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체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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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슈체친
폴란드어: Szczecin
독일어: Stettin

파일:Szczecin_Flag.png
시기
파일:external/www.szczecin.eu/Szczecin.jpg
슈체친의 전경
국가
[[폴란드|

폴란드
display: none; display: 폴란드"
행정구
]]

행정구역
자호드니오포모르스키에
면적
301km²
인구
395,513명[1]
역사
8세기 설립
시간대
UTC+01:00 (GMT)[서머타임]
링크
http://www.szczecin.pl

1. 개요
2. 언어별 표기
3. 인구 추이



1. 개요[편집]


폴란드 북서부 자호드니오포모르스키에[2]도시.

오데르 강을 끼고 있으며 항구가 크게 발달한 곳이다. 슈체친 항은 어항과 무역항을 겸하고 있으며 시내에 제철소조선소도 있다. 그단스크[3]와 함께 폴란드의 수운을 책임지는 중요한 항구 도시이다.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미에슈코 1세 때 포모제(Pomorze) 지역을 차지하면서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카지미에시 1세 오드노비치엘[4] 시기에 포모제 지역이 반란으로 떨어져나가면서 한동안 독립을 유지하다가 볼레스와프 3세[5]가 다시 포모제를 수복한다. 그러나 이후 폴란드 공국 분할 시대(1138~1320년) 도중인 1164년 신성 로마 제국의 공국중 하나인 작센 공국의 침략을 받고 작센 공국의 속국이 된 이후로, 이후부터 폴란드의 왕조들은 2차 대전 이전까지 이곳을 영영 되찾지 못했다. 이후 1181년신성로마제국의 직속 봉신국이 되었으나 머지않은 1185년에 덴마크에 의해 빼앗겼지만 1227년 되찾아 다시 신성로마제국령이 되었다. 30년 전쟁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스웨덴 제국이 획득했으나, 대북방전쟁 이후 스웨덴과 프로이센 왕국이 맺은 스톡홀름 조약에 따라 프로이센에 할양했다.

중세 시대부터 나치 독일 시대까지 일부 스웨덴 시대를 제외하면 8세기 가까이 독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슈테틴(슈체친)에 남은 폴란드 주민들은 빠르게 독일에게 동화되었으며 나치 독일 시절에는 약 99%의 주민이 독일인이었다. 또한 슈테틴은 근대 독일 시대에 슈테틴은 포메른 주의 주청 소재지이자 수도 베를린의 외항(外港)이었기 때문에 독일에 있어 중추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독일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의 독일 영토는 폴란드 및 소련의 영토로 편입되었는데 슈테틴의 절반은 오데르 강 서쪽에 위치해 있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폴란드에 항구 도시 하나를 더 주기 위해 폴란드에 넘겼다.[6]

베를린에서 2시간 안에 닿을 정도로 가깝기도 하고, 독일폴란드가 모두 솅겐조약 가입국인지라 출·입국심사도 필요없어서 다른 나라로 간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다만, 유로가 여기서는 통하지 않으므로[7] 주의.


2. 언어별 표기[편집]


폴란드어
Szczecin
독일어
Stettin(슈테틴)


3. 인구 추이[편집]


슈체친 인구추이
[2000-2019年]
2000년
416,485명}}}
2005년
411,119명}}}
2010년
405,606명}}}
2015년
405,657명}}}
2019년
401,90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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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6월 30일 기준.[서머타임] [2] 독일어로는 힌터포메른.[3] 독일어로는 단치히(Danzig).[4] Kizimierz I Odnowiciel, 1039~1058.[5] Bolesław III Krzywousty, 1107~1138.[6] 실제로 프랑크푸르트안데어오데르, 괴를리츠, 구벤 같이 오데르 강이나 나이세 강이 관통하는 내륙 도시들은 모두 강 동쪽만 폴란드에 할양되고 강 서쪽은 동독령으로 남아 도시가 분단되었다. 만일 내륙에서처럼 오데르-나이세 선을 엄격하게 따랐다면 슈테틴 서부는 독일에 남을 수 있었고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외항이었으며 역사적으로도 독일계의 지배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었기에 동독에 잔류하는 것이 본래 설득력이 높았지만 독일의 동독 및 동방 영토 지역은 소련의 점령지였기 때문에 스탈린의 의견이 절대적이었다.[7] 폴란드는 폴란드 즈워티라는 자체 통화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