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정옹주

덤프버전 :






조선 태종의 왕녀
숙정옹주 | 淑貞翁主

생몰년
미상
본관
전주 이씨
부왕
태종
생모
신빈 신씨
부군
일성군 정효전(日城君 鄭孝全, ? ~ 1454)
능묘
숙정옹주묘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 위곡
자녀
슬하 2남 4녀 [ 펼치기 · 접기 ]
장남 - 정원창(鄭元昌)
차남 - 정극창(鄭克昌)
장녀 - 이승존(李承尊)의 처
차녀 - 이의석(李義碩)의 처
3녀 - 정석을금(鄭石乙金)
4녀 - 정옥금(鄭玉金)

봉호
숙정옹주(淑貞翁主), 숙진옹주(淑眞翁主)
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1. 개요[편집]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8녀이자 서4녀이며, 어머니는 신빈 신씨이다.

2. 생애[편집]


신빈 신씨(신녕궁주)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숙정옹주가 어렸을 적에 병약하여 궁밖에 나가 있었는데, 이 때 유언강(劉彦剛)의 여종의 젖을 먹고 자라 이를 계기로 유언강의 집에서 수양되었으며, 유언강의 벼슬은 대호군까지 이르렀다. 숙정옹주는 유언강의 집에 드나들다가 정효전과 인연을 가지게 되고 정효전과 혼인하였는데, 태종이 세상을 떠난 뒤 유언강은 다시는 의탁할 데가 없다고 생각하여 정효전을 구박하며 접대하였고 언사 또한 공손하지 않았다. 이를 들은 세종은 의금부에서 유언강을 국문하게 하였고, 세종은 자신의 누이와 부마에게 불충한 죄가 매우 크다며 유언강을 참수하고 가산을 몰수하였으며, 유언강의 처자를 종으로 만들었다.[1]

1422년(세종 4년) 도총제 정진(鄭鎭)의 아들인 일성군(日城君) 정효전(鄭孝全)과 혼인하여 2남 4녀를 두었고, 숙진옹주(淑眞翁主)로 책봉되었다.

1453년(단종 1년), 남편인 정효전이 수양대군(세조)를 모해하려다 발각되어 국문을 받게 되었고 외방에 부처되어 있다가 다음해에 사망하였고 정효전의 재산은 적몰되었다.

1488년(성종 19년), 숙정옹주는 몰수된 전답과 남편 정효전의 속공노비를 돌려줄것을 상언하였고, 성종은 이를 돌려주라고 명하였다.[2]

1489년(성종 20년), 숙정옹주의 상언에 관한 언급이 실록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숙정옹주의 모습으로,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3. 가족 관계[편집]




  • 남편 : 일성군 정효전(日城君 鄭孝全, ? ~ 1454) - 정진(鄭鎭)의 아들
    • 장남 : 감찰 정원창(監察 鄭元昌)
    • 며느리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이중무(李仲茂)의 딸
      • 손자 : 정승종(鄭承宗)
    • 차남 : 첨정 정극창(僉正 鄭克昌)
    • 며느리 : 양천 허씨(陽川 許氏) - 봉례 허삼(奉禮 許蔘)의 딸
      • 손자 : 정천령(鄭千齡)
    • 장녀 : 연일 정씨(延日 鄭氏)
    • 사위 : 직장 이승존(直長 李承尊)의 처
      • 외손자 : 이수녕(李秀寧)
      • 외손녀 : 첨사 이기경(僉使 李起敬)의 처
      • 외손녀 : 신세호(辛世瑚)의 처
    • 차녀 : 연일 정씨(延日 鄭氏)
    • 사위 : 이의석(李義碩)
    • 삼녀 : 정석을금(鄭石乙金)
    • 사위 : 노맹곤(盧孟昆)
    • 사녀 : 정옥금(鄭玉金)
    • 사위 : 현감 신순담(縣監 辛舜聃)의 처
      • 외손녀 : 부사 이귀종(府使 李貴宗)의 처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11:31:52에 나무위키 숙정옹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세종실록》 17권, 세종 4년(1422년) 9월 19일(계유)[2] 《성종실록》 219권, 성종 19년(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8월 19일(경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