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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포크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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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노르드어: Sveinn tjúguskegg (스베인 튜구스케그)
고대 영어: Sƿegn (스웨인)
영어: Sweyn Forkbeard (스웨인 포크비어드)
덴마크어: Svend Tveskæg (스벤 트베스케그)
노르웨이어: Svein Tjugeskjegg (스베인 튜게셰그)
1. 개요[편집]
2. 일생[편집]
2.1. 960, 출생[편집]
하랄 1세의 아들로 960년에 출생했다.
2.2. 980년 21세, 아버지에 대한 반란으로 왕위에 오름[편집]
스벤은 980년대에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은 성공해 986년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위에 올랐다.
2.3. 995년 36세, 노르웨이의 반란[편집]
하지만 995년 올라프 1세가 노르웨이의 왕위에 올랐고, 스벤은 이에 맞서 스웨덴 국왕 '올로프 솃코눙' 및 노르웨이의 친화적인 세력을 모아 동맹군을 결성했다.
2.4. 1000년 41세, 노르웨이의 탈환[편집]
스벤은 다시금 노르웨이 왕위를 되찾기 위해 서기 1000년 올라프 1세와 전쟁을 벌였고, 스볼데르 전투에서 올라프 1세를 무찌르고 노르웨이를 점령한 뒤 공동통치자가 되어 노르웨이 왕위를 회복했다. 명목상은 올라프 1세와 공동통치 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스벤이 노르웨이를 통치하게 된다.
2.5. 1003년 ~ 1004년 44세 ~ 45세, 잉글랜드 원정[편집]
한편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군사 압력을 가해 이득을 취하고 있었는데 1002년 봄에 잉글랜드 국왕 애설레드와 평화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인 1002년 11월 13일 '성 브릭티우스' 축일에 데인인 정착민에 대한 학살[1] 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복수로 1003년 ~ 1004년에 걸쳐 잉글랜드에 대대적인 원정을 실시한다. 그 후 스벤은 잉글랜드에 대해 10여년간 간헐적인 침략과 돈을 받고 일시적인 휴전을 거듭한다.
2.6. 1013년 54세, 잉글랜드 대원정[편집]
그러던 중 1013년에 아예 잉글랜드 왕위를 취득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하는데 이 원정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으며 잉글랜드 전체의 왕으로 인정받게 된다. 스벤에게 패한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로 망명한다.
2.7. 1014년 55세, 사망[편집]
이 승리로 스벤은 덴마크, 노르웨이, 잉글랜드에 걸친 대 제국의 초석을 닦게 되지만 이듬해인 1014년에 사망한다. 그의 사망 후 올라프 2세에 의해 노르웨이가 단독 통치가 행해지며 이탈하고 애설레드 2세가 잉글랜드 왕위에 복위 하면서 제국은 축소되지만 차남 크누트 대왕에 의해 재정복이 이루어지고, 1042년까지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지되게 된다.
3. 자손[편집]
- 크누트 대왕
- 에스트리드 스벤스데더를 딸로 뒀는데 토르길의 아들인 울프 야를과 결혼해 덴마크 에스트리드 왕조의 스벤 2세 에스트리드센을 낳는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4.1. 빈란드 사가에서의 모습[편집]
- 상위 문서: 빈란드 사가
성우 : 스고 타카유키
잉글랜드 왕국이 돌연 바이킹 이주민들을 기습해 몰살하고 그 희생자중에는 자신의 여동생(한마디로 덴마크 왕족)이 끼어있자 이를 명분으로 수만명의 원정군을 파병해 잉글랜드 정복전쟁을 일으킨다. 약 10년만에 잉글랜드 정복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두 아들로 인해 차기 후계문제로 국론을 분열되자 이중 장남 해럴드가 더 후계자로 걸맞다고 판단, 차남 크누트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현군으로 보이고 싶었기에 직접 손을 쓰기보단 자연스러운 사망(전장에서의 전사라든지...)으로 보이기 위해 상황을 조성하지만 그 와중에 크누트는 각성해 버렸고 이때문에 조금은 서두르다가 크누트의 신하인 아셰라드의 역린을 건드려 살해당한다.
[1] 만화 빈란드 사가(만화) 2권 초반에 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