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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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사도
59대 조겸

60대 순우가

61대 조온

후한의 사공
67대 충불

68대 순우가

69대 양표
淳于嘉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

청주 제남국 사람으로 광록대부를 지내다가 191년 가을 7월에 사공이 되었으며, 192년 9월 29일에 사도에 임명되고 녹상서사를 겸임했다가 193년에 왕찬을 천거했고 9월에 파직되었다.

매번 삼공의 결원이 생길 때마다 사손서가 늘 후보에 오르자 태위 주충, 황보숭, 사도 조온, 장희 등 다른 이들처럼 순우가는 삼공에 오를 때 사손서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2. 미디어 믹스[편집]


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뜬금없이 고향이 양주 지역으로 나오며, 나이만 많을 뿐 딱히 공이 있거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아니지만 고향이 양주라는 이유로 동탁의 신임을 얻어 사공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왕윤채옹을 죽이고 양주의 군사들을 죽이는 문제를 논의하자 겁을 먹고 왕윤에게 동탁이 척살당한 것에 대해 기분이 통쾌하다면서 나이가 많아 기운이 떨어져 피곤하다는 이유로 퇴청하겠다면서 황궁에서 물러나는 모습으로 나온다.

소설 삼국지 여포전에서는 채옹을 난대령사에 임명하는 것에 장온을 비롯한 대신들이 반대하자 순우가는 장온의 말이 과했다면서 우국충정을 비롯된 것이니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채옹을 난대령사를 맡기면서 궁 내부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내려야 한다고 했다.

장온처럼 채옹이 난대령사에 임명된 것을 내심 반대했지만, 채옹이 임명받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여기면서 여포의 비호를 받고 있는 채옹의 환심을 사는 편이 낫다고 여겨 그리 한 것이다. 이어서 노식을 정위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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