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타 이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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杉田一次 (すぎた いちじ)
1904년 3월 31일 ~ 1993년 4월 12일
1. 개요[편집]
일본의 군인 겸 육상자위관. 3대 육상막료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04년에 나라현에서 태어나 1921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25년에 37기로 졸업했다. 주미 일본대사관의 주재무관으로 재직한 경력 때문에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했다. 개전 후에 제25군 참모로 참전,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통역장교로 근무했다. 영국군에게 항복하라는 문서를 만들기도 했다. 종전 직전에 귀국 명령을 받아 대본영에서 근무하던 중에 패전을 맞았다. 대본영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대본영이 정보를 무시한다고 생각해 직접 전략과 업무에 관여했다가 직책을 강등당했다. 최종계급은 일본육군 대좌였다.
항복문서 조인식에 참여했다. 뒷줄 오른쪽의
1962년 퇴임하며 후임 육막장으로 일본군 육군 출신을 앉히려고 했지만 실패해 오모리 간이 보임된다. 당시만 해도 내무군벌의 수장인 하야시 게이조가 아직 통합막료회의의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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