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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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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단의 2024 시즌에 대한 내용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202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1995년에 한국프로축구 9번째 구단으로 창단된 기업구단이며 경기도 수원시를 연고로 하는 K리그2 소속의 프로 축구단이다.
리그컵 6회 최다 우승, 슈퍼컵 3회 최다 우승팀이며 FA컵 역시 현재까지 최다 우승팀 타이틀을 유지 중인 아시아 챔피언으로 총 24회 우승을 해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린 구단이다. 팬퍼시픽 챔피언십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해본 K리그 팀이자 과거 막강한 자금력과 화려한 선수단으로 '레알 수원'이라 불렸다. 높은 관중 동원력과 서포터즈의 열성적인 응원으로 '축구 수도'라는 수식어가 붙은 명실상부 K리그 대표 명문 구단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부터 모기업의 주체가 바뀌더니 구단 운영을 엉망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그 위상과 다르게 완전히 몰락한 상황이고, 결국 2023 시즌에는 그동안의 방만한 운영이 쌓이고 쌓이더니 마침내 그 동안 곪아터졌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노출되면서 2022년 K리그1에서 10위를 기록하고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로 추락하더니 1년 후 2023년에는 K리그1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창단 28년 만에 처음으로 K리그2로 강등당했다.
2. 시즌별 일람[편집]
3. 구단명과 엠블럼[편집]
세계 축구계라는 창공을 향한 푸른 날개를 펼친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엠블렘은 구단, 지역, 기업의 이미지를 하나로 묶은 것, 젊음과 패기를 상징하는 청색은 기업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적색은 끓어오르는 정열과 중단 없는 도전의 상징으로 생동감과 역동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한편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연고지의 심볼인 수원 화성이 돋보인다.
청색: 젊음과 패기를 상징하는 청색은 기업의 특성을 표현
적색: 적색은 끓어오르는 정열과 중단없는 도전의 상징으로 생동감과 역동성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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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명칭은 1990년대 당시 한국 프로 축구에서 보편적이던 한국식 축구단명(연고지명 + 모기업명 + 별칭)[22] 을 따라서 지어졌다.
구단 명칭인 '블루윙즈(Bluewings)'에서 '블루(Blue)'는 모기업 삼성의 이미지와 '맑고 푸른 하늘, 희망, 꿈, 비전'을 뜻하고 '윙즈(wings)'는 정상을 향한 수원의 의지와 빠르고 역동적인 축구 플레이를 의미한다.[출처]
현행 엠블럼은 2008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과거 엠블럼에 리그 참가 연도 1996을 창단 연도 1995로 바꾸고 하단에 영문으로 SAMSUNG F.C.이라 표기한 것을 SUWON으로 바꾸면서 지역 연고를 확고히 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FC를 뺌으로써 수도권 프로 축구구단 중 유일하게 FC를 구단명에 넣지 않는 구단이 되었다. 외곽선도 검정색에서 파란색으로 변경했다. 엠블럼 상단의 'BLUE WINGS' 로고는 수원의 첫 번째 엠블럼이기도 하다.
4. 역사[편집]

창단 당시 KBS 뉴스 영상
1995년 12월, 삼성전자를 모기업으로 삼성전자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수원시[23] 를 연고지로 하여 창단하면서 이듬해인 1996년부터 K리그에 참가했다.
과거 리그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위치했던 구단으로, 관중 동원도 창단 이래 늘 리그 최상위권을 다투는, K리그 최초로 슈퍼 클럽의 모습을 갖춘 클럽이다. 창단 당시부터 세계 축구계의 중심으로 가기 위한 목표를 삼고 모기업의 막강한 자금력과 1등 주의에 기반한 모기업 삼성전자의 성향을 바탕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해 리그에 참가했다. 결과적으로 첫 해 리그와 FA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했고, 창단 3년만에 리그 우승과 리그 2연패 + 전관왕, 200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까지 하는데 불과 5년 남짓의 시간만이 걸렸을 정도로 창단부터 남다른 강팀의 면모를 보였다.
1998~99년의 수원은 리그 역사상 최강팀 중 하나로, 여기에 견줄 팀은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24] 와 2001~03 성남 일화 천마[25] 뿐이다.
서포터즈는 그랑블루와 2009년에 분리된 하이랜드 에스떼로 양분되었으나, 2012년 5월 20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부터 프렌테 트리콜로라는 이름으로 단일화되었다.
부유한 모기업을 두고 창단 직후부터 좋은 성적을 내고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곤 했기에 곧잘 K리그의 첼시 FC[26] , 레알 수원같은 별명으로 불렸다. 법인화 이전 당시 차범근 감독이 선수 영입에 필요한 자금을 얻으려고 하면 바로 모기업 수뇌부와 다이렉트로 대면해 필요한 액수를 말하면 그냥 줬다고 한다. 2009년 법인화 이후에는 당시 경제 악화와 더불어 이전만큼 돈을 쓰지 못했다고 하는데 법인화 이후부터 제일기획 이관 이전까지 삼성전자의 지원금은 연간 약 300억 원 수준이었다. 백지훈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수원의 승리 수당이 타 팀에 비해 5배나 된다고 언급해 당시 수원의 자금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
하지만 서정원 체제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지출을 줄이고 자생에 무게를 두기 시작하면서 이는 옛말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윤성효 시절 말기부터 운영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2~14 시즌 3년간 꾸준히 연간 운영비가 줄어들었으며, 2015 시즌에는 2014년의 250억보다 더 줄어들었다.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봉 공개 추진과 맞물려 삼성전자 측에서 "투자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며 운영비를 삭감하기 시작한 것이 컸다. 관련 기사[27]
물론 삼성은 삼성인 만큼 선수단 연봉이나 구단 인프라는 좋은 편에 속하지만 과거처럼 현금을 쏟아부어 거물급 스타를 대거 영입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28] 그리고 이 기사에 따르면 ‘모기업이 주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우승하는 구단’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매출을 발생시키고 성적도 적절히 내는 구단’으로 바뀌려고 하는 중이라고 한다. 물론 국내 프로스포츠 여건상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
2013년까지 서울 삼성 썬더스와 함께 삼성전자 산하의 기업 구단으로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대로 구단주를 맡았다.[29] 그러나 삼성이 이재용 체제로 전환해 스포츠에 투자를 줄이면서 이에 대한 일환으로 모기업을 삼성 관계사 제일기획으로 이관시켰다. 제일기획은 2014년 3월 19일 경영위원회에서 수원 삼성을 인수하기로 결정해 2014년 4월 1일자로 제일기획 산하 자회사가 됐으며, 삼성전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후원사로 남는다. 관련 기사[30]
한창 전력이 강성할 때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을 연속 제패하기도 하였으나,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전력이 떨어지며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인 리그 3위권 근처에도 못 들어 FA컵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정원 퇴임 이후의 이임생-박건하-이병근으로 이어진 리얼블루와 암흑기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2023년, 결국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구단 사상 최초로 K리그2로 강등되었다.
5. 기록[편집]
5.1. 우승 기록[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K리그 구단들 중,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5.2. 클럽 기록[편집]
5.2.1. 득점[편집]
5.2.2. 승리[편집]
5.2.3. 기타[편집]
- 통산 최다 득점승: vs 사운더스 SC[45] 18:0 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수원종합운동장, 2001년 11월 24일)
- 리그 최다 득점승: vs 전남 드래곤즈 7:3 승 (광양축구전용구장, 2000년 11월 13일)
- 리그 최다 실점패
- vs 부천 SK 1:5 패 (수원종합운동장, 2000년 5월 14일)
- vs 전북 현대 모터스 1:5 패 (수원월드컵경기장, 2010년 11월 7일)
- vs 포항 스틸러스 0:5 패 (포항스틸야드, 2012년 7월 1일)
- 연속 승: 11경기 (2008년 3월 19일 ~ 7월 5일, 정규리그)
- 연속 무승부: 5경기 (2012년 10월 28일 ~ 11월 21일, 정규리그 연무 기록과 동일)
- 연속 패: 6경기 (2010년 3월 28일 ~ 5월 1일, 정규리그 연패 기록과 동일)
- 연속 무패: 19경기 (2008년 3월 9일 ~ 6월 28일, 정규리그+컵대회)
- 연속 무승: 13경기 (2006년 4월 23일 ~ 7월 15일, 정규리그+컵대회)
- 연속 득점: 26경기 (2011년 6월 29일 ~ 2012년 4월 14일, 정규리그+컵대회)
- 연속 무득점: 4경기 (2004년 8월 4일 ~ 8월 14일, 컵대회)
- 연속 실점: 20경기 (2000년 4월 9일 ~ 7월 23일, 컵대회+정규리그)
- 연속 무실점: 7경기 (2008년 3월 19일 ~ 4월 20일, 정규리그+컵대회)
- 통산 연속 득점: 26경기 (2011년 6월 29일 ~ 2012년 4월 14일)
- 홈 연속 득점: 30경기 (2010년 10월 9일 ~ 2012년 6월 27일, 정규리그+컵대회)[46]
- 홈경기 최다 승률: 458경기 65%# (리그 1위)
- 해트트릭: 22회 (2017년 기준)
- 도움 해트트릭: 9회 (2017년 기준)
- 한경기 최다 관중: 45,192명 (vs FC 서울, 2012년 4월 1일)
- 한시즌 최다 관중: 2007년 20경기 46만 4957명[47]
- 최단기간 400만 관중: 2007년 401만 9867명 (234경기)
- 최단기간 500만 관중: 2010년
- 단일연고 최초 600만 관중: 2012년 11월 11일
- 단일연고 최초 700만 관중: 2016년 4월 13일
5.3. 개인 기록[편집]
- 최다 출장
- 최다 득점
- 최다 도움: 염기훈 (116)
- 최다 무실점: 이운재 (117경기)
- 최연소 출장: 신영록 (만 16세 7개월)
- 최연소 득점: 고종수 (만 18세 3일)
- 한경기 최다 득점
- 시즌 최다 득점: 29득점 (1999년 샤샤, 2001년 산드로)
- 최단기간 30득점: 조나탄 (11개월)
- 연속 득점: 조나탄 (7경기 8골, 2016년 9월 10일 ~ 10월 30일)
- 연속 도움 (4경기)
- 연속 공격포인트: 염기훈 (10경기 6골 8도움, 2015 시즌)
- 연속 무실점: 이운재 (7경기, 2008년 3월 19일 ~ 4월 20일)
6. 타 구단과의 관계[편집]
K리그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답게 수원과 라이벌로 엮인 구단이 많다.
6.1. FC 서울 - 슈퍼매치[편집]


한때 안양 LG 치타스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이 두 팀이 붙는 경기는 '지지대 더비', '1번 국도 더비' 혹은 '경수대로 더비' 등으로 불릴 정로로 유명했으며 당시 그랑블루는 안양과의 라이벌 시절에 치토스[48] 를 미트스핀했다. 그 유명한 '오늘은 치토스 먹는 날'.
마지막 안양전으로, 나드손의 3분의 기적으로 유명하다. 조광래의 씁쓸한 표정이 일품... 이 당시 수원 소속이던 에닝요는 볼을 안양 벤치에다 뻥 차는 등...
안양이 연고이전하여 FC 서울로 바뀐 이후 두 팀을 라이벌로 엮는 움직임은 이장수 시절(2005~2006)부터 있었다. 둘 다 대기업 구단으로 당시 한창 공격적인 투자를 하였고, 2006년 삼성 하우젠컵에서 서울의 히칼도가 수원 상대로 골을 넣고 수원 서포터즈 앞으로 달려가는 셀레브레이션을 해, 물병 수십 개가 경기장에 날아드는 사건이 있었다. 또한 수원은 2005년에 크로아티아의 마토를 주축으로 김남일과 송종국, 2006년에는 이관우, 백지훈[49] 등을 연달아 영입하며 한국의 레알 마드리드, 레알 수원으로 불렸고, 서울은 1998~99 트로이카 이후 당시 한국 축구계 최고 스타로 떠오른 신예 박주영에 김은중, 정조국 같은 화력한 공격진을 보유했다. 거기에 서로 연고지가 가까우며 그곳이 천만도시[50] 수도 서울과 기초지방자치단체 최다 인구이자 경기도 제1도시인 수원이니 이보다 좋은 소재가 없었다.
연고이전 초기라 특히나 길길이 날뛰던 수원 서포터즈는 FC 서울은 라이벌이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했지만[51] GS그룹이 2005년 LG에서 갈라지면서 받아 왔을 뿐 같은 구단인 건 맞다.[52] 그렇다고는 해도 FC 서울과의 라이벌 관계는 단순히 FC 서울의 전신이 안양 LG 치타스라고 해서 그때부터 형성된 관계가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이 둘을 엮지 않기에는 사건이 너무 많았다. 또 서울의 인구수를 등에 업고 세를 빠르게 불린 FC 서울 서포터즈 수호신 내부에 급격하게 울트라스 그룹이 나타나게 된 요인에는 거대 서포터즈로 서울 저격에 앞장선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의 극렬한 비난으로 인한 앙금도 있었다.
그리고 2007년 세뇰 귀네슈가 FC 서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두 팀은 더욱 다사다난해진다. 부임 초기 귀네슈는 공격 축구를 표방하며 초반 무패 가도를 달렸는데, 유럽식 언플에 익숙한 감독답게 다른 K리그 팀들이 지나치게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고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국내 감독들 가운데 이름값이 가장 높았던 수원의 차범근이 '귀네슈 감독은 아직 K리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정면으로 맞받아쳤는데, 이러한 설전 이후 벌어진 수원과 서울의 컵대회 대결에서 수원은 박주영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1:4로 참패를 당하는 굴욕을 맛봤으나, 얼마 뒤 리그 경기에서는 상암 5만 관중 앞에서 신인 하태균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설욕했다.
여기에 R리그 경기에서 한 FC 서울 여성팬이 안정환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건이 터진다. 2007년을 기점으로 서포터즈의 의견이야 어찌되었든 이 둘은 만나면 치고 받는 라이벌이 되었다. 물론 강성 팬덤에선 계속 라이벌이 아니라고 주장해 웹툰 작가 샤다라빠는 이 두 팀의 관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 두 팀의 스토리는 강성 팬덤의 바람대로 묻어버리기엔 너무 장사가 잘 되었고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유료 관중을 정확히 체크하던 시절이 아니라곤 하지만 5만 관중 채울 수 있는 경기를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2008년 두 팀간의 경기를 좀 더 띄우고 브랜드화 시키기 위해 수원 프런트가 제안하고, 서울 프런트가 승낙하면서 슈퍼매치라는 명칭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이 역시 초창기에는 강성 팬덤의 저항이 꽤 있었으나 강산이 이미 변한 작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정착해 양 팀은 대놓고 라이벌이자 K리그 관계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리그 최고의 흥행 매치가 됐다. 일반 대중들이 보기엔 누가봐도 라이벌 구도였고 FIFA 공식 웹 사이트에 Asia's Top Derby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가 올라올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대표 라이벌 더비로 인정받았다.
두 팀이 세운 관중 기록이 꽤 많다.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무려 "55,397"명의 관중이 입장, 결승전도 아닌 정규리그 도중에 이 정도 관중이 들어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역대 관중 동원 기록 3위으로 남아있다.
2011년 10월 3일 개천절에 빅버드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는 44,537명의 관중이 입장해, 월드컵 경기장 최초의 만석 기록을 세웠다. 약 6개월 뒤인 2012년 4월 1일에 펼쳐진 경기에서는 45,192명의 관중 수를 기록해 구단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흥미로운 점은 수원에 윤성효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로 한쪽이 압도하는 경향이 쭉 이어졌다는 점이다. 2010년 차범근이 감독 사퇴한 뒤 후임으로 들어온 윤성효 시기에는 아무리 팀 상태가 안 좋아도 서울만큼은 귀신같이 잡아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임 차범근은 2008년 서울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으나, 크게 지는 경기도 있었던 반면 윤성효는 서울팬들이 무승부면 감지덕지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였다. 유효 슈팅, 점유율 다 밀려도 이기고, 서울 수비수가 괴상한 실책을 하거나, 공을 흘리는 등 황당하게 들어가는 골도 많아 우스갯소리로 윤성효가 법력을 쓴다는 말도 나왔고, 윤성효 얼굴을 가져다 붙인 서울 잡는 부적까지 나왔다.[53]
그런데 윤성효가 물러나고 서정원이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서울 감독이 누구든 수원의 열세가 이어졌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시즌 전적이 서울에게 앞선 적이 없다. 2013년에는 1승 1무 2패, 2014년에는 1승 3패, 2015년에는 1승 1무 2패, 2016년에는 2무 1패(FA컵 포함 1승 2무 2패), 2017년 2무 2패, 2018년 1무 2패로 열세다. 윤성효 수원에겐 하도 지기만 해서 버스 막기를 당한 서울 감독 최용수는 윤성효가 물러나니 갑자기 전적 우위를 점하고, 서울을 완전히 말아먹고 떠난 황선홍(3승 3무)과 무력했던 감독 대행 이을용(2승)조차 수원 상대론 불패를 기록했다. 2020년, 서울의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된 뒤 감독 대행 박혁순 시절에 승리를 거두고 2021년, 박진섭(1승 1패) 시절에는 상암벌에서 7년만에 승리를 거뒀으나 안익수(3승)가 서울에 부임한 이후에 단 한 경기도 패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원 팬덤이 상당히 싫어하는 윤성효지만 군말없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부분이 대 서울 전적 절대 우세로, 후임 서정원에게는 많이 아쉬워 한 부분이다. 2016 FA컵 결승에서 1승 1패를 주고받은 다음 승부차기에서 승리해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짜릿한 반전이 없었다면 수원팬들의 아쉬움과 분노는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K리그는 판이 좁고 재정 상태가 열악한 시민 구단이 많다 보니 라이벌이라곤 해도 선수 이적은 활발한 경우가 많다. 슈퍼매치와 함께 서울의 양대 더비로 칭해지는 경인 더비의 인천이 그렇다. 하지만 이 둘은 운영비 2, 3위에 속하는 대기업 구단이라 아쉬울 게 없는 덕에 이적이 드문 편이다. 대신 그 드문 이적이 성사되면 불꽃 튀는 스토리 라인이 탄생한다.
2017년 수원에서 서울로 이적한 이상호는 이듬해 음주운전으로 인한 임의탈퇴로 불명예스럽게 서울을 떠났으나 최소한 슈퍼매치에선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 수원 시절 슈퍼매치에 강했으며, SNS에 "북패 짜식들 라이벌이 아니다" 같은 글을 올리며 FC 서울 디스의 선봉장으로 유명했고 알 샤르자 SC에서 임대 복귀 이후 인터뷰에서도 FC 서울에는 절대 안가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오래 남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선수가 서울로 적을 옮기고, 과거 SNS 글은 철없던 시절에 올린 글이라며 서울 팬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수원 팬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017년 8월 12일 17시즌 3번째 슈퍼매치이자 FC 서울 이적 후 처음 가진 빅버드를 원정에서 경기가 FC 서울의 승리로 끝난 뒤 관중석에 인사하러 가자 격분한 몇몇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팬이 물병을 집어던지는 사건도 있었다.
2018 시즌을 앞두고는 앞의 건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지닌 메가톤급 이적이 성사된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공격수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만나는 외국인마다 마찰을 일으킨 황선홍과의 대립으로 수원으로 이적한 것이다. 게다가 2018년 8월 15일, '''세 번째 슈퍼매치에서 득점에도 성공하며 양 팀간 라이벌리와 스토리 라인에 또 다른 불씨를 지피다 못해 폭파시켰다.
2018 시즌은 무능한 프런트와 고집만 센 감독의 앙상블로 끝없는 부진 끝에 강등권에 떨어진 서울의 최악의 시즌으로 2012년 스플릿 제도 시행 이후 사상 첫 슈퍼매치 조기종료[54] 를 맞이했으나 수원은 2018 시즌 서울에게 승점 7점을 헌납해 6점을 제공한 포항과 함께 서울이 다이렉트 강등을 면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기사회생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는 수원팬들에겐 이가 갈리고, 복장 터지는 일이고 서울팬들이 그 안 좋은 성적에도 수원팬들을 놀릴 수 있었던 이유다.
2019년에도 FC 서울 상대 무승은 계속되었다. 5월 5일에 진행한 홈 슈퍼매치에서 데얀의 선제골이 터졌고 10년도 더 전인 U-20 대표팀 이후 PK를 실축한 적이 없었던 박주영의 PK를 노동건이 끊어내며 드디어 무승 탈출하나 싶었지만, 종료 직전 노동건이 고요한에게 한 태클이 정통으로 다리에 걸리는 바람에 또 한 번의 페널티킥이 선언되자 이걸 그 박주영이 성공시키며 승리가 날아가버렸다. 이것만으로도 수원 팬들 입장에선 분노가 치밀어오를 지경인데, 6월 16일 서울 원정 슈퍼매치에선 4골을 실점하며 대패하는 대형사고가 터져버렸다. 서포팅에 대한 자부심이 큰 수원 팬들은 3번째 실점 이후 집단으로 경기장에서 퇴장해버렸다. 이 날을 기점으로 언제나 수원이 앞섰던 리그+리그컵 기준 상대 전적이 역전되면서 선배들이 이뤄놓은 업적 너희가 다 망쳤다, 우린 이제 쟤네 절대 못 이긴다 등 부정적 의견이 수블미 같은 팬 커뮤니티에 난무했다. 10월 6일 3번째이자 수원의 파이널 B행으로 인한 2019년 마지막 슈퍼매치마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다 1-2로 패하며 무승 기록을 16경기로 이어갔다. 이 패배로 역대 슈퍼매치 전적마저 동률이 되었다.
2020년에는 2019년 어린이날 슈퍼매치보다 더한 무승 탈출의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의 여파로 7월이 돼서야 서울을 처음 만났는데, 홈에서 펼쳐진 이 경기에서 전반전을 3:1 리드로 마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수비 불안이 2018 시즌 이상이던 서울의 약점을 제대로 파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후반전 서울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릴레이골[55] 을 넣어버리며 3 대 3으로 또 비겼다. 이로써 수원의 리그 무승이 어느덧 1900일을 넘어섰다.
수원의 리그 슈퍼매치 무승이 2000일이 거의 다 되어가던 2020년 9월 26일 3:1로 승리를 거두며 드디어 리그 무승 행진을 끊어냈다. 수원 서포터즈들은 2015년 서울의 굴욕적 5:1 패배를 두고 조롱을 하던 5eou1에 이은 3eou1 등을 사용해 조롱했다.
2021년에는 수원은 스쿼드의 한계로 주저앉기 전까지 쌓아 둔 승점으로 파이널 A에 안착했고, 서울은 시즌 초중반 이어진 부진 끝에 감독이 한 시즌도 버티지 못하고 교체되는 진통을 겪어 파이널 B로 추락했다. 수원과 서울이 서로 다른 그으로 떨어지면서 슈퍼매치는 3경기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이 3경기는 박진섭 체제에서 1승 1패, 안익수 체제에서 1승을 거둬, 총 2승 1패로 서울의 우위로 끝났다.
2022년에는 1승 1무 2패의 열세로 마무리됐고, 두 팀이 나란히 파이널 B로 떨어졌다.
수원 서포터즈의 서울 전용 디스곡으로 패륜송과 눕패송이 있다.[56] 원곡이 굉장히 흥겨운 곡이라 호응도도 좋고, 선수들도 팬들과 행사하는 자리에선 부르곤 했다.(대표적으로 이관우) 서울 팬덤은 2015년까진 이 패륜송에 욕설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많이 보였으나 수원의 서울전 열세가 표면화된 2016년부터는 패륜송에 맞춰서 지휘를 하거나, 목소리 작다며 같이 불러주곤 한다. 한편 눕패송은 서울 선수들이 부상 등으로 그라운드 위에 쓰러졌을 때 부르는 안티콜로, 나가뒤져라 콜과 함께 많은 비판을 듣고 있는 응원가이다.
6.2. 전북 현대 모터스 - 공성전[편집]

우선 수원과 전북과의 악연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조재진이다. 조재진은 수원 출신이긴 하지만 2004년 5월 23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친목을 도모했다는 이유, 수원에서 나갈 때 뒤끝이 안좋았다는 등의 루머로 인하여 여러가지로 수원 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2004년을 끝으로 조재진은 J리그로 갔다. 그러던 중 조재진은 2008년 J리그에서 전북 현대로 이적했고, 5월 5일 경기에서 수원 선수가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 앞에서 도발적인 세리머니를 하자, 이에 조재진이 동점골을 작렬시키고 수원 서포터에게 주먹감자를 먹이는 세리머니를 한다. 이에 격앙된 수원 서포터들은 다음 번 홈경기에서 조재진과 루머가 있던 여가수[57] 의 이름을 부르며 조재진을 도발했으나 조재진은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수원에 2-5 대패를 안겼다.
또한 차범근의 악연들이 전북과의 관계를 이루는 축이 되었다. 최강희는 울산 현대에서 뛰던 현역 말기에 감독으로 부임한 차범근의 영향으로 선수 은퇴를 했다. 고참 선수와 젊은 신임 감독의 흔한 힘겨루기 중에 하나로도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최강희는 차범근에게 악감정이 있었다. 거기에 최강희는 김호 시절 수원 코치로 일했다.
뿐만 아니라 수원에서 뛴 선수가 전북에 가서 잘되는 경우가 있었다. 앞서 말한 조재진은 J리그에서 성장해서 전북으로 온 경우이긴 하지만, 수원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던 에닝요, 루이스 등의 선수들의 포텐이 전북에서 터졌으며 특히 루이스의 경우는 차범근도 잡고 싶었지만 계약 문제로 잡지 못하고 전북이 영입한 결과... 유독 이런 선수들이 수원에 골을 잘 넣는 경우가 많아 많은 수원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이 시기부터 전북이 모기업의 푸시를 받으며 만년 하위권에서 K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강팀으로 올라온 것도 한몫했다. 여기에 염기훈, 서정진 등 전북에서 뛴 선수들이 수원으로 와 라이벌리가 강해졌다.
최강희의 전북 감독 부임부터 수원의 윤성효 경질까지는 수원 대 전북 전적이 심각하게 부진했는데 2013년, 서정원 부임 이후 첫 해에 3승 1무를 찍으며 전북에게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2014년에는 1승 1무 1패로 팽팽한 전적을 기록했고 2015년에는 1무 2패로 털렸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염기훈의 프리킥 선제골과 카이오의 역전골로 승리했다. 2016 시즌에는 3경기 1무 2패의 열세.
이렇게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에두 가계약 논란(에두 문서 참조)과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이후로는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애초에 공공의 적 이미지가 있는 FC 서울보단 나은 관계였지만 이 사건 이후로 전북 현대가 떠오르는 공공의 적이 되면서 오히려 락사커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전북에 대한 비판으로 수원 팬들과 서울 팬들이 대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58] 그리고 6월 15일 전북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북 측 경호원과의 충돌,# 동시에 전북 서포터들의 내로남불식 비난,[59] 9월 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양측 서포터즈들의 충돌과 이동국-이종성 건 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이미 수원 서포터즈 측에서도 패륜송에 가사만 바꾼 매수송이 나오기까지 하는 등 이젠 두 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FC 서울만큼 증오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2021년에는 백승호 이적 파동으로 인해 더 악화되었다. 심지어 수원뿐만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전북을 맹비난했다. 백승호가 전북에 합류한 이후 처음으로 만난 대결인 2021 K리그 14라운드에서 수원은 9분 동안 세 골을 몰아치며 전주 원정에서 승리하였다. (3-1) 리그 기준으로 3년 6개월만의 승리. 그러나 그 이후 리그 4연패, FA컵에서의 0-3 대패로 인해 다시 전북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다.
6.3. 수원 FC - 수원 더비[편집]
K리그에 존재하는 연고 라이벌 중 하나다. 실업팀 수원시청이 2013년에 프로팀으로 전환해 K리그 챌린지로 진출하고 2016년, 수원 FC가 승격하면서 K리그 클래식 최초의 지역 더비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수원 삼성과 수원 FC는 전력 차이가 꽤나 있었고 라이벌로 엮일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팬들은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원 FC가 실업팀으로 내셔널리그 소속으로 있던 시기에는 FA컵에서만 3차례[60] 만나 수원 삼성이 2승 1무[61] 를 거두었다.
2016년 5월 14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K리그 첫 로컬 더비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날 수원 삼성 서포터들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종합운동장까지 걸어서 원정길을 떠났고 수원 FC의 홈인데도 원정팀인 수원 삼성 서포터들의 함성이 더 크게 들렸다.[62] 2016 시즌 최종 전적은 3승 1패. 수원 삼성이 우세를 점했지만 최초의 패배를 기록했다. 그리고 수원 FC가 강등을 당하면서 1년만에 더비가 끝나게 되었다.
2021년에 수원 FC가 K리그 1으로 승격하면서 다시 수원 더비가 재개되자 역으로 1무 3패로 박살났다. 그리고 최종 순위도 수원 FC 5위, 수원 삼성 6위로 시즌 마감을 맞이하며 처음으로 수원 FC가 수원 삼성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2022 시즌을 앞두고 수원 FC의 프런트들이 원정팬 등을 언급하며 빅버드를 사용하고 싶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자 양 팀의 관계는 더 안좋아졌다. 지난 시즌 전반기 각자 경기장을 사용하였을 때와 후반기 함께 사용하였을 때 잔디 상태가 굉장한 차이를 보였고, 성남의 김영광은 형편없는 잔디 때문에 실점을 하는 등 경기장에 대한 잡음이 심하게 나왔다.
당연히 20여년간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사용한 수원 삼성은 반대를 하였고 수원 FC의 서포터즈 리얼크루 역시 '캐슬파크만이 우리의 집'이라는 걸게를 걸며 이전을 반대하고 나섰다. 몇몇 국내 축구 사정을 알지 못하는 팬들은 밀라노 더비를 언급하며 "산 시로 같이 운영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였지만 이 경기장은 두 팀의 경기를 위하여 연당 6차례에 달하는 잔디를 교체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디에 대한 불만이 나왔다. 국내 축구에서 함께 경기장을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
이후에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으나 결국에는 없던 일로 하며 끝이 났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자 수원 삼성 팬들의 수원 FC에 대한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
6.4. 인천 유나이티드 FC - 수인선 더비[편집]
수인선이라는 열차 노선과 함께 같은 수도권으로 전력 차이가 꽤 크긴 하지만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63]
2012년 3월 1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경기에서 두 팀이 붙었는데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과거 인천에서 뛴 수원의 라돈치치와 한 때 수원 삼성의 주장이었던 인천의 김남일로 인해 라이벌 의식이 생겼다.
어렵게 경기장을 찾은 인천 팬들 입장에서는 홈팀 인천 유나이티드가 개장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기를 기대했으나 원정팀 수원은 인천 팬들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것도 찬물을 끼얹은 주인공은 인천에서 K리그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5년 인천 돌풍의 주역인 공격수 라돈치치였다.
라돈치치는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해 90분 풀타임을 뛰었는데 지난 개막전에서 골을 넣지 못한 라돈치치는 전반 29분 만에 오범석의 크로스를 받아 곧바로 논스톱으로 왼발 슈팅으로 연결시켜 선제골을 넣으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첫 골을 성공시키더니 이어 후반 33분에도 페널티킥을 얻어내 골을 성공시킨 라돈치치는 단숨에 2골로 개막전 무득점의 한을 풀었다.
라돈치치의 맹활약에 아쉬워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인천 팬과 인천 서포터즈인데 라돈치치가 상대팀으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경기에서 2골을 뽑아냈으니 당연히 기분도 묘했다.
이날 라돈치치와 더불어 친정 팀을 상대한 선수는 인천의 김남일이다. 수원 삼성에서 뛰다 일본 J리그, 러시아 리그를 거쳐 고향 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김남일은 홈 개막전을 공교롭게 친정 팀 수원 삼성과의 맞대결로 맞이하게 돼 역시 남다른 기분을 갖고 이번 경기에 임했다. 체력 문제로 후반에 교체 출전한 김남일은 중원에서 이따금씩 공격진으로 날카롭게 찔러주는 패스 플레이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고 인천 팬과 인천 서포터즈는 김남일의 존재감만으로도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김남일에게 수원 삼성 팬들은 아쉬움을 쏟아냈다. 김남일이 수원 소속이던 당시 부상 치료차 일본으로 갔는데 거기서 일본팀과 계약을 진행하면서 시즌 종료 후 J리그로 갔기 때문이다. 그 이후 수원팬들 내에서 김남일의 별명은 김배신이 됐으며 김남일이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전반부터 수원 팬들은 '배신하는 김남일'을 외쳤고, 후반 김남일이 투입돼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쏟아내면서 '배신! 배신! 김남일!'을 더 크게 외쳤다. 이에 아랑곳 않고 경기에 집중한 김남일은 경기가 끝난 뒤 수원 서포터가 있는 곳에 홀로 가서 90도로 인사했다. 옛 친정팀 팬들의 관심에 감사 인사를 한 것이다. 이에 야유를 보인 팬도 있었지만 격려를 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이후 수원 삼성은 절대적 전적 우세를 이어갔으나 2019년에 마침내 이변이 발생했다. 수원 삼성은 2013년 12월에 열린 경기에서 1-2 패배 이후 17경기 연속(10승 7무)으로 단 한 번도 인천에 패하지 않았다. 빅버드에서의 성적은 더욱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9년 1-2 패배 이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빅버드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승리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8월 10일 수원 빅버드에서 유상철이 이끄는 인천 유나이티드에 무려 10년만에 패배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 패배로 파이널 B로 추락했고 파이널 B 인천 원정에서도 졸전 끝에 1 대 1로 비겼다.
2020년 8월 22일 인천이 홈에서 승리를 거두며 6년만에 인천 원정에서 패배를 당했다.
2022년 9월 11일에는 빅버드에서 정규 시간까지 고명석의 멀티골과 오현규의 PK골(10호골)에 힘입어 3-1로 수원 삼성이 앞서며 경기가 끝나는 듯 했으나 추가 시간에만 2골을 내리 실점하며 3-3 충격의 무승부를 거두었다.
2022 시즌을 기준으로 수원 삼성은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통산 29승 18무 9패라는 절대적인 상대 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제일기획 인수 이후에는 절대적 강세였던 예전에 비하면 패하는 경기도 많이 늘어났다.
6.5. 대전 하나 시티즌 - 축구수도 더비[편집]

1997년에 대전 시티즌이 10번째로 가입했으나 IMF의 영향으로 대전의 컨소시엄을 이룬 기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계룡건설이 부도가 나고 나머지 기업들 또한 어려워지면서 구단의 재정도 많이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당시 PC통신에서 수원 팬들이 대전 팬들의 어그로를 끄는 광역 도발들을 시전해(이는 당시 1997년 수원 대 대전의 모 경기에서 대전 선수의 도발성 골 세리머니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대전과의 관계 악화의 시발점이 됐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대전이 수원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고 수원은 대전에게 절대적인 우세를 점해왔다. 특히 '대전 킬러'로 불린 고종수와 데니스, 산드로의 존재는 대전이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물론 대전에도 김은중, 이관우 같은 선수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양측 서포터 간의 폭력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특히 2001년 6월 24일 수원에서 열린 경기가 시발점이었다. 2-2였던 후반 막판 주심이 착각 끝에 수원 수비수 졸리에게 레드 카드를 뽑았는데, 졸리가 이를 무시하고 스크린 플레이에 참가했고 고종수는 왼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린다. 결국 대전 선수단은 심판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대전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면서 경기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대전 서포터즈는 이 경기의 주심과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현상 수배하는 전단을 돌렸고 주심이 이들을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한달 후인 7월 2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대전 서포터들이 쇠파이프 등을 사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이날 발단은 수원 서포터들이 원정 서포터의 응원석을 점거한 데서 시작되었다. 수원 측은 대전 서포터가 지난 달에 난입한 일에 대해 사과를 받기로 했으나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원정 서포터 대상 입장료 할인, 지정 응원석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를 통보받고 도착한 대전 서포터들은 수원 측과 멱살잡이를 벌이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의자를 부수었으며 경기 후에는 주차된 차량 등을 파손하는 등 30여 분간 난동을 부리다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어 양 측 서포터즈 회장이 수원중부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 대전 구단이 피해를 보상하는 조건으로 훈방되는 등 K리그의 흑역사로 남을 사건을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위에 서술한 사건의 뺨을 칠 정도로 과격한 마찰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수원 서포터들은 대전 원정에서만큼은 긴장 아닌 긴장을 하고 떠나야만 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이 두 팀의 관계는 적 그 이상이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대전 시티즌이 연패를 당하는 등의 분위기가 안좋은 상황 속에서 항상 수원에게 승리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일이 종종 벌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다해의 저주이다. 2008년 7월 15일 대전 시티즌 홈경기에서 이다해가 시축자로 나섰는데, 당시 대전은 좀처럼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수원 삼성은 18경기 연속 무패와 리그 11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대전은 수원을 1:0으로 꺾으며 수원의 연승을 저지하며 화제가 되었다. 이다해를 시축자로 초청한 이유는 앞서 수원이 당시 삼성 하우젠 모델을 맡은 이다해를 초청했는데 초청한 두 경기 모두 패하자 대전 구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다해를 시축자로 초청했다고 한다.
2012년에도 대전이 승리 한번 거두지 못하다 리그 1위 수원을 상대로 홈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승을 거뒀다.
대전이 2014년에 챌린지로 강등했으나 놀라운 성적으로 K리그 챌린지를 씹어먹고 2015 K리그 클래식에 합류하면서 수원과 다시 만나게 됐으며, 2015 시즌에 극도로 부진했으나, 전반기 유일한 1승은 수원에게서 따냈다. 하지만 대전이 2015년 K리그 클래식에서 12위로 강등하면서 다시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8년에는 김호가 대전 사장으로 취임하고, 인사들도 수원 출신들로만 구성되었다.[64]
대전이 2020년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어 기업 구단으로 변모한 뒤 2021년 4월 14일 FA컵에서 처음으로 두 팀이 만났다. 그 경기에서는 수원이 2-1로 승리를 거뒀다.
2022년의 수원과 대전은 대진이 어긋난 상태에서 승강 PO를 치르게 되었고, 둘 다 승리하면서 2023년 K리그1에서 더비가 열리게 되었다.
2023 시즌 4라운드에서 드디어 2015년 이후 8년만에 1부 리그에서의 축구수도 더비가 빅버드에서 열려 두 팀이 격돌했다. 전반전은 공방 끝에 득점없이 비겼으나 후반전 이진현의 그림같은 왼발 슛으로 대전이 선제골을 터트렸다. 수원은 아코스티가 동점골을 넣으며 따라갔으나 89분 프리킥 상황에서 변준수의 헤딩, 추가시간 2분 김민덕의 연속골로 대전에 1 대 3으로 패했다. 6월 28일 현재 대전은 초반의 기세에 비해 주춤하지만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반면 수원은 시즌 반이 지나간 현재에도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결국 대전은 정말 여유롭게 잔류를 한 반면, 수원은 끝내 강등을 당하면서 두 팀의 처지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6.6. FC 안양 - 지지대 더비[편집]

6.7. 성남 FC - 마계대전[편집]

6.8. 울산 HD FC[편집]
수원의 리그 참가전부터 울산에서 견제가 심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둘의 모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재벌가 라이벌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다.[65] 이는 수원의 리그 참가 이후에도 모기업의 영향으로 라이벌로 묶이곤 했다.
더군다나 수원은 1996년 리그 참가 당시 신생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한다. 당시 챔피언 결정전의 상대가 바로 울산. 수원은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조현두의 골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에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 이대로 수원이 우승하면 신생 구단이 참가하자마자 바로 우승하는 엄청난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수원은 홈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3-1로 패하며 울산에게 K리그 우승컵을 내주게 된다.[66] 2차전은 레드 카드가 다섯 장이나 나올 정도로 굉장히 거친 경기였으며, 당시 윤성효는 선수 생활에서 처음으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2년 뒤 챔피언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두 팀은 수원이 설욕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한편 1996년 당시 울산 소속으로 우승을 경험한 신홍기는 1997년 수원으로 이적, 1998년 수원에서 또다시 K리그 우승을 경험하는 흔치 않은 커리어를 쌓았다.[67]
2000년대 들어서도 잊을만하면 충돌했다. 대표적으로 2003년 빅버드에서 열린 수원-울산 경기. 이 경기에서 울산 서포터들은 '서포터', '김호 감독', '삼류 심판' 등의 팻말을 붙여 닭을 투척했고 #, 수원의 한 서포터는 경기장에 난입하여 울산의 김현석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버라이어티한 모습이 펼쳐졌다. 자세한 건 포스팅 참조. # #
이천수가 '삽질王 개천수'라는 팻말을 보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린 것도 수원 서포터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 이후 이천수는 2008년 수원에 임대 형식으로 입단하게 되지만 제대로 된 활약 한번 못했고 시즌 말미에 폭행 사건을 터트리며 임의탈퇴 처리되고 만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도리어 수원이 모기업 및 프런트의 영향으로 삽질을 계속 하면서 소위 '진짜 불쌍한 팀'이 됨에 따라 둘 사이의 악감정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양 구단의 공식 자료에서는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표기하긴 한다.
6.9. 대구 FC[편집]
2005년에 대구 FC 서포터가 수십 명의 수원 서포터들에게 일방적인 집단 구타를 당한 사건이 있다. 본 사건에 대한 수원 서포터즈의 공식적인 사과가 아직까지 없기에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 않다.관련 글
집단 구타 이후 가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사건의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었는데도 뻔뻔하게 폭행 사실을 부인하거나 폭행을 말리는 주변 시민들의 만류를 쌍방 폭행으로 몰고 가는 등 매우 악질적인 대응이 이어졌다.
폭행 피해자들은 서울 및 경기지역에 거주하는 대구 FC 팬들로서 경기 후 귀가하기 위한 버스 탑승을 위해 이동하던 중 폭행을 사전 모의한 수원의 원정 서포터들에게 이유 없는 집단 구타를 당했다. 피해자들은 안와 및 안면 골절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됐다. 이후에 밝혀진 집단 폭행 주도자 및 가담자들은 진솔한 사과 없이 합의만 하려 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당시 폭행 가해자들은 이 사건을 미화시키고 영웅담마냥 주변에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확인돼 악질적인 범죄에 대한 반성은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그리고 2022년 수원 팬들이 서울 팬을 집단 폭행 하는 사건이 발생해 위 사건이 재조명됐다.
그러다가 대구와 지속적으로 마찰이 있던 정승원이 2022년 수원으로 이적하면서 대구 팬들에게 수원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팀이 되어버렸다. 2022 시즌 11라운드 대구 홈 경기에서 정승원은 볼을 터치할 때마다 대구 홈 팬들의 엄청난 야유를 받았고 여러 찬스들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원은 3-0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2022 시즌 24라운드 대구 홈 경기에서 정승원이 볼을 잡을 때 마다 야유가 쏟아졌고, 그때마다 정승원은 도발로 응답했다. 경기는 수원이 2-1로 승리하였고, 경기 후 정승원은 셀카 세레머니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후 정승원이 본인 SNS를 통해 징구라는 멸칭을 쓰면서 대구를 저격하는 게시물을 올렸고 대구 팬들은 물론 오승훈과 홍철까지 그를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36라운드 수원 원정 경기에서 대구가 수원을 잡으면서 대구는 사실상 잔류가 유력해졌고, 곧바로 오승훈과 정태욱이 인스타에 정승원을 저격하는 게시물[68] 을 올리며 2022 시즌 승자는 대구가 되었다.
이처럼 2022 시즌부터 정승원을 중심으로 선수와 팬들 사이에 야유가 오가며 점점 두 팀간의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6.10. 포항 스틸러스 - 수포동맹[편집]


2004 K리그 챔피언 결정전 승부차기에서 김병지의 슛을 막아내고 포효하는 이운재.
포항과는 중요한 길목에서 많이 만났다. 1996년 FA컵 결승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포항이 수원을 꺾고 초대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8년 FA컵 8강에서도 포항이 수원을 꺾고 4강에 진출했다. 2002년 FA컵 결승에서는 수원이 포항을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챔피언 결정전은 당시 전기 리그 우승팀 포항과 후기 리그 우승팀 수원이 만났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이 두 팀에는 국가대표 골키퍼 김병지와 이운재가 최후방을 지켰다. 실제 경기도 이들 키퍼들의 싸움이 되어, 포항과 수원에서 벌어진 1~2차전 모두 무승부로 끝났다. 2차전이 끝난 직후,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해 바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장전에도 결판이 나지 않아,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승부차기조차도 팽팽하게 진행되었고, 포항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병지였다. 하지만 김병지의 슛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키퍼들의 싸움이 된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은 이운재의 승리로 끝났다.
2006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수원은 포항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으나 2007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반대로 포항이 리그 2위 수원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그 이후 2014년까지 포항 원정에서 5-0, 3-0 패배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14 시즌 첫 포항 원정 경기에서 2-1로 역전패 당했지만 홈에서 4-1 승리, 2-1 승리 등 홈에서 완전히 압도했고 2014년 마지막 포항 원정이자 K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산토스와 정대세의 골로 징크스를 깼다.
2015년 전적은 2승 1무 1패로 수원이 우세한 전적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는 수원과 포항 양측 팬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서로를 형제라 칭한다. 갈수록 줄어드는 모기업의 지원과 선수 유출, 리그에서의 부진 등 동병상련을 겪기 때문. 심지어 2016년 상대 전적은 4전 4무다. 수원시와 포항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은 덤.[69]
2017년 전적은 3전 2승 1무로 수원이 우세하다. 포항이 스플릿 B로 떨어지는 바람에 이대로 마무리 되었다.[70]
2019년에는 라이벌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고 오히려 순위를 같이 병행하며 파이널 B를 굳건히 지켜나갔다. 하지만 포항이 반등에 성공하면서 4위까지 올라가고, 수원은 FA컵 우승을 위해 리그를 포기하면서 순위표를 보는 재미는 줄어들게 되었다. 전적은 FA컵 포함 2승 2패.
2020년에 구단 공식 SNS에서 코로나19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다음 릴레이 대상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형제 구단으로 지목했다.
2023년 7월 기준으로는 K리그 통산 상대 전적 36승 35무 33패로 포항이 앞선다.
7. 유소년 체계[편집]

8. 사건/사고[편집]

9. 시설 및 장비[편집]
9.1. 유니폼 및 스폰서[편집]

9.2. 경기장[편집]
9.3. 클럽 하우스[편집]
9.4. 재활 시설[편집]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서 재활 치료를 담당한다.
9.5. 선수단 버스[편집]
다른 K리그 팀들이 현대 유니버스를 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같은 그룹 내의 삼성 라이온즈처럼 기아 그랜버드를 사용하며 기아 엠블럼을 가린 것도 똑같다. 국내 블럭 완구 업체 옥스포드에서 모형화 제품을 출시했다. #
2023년에 신형 그랜버드로 교체했다.
10. 캐치프레이즈[편집]
11. 기념 로고[편집]
- 10주년[72]

- 20주년

- 25주년
12. 등번호[편집]
13. 영구 결번[편집]
1998년, 윤성효 은퇴 후 비공식적으로 영구결번 형식을 취해 아무도 달지 않았다. 하지만 2008 시즌에 김현준이 38번을 달아 이에 팬들이 의아해했다. 이후 윤성효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영구결번으로 확정되었다. 사실 올드팬들 중에서도 윤성효의 영구결번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 이전에 윤성효가 수원 선수였는지도 몰랐다가 감독 취임으로 알게 된 팬들이 대다수다. 그런데도 다른 유명 선수들도 안해준 영구결번을 유일하게 해줬다는 게 미스테리. 여담으로 축구 게임 풋볼 매니저에는 38번이 영구결번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2017년에는 곽희주의 은퇴 후 구단이 영구결번을 제안하였으나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