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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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후국(Fürstentum)이었으며 수도는 루돌슈타트(Rudolstadt)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940 km², 인구 9만 7천 가량.
2. 약사[편집]
11세기부터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이 다스려오던 영토가 재편되면서 1599년 탄생했다. 백국이다가 1711년 공령으로 승급.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11월 23일, 독일 제후국들 중 마지막으로 귄터 빅토르 공이 퇴위했다. 1919년 "자유국"이 되었다가, 이듬해 튀링겐 주로 흡수된다.
3. 왕사(王史)[편집]
후국 승급 이후
-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1세 (1711-1718)
- 프리드리히 안톤 (1718-1744)
- 요한 프리드리히 (1744-1767)
- 루트비히 귄터 2세 (1767-1790)
- 프리드리히 카를 (1790-1793)
-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2세 (1793-1807)
- (헤센-홈부르크의 카롤리네 루이제 : 섭정)
- 프리드리히 귄터 (1814-1867)
- 알베르트 (1867-1869)
- 게오르크 알베르트 (1869-1890)
- 귄터 빅토르 (1890-1918. 1909년 이후 절손된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도 겸함)
3.1. 공위요구자[편집]
귄터 빅토르도 슬하에 자녀가 없었고,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2세의 귀천상혼 출신 손자인 시초(Sizzo, 1860-1926)를 1896년에 후계자로 세웠다. 시초는 1남 2녀를 두었고 1926년 아들 프리드리히 귄터(1901-1971)가 당주가 되었으나, 1938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조피[1] 와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이혼하고 독신으로 살아 결국 남계가 단절되었다.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은 준살리카법을 채택하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귄터의 사후에는 슈탄데스헤어 가문인 졸름스-빌덴펠스 백작가로 시집간 큰누나 마리 안토이네테(1898-1984)가 73살 나이에 당주가 됐다.[2] 이어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1927-)가 당주가 되었고 두 아들[3] 을 두었지만... 문제는 둘 다 자녀가 없다. 딸이라도 두었으면 준살리카법으로 계승이 가능했겠지만 딸조차 없고,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는 남동생 1명과 누이 3명이 있지만 이후의 계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이 계통마저도 단절되면 1433년 호헨슈타인, 슈바르츠부르크, 슈톨베르크 3가 간에 맺어진 협약에 따라 슈톨베르크-베르니게로데 가문으로 계승권이 갈 가능성도 있다.#
- 슈바르츠부르크 왕조
- 귄터 빅토르 (1918-1925)
- 시초 (1925-1926)
- 프리드리히 귄터
2세(1926-1971) - 마리 안토이네테 (1971-1984)
- 졸름스-빌덴펠스 왕조
-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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