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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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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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rowbgcolor=#00386a><rowcolor=#ffd400><width=33.3%> 초대 ||<width=33.3%> 제2대 ||<width=33.3%> 제3대 ||
|| 태조 고황제 || 태종 문황제 || 세조 장황제 ||
||<rowbgcolor=#00386a><rowcolor=#ffd400> 제4대 || 제5대 || 제6대 ||
|| 성조 인황제 || 세종 헌황제 || 고종 순황제 ||
||<rowbgcolor=#00386a><rowcolor=#ffd400> 제7대 || 제8대 || 제9대 ||
|| 인종 예황제 || 선종 성황제 || 문종 현황제 ||
||<rowbgcolor=#00386a><rowcolor=#ffd400> 제10대 || 제11대 || 말대 ||
|| 목종 의황제 || 덕종 경황제 || 공종 민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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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제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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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제3대 황제
세조 장황제 | 世祖 章皇帝


파일:清_佚名_《清世祖顺治皇帝朝服像》.jpg

출생
1638년 3월 15일
성경 선양고궁
(現 랴오닝성 선양시 위홍구)
사망
1661년 2월 5일 (향년 22세)
북경 자금성
능묘
효릉(孝陵)
재위기간
제3대 황제
1643년 10월 8일 ~ 1661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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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중국식 :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주어 : 아이신기오로(ᠠᡳ᠌ᠰᡳᠨ ᡤᡳᡠ᠋ᡵᠣ)

중국식 : 푸린(福臨)
만주어 : 풀린(ᡶᡠᠯᡳᠨ)
한국식 독음 : 복림
부모
부황 태종 문황제
모후 효장문황후
형제자매
11남 14녀 중 9남
배우자
정후 - 폐후 박이제길특씨
계후 - 효혜장황후 박이제길특씨
후궁
35명 [ 펼치기 · 접기 ]
효강장황후 동가씨, 효헌장황후 동악씨, 정비 동악씨
숙혜비 박이제길특씨, 공정비 박이제길특씨
단순비 박이제길특씨, 영각비 동악씨, 각비 석씨
도비 박이제길특씨, 서비 진씨, 서비 왕씨, 서비 양씨
서비 오소씨, 서비 납라씨, 서복진 파씨, 서복진 당씨
서복진 뉴씨, 서복진 목극도씨, 경급격격, 날급니격격
색옥격격, 매급니격격, 액음주격격, 액륜주격격
매격격, 난격격, 명주격격, 호야격격, 포삼주격격
아모파편오격격, 아기편오격격, 단저격격, 추격격
서격격, 주내격격

자녀
8남 6녀
신장
170cm[1]
한호
만주어 : 이지스훤 다산 한
(ᡳᠵᡳᠰᡥᡡᠨ ᡩᠠᠰᠠᠨ ᡥᠠᠨ)
칸호
몽골어 : Эеэр засагч хаан
(ᠡᠶᠡᠷᠡᠷᠢ ᠵᠠᠰᠠᠭᠴᠢ ᠬᠠᠭᠠᠨ)
묘호
세조(世祖)
시호
중국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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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천융운정통건극영예흠문
(體天隆運定統建極英睿欽文)
현무대덕홍공지인순효장황제
(顯武大德弘功至仁純孝章皇帝)


만주어 : 얼덤부허 황디(ᡝᠯᡩᡝᠮᠪᡠᡥᡝ ᡥᡡᠸᠠᠩᡩᡳ)
연호
1644년 ~ 1661년
중국식 : 순치(順治)
만주어 : 이지스훤 다산(ᡳᠵᡳᠰᡥᡡᠨ ᡩᠠᠰᠠᠨ)
섭정
섭정왕 도르곤 (성종) (1643년 ~ 1650년)


1. 개요
2. 생애
3. 가족
3.1. 조상
3.2. 비 및 후궁, 자녀
4. 창작물에서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청나라의 제3대 황제. 청태종의 9번째 아들. 강희제의 아버지.

5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치세 초기 7년 동안은 숙부인 예친왕 도르곤(多爾袞)이 섭정왕이 되어 청나라를 다스렸다. 즉, 이시기 순치제의 치적 대부분은 사실상 황부섭정왕 도르곤에 의해 이루어졌고, 오늘날 교과서에 쓰여진 순치제의 업적도 모두 도르곤의 업적이었다. 이때 이룬 청의 대표적인 업적이 순나라 멸망과 베이징 정복. 즉, 도르곤은 순치제가 후세에 존재감을 남길 수 있게 해준 존재였으나, 어린 순치제는 황권을 위협하는 도르곤을 매우 증오하여 1650년 도르곤이 사망한 이후 그를 부관참시했다.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순치제 입장에서 도르곤은 황제를 깔고 뭉갠 권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1]


2. 생애[편집]


1638년, 청나라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의 9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모친은 효장문황후. 푸린(복림)이라는 이름은 모친인 효장문황후가 당시 거주하던 ‘영복궁’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부황인 홍타이지는 당시 총애하던 신비 해란주(효장문황후의 언니이자 푸린의 이모이기도 하다) 소생의 아들이 요절해서 상심한 나머지 푸린의 이름을 대충 지었다.

1643년 부황인 숭덕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팔기 회의에서 어부지리로 황제로 선출되었다. 홍타이지 사망 당시 청 황실 최고의 실세는 홍타이지의 이복동생인 예친왕 도르곤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유력했던 이는 홍타이지의 장남인 숙친왕 호오거였다.[2] 세력은 동생 도도와 함께 거느린 양백기, 정백기에다 요토가 생전 거느렸던 양홍기까지 아우를 수 있는 도르곤의 세력이 더 강했지만, 호오거와 지르가랑의 정람기와 양람기, 그리고 당장 발언권은 없지만 호오거에게 협조적이었던 황기들까지 완전히 제압할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3] 결국 타협책으로 어린 푸린을 황제에 앉히고 도르곤이 섭정왕에 올라 푸린이 성년이 될 때까지 실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절충되었다. 이 때 의정왕대신회의에서 도르곤이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홍타이지의 직속인 정황기와 양황기 출신들의 반발로(팔기 회의는 기주들이 대표권을 가지고 참가하는데, 두 황기의 기주는 홍타이지였으나 사망하였기에 직접적인 발언권이 없었다) 인해 내전상황까지 갈 수 있었다. 실제로 넓게 보면 도르곤의 세력에 포괄할 수 있는 다이샨의 아들인 쇼토와 손자인 아다리가 선을 넘어서 반역죄로 목이 달아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사태가 더 길어지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을 깨닫고 다이샨이 두 황기의 의견을 받아서 '홍타이지의 아들' 중에서 후계자를 선출하고, 동생인 도르곤과 친모의 가문이 한미한 호오거는 모두 배제하니, 정식으로 인정받은 5비빈의 소생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들인 푸린이 황제로 결정되었다.

여섯 살의 푸린이 황제에 오르고, 도르곤과 누르하치의 동생 아이신기오로 슈르하치(愛新覺羅 舒爾哈齊)의 6남인 정친왕 지르가랑(濟爾哈郞)이 좌우 섭정왕이 되었다. 그러나 지르가랑은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았고, 실권은 '황부섭정왕(皇父攝政王)'에 오른 도르곤이 거의 혼자서 다 행사했다.

순치제가 황제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명나라에서 이자성의 농민 반군이 북경을 점령했고, 숭정제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오삼계가 산해관을 열어주며 귀순해오자 도르곤은 누르하치 이래 존버를 거듭한 팔기군의 원기옥(!!!)을 터뜨려 산해관을 돌파하고 명나라를 총공격하여 이자성군을 내쫓고 북경을 접수한다. 이어 도르곤은 청나라가 천명을 상실한 주씨의 명나라를 계승하는 황제국임을 천하에 선포하고 전란으로 파괴된 북경을 복원하며 자금성으로 순치제를 모셔 새로이 즉위식을 열었다. 다음해 이자성은 쫓기던 중 살해당한다. 이로서 도르곤은 아버지 누르하치와 이복형 홍타이지도 이루지 못한 최대 숙원 사업인 중원 통일을 완수하였다.[4]

도르곤은 1650년에 죽기 전까지 사실상의 황제로서 청을 통치했다. 옥새도 도르곤이 가지고 있었을 정도. 순치제는 도르곤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청나라를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도르곤이 사망한 후 친정을 하기 시작했을 때도 12세밖에 안된 어린 나이였다.

관습에 따라 청나라 황제는 몽골 출신의 황후를 맞았는데[5] 순치제는 몽골 출신의 황후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6] 심지어 첫 황후는 질투가 심한 걸 트집을 잡아 폐출시키기까지 하였다. 대신 후궁들을 좋아했다. 황태자가 된 3황자 히오완예이(훗날의 강희제)의 생모 효강장황후 퉁기야씨도 순치제의 후궁이었고, 그중에서도 순치제가 가장 총애한 후궁은 현비 동오씨다.[7] 현비가 1660년(순치 17년)에 사망하자 이런 타입의 군주들이 종종 그렇듯 정치에 뜻을 잃었다. 이듬해인 1661년, 천연두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자 제위를 황태자 히오완예이에게 물려주고 붕어하였다. 23세의 젊은 나이였다.

청나라판 햄릿(?)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어머니인 효장문황후는 당시 청나라에서 종종 이루어지던 제도인 형사취수를 했다는 큰 떡밥이 있다.[8][9] 그러나 도르곤과 효장문황후가 혼인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참조. 순치제는 마음 고생이 여간 심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삼촌이 죽자 존호를 추탈해버리고(실제로 도르곤이 기주로 있던 정백기 장수, 측근들이 친형인 아지거를 섭정왕으로 만들려 했다가 순치제와 섭정왕 자리를 잃은 지르가랑에게 걸려서 아지거는 자결했고 장수들은 숙청당했다.) 유골까지 훼손해버렸다. 덤으로 도르곤이 억지로 황후로 추존한 도르곤의 친모 아바하이를 도로 후궁으로 만들었다. 몽골 출신 황후를 싫어한 이유도 이런 어머니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국정은 선정이었다. 친정 직후 황족 출신 왕의 6부 관리를 금지시키는 등으로 황권을 강화하였다.[10] 1659년 남명을 윈난성으로부터 미얀마로 내몰아 명나라의 잔존 세력을 대부분 평정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변발과 만주 복식을 강요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각지에서 대학살을 일으켜 많은 한족들을 죽였다.영상 단, 난을 어느 정도 평정한 후 한족에 대한 융화 정책도 병용해서 중국 지배의 기초를 닦았다. 다만 한족 출신 공신인 오삼계 등의 3번 세력들의 세력은 무척 커져 강희제 때 삼번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순치제는 독일 출신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Adam Schall)을 매우 총애했다. 아담 샬은 명나라 때부터 베이징에 파견된 가톨릭 선교사로, 소현세자가 베이징에 있을 때 만난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 역법에 능해[11] 도르곤 때부터 인정받았지만 순치제가 친정을 선포하면서 더욱 대박을 치게 된다. 입관 직후 통의대부, 태복시경, 태상시경에 임명되고 정 3품이 된다. 순치제는 심지어 삼궤구고의 예마저 종교를 감안하여 면제해준다. 몇 년 후에는 광록대부의 봉호를 받고, 조상 3대가 은전을 받는다. 1656~1657년까지는 순치제가 두 해 동안 24번이나 집에 직접 왕림하였다. 샬은 순치제에게 충고도 여러 가지 하였는데, 궁궐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하고, 황제 스스로 자신을 질책하고 회개하라고 충고하여 아담샬이 '섭정왕'이란 조롱투의 기록까지 있다. 덕분에 예수회가 청나라를 조종하였다는 음모론이 나도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야사에서는 현비가 죽었을때 신하들이 황후 추서에 반대하자 순치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제위를 물린 후 오대산으로 출가를 했고, 1669년(강희 8년), 1707년(강희 46년), 1712년(강희 51년), 심지어는 손자인 옹정제 초기까지 살고 입적하였다고는 한다. 이는 김용무협소설 녹정기라거나 얼웨허의 역사 소설 제왕삼부곡 등에도 차용된 이야기인데, 물론 야사는 야사일 뿐, 믿지는 말자.

순치 18년(1661년)에 제위를 황태자인 3황자 히오완예이에게 물려주고 23세 때 천연두로 붕어하였다. 사후 청나라 황실의 능구 두 곳 중 하나인 청동릉의 효릉(孝陵)에 안장되었다. 야사에는 효릉 안에 순치제가 생전에 신던 신발 한 켤레와 부채 한 자루만 부장품으로 들어갔다고 알려졌고, 이 때문인지 1928년 쑨뎬잉이 청동릉에 난입해 강희제의 경릉(景陵), 건륭제의 유릉(裕陵), 함풍제의 정릉(定陵), 동치제의 혜릉(惠陵) 등 네 황제의 능을 도굴해 보물이 약탈당하고 유해가 훼손될 때도 무사할 수 있었다.

순치제의 치세 기간(1643년~1661년) 조선의 왕은 인조(仁祖, 1623년~1649년), 효종(孝宗, 1649년~1659년), 현종(顯宗, 1659년~1674년)이 재위했다. 일본은 에도 막부 시절이고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徳川家光 1623년~1651년),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츠나 (徳川家綱 1651년~1680년) 재위기랑 일치하다.


3. 가족[편집]



3.1. 조상[편집]




3.2. 비 및 후궁, 자녀[편집]


순치제는 정말 많은 부인을 두었다. 역사에 기록된 수만 37명이다. 4명의 황후, 7명의 측비, 5명의 서비, 4명의 서복진, 17명의 격격을 두었다. 격격이란 황족이나 귀족의 첩실의 존칭이다.

순치제의 부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정실
    • 황후(皇后)
      • 봉호: 폐황후(廢皇后), 이름: 보르지기트 에르데니붐바(박이제길특 액이덕니포목파, 博爾濟吉特 額爾德尼布木巴)
      • 시호: 효혜장황후(孝惠章皇后), 봉호: 황후(皇后), 이름: 보르지기트 알탄세세그(박이제길특 아랍탄기기격, 博爾濟吉特 阿拉坦琪琪格)
      • 시호: 효강장황후(孝康章皇后), 봉호: 강비(康妃), 성씨: 퉁기야 씨(동가 씨, 佟佳氏) - 사후 강희제에 의해 황후로 추존되었다. 슬하 자녀: 3황자
      • 시호: 효헌황후(孝獻皇后), 봉호: 황귀비(皇貴妃), 성씨: 동고 씨(동악 씨, 董鄂氏) - 강희제 때 황후로 추존되었다. 슬하 자녀: 4황자
  • 후궁
    • 측비(側妃)
    • 서비(庶妃)
      • 시호: 서비 진씨(庶妃 陳氏), 봉호: 서비(庶妃), 성씨: 진 씨(陳氏). 슬하 자녀: 장황녀, 5황자
      • 시호: 서비 왕씨(庶妃 王氏), 봉호: 서비(庶妃), 성씨: 왕 씨(王氏). 슬하 자녀: 5황녀
      • 시호: 서비 양씨(庶妃 楊氏), 봉호: 서비(庶妃), 성씨: 양 씨(楊氏). 슬하 자녀: 2황녀
      • 시호: 서비 오소씨(庶妃 烏蘇氏), 봉호: 서비(庶妃), 성씨: 오소 씨(烏蘇氏). 슬하 자녀: 4황녀
      • 시호: 서비 나라씨(서비 납라씨, 庶妃 拉喇氏), 봉호: 서비(庶妃), 성씨: 나라 씨(납라 씨, 拉喇氏). 슬하 자녀: 6황녀
    • 서복진(庶福晉)
      • 시호: 서복진 바씨(서복진 파씨, 庶福晉 巴氏), 봉호: 서복진(庶福晉), 성씨: 바 씨(파 씨, 巴氏). 슬하 자녀: 장황자, 3황녀
      • 시호: 서복진 당씨(唐氏), 봉호: 서복진(庶福晉), 성씨: 당 씨(唐氏). 슬하 자녀: 6황자
      • 시호: 서복진 니우씨(서복진 뉴씨, 庶福晉 鈕氏), 봉호: 서복진(庶福晉), 성씨: 니우 씨(뉴 씨, 鈕氏). 슬하 자녀: 7황자
      • 시호: 서복진 묵투씨(서복진 목극도씨, 庶福晉 穆克圖氏), 봉호: 서복진(庶福晉), 성씨: 묵투 씨(목극도 씨, 穆克圖氏). 슬하 자녀: 8황자
    • 격격(格格) - 사람이 많고, 정보가 거의 없어 기록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나열하였다.
경급(京及), 날급니(捏及呢), 색옥(塞玉), 매급니(邁及呢), 액음주(厄音珠), 액륜주(額倫珠), 매(梅), 난(蘭), 명주(明珠), 호야(芦耶), 포삼주(布三朱), 아모파편오(阿母巴編五), 아기편오(阿畿編五), 단저(丹姐), 추(秋), 서(瑞), 주내(朱乃)

순치제는 부인들 사이에서 8남 6녀의 친자녀를 낳았고, 양녀 3명을 들였다. 순치제의 친딸들 중에 황2녀인 화석공각공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10살이 채 되지 않아 요절하였다. 순치제의 자녀 목록은 다음과 같다.

  • 황자
    • 장황자 - 시호: 우뉴공(牛鈕公), 이름: 아이신기오로 뉴뉴(애신각라 우뉴, 愛新覺羅 牛鈕) - 요절하였다.
    • 2황자 - 시호: 화석유헌친왕(和碩裕憲親王), 이름: 아이신기오로 푸치오완(애신각라 복전, 愛新覺羅 福全)
    • 3황자 - 시호: 성조 강희제(聖祖 康熙帝), 이름: 아이신기오로 히오완예이(애신각라 현엽, 愛新覺羅 玄燁)
    • 4황자 - 시호: 화석영친왕(和碩榮親王), 이름 미상 - 요절하였다.
    • 5황자 - 시호: 화석공친왕(和碩恭親王), 이름: 아이신기오로 창닝(애신각라 상녕, 愛新覺羅 常寧)
    • 6황자 - 시호 미상, 이름: 아이신기오로 키서오(애신각라 기수, 愛新覺羅 奇授) - 요절하였다.
    • 7황자 - 시호: 화석순정친왕(和碩純親靖王), 이름: 아이신기오로 룽히(애신각라 융희, 愛新覺羅 隆禧)
    • 8황자 - 시호 미상, 이름: 아이신기오로 융간(애신각라 영간, 愛新覺羅 永幹) - 요절하였다.
  • 황녀
    • 장황녀 - 시호, 이름 미상 - 요절하였다.
    • 2황녀 - 시호: 화석공각공주(和碩恭慤公主), 이름 미상
    • 3황녀 - 시호, 이름 미상 - 요절하였다.
    • 4황녀 - 시호, 이름 미상 - 요절하였다.
    • 5황녀 - 시호, 이름 미상 - 요절하였다.
    • 6황녀 - 시호, 이름 미상 - 요절하였다.
  • 양녀
    • 1녀 - 시호: 화석화순공주(和碩和順公主)
    • 2녀 - 시호: 화석유가공주(和硕柔嘉公主) (부의 5녀)
      • 부친 - 시호: 추탈안화친왕(追奪安和親王), 이름: 아이신기오로 욜로(애신각라 악락, 愛新覺羅 岳樂) (부의 4남)
        • 조부 - 시호: 화석요여민친왕(和碩饒餘敏親王), 이름: 아이신기오로 아바타이(애신각라 아파태, 愛新覺羅 阿巴泰) (부의 7남)
      • 모친: 계복진 나라씨(계복진 납라씨, 繼福晉 納喇氏)
    • 3녀 - 시호: 고륜단민공주(固倫端敏公主), 이름: 아이신기오로 단민(애신각라 단민, 愛新覺羅 端敏)
      • 부친 - 시호: 간순친왕(簡純親王), 이름: 아이신기오로 지두(애신각라 제도, 愛新覺羅 濟度) (부의 차남)
        • 조부 - 시호: 정헌친왕(鄭獻親王), 이름: 아이신기오로 지르갈랑(애신각라 제이합랑, 愛新覺羅 濟爾哈朗) (누르하치의 조카, 슈르하치의 6남)
      • 모친: 적복진 보르지기트씨(적복진 박이제길특씨, 嫡福晉 博爾濟吉特氏)

4. 창작물에서[편집]


대체로 창작물이 묘사하는 시기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청의 입관 이전과 직후를 주로 다루는 '대청풍운' 등의 여러 작품에서는 보통 처음에는 아역으로 시작하며 존재감이 없다가 성장할수록 어머니를 좋아하는 삼촌을 질색하는 사춘기 아이로 그려지고, 청년 시기를 다루는 작품에서는 동고비와의 로맨스와 사별 후의 슬픔과 상실감, 동고비에 정신 팔린 아들을 못마땅해하는 어머니와의 갈등이 주로 묘사된다. 말하자면 공부(집안일과 나랏일)는 뒷전이고 첫사랑에 환장한 고딩[12]과 그런 아들한테 잔소리하는 엄마랄까. 정사와 별개로 야사를 따라 죽음을 가장하고 출가한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나, 어찌되었든 제위에 있는 동안엔 명청교체기의 다른 주요 인물들과 달리 수염을 풍성하게 기를 정도의 성숙한 어른으로 묘사되는 일은 거의 없다.[13]

  • 녹정기 - 동비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죽음을 가장하고 실제로는 출가한 상태였는데 강희제의 정적들이 이 사실을 알고 순치제를 잡아 인질로 쓰려고 했고 이로 인해 순치제는 쫒기는 몸이 되나 위소보의 재치로 간신히 살아난다. 이후 사실을 안 강희제가 순치제를 찾아 오지만 자신은 죽은 몸이라며 만나주지 않으려 했으나 이번에도 위소보가 대성통곡을 하며 분위기를 잡고 결국은 마음이 약해진 순치제가 강희제를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순치제는 강희제의 정치를 칭찬하고 더이상 찾아오지 말 것과 함부로 세금을 올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 강희왕조(2001) - 1화부터 등장한다. 중병에 걸린 동 귀비를 매우 총애하여 그와 함께 있느라 정사를 돌보지도 않고, 동 귀비가 황손을 낳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자 악 귀비의 아들인 현엽을 악 귀비에게 통보하지도 않고 동 귀비의 양자로 만들려고 하며, 결국 동 귀비가 죽자 크게 상심하고는 측근인 행삼이라는 승려의 조언에 따라 옥좌를 버리고 승려가 되려고 한다. 이에 경악을 한 신하들과 어머니 황태후 보르지기트씨가 찾아와서 황제를 말리며 설득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러자 황태후가 질책하자, 순치제는 황제가 될 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친어머니로부터 떨어져 그 젖을 먹지도 못하고 관리와 외척, 황손들의 권력 다툼에 이용되었으며, 친부의 원수인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을 아버지로 모셔야 했다면서 더는 황위에 있고 싶지 않다며 인생과 옥좌에 대한 환멸을 토로한다. 그리고 오직 동 귀비만이 자신을 혈육으로 대하여 그와 함께 있을 때만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도 말한다. 황태후는 모든게 행삼때문이라며 행삼의 스승을 시켜 그를 화형에 처하여 황제의 출가를 막으려 했지만, 끝내 순치제는 머리를 깎고 옥좌를 현엽에게 물려주며, 죽기 직전의 행삼으로부터 행치라는 법호를 받고 승려가 된다. 황태후는 속이 상했지만 자식의 뜻을 어찌못했고 결국 승낙하고 만다. 대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황실이 웃음거리가 될 것을 염려하여, 신하들로 하여금 백성들이 순치제가 죽었다고 알도록 한다.

  • 신쥬신 건국사 - 여기서도 실권없는 소년군주로, 어머니 뿐만 아니라 서로 연모하던 궁녀까지 도르곤에게 네토라레 당한다.


5. 둘러보기[편집]


청사고(淸史稿)

[ 본기(本紀)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386a><width=33%> 1권 「태조기(太祖紀)」 ||<-2><width=33%> 2·3권 「태종기(太宗紀)」 ||<-2><width=33%> 4·5권 「세조기(世祖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노이합제 ||<-2> 애신각라 황태극 ||<-2> 애신각라 복림 ||
||<-2> 6·7·8권 「성조기(聖祖紀)」 ||<-2> 9권 세종기(世宗紀)」 ||<-2> 10·11·12·13·14·15권 「고종기(高宗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현엽 ||<-2> 애신각라 윤진 ||<-2> 애신각라 홍력 ||
||<-2> 16권 「인종기(仁宗紀)」 ||<-2> 17·18·19권 선종기(宣宗紀)」 ||<-2> 20권 「문종기(文宗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옹염 ||<-2> 애신각라 민녕 ||<-2> 애신각라 혁저 ||
||<-2> 21·22권 「목종기(穆宗紀)」 ||<-2> 23·24권 덕종기(德宗紀)」 ||<-2> 20권 「선통제기(宣統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재순 ||<-2> 애신각라 재첨 ||<-2> 애신각라 부의 ||
||<-6><width=1000> 214권 「후비전(后妃傳)」 ||
||<-6><bgcolor=#fff,#191919>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무조 · 왕폐후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원헌황후 · 양귀비
장황후 · 장경황후 · 정의황후 · 예진황후 · 소덕황후 · 위씨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선의황후 · 곽귀비 · 왕현비 · 효정경황후 · 정강귀비 · 각순귀비 · 효각민황후 · 액이덕특씨 ||
※ 26권 ~ 160권은 志에 해당. 161권 ~ 213권은 表에 해당. 청사고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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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 본기(本紀)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386a><width=33%> 1권 「태조기(太祖紀)」 ||<-2><width=33%> 2·3권 「태종기(太宗紀)」 ||<-2><width=33%> 4·5권 「세조기(世祖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노이합제 ||<-2> 애신각라 황태극 ||<-2> 애신각라 복림 ||
||<-2> 6·7·8권 「성조기(聖祖紀)」 ||<-2> 9권 세종기(世宗紀)」 ||<-2> 10·11·12·13·14·15권 「고종기(高宗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현엽 ||<-2> 애신각라 윤진 ||<-2> 애신각라 홍력 ||
||<-2> 16권 「인종기(仁宗紀)」 ||<-2> 17·18·19권 선종기(宣宗紀)」 ||<-2> 20권 「문종기(文宗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옹염 ||<-2> 애신각라 민녕 ||<-2> 애신각라 혁저 ||
||<-2> 21·22권 「목종기(穆宗紀)」 ||<-2> 23·24권 덕종기(德宗紀)」 ||<-2> 20권 「선통제기(宣統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애신각라 재순 ||<-2> 애신각라 재첨 ||<-2> 애신각라 부의 ||
||<-6><width=1000> 214권 「후비전(后妃傳)」 ||
||<-6><bgcolor=#fff,#191919>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무조 · 왕폐후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원헌황후 · 양귀비
장황후 · 장경황후 · 정의황후 · 예진황후 · 소덕황후 · 위씨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선의황후 · 곽귀비 · 왕현비 · 효정경황후 · 정강귀비 · 각순귀비 · 효각민황후 · 액이덕특씨 ||
※ 26권 ~ 160권은 志에 해당. 161권 ~ 213권은 表에 해당. 청사고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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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215·216·217·218·219·220·221권 「제왕전(諸王傳)」
애신각라 예돈 · 애신각라 액이곤 · 애신각라 재감 · 애신각라 탑찰편고 · 애신각라 막이합제 · 애신각라 서이합제 · 애신각라 아이합제 · 애신각라 파아랍 · 애신각라 저영 · 애신각라 대선 · 애신각라 아배 · 애신각라 탕고대 · 애신각라 망이고태 · 애신각라 탑배 · 애신각라 아파태 · 애신각라 파포태 · 애신각라 덕격류 · 애신각라 파포해 · 애신각라 아제격 · 애신각라 뇌모포 · 애신각라 다이곤 · 애신각라 다탁 · 애신각라 비양과 · 애신각라 호격 · 애신각라 엽포서 · 애신각라 석새 · 애신각라 고새 · 애신각라 상서 · 애신각라 도새 · 애신각라 박목박과이 · 애신각라 복전 · 영친왕 · 애신각라 상녕 · 애신각라 융희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잉 · 애신각라 윤지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우 · 애신각라 윤사 · 애신각라 윤당 · 애신각라 윤아 · 애신각라 윤도 · 애신각라 윤상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파 · 애신각라 윤례 · 애신각라 윤의 · 애신각라 윤희 · 애신각라 윤호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비 · 애신각라 홍주 · 애신각라 홍휘 · 애신각라 영황 · 애신각라 영련 · 애신각라 영장 · 애신각라 영기(永琪) · 애신각라 영종 · 애신각라 영선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기(永璂)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린 · 애신각라 면개 · 애신각라 면흔 · 애신각라 면유 · 애신각라 혁위 · 애신각라 혁강 · 애신각라 혁계 · 애신각라 혁흔 · 애신각라 혁환 · 애신각라 혁합 · 애신각라 혁혜 · 민군왕
222권 「아합출등전(阿哈出等傳)」
아합출 ,석가노 맹가불화 이만주 완자독 맹가첩목아 범찰 동산 탈라 탈원보 불화투, · 왕고 ,왕올당,
223권 「만등전(萬等傳)」
,호이간 맹가포록 대산 오이고대, · 청길노 · 양길노 ,납림포록 금태석 포한 포양고 포이항고, 포점태 · 배음달리
224권 「장황언등전(張煌言等傳)」
225권 「액역도등전(額亦都等傳)」
장황언 ,나륜 장명진 왕익, · 정성공 ,정금 정극장 정극상 정극거, · 이정국
액역도 · 비영동 ,삭해 왜흑, · 하화례 ,다적례 화석례 도류, · 안비양고 · 호이한
83권 「제제공주전(諸帝公主傳)」
동안공주 · 장사공주 · 양양공주 · 평양소공주 · 고밀공주 · 장광공주 · 장사공주 · 방릉공주 · 구강공주 · 노릉공주 · 남창공주 · 안평공주 · 회남공주 · 진정공주 · 형양공주 · 단양공주 · 임해공주 · 관도공주 · 안정공주 · 상락공주 · 양성공주 · 여남공주 · 남평공주 · 수안공주 · 장락공주 · 예장공주 · 북경공주 · 보안공주 · 동양공주 · 임천공주 · 청하공주 · 난릉공주 · 진안공주 · 안강공주 · 신흥공주 · 성양공주 · 합포공주 · 금산공주 · 진양공주 · 상산공주 · 신성공주 · 의양공주 · 고안공주 · 태평공주 · 신도공주 · 의성공주 · 정안공주 · 장녕공주 · 영태공주 · 안락공주 · 성안공주 · 수창공주 · 안흥소회공주 · 형산공주 · 회양공주 · 대국공주 · 양국공주 · 설국공주 · 식국공주 · 금선공주 · 옥진공주 · 곽국공주 · 영흥공주 · 천장공주 · 영국공주 · 흥당공주 · 서평공주 · 낭령공주 · 광화공주 · 창락공주 · 수춘공주 · 장녕공주 · 연경공주 · 정락공주 · 낙온공주 · 영청공주 · 위국문의공주 · 안화공주 · 보강공주 · 창원공주 · 창녕공주 · 금화공주 · 인수공주 · 영수공주 · 당흥공주 · 영평공주
238권 「장혁덕등전(蔣赫德等傳)」
장혁덕 · 액색혁 · 차극 · 파합나 · 송권 · 부이점 · 여궁 · 성극공 · 김지준 · 왕영길 · 당숭아
247권 「팽이술등전(彭而述等傳)」
팽이술 · 육진분 · 요연저 · 필진희 · 방국동 · 우붕거 · 왕천감 · 조정표
250권 「이위등전(李霨等傳)」
이위 · 손정전 · 두입덕 · 풍부 · 왕희 · 오정치 · 황기 · 송덕선 · 이상아 · 아란태 · 서원문
251권 「도해등전(圖海等傳)」
252권 「감문혼등전(甘文焜等傳)」
마가도해 · 이지방
감문혼 · 범승모 · 마웅진 · 부홍열
253권 「막락등전(莫洛等傳)」
막락 · 진복 · 왕지정 · 비아달 · 이흥원 · 진계태 · 진단적 · 마비 · 엽앙류
255권 「장용등전(張勇等傳)」
장용 · 조양동 · 왕진보 · 손사극
256권 「채육영등전(蔡毓榮等傳)」
채육영 · 합점 · 항애 · 화선 · 동위국 · 동국정 · 주유덕 · 장덕지 · 윤벽 · 왕계문
257권 「조국조등전(趙國祚等傳)」
조국조 · 허정 · 주구 · 서치도 · 호세영 · 당희순 · 이린 · 조응규 · 조뢰 · 이방술 · 진세개 · 허점수
261권 「양첩등전(楊捷等傳)」
양첩 · 석조성 · 만정색 · 오영 · 감리 · 황오 · 방태 · 목혁림 · 단응거
262권 「위예개전(魏裔介等傳)」
263권 「왕홍조전(王弘祚等傳)」
위예개 · 웅사리 · 이광지
왕홍조 · 요문연 · 위상추 · 주지필 · 조신교
264권 「학유눌등전(郝維訥等傳)」
265권 「탕빈등전(湯斌等傳)」
학유눌 · 임극부 · 유홍유 · 유건 · 주배 · 장정추
탕빈 · 손지욱 · 육롱기 · 장백행
266권 「엽방애전(葉方藹等傳)」
267권 「장옥서등전(張玉書等傳)」
엽방애 · 심전 · 여두눌 · 서원공 · 허삼례 · 왕사정 · 한담 · 탕우증
장옥서 · 이천복 · 오전 · 장영 · 진정경 · 온달 · 소영조 · 숭축 · 왕서령
268권 「미사한등전(米思翰等傳)」
269권 「장옥서등전(張玉書等傳)」
미사한 · 고팔대 · 마이한 · 전육선 · 두진 · 살목하
삭액도 · 명주 ,여국주 불륜,
270권 「학욕등전(郝浴等傳)」
271권 「서건학등전(徐乾學等傳)」
272권 「탕약망등전(湯若望等傳)」
학욕 · 양소온 · 곽수
서건학 ,옹숙원, · 왕홍서 · 고사기
탕약망 · 양광선 · 남회인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두정륜 · 최지온 · 고지주 · 곽정일 · 조홍지 · 최돈례 · 양홍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유덕위 · 손처약 · 형문위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루전(劉裴婁傳)」
부혁 · 여재 · 진자앙
유인궤 · 배행검 · 누사덕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최의현 · 양재사 · 두회정 · 종초객 · 축흠명 · 산운 · 왕여(王璵)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사대내 · 풍앙 · 아사나사이 · 아사나충 · 집실사력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근행 · 천남생 · 이다조 · 논궁인 · 손유정 · 울지승 · 상가고 · 배분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곽효각 · 장검 · 왕방익 · 소열 · 설인귀 · 정무정 · 왕효걸 · 당예 · 장인원 · 왕준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왕의방 · 한사언 · 소안항 · 설등 · 왕구례 · 유택 · 풍원상 · 장흠서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왕침 · 위사겸 · 육원방 · 왕급선 · 이일지 · 두경전 · 이회원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 길욱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장정규 · 위주 · 한사복 · 송무광 · 신체부 · 이발 · 배린 · 이중민 · 이감
무평일 · 이예(李乂) · 가증 · 백거이
304권 「장조등전(張照等傳)」
장조 · 감여래 · 진덕화 · 왕안국 · 유오룡 · 양여곡 · 장태개 · 양석불 · 팽계풍 · 손희렴 · 몽린
305권 「전진군등전(錢陳群等傳)」
전진군 · 심덕잠 · 김덕영 · 전재 · 제소남 · 진조윤 · 동방달 · 전유성 · 추일계 · 사용 · 왕창
306권 「조사일등전(曹一士等傳)」
307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조사일 · 이신수 · 호정 · 중영단 · 시조생 · 저인지
윤계선 · 유우의 · 진대수 · 장윤수 · 진굉모
308권 「나소도등전(那蘇圖等傳)」
나소도 · 왕초증 · 서사림 · 윤회일 · 왕서 · 방현 · 풍광유 · 양석불 · 반사구 · 호보전 · 왕창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이교 · 소지충 · 노장용 · 위거원 · 조언소 · 화봉요
요숭 · 송경
318권 「아계전(阿桂傳)」
319권 「우민중등전(于敏中等傳)」
장가아계
우민중 · 뉴호록 화신 · 소릉아
322권 「두광내등전(竇光鼐等傳)」
323권 「황정계등전(黃廷桂等傳)」
두광내 · 이수방 · 범의빈 · 조석보 · 사진정 · 전풍 · 윤장도
황정계 · 악미달 · 양정장 · 장유공 · 이시요 · 오미태 · 관보
324권 「방관승등전(方觀承等傳)」
방관승 · 부찰부명안 · 주원리 · 이한 · 이세걸 · 원수동 · 정대진 · 유아 · 육요 · 관간정 · 장조규 · 호계당
325권 「이청시등전(李淸時等傳)」
326권 「개태등전(開泰等傳)」
이청시 · 요입덕 · 이굉 · 하위 · 오사작 · 살재 · 난제석 · 한횡
개태 · 아이태 · 계림 · 원푸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류침전(劉吳韋蔣柳沈傳)」
이적지 · 이현(李峴) · 이면 · 이이간 · 이정(李程) · 이석 · 이회
유자현 · 오긍 · 위술 · 장예 · 유방 · 심기제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왕충사 · 우선객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가서한 · 고선지 · 봉상청
이광필
곽자의
138권 「이이마로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려전(崔苗李裴呂傳)」
이사업 · 마린 · 이포옥 · 노사공
방관 · 장호 · 이필
최원 ·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 여인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최광원 · 등경산 · 최관 · 위소유 · 위백옥 · 이징(李澄) · 한전의 · 노종사 · 고하우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이린(李麟) · 양관 · 최우보 · 유혼 · 위처후 · 노수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고적 · 원결 · 이승 · 위륜 · 설각 · 최한형 · 대숙륜 · 왕굉 · 서신 · 치사미 · 신비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내진 · 전신공 · 후희일 · 최녕 · 엄여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원재 · 왕진 · 여간 · 양염 · 엄정 · 두참
이서균 · 이용(李鄘)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왕사례 · 노경 · 왕난득 · 신운경 · 풍하청 · 이봉(李芃) · 이숙명 · 곡환 · 왕건휴 · 노군 · 이원소 · 노사매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영호창 · 장효충 · 강일지 · 이유(李洧) · 유옹 · 전홍정 · 왕승원 · 우원익 · 사효장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李巽)
이계 · 상곤 · 조경 · 최조 · 제앙 · 노매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관파 · 동진 · 원자 · 조종유 · 두역직
장일 · 강공보 · 무원형 · 이강(李絳) · 송신창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155권 「마혼전(馬渾傳)」
단수실 · 안진경
이성
마수 · 혼감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양조성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이관(李觀) · 한유괴 · 두희전 · 형군아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육지
위고 · 장건봉 · 엄진 · 한홍
159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포방 · 이자량 · 소흔 · 설파 · 번택 · 왕위 · 오주 · 정권 · 육긍 · 노탄 · 유성 · 최융 · 장정보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초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서호 · 여위 · 맹간 · 유백추 · 양풍 · 반맹양 · 최원략 · 위수
장천 · 조연 · 이서 · 정운달 · 서대 · 왕중서 · 풍항 · 유경휴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요남중 · 독고급 · 고소련 · 위하경 · 단평중 · 여원응 · 허맹용 · 설존성 · 이손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공소부 · 목녕 · 최빈 · 유공작 · 양어릉 · 마총
164권 「설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귀숭경 · 해척 · 최연 · 노경량 · 설빈 · 위차공 · 설융 · 호증 · 우공저 · 왕질 · 은유 · 왕언위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정여경 · 정순유 · 고영 · 정인 · 권덕여 · 최군
가탐 · 두우 · 영호초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백지정 · 배연령 · 최손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황보박 · 왕파
168권 「위왕육유류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위집의 · 왕숙문 · 육질 · 이우석 · 유종원 · 정이
두황상 · 배기 · 이번 · 위관지 · 풍숙 · 봉오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고숭문 · 이신(伊愼) · 주충량 · 유창예 · 범조희 · 왕악 · 맹원양 · 왕서요 · 유창 · 조창 · 이경략 · 임적간 · 장만복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양원경 · 조화 · 고우 · 유면 · 석웅 · 고원유 · 봉오 · 정훈 · 경회 · 위박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우적 · 왕지흥 · 두겸 · 두아 · 범정전
배도
이봉길 · 원진 · 우승유 · 이종민 · 양사복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두군 · 유서초 · 장우신 · 양우경 · 장숙 · 웅망 · 백기
한유
340권 「왕걸등전(王傑等傳)」
341권 「경규등전(慶桂等傳)」
왕걸 · 동고 · 주규
경규 · 유관지 · 대구형 · 대균원 · 탁진 · 장후 · 노음부
342권 「보녕등전(保寧等傳)」
343권 「서린등전(書麟等傳)」
보녕 · 송균 · 배탄 · 박계특
서린 · 각라길경 · 각라장린 · 비순 · 장백령 · 백린
344권 「늑보등전(勒保等傳)」
345권 「서린등전(永保等傳)」
늑보 · 액륵등보 ,호시현, · 덕릉태
영보 · 혜령 · 의면 · 영선 · 복녕 · 경안 · 태승은
386권 「문경등전(文慶等傳)」
385권 「숙순등전(肅順等傳)」
386권 「계량등전(桂良等傳)」
문경 · 문상 · 보윤
숙순 · 목음 · 초우영
계량 · 서린 · 관문 · 문욱
389권 「백준등전(柏俊等傳)」
390권 「가정등전(賈楨等傳)」
391권 「왜인등전(倭仁等傳)」
백준 · 인괴 · 서상 · 전경
가정 · 주조배 · 주봉표 · 단무겸
왜인 · 이당계 · 오정동
392권 「새상아등전(賽尙阿等傳)」
393권 「이성원등전(李星沅等傳)」
394권 「서광진등전(徐廣縉等傳)」
새상아 · 눌이경액
이성원 · 주천작 · 노숭광
서광진 · 엽명침 · 황종한
395권 「상대순등전(常大淳等傳)」
상대순 ,쌍복 왕금수 왕수동, · 장문경 · 도은배 ,다산, · 길이항아 · 나준전 · 서유임 · 왕유령
396권 「오문용전(吳文鎔等傳)」
397권 「육건영등전(陸建瀛等傳)」
오문용 · 반탁 · 등이항
육건영 · 양정문 · 청린 · 숭륜 · 하계청
399권 「여현기등전(呂賢基等傳)」
여현기 · 추명학 · 대희 · 장비 · 황종 · 도정걸 · 풍배원 · 손명은 · 심병원 · 장석경
400권 「하계진등전(何桂珍等傳)」
401권 「상영등전(向榮等傳)」
하계진 · 서풍옥 · 온소원 · 김광저 · 이맹군 · 조경현
상영 · 화춘 · 장국량
402권 「오란태등전(烏蘭泰等傳)」
오란태 · 등소량 · 주천수 · 요문선 · 문서 · 팽사거 · 장옥량 · 노점오 · 유계삼 · 서쌍래 · 구등룡 · 왕국재 · 호곤원 · 대문영
403권 「승보등전(勝保等傳)」
404권 「승격림심등전(僧格林沁等傳)」
승보 · 탁명아 · 진금수 · 덕흥아
승격림심 · 서통액 · 항령 · 소극금 · 하건오 · 전순 · 사영춘 · 악선
405권 「증국번전(曾國籓傳)」
406권 「낙병장등전(駱秉章等傳)」
407권 「강충원등전(江忠源等傳)」
증국번
낙병장 · 호림익
강충원 · 나택남
408권 「이속빈등전(李續賓等傳)」
409권 「탑제포등전(塔齊布等傳)」
이속빈 · 정예의 · 증국화 · 이속의 · 왕진 · 유등홍 · 장익풍
탑제포 · 필금과 · 다융아 · 포초,송국영 누운경 담등달, · 당인겸 · 유송산
410권 「팽옥린등전(彭玉麟等傳)」
411권 「이홍장전(李鴻章傳)」
팽옥린 · 양악빈 · 왕명산 · 손창개 · 양명해 · 사준여
이홍장
412권 「좌종당전(左宗棠傳)」
413권 「증국전등전(曾國荃等傳)」
좌종당
증국전 · 심보정 · 유곤일
414권 「이신전등전(李臣典等傳)」
이신전 · 소부사 · 이원길 · 유연첩 · 팽육귤 · 장시일 · 오유수 · 주남계 · 나봉원 · 이상화 · 소경연 · 오종국
415권 「황익승등전(黃翼升等傳)」
황익승 · 정의방 · 왕길 · 오가방 · 이성모 · 이조빈 · 강복산 · 유배원
416권 「정학계등전(程學啟等傳)」
정학계 · 하안태 · 정국괴 · 유명전 · 장수산 · 주성파 · 주성전 · 반정신 · 오장경
418권 「원갑삼등전(袁甲三等傳)」
419권 「낙병장등전(左宗棠傳)」
420권 「한초등전(韓超等傳)」
원갑삼 · 모창희
유장우 · 유악소 · 잠육영
한초 · 전흥서 · 증벽광 · 석보전
421권 「심조림등전(沈兆霖等傳)」
심조림 · 조육영 · 허내보 · 조광 · 주준 · 이함 · 장상하 · 나돈연 · 정돈근 · 방종로
422권 「왕무음등전(王茂廕等傳)」
왕무음 · 송진 · 원희조 · 문서 · 육록 · 서계여 · 왕발규 · 염조윤 · 뇌이함 · 도양 · 오존의 · 은조용
423권 「종직진등전(宗稷辰等傳)」
424권 「오진역등전(吳振棫等傳)」
종직진 · 윤경운 · 왕증 · 목집향아 · 유백천
오진역 · 장량기 · 모홍빈 · 장개숭
425권 「이혜등전(李僡等傳)」
426권 「왕경운등전(王慶雲等傳)」
이혜 · 오당 · 영한 · 유용 · 교송년 · 전정명 · 오원병
왕경운 · 담정양 · 마신이 · 이종희 · 서종간 · 왕개태 · 곽백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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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의 · 단기 · 정수창 · 증기봉 · 저유립 · 서철산 · 계중행 · 유함방 · 진횡거 · 유지개 · 이용청 · 이금용 · 김복증 ,웅기영 사복가, · 동조용
452권 「홍여규등전(洪汝奎等傳)」
홍여규 · 양종렴 · 사박 · 사극관 · 심보정 · 주기앙 ,주기조, · 종원한 · 서경장 · 서진 · 괴광전 · 진휼성 · 반민표 · 엄작림 · 당석진 · 누춘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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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권 「좌보귀등전(左寶貴等傳)」
461권 「송경등전(宋慶等傳)」
좌보귀 · 원영산 · 등세창 · 유보첨 · 대종건
송경 · 여본원 · 서방도 · 마옥곤 · 의극당아 · 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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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권 「당경숭등전(唐景崧等傳)」
정여창 · 위여귀 · 엽지초
당경숭 · 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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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권 「서동등전(徐桐等傳)」
466권 「서용의등전(徐用儀等傳)」
서동 · 강의 · 조서교 · 고아랍계수 · 하영년 · 희탑랍유록 · 육현
서용의 · 허경징 · 원창 · 토묵특입산 · 최가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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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권 「육윤상등전(陸潤庠等傳)」
성선회 · 서징
육윤상 · 세속 · 이극탄 · 양정분 · 서방 · 노내선 · 심증식
473권 「장훈등전(張勳等傳)」
474권 「오삼계등전(吳三桂等傳)」
475권 「홍수전전(洪秀全傳)」
장훈 · 강유위
오삼계 · 경정충 · 상지신 · 손연령
홍수전
476·477·478·479권 「순리전(循吏傳)」
백등명 ,탕가상 임진단 우종요, · 송필달 · 육재신 · 장목 ,장훈(張塤), · 진여함 · 목수 ,진시림, · 요문섭 ,황정린, · 낙종린 ,최종태 조진조, · 조길사 · 장근 · 강고 ,장극억 가박, · 소사요 ,위입정 고음작 근양, · 최화 · 주중횡 · 유계 · 도원순 · 요기형 · 동국롱 · 육사 · 공감 · 진덕영 · 예복전 · 장림 · 염요희 · 남정원 · 엽신 · 시초정 · 진경문 · 주인룡 · 동화 · 이위 · 사중훈 · 이대본 · 우운진 · 장견도 · 소대업 · 주극개 ,정기 강기연 언여사 주제화, · 왕휘조 ,여돈화 주휴도, · 유대신 · 오환채 · 기대규 · 소희증 · 장길안 ,이육창, · 공경한 · 개방필 · 사소등 · 이갱예 · 이병수 · 적상경 · 장돈인 · 정돈윤 · 이문경 · 유체중 ,유후, · 장기 ,석가소, · 유형 ,서동, · 요간지 · 오균 · 왕조겸 · 조근 · 계초만 · 장작남 · 운무기 · 서대영 · 우수매 · 하왈유 · 오응연 · 유병림 ,진숭지 하자령 소세본, · 이병도 ,유주 주근인 추종준 왕무훈, · 괴덕모 · 임달천 · 방대제 · 진호 · 양영서 · 임계 · 왕인복 · 주광제 · 냉정형 · 손보전 · 가소경 · 도관준 · 진문불 · 이소 · 장해 · 왕인감
480·481·482·483권 「유림전(儒林傳)」
손봉기 · 황종희 · 왕부지 · 이옹 · 심국모 · 사문존 · 고유 · 탕지기 · 육세의 · 심윤 · 응휘겸 · 주학령 · 심호정 · 백환채 · 호승락 · 조본영 · 유원록 · 안원 · 이공 · 조포 · 이내장 · 이광파 · 장형양 · 왕무굉 · 이몽기 · 호방 · 노사 · 고동고 · 맹초연 · 왕불 · 요학상 · 당감 · 오가빈 · 유희재 · 주차기 · 성유 · 소의진 · 고염무 · 장이기 · 만사대 · 호위 · 모기령 · 염약거 · 혜주역 · 진후요 · 장림 · 임계운 · 전조망 · 심융 · 강영 · 저인량 · 노문서 · 전대흔 · 왕명성 · 대진 · 단옥재 · 손지조 · 유대공 · 공광삼 · 소진함 · 왕염손 · 왕중 · 무억 · 장술조 · 척학표 · 정걸 · 손성연 · 왕빙진 · 능정감 · 계복 · 강성 · 전대소 · 허강좌 · 공음식 · 육기 · 광계
484·485·486권 「문원전(文苑傳)」
원랑 · 하덕인 · 채윤공 · 사언 · 최신명 · 유연우 · 장창령 · 최행공 · 두심언 · 왕발 · 원만경 · 이적(李適) · 위원단 · 유윤제 · 심전기 · 송지문 · 염조은 · 윤원개 · 유헌 · 이옹(李邕) · 여향 · 왕한 · 손적 · 이백 · 왕유 · 정건 · 소영사 · 소원명 · 이화 · 맹호연 · 유태진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이익 · 노륜 · 구양첨 · 이하(李賀) · 오무릉 · 이상은(李商隱) · 설봉 · 이빈(李頻) · 오융
487·488·499·490·491·492·493·494·495·496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경군홍 · 여자장 · 왕행민 · 나사신 · 장도원 · 이육덕 · 고예 · 안금장 · 왕동교 · 오보안 · 이징(李憕) · 노혁 · 장개연 · 최무피 · 안고경 · 가순 · 장순 · 허원 · 남제운 · 뇌만춘 · 요은 · 정천리 · 방견 · 장흥 · 채정옥 · 부령기 · 유내 · 맹화 · 장비 · 주증 · 장명진 · 석연분 · 오서 · 고목 · 가직언 · 신당 · 황갈
497·498·499권 「효의전(孝義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소현 · 임경신 · 지숙재 · 정원사 · 무홍도 · 정잠요 · 원양 · 배경이 · 양문정 · 심계전 · 허백회 · 진집원 · 장수 · 서원경 · 여상안 · 양열 · 목종세 · 후지도 · 정구라 · 하징수
500·501권 「유일전(遺逸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경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502·503·504·505권 「예술전(藝術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경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506 · 507권 「주인전(疇人傳)」
설봉조 · 공사연 · 왕석천 · 방중통 · 매문정 · 명안도 · 유상규 · 왕문계 · 주홍 · 박계 · 허여란 · 이황 · 왕래 · 진걸 · 시왈순 · 이예 · 낙등봉 · 항명달 · 정취충 · 사가화 · 오가선 · 나사림 · 고관광 · 좌잠 · 증기홍 · 하란상 · 추백기 · 이선란 · 화형방
508·509·510·511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왕난영 · 경상자 · 위무기 · 하후쇄금 · 왕아족 · 왕옥영 · 요아 · 두백랑 · 두중랑 · 이묘법 · 왕화자 · 사소아 · 봉순
222권 「남만전(南蠻傳)」
남조 · 임읍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표국
518·519·520·521·522·523·524·525권 「번부전(藩部傳)」

526·527·528·529권 「속국전(屬國傳)」
조선 · 류구 · 월남 · 면전 · 섬라 · 남장 · 소록 · 구르카 · 호한 · 보노특 · 합살극 · 안집연 · 마이갈랑 · 나목간 · 탑십간 · 바다흐샨 · 박라이 · 아부한 · 감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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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도르곤 항목에도 있지만 도르곤은 순치제의 어머니 효장문황후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소문까지 있었으니, 순치제가 도르곤을 증오할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다만 반대로 도르곤 입장에서 순치제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누르하치가 사망하자 같이 순장(...)시켰다) 원수의 아들이었다. 누르하치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누르하치가 가장 아꼈던 아들인 도르곤에게 제위가 돌아갔을 가능성도 높았다. 참고로 유목민족인 만주족은 장자 상속이 아니라 말자 혹은 말자에 가까운 아들에게 상속하는 관습이 있다. 게다가 홍타이지는 적자도 아니었기에 적자인 도르곤 형제에 비해 정통성도 부족했다. 하지만 도르곤이 장성하기 전에 누르하치가 갑작스레 사망했고, 이미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홍타이지가 재빠르게 움직여 도르곤의 친모를 자살시키고 스스로 대칸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홍타이지가 죽은 후 도르곤은 역사에서 종종 보이듯 직접 순치제를 죽이고 황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원수의 아들인 순치제를 보필했다. 도르곤이 끝내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은 것은 청사 최대의 미스테리 중 하나다. 사실 따져보면 홍타이지 역시 원래라면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도르곤과 도도 형제를 살려줬다. 또 당시 상황은 도르곤이 순치제를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스스로 황제가 되기 쉽지도 않았다. 사실상 순치제는 도르곤과 경쟁해서 황제가 된 것이 아니라 누르하치파와 홍타이지파의 타협의 산물로 즉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르하치파는 누르하치의 적자인 도르곤을 밀어줬고 홍타이지파는 홍타이지의 서장자이자 순치제의 이복형인 호오거를 밀었는데 둘 다 안되자 타협점으로 순치제를 세운 것이기 때문. 이후 호오거는 도르곤에게 목숨을 잃는다.[2] 이로부터 7년 전인 병자호란 때 홍타이지가 이끌며 압록강을 건너온 우익군과 별개로 좌익군을 이끌며 함경도 방면에서 두만강을 건너온 두 지휘관이기도 하다. 각종 스캔들로 계급 강등과 감봉을 거듭하던 사고뭉치 형제와 조카들은 홍타이지가 직접 지휘했지만 이 둘은 홍타이지가 가장 신임하는 팔기군의 에이스들이었다.[3] 원래 도르곤은 누르하치의 적자라 왕위 계승권만 따지면 형 홍타이지보다도 위였다. 하지만 누르하치의 사망 시점에 홍타이지는 이미 성인으로 형제들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도르곤은 적자였고 누르하치의 가장 총애를 받았기에 차후에 제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여겨졌었지만, 누르하치의 갑작스런 사망시점에 도르곤은 아직 13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장성한 홍타이지의 세력에 비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후계를 홍타이지에게 내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고 홍타이지 사망 시점에 자기보다 십수년 연상인 큰형과 삼촌뻘 조카들보다도 압도적인 실적과 세력을 뽐내고 있었지만, 당연히 황제 홍타이지가 키워놓은 파벌도 만만치 않았고 그로 인해 도르곤은 홍타이지의 장남인 호오거 세력을 전적으로 압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호오거 본인의 성품 또한 난폭했기 때문에 호오거 측도 우세하다고 할 수 없는 교착 구도였다.[4] 다만 이것은 중원에 입성(입관)했다는 정도이지 여전히 남쪽에는 남명세력이 잔존했으며 대만을 차지한 정성공동녕 왕국과 추후 삼번의 난을 일으키는 오삼계를 비롯한 삼번왕들이 존재했기에 완전한 통일은 강희제때이다.[5] 청나라 초반 때 몽골칸위+동맹으로 후방 위험제거를 위해서였으며 아버지인 홍타이지도 적모이자 고모할머니인 저르저르, 생모인 붐부타이, 이모 하르졸과 정략결혼했다. 보다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누르하치는 처음 자신의 주변 부족들과 혼인관계를 형성하며 세력을 키웠는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비교적 가까운 위치의 차하르부 몽골족과 동맹관계를 구성하여야 했다. 이에 따라서 홍타이지의 정실 저르저르가 시집을 왔는데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자기 부족의 이익을 위하여 조카 붐부타이를 후궁으로 들였지만 붐부타이도 아들을 낳지 못하자(이후 순치제를 낳긴 했지만), 홍타이지의 의지에 따라서 붐부타이의 이복언니이자 기혼녀였던 하르졸도 후궁으로 들어왔다. 참고로 홍타이지의 정실 푸진(부인)으로 인정받은 5비들은 모두 몽골 출신인데, 저르저르과 하르졸, 붐부타이, 이외에 나므정과 바트맛주는 차하르부 링단 칸의 푸진(부인)들로 몽골 여성들이였다.[6] 황후들은 모두 어머니인 효장문황후의 조카(첫번째 황후)와 조카손녀(두번째 황후)였다.[7] 아래에 서술된 순치제가 총애한 아담 샬 역시 순치제가 현비 동오씨에 대해 열렬한 연애 감정을 품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현비 동오씨를 얼마나 총애했으면 아직 젊고 자식도 없던 그녀를 황후 바로 밑의 지위이자 후궁 중에선 가장 존귀한 자리인 황귀비의 자리에 올릴 정도였다.[8] 효장문황후는 강희 연간에 죽었는데, 스스로 태종과 묻히길 원치 않았다. 다음 대인 옹정제까지 결론이 나지 않다가 결국 베이링 묘역 밖에 묻힌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형사 취수설이 사실이라면 고구려 고국천왕산상왕의 비 우씨와도 비슷하다.[9] 다만 비슷할 뿐 실제로는 다른 점이 많다. 우씨의 경우 고국천왕이 죽은 시점에서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 시동생 산상왕}연우을 택해서 그를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여전히 왕비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효장문황후는 도르곤과 결혼했는지 확실하지 않고 또, 도르곤 역시 제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리고 사실 산상왕은 우씨와 결혼함으로써 차기 왕위라는 이득을 챙겼으나 도르곤은 설령 정말로 효장문황후와 결혼했다고 쳐도 그가 받은 이득은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10] 황권을 강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제2의 도르곤을 막기 위해서였을지도.[11] 역법 뿐만 아니라 그의 뛰어난 화약 기술은 강희제가 삼번의 난에서 많이 써먹었다.[12] 시청자들의 흥미를 위해 첫사랑만 강조되는거지만 사실 순치제는 세조라는 격조 높은 묘호가 도르곤 덕분이라며 저평가받는다고는 해도 명청교체기 황제로서 어지간한 명나라 명군들 앞에 명함을 내밀어볼 정도로 평타 이상의 수완을 내는 황제였다. 그것도 10대의 나이에 친정을 하며 한인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팔기제를 정비하며 남명의 영력제 정권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는 급이었는데, 강희제조차도 그 나이에는 삼번의 난 앞에 멘붕하여 갈팡질팡하던걸 감안하면 더욱 높이 평가할만 하다. 단지 첫사랑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서 명민한 황제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이 유달리 강렬하게 기억될 뿐이다.[13] 어진에 제법 멋들어지게 그려진 콧수염은 과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소년 황제였던 동치제, 광서제의 어진에는 수염이 거의 묘사되지 않았고, 광서제 역시 꼭두각시로나마 30대까지 살긴 했지만 수염은 적은 편이었다. 오히려 순치제의 어진은 콧수염을 진하게 강조하느라 소년 황제의 이미지에 맞지 않게 노안으로까지 보이는데(사실 순치제 정도는 적당하다 싶을만큼 청나라 초창기의 황족들 초상화가 심하게 노안으로 그려진 예가 좀 있다. 도르곤처럼 30대 후반에 죽은 호오거는 무슨 일흔 넘게 장수한 강희제급의 노인으로 그려졌을 정도.), 실제로 콧수염을 길게 길렀대도 갓난아기라고 자신을 무시하던 신하들에게 위엄을 보이고자 신경 쓰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동고비한테 멋있어보이려고 열심히 관리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