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신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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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제17대 국왕 효종과 왕비 인선왕후의 장녀.
2. 생애[편집]
1634년(인조 12), 국왕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과 그의 부인 풍안부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37년(인조 15), 네 살이 되던 해에 부모와 같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끌려갔다.[1]
1645년(인조 23) 9월 21일, 12세의 나이에 병으로 요절하였다.
사망 당시 아버지가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이라 공주(公主)가 아닌 군주(群主)의 신분에 맞는 예법으로 염장되어야 했지만, 숙신공주 사망 이전에 군주를 염장했던 예시를 전혀 찾을 수 없어서 《대전(大典)》에 기재된 정2품 관원 치상의 예에 따라 염장되었다.[2]
2.1. 사후[편집]
사후 약 30년이 지난 1675년(숙종 원년)에 국왕이 교지를 내려 ‘숙신공주(淑愼公主)’로 추증되었다.
3. 가족 관계[편집]
4. 유물[편집]
- 숙신공주의 묘에서 출토된 화장용구. 뚜껑 윗면에는 학이 조각되어 있으며, 몸체에는 여지, 석류, 복숭아, 감 등으로 보이는 과일의 가지를 각각 네 부분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입구에는 연꽃잎을 두르고 바탕에는 구슬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넣어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 마찬가지로 숙신공주의 묘에서 출토되었으며, 은으로 만든 작은 화장용기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절경과 선인들이 소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는 한가로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당시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금속공예 기술을 엿볼 수 있다.
5. 기타[편집]
병술년(1646년) 7월 사랑하는 딸(愛女)을 잃었다.
세자(春宮)께서 시를 내려 화답하시고 마음을 위로해주셨다.
《송계집(松溪集)》 권1
지난해 나는 사랑하는 딸을 잃었는데, 올해 그대의 집 또한 사랑하는 아이를 잃었다.
우리 양가(兩家)의 딸들은 비범한 아이들이건만, 지금 홀로 된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중략)
이미 엎질러진 물은 되돌릴 수 없고, 이 가련한 이별은 또다시 일어나선 안될 것이다.
효종 답시(御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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