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 점검중으로 일부 기능이 제한됩니다.
순회세자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조선 명종과 인순왕후의 외아들. 건국(1392) 이래 160여 년 동안 이어져온 태조 이성계의 마지막 '적통'이다.[3]
2. 생애[편집]
1555년(명종 10년), 왕세자에 책봉되고 황대임의 딸[4] 을 세자빈으로 결정했으나, 황씨가 맹장염으로 추정되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여 가례를 1년 동안 미루게 되자 후궁인 양제로 강등시키고,[5] 윤옥의 딸[6] 로 세자빈을 바꾸어 가례를 올렸으나, 세자는 얼마 되지 않아 1563년(명종 18년), 만 12살에 요절하고 만다.
이 때문에 왕실 직계는 단절되어, 명종은 이복형이자 중종의 서출인 덕흥군[7] 의 셋째아들인 조카 하성군에게 보위를 물려주게 된다. 시호는 순회(順懷)이며, 1603년(선조 36년) 신주가 만들어졌다. 묘는 서오릉에 있는 순창원으로, 2006년 순창원 도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왕이 되기 전 사망한 왕세자 중에선 소현세자, 의소세손, 문효세자와 더불어 후대에 추존되지 못했다.
3. 가계[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13:19:14에 나무위키 순회세자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율리우스력 7월 1일.[A] A B 율리우스력 10월 6일.[2] 율리우스력 9월 9일.[3] 정확히는 7대 국왕 세조의 마지막 적통 후손이다. 태조 이래 서자의 후손들을 모두 배제하고 보면 순회세자를 제외하고 명종과 가장 가까운 적통 왕손들은 세종의 후손들이었다.[4] 권신 윤원형의 사위인 안덕대의 고종사촌여동생이다.(황대임의 부인이 안덕대의 고모) 윤원형이 문정왕후 사후에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병이 있음에도 숨기고 책봉을 밀어붙였다.[5] 본인 입장에선 미래의 중전이자 왕실의 큰어른이 될 세자빈에서 팔자에도 없던 후궁이 되어버렸으니 원통할 만하지만, 애초에 지병을 숨기고 간택에 참여한 것인데다 가례를 장장 1년 동안이나 미뤘으면 왕실 측에서도 기다릴 만큼 기다린 상황이였다. 황씨가 사망하기 전까진 세자빈을 새로 들일수도 없을 뿐더러 병을 이유로 폐빈시키기도 뭐한 상황에 별궁에서 골골거리며 자리보전만 하던 그녀는 결과적으로 계비인 공회빈 윤씨의 부부생활을 깎아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괘씸한 애물단지나 다름 없었기에 후궁 강등도 표면적인 것이였으며, 실제로 입궁한지 채 일년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6] 공회빈 윤씨 문서 참고.[7]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서출 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