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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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Fürstentum Schwarzburg-Rudolstadt

파일: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국기.svg
파일: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국장.png
국기
국장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Schwarzburg_Rudolstadt_%281871%29.svg.png
1710년 ~ 1918년
역사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슈바르츠부르크 후국
바이마르 공화국
지리
위치
독일 튀링겐
수도
루돌슈타트
인문환경
언어
독일어
종교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후작

1. 개요
2. 약사
3. 왕사(王史)
3.1. 공위요구자



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후국(Fürstentum)이었으며 수도는 루돌슈타트(Rudolstadt)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940 km², 인구 9만 7천 가량.


2. 약사[편집]


11세기부터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이 다스려오던 영토가 재편되면서 1599년 탄생했다. 백국이다가 1711년 공령으로 승급.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11월 23일, 독일 제후국들 중 마지막으로 귄터 빅토르 공이 퇴위했다. 1919년 "자유국"이 되었다가, 이듬해 튀링겐 주로 흡수된다.


3. 왕사(王史)[편집]




후국 승급 이후

  •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1세 (1711-1718)
  • 프리드리히 안톤 (1718-1744)
  • 요한 프리드리히 (1744-1767)
  • 루트비히 귄터 2세 (1767-1790)
  • 프리드리히 카를 (1790-1793)
  •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2세 (1793-1807)
  • (헤센-홈부르크의 카롤리네 루이제 : 섭정)
  • 프리드리히 귄터 (1814-1867)
  • 알베르트 (1867-1869)
  • 게오르크 알베르트 (1869-1890)
  • 귄터 빅토르 (1890-1918. 1909년 이후 절손된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도 겸함)


3.1. 공위요구자[편집]


귄터 빅토르도 슬하에 자녀가 없었고,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2세의 귀천상혼 출신 손자인 시초(Sizzo, 1860-1926)를 1896년에 후계자로 세웠다. 시초는 1남 2녀를 두었고 1926년 아들 프리드리히 귄터(1901-1971)가 당주가 되었으나, 1938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조피[1]와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이혼하고 독신으로 살아 결국 남계가 단절되었다.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은 준살리카법을 채택하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귄터의 사후에는 슈탄데스헤어 가문인 졸름스-빌덴펠스 백작가로 시집간 큰누나 마리 안토이네테(1898-1984)가 73살 나이에 당주가 됐다.[2] 이어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1927-)가 당주가 되었고 두 아들[3]을 두었지만... 문제는 둘 다 자녀가 없다. 딸이라도 두었으면 준살리카법으로 계승이 가능했겠지만 딸조차 없고,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는 남동생 1명과 누이 3명이 있지만 이후의 계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이 계통마저도 단절되면 1433년 호헨슈타인, 슈바르츠부르크, 슈톨베르크 3가 간에 맺어진 협약에 따라 슈톨베르크-베르니게로데 가문으로 계승권이 갈 가능성도 있다.#

  • 슈바르츠부르크 왕조
    • 귄터 빅토르 (1918-1925)
    • 시초 (1925-1926)
    • 프리드리히 귄터 2세 (1926-1971)
    • 마리 안토이네테 (1971-1984)
  • 졸름스-빌덴펠스 왕조
    •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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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 대공 빌헬름 에른스트의 맏딸이다.[2] 작은누나 이레네는 독신인 채 40살에 일찍 사망.[3] 미하엘(1949-2006), 콘스탄틴(1950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