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니카라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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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3. 문화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스페인니카라과의 관계. 니카라과는 스페인의 지배와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오늘날 니카라과는 반미, 반서방 국가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유로 갈등이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9세기 이전[편집]


16세기부터 중남미의 대부분 지역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니카라과 일대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니카라과 일대는 스페인의 북중미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의 일부였다. 스페인의 지배 하에 스페인인 군인과 관료들이 정착하면서 스페인어가 사용되고, 예수회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파견되면서 원주민들에게 천주교도 전파됐다. 하지만 스페인의 지배당시, 카리브해의 카리브족들 일부가 스페인에 의해 니카라과나 온두라스로 끌려간 적이 있었고 탄압이 존재했다.# 니카라과 북부에 광산이 발견돼 스페인은 원주민 노동력을 징발하여 광산을 운영했다.


2.2. 19세기[편집]


19세기 초반 스페인이 지배하던 라틴아메리카 내륙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누에바에스파냐가 1821년 멕시코 제국으로 독립하면서 1821년 ~ 1823년까지 파나마 지역을 제외한 중앙아메리카 지역 역시 멕시코 제국 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 멕시코 제국은 1823년에 몰락했고 니카라과 지역은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멕시코 제국에서 독립했다. 19세기 중반에 연방에 속한 공화국들이 해체된 뒤에 니카라과는 독립국이 됐다.


2.3. 20세기[편집]


90년대 중반에 니카라과 정부는 스페인 출신을 포함한 해외의 좌파 망명객들에게 시민권을 줬지만, ETA 소속 게릴라들을 스페인으로 추방시켰다.#

2.4. 21세기[편집]


스페인의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니카라과도 스페인의 지배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양국은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회원국이다. 독일, 스페인, 일본 등이 니카라과의 도로와 교량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2002년 1월 11일에 엔리케 볼라뇨스 대통령의 취임식에 펠리페 스페인 황태자를 비롯, 알폰소 포르티요 과테말라 대통령, 미레야 모스코소 파나마 대통령 등 각국 국가원수 4명과 75개국 특사들이 참여했다.#

2017년에 중미 국적의 스페인의 망명 신청자는 총 2,231명으로 온두라스 국적 986명, 니카라과 31명, 엘살바도르 1143명 등이었다가 크게 증가했다.#

2018년에 니카라과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미국, 스페인은 여행경보를 상향 조정했다.#

2021년에 미국, 영국, 스페인, 프랑스는 오르테가 정권의 야권 정치인 체포에 대해 비판했다.#

2022년 오르테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미국, EU, 스페인은 오르테가 정권을 비판했다.#


3. 문화 교류[편집]


스페인어는 니카라과의 공용어이지만, 니카라과의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 차이가 있는 편이고 발음, 어휘에선 중남미식 스페인어에 속한다. 천주교도 토착화된 경우도 흔하다.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존재하지만, 교류는 일부 존재한다.

마나과시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 시절에 세워졌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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