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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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되는 피아노 콩쿠르로, 프레데리크 쇼팽 연구소(Narodowy Instytut Fryderyka Chopina)에서 주관한다. 피아노 분야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지닌 대회이다.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몰려든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단일 음악 콩쿠르다. 1927년에 시작되었고 5년마다 개최되고 있다.[2]
폴란드가 낳은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프레데리크 쇼팽의 이름이 붙은 콩쿠르답게 다른 콩쿠르들과는 달리 오로지 쇼팽의 작품만이 연주된다. 심사위원장은 전통적으로 폴란드 출신이 맡는다.
2. 참가 대상[편집]
국제 음악 콩쿠르 참가에는 대개 나이 제한이 있는데 보통 만 17~30세 사이이다. 쇼팽 콩쿠르도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해당 나이 범위 안에 들어가야 참가할 수 있다.
나이 제한이 있는 것은 아래와 같이 비슷한 이름의(그리고 조금 다른 취지의) 대회들이다.
-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쇼팽 콩쿠르(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Piano Competition for Children and Young)로서 3개의 연령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10세~12세, 13세~15세, 16세-19세. 1993년부터 매년 개최.
- 어린이를 위한 쇼팽 콩쿠르(The 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Competition for Children). 3년마다.
- 청소년을 위한 쇼팽 콩쿠르(The 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Competition "Chopin for the Youngest"). 2년마다.
같은 이름으로 아마추어를 위한 콩쿠르 또한 열리고 있다.
3. 특징[편집]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콩쿠르인 만큼 많은 세계구급 피아니스트들이 이 콩쿠르에서 이름을 알렸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1955년 2위),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 1위),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1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 1위), 스타니슬라프 부닌(1985년 1위) 등 클래식 피아노계의 전설적인 이름들이 수상자 명단에 등장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그 명성이 다소 주춤한 감이 있지만[3] 2000년에 중국인 피아니스트 리윈디가 15년만에 우승을 차지하였고,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역대 심사위원들 또한 만만찮은데, 겐리흐 네이가우스, 에밀 폰 자우어, 빌헬름 박하우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그리고 지금은 작곡가로 더 유명한 연주자 모리스 라벨 등이 심사위원직을 맡은 바 있으며, 아쉬케나지나 아르헤리치 등 역대 수상자들이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1980년 대회에서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참가자였던 이보 포고렐리치가 3라운드에서 탈락하자 항의의 의미로 심사위원을 사퇴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말이 많았는데 아시아 최초 우승자인 당타이선을 두고 포고렐리치보다 못하다고 한 것. 하지만 심사위원장이 천재라서 그를 우승시킨 것이지, 인기가 많다고 우승한 게 아니라고 반발했다. 2005년 대회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강충모가 심사를 맡은 바 있다.
콩쿠르가 흔히 그렇듯이, 순위에 적합한 참가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순위는 그냥 비워버린다. 현재까지는 1위는 두 차례(1990, 1995년 연속), 2위는 한 차례(2005년) 공석이었다. 참고로 2005년 대회에서는 임동민, 임동혁, 손열음 세 사람의 한국인 연주자가 결선에 진출하였으며, 이 중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수상했다. 그리고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조성진(피아니스트)이 1위를 수상했다.
연주자의 취향에 맞게 야마하, 스타인웨이, 카와이, 파지올리 중 하나의 연주회용 그랜드 피아노를 선택할 수 있다. 2015년도 이외의 쇼팽 콩쿠르에서는 뵈젠도르퍼가 나오기도 하였다.
2015년 대회를 기준으로 예선과 본선으로 나뉘며, 오로지 프레데리크 쇼팽의 곡만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먼저, 참가 희망자가 보낸 연주 영상을 토대로 160명의 예선 참가자가 결정된다.[4] 영상 심사에서 합격했다면 참가자들은 본인 부담으로 바르샤바까지 와서 예선에 참가한다. 대회가 인정하는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연주자들을 바로 본선으로 직행시키기도 한다. 정해진 곡 목록에서 참가자가 연주할 곡을 선택하며, 레퍼토리는 에튀드, 녹턴, 마주르카, 발라드/스케르초/환상곡/뱃노래 10곡 중 한 곡이다. 심사위원들은 이를 심사하여 80명의 본선 참가자를 뽑는다.[5]
본선은 다시 네 단계로 구분된다. 역시 참가자가 각각의 곡 목록에서 연주할 곡을 선택하는 방식.
- 본선 1차: 에튀드 2곡[6] , 녹턴/녹턴 풍 에튀드[7] 중 1곡, 발라드/스케르초/환상곡/뱃노래 중 1곡
- 본선 2차: 발라드/스케르초/환상곡/뱃노래/폴로네이즈-환상곡(Op.61) 중 1곡, 왈츠 1곡, 폴로네이즈 1곡 (최소 30-40분 연주)
- 본선 3차: 소나타 2번(Op.35)/3번(Op.58)/프렐류드 전체(Op.28) 중 1곡, 마주르카 중 1개 Opus 전체, 최소 연주시간 45-50분을 충족할 기타 한 곡
- 최종 라운드: 피아노 협주곡 1번(Op.11) 또는 2번(Op.21)
종합 성적 외에도 최고의 폴로네이즈, 마주르카, 협주곡, 소나타 연주자에게는 특별상이 수여된다.
4. 역대 입상자 목록[편집]
5. 기타[편집]
- 2015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조성진이 1위를 차지했다.
- 현재로서는 천재는 단명한다는 속설이 아예 통하지 않는 대회다. 2022년을 기준으로 1949년 대회 이후의 우승자들은 유이한 공동우승자인 할리나 체르니-스테판스카를[11] 제외한 전원이 생존하고 있을 정도로 장수하고 있다. 최고령 생존자인 1949년의 공동우승자 벨라 다비도비치는 2023년 기준 무려 95세고, 1955년 대회 우승자 아담 하라셰비치도 90세로 생존. 1965년 대회 우승자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80대의 나이로 라벨 협주곡를 쌩쌩하게 연주하는 등[12] 경이를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인 노익장을 보여주고 있다.[13]
- 쇼팽 재단 공식 유튜브 계정이 상당히 친절하다. 콩쿠르가 진행 중일 때 유튜브 실시간 채팅에 질문을 남기면 담당자가 실시간으로 답변을 남겨 준다. 심지어 장난이나 농담하는 듯한 질문도 진지하게 답변해 준다. 운이 좋으면 유튜브 채널 영상의 댓글을 남기면 답글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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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란드어[2] A B 17회 최종 결선 진출자 중 유일하게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3] 1990년 12회, 1995년 13회에는 1위 수상자가 없었다.[4] 전공자들 사이이서는 이 과정을 DVD 예선, 그냥 줄여서 디비디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국제 콩쿨은 단순히 참가를 희망한다고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렇게 예비심사를 통해 참가자를 선발하는 Screening Audition에서 합격을 해야 비로소 정식 참가자로서 경연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5] 국제 콩쿠르 치고는 참가자를 굉장히 많이 뽑는 편이다. 당장 차이코프스키와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가 30명을 뽑아서 경연한다. 이 외의 다른 국제 콩쿠르도 보통은 30~40명 선에서 출발하는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점이다. 아무래도 개최 주기가 무려 5년으로 무지하게 길어서, 일생에 1~2번 참가할 수 있을까 말까이기 때문에 많이 뽑는 듯.[6] A/B그룹으로 나뉘어 각각에서 1곡씩 선택[7] Op. 10 중 3번과 6번, Op. 25의 7번 등 3곡이다.[8] 이 당시 1위와 2위의 희비가 어이없게 엇갈렸는데, 심사위원들의 최종 투표 결과 유닌스키와 웅가르가 같은 수의 표를 얻게 되자 동전 던지기(...)로 둘의 순위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닌스키와 임레는 사실상 공동 1위인 것. 이것이 이후 강한 비판을 받게 되자 동수의 표를 얻은 결선 진출자의 경우 해당 순위에 공동 입상시키는 것으로 콩쿠르 규정이 변경되었다. 이것이 처음 적용된 사례는 제4회의 1위 입상자 결정 때였다. 당시 혼란한 국제정세를 반영하듯 두 사람 다 출신국가에서 활동하지 않았는데, 유닌스키는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했고 임레는 네덜란드에서 주로 활동했다.[9] 최초 아시아인 우승자이며, 역대 쇼팽 콩쿠르 중 유일하게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우승했다.[폴로네이즈] A B 최우수 폴로네이즈상[마주르카] A B C 최우수 마주르카상[콘체르토] A B 최우수 피아노 협주곡상[10] 사상 유일한 전부문 우승자.[소나타] A B 최우수 소나타상[11] 2001년에 향년 78세로 사망. 오늘날 기준으로는 살짝 아쉬운 나이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충분히 장수였다.[12] 90년대에 암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력과 체력 둘 다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다.[13] 유명 음악 유튜버 Rick Beato가 이것에 대해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동영상을 올려서 화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