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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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1926년 12월 26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 일본의 연호가 쇼와(昭和)였던 시대이다. '쇼와'는 히로히토가 제124대 천황으로 재위하고 있을 때 사용한 연호로, 일본 역사상 최장기간 사용되었다. 연호의 의미는 '국민 평화와 세계 각국의 번영 및 공존 기원', 한학자 요시다 마스조(吉田増蔵)가 고안해낸 것으로 《서경(書經)》 2장 우서(虞書) 요전(堯典)[1] 의 백성소명 협화만방[원문] ('百姓昭明, 協和萬邦 : 백성 각자의 덕이 밝혀짐에 따라 모든 나라가 협동 화합하고 백성이 크게 변하여 화합한다.')에서 유래했다. 여담이지만 고사쿠라마치 천황, 고모모조노 천황의 재위 기간[2] 에 쓰인 연호 메이와(明和)와 유래가 같다.
선제인 다이쇼 천황의 과정과 비슷하게 3번의 연호 선정 과정이 있었다.
궁내성측에서 1차로 제출된 후보는 쇼와(昭和), 진카(神化), 겐카(元化), 진카(神和), 도와(同和), 게이메이(継明), 준메이(順明), 메이호(明保), 간안(寛安), 겐안(元安) 등이었다.
2차로 추려낸 후보는 쇼와(昭和), 진카(神化), 겐카(元化), 진카(神和), 도와(同和)였으며 3차 후보는 쇼와(昭和), 진카(神化), 겐카(元化)였다.
이때 내각에서 후보군을 제출했는데 류세이(立成), 데이교(定業), 고분(光文), 쇼메이(章明), 교추(協中)가 각각 후보군으로 등재되었고 내각과 궁내성이 회의를 거쳐 마침내 쇼와(昭和)로 결정하되 겐카(元化), 도와(同和) 가 참고로 올라가고 최종적으로 쇼와로 결정되었다.[3]
昭和로 쓰고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으면 ㍼이다. 한국 한자음으로는 '소화'이다.
64년 동안 사용된 연호이지만 쇼와 원년(1926년)과 64년(1989년)은 각각 일주일 정도만 사용되어 실제 기간은 62년 13일이다. 연호를 서력(西曆)으로 바꾸려면 쇼와 연호 n년에 1925를 더하면 된다. 쇼와 연호는 일본 제국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쇼와 10년대가 1935년~1944년이듯 메이지와 함께 서력기원에 바로 대입해서 적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나마 5년 단위로 딱딱 끊어지기에 쇼와 ↔ 서기 연도 계산은 메이지나 다이쇼 시대보다 쉬운 편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연호를 사용해 온 동양사 전반에 걸친 문제이다.
이 연호를 쓰던 시절의 천황탄생일은 4월 29일이었고, 쇼와 천황 붕어 이후 녹색의 날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쇼와의 날로 계승되었다.
2. 오래된 이미지[편집]
서기 1989년(쇼와 64년)에 히로히토가 끝내 오랜 병환[4] 으로 사망하고 당시 그의 장남 아키히토 황태자가 삼종신기(三種神器)를 계승하면서 일본 제125대 천황으로 즉위하여, 연호는 쇼와(昭和)에서 헤이세이(平成)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쇼와'는 흘러간 옛날 것이나 과거 1989년 이전에 유행한 것을 뜻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한국에서의 쌍팔년도와 비슷한 쓰임새다.[5] 실제로 쇼와의 마지막 연도가 쌍팔년도와 같은 해인데다 단군기원으로 해도 쇼와 시대 가운데에 있다.
일본에서 거의 20세기를 상징하는 연호처럼 쓰인다. 총 기간으로 봤을 때 20세기의 62%를 차지하기도 하고, 똑같이 20세기에 있었던 메이지 시대나 다이쇼 시대가 서양의 벨 에포크같은 19세기적 이미지로 비춰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20세기에 대한 관념이 쇼와 시대와 거의 겹친다.
일본에는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낡은 세대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옛날 사람같다'는 의미의 '쇼와적이다'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 다만, 현재까지 일본인들의 상당수는 쇼와(昭和) 출생이고[6] 그 다음으로 헤이세이(平成), 레이와(令和)[7] , 다이쇼(大正)[8] , 메이지(明治) 순서이다.[9][10]
식신의 성 시리즈의 주인공 쿠가 코타로가 아버지에게 불평할 때 "쇼와 태생 주제에!"라고 말하곤 한다. 국내로 따지면 '군사정권 시절에 태어난 주제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엔카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의 히트곡 〈쇼와의 꿈꾸는 제비(昭和夢つばめ)〉에는, "우리들은 쇼와 시대에서 날아온 제비들이지요(私たちは昭和から飛んできたつばめなのね)"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그 시대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정서를 표현한다.
히로히토(裕仁)가 젊은 나이(25세)에 즉위했고, 워낙 오래 살았다보니 일제강점기 중후반부와도 겹치기 때문에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의 기억이 남아있는 노년층에게 옛날 일을 물어보면 '소화 몇 년'이라 말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혹은 소화 몇 년에 태어났는지 물어보면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11]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는 '부용교'(府容橋)라는 교량이 있는데[12] , 소화 6년(1931)에 건설되었다고 해서 '소화다리'(昭和橋)라고 불린다. 또한 당시에 간행되어 지금까지 국내에 남아있는 서적에는 끝부분의 판권지에 있는 소화 간행년도가 먹칠로 지워지거나 칼질로 도려진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일제시대가 끝난 후 잔재를 청산했던 흔적이다. 그 때 세워진 비석을 봐도 역시 건립년도를 깎아내서 없애버린 것이 많다.
히로히토의 사후 그의 생일인 4월 29일은 녹색의 날(みどりの日)이었으나 2007년부터는 녹색의 날을 원래 '국민의 휴일'로 불리던 5월 4일로 옮기고 쇼와의 날(昭和の日)로 변경되었다.
"(전전)천장절→(전후)천황탄생일→(사후)녹색의 날→(2007년)쇼와의 날"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의 부제는 대놓고 "경성, 쇼와 62년(1987년)"이다.[13]
3. 시대적 특징[편집]
한국에는 일제강점기 등 여러 모로 아픔이 많은 시대였지만, 일본에는 최전성기가 쇼와 시대와 겹쳤다. 이 시기 전쟁을 통해 제국(帝国)이란 칭호에 걸맞을 만큼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다만 많은 일본인들은 군부에 의해 지나치게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었던 데다 끝임없이 전쟁을 치르던 1930년대 쇼와 시대 초기보다는, 바로 직전이던 1910~1920년대 다이쇼 시대를 더 살기 좋은 시절로 여긴다.
하지만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이끄는 일본 제국 해군 전력을 단숨에 모두 잃고 제공권까지 뺏긴 후 결국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맞으며 완벽하게 패전했다. 일본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으며, 이후 더글러스 맥아더의 군대에게 지배받는 GHQ(연합군사령부) 체제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 냉전 시기에 공산권의 대양진출을 막다 발생한 전쟁상황에서 지리적 이점과 생산력 덕분에 호기를 잘 잡아[14] 구 추축국이자 패전국임에도 미국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전쟁 도중인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국가의 지위를 회복하고 미일동맹을 맺은 일본은 군사기지로 적극 활용되어 많은 무기를 생산하였다. 무기 생산 등으로 6.25 전쟁, 베트남 전쟁에 무기와 군수 물품들을 많이 팔면서 한국의 비극을 발판으로 일본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성공적 재기를 1964 도쿄 올림픽, 1970 오사카 엑스포 개최를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끝내 히로히토 천황의 치세 말미인 1980년대에는 소련을 제치고 미국 다음가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건설했다. 사실 이 시기의 호황 덕택에 현재의 일본이 아직도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니 쇼와 시대의 후반부가 일본 입장에서 영광의 시대라는 소리는 틀린 표현이 아니다. 첨단 산업을 주도하고 가성비 좋은 물품들을 공격적인 수출을 통해 국가 성장과 인프라를 괴물로 악착같이 키우면서 끝내 경제력으로 초강대국인 소련을 제치는 경지에 이르렀다.[15] 이후에 중국에 의해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지위를 빼앗기지만 그건 헤이세이 시대 후반부의 일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본의 폭주와 몰락 그리고 진정한 전성기의 시대였다. 워낙 시대가 길어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부터 전후 거품경제와 대중문화 발전까지 모두 포함하는 아주 기나긴 시기다.
사실 쇼와 덴노가 2차대전 지도자로 기억되는 것도 다 아버지 다이쇼 덴노가 일찍 붕어해서 그런 것으로, 아버지가 오래 살았다면 다이쇼 덴노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모두 상징하는 군주가 되고, 아들 쇼와 천황은 전후 경제성장기만을 상징하는 지도자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리하여 쇼와 덴노는 전쟁 당시 젊은 모습과 전후 늙은 모습이 모두 기억되고 있다.
4. 대중매체에서의 쇼와[편집]
앞서 말했듯이 쇼와 시대는 '낡고 오래된 것, 구식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매체에서도 이 이미지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주로 '지금이 쇼와 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냐'라는 뉘앙스를 품는 경우가 많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닌데"와 일맥상통하며[16]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 가면라이더 지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카코가와 히류가 어나더 오마 지오로 변신해서는 헤이세이의 역사를 없애고 지금을 쇼와 93년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 교고쿠도 시리즈의 연호도 쇼와다. 쇼와 26년(1951년).
- 나만이 없는 거리는 주인공이 리바이벌로 인해서 쇼와 63년(1988년)에서 주로 활동하게 된다.
- 메이플스토리에는 과거에 세계여행이 있었을때 일본에 가면 쇼와 마을(昭和村)이라는 지역이 있었으며 현재는 없어지고 해외 메이플스토리 몇군데에만 존재한다. 이 쇼와 마을의 BGM은 옛날 느낌이 물씬 나며, NPC들의 복장도 전부 기모노를 입고 있는등, 일본의 옛 느낌을 많이 살렸다.
- 이은날 시리즈 - 쇼와에서 부르는 소리에서는 게임 속 주인공이 2020년을 시작으로 점점 과거로 끌려가 쇼와시대인 1940년대까지 다다르며, 결국 해당 시대에 폭격에 휩쓸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최후를 맞게된다.
-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 시대 배경이 쇼와 시대로 쇼와 겐로쿠 자체가 쇼와 시대의 일정 시기를 의미하는 고유 명사다.
- 쓰르라미 울 적에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지겹도록 들어본 연호이기도(쇼와 58년 / 1983년). 저때에 메이드 카페 같은 게 있는 건지 궁금해하면 지는 것이다.[17]
- 안녕 절망선생은 쇼와 연호가 계속되는 현대라는 설정이다.
- 오소마츠 군은 쇼와 시대의 작품이기 때문에[18] 헤이세이 시대와 레이와 시대에 만들어진 후속작 오소마츠 상[19] 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을 쇼와 시절 캐릭터라고 자학하는 경우도 있다.
-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 《64》에서는 쇼와 64년(1989년)에 일어난 유괴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용자특급 마이트가인의 연호도 역시 쇼와인데 쇼와 125년(2050년: 헤이세이 62년, 레이와 32년[20] )이다.
- 전쟁 후에는 어느 괴수급 인간이 '쇼와의 어둠의 제왕'으로 불리며 정제계를 지배했지만 어둠 속에서 강림한 도박의 정령에게 쳐발리고 사라졌다고 한다.
- 헤이세이 원년을 배경으로 하는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타케시 시리즈 제11작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선 일제강점기 가라후토에 끌려가면서 인생을 망친 조선인 형제와 그 조선인 형제를 이용해먹고 나 몰라라하는 여러 일본인들과 이기적인 주임,벤야마 경감을 보여주며 쇼와 시대를 일그러진 시대라고 대차게 깐다.
- Clock over ORQUESTA의 사카키 야이로와 하루미 카즈토가 쇼와 시대의 인물이다. 나머지 멤버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21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카즈토가 어린아이였을 때 일본에 최초로 기차가 개통된 점, 카즈토가 66세의 나이일 때 전쟁을 위해 소년병 징병이 이루어졌다는 점, 야이로도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과 야이로가 속한 군대의 군복, 야이로와 카즈토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 등을 보아 저 둘은 예외적으로 쇼와 시대의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히는 팅크에 의해 네버랜드에 오기 바로 직전의 시점이 쇼와 시대로, 둘의 연령을 보아 둘 다 태어났을 때의 연호는 메이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 스팀게임 Christmas Tina -泡沫冬景 - 는 작중배경 자체가 쇼와시대이다.
- HERO 2기에서는 카와지리 부장이 간혹 수사를 맡기도 하는데 옛날 방식의 수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쇼와를 언급한다.
- 역전세계의 전지소녀에선 평행세계의 쇼와 시대가 레이와 직전의 일본에 차원의 틈을 열고 나타나 일본을 정복해 자기들의 영토로 삼아버린다.
- 도쿄 리벤저스에서 쿠로카와 이자나가 이끄는 천축의 주력 멤버들을 S62(쇼와62년 출생)극악의 세대라고 지칭한다.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배경도 이 시대다.
- 김전일 37세의 사건부의 늑대인간 게임 살인사건 편에서 김전일이 하야마 마린에게 "직장인은 정장 위에 다운점퍼를 입으면 안된다"는 식의 꼰대같은 말을 하자, 마린은 "이제 그런 '쇼와 시대적 발상'은 접는게 좋지 않을까요?"고 대놓고 뭐라한다.
그 외에 서브컬처에서 쇼와 시대 느낌을 내기 위해 쓰는 소품 중 특히 유명한 것이 기모노 위에 캇포기를 두른 종업원. 꼭 쇼와가 아니더라도 고풍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해 많이 차용한다.
5. 주요 인물들[편집]
쇼와 시대에 태어난 인물들은 쇼와 시대/출생 문서로.
6. 사건[편집]
일본 국내외에서 있던 사건 모두 포함한다. 연도 표기는 쇼와 연호와 서기 병기. 이중에서 몇몇에 해당하는 사건은 아래와 같이 표기.
7. 기타[편집]
- 1989년은 해의 첫 7일간이 쇼와 64년으로, 1월 8일부터는 헤이세이 시대가 된다. 즉, 쇼와 64년(1989년) 1월 7일의 다음날은 헤이세이 원년(平成元年) 1월 8일인 것. 덕분에 많은 곳에서 새해 일주일만에 달력 등을 새로 장만해야 해서 인쇄업자들만 득봤다. 이는 연호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에서는 즉위년칭원법(即位年稱元法)을 사용하기 때문. 일본의 대학가에서는 헤이세이 연도에 태어난 대학생들이 1989년 1월 1일에서 1월 7일 사이에 태어난 다른 학생들을, 비록 서력으로는 출생연도가 같더라도 쇼와 시대의 아저씨, 아줌마(昭和時代のおじさん/おばあちゃん)라고 놀리는 경우가 있다.[24] 따라서 쇼와 64년생들은 헤이세이 원년생들과 출생년도가 같기 때문에 마음만큼은 자신들도 헤이세이 태생이라고 믿어 그들과 같이 함께하고 싶지만 헤이세이 태생은 쇼와 태생을 낡은 세대, 나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취급해 같은 세대로 끼워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진정한 쇼와 태생과 함께하려 해도 역시나 애매한 세대라 그런지 끼워주지 않아 한마디로 낡은 세대인 쇼와 태생과 신세대인 헤이세이 태생 사이에 끼인 과도기 세대로 볼 수 있으며 이도저도 아닌 불쌍한 쇼와 64년생이다. 우리나라의 비슷한 케이스로 마지막 국초딩세대(국민학교 출신)인 빠른 1989년생이 있고, 또한 에코붐 세대와 Z세대 사이에 끼인 2000년대 극초반생[25] 도 있다. 쇼와 원년(1926년)과 64년(1989년)은 7일밖에 안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 2009년 이후로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성인이 되었다. 빠르면 2054년부터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모두 노인이 된다.
- 새해 일주일 만의 연호 교체가 큰 혼란을 초래했던지라 아키히토가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히자 퇴위 연월일을 2019년 1월 1일로 하고 연호는 새해가 오기 전에 미리 발표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우익들이 "금상(今上)이 멀쩡히 재위하고 있는데 연호를 먼저 발표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다"[26] , 쉽게 말하면 "한 하늘 아래 태양이 2개 있을 수 없다"라는 논리로 반대하였다. 그리고 나루히토 즉위가 해를 넘긴 5월 1일로 확정이 되자 아베 신조 총리가 국민 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신연호를 4월 1일에 발표하였을 때에도 그렇게 반대하였다.
- 쇼와 시대(1926~1989)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연호 교체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호기심과 혼란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넘어가는 시기는 다이쇼에서 쇼와로 넘어가던 시기와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다이쇼가 쇼와로 바뀌는 것을 생생히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쇼와가 헤이세이로 바뀌는 1989년 기준으로 아무리 젊어도 70대 중반 이상[27] 노인들이었고[28] 그 이하의 사람들은 연호 교체라는 것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1989년은 전산화 등 공문서 등 국가 운영 전반이 1926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복잡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연호 교체가 초래할 부작용도 매우 컸다.
- 쇼와 천황이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생전에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 1월 7일 이전에 발급한 공문서, 엽서, 각종 증명서 등에 발급된 곳에 있는 유효기간, 공사장 안내판의 공사기간 등의 날짜 표기를 보면 실제로는 히로히토가 죽고 난 뒤인 1990년, 1991년이 쇼와 65년, 쇼와 66년 등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했다. (쇼와 65년과 헤이세이 2년 표기 엽서, 유효기간 날짜가 쇼와 66년으로 표기된 운전면허증, 공사기간의 날짜가 쇼와 69년(1994년)까지로 표기된 공사장 안내판)
- 일본 엔화 동전에 찍혀 있는 연도는 1989년의 경우 쇼와 64년[29] 과 헤이세이 원년(1년)이 공존한다. 쇼와 64년 동전은 희귀해서 수집가들 사이에서 액면가보다 약간 가치를 더 쳐준다고 한다.
- 프로야구 12팀 중 11개 팀이 우승한 시대이다.[30]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쇼와 시대에만 2번의 우승 (1979, 1984년)을 했고, 한신 타이거스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 (1985년 일본시리즈)이 이 시대에 이루어졌고, 쇼와 시대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팀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이다. 특히 쇼와 40년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시대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는데, 10년 동안 무려 9번의 우승을 했기 때문. 나머지 1번은 쇼와 49년에 우승한 롯데 오리온즈.[31]
- 쇼와 시대의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아티스트 1위는 마츠다 세이코이다.
- 쇼와 시대의 발매된 노래 중 가장 많이 팔린 노래는 헤엄쳐라! 붕어빵군이다.(457만장)
-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3대 가희를 일본 언론에서는 미소라 히바리, 야마구치 모모에, 나카모리 아키나를 꼽는다. 일명 쇼와 3대 가희라 부른다.
- 이 시대의 큰 인기를 끈 음악 방송으로는 밤의 히트 스튜디오, 더 베스트 텐, 스타 탄생! 등이 있다.
- 일본 특촬물의 전설인 울트라 시리즈와 가면라이더 시리즈, 그리고 슈퍼전대 시리즈가 처음 등장한 시기이다.[32]
- 중국에서는 쇼와 시대 뽕을 비꼬는 단어로 招核가 있다.[33][34]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핵을 부른다는 뜻이다.
- 2009년 아사히 신문은 '일본 만화 역사의 길이 남을 걸작 쇼와 시대 만화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내일의 죠, 2위는 사자에상, 3위는 심술쟁이 할머니[35] , 4위는 거인의 별, 5위는 철완 아톰, 6위는 우주전함 야마토, 7위는 카무이전, 8위는 붉은 갑의 스즈노스케, 9위는 블랙 잭, 10위는 터치#였다.
[1] 요 임금의 업적을 다룬 부분[원문] 克明俊德 以親九族 九族卽 平章百姓 百姓昭明 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 큰덕을 밝히시어 구족을 화목하게 하셨고 구족을 화목하게 하시니 백성이 밝게 다스려졌고 백성이 밝게 다스러지니 온세상이 화평하게 되었다.[2] 1764~1772[3]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보 사건이 발생했는데 다이쇼 천황이 붕어한 직후인 1926년 12월 25일 동경일일신문에서 연호가 고분(光文)으로 결정되었다고 호외판 기사를 낸 후 궁내청에서 쇼와로 정식 발표하면서 편집주간이 사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명 광문사건이라고 하는 오보 사건이다. 이 때문에 기존 결정된 연호는 고분이었지만 연호가 미리 공개되어 버려 궁내성 측에서 쇼와로 급하게 바꾸었다는 의혹이 한동안 제기되었고 궁내성은 회의록을 공개하며 이러한 의혹을 일축해 왔다. 앞서 보았듯 쇼와는 궁내성의 첫 후보군 제시때부터 쭉 후보군에 있었던 후보였으며 고분은 내각 후보군 늦그늘막에 제시된 후보였다.[4] 십이지장 하혈로 죽기 전까지 계속 시름시름 앓으며 병석에 누운 것으로 보인다.[5] 쌍팔년도는 사실 단기가 기준이라 1988년이 아니고 원래 1955년(단기 4288년)이다. 이 단어가 6.25 전쟁 직후에 만들어졌기에 원래 의미는 '현재 시국'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1955년이든 1988년이든 모두 과거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고 아무래도 더욱 최근인 1988년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으로 남아 현재는 1988년 무렵으로 자주 통용된다. 여담이지만 1955년은 쇼와 30년이고 1988년은 쇼와 63년이다.[6] 마지막 년도인 1989년 출생자들은 2024년 기준 30대 중반이다. 30대 중반이라면 유행에 민감한 10대~20대 커뮤니티에서는 충분히 나이든 취급받는 세대이므로 딱 쇼와(昭和)의 이미지가 통용되기도 하며 아직도 대다수의 정치인, 기업가, 연예인들이 쇼와시대 출생이니 당연하기도 하다. 다만 1989년생의 경우 쇼와시대의 기간이 겨우 일주일도 안 되기 때문에 사실상은 1988년생까지로 구분된다.[7] 이 세대는 유일하게 실시간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8] 다이쇼가 1926년 말에 끝났으니 최소 97세 이상이다. 이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9] 메이지가 1912년에 끝났으니 최소 112세 이상이다. 수십 명 정도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현재 생존 중인 인물 전원이 여성이다. 2024년 6월 기준 최고령인 이토오카 토미오가 1908년생이므로 대부분은 메이지 시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할 것이다.[10] 아키히토, 나루히토 모두 쇼와 시대 출생이고, 기시다 후미오를 비롯한 유력 일본 정치인들은 거의 다 쇼와 시대 출생이다.[11] 한국 역사로 보면 일제강점기, 해방 후 미군정, 소군정 시대, 6.25 전쟁, 제1공화국 부터 제6공화국 초기까지가 쇼와 시대와 겹친다. 그리고 민주화된 시기 역시 쇼와 시대 끝나기 1년 6개월하고도 5일은 더 전이다.[12] 벌교읍사무소 근처에 있는 부용교다. 철교 옆에도 부용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거기는 구별을 위해 '제2부용교'라고 부른다.[13] 이 작품에서 쇼와 덴노는 늘그막에 직접 쿠데타를 추인하는 방송을 하는 굴욕을 겪는다.[14] 당시 6.25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인 제1세계의 리더 미국과 제2세계의 리더 소련이 전후 세계를 양분하여 주도권을 쥐고 냉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서로 영역 표시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리전이고, 베트남 전쟁은 한국과 일본에 가로막힌 공산권의 대양 진출을 한번 더 막으려던 미국이 치른 전쟁이다.[15] 당시 미국은 소련을 제친 일본을 경계하여 플라자 합의를 강제했다.[16] 가끔씩은 군사정권 시절도 소환되며, 주로 똥군기 관련해서 쓰인다.[17] 메이드 카페는 약 15년 후인 헤이세이 10년(1998년) 8월에 이벤트성 영업을, 헤이세이 11년(1999년) 7월에 정식 영업을 시작한 것이 최초다.[18] 1기는 쇼와 41년(1966년) 작, 2기는 쇼와 63년(1988년) 작. 2기 42화부터는 헤이세이 시대에 만들어졌다.[19] 1기는 헤이세이 27년(2015년), 2기는 헤이세이 29년(2017년), 3기는 레이와 2년(2020년) 작.[20] 사실 2050년을 쇼와나 헤이세이(平成) 연호로 부르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해도, 레이와(令和) 연호로 부르게 될지조차 확실치 않다. 2050년이면 現 천황인 나루히토가 90세의 고령일 시점이라, 사망했거나 퇴위한 이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2050년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일본의 새로운 연호로 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외] A B C D E F G 일본 국외에서 있었던 사건 중 일본과 연관된 사건[한] A B C D E F G H I 한국과 연관된 사건(1945년 이후)[전]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일본 제국의 전쟁과 관련된 사건[조]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발생한 사건 또는 이와 연관된 사건[대] A B C 일제시대 대만에서 발생한 사건 또는 이와 연관된 사건[21] 동아시아 최초의 지하철이다.[22] 사건 당일 도쿄 관제소와 무전을 시도했었으며, 격추된 이후 해상자위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회갑] [23] 같은 날 세이칸 연락선의 운행이 종료되었다. 이후 쇼와 63년 내에 2회의 리바이벌 운행을 거쳤다.[24] 1989년 1월 7일에 태어난 신생아의 모습이다.출처 쇼와 시대 마지막 날 1월 7일 14시 36분경 헤이세이 연호를 최종적으로 발표했지만 당일 23시 59분까지 태어난 사람들까지는 산부인과에서 쇼와 64년생으로 표기되었다. 그리고 1월 8일 자정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부터는 헤이세이 원년으로 표기된다.[25] 2000년생과 2001년생[26] 틀린 말은 아닌게 원칙상 천황이 죽어야 다음 천황이 즉위하는 것이지 생전퇴위 자체가 이례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27] 1926년 이전에 태어났다고 해도 그때 너무 어렸다면 기억할 리가 없다. 고로 쇼와 개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1926년 기준 14세로 잡아도 1912년(메이지가 다이쇼로 바뀐 해)생들은 1989년에 77세였고, 20세였다고 치면 1906년생이므로 1989년에 83세가 된다. 일본 국민 평균 수명이 전세계에서 가장 긴 것을 감안하여 1989년에 90세였다고 치면 세기가 바뀐 1899년생들이다. 다이쇼 천황이 병약하여 지천명도 못 넘기고 붕어하여 쇼와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다이쇼 시대가 너무 일찍 닫혔기 때문에, 1989년에 90~100세쯤 된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다이쇼 개원, 쇼와 개원, 헤이세이 개원까지 본 경이로운 인생을 산 셈이다. 일본사 유일의 황족 출신 총리이자 역대 최장수 총리(그러나 역설적으로 재임 기간은 가장 짧았다.)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이 이런 경우였다. 두 번째로 오래 산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지금도 생존 중인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다이쇼 시대에 태어나 쇼와 개원, 헤이세이 개원, 레이와 개원까지 지켜봤다.[28] 심지어 연호가 다시 바뀐 2019년에는 그 연령대의 노인들조차 모두 쇼와 태생들이다.[29] 50엔,100엔 제외[30] 12개가 아닌 이유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헤이세이 시대에 와서 창단했기 때문. 즉, 현재 일본프로야구 구단 중 쇼와 시대부터 존재했던 구단은 모두 쇼와 시대에 우승을 최소 한번 이상은 경험했다.[31]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했다.[32] 각각 1966년(울트라 시리즈), 1971년(가면라이더 시리즈), 1975년(슈퍼전대 시리즈).[33] 쇼와의 한자인 昭和와 한자 발음(zhao he)이 같다.[34] 다만 한국 한자음으로는 昭和(소화), 招核(초핵)으로,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35] 사자에상의 작가 하세가와 마치코의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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