 송광언(宋光彦)은 학문이 뛰어났으며 문과 급제하여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다. 송승연(宋承衍)은 과거급제해서 집의 병조참판(兵曹參判)등을 지냈고 송유량(宋有良)은 참의 예조판서 도총관(都摠管)등을 지냈다.


1.5. 야성 송씨


야성 송씨(冶城 宋氏)는 고려 목종(穆宗)때 간의대부(諫議大夫) 총부의랑(摠部議郞) 등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진 송맹영(宋孟英)을 시조로 하고 있다. 야성(冶城)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冶爐)의 별칭인데 이때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야성으로 하여 경상도 야로현에 정착해 살았다. 시조 송맹영의 아들 송창(宋昌)은 고려조에서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냈고, 손자 송우(宋瑀)는 문림랑(文林郞)으로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역임하였으며 아들 송인서는 상서호부(尙書戶部)에 올랐으며 송구(宋構)가 경기감사와 어사(御使)등을 역임하였고 송길창(宋吉昌)이 또다시 공민왕 때에 세운 공로에 힘입어 다시한번 야성군에 재차 봉해진다. 경상북도 성주군 송천으로 이거하여 14세에 이르러 직장공파·상호군공파·대호군공파·현령공파·선전공파 등으로 갈라졌다. 송광심(宋光心)은 문과급제하여 병조정랑 등을 지냈으며 성리강요를 저술했다. 숙종대에 송원기(宋遠器)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올랐으며 송희규(宋希奎)는 흥해군수와 장령, 상주목사 등을 지냈고 송광정(宋光井)은 장원급제하여 권지학유에 취임하고 동학교수와 성균관직강이 되었다가 군수로 부임하고 사헌부장령 형조낭관등을 지냈다. 송천흠(宋天欽)은 용양위부호군과 상주목사를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어 관민의 칭송을 받았다. 송준필을 비롯한 후손 11명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하여, 독립 유공 가문으로 이름이 높다. 송규(宋奎)는 원불교(圓佛敎) 제2대 종법사(宗法師)다.


1.6. 신평 송씨


신평 송씨(新平 宋氏)는 고려시대에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서운관정(書雲觀正) 겸 습사도감판관(習射都監判官)을 지낸 송구진(宋丘進)을 시조로 하고 있다. 신평송씨는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12세손 송말선(宋末善)이 홍주(洪州)의 신평(新平)에 정착하였고 후손들이 홍주(洪州)와 신평(新平)으로 본관이 갈라져 잇게 되었다. 그의 6세손 송희경(宋希璟)이 조선 세종(世宗)때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에 이르러 병조참판(兵曹參判) 등을 지냈고 조선 성종때 문과급제한 송흠(宋欽)은 수찬(修撰) 병조좌랑(兵曹佐郞) 지평(持平) 등을 거쳐 담양(潭陽)과 장흥부사(長興府使)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과 이조(吏曹) 병조판서(兵曹判書) 우참찬(右參贊) 등을 지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송순(宋純)은 중종(中宗)때 문과급제하고 호당(湖堂)에 뽑혔으며 명종(明宗)때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거쳐 이조참판(吏曹參判)이 선조(宣祖)때 대사헌(大司l憲) 한성부 판윤 등을 거쳐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서 시조문학(時調文學)의 정수를 계승하여 명작을 남겼다. 송해용(宋海容)이 현감을, 송흠의 아들 송익침은 병조참의를 역임하고 송지원(宋之遠)은 공조참의 장례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를 송해령(宋海寧)은 겸교리(兼校理)와 감찰(監察)을 송덕미(宋德美)는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과 참의(參議)를 지냈다.


1.7. 남양 송씨


남양 송씨(南陽 宋氏)는 고려시대에 호장(戶長)과 중윤(中尹)등을 지낸 송진(宋進)의 후손 송공절(宋公節)이 남양송주동(南陽宋主洞)에 세거하여 진사와 문하시랑(門下侍郞)등을 지냈는데 나라에 공을 세워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진 그의 아들 송침(宋琛)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손자 송인(宋寅)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송침의 고조부는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송규(宋奎)다. 송침은 문과급제후 감사(監史)를 거쳐 은청 광록대부(光祿大夫)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이후에 감찰대부(監察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등을 지낸 송세보(宋世輔)의 도촌파와 송공절의 안서파로 나뉘어 계대가 이어져 오고있다. 송공절의 증손인 직제학(直提學) 송천생(宋天生)의 아들 청도군수(淸道郡守) 송안례(宋安禮)대 에서 또 서호파로 파가 갈리게 된다. 송몽길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송석규는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송세충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집의(執義)를 임진왜란때 송선[1]은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으로 공을 세웠고 역시 임란공신인 송제(宋悌)와 송덕일(宋德馹)은 숙질간이라 남양송씨 쌍충(雙忠)으로 유명한데 정유재란때 진도군수로서 거북선을 증수하여 명량대첩(鳴梁大捷)에 공을 세운 송덕일은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서훈되었고 송제는 성주전투에서 적을 대파하는등 공을 세워 호조참의에 추증되고 쌍충일렬지려(雙忠一烈之閭)라는 정문도 세웠다.


1.8. 홍주 송씨


홍주 송씨(洪州 宋氏)는 고려시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송계(宋桂)를 시조로 하고 있다. 홍주 송씨의 선계(先係)는 여산 송씨의 시조 송유익(宋有翊)의 12세손 송말선(宋末善)이 홍주 신평(新平)에 살면서 여산송씨에서 분적하였다. 송계의 아들 송기손(宋麒孫)은 성종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남평(南平)과 구례(求禮) 등지의 수령을 역임한 후 내직으로 들어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등을 지내고 그의 아들 대에서 아락당공파(雅樂堂公派). 우유당공파(優遊堂公派). 청심헌공파(淸心軒公派) 등 크게 세갈래로 분파했다. 아락당공파의 송준(宋駿)이 참봉 별좌(別坐) 주부(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단성현감(丹城縣監)등을 지냈으며 중시조 송평(宋枰)은 조선시대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와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 등을 지내고 송평 세대부터 홍주에서 담양(潭陽)으로 이거하여 살게되었다. 송문중(宋文中)은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냈고 그의 아들은 송개신(宋介臣)은 조선 태조때 조선시대 첫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송정순(宋廷筍)은 형조좌랑 예조정랑 구례현감(求禮縣監) 등을 지냈다. 송정황(宋庭篁)은 조선 명종 때 장원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교서(校書)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 등을 지냈고 문인들은 그의 학문과 인품을 이윤(伊尹)과 안자(顔子)에 비유하였으며 저서에 주자문록(朱子文錄) 정자송공유고(正字宋公遺稿)등이 있다. 송타(宋柁)는 유려한 문장과 학식으로 유명하였는데 화암수록 매농곡 화암구곡 등의 문집을 남겼으며 정유재란때 공을 세워 운암서원(雲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아들 송수(宋燧)는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使) 송계은(宋繼殷)이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송두문(宋斗文)은 회양도호부사(淮陽都護府使)를 송동식(宋東植)은 군수(郡守)를 송익중(宋益中)은 전라도사(全羅都事)를 송인하(宋寅夏)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등을 지냈다.


1.9. 청주 송씨


청주 송씨(淸州 宋氏)는 고려시대 충숙왕(忠肅王)때 나라에 공을 세워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진 송유충(宋有忠)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후손 송훤(宋暄)은 조선조 개국공신으로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였으며 이때부터 본관을 청주로 하여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왔고 서원은 청주의 옛 이름이다[2]. 송처관(宋處寬)은 세종때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를 거쳐 집현전부제학 이조참의 전라도관찰사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역임했다 동생 송처검(宋處儉)은 문과급제하여 대사성(大司成)을 지냈다. 송제용(宋齊龍)은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송재식(宋在軾)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지낸 송승은(宋承殷) 대에서는 청주에서 김해 하계면으로 이거하면서 이곳이 세거지가 되었다. 송승은이 경상도 칠원현감(漆原縣監)으로 나갔다가 경상남도 김해 하계면 대종리에 정착 세거하였다. 그의 아들 송숙형(宋淑亨)은 훈련원참군(訓鍊院參軍) 주부(主簿)등을 역임하였고 그의 후손 송창(宋昌)은 절제사(節制使)를 그의 아들 송밀(宋密)은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 현감등을 지냈고 선정관(宣傳官)을 지낸 아들 송민영(宋敏英)은 만호공파(萬戶公派)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송정영(宋廷英)은 부사공파(府事公派)로 분파하였다. 병마절제사 송경(宋經)의 손자 송빈(宋賓)은 절제사 송창의 아들인데 임진왜란 당시 김해성전투에 참전한 의병장이다. 영남의 요충지를 사수하며 혈투를 벌였다. 송빈은 공조참의와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에 추증 되었으며 이순신(李舜臣)의 현손인 부사 이봉상(李鳳祥)이 주지(州誌)를 보다가 송빈의 공적을 발견하고 감격한 나머지 충렬사(忠烈祠)를 건의해서 향사하게 되었고 또한 부사 정현석(鄭顯奭)의 상소로 건립된 사충단(四忠壇)과 더불어 배향되었다. 송빈은 임진왜란 김해성사충신(金海城四忠臣)중에서도 필두에 오르는 인물로 대표적인 의병장이라고 할 수 있다.[3] 송빈의 두 아들 송정백(宋廷伯)은 청암공파(晴庵公派)로 송정남(宋廷男)은 부사공파(府事公派)로 각각 분파되었다.


1.10. 화순 송씨


화순 송씨(和順 松氏)는 다른 송씨와는 다르게 소나무 송(松) 자를[4] 쓰며 현존하는 본관은 화순 단본이다.

송(松)씨는 통계청이 시행한 1985년도 인구총조사에서 총 18가구 116명으로 나타났는데, 그중 화순 송씨는 1가구 2명[5]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미상 또는 기타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200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1,493가구 4,737명으로 대한민국 성씨 중 130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중 화순 송씨는 1,486가구 4,643명이었고 나머지 7가구 94명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러나 2015년 조사에서는 불과 18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11. 기타


  • 용성 송씨
  • 문경 송씨
  • 서산 송씨
  • 덕산 송씨
  • 옥구 송씨
  • 나주 송씨
  • 김해 송씨


2. 실존 인물



2.1. 송씨를 예명으로 쓰는 인물


  • 송가인 - 가수[6]
  • 송지효 - 배우[7]
  • 송채환 - 배우[8]

3. 가상 인물


'송'이라는 글자의 어감 때문에 대개 여성 캐릭터가 더 많은 편이다.


[1] 송선(宋瑄) 송영(宋瑛) 송구(宋球) 남양 삼형제는 임란때 선조의 어가를 호종하였고 조카들을 데리고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활약했는데 허수아비와 목책등을 이용해 전술과 책략을 펼쳐 고금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이밖에 절이도 전투등 싸움마다 이순신 장군을 보좌하여 전술 전략등에서 활동했다. 임란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활약하던 송희립송대립 송정립 삼형제가 모두 공을 세워 임란공신에 올랐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녹도만호 송여종 또한 함께 활약했다.[2] 현재 청주시 서원구라는 이름의 어원이기도 하다.[3] 송빈을 추모하는 충단(忠壇)은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 있고 추원재(追遠齋)는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도강동에 있다. 증이조참판청주송공순절기념비(贈吏曹參判淸州宋公殉節記念碑)가 경상남도 김해시 서상동에 있다.[4] 강릉 성씨(江陵 成氏)의 시조로 알려진 송씨가 원래는 訟 자를 썼었지만 현재는 기록을 찾기가 어려워 사실상 사라진 성씨다. 강릉 성씨의 시조인 송흔적(訟昕迪)은 고려시대에 예빈경을 지냈으며 6대손이 고려 목종(穆宗)의 휘와 비슷한 송(訟)자를 피휘하기 위해 외가쪽 성(姓)인 성(成)씨로 바꿨다고 한다. 성시경이 강릉 성씨이다.[5] 서울특별시 0가구 1명, 전라남도 1가구 1명이었다.[6] 본명은 조은심.[7] 본명은 천수연.[8] 본명은 권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