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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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 아시아 (1974)
Shocking Asia


파일:attachment/쇼킹 아시아/info.jpg

장르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다큐멘터리
감독
롤프 올센(에머슨 폭스)
각본
롤프 올센, 잉게보르그 슈타인베르크
제작
볼프강 본 쉬버
제작사
파일:독일 국기.svg 가이젤가슈타이히 필름
수입사
파일:독일 국기.svg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파일:스페인 국기.svg 아도스 필름
파일:미국 국기.svg 베드포드 엔터테인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월드시네마
배급사
파일:홍콩 국기.svg 퍼스트 필름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월드시네마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년 5월 3일
1999년 10월 9일(2편)
화면비
1.33:1
상영 시간
94분
대한민국 총 관객 수
307,360명(서울)[1]
2편: 43,188명(서울)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8세이상_2021.svg 연소자 관람불가
1. 개요
2. 1편
3. 2편
4. 3편
5. 평가
6. 아류작


1. 개요[편집]


1974년, 독일에서 제작된 몬도 영화 장르의 다큐멘터리 영화. 몬도 카네의 인기에 힘입어 개봉된 작품으로,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홍콩의 First Film과 합작으로 진행되었다. 링크 핀란드에서는 폭력적인 콘텐츠로 상영이 금지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태국이나 인도 등의 동남아시아의 토속문화/식문화와 일본등의 하위문화, 예를 들면 불법 성전환 수술이나 일본의 이미지 클럽[2] 등을 모아 개봉한 필름으로, 1997년에 국내에도 개봉되어 서울 30만이라는 폭발적인 흥행몰이[3]를 했다.[4] 여담이지만 오정국 문화일보 기자가 쇼킹 아시아 열풍에 대해 쓴 글을 보면,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은 모두 백인들의 사디즘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연출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영화를 비난했는데, 정작 영화의 최대 문제점인 '문화적 상대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언급도 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이유로 영화를 까서 조용히 묻혔다. MBC 보도에선 관객들 중 아시아를 비하한다고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반응이 오히려 서구와 백인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한 과민반응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자기 나라나 유럽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엽기, 변태, 퇴폐 사건만을 골라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돈벌이 삼는 일은 유럽과 북미에서 오랜 사업이다. 굳이 아시아나 아프리카를 의식하지 않고, 희한한 일이나 변태적인 일을 찾아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 그러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학과 남의 문화에 대한 이해 없는 비난은 다른 문제다. 특히나 그 대상이 1970년대 기준으로는 지금보다도 사회적 약자였던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목적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즉, 본인들이 자학 개그를 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아시아 문화의 이해가 상대적으로 얕은 서양인들이 아시아 문화에 대한 영화를, 그것도 엽기적인 것만 모아다가 만들었으니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 못한다는 것. 더불어 단순히 오래된 현상이라고 해서 정당화 될 수 있는 문제였다면 프릭쇼샴쌍둥이나 장애인들을 마구잡이로 데려다 웃음거리로 삼던 옛날의 서커스 역시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슷한 장르인 몬도 카네는 그나마 외국의 이상한 풍습을 보여주다가도 서양권의 엽기적인 것이 번갈아 나오며 어느 쪽을 더 비난할 수 없게 보여주는 중립성을 보여줬다. 이 영화는 훨씬 평도 좋으면 칸영화제에 출품될 정도로 다른 쇼킹 시리즈와 확 다르다. 아무튼, 흥행에 힘입어 1999년에 쇼킹아시아 2도 개봉했지만 서울관객 4만 8천명으로 망해 사라졌다.

이 영화를 통해서 쇼킹이라는 단어가 엄청나게 유행했으며[5], 세기말, 엽기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까지는 일상에서 매우 자주 쓰이는 단어였고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6]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던 시절 영화 신문광고들 중 어떤 쇼킹 아시아 지면광고는 차마 영화의 스틸샷을 올릴수 없었던지 극장 앞에 몰린 인파로 사진을 대체했었다(...)[7]

김두영이 이 쇼킹 아시아가 흥해서 그걸 비슷한 소재로 주글래 살래에 오마주했다. 오마주된 주글래 살래도 그냥 생각없이 자극적인 장면만 집어넣은 졸작이다. 김두영이 그게 인기 있다고 그냥 벤치마킹한 것이다.


2. 1편[편집]


1974년 작.

태국의 성전환 수술, 난쟁이들이 서빙을 하는 클럽, 야쿠자의 문신 등을 다루고 있다. 상영시간은 70분 가량이지만, 국내에서는 영화업자들이 장면을 더 추가하여 90분 버전으로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홍콩의 퍼스트 필름과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3. 2편[편집]


Shocking Asia II: The Last Taboos
1985년 작. 91분.

말레이시아힌두교 페스티벌과 홍콩의 매장 풍속, 일본의 섹스 박물관, 태국의 나환자 촌 등이 등장한다.

4. 3편[편집]


Shocking Asia III: After Dark i
1995년 작.
일본의 이미지 클럽이나 스카톨로지성 일본 성인 만화(상업지?), 신음소리를 담은 테이프를 판매한다든가 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친숙한 문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5. 평가[편집]


한마디로 위에도 언급했듯 문화의 상대성이라는 개념 없이 찍은 졸작. 아시아의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 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오래전부터 아시아에서 전해 내려온 종교적 풍습까지 까고 있다. 차라리 몇 년 뒤에 나온 사형참극이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도 있고 여러모로 더 괜찮은 작품이지만, IMDb에서는 쇼킹 아시아의 평점이 더 높다.[8][9] 1997년 여성들이 뽑은 최악의 외국영화에 뽑혔다.


6. 아류작[편집]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국내에선 비슷한 류의 비디오들이 잇달아 출시되었는데(대표적으로 쇼킹 아프리카나 쇼킹 아메리카) 대부분 연출인 것이 많았으며, 전혀 상관없는 홍콩산 극영화나 공포영화를 '쇼킹 차이나' 또는 '쇼킹 홍콩'이라는 타이틀로 출시하기도 했다. 또한 '쇼킹 코리아'라는 비디오용 에로영화가 출시되기도.

참고로 '쇼킹 아프리카 아시아' (원제:Naked Africa)는 아류작이 아니다. 쇼킹 아시아보다 24년 전에 먼저 제작된 1957년작 쇼큐멘터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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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해당 뉴스 기사에서는 전국 60만이 넘었다고 기록. 참고로 쇼킹 아시아와 비슷한 시기 개봉한 정우성 고소영의 비트가 서울 34만 관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대박수치이다. 영화 업자들이 추후에 '쇼킹' 시리즈를 우후죽순 수입하여 개봉한 것도 이러한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2] 일본 내에서는 이메쿠라라는 일본식 약어로 부른다.[3] 지금으로 치자면 전국 300~400만 정도 대박이다.[4] 한국 개봉판은 1995년작 3편을 중심으로 1, 2 편의 내용을 약간씩 추가한 버전. 원본과 비교하자면 한국판은 솔까말 1, 2, 3편의 야한 부분만 모아놨다고 봐도 무방하다.[5] 흥미로운점은, 전작이라 볼수있는 몬도 카네 역시 센세이션을 일으켜서 뭔가 엽기적이고 기괴한것을 말할때 이 영화 제목으로 표현하는(가령 '몬도가네스럽다...'라든가) 수사법이 간혹 있었다. 쇼킹처럼 유행어 수준까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6] 일례로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온 티에리 앙리 앞에서 노홍철저질댄스를 격하게 추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 옆에서 하하가 (이게 바로)쇼킹 아시아라고 말하자 앙리가 알아듣고 빵 터진다.[7] 네이버 DNA에 관련 자료가 남아있다.[8] 쇼킹 아시아가 5점대, 사형참극은 3점대.[9] 게다가 일본의 섹스 박물관같은 건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도 비슷한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