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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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전투기 조종사.
2. 설명[편집]
베트남 전쟁에서 미합중국 공군의 유일한 에이스 파일럿이며, 해군의 랜디 커닝햄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에서 단 두명밖에 없는 미군 에이스 파일럿 중의 하나이다. 사실 베트남 전쟁의 미군 에이스는 총 5명이며 공군에 3명, 해군에 2명이 있지만, 스티브 리치와 랜디 커닝햄을 제외하면 에이스 "파일럿"은 아니다. WSO(후방석 무장 통제사)였기 때문.[2]
- 에이스 등극 당시 계급
- 미합중국 공군 대위 찰스 B. "척" 드벨뷰: 6기 격추
- 미합중국 공군 대위 스티브 리치: 5기 격추
- 미합중국 공군 대위 제프 파인스타인: 5기 격추
- 미합중국 해군 대위 랜달 "듀크" 커닝햄: 5기 격추
- 미합중국 해군 중위 윌리엄 P. 드리스콜: 5기 격추
스티브 리치의 에이스 등극은 1972년이지만, 사실 그는 이미 1968년 F-4 팬텀 II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적이 있다. 다만 그때는 Fast FAC(고속 전방항공통제관) 임무 같은 지상지원 임무를 맡았기에 공대공 격추전과는 없었다.
1969년 첫 베트남 파견을 끝낸 리치는 공군의 탑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기 전술무기교관과정을 수료하고 1970년부터 전투기 전술무기학교(Fighter Weapons School)의 교관조종사로 발령받아 당시 역대 최연소 FWS 교관(26세)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 격추 전과[편집]
전부 라인배커 작전 기간 중 이루어졌다. 모든 전과가 신형기인 MiG-21으로, 주로 MiG-17을 격추한 해군의 에이스 랜디 커닝햄보다 좀 더 가치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격추기록 5기 중 3기를 1972년 5월 10일 단 하루의 전투에서 격추한 커닝햄에 비해 극적인 부분이 덜해 커닝햄처럼 유명해지지는 않았다.
특이하게도 탑승 기종이 F-4D와 F-4E를 오가는데, APX-80 컴뱃 트리(Combat Tree)[3] 를 탑재하여 미상 항적의 전자적 피아식별이 용이한 F-4D와 20mm 기관포로 무장한 F-4E를 4기 편대 내에 혼성 배치, BVR 공격과 근접전투를 모두 커버하는 라인배커 작전 당시의 미 공군 전술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첫번째와 다섯번째 격추 기록 수립 시 탑승했던 F-4D 66-7463 기체는 다른 조종사들의 격추 기록까지 합산하면 총 6기의 격추 스코어를 기록하여 베트남 전쟁 미군 단일기체 최다 격추 기록을 세우고 킬마크 6개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며, 퇴역 후에는 미국공군사관학교 커데트 채플 바로 옆 잔디밭에 기념물로 보존되어 있다.[5]
4. 공군 십자훈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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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rigadier General[2] 단 척 드벨뷰의 경우에는 후일 조종사로 특기를 전환해서 복무했다. 드벨뷰의 증언에 따르면 공군십자장까지 받은 에이스가 파일럿이 아니면 공군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한 상부에서 특기 전환을 강요 수준으로 압박했다고.[3] MiG-21이 지상관제소로 발신하는 피아식별 신호를 가로채서 후방석 WSO 디스플레이에 그 위치를 표시해주는 전자장비. 신호정보를 이용하는 특성상 라인배커 작전 당시 미 공군의 최고 기밀 중 하나였다.[4] 이 날은 미 해/공군이 북베트남에 대대적인 폭격작전을 벌여 이를 막기 위해 출격한 북베트남 전투기들과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는데, 미 해군에서 랜디 커닝햄 대위가 1소티 3기 격추로 에이스가 된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리치의 편대장이자 당시 격추전과 2기이던 로버트 로지 소령이 3기째 격추를 달성한 직후 MiG-19의 기습으로 격추당해 전사하고 그의 WSO이던 로저 로처 대위는 탈출해 23일간 북베트남군의 눈을 피해 정글을 헤매다가 미군에 구조되기도 했다.[5] https://youtu.be/B085gFuFn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