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이제이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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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제2대 천황. 결사팔대의 첫 번째 천황.
2. 생애[편집]
스이제이 덴노부터 제9대 카이카 덴노까지 천황 8명은 기록이 부족하여 가계만 전해지는 형편이다. 그래도 스이제이 덴노에게는 타기시미미(手硏耳)의 반란이라는 훌륭한 이벤트가 있다!
진무 덴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 동방 정벌을 단행하기 전 히무카에서 만난 아내 아히라츠히메(吾平津媛)는 타기시미미를 낳았고, 동방 정벌 때 진무를 따라갔다. 진무는 새로 도착한 카시하라(橿原) 땅, 즉 지금의 나라현에서 히메타타라이스즈히메(媛蹈鞴五十鈴媛命)[1] 를 정실로 들였고, 두 아들 카무야이(神八井)와 카무누나카와미미(훗날의 스이제이 덴노)를 낳았다.[2]
진무 덴노가 죽자 맏아들 타기시미미가 황위를 이었다. 《일본서기》는
고 기록했다. 또한《일본서기》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고사기》에 타기시미미가 아버지 진무의 정실이었던 히메타타라이스케요리히메, 즉 계모를 아내로 삼았다고 했으므로, 아무래도 스이제이 덴노가 아니라 타기시미미가 더 정통성이 있는 후계자였던 것 같다."나이가 많아 오랫동안 조정의 일을 담당했으므로 일을 맡아 친히 다스리도록 했다."
그런데 타기시미미는 이스케요리히메의 아들들을 죽이려고 결심했다. 이를 알아챈 이스케요리히메는 노래로 그 소식을 스이제이 덴노와 형제들에게 알렸다. 스이제이 3형제는 타기시미미보다 먼저 치기로 결의했다. 3형제의 계획은 성공했다. 이때 약간의 실수로 일을 그르칠 뻔했던 3형제의 장남 카무야이미미(神八井耳)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동생 카무누나카와미미에게 황위를 양위한 채 신관이 되었다. 그렇게 황위를 물려받은 이가 스이제이 덴노였다.
3. 기타[편집]
- 서기 700년경만 해도 제40대 덴무 덴노가 하늘로 올라갔다네 하는 반가가 지어질 정도로 신화상의 인물이다. 《고사기》는 86세로 사망했다고 했고, 《일본서기》는 102세로 사망했다고 하는 등 기록도 서로 다르다.
- 게다가 난보쿠초 시대에 기록된, 신도의 한 교단인 안거원창도(安居院唱導)의 교전 《신도집》(神道集)의 기록에 따르면 식인 취미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사람 7명을 먹어치워 주위를 위협하기에 대신과 신하들이 '하늘에서 불비가 내린다.'는 거짓말로 스이제이 덴노를 동굴에 유폐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래저래 한 것은 없는 데 되게 조인트까인다.
- 기기(《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따르면 진무 천황이 기원전 585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은 뒤 이런 내전이 벌어진 탓에 스이제이 덴노는 부황이 죽고 4년이 지나 기원전 581년에 즉위했다. 물론 이동안 무정부였던건 아니고 타기시미미가 천황으로 재위했었다. 즉, 스이제이는 실제로 3대 천황이었던 셈.
4. 계보[편집]
제2대 스이제이 덴노
제1비 이스즈요리히메노미코토(五十鈴依媛命) 황후
- 시키츠히코타마테미노미코토(磯城津彦玉手看尊) - 003대 안네이 덴노
제3비 이토리히메(糸織姬)
5. 《일본서기》 기록[편집]
- 원년 1월 8일: 천황으로 즉위하다. 카즈라키로 도읍을 정하다.
- 2년 1월: 이스즈요리히메를 황후로 삼았다.
- 4년 4월: 형인 카무야이미미노미코토가 죽어 장사지내다.
- 25년 1월 7일: 황자 시키츠히코타마테미노미코토를 황태자로 삼다.
- 33년 5월: 병에 걸려 죽다.
[1] 《고사기》는 '히메타타라이스케요리히메'(比賣多多良伊須氣余理比賣)가 그녀의 다른 이름이라고 기록했다.[2] 이건 《일본서기》 기준이고, 《고사기》에는 카무야이의 이름이 '카무야이미미'(神八井耳)로 되어 있으며, 그 위로 형 '히코야이'(日子八井)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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