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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后宮甄嬛传 등장인물
순원황후


파일:attachment/순원황후/순원.jpg
오른쪽의 남자옹정제 역을 연기했던 진건빈이고,
왼쪽 인물은 진건빈의 실제 아내 장근근이다.[1]

민족
만주족 정황기
생몰년도
음력 1679년 5월 13일 ~ 1700년 8월 7일[2]
가족관계
부친 : 내대신 비양고
모친 : 애신각라씨[3]
이복동생 : 오라나랍 의수
남편 : 옹정제
자녀 : 2황자
품계
복진
추증
추증
적복진

순원황후
[4]

효경헌황후
[5]

파일:견환전 서화열.순원황후.jpg
<견환전 서화열>의 순원황후

1. 소개
2.1. 순원황후는 정말로 완벽한 인물인가
3. 원작에서
4. 기타



1. 소개[편집]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태후조카이고 황후 의수이복언니다. 무엇보다도 옹정제의 첫번째 황후이자 옹정제의 첫사랑. 작품이 시작되기 한참전에 사망한 인물이라 원작과 관련된 모든 미디어믹스 중 만화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이라도 그가 직접적으로 등장한 매체가 없지만, 사실상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현지에선 순원황후를 大Boss(최종보스)라고 부른다.

본래 동생 의수가 먼저 옹정제와 혼인했지만, 임신한 동생을 돌보러 왕부에 갔다가 옹정제가 그에게 첫눈에 반하는 바람에 결국 적복진이 되었다. 원래 옹정제는 의수에게 '아들을 낳으면 적복진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지만 순원에게 반해 그녀를 적복진으로 삼으면서 이 약속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결혼한지 3년 만에 2황자를 낳다가 난산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고, 옹정제는 즉위 후 그를 순원황후(純元皇后)로 추존했다. 원작에서는 곧바로 황후가 되었고 5년 만에 죽었다.

애칭은 완완(宛宛). 현릉만 그를 그렇게 부르므로, 아명이 아니라 애칭인 듯하다. 순원은 옹정을 '4랑'이라고 불렀고, 옹정은 순원을 '완완'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의 애칭은 옹정이 평생동안 '완'자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본명이 정확히 언급되지 않지만 원작에서 본명은 주유칙(朱柔则)이라고 나온다. 드라마에선 시대가 청나라이기에 만주족인 오라나랍씨로 나오지만, 원작 속 가상의 국가는 한족 국가임으로 주씨였다. 그리고 원작에선 태후가 아유(阿柔)라고 부른다.

외모는 견환, 옥요, 견환과 옥요의 어머니와 매우 비슷했다. 태후와 황제가 견환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랄 정도. 드라마에선 특히 눈매가 닮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작에선 눈매 얘기는 없고 견환은 3할의 외모와 5할의 성정, 옥요는 7할의 외모, 견씨 자매의 어머니 운신라는 거의 똑같은 걸로 묘사된다. 특히 운신라는 그를 본 황제가 '순원이 살아서 나이가 들었다면 이랬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흡사하다고 한다.

2. 지고의 여인[편집]


그야말로 완벽한 사람으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가문도 좋고, 미모도 출중하다. 게다가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경홍무는 그 중에서도 특기. 본래 당현종의 후궁 매비[6]가 발명한 이나 순원황후가 이를 조금 수정해서 추었는데, 아름답기로 온 궁중에서 유명했던 것은 물론, 창시자인 매비보다도 더 나은 수준이었다고.

노래 실력도 발군이었다. 극중에서 굉장히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닌 것으로 나오는 안릉용조차도 그의 노래에 비하면 6~7할 정도밖에 안 될 정도.

퉁소 연주에도 재능이 뛰어나서, 옹정의 말에 의하면 순원황후 사후에 그만큼 좋은 퉁소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지만 심지어 바느질비파 연주도 잘했다. 황후도 '언니의 바느질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고 인정했고, 황제는 총애하는 견환과 바느질 솜씨 좋은 릉용의 침의를 다 제껴두고, 그가 만들어준 침의만을 고집한다. 원작에서는 단비 제월빈이 순원황후에게 비파를 배웠다.

화장 실력도 뛰어났다. 먼 산을 그리듯 눈썹을 그리는 화장법인 원산대(遠山黛)를 특히 잘 소화했고, 방약 상궁은 한때 그를 모셔서 그 방식으로 눈썹을 그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를 읊는 것을 견환 못지 않게 좋아했고, 황제와 깊은 대화도 곧잘 나눴던 듯.

무엇보다 그의 완벽함은 인품에서 절정을 달한다. 황제의 입에서 나온 여러 표현들을 종합해보면 '어질고 자애롭고 성정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 그야말로 순수함과 선량함 그 자체였던 듯. 오죽하면 태후는 그를 평하길 '지나치게 순하다'고 했고, 단비 역시 그를 정말 어진 사람이었다며 그리워한다. 근석 역시 그의 은덕을 입었던 인물로, 어린 근석이 처음 입궁했을 때 빨래를 하다가 동상을 심하게 입었는데 마침 궁에 들렀던 순원황후가 그녀의 손을 보고 가엾게 여겨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고 한다. 그 일로 얼마나 감명받았는지 그에 대한 고마움이 이후 견환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여, 어의를 탓하지 말고 의수를 아껴줄 것을 당부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을 사산하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의수라는 사실을 임종 때에서야 눈치챘지만 말하길 포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아껴주고 절대 버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긴 것. 이쯤 되면 보살이 따로 없다. 다만 순원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의수의 자리를 뺏는 꼴로 황후가 된 이전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의수에게 죽기 전 나름대로의 미안함이 남아있어서 의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아끼고 버리지 말라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의수의 경우 언니 때문에 말 그대로 뭐든 뺏긴 상황인데다가, 그가 가장 얻고자 했던 한 남자의 사랑을 언니 때문에 영원히 얻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의수의 아이가 죽었을 때 황제가 순원이 애 낳았다고 좋아하는 꼬라지를 눈치 없이 보여준 것도 있었고.[7]

자신에게 불경한 측복진들[8] (원작의 현비와 덕비) 을 벌준 적이 있다. 화비가 임신한 견환에게 내렸던 벌은 사실 순원황후가 원조로, 화비는 반 시진이었지만 순원황후는 두 시진 동안 벌을 줬다. 말이 두 시진이지, 두 시진이면 장장 4시간을 땅바닥에 무릎 꿇려놓은 것. 다만 순원황후는 측복진이 임신한 상태였단 걸 몰랐다. 하지만 측복진이 유산하자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엄청나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황제가 사산의 주원인이 이 일로 인한 순원황후의 자책과 속앓이라고 한동안 믿었던 것을 보면, 아마 상상 이상으로 괴로워했던 모양. 번외편에서 의수는 순원에 대해 권모를 모르며 아둔하고 우둔하다 했다.

그의 완전무결과 팔방미인적인 재능 때문에, 직접 등장한 적이 없음에도 여러 사람 불행하게 만들기에 망령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 작중 이미 고인이지만 지나친 완벽함 때문에 옹정제가 헤어나오지 못한데서, 온갖 폐단이 발생했다.

심지어 동생 의수를 밀어내고 정실 자리를 차지했고 그녀 사후 황제가 들인 후궁인 견환과 릉용 등의 수많은 후궁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닌 순원을 투영해서 사랑했기 때문에[9] 결국 본의 아니게 동생을 망가뜨리고 20년간 줄줄이 피해자들을 낳았다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고인인데도 불구하고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 윤례와 더불어 안티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또한 너무 완벽해서 환상으로 느껴지기에, 작가의 언급에 따르면 원작 팬들이 윤례와 함께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이다.[10]

너무 완벽하고 부족한 점이 아예 전무하다 보니 공감할 수도 없고 그저 이질감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윤례 역시 마찬가지지만 윤례는 적어도 여러모로 희생 보정도 있어서 순원황후보다는 덜 까인다. 순원황후의 경우는 무엇보다 황제가 민폐다 보니.

순원황후 본인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작중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라, 더이상 암투에 휘말릴 수 없기 때문에 황제의 기억에서 더욱 미화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게다가 후궁들이 황제의 사랑과 지위를 갈구하다 죽은 반면에 오히려 일찍 죽은 순원은 황제에게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여인으로 남았고 황제 사후엔 황태후로 추존, 황제와 합장되면서 남편의 옆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순원황후는 생전에 손 한번 더럽히지 않고도, 등장인물들이 바라던 것을 최종적으로 모두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순원을 죽인 의수는 온갖 고초를 다 겪고도, 결국 악행이 밝혀져 사후에 따로 묻히고 역사서에까지 지워지는 인물이 된다.

비록 동생에 의해 죽었으나 자신이 손쓰지 않아도 그에 관한 일이 자연히 해결되고 제자리로 돌아간 점에서, 그간 후궁들의 암투 위에 있던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 비록 살아서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후궁은 가문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데다 최종 승자인 견환조차 행복은 얻을 수는 없었으니, 너무 선해서 궁에 살아가기 적합하지 못했던 순원에게는 좋은 결말인 듯하다. 사실 요절당한 것조차도 그녀에게 있어선 행운이었는데, 황제는 순원이 늙어도 황후보단 이쁠 거라고 했지만 정작 작가는 순원도 늙었으면 황제에게 이전처럼 좋은 취급은 못 받았을거란 식으로 답한 바 있다(…) 즉 늙거든 높은 확률로 이 여자도 지고의 여인이니 뭐니 하는 세월은 다 가고 뒷방행 거반 확정.

2.1. 순원황후는 정말로 완벽한 인물인가[편집]


이렇듯 지나치게 이상적이라서 실제로 그런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에 순원황후는 정말 완벽하게 선량한가?라는 의문도 자주 제기된다.

우선 황제와의 첫 만남 때 회임한 동생을 돌봐주러 왔음에도 한껏 꽃단장을 하고 온 의도는 순원황후의 어머니가 황후 자리를 욕심내서 시킨 일이라고 외전에서 언급되는데, 이는 의수의 추측일 뿐이며 순원의 본심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확실한 문제는 옷이다. 당시 순원황후는 궁주의 예복으로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입궁하여 그 결과 제부 될 사람과 결혼했는데, 근석이 이 옷이 눈에 익다고 했으니 그가 살아생전에 자주 입었던 옷일 수도 있다. 즉, 황후의 격식에 맞을 정도의 옷이다. 다만 황후의 격식에도 맞다는 부분은 원작한정이며 드라마에서는 옹정제가 즉위하기 전에 죽었으므로 황후로서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비 책봉식 예복으로 손색이 없다는 대목에서 최소한 고위 후궁의 격식에 맞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무대가 된 청나라는 의복이 신분마다 명확하고 엄격히 나눠져 있는데 미혼녀가 비의 길복으로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옷을 입는다는 건 아무리 명문가 여식이라도 주제 넘는 짓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미혼의 양반가 규수가 활옷을 일상복으로 입고다니는 것에 비할만하다. 그리고 순원황후는 당시에 처녀라, 길복을 입을 수 없었다. 길복으로 청색 이외의 다른 색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후비들뿐이다. 원작에서도 신분마다 장신구나 의복의 구분이 명확하다. 예를 들어 호온용이 창비 책봉식에서 봉황을 썼니, 신조 발명을 썼니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당시의 순원황후는 분에 넘치는 호사스런 옷을 입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제와 혼인한 뒤에도 장남이자 자신의 조카인 의수의 아들이 아파서 죽어갈 때에도 남편인 황제를 동생에게 보내지 않은데다 하필이면 조카가 죽은 직후에 회임 소식을 알렸다. 그 때문에 의수는 자신의 아들이 죽자마자 언니의 회임 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 직후에 남편인 황제에게 당신의 아이가 죽은 대신 당신의 언니가 아이를 가졌으니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일 것이다.란 말을 듣게 되었다. 황제의 그 말은 지금까지 언니와 대부인이 끼친 민폐를 참아왔던 의수가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본의는 아니었다지만 후궁에게 2시진이나 무릎꿇는 벌을 줘서 유산시킨 점 등을 이유로 독자들이 순원황후에 대한 의혹을 제시하는데, 극단적인 해석으로는 초특급 하라구로나 권세지향적인 인물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한 독자가 작가에게 이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작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순원황후가 선량한 인물인지, 그리고 자기를 죽인게 누구인지 알았는가에 대한 질문 중 후자에 대해서만 답해주었다. 덕분에 중국 현지에선 이 논란이 만년 떡밥이다.

그의 본성이 정말로 착하든 아니면 나쁘든지간에 자신이 동생 자리를 빼앗았으면서 그 동생한테 자기 음식 관리를 맡기거나 동생의 계략으로 몸이 나빠졌음에도 눈치를 못채고 있다가 결국 아이까지 잃고서, 그 사실을 죽기 직전에야 깨달은 걸 보면 동생인 의수의 말처럼 맹하고 지략이 딸린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순원왕후에 대해 하라구로라는 추측도 있는걸로 봐선 황후라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지위에 오른 후 방심 속성이 추가돼서 의수에게 당한 것일수도 있다.

심지어 황후가 되기 전 약혼자가 있었다는데 이건 결혼 당시나 그 후로도 두고두고 사회적 파장이 큰일이었다. 하지만 순원에게 약혼자가 있었고 파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언플에 매우 능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이복동생에게 상당한 민폐를 끼치긴 했지만, 어쨌든 죽기 직전만큼은 자기에게 이거저거 뺏기며 피해를 당해왔던 동생에게 미안함이 생겼던 듯하다. 자길 죽게 만들었으니 꼰질러버려도 될 동생을 황제에게 지켜주라고 한 걸 보면 뒤늦게서야 잘못을 깨달은 타입일지도. 자기 가문을 생각해서 그런 거라는 추측도 있다. 황후와 후궁을 동시에 내놓은 가문에서 그 황후와 후궁이 된 언니동생 사이에서 암투가 일어나 둘 중 하나가 죽게 되었다는 게 알려지면 유칙(순원왕후)와 의수(황후)의 가문도 빼박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죽을 때 의수에게 남긴 유언이 "미안하다."니, 가문보다 동생을 염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3. 원작에서[편집]


  • 모친은 대부인 도씨이다. 그는 의수의 모친을 견제하다가,[11]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고 냅뒀고[12] 의수가 태후의 방문 이후 어느 정도 대우 받고부터 견제하였는데, 유칙은 그런 어머니와 달리 동생을 아껴 어린 시절부터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 번외편에서 동생인 의수가 말하길, 언니는 가는 곳마다 주목을 끌고 찬양을 받고 근석은 그의 모습이 수선화[13] 내지는 순결한 백합같다고 묘사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천선(天仙) 같은 용모, 절세미인이라고 말한다. 황후가 되기 전에도 재녀로 유명했다. 현청과 함께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든가 신선 같다든가 하는 묘사가 주야장천 나온다.

  • 외모 말고 다른 의미로도 신선 같다. 의수의 독백에 의하면 내무부의 장부를 정확히 계산할 줄 몰랐고 비빈들간의 다툼도 조절할 줄 모르는, 속세의 음식을 먹지 않는 신선 같은 여자였다고 한다(다만 비꼬기일 수도 있다.). 각종 장부를 관리하고 첩들간의 다툼을 조절하는 건 황후를 포함한 유교 사회의 모든 본처들의 가장 중요한 일인데 그걸 못한다는 걸로 봐서, 황후 자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14] 중요한 일은 의수에게 죄다 떠넘기고 황제와 연애만 나눈 듯하다.

  • 태후가, 유칙은 너무 순한데다 예뻐서 현릉이 그에게 반해 서귀비에게 빠진 선제처럼 스스로를 망치게 될까봐 현릉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의수를 선택한다. 또한 유칙은 무원장군의 아들과 약혼을 했기 때문에 늘 집안에 있었고 현릉과 친척이면서도 만나지 못했다. 이후 의수가 회임하자 유칙의 생모가 일부러 유칙이 황제의 눈길을 끌도록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단장시켜 궁으로 보냈다. 태액지에서 현릉과 우연히 만나 현릉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고, 태후와 현릉이 유칙의 약혼을 무효로 만들어서 황후가 되었다.

  • 후궁 감씨와 묘씨가 순원황후에게 불손하게 대하고 도발했으며 순원황후는 순한 성격 때문에 그들에게 대꾸하지 못했다. 그리고 의수는 두 후궁을 부추겼다. 이 후궁들이 의수에겐 별 말 없었던 거 보면 유칙을 만만하게 본 듯하다. 그러다가 참다 못 해 두 후궁에게 두 시진동안 무릎을 꿇리는 벌을 줬는데 한 명이 이 일로 유산했다. 이에 굉장히 충격을 받고 한동안 자책감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한다. 황제가 순원황후의 사산 원인이 이 일때문이라고 오랫동안 믿을 정도였다.

  • 의수는 아들이 죽은 후, 순원황후가 좋아하는 행인차를 올렸는데 그 안에 복숭아씨를 섞었고, 이걸 마신 순원황후는 점점 쇠약해진다. 마지막엔 복숭아씨와 파초를 이용해, 순원황후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인다.

  • 죽기 직전 동생 의수에게 미안하다(对不起)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对不起'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때, 진중하게 사과하는 말이다. 의수는 언니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언니가 현릉 앞에 나타나서 총애와 황후 자리를 빼앗고, 언니가 회임을 해서 자신의 아이의 죽음이 묻힌 것을 원망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자신의 원망을 알고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15]

  • 견환의 어머니도 순원황후를 닮아, 황제가 그를 보고 유칙이 늙었으면 저렇게 됐겠구나 하면서 감상에 잠겼다.[16] 견환이 마격 칸의 왕비로 보내졌다가 견환의 여동생 옥요가 대신 왕비가 되어 견환이 다시 돌아왔을 때 황제가 청하왕이 견환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보낸 것을 추궁하여 연금하자 견환의 어머니, 옥요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데 순원황후와 닮은 여자들이 이러자 마음을 돌리는 일도 있었다. 현릉은 견환의 어머니를 보고 슬퍼하다가 견환을 껴안고 견환이 자신을 위해 현청과 군사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린다. 수정판에선 롱월제희가 추가된다.

  • 원작에선 비파 연주도 잘했다. 현릉의 말에 따르면 단비가 궁중에서 비파 연주가 제일인데, 사실 순원황후가 단비보다도 훨씬 잘했고 단비는 순원황후에게서 비파를 전수받았다.

  • 이거저거 다 잘하는 먼치킨이긴 했지만 서예 등 의수가 특기로 하는 부분에선 의수보다 밀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 대해 신경 쓰거나 흠잡는 일이 없었다고.[17] 그저 의수만 안습

  • 태후는 제희(공주)로 태어났다면 더 나았을 인생이라고 평했다. 황녀는 아무리 예쁘고 재주가 뛰어나도, 시기를 받아 암투에 휘말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4. 기타[편집]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이 죄다 최고급품들이었다고 한다. 이는 황제가 인정한 사실로, 황후가 언니가 물려준 옥으로 홍염과 영서를 위해 옥패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자, "순원의 물건들은 다 최고급이니까, 아쉽지 않겠소?"이라고 말했다. 왕부에 처음 입고 왔던 예복만 하더라도,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약간 낡아서 그렇지 예쁘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이를 보면 그다지 검소한 성격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작에서 현릉은, 순원황후를 천성이 검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옥을 특별히 좋아했다. 장신구들 중에서도 옹정제가 선물한 양지옥으로 만든 정교한 부용 목걸이[18]와 원앙 옥패[19]를 가장 아꼈다고. 동생 의수에게도 최고급 양지옥을 물려주었고 이는 나중에 홍염과 영서의 옥패를 만드는 데 쓰인다.

팬덤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호접몽(레베카의 중국 개봉명)의 레베카가 모티브라고 추측한다. 레베카는 주인공 남편의 전처로 이미 죽어 등장은 없으면서 극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다. 팬들 사이에선 비슷한 인물로 동악비효현순황후, 민혜공화원비(숭덕제의 후궁), 남당의 황제 이욱의 첫 황후인 주아황이 언급되기도 한다.

작가와의 대담에서 질문자가 "순원황후는 못하는 게 없는데 역사상 그런 여자가 있었나요?"라고 질문하자 작가는 "없다."고 대답했고, 뒤이어 "그래서 그를 이상화시킨 것인지?"라는 질문에는 "그렇기에 그를 죽은 채로 배치했다."고 답했다. 순원 사후에 황제가 더욱 순원을 맘속으로 이상화시킨 것과 이 발언이 묘하게 겹쳐서, 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순원황후의 성이 오라나랍씨이고 왕부시절 적복진이였다는 정보를 보자면 실제 역사의 옹정제 왕부시절 적복진이자 옹정제가 황제가 되면서 황후가 되었고 1731년에 붕어한 효경헌황후 오라나랍(孝敬憲皇后 烏喇那拉氏)씨를 모태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황후였고 옹정제보다 일찍 죽었다는(1731년) 점에서 말이다. 옹정제는 1735년에 천거하였다. 차이라면 효경헌황후는 옹정제 즉위시 황후로 오래 살았고 4년 일찍 죽었지만 순원황후는 황후에도 오르지 못하고 죽었으며 이미 작중 고인이다. 받은 봉호도 사후 추존된 것이다. 후궁견환전만의 역사왜곡 중 하나인데, 옹정제의 생모인 인수황태후(효공인황후)는 이미 옹정 1년에 서거하여 강희제와 합장이 되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멀쩡히 살아있다. 즉 순원황후도 역사대로라면 이미 살아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어떻게 보면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에 대한 사실 중, 옹정제의 왕부시절 적복진이자 옹정제보다 먼저 죽었다는 점과 기록에 남은 황후라는 점은 순원황후에게 계승되었고, 옹정제의 생전 곁에 있었던 오라나랍씨 황후라는 점은 동생인 오라나랍 의수가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말 및 상상으로는 오라나랍 유칙과 오라나랍 의수가 하나가 되어서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로 다시 만들어졌고 의수의 공도 순원황후에게 빼앗기면서 아예 역사의 찌꺼기처럼 된 형식이라고 언급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 효경헌황후는 옹정제보다 4년 먼저 죽었는데 드라마에서 의수가 유폐된 시기는 옹정제가 죽기 4년 전이다. 마지막화에서 견환과 소윤자가 "오라나랍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4년 전입니다"라고 대화를 하고, 그 직후에 경인궁에서 최후의 대면을 했다가 다음 날 의수는 자살했다. (적어도 드라마 세계관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의수가 유폐된 시기가 순원이 죽은 시점으로 기록되었다는 설정일 듯하다.

후궁견환전과 보보경심을 둘다 본 시청자들은 그에게 마이태 약희를 대입해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순원이 극중 단 한 번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보니, 그를 약희였다고 생각하고 보면 후궁견환전의 옹정제가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 더 쉽게 납득이 되는 면이 있다. 실제로 은근히 공통점도 많다. 둘 다 옹정제가 애틋하게 사랑한 여인이었으나 아이를 잃었고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 학식이 높고 옹정제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인이었다는 점, 아름다운 춤으로 옹정제의 기억 속에 남았다는 점, 옹정제로부터 양지옥 목걸이를 선물받았다는 점, 홍매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 등.

후궁견환전 원작 만화 견환전 서화열에선 옹정제(현릉)의 시점으로만 그려저서 그런지 매우 순하고 선하고 이쁜 여자로만 그려지고 독자들이 추측하는 '정말 착한 사람인가/완벽한 여자인가?/언플 같은 것에도 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20] 그러나 황제 기준에서 본 순원황후를 빼다박은 순하고 가녀린 외모는 잘 살린 편. 하지만 생각보다 안 예뻐서 실망했다거나 의수가 더 예뻐보인다는 말이 많다. 덤으로 서화열에서 순원황후의 상징꽃은 수선화. 수선화의 한자명은 '물가에 피는 신선' 이라는 뜻. 또한 수선화의 꽃말이 신비, 자기애, 어리석음이다.

작품 내적으로는 성품이 바르고 선하다며 칭송받지만 작품 밖의 시청자와 독자들은 정말 착한 사람인지 의아해한다는 점과, 메인남주의 잊을 수 없는 첫사랑 포지션이라는 점에서, 프린세스비앙카스타 로디트와 비슷하다 분석한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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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궁견환전 방영 당시 장근근이 견환 역의 손려와 매우 닮았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2] 실제 역사 속 효경헌황후의 출생일자며, 2황자를 낳다가 사산하고 요절했단 걸 보아 실제 2황자 홍윤의 출생년도에 사망한 걸로 보인다. 양력으로 변환하면 1679년 6월 20일 ~ 1700년 9월 19일.[3] 이혁고산패자 목이호의 4녀로, 이모인 목이호의 장녀의 딸이 3대 순치제의 효헌단경황후 동악씨다. 즉 선대 황후의 이종사촌 동생이며, 부친인 목이호는 태조 누르하치의 증손겸 누르하치의 첫 정실인 원비 대복진 동가씨 소생 장남인 화석광략패륵 저영의 손자이자 저영의 적장남인 안평패륵 두도의 적2남이다. 목이호의 모친은 적복진 오랍나랍씨며, 그 부친은 포점태패륵에 봉해졌다. 심지어 생모는 목이호의 계복진 박이제길특씨인데 몽군기 찰노특부 태길 고록의 딸이다. 이쯤 되면 왜 순원의 생모를 적실로 택했는지 알만하다.[4] 추증[5] 옹정제 사후[6] 그 유명한 양귀비의 라이벌 포지션이었다. 양귀비 등판 이후 현종의 총애 측면에선 좀 밀렸지만 그래도 현종이 양귀비를 끼고도 그녀를 잊지 않고 찾는 수준이었기에 양귀비의 질투를 사기도 했다고.[7] 그리고 황제가 의수를 적복진(황후)급 대우를 해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순원은 태후의 말처럼 집안 관리를 할 능력이 없었기에 실무에 능한 의수에게 집안일을 다 떠넘기고 황제는 순원이랑 같이 사랑놀음이나 하려고 그랬던 것이다.[8] 원작에선 이후 이들을 순장했다고 나오나 드라마에선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 않았다.[9] 원작 소설의 외전에서 의수가 한 말에 의하면 황제가 총애한 모든 후궁들 중 순원황후를 닮은 점이 전혀 없는 후궁은 화비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10] 다만 이는 작가의 말일 뿐, 실제 중국 현지에서 원작의 안티수는 견환>현릉>순원황후>=현청>완벽>안릉용>그 외 순이다.[11] 이유는 의수의 모친이 원래 순원+의수 자매의 아버지와 약혼 예정자였는데, 나중에 두 자매의 아버지가 상경한 후 그녀를 잊고 도씨(순원의 모친)와 결혼했다가 나중에서야 동정심 삼아 데려와 첩으로 삼아준 것이기 때문.[12] 하지만 의수가 친모와 함께 늘상 무시 당하기 일수였단 말을 보아 상당히 갈궜는 듯하다. 실제 대부인이 의수 모녀를 구박했고 의수가 황실에 시집 가게 되자 서출이라고 깐다.[13] 수선화의 수선(水仙)은 신선이란 뜻이다.[14] 차라리 그는 첩을 들일 일이 없는 적당한 신분의 남자를 잡아 함께 살거나, 다른 여자와 남편 가지고 다툴 일 없이 독신인 채로 사는게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15] 원작을 만화화한 견환전 서화열에선 의수가 언니 유칙이 늘 이복동생에 서녀인 자신을 친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자길 죽인 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것과 더불어 예전에도 친동생처럼 이복동생(의수)를 잘 대해주었다는 걸 보면 유칙 본인이 의수에게 민폐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녀 나름대로 동생을 아꼈던 듯. 다만 어머니가 자기를 황후로 만들려는 계략에 따른 거나 그대로 황후가 되어 동생을 내쳐지게 한 걸 보면 언니로써 잘해준 것과는 별개로 이쯤 했으니 충분했겠지 하고 살았던 걸지도 모른다.[16] 설정상 순원황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견환의 어머니다. 그가 순원황후를 닮았기 때문에, 그의 딸들인 견환과 옥요도 순원황후를 닮은 것.[17] 이미 다른 여러 가지를 잘 하거니와 예쁨 받는 적장녀라는 입장이 합쳐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수는 애초에 아버지에게서도 소외당하던 아이였고.[18] 이 목걸이는 롱월공주가 귀여움을 받게 해주려는 견환의 계략에 의해 롱월공주 돌잔치 때 롱월공주의 것이 된다.[19] 이 옥패는 황제가 늘 지니고 다니나 이후 옥요에게 작업을 걸려고 주는데 차여서 다시 돌려받았다.[20] 이는 서화열의 순원황후가 황제 필터를 낀 상태에서 묘사되는 원작 + 드라마의 '그냥 착하고 이쁘고 지고지순한 현모양처' 이미지만을 정확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즉 원작고증. 독자들의 의견이 들어가서 이런 면모가 애매하게 묘사되면 원작자 외 다른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 원작왜곡의 여지가 될 가능성도 있기에 뺀건지, 아님 그냥 서화열 작가가 원작 순원 쪽을 살리기로 한게 좋아서 그런건지는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