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방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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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수도방위사령관은 육군의 중장이 보임된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이 역쿠데타를 막기 위해 제30향토사단과 제33향토사단에서 1개 대대를 차출하여 제30경비단과 제33경비단을 창설한 것을 시초로, 이후 이 부대가 계속 확장되어 수도(서울)을 방위하는 사단급 기능사령부로 개편된 것이 수도경비사령부이다. 1984년 육군특수전사령부와 함께 군단급으로 증편되면서 중장 보직이 되었다.
2. 권한과 역할[편집]
청와대와 서울을 지킨다는 상징성 때문에 과거 수도경비사령관직은 하나같이 군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차지한 직책이었다. 특히 하나회가 득세하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하나회 출신만이 맡을 수 있던 자리였고, 정권의 친위대 역을 하며 각종 시위 진압에도 투입되던 수도권에 공수여단들을 둔 특전사령관과 더불어 군 최고의 요직으로 손꼽혔다. 실제로 예하에 다수의 전투부대를 거느린 제1야전군 및 제3야전군 산하 여러 부대가 있었지만, 특히 당시 수경사 소속의 수도권 부대들은 충정부대라 불리며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맡아왔다. 당장 전두환이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후 가장 먼저 수경사령관에 앉힌게 바로 핵심 측근 중의 측근이자 동지였던 노태우였다.
3. 역대 수도방위사령관[편집]
무게감이 과거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그래도 중장 지휘관 직위인만큼 위상은 높은 편. 2000년대 이전까지는 본인 내지 부하가 사고를 쳤다든지(박남수 등), 관운이 없었거나(신원식), 인사적체 해소를 명목으로 전역당했거나 자력이 꼬인(김용현, 구홍모 등) 원래 전역하고 싶어했던(김선호) 케이스를 빼면 거의 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철책선으로부터의 거리가 중시되는 추세라 전통의 진급 보증수표 제5군단장은 물론, 제1군단장에도 확실히 밀렸고, 심지어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제3군단장[1] 출신에도 밀리고 있다.
거의 10년 동안 대장 진급자가 나오지 않다가[2] 2020년 9월 인사에서 김정수(육사 42기) 장군이 진급에 성공했다.
[1] 특히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첫 대장인사에서 합참의장에 임명된 김승겸 대장에 이어, 3군단장 출신이 2명이나 대장에 임명됨에 따라 중장보직의 새로운 요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2] 이때 대장 진급을 물먹은 사령관 4명(박남수, 신원식, 김용현, 구홍모) 전부 합참 작전라인의 초엘리트였는데, 사건사고에 휘말리거나 정권 교체 이후 밀려났다.[3]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예편 당하였다.[4] 준장 시절에는 이 부대의 참모장을 거쳤으며, 12.12 군사반란으로 인하여 강제예편 당하였다. 사령관에 부임한지 4주도 못되어 물러났다.[5] 전두환 前 대통령이 맡던 보안사령관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대장까지 진급했다.[6] 박희도, 박준병과 함께 '쓰리 박'으로 통하였다.[7] 이 때부터 부대 명칭이 수도방위사령부로 바뀌었다.[8] 대장까지 진급하여 육군참모총장을 역임 중 그 유명한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제정하였다.[9]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과 합참의장을 마치고 예편, 국방부장관까지 올랐다. 참고로 역대 수방사령관 중 그리 많지는 않은 서울 출신이다.[10] 대장까지 진급하여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거친 뒤에 군을 떠났다. 2014년 6월 1일자로 국방장관에 지명되었다.[11] 2008.04.03 ~ 2009.11.05[12] 합참 전력발전본부장(중장) 시절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을 맡아 사건 규명 과정에서 북한의 어뢰 추진기를 수거한 공로 등이 인정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 前 제1야전군사령관(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의 '군번줄 발언'에서 군번줄이 있다고 손을 든 몇 안되는 장성으로도 유명)[13] 2009.11.05 ~ 2011.11.04[14] 이후 합참 군사지원본부장(舊 전력발전본부장)을 거쳐 2012년 10월 대장으로 진급, 제3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15] 2011.11.04 ~ 2012.11.06[16] 육사교장 역임. 육사 성폭행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전역까지 했다.[17] 2012.11.06 ~ 2013.10.25[18] 1년도 채우지 않고 합참으로 자리를 옮겼다.[19] 2013.10.25~2015.10.27[20] 빠른 중장 진급과 일찍 이임한 신원식 전 사령관 덕에 2년 역임했다. 이임 이후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전역. 3기수 연속 대장 진급에 실패한 수방사령관.[21] 2015.10.27~2017.09.26[22] 2017.09.26~2019.05.07[23] 육사 43기, 경북 영주 출신.[24] 육군특수전사령관 김정수[23] 와는 동명이인[25] 2019.05.07~2020.05.08[26] 2020.05.08~2022.06.08[27] 사단장 경력 없음.[28] 2022.06.09~2023.11.06[29] 2023.11.06~
4. 관련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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