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수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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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 陸軍 搜索隊 / ROK Army Reconnaissance and Surveillance Unit

1. 개요 및 육군 수색대 (RCN / RANGER) 의 역할
2. 선발
2.1. 부사관
2.2. 병
3. 편제
3.1. 수색대대
3.2. 수색중대
3.3. 기갑수색대
4. 특징
5. 여담
5.1. 6.25 전쟁과 창군 초기의 수색대 형태
6. 출신 인물
7. 관련 문서





1. 개요 및 육군 수색대 (RCN / RANGER) 의 역할[편집]


육군 사단급 이하 부대에 편성된 부대로 2021년기준 사단에는 수색대대, 여단(과거 연대)에는 수색중대로 구성된다. 수색대대와 수색중대의 임무는 5년~8년 사이로 교체하며 동일한 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적지종심작전부대로서 침투·정찰감시·화력유도와 그리고 적 특작부대 아군 후방 침투 시 이를 소탕하는 탐색격멸작전, DMZ 수색 및 매복작전, 최전방의 GP경계 임무를 수행한다. 사단급 부대에 수색대대가 편제되어 있고, 여단급에 수색중대가 편제되어 있다. 사단 직할대나 예하부대 중에서도 임무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사단·여단·연대의 최정예 병력으로 취급받는다. 상비사단 및 동원사단이 수색대를 보유하고 있다.


2. 선발[편집]


2006년도까지는 수색대대에서 직접 내려와 뽑아갔다. 신교대에서 차출이 되면 정말 특별한 사항이 아닌 이상 무조건 수색대 또는 수색중대로 배치되었다.

2010년대에도 여전히 수색대대에서 신교대에 와서 신체등위 및 훈련소 성적순으로 불러놓고 선발. 직할대인 수색대대가 사단내에서 신병 자원에 대한 1차 선발권을 보유.

2016년도에는 차출이 아닌 육군본부에서 내려온 명단으로 면접지원자격을 부여함.[1]
->교관이 직접말해줌[2]
면접을 보고 지원의사가 확실하면 수색대로 자대배치. 이후 DMZ 작전을 위한 기밀유지서약과 약 최소 2주에서 1달동안 신원조회가 이루어진다.[3] 그 후 집체교육을 수료한 자들에게 흉장부여.

보통은 소수의 인원만 뽑아갔고 훈련병들 내에서는 무지막지 하기로 소문이 퍼져있어 선호되는 부대는 아니었으나, 군뽕찬 마초들과 더불어 최신 막사시설 낚시에 낚인 물고기들, 그리고 휴가 많이 준다는 소리에 혹한 훈련병들 덕에 인적 자원은 잘 유지된다. 부족하면 더 차출하면 되기 때문에..(휴가는...많이 받는건 사실이지만 많이 주는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다.)


2.1. 부사관[편집]


수색대대의 경우 113 특임보병(보병병과) 부사관이 배치된다.[4]

특수전력 정예화, 부대구조 정예화 이전에는 병 위주의 편제였지만, 현재는 특수전력 정예화 개편이 대부분 완료되었으며, 간부 위주로 개편 되었다. 수색대대는 팀 편성에서 부사관 위주로 구성되며, 부사관과 병이 *비율로 배치된다. 인원 구성비는 DMZ 수색 및 매복 작전에 투입되는 전방사단 수색대대와 해안, 강안사단 및 예비사단 수색대대대는 팀 편성에서 인원 수에 조금 차이가 있다.

2015년 이후부터는 매년 부대 간부들을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수전학교 특공수색교육대에 3주간 위탁교육을 보내는데 주로 적지종심작전에 필요한 침투·정찰감시·화력유도와 그리고 적 특작부대 아군 후방 침투 시 이를 소탕하는 탐색격멸 등을 배우는 "특공수색교육"을 받는다.

초급반과 중급반 과정은 각각 육군 부사관학교와 육군 보병학교에서 특공수색반을 별도 편성해서 교육하며, 일반보병과는 다른 교육과정을 가진다. 또한 초급반, 중급반 과정 중에 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특공수색교육대에 위탁교육을 보내 3주간(특공수색 초급, 특공수색 중급 각각 3주씩) 특공수색교육을 또 다시 받는다.

수색대대 부사관은 보직, 필요성, 부대내 특정교육이수자 인원유지, 위탁교육T.O, 본인 역량 등에 따라 위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위탁교육의 종류로는 특공수색교육[5](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특전 의무 교육[6](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산악전문과정[7](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전문유격과정[8](육군보병학교), 저격수의 경우 특수전학교 저격교육도 받을 수 있다.

수색대대[9]가 간부위주 편제로 개편된 2016년 이후로 전역 후 경찰특공대, 119구조대, 해양경찰특공대의 지원 자격 부대에 포함된다. 단 병으로 지원가능한 경찰특공대와 달리 119구조대는 근무경력이 3년 이상인 자로서 하사 이상의 계급으로 1년 이상 근무한 자이어야만 한다. 물론 하사 이상 계급으로 1년 이상이므로, 병으로 근무하고 있다면 전문하사를 지원하여 전문하사로 근무해서 자격요건이 요구하는 군복무 기간을 채우면 지원이 가능하다.

2.2. 병[편집]


훈련병들 중에서 지원자를 받지만 지원자가 부족하면 차출이 되는데, 지원해서 오는 사람보다 차출되어 오는 사람이 더 많다.[10] 처음 입소할 때 간부가 자기 군복의 흉장과 공수휘장을 보여주면서 '수색대 지원 할 사람 거수', 군생활 멋지게 하고 싶은 사람 거수' 이런 멘트를 날리는데, 물론 훈련병들도 수색대가 빡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GP에 2달 동안 짱박히는 수색중대의 경우는 정신건강만 멀쩡하면 지원이 곧 합격이라 할 수 있다.

훈련소나 신교대마다 케바케지만 대부분 훈련소 교육성적 우수자나 사회에서 체육을 전공했던 훈련병을 우대한다. 또한 28사단 수색중대에서의 김 일병 사건 이후, 군 복무 내내 실탄과 수류탄을 휴대하는 수색대대 특성상 정신적인 부분도 선발시 굉장히 중요히 여기는데,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신교대 처음 입소시 작성하는 생지부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열의가 있어도 생지부를 확인하여 폭력성이나 우울증 등이 의심되면 짤없이 탈락된다. [11]

훈련병 때 열심히 하면 결과는 GOP, 수색대, 조교[12]와 같이 빡센 보직으로 차출될 확률이 크다. 흉장 오버로크로 일반병보다 좀 더 화려한 민정경찰(DMZ POLICE)을 박고...

하지만 군대 안에서는 정예병력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우월심리나 영웅심리로 자원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또는 민정경찰 내지 사회에서의 고지위의 일자리에 지원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있거나 큼지막한 독수리 휘장에 혹가서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렇게 지원하는 대부분은 정작 남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 치지만...

이 루트를 타지 않고 수색대에 떨어지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지지리 운도 없는 특정 특기병[13]들의 경우는 지원이고 뭐고 없이 무작위로 이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특히 폭파병의 경우는 보통 X군단 예하 공병여단으로 배치받는 경우가 많아, 일반 보병사단으로 떨어지면 부대 배치 받을 때 공병대대에 가기를 빌어야 한다. 이상한 곳으로 간다 싶다면 그게 바로 수색대대다. 망했어요. 이런 경우는 낚여서 자의로 오는 게 절대 아니기 때문에 캐안습. 뭐 그래도 이렇게 수색대에 떨어지면 웬만하면 행정병으로 보직을 받지만, 군번이 꼬이면 그런 것도 없다 (주특기병은 행정병이 될 수 없다. 행정병의 주특기는 따로 있기 때문에 주특기 변경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무전병의 경우 일반 소대로, 폭파병의 경우 본부중대 포반 또는 중화기중대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사단 직할대인 수색대대는 수송부가 존재하고 운전병이 상당수 편제되어있으나, 연대 수색중대의 경우 별도의 수송반 없이 연대 혹은 사단 수송대에서 파견 오는 병력이 담당하므로 운전병을 별도로 뽑지는 않는다.


3. 편제[편집]


[심일]소령은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복무 중 영월 전투에서 전사하였음. 3공화국 시기에 2사단 수색대가 스키부대로 지정되어 활동. 적 민경대대 확대에 대응하여 수색중대 - 수색대 - 수색대대로 확대되었음. 수색중대는 적 민경대대에 대응하여 아군에서 편제했던 전초중대들로 연대 섹터의 DMZ에 위치한 GP 방어를 담당하면서 사단 직할 특수전부대였던 수색대대와 병존하였다. 이러한 사단직할 수색중대의 시작은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전 부대의 시작이었다.

월남전 시기부터 각 연대별로 운용되던 수색중대는 1977년부터 1983년 사이[14] 단계적으로 해체되었는데, 일부 인원들은 원래 존재하던 사단 직할 수색 중대와 같이 사단 직할 수색대대 창설요원이 되었고, 일부 인원들은 각 대대별 수색소대 창설요원이 되며 육군 수색대 편제는 각 보병대대별 수색소대와 사단 직할 수색대대 체제로 변경된다.[15] 참고로 수색대대는 자체적으로 집체교육을 시키고, 수색소대는 신병들을 1년에 1~2회 수색대대에 파견해 집체교육을 받도록 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이]

대대 수색소대와 사단 직할의 수색대대로 되어있던 육군 수색대는 1993년부터 1998년 사이에 다시 한번 편제의 변화를 가지게 된다. 보병 사단 직할의 전초대대(정찰대대)가 사라지게 되며 GP 작전을 수행할 부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해체된 정찰대대 출신 인원들을 각 연대로 보내 연대 직할의 수색중대를 재창설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대대 수색소대도 단계별로 해체되며 일부 인원은 대대에 잔류해 대대 수색분대로 운용되며, 일부 인원은 정찰대 출신과 함께 연대 직할 수색중대를 재창설하게 된다.(전초대대가 해체되면서 전초대대의 임무를 기존 수색대대와 연대의 수색정찰중대가 하게 되었다. 연대 수색중대가 전초대대해체후 창설된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당시 육군 편제는 4대대까지 있었기 때문에 추후 부대 편제는 다음에서 서술하겠다)[17]

이렇게 다시 창설된 연대 직할의 수색중대는 이전의 수색중대와는 다른 GP 작전/수색매복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18] 초기에는 수색중대 대신 수색정찰대로 불렸으나[19] 정찰대 출신들이 하나둘 전역을 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색정찰대 대신 수색중대라는 명칭의 부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20]

그리고 과거 수색대대에서 교육을 받던 대대 수색소대와 달리 다시 창설된 연대 수색중대는 수색대대 파견교육 대신 자체적인 집체 교육을 실시하며, 자체 흉장을 사용하였다.[21]

수색중대와 수색대대는 평시 작전을 GP임무와 비부장지대내 수색 및 매복임무로 나뉘고 그 임무를 대략 5년~10년 단위로 교체를 하였다. 지금은 수색대대가 비무장지대내 수색과 매복임무를 수행하고 수색중대가 GP작전을 수행으로 고정되었고 이는 2001년 중반~2002년 후반에 단계적으로 교체한 결과이다. 즉 두 부대 모두 동일한 임무를 교체하며 작전을 수행했었고 또한 95년 중반에서 96년 중반사이에도 임무 교대가 있었다.

6.25 사변때는 적 후방 깊숙히 침투하여 정찰감시.목표타격.후방교란.보급로 차단.통신시설파괴.지휘관 생포 등 군단.사단사령부의 눈과 귀가되어 전술적 척후병이 수행해야 하는 특수작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월남전에 파병되어서도 적 후방 심장부까지 깊숙히 침투하여 적을 교란하였고 이후 특전사 7, 9, 11, 13 여단 창설시 부족한 인원을 각 부대 수색대에서 1중대씩 배속했으며 특공여단, 특공연대 창설시 1개 중대씩 배속시켜 특수부대 창설의 모태가 되었다. 1980년까지는 특전사 편제인 지대 편제로 운영되다가 1981년 기존 사단수색대(중대이하급 규모의 독립부대)에서 대대급 편제로 개편하면서 연대배속된 수색중대 전초대대, 정찰대 인원들을 배속하여 몸집을 키웠다 결국 1996년까지 최종 대대급 정규편제로 개편되었다.그리고 정찰대가 해체되면서 정찰대인원 대부분이 역시 사단 수색대대로 이동하였다.(노태우 대통령이 창설하였고 수색중대, 그리고 수색대대와 임무가 겹쳐서 통합및 해체됨)
마찬가지로 연대 수색중대 역시 사단 수색대대의 편제처럼 몸집을 불려갔다.하지만 육군 3각편제의 영향으로 기존 6개 소대에서 2개 소대를 수색대대로 배속시키고 현제처럼 3개소대를 갖고있는 3각편제로 최종 변경되었다.
현재 4개중대로 운용중이며 일반부대의 사병체제와 달리 특전사처럼 장교.부사관이 주축이 되는 직업군인 체제의 특수임무부대로 개편을 완료하였다.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편제된다.

즉, 현재는 사단 수색대대는 사단내 최정예 부대(수색대대의 경우 육군 내에서 최정예로 간주)이고 연대 수색중대는 연대의 최정예 부대이지만 임무 및 인원, 작전반경등의 차이가 있으며, 전역 후 경찰특공대, 소방구조대, 해양경찰특공대의 공채자격은 사단수색대대 출신에게만 부여된다.

지금이야 누가봐도 사단 수색대대가 연대 수색중대보다는 좀 더 특수전 상황에 맞는 특수임무부대로 보지만[22] 1990년 중후반 군번까지는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임무를 하던 동일 부대 출신으로 보면 된다.(현재 해병수색이 제1사단수색대대, 제2사단수색대대, 6여단직할 수색중대가 동일한 수색대지만 소속만 다른 것처럼 이해하면 쉬울 듯 하다.)

수색대대는 본부중대, 1, 2, 3중대이며 각 중대마다 3개 소대가 있고 3개 소대는 3개의 팀으로 이루어진다.
팀 편제는 팀장 이하 *명의 각 주특기별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구성된다.[23]
팀단위 임무를 수행하기에 결손인원이 생길경우를 대비해 전 인원이 모든 직책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또한 각종 화기에 교육훈련을 받는다. 전 인원이 K201과 K3 사격훈련을 받으며 적진이 작전지역이므로 적성화기인 AK소총 실사격훈련 및 다루는 교육을 받는다.

3.1. 수색대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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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직할 수색대로서, 사단 신교대 훈련병 중 체력이 좋고 정신이 멀쩡한 훈련병들을 우선적으로 차출시켜 배치시킨다. 따라서, 많은 훈련병들이 기피한다. 차출 우선순위는 FEBA에서도 사단이나 지휘관에 따라 전부 다르다.

전방사단과 예비사단 수색대대 두 부류로 나뉜다. GOP를 담당하는 전방사단 예하의 수색대대는 사단 본부와 떨어진 민통선 안쪽이나 근처 배치되는 게 대다수다. 이들의 임무는 매일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을 관리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수색대대가 DMZ 내에 있는 GP에서 근무했으나[24], 현재는 수색 작전과 매복 작전을 한다.[25] 원래 정전협정에 따르면, DMZ 내에는 무장 군인이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에 이들은 '민정경찰'이라는 흉장을 달고 경찰 신분으로 작전에 투입된다.[26]이 때 MP완장을 차고 투입되는데 이는 어떤 부대 소속인지 알지 못하게 하여 북측에 혼란을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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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는 작전위주로 돌아가며 체력단련을 중요시하여 보통 작전이 없는 날에 아침 5km 오후 5km 단체구보를 실시한다. 가끔 10km급속행군이나 5km군장뜀걸음을 실시하는데 작전에 지친 병사들은 환자 테크를 시도한다.(*실제로도 무리한 작전으로 특히 무릎과 발목 연골이 아작나는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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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훈련량은 실탄 작전을 전담하는 부대답게 타 부대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다. 대대의 5.56mm교탄소모량이 1개사단규모를 넘는다. 작전기간 중엔 2-3일마다 주간과 야간 번갈아가며 수색과 매복, 경호 임무 상황에 대비한 기동간, 차량탑승과 같은 즉각조치사격 훈련을 받으며 사격에 대한 감각을 유지시킨다. 또한 적 특작부대 침투시 격멸이 주임무이기에 이에 대비한 하강수색식 헬기 강하훈련인 패스트로프훈련을 비중있게 실시한다. 특공무술은 비중있는편은 아니나 무술시범단으로 행사에 참여하는경우 2-3달간의 특공무술집체훈련 뒤에 각종 행사에 뛰어다닌다....[27]

DMZ작전은 당연히 기밀사항이며 수색과 매복작전을 위주로 진행한다. 작전유형은 다양하며, vip경호작전이나 기타 기밀작전도 수행한다.
전시에는 적지종심작전을 하며 각 팀별로 미리 정해놓은 북한 내 거점으로 침투를 실시하며
최전방수색의 경우 군단 특공보다 더 깊은 적지 종심으로 전선침투 하여 화력유도 및 첩보보고 작전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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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대에는 저격반이 편제되어 있으며 소수인원으로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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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사단 수색대대는 사단 본부에 존재하므로 사단본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이들을 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아침점호시간. 다른 부대원들은 평범하게 구보하는데 수색대대원들은 정말 빡세게 구보한다. 타 보직 군인들은 이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본다.

향토사단에서는 기동대라 하며, 수색대대와 특공연대가 적지종심작전을 수행한다면 기동대대와 특공여단은 후방특작부대소탕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단 수색대대 내에는 소대급의 유격대가 존재하는데(최전방 사단 유격조교의 경우 사단 수색대가 아닌 사단예하부대의 연대 수색중대중 GOP연대가 아닌 예비연대의 수색중대에서 유격대가 있고 그 인원들이 유격조교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사단예하부대인 화학대에서도 소수 인원이 유격훈련중 화생방 조교역할을 수행한다), 유격 훈련을 주관하거나, 유격 조교를 교육시키는 그 사람들 맞다. 이들은 군 생활이 정말 유격이다.
진짜 사나이에 나와 유명해진 이기자 수색대대가 이 예비사단 수색대대 케이스에 속한다. (이경우 이기자부대 자체가 최전방 사단이 아닌 예비사단이기 때문에 사단 수색대내에 유격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최전방 GOP사단에서 정예전투 병력은 절대로 유격임무를 수행할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가끔 최전방 수색과 예비사단 수색이 술 자리에서 썰을 풀면 DMZ 수색은 생명수당 받으며 지뢰밭에서 작전뛰는 것으로, 예비사단 수색은 훈련받는 것으로 신경전이 있는데 상징성으로 치자면 훈련도 개빡세겠지만 작전은 훈련과 다르기에 알게 모르게 분위기는 DMZ 수색 출신 쪽으로 흐른다. DMZ 수색은 작전지역 땅을 밟는 그 자체가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비사단 수색이 절대 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쪽은 작전 대신에 훈련을 상당한 수준과 빈도로 하기 때문.

실제 DMZ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 편으로 심심치 않게 총격전과 침투상황이 발생하며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수색대와 북한특작부대[28]간 교전[29][30]으로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아군의 손실없이 무공훈장 수여자를 배출한 92년 3사단의 은하계곡 완전작전이 있다.https://www.fmkorea.com/177132893 그 외 사단에서도 수많은 교전사례들이 존재하며 이로인해 수색대대 복무 시 작전위령비나 과거 교전으로 인한 작전간 사망사고사례들이 적지 않다는걸 알게 된다. 가장 최근엔 북한 지뢰도발사건으로 두명의 대원이 다리를 잃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an3714&logNo=220860184827&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때문에 수색대대에선 DMZ내 야간 매복작전 출동 시 항상 이번 작전이 그들의 마지막일 수 있으므로 출동 전 모든 중대원들이 도열하여 작전간 무사 안녕과 승리를 기원하며 도열사와 함께 목례를 통해 배웅하는 전통이 있다.

과거 판문점도끼만행사건 이 후엔 보복작전으로 전 사단에 걸쳐 담당구역 적GP를 하나씩 타격하여 점령하기 위해 수색대대마다 810보복특임대)가 편성되어 적GP타격훈련을 하기도 하였다.(90년도에 해체됨) 또한 북파공작원을 정기적으로 보내던 시기엔 DMZ내에서 길안내 및 엄호하는 역할을 하며 각종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 60~80년도엔 매주 100Km급속행군과 200km산악행군, 그리고 년 1회 특공종합훈련 시 천리행군을 5박6일에 수행하였다.
파일:특임대.jpg
땅굴소탕작전에 투입되는 수색특임대
이 시기 북한은 땅굴을 통해 침투를 기도하였는데 제2땅굴 발견 후 내부수색소탕작전에서 6사단수색대원들이 투입되어 미리 설치된 부비트랩에 7명이 전사하기도 하였다.


병 복무기간 단축으로 병복무기간이 18개월로 줄어듬으로서 병사들의 전문성과 숙련도문제, 인구감소로 인한 인적자원 감소로 수색대대는 부사관 위주의 부대로 개편 되었다.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팀이 편제되며, 수색대대의 경우 특전사에서 수색대대로 전출 지원자들을 받아 배치되기도 한다.

3.2. 수색중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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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중대의 경우 111 일반보병 부사관이 배치된다.
보병여단 예하의 부대 이다. 즉 'X사단 X여단 수색중대'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1개 사단 내의 여단이 3개이므로 1개 사단 내에서는 총 1개의 수색대대와 3개의 수색중대를 보유하게 된다.

위 편제 항목에 서술되어있듯 처음엔 연대 수색중대만 있고 사단 수색대대가 없었으나 80년대에 편제가 바뀌며 사단 수색대대, 사단 정찰대대, 각 대대별 수색소대 개념이 되었다가 다시 90년대 들어 사단 정찰대대(전초대대)와 대대 수색소대가 해체되며 그 인원들에 의해 재창설 된 부대들이다. 때문에 몇몇 수색중대의 경우 (수색대대 흉장 대신) 호랑이, 독거미, 독수리 그림이 있는 자체 흉장을 사용하는데, 이런 부대들은 전초대(호랑이), 정찰대(독거미, 독수리) 인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부대라 보면 된다.

수색중대 역시 수색대대와 마찬가지로 보통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DMZ 내에 위치한 GP에서 근무하는 수색중대이고, 다른 하나는 예비연대 휘하의 수색중대이며(일명 기동타격대) 이들의 난이도는 비슷하다.

보통 전방 수색중대는 연대 본부와 떨어져 민통선 근처에 위치한 독립중대인데, GP로 인원 상당수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말이 중대지 거의 소대 수준으로 생활한다. 이들은 GP 투입 기간 내내 초소 경계근무뿐만 아니라, 해당 GP가 맡고 있는 DMZ 구역 내의 수색 및 작업까지 하기 때문에 GOP 소총수보다 난이도가 더 빡세다. 또 수색대대와 별개로 해당 부대가 맡고 있는 DMZ 내에서 벌어지는 공사나 인원 경호 등 각종 작전에 투입된다. 역시 전방 수색대대와 마찬가지로 이쪽으로 배속되면 '민정경찰' 흉장을 달게 된다. 과거에는 전방 수색중대가 수색, 매복 작전을 했으나 90년대 이후부터 수색대대와 임무를 바꿔 수색중대가 GP를 맡게 되었다. 96년~97년에임무교대 (수색대대 GP, 수색중대 DMZ작전), 2001년~2002년 임무교대(수색대대 DMZ작전, 수색중대 GP - 이 과도시절 군복무를 했다면 GP와 DMZ작전을 모두 경험해 보고 제대하였다.)

예비연대 수색중대는 수색대라는 이유로 일반 보병대대원들보다 더 고되고 힘든 훈련을 한다. 역시 구보 및 체력단련 또한 일반 보병들보다 빡세다. 이는 독립중대로 외따로 존재해도 마찬가지여서[31] 힘든 건 매한가지다. 수색대대와는 규모의 차이때문에 자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훈련에도 차이가 있고, 부대의 위치 및 주변 여건 등의 이유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나뉜다.[32] 연대장이 특히 총애하는(...) 부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전투지원중대와 더불어 각종 작업에 최우선 투입되는 부대에 속한다.

수색대대와 유의한 차이가 있다면, 수색대대에서 18개월 이상 복무한 자는 경찰특공대 공채에 지원자격이 주어지는 반면, 수색중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수색대대와 수색중대에 배치되는 초급장교들의 이력에도 차이를 보이는데, 사단 수색대대에 배치되는 초급장교 (소위) 들은 육군보병학교에서 특전반 과정을 마치고, 특수전교육단에서 '특공·수색'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온 자원들이다. 수색중대의 경우 상비반 과정을 마친 자원들 중에서 뽑으며, 특수교육은 수료하지 않는다.

즉, 수색대대는 국방부에서 인정하는 특수전수행을 담당하는 특수임무부대이고 수색중대는 특수전임무부대는 아니다. 그러므로 수색대대에서 전역한자는 국방부에서 발급하는 특수전임무수행확인서 발급이 가능하다.

3.3. 기갑수색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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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기계화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 출처

기계화보병사단 예하 부대인 기갑수색대대와 기갑여단 예하 부대인 기갑수색대로 나뉜다.(편제에도 차이가 있다.) 영문명칭은 Armored Reconnaissance Battalion이다. 이하 기갑수색대대 기준으로 서술한다.

기갑수색대의 경우 111 일반보병 부사관이 배치된다.

기갑부대의 예하로 전투 지역에서 위력 정찰을 수행하는 부대로[33], 한 개 전투중대에 전차, 장갑차, 박격포가 한번에 편제되어 있다. 기갑여단[34]의 편제를 대대단위로 축소해놨다고 보면 편하다. 이러한 전투중대가 3개, 본부중대 1개로 대대가 구성된다. 전차와 장갑차가 한번에 편제된 특성상 다양한 기갑 및 보병 전술을 조합하여 활용할 수 있고 이를 위한 직사(전차포, 공용화기 및 근접항공지원) 및 곡사(지원소대 박격포 및 사단 포병여단의 자주포) 화력지원을 모두 받을 수 있다.

기계화사단이나 기갑여단의 수색대원들은 장갑차를 타고 다닌다. 기갑병과인 장갑차 승무원을 제외한 장갑차 탑승인원은 흔히 경(輕)수색이라고 부르며 전차 승무원은 중(重)수색이라고 부른다. 전차 조종수는 현재 모두 간부화 된 상황이라서[35] 병 계급일 경우 높은 확률로 탄약수로 배정된다. 그 후 포수로 배정된다. 전차 승무원 특기임에도 정말 드물게 뜬금없는 보직으로 본부중대에 배속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해당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전역 때까지 전차 조종할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장갑차 승무원도 본부중대 편제로 될 수 있는데, 본부중대 지휘반으로서 지휘장갑차를 몰 수 있다. 혹은 대대 정비과라 쓰고 지옥이라 읽는다로 가는 경우도 있다. 전차승무원의 경우 개인화기 사격[36] 등 일부 훈련에서 열외된다. 개인화기 사격 집중훈련 같은 경우에는 전차승무원은 따로 주특기 훈련을 받는 정도. 장갑차 승무원은 얄짤없이 K-1 소총을 들어야 한다.

궤도장비뿐만 아니라 일반 차량도 상당히 많다.[37] 기갑여단 예하의 기갑수색중대의 경우 소대당 세 대, 중대장 전용 한 대를 포함해 총 열 대의 K131 혹은 K151이 편제되며, 소대장도 레토나를 타고 이동한다.

세 대의 레토나로 구성된 경수색분대가 운용되며 이들 중 1호차가 소대 본부로써의 역할을 하기 때문. 그리고 2,3호차는 M60 기관총을 거치할 수 있도록 개조되며 각각 수색조와 척후조가 탑승하여 이동한다. 기관총 사수는 기관총을 잡은 채 입석으로(...)이동을 해야 하며 혹한기 출동의 경우 영하 30도에 오픈카를 타는 그로테스크한 드라이브를 하게 된다....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장비들은 모두 차량으로 운반한다. 특수차량을 제외하고 훈련 시에 2 1/2t 트럭 등의 일반차량을 수송대로부터 지원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단 직할부대라는 점 덕분에 온갖 신상 장비[38]들은 거의 다 제일 먼저 받아볼 수 있으며, 새로 전력화된 기갑장비는 당연하게도 기갑수색대대부터 우선하여 받는다. 예를 들어 K-21이나 흑표를 전력화 초기에 인도받은 20사단 기갑수색대대, 더불어 사용성 평가도 거치므로 일정시간 사용 후 제작업체와 높으신 분들이 함께와서 야전에서 사용 문제점이나 개선점 등을 문의한다. 문제가 있어도 있다고 말을 못하는 게 현실이다.

상무대나 신교대 보충병 대기 시 수색대에 걸린 기갑계열 특기생들이 해탈한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다. 덜 빡셀 거라 헛된 생각을 하지만 부대의 분위기상 이들을 널널하게 대할 리가 없다. 병과 불문 수색 관련해서 쉽게쉽게 넘어가는 경우는 없다.

훈련은 달마다 한두 번 이상 무조건 있고 일반적으로 1주차 훈련준비 2주차 모의훈련 3주차 훈련 4주차 부대정비의 무한반복. 간혹 4주차도 훈련 5주차에 부대정비, 중간에 배정된 거리만큼 행군도 꼬박꼬박한다. 기갑병들은 군장 형태가 다르고, 특히 전차승무원은 K-5를 차므로 단독군장으로 행군한다.군장을 어디서 빌려오는 경우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 보병부대와의 차이라면 유격훈련 입소 및 복귀행군과 개별 행군을 제외하고는 걸어다니는 일은 없다.3보 이상 차량 탑승 훈련지로 부대이동 할 때도 역시 차량에 병력이. 탑승하고 및 궤도장비를 HAT 장비에 실어서 이동한다. 훈련지가 너무 먼 거리일 경우 열차를 이용한다.

사단 직할대 중 전투 부대가 기갑수색대대 하나인 만큼[39] 온갖 종류의 검열과 훈련 땜빵, 교훈관련 실험각종 시범케이스, 간혹 병 계급의 유격을 2주 동안 한다든지..., 각종 사단 및 군단급 전투력 측정, 특수한 경우 중대급으로 담당 ASP 투입[40], 정찰대 특작조로부터의 사단사령부 방어 같은 상황이 많아서 바쁘다. 침투 및 국지도발 같은 작은 훈련일수록 예고없이 다가오니 방심은 금물이다. 그나마 궤도장비가 많아서 사단 사령부 밖에 따로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위로라면 위로다. 사단뿐만 아니라 유사시 예하 기계화 여단과 대대 및 포병 여단, 군단 특공대, 육군 항공과도 연계해야 하므로 관련 훈련이 많아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부대이다. 미군과 연계하여 훈련하는 경우도 있다.모 부대는 미군과 유격훈련을 같이 했다가 참호전투에서 미군의 피지컬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태풍이나 혹서기, 혹한기가 아니라면 주요 훈련일정이 잡히지 않는 달은 없다. 이러한 것도 주 단위로 피해서 훈련을 잡기에 아예 훈련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꿈깨라

대대기준으로 예하 중대에 4.2인치 박격포가 탑재된 K-242 편제 지원소대를 두고 있는데 화력수색을 위한 소대이므로 사격훈련은 정확도보다 빠른 발사 위주로 한다. 실사격훈련 시에 대대의 모든 4.2인치 박격포가 일제사 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똑같이 방열하고 같은 양의 장약을 넣어 일제사해도 맞고 안 맞고가 차이나는 건 신기한 점이다. 박격포 문 수가 기계화보병대대의 편제보다 배 이상 많으므로 눈앞에서 장관이 펼쳐진다. 박격포는 장갑차에 실어서 움직이고 발사 역시 탈착하지 않고 장갑차에 실린 상태로 한다. 기동력 문제로 인해 박격포를 탈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갑수색대에서 박격포를 운영하는 지원소대는 중대 내에서 천대 받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지휘관이 기갑병과 출신이고 중대내에서 전차를 제일 중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격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지휘관이 대부분이고 보병특기자가 드물고 있다 하더라도 장갑차에 우선 배치하는 기갑수색대의 특성상 여군이나 하사가 지원반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원은 많은데 하는게 애매하기 때문에 중대의 모든 작업을 담당하기도 한다.

경수색 하차 시에 만약 K-200 계열이면 K6는 장갑차에 그대로 설치해 놓고, 분대 지원화기인 K3나 M60은 가지고 내린다. K6 같은 50구경 중기관총은 도수로 움직이기도 힘들고 화력 지원시에 유용하기에 장비에 남아있는 장갑차 조종수가 대공경계 또는 화력지원을 하고 K3나 M60은 가지고 내려서 하차전투시에 사용한다. K-21이면 그냥 간다. 경수색의 주요일과가 하차전투 훈련일 정도로 이러한 훈련을 굉장히 많이한다.

간혹 전술기동 훈련시에 각 중대 전차들을 한번에 편성하여 전차대대의 전차중대마냥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대대의 모든 장비가 한꺼번에 움직일 경우 많이 쓰인다. 대한민국 지형이나 전방지역 도로 및 다리 특성상 장갑차는 쉽게 통과해도 전차가 통과할 수 없는 곳이 많기에[41] 병목현상 및 기동력 저하를 최소화하고 화력을 집중하기 위한 기갑수색대대만의 기동 시 상황대처 방안이다.

전차대대와 같은 이유로 간부가 많기는 하지만 그와 달리 병사들이 기계화보병대대만큼 많으므로 근무는 생각보다 힘든 편이 아니다. 아무래도 전차와 장갑차가 함께 있고 일반 차량도 많다보니 병사가 적을 수 없다. 사단내 대대에서도 인원이 많은 쪽에 속한다. 그만큼 기계화보병사단에서 수색대대에 걸릴 확률도 높다. 당직근무도 간부가 많은 편이라 로테이션이 굉장히 긴 편이다. 다만 전차승무원은 대부분 간부화시키는 것이 현재 추세이므로 병사비율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다. 전차대대 병사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경비중대를 따로 써야할 정도

근무뿐 아니라 내무생활도 상당히 편한 편이다. 전차와 장갑차를 운영하는 부대의 특성상 일반 기보대대보다 많은 수의 간부가 존재한다. 중대 병력의 절반 이상만큼 간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부조리에 대한 감시가 철저한 편이다. 하지만 간부가 많은 만큼 평소 생활에 어느 정도 통제가 있다. 또한 작업시에도 간부가 많기 때문에 병력통제가 쉬워서 짬을 먹더라도 일을 빼는 게 쉽지 않다.

여담으로 기갑수색대대가 첫 자대인 기갑병과 초임장교들은 소대장 보직으로 장갑차만 탑승할 수 있다. 기갑병과 장교는 소대장일 때만 전차장으로 전차에 탑승할 기회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만약 기갑수색대대로 왔다면 전역 때까지 전차를 탈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물론 한두 번 타보는 거나 너그러운 지휘관의 경우 경험을 위해 전차포사격 등을 시켜주긴 하지만, 기갑병과 장교로서 전차장 한 번 못해본다는 건 좀 아쉬운 일이다.


4. 특징[편집]


특전 조끼[42]의 경우 일반 전투조끼와 달리 탄띠를 매지 않기 때문에 허리가 굉장히 편한 데다, 대검을 왼쪽 가슴에 비스듬히 착용한다. 그리고 등에는 전투배낭보다 약간 작긴 해도 큰 주머니가 있어 침투할 때나 근무 투입할 때 따로 군장을 매지 않아도 이것저것 담아갈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여름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 전투조끼는 등이 트여있지만 특전 조끼는 등에 달린 주머니 때문에 꽉 막혀있다. 그래서 통풍이 안 돼서 가뜩이나 더운데 땀 배출도 안 된다. 그리고 만약 완전군장을 하게 된다면 등이 더욱 갑갑해진다. 그리고 신형 몰리조끼가 나오면서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항상 모든 물품을 최신형으로 풍족하게 공급받으며 방탄조끼, 헬멧, 야간투시경, 야간조준기 등을 달고 사격과 작전에 나간다. 수색대의 특성상 야간 작전이 많으므로 야간감시장비가 충실하다는 점이다.

작전지역이 적지인 만큼, 일반적인 식사 추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훈련기간 동안 모든 밥은 전투식량으로 미리 나온다. 그것도 흔하게 볼 수 있는 1형이 아니라, 즉각 취식형과 특전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근데, 이 전투식량이란 것이 한두 끼 정도는 평소 먹던 짬밥과 다르기 때문에 별미로 먹을 수 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미각을 잃는 느낌이 온다. (그래도 즉각취식형은 꿀맛이다.건빵보다 낫지 않은가...)

특전식의 경우, 정말 살고 싶어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맛은 겨울철 흙 점토를 밖에 내놓고 급속 냉각 건조시켜서 깨물어 먹는 맛이다. 야간 매복 작전 시 에도 이 특전식은, 북괴군보다 한 발 앞서 수색대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그래도 벌레보단 맛있다...)

수색대대는 분기, 혹은 반기마다 헬기 레펠 훈련을 하는데, 이때 위험수당이 지급된다. 지상 훈련, 모형탑 훈련을 거친 후 실제 헬기에서 레펠이나 패스트로프로 강하하는 훈련이다. -근래엔 레펠보다 신속한 침투를 위한 패스트로프 훈련을 실시하며 안전장치가 없기에 레펠보다 위험성은 높다.
파일:사진555.jpg


수색대대에서는 모의침투 훈련이나, 무박 100km / 200km 행군, 산악행군 등의 무박훈련도 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천리행군도 받을 수 있다.


수색대대의 경우 장교, 병이 관계없이 똑같은 교육생신분으로 집체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훈련의 대부분은 체력단련(급속행군, 산악뜀걸음, 서킷트레이닝....)과 K3, K2, K1, K201, AK소총 등 다양한 화기사격훈련, 독도법, 화력유도 및 정찰첩보보고를 교육받는다. 마지막 무박극기 4일기간 야간 침투 및 비트구축 훈련을 하며 생존훈련을 통해 전시 적지 종심작전을 대비하여 보급이 아닌 벌레, 닭, 토끼 등을 생식하는 생존훈련을 받은 뒤 25km 야간 급속산악행군으로 훈련을 마무리 한다. 다만 세부 훈련 내용은 지휘관의 재량과 사단마다 차이가 있다. 훈련 중 퇴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다른 부대로 전출가게 된다. 무사히 교육을 수료하고 작전을 시작하면 작전이 더 힘들다는걸 알게된다.


모의침투 시 대항군으로 많이 나가 사령부나 탄약고에 딱지를 붙이러 가며 배수로를 활용하여 침투하기도 한다. 주로 야간 침투 후 산에서 비트를 구축하고 정감지 활동을 많이 한다.

가끔 특전사와 훈련하는데 이때는 특작부대 소탕을 목적으로 수색훈련을 실시한다.


5. 여담[편집]


수색대 흉장[43]은 멋이 꽤 있다.멋있다고 신청하면 지옥을 맛본다.

이들의 공수기장은 이들이 공수교육을 받아서 받은 기장이라기보다는 시기에 따라 공수교육을 받은 기수가 간혹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인원들도 따라서 패용한 거라고 보면 된다.[44] 물론 필수로 공수훈련을 받아야 하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나 특전사에서 전출 온 부사관의 경우 논외.[45]

수색대, 기동대, 육군특공대 같은 경우 육군본부, 각 군 사령부에 파견나가거나 요인 경호에 나가기도 하는데 당연히 그런 곳에는 특전부사관을 포함해 공수마크의 의미를 아는 간부들이 널리고 널렸다. 육본 행사를 다룬 언론보도에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릴 정도이지만 굳이 이거 가지고 졸렬하게 드잡이질을 하지 않는다. 2010년 이후에는 자진해서 달지 않는 경우가 많은 모양.

5.1. 6.25 전쟁과 창군 초기의 수색대 형태[편집]


6.25 전쟁, 당시에는 전문적인 수색 교육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상설 편제로 있었던 게 아니었다.

각 단위 부대(소대, 중대, 대대, 연대 등)에서 수색/정찰이 필요한 상황일 때마다 1개 분대 혹은 소대에게 수색 임무를 맡겨서 수색대의 역할을 맡는 식으로 운용되었고, 일부 부대에서는 특정 분대 혹은 소대가 아예 수색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6.25 당시 1사단 12연대 편제에 의하면 특공대(45명)가 연대 사령부에 편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에 의하면 전투단위에서 필요시 특공대를 조직하여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필요한 각 상황마다 분대나 소대를 임시로 선정해서 운용하곤 했던 수색대 개념도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필요성이 없어 운용되지 않아 수색대의 흐름이 끊기는데, 다시 수색대 개념이 부활한 것은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 월남전에 참전하게 된 백마부대맹호부대는 수색대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전문적인 수색교육을 통한 수색대를 보유하지 않고 있었기에 미합중국 육군 특전사(그린베레)으로부터 특수전 교육을 받고 창설된 육군 제1공수특전단에서 파월 백마부대와 맹호부대 예하 연대의 수색 중대에 파병되어 배속된 특전사 대원들 중 일부가 미육군 특전단 그린베레 제5특전단이 베트남 나트랑에서 운영하던 수색/특공 학교(일명 리콘도 스쿨, Recondo school)에 파견을 가서 3주간 장거리 수색/정찰(LRRP, Long Range Recon Patrol) 교육을 이수한 후[46], 교육내용을 맹호/백마 수색중대에 전수하고 지휘하여 우리 군 최초의 전문적인 수색/정찰 교육을 확립되었다고 한다.[47] 리콘도 스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프로젝트 델타: Detachment B-52 (B-52 분견대)제75레인저 연대의 역사 항목을 참고.

이들 파월 맹호/백마 수색대는 월남 파병 기간이 끝나고[48] 귀국 후에는 전역시까지[49] 본국에 있는 여러 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어 월남에서 습득한 수색대 임무를 전수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파월 백마부대맹호부대에서 하던 수색 교육은 각각 보병 수색 교육과 기갑 수색 교육의 모태가 되었는데, 이중 백마부대의 수색병 집체 훈련[50]은 육군 전 보병사단 수색병 교육의 기초가 된다.[51]

6. 출신 인물[편집]


성 명
비 고
강타
8사단 수색대대
김대희
11사단 수색대대
김수현
1사단 수색대대
김준현
15사단 38연대 수색중대
김태우
27사단 수색대대
넉살
7사단 수색대대
박남현
6사단 수색대대
백상현
1사단 수색대대
송중기
22사단 수색대대
시우민
21사단 31연대 수색중대
오승민
9사단 28연대 수색중대
윤다훈
6사단 수색대대
윤진영
8사단 수색대대
이재진
71사단 수색대대에서 근무[52]
이현우
1사단 수색대대
정찬우
11사단 수색대대
조빈
11사단 수색대대
DJ 투컷
17사단 수색대대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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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략 20명 내외[2] 본인도 잘모른다고 함[3] 직계가족과 본인의 범죄여부, 정신질환, 학생기록부, 반정부운동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 신원조회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외가쪽 3대까지 조회를 하며 친일, 빨갱이등의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것이고 본인이 금고이상의 형을 받았다면 수색대에 배치를 받아도 최전방임무에서는 제외된다. 즉 수색대의 꽃인 GP근무및 DMZ내 수색, 매복작전을 수행할수 없다. 신원조회라는것이 뚝딱 하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종 자대배치이후 신원조회이상으로 실제 작전을 수행할수 없어서 전투병에서 타 보직으로 변경되거나 심한경우 타 부대로 전출을 가기도 한다[4] 수색중대는 111 일반보병[5] 수색대대 부사관 전 인원[6] 수색대대 팀 의무 주특기[7] 특전사 산악전문교육엔 장기부사관 중 일부 및 유격훈련시 교관임무를 수행하는 부사관[8] 2010년대에 새로 만들어진 과정으로, 전문유격과정엔 장기부사관 중 일부 및 유격훈련시 교관임무를 수행하는 부사관[9] 수색대대 한정, GP 경계를 맡는 수색중대는 제외[10] 특공대와 신교대 조교도 그렇다[11] 체력이 좋아 수색대대로 끌려가기 싫어서 일부러 미친척 하는 훈련병들도 많다.[12] 사실 조교는 신교대 기간병 및 간부들과 코드가 맞느냐가 더 중요하다. 논산훈련소와 타군 훈련소(공군 한정. 해군/해병대에는 병 조교가 없이 총원 부사관인 DI/ADI가 훈육을 담당한다.)는 아예 공채 비슷하게 절차를 밟기 때문에 예외.[13] 공병 폭파로 온 특기병, 무전병-특히 수색대는 적지 안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무전병이 많고, 같은 사단 직할대에서 통신장비는 사단 사령부 다음으로 제일 좋은 물건을 받는다.[14] 부대마다 시기가 약간씩 다르다[15] 그래서 이 시기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복무한 인원들 중에는 대대 수색소대 출신들이 존재한다. 대신 수색중대 출신들은 없다. 일반 보병대대인데 간혹 주둔지 내에 사용하지 않는 낡은 헬기 레펠/패스트로프 훈련용 헬리콥터 모형탑이 아직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수색소대의 흔적이다[16] 수기사(맹호, 기계화), 1사, 2사, 3사, 5사, 6사, 7사, 8사, 9사, 11사(기계화), 12사, 15사, 17사, 20사(기계화), 21사, 22사, 23사, 25사, 26사(기계화), 27사, 28사, 30사(기계화)에만 존재[이] 시기 육군 전방 사단들은 직할대로 특수전 수행을 위한 수색대대 외에 DMZ 내에 있는 GP 작전과 강안지역 수색/매복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전초대대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 전초대대는 이후 정찰대대[16]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수색대대와 임무가 중복된다는 이유로 기계화 사단의 기갑정찰대를 제외하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육군/지상정찰중대를 참고.[17] 대대에 잔류한 일부 인원에 의해 거의 분대급으로 남아있던 대대 수색소대 역시 1998년 이전에 모든 부대에서 완전 해체됨[18] 초창기 수색중대가 하던 임무는 대대 수색소대가 맡고 있었고, 사단 수색대대는 특수전 개념[19] 아래 항목에 있는 몇몇 부대의 수색중대 흉장을 보면 상징이 대부분 호랑이/독거미/독수리인데 호랑이는 전초대대, 박쥐/독거미/독수리는 정찰대 상징이라 그렇다. 마찬가지로 후방사단, 향토사단의 기동대/수색대 흉장 상징 또한 죄다 호랑이, 독수리, 박쥐인 이유도 전방에서 해체된 전초대대/정찰대대 출신들이 창설요원이라 그렇다[20] 여전히 GP 임무를 수행하지만 정찰개념이 강하던 수색정찰대 시절에는 전원 K-1 무장에 유탄/중화기/박격포가 없는 형태였으나 이후 수색대대와 같은 작전 개념으로 변경되며 K-2 무장에 유탄/중화기/박격포가 추가됨. 부대마다 연도는 다르지만 대게 95년도 입대자들부터 이 과도기를 겪었다 한다[21] 전초대대/정찰대대 시절의 흔적이 남아서다. 전초대 시절엔 신교대 수료자들 중 최우수 신병들은 전초대대에서 뽑아가고, 2순위 신병들을 수색대대에서 데려갔는데, 이후 정찰대는 논산에서 정보병과를 받고 오는 인원으로 바뀌며 신교대 최우수 신병들을 수색대대에서 데려가게 되었다.[22] 실제로도 국방부에서 인정하는 특수전임무수행서를 발급해주는건 수색중대가 아닌 수색대대뿐이다.[23] 실제 DMZ작전을 수행하기에 자세한 편제와 인원은 보안 상 표기하지 않음[24] 정확히 말하면 원래는 70년대까지 연대 수색중대에서 하다 80년대부터 전초대대/정찰대대가 수행하던 임무이나 80년대 후반 정찰대 해체 후 연대 수색정찰대/수색중대가 재창설되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한시적으로 사단 수색대대가 수행했기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전방 사단 수색대대 근무 인원들만 이 임무를 맡다가 수색정찰대/수색중대가 이어 받았는데 현재는 수색중대 인원들이 GP 작전 임무를 맡고 있다.[25] 현재 수색대대에서 수색/매복을, 수색중대에서 GP 작전을 하게 되며 맡는다.[26] 경찰신분으로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범주가 경찰 > 군대가 아닌 군대 > 경찰 신분이기에 사실상 군인신분으로 투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다.[27] 똥별들 20-30분 볼거리 제공하려고 몇달간 힘들게 쓸떼없는 특공무술 하다보면 현타가 오지게온다... ex) 사단장, 연대장 이취임식 또는 부대 근처 지역 축제->철원 태봉제[28] 정찰총국 소속으로 3명이 1개조로 침투훈련 및 침투[29] 대부분 MDL이남으로 침투하면 수색대대가 대침투작전을 펼침[30] 보통 북한 특작부대는 야간 및 안개 등 관측이 제한되는 날에 지뢰지대를 피해 침투로를 개척하였다가 월광이 없고 안개가 자욱한 날을 골라 침투를 하여 작전한다. 지뢰도발사건도 사건 발생 며칠 전부터 안개와 비로 인해 관측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31] 말이 독립중대지 사실상 연대장의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받기에 독립중대의 단점만을 지녔다.[32] 강원도 산 중턱에 위치한 모 수색중대(독립중대)에서는 매일 밤 중대본부 몇명을 제외한 전원을 팀을 나눠 야간 산악 전투 훈련을 시키고 아침구보를 타이어끌고 산악구보로 바꿨다가, 부상자가 속출하고 민원이 빗발쳐서 한 달 만에 중지한 경우도 있다.[33] 보병부대 예하 수색대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는 정찰대라고 불리며 별도 편제되어 있다.[34] 기계화보병여단이 아니다.[35] 다만 장갑차 승무원은 아직 모두 간부화 하기엔 인력이 부족해서 일부를 병사에게 맡긴다.[36] 개인화기가 K-5인 경우[37] 기계화보병사단 정찰대는 대급 규모로 인원이 적고 차량 등 장비가 거의 없다. 1호차 합쳐서 차량이 두 대인 경우도 있다.[38] 신형 차량, 신형 텐트, 신형 방탄헬멧 등[39] 정찰대는 전투 부대라기보다 정보 부대이므로 예외, 다만 침투 및 국지도발 등의 훈련에서 대항군북한군 코스프레을 전담한다.[40] 굉장히 특수한 경우로서 기 투입부대에서 사건사고 발생시 신속히 땜빵 투입되기 딱 좋은 부대이므로[41] 때문에 샛길로 우회기동 하기가 어려워서 도로와 다리가 최근에 잘 지어진 곳으로 기동해야 한다. 거기다가 중량물인 전차는 한 번에 한 대씩만 건널수 있다.[42] 폭파 조끼, 공병 조끼, 수색 조끼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주머니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되어있어서 공병 세트에도 들어가 있는 등 의외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주머니가 탄창도 들어가지만 무전기도 쓸 수 있도록 덮개에 홈을 파놓고 주머니에는 구멍을 뚫어놓는다든가, 아랫배의 주머니는 폭약과 격발 기를 넣으면 꼭 맞게 되어있다든가, 등의 큰 주머니 속에는 통신기가 들어가는 작은 주머니가 또 달려있다든가.[43] GOP담당 사단 예하 수색대의 경우 민정경찰 흉장까지 포함[44] 이를 이유로 일부 수색대에서는 부대장 방침으로 공수기장을 패용치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론 이게 맞는 거다.[45] 참고로 특전사 소속 장병들은 계급과 병과, 보직을 불문하고 공수기본교육은 필수적으로 받는 것이 규정이며, 공수기본교육 수료 후에도 숙련도 유지를 위해 연당 4회의 정기강하를 실시한다.[46] 일부만 이수했다고 적은 건, 6개월 단위로 파병된 특전사 부사관 및 장교들 모두가 저 교육에 입소했으나 수료율이 50% 미만이어서이다[47] 1960년대 중~후반엔 베트남에 파병된 특전사 대원들은 독자적인 편제를 이루지 않고 맹호와 백마의 수색중대에 배속되어 작전했으나, 1970년부터는 특전사 대원들로만 구성된 파월 맹호/백마 공수지구대라는 편제를 만들어서 활동하였다. 단, 미육군 특전단이 운영하던 리콘도 스쿨(Recondo school)에서 훈련을 받은 건 1970년도 12월 파병인원까지이고리콘도 스쿨 마지막 교육입교 차수가 1970년 12월 차수고, 1971년 2월에 리콘도 스쿨은 문을 닫는다 1971년부터 파병되어 맹호/백마 공수지구대에 속해있던 인원은 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그냥 특수전 임무를 수행했다. 즉, 미군으로부터 전수받은 장거리 수색정찰 교육과 임무 수행은 맹호/백마 공수지구대가 아닌 맹호/백마 수색중대가 수행했다는 의미이며 실제로 이 시기 맹호/백마 수색중대 출신 참전용사분들로부터 당시 베트남에서 수행했던 수색정찰 작전에 대해 들어보면 LRRP 방식의 작전을 수행했고, 교육도 받은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본인들은 그게 미군식 장거리 수색정찰(LRRP)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는 게 함정...[48] 대게 1년이었으나 일부 2년간 파병 생활을 한 인원도 있었다. 참고로 파병인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국내에서 공수교육을 이수하고 월남으로 향했으며 그중 맹호/백마 수색중대 인원들은 주특기가 '보병'이 아닌 '특수전'이었으며 병과표식은 X자로 교차된 화살이었다[49] 당시는 군 생활이 길어 일반하사까지 복무하였다[50] 원래 코만도 훈련으로 불리다 90년대부터 솔개 훈련으로 명칭이 바뀐 4주간의 수색병 집체 훈련[51] 6.25 전쟁 이후로는 맹호부대와 함께 유일하게 실전을 경험한 부대라...[52] 탈영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