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스 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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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파이스 걸스 로고.jpg
Ginger Spice
Sporty Spice
Posh Spice
Scary Spice
Baby Spice
제리 할리웰
(Geri Halliwell)

멜라니 C
(Melanie C)

빅토리아 베컴
(Victoria Beckham)

멜라니 B
(Melanie B)

엠마 번튼
(Emma Bunton)


[ 음반 ]

파일:스파이스걸스1집.jpg


파일:SGSW.jpg


파일:spicegirlsforever.jpg

Spice
1996
정규 1집
Spiceworld
1997
정규 2집
Forever
2000
정규 3집



스파이스 걸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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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활동
2.1. 결성(1994~96)
2.2. 1집 Spice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다(1996~97)
2.3. 2집 Spiceworld와 제리의 탈퇴(1997~98)
2.4. 3집 Forever와 활동 중단(1998~2000)
2.5. 화려한 재결성 콘서트(2007~08)
2.6. 또 한번의 재결성과 2012 런던 올림픽(2010~12)
2.7. GEM의 결성과 3차 재결성 (2016~)
3. 멤버
4. 영향과 평가
4.1. 문화에의 영향
5. 각종 기록
7. 여담


1. 개요[편집]




Fab Five

1996년에 데뷔하고 2001년에 해체한 영국의 전설적인 걸그룹이다. 멜라니 B, 멜라니 C, 엠마 번튼, 제리 할리웰, 빅토리아 베컴[1]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누렸던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걸그룹이다. 또한 현대적인 의미의 아이돌 걸그룹의 조상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전성기였던 기간은 5년이 채 안되지만, 그 기간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음반을 판매하여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총 음반 판매량이 약 8,500만 장에 달하며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걸그룹이다. 짧은 시간동안(단 2년) 이지만 당시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2] 받았다.

간혹 그룹명을 직역해 양념 소녀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

2. 활동[편집]



2.1. 결성(1994~96)[편집]


1990년대 중반 하트 매니지먼트 사는 당시 인기를 얻던 테이크 댓이나 이스트 17 같은 보이그룹과 맞설 걸그룹을 만들기로했다. 1994년 2월, 그들은 이 걸그룹을 위한 오디션 공고[4]를 냈다. 약 400명 가까이 되는 여성들이 오디션에 참가했고, 10명씩 춤 오디션을 보고 각자 솔로로 노래 오디션도 보아야 했다. 몇 주 후에 빅토리아 베컴, 멜라니 B, 멜라니 C, 그리고 미셸 스테픈슨을 포함한 12명이 선정되어 이듬해 4월에 2차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제리 할리웰 또한 일 때문에 1차 오디션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2차 오디션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2차 오디션 일주일 후에 빅토리아, 멜라니 B, 멜라니 C, 제리, 그리고 미셸까지 5명이 합격하여 'Touch'라는 이름의 걸그룹을 만들게 된다. 이들은 버크셔 주 에 있는 집에서 모두 함께 합숙하며 연말까지 연습생 신분으로 훈련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아주 틴팝스러운 노래들을 녹음하고, 이 노래들 중 하나의 제목이었던 'Sugar and Spice'에서 그들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다 몇 달 후 미셸 스테픈슨이 방출되고 엠마 번튼이 영입되었고, 제리가 이 당시 밴드 이름을 Spice로 결정했다고 한다.

제대로된 계약서도 없이 무기한 연습만 하고 있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멤버들은 어린 노래만 부르게 하는 기획사도 점점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고, 결국 1994년 10월에 자신들이 녹음한 데모들을 가지고 음반사들을 돌기 시작했다. 또 기획사 사장에게 음반사 관계자들 앞에서 쇼케이스를 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이때 반응이 아주 좋았는데, 멤버들이 떠날까봐 불안감을 느낀 기획사 측에서 급하게 계약을 맺을 것을 제안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갑이 되어버린 멤버들은 빅토리아 베컴의 아버지의 조언을 받고 계약을 계속 미루게 된다.

하트 매니지먼트와 계속된 의견 불일치로 짜증이 난 멤버들은 기획사에서 자신들의 음반에 들어가기로 했던 데모들을 훔쳐 달아난다. 바로 그 날, 멤버들은 쇼케이스에 왔었던 프로듀서인 엘리엇 케네디를 찾아내 자신들과 일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19 엔터테인먼트와 1995년 3월 계약을 맺게 된다. 1995년 9월에는 음반사 투어를 한 후에 버진 레코즈와도 계약을 맺게 된다. 'Spice'라는 이름의 래퍼가 벌써 있어서 그룹 이름은 Spice Girls로 최종 결정되었고, 1996년까지 이들은 1집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2.2. 1집 Spice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다(1996~97)[편집]



<Wannabe(1996)>

1996년 7월 스파이스 걸스는 영국에서 데뷔 싱글 'Wannabe'를 발표한다. 음원 발표 몇 주 후에 뮤직비디오도 공개했다. 뮤직비디오는 공개되자 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5], 가장 잘 나갈 때는 일주일에 73번 방송되기도 했었다. 이 곡으로 스파이스 걸스는 열심히 공개방송을 뛰고 온갖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다. '뮤직 위크' 잡지사의 한 기자는 '기타로 무장한 남자들이 팝 시장을 지배하던 와중에, 여성들의 시대의 서막을 여는 걸그룹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Wannabe'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3위로 데뷔해 1위로 치고 올라가 7주동안이 머물게 된다. 심지어는 37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역사상 가장 히트한 걸그룹 데뷔 싱글일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히트한 걸그룹 싱글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앨범이 11월에 발매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2위를 기록했다.

영국 맨체스터의 MOSI(뮤지엄 오브 사이언스 앤 인더스트리)와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Wannabe'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독적인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1만 2천명을 대상으로 '옛날에 들어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버튼을 누르는' 테스트를 해 봤는데, 이들이 가장 많이 알아차린 곡이 바로 이 'Wannabe'였다고 한다. 플레이 후 스톱 버튼을 누른 시간은 평균 2.29초.


<Say You'll Be There>(1996)


<2 Become 1>(1996)

이런 엄청난 반응을 타고 두번째 싱글 'Say You'll Be There'이 10월에 공개되었고, 2주 간 1위를 차지하게 된다. 12월에는 '2 Become 1'이 공개되어 크리스마스에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훗날 모 음악프로에서 쥬얼리의 전 멤버 이지현이 "get it on, put it on"이라는 가사를 게리롱 푸리롱으로 발음했다가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6][7] 1996년 영국 연간 차트의 5위 안에 스파이스 걸스는 'Wannabe', 'Say You'll be there', '2 Become 1' 총 세 곡을 올리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6년 1월에 발표한 데뷔 앨범 'Spice'는 2,2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고 15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비틀즈 이후 최고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당시 스파이스 걸스는 주로 비틀즈와 비교되었고, 그들의 팬클럽 스파이스매니아도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됐다. 실제로도 비틀즈 이후로 영국에서 가장 히트한 가수가 되었다. 이렇게 초절정의 인기에 있을 때 런던에서 크리스마스 등불 켜기 행사에 등장해 50만 관중을 모았으며, 펩시, 폴라로이드 등 온갖 광고에 나오게 된다.

1997년 1월에는 미국에서 'Wannabe'를 발표했고, 외국 음원이 전혀 힘을 못 쓰던 빌보드 핫 100에서 최초로 11위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는 과거 비틀즈가 미국에서 데뷔할 때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Wannabe'는 싱글 차트를 쭉쭉 올라가 결국 미국에서도 4주 간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데뷔 앨범 'Spice'는 미국에서도 1997년 연간 앨범 차트 1위를 찍게 된다. 1997년 브릿 어워드에서 공연하면서 제리가 입은 유니언 잭 미니스커트는 팝 역사상 가장 화제가 된 의상으로 오늘날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1997년 3월에는 1집의 마지막 활동으로서 'Mama / Who Do You Think You are'로 A, B side의 두 싱글을 발표했고 역시나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잭슨 파이브 이후로 최초로 4개의 연속된 싱글로 1위를 먹었다. 1집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걸 파워'를 강조한 책과 비디오를 발표했고 5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계속해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다. 심지어는 칸 영화제에서 'Spice World'[8]라는 제목의 영화도 공개하게 된다. 이는 훗날 우리나라에서 젝스키스가 발표한 세븐틴 같은 영화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싱글로만 성공한 게 아니라 당시 모든 언론도 스파이스 걸스에 주목했다. 영국 왕실에 초청되어 공연을 할 때 멜라니 B와 제리가 찰스 3세에게 뽀뽀를 하고 엉덩이를 꼬집은 게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스파이스걸스는 199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신인상, 싱글 대상 그룹 부문, 음반 대상 그룹 부문, 올해의 음반 상을 모두 꿰차며 4관왕을 차지한다.

스파이스 걸스는 1997년 Spice 앨범 홍보를 위해 한국에도 방문했는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2 토요일 전원출발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당시 스파이스 걸스가 들렀던 서울의 이태원동에 있는 "시골밥상"이라는 음식점에 가면 내한때의 사진도 볼 수 있다.


2.3. 2집 Spiceworld와 제리의 탈퇴(1997~98)[편집]



<Spice Up Your Life>(1997)

1997년 10월, 스파이스걸스는 2집 Spiceworld의 첫 싱글인 'Spice Up Your Life'를 발표한다. 또 영국 차트 1위를 찍으며 5연속 1위를 하게 된다. 활동하면서 이스탄불에서 4만 명의 팬 앞에서 콘서트를 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방문해 넬슨 만델라에게 '스파이스 걸스는 나의 영웅' 이라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11월에는 2집 Spicworld 음반을 발표하고, 세계적으로 1,400만 장을 팔아치웠다. 미국에서 신인 영국 그룹이 10위 안에 1집과 2집이 두 개의 앨범을 올린 것도 이례적이었다는 점, 스파이스 걸스의 사생활이 심하게 노출되기 시작한 점, 20개 이상의 광고 스폰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미국에서 욕을 먹게 했고, 다른 나라에서 와서 팝 시장을 씹어먹을 조짐을 보이던 스파이스 걸스에 대해 안티 또한 이때 엄청나게 불어났다. 이런 악재에도 미국에서 1998년 가장 히트한 팝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스파이스 걸스는 계속 사이먼 풀러라는 매니저 아래에서 활동을 했는데, 각종 광고 스폰서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는 것에 빡친 멤버들은 유럽 MTV에서 공연한 직후 매니저를 잘라버린다. 이 매니저 해고 건은 전세계 뉴스 1면을 차지하게 되었고, 사이먼 풀러 없이 스파이스 걸스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스파이스 걸스가 등장한 방송을 영국 인구의 5분의 1이 보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게 된다.


<Too Much>(1997)


<Stop>(1998)

1997년 12월에는 2집 두번째 싱글인 'Too Much'를 발표했는데, 스파이스 걸스의 두번째 크리스마스 1위 싱글이자, 여섯번째 1위 싱글이 된다. 1998년 AMA에서도 3관왕을 하고, 승승장구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1998년 2월에 발표한 2집 세 번째 싱글인 'Stop'는 처음으로 스파이스 걸스의 싱글 중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서, 7연속 1위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하지만 'Stop'는 싱글 차트에서 2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스파이스 걸스의,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대표곡으로 뽑힌다. 스파이스걸스는 2집 월드 투어를 하고, 영국 월드컵 송 가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축구 팬들에게 스파이스 걸스의 노래는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1998년 3월, 리더였던 제리 할리웰이 스파이스 걸스를 떠나게 된다. 이유는 다른 멤버들과의 의견 차이, 그리고 계속된 활동으로 인한 피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각종 루머가 떠돌았는데, 특히 제리와 멜라니 B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서로 불화가 있었다는 찌라시도 있었고 둘이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소문 또한 돌았다. 재결합 이후 멜라니 B가 제리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으나, 제리는 이를 부인했다. 제리의 탈퇴 후에 멜라니 B의 혼전임신이 이어졌기 때문에, 연인 관계였던 제리가 멜라니 B의 임신 사실을 알고 그룹을 떠났다는 이야기기 있다. 멤버들이 지금까지도 함구하는 부분이라 여전히 진실이 무엇인지는 팬들 사이에서 소문이 무성하다.

제리의 탈퇴는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였지만 제리는 탈퇴 후 솔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Viva Forever>(1998)

남은 네 멤버들은 계속 활동을 이어나갈 것을 이때 항상 '5명'의 이미지였던 스파이스 걸스는 각종 활동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디즈니에서 기획하던 관련 애니메이션 제작도 중단되게 된다. 또 제리의 목소리가 포함되었던 여러 음원들도 이때 폐기되어야 했다. 스파이스 걸스를 광고 모델로 출연시키기로 했던 오토바이 회사인 AWS는 이 건으로 그룹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순탄하게 잘 합의해서 광고를 찍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스파이스 걸스가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모두 싱숭생숭한 기간을 겪고 있을 때 2집의 마지막 싱글인 'Viva Forever'가 발표된다. 'Viva Forever'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스파이스 걸스의 곡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아쉽게도 뮤직비디오는 급하게 스톱모션으로 제작되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기획하고 주최한 자선 공연 파바로티와 친구들 1998년 콘서트에 출연해 맴버들끼리 Stop을, 파바로티와 함께 Viva Forever를 불렀다.

2.4. 3집 Forever와 활동 중단(1998~2000)[편집]



<Goodbye>(1998)

1998년부터 4인조로 북미 투어를 시작해 6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 이때 계속 노래를 더 녹음했고, 1998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제리에게 바치는 헌정곡 'Goodbye'를 낸다. '2 Become 1', 'Too Much'에 이어 3연속으로 크리스마스 1위가 되었고, 이는 예전에 비틀즈가 세운 바 있는 기록이었다. 연말에는 MTV 유럽 뮤직어워드에 엠마와 멜라니 C가 참석해 2관왕을 했다. 그런데 나머지 둘이 이때 나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멜라니 B와 빅토리아가 둘다 임신을 한 것이었다. 멜 B는 댄서인 지미 굴저와 결혼해 이름을 멜 G로 잠깐 활동명을 바꾸기까지 했고, 1999년 2월에는 딸 피닉스를 출산했다. 한 달 후에는 빅토리아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사이에서의 아들 브루클린을 출산했다. 1999년 말에 빅토리아는 아일랜드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베컴과 결혼했다.

1999년 8월부터 스파이스 걸스는 세번째이자 마지막 앨범 준비에 돌입한다. 처음에는 앞선 두 앨범처럼 팝적인 색채가 강했지만, 미국의 프로듀서들이 작업에 합류하면서 보다 성숙한 컨셉으로 전환하게 된다. 1999년 12월에 스파이스 걸스는 영국 투어를 런던맨체스터에서 돌면서 세번째 앨범의 곡들을 선공개했다. 훗날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뮤지컬로 만든 뮤지컬 아이다의 넘버 My Strongest Suit데모 곡도 이때쯤 녹음하게 된다. 4인조는 2000 브릿 어워드에도 참석해 그간의 활동에 대한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이때 제리도 자리에 있었지만 함께 무대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2000년 11월 드디어 3집 'Forever'가 공개된다.


<Holler>(1998)

미국에서는 앨범 차트 39위를 찍었고, 영국에서는 2위를 찍었다. 같은 주에 웨스트라이프의 앨범도 발표되어 영국 언론은 두 그룹의 정면충돌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웨스트라이프의 승리. 3집의 리드 싱글인 'Holler / Let Love Lead the Way'는 영국에서 스파이스 걸스의 아홉번째 1위곡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는 107위에 머물렀다. 이 노래는 단 한 번,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만 라이브로 공연했고, 결론적으로 3집은 120만 장이 팔리며 폭망해버렸다. 2000년 12월에는 스파이스 걸스의 무기한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솔로 활동에 집중하기로 한다. 해체는 아니라고 못박았지만, 팬들은 사실상 스파이스 걸스의 활동 종료라고 생각해야 했다. 활동 중단 이유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멤버들이 하나둘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것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2.5. 화려한 재결성 콘서트(2007~08)[편집]


2007년 여름, 스파이스 걸스는 재결합할 의사가 있음을 언론에 공개했다. 12월부터 재결합하여 월드 투어를 돈다는 것이었다. 12월에 스파이스 걸스를 주제로한 다큐가 제작되어 호주영국에서 방송되었다. 월드 투워 티켓은 단 38초만에 매진되었고 영국에서만 백만명, 세계에서 오백만명이 티켓 구입을 위해 스파이스 걸스 사이트에 가입했다. 결국 추가 공연을 해야 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콘서트 스폰서는 테스코였다.


<Headlines>(2007)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 쇼에서 'Stop'(2007)


'The Return of the Spice Girls' 콘서트(2007~2008) - 스파이스 걸스의 명곡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스파이스 걸스는 컴백 싱글로 'Headlines(Friendship never Ends)'를 공개했고, 이는 어린이 기부 단체의 공식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스파이스 걸스는 할리우드코닥 시어터에서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 쇼의 공연자로 컴백 소식을 알렸다. 애엄마들이 현역 아이돌에 꿀리지 않는 엄청난 미모로 등장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새롭게 입덕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Headlines' 싱글은 차트에서 11위, 컴필레이션 앨범 'Greatest Hits'는 2위를 찍으며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 2008년 2월 개인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스파이스 걸스가 콘서트를 중단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베이징, 홍콩, 상하이, 시드니, 케이프타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결국 콘서트가 취소되었다. 콘서트 매출은 입장료 값만 100만 달러 이상었으며, 최종적으로 2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여기저기서 명실상부한 레전드로서 여러 상을 쓸어담았고, 그 중에는 섹스 피스톨즈이나 레드 제플린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받은 것도 있었다.


2.6. 또 한번의 재결성과 2012 런던 올림픽(2010~12)[편집]


스파이스 걸스는 2010년 브릿 어워드에서 1997년 공연한 'Wannabe'로 지난 30년 간 최고의 퍼포먼스 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의 노래들을 가지고 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인 'Viva Forever!'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Wannabe'와 'Spice Up Your Life' (2012)

2012년 7월, 4년만에 그룹이 모두 16년 전 'Wannabe'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호텔에 모여 뮤지컬 홍보를 했다. 그리고 8월에, 많은 영국 국민들과 언론의 예측과 기대에 부응하며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 'Wannabe'와 'Spice Up Your Life' 공연을 했다. 당연히도 영국은 난리가 났고, 스파이스 걸스가 공연을 한 순간은 2012 런던 올림픽의 모든 기간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트윗이 올라온 순간이 되었다. 2012년 12월에 그룹은 한 번 더 모여 뮤지컬 시사회를 가졌고, 스파이스 걸스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또 방송되었다.


2.7. GEM의 결성과 3차 재결성 (2016~)[편집]


2016년 7월에 멜 B, 엠마, 제리는 그들의 이름 앞 글자(Geri, Emma, Mel B)를 따서 'The Spice Girls - GEM'이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열고 영상을 통해 데뷔 20주년을 기념했다. 재결성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빅토리아와 멜 C는 참여하지 않기로 밝혔다고 한다.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두 멤버가 GEM의 활동을 응원한다고 했다고 하지만, 언론 찌라시에서는 멜 C와 빅토리아가 자기들 없이 'Spice Girls'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으며, 이와 관련해 소송을 걸었다고 했다. 2016년 11월에는 GEM이 발표하려고 했던 노래인 'Song For Her'가 유출되었고, 12월 제리가 임신 사실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재결성이 무산 되는가 했지만, 2018년 11월 빅토리아를 제외한 4명으로 재결합 투어를 발표했다.


3. 멤버[편집]


스파이스 걸스는 "멤버들이 각자 'OO Spice'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소녀들이 모여 스파이스 걸스가 되었다"는 그룹 컨셉을 갖고 있다.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당연히 여겨지는 부분이나 1990년대 당시에는 슈프림즈부터 이어져 온, 리드보컬 한 명이 거의 모든 보컬 파트를 차지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화음과 백댄서로만 기능하던 다른 팝 걸그룹들과 차별화되는 스파이스 걸스만의 특징이었다.

제리 할리웰은 'Ginger Spice'로 그룹의 리더이자, 색기를 담당 했다. 강렬한 붉은 색 헤어, 섹시한 몸매와 의상으로 남성 팬들을 주로 모았다. 가창력은 비교적 부족 했지만 1위 솔로 커리어도 가지고 있고, 팀의 컨셉을 만들고 굵직굵직한 히트곡 작사, 작곡 담당을 맡았으며 서브 래퍼 역할도 했다. 팀의 단결력을 공고히 하는 1등 공신이었고, 비즈니스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팬들은 제리가 나간 것이 스파이스 걸스의 활동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세한 내용은 제리 할리웰 문서 참고.

멜라니 C는 'Sporty Spice'로, 사실상 그룹의 메인보컬 역할이었다.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가장 많은 파트를 가져가고, 주로 애드립을 담당했다. 또 'Sporty'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뛰어난 운동신경과 보이쉬한 외모, 매력으로 주로 여덕몰이 담당이었다. 실제로 무대에서도 트레이닝복운동화 차림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까만 머리도 항상 뒤로 묶었다. 데뷔 때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백플립은 지금도 Sporty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 자세한 내용은 멜라니 C 문서 참고.

빅토리아 베컴은 'Posh Spice'로, 그룹에서 귀족 같은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멤버였다. 활동 당시에는 결혼하기 전 성인 '애덤스'를 사용했다. 하이힐만 신는 고고하고 시크한 부잣집 딸, 혹은 얼음공주 컨셉이어서 팬들은 빅토리아가 가끔 웃기만 해도 환호를 했었다. 가창력이 부족 했지만 똑단발의 모델 같은 예쁜 외모와 섹시한 춤 실력을 가진 비주얼 멤버였다. 이런 컨셉은 2012 런던 올림픽 무대에서까지 이어져서, 모두가 춤을 추는 와중에 빅토리아 혼자 포즈를 잡고 있는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빅토리아 베컴 문서 참고.

멜라니 B는 'Scary Spice'로, 그룹의 유일한 흑인이었다. 스파이스 걸스의 음악 세계가 제한된 틴 팝에 머무르지 않고 R&B, 힙합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데 큰 일조를 한 인물이다. 매인래퍼 역할을 해서 데뷔곡 'Wannabe'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노래는 멜 C나 엠마에 못 미쳤지만 평타는 했고, 글래머 몸매와 엄청난 무대 장악력으로 언제나 스파이스 걸스의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돌발적인 행동과 사자 같은 머리, 큰 성량으로 걸크러쉬한 'Scary' 컨셉을 유지했다. 자세한 내용은 멜라니 B 문서 참고.

엠마 번튼은 'Baby Spice'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막내이자 귀여움 담당이었다. 시그니처한 핑크색 옷과 양갈래를 하고 다녔고, 어린 여성 팬층을 책임지는 멤버였다. 항상 소녀같은 미소와 여성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엠마 스톤최애도 Baby Spice. 가창력으로는 팀 내 2인자로, 지금으로 치면 리드보컬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멜 C의 허스키한 음색을 보완해주는 예쁘고 여린 음색을 가졌다. 멜 C와 함께 곡의 중요 부분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파트도 많이 가져갔다. 자세한 내용은 엠마 번튼 문서 참고.

스파이스 걸스는 특이하게도 멤버 전원이 매 싱글 발표마다 작사 작곡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싱글의 컨셉 방향을 멤버들이 스스로 정했고, 작사와 작곡에도 참여했다.

여담이지만, 제리 할리웰을 제외한 멤버들 모두 집에서는 장녀다.[9]


4. 영향과 평가[편집]



4.1. 문화에의 영향[편집]


국내 걸그룹의 조상인 디바, S.E.S.핑클, 베이비복스는 스파이스 걸스나 TLC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중 베이비복스는 소속사 사장이 아예 '한국판 스파이스 걸스'로 만들기 위해 제작한 것도 유명한 일화.[10]

사실 굳이 1세대까지 안가더라도 지금 활동하는 걸그룹만 봐도 스파이스 걸스, TLC 등 과거 영미권 그룹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룹마다 꼭 한 명씩 있는 랩담당 멤버, 멤버별로 정해진 포지션. 캐릭터성이 부여된 애칭 등은 사실 스파이스 걸스 때부터 전해내려오던 유구한 역사.


5. 각종 기록[편집]


  • 전세계 걸그룹 총 음반 판매량 1위[11]
  • 전세계 걸그룹 단일 앨범 판매량 1위[12]
  • 전세계 걸그룹 단일 싱글 판매량 1위[13]
  • 단시간 안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보유[14]
  • 1997년, 1998년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은 여성 뮤지션[15]


6. 음반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스파이스 걸스/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여담[편집]


이들을 모델로 해서 레고 브릭헤즈 시리즈 40548 제품이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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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9년 결혼 전에는 빅토리아 애덤스(Victoria Adams)였다. 결혼 전에는 데이비드 베컴도 라이징 스타였지만 이미 월드스타였던 빅토리아의 인지도가 훨씬 높았으나 결혼 후 인지도가 역전된 케이스.[2] 실제로 1집 앨범이 한국에서 25만 장이나 팔렸다고 한다.[3] 실제로 멤버들 역시 스파이스 걸스의 의미가 여러 양념들처럼 멤버 각자의 개성을 선보이는 그룹이라고 설명한다.[4] "WANTED: R.U. 18–23 with the ability to sing/dance? R.U. streetwise, outgoing, ambitious, and dedicated? Heart Management Ltd. are a widely successful music industry management consortium currently forming a choreographed, singing/dancing, all-female pop act for a recording deal. Open audition. Danceworks, 16 Balderton Street. Friday 4th March. 11.00am - 5.30pm. Please bring sheet music or backing cassette"[5] 다만 제작 당시엔 우여곡절과 혼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원래 바르셀로나에 가서 찍을 생각이었다가 허락을 받지 못해서 허겁지겁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역 앞에 있는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로 정했으며 롱테이크 특성상 리허설을 여러번 했다. 결과물에 대해서도 버진 임원들은 너무 차갑고 혼돈스럽다고 싫어해서 새 비디오를 만들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룹이 거부해서 결국 유일한 비디오로 남았다.[6] 당시에는 안 좋은 의미로 센세이셔널한 파급력을 일으켰다. 이 사건 이후 이지현이 가수를 그만둔 것에는 이 사건도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7] 여담으로 이 가사의 뜻은 피임기구를 끼라는 뜻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인으로서 인지하기 어렵지만 제목부터 가사까지 성관계를 노래하는 곡이다.[8] 당시 제2의 전성기를 맞던 게리 글리터가 찬조 출연했지만, 97년에 소아성애자로 체포되어 장면 전체를 삭제했다.[9] 제리 할리웰은 언니와 오빠가 있는 막내다.[10] 하지만 음악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TLC에 가까웠다.[11] 약 8500만장.[12] 'Spice' 앨범, 약 2200만 장.[13] 'Wannabe' 싱글, 약 505만 장.[14] 'Spiceworld' 앨범, 2주 동안 약 700만장 판매.[15] 이 기간동안 멤버들 1인당 정산받은 금액이 한화로 300억 원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