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탈리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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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2.3. 대항해시대
2.4. 근대 초기
2.5. 20세기 전반
2.6. 현대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스페인이탈리아의 관계.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역사적, 문화적, 언어적, 혈통적, 종교적(가톨릭)으로 매우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두 나라는 EU 회원국으로도 활동 중이고 국민 정서적으로도 서로에게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라틴어권 유럽 주요 국가간 관계 중 프랑스-스페인 관계는 사실 근세 지역 패권 경쟁과 근현대 정치적 대립의 역사 때문에 은근히 주로 스페인→프랑스 방향으로 민간 차원에서는 악감정이나 질시도 많은 편이고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반면 적어도 스페인인의 관점에서는 역사적으로도 항상 스페인과 친밀하거나 직접 통치했던 이탈리아계 나라들이 꼭 있었고 문화적 동질감도 높으며 근현대사의 궤적도 비슷한지라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친밀하고 가깝게 느끼는 이웃나라로 이탈리아를 꼽는다. 이탈리아도 역시 마찬가지로 유럽 전체에서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스페인을 자주 꼽는 등 유대감을 깊게 갖고 있는 편이다.

예전에는 같이 로마 제국(서로마 제국 포함)의 영토였던 적이 있었고 종교적(천주교), 문화적, 언어적인 영향으로 이탈리아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다 이베리아 반도에 서고트 왕국, 이탈리아에 동고트 왕국이 건국되었지만 둘 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서고트 왕국과 동고트 왕국은 로마화되면서 라틴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서고트 왕국과 동고트 왕국에서 쓰였던 라틴어도 스페인어이탈리아어로 각각 분화되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고대[편집]


두 나라는 모두 예전에 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그리고 두 나라에서 라틴어가 널리 사용되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지역에 있던 민족들도 로마화되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황제들 중에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에서 태어난 경우도 있었다.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서로마 제국으로 갈라질 때 스페인과 이탈리아 지역은 서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2.2. 중세[편집]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서고트 왕국, 이탈리아에 동고트 왕국이 건국되었지만 둘 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서고트 왕국과 동고트 왕국은 로마화되면서 라틴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두 나라 모두 혈통과 언어면에서 완전히 라틴화되었다. 거기에다 서고트 왕국과 동고트 왕국에서 쓰였던 라틴어도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각각 분화되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이 스페인의 남부와 이탈리아를 지배하기도 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있으면서 라벤나 총독부가 위치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거기에다 이탈리아도 비슷해서 이탈리아 남부 지역은 아랍의 지배를 받고 나중에 시칠리아에 노르만 왕조가 세워지기도 했다. 반대로 북부 지역은 게르만족들이 왕국을 세우기도 했으며 중부 지역은 교황령이었다. 프랑크 왕국이 이탈리아 지역을 차지한 적이 있지만 프랑크 왕국이 동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갈라질 때 이탈리아 지역은 중프랑크 왕국이 되었다.


2.3. 대항해시대[편집]


대항해시대에는 이탈리아의 각 도시국가들은 지중해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이후 스페인이 중남미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면서 이탈리아에 경제적인 영향을 끼쳤다. 거기에다 이탈리아의 남부 시칠리아 왕국아라곤 왕국의 영토이기도 했다.


2.4. 근대 초기[편집]


16세기 중반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이탈리아 전쟁 이후부터 이탈리아 반도 대부분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사실상 지배하에 놓였다. 나폴리-시칠리아 왕국밀라노 공국은 스페인 국왕이 직접 수장을 겸하면서 스페인의 직접통치가 이루어졌고 토스카나 대공국, 교황령, 파르마 공국, 모데나 공국 등도 스페인의 영향력이 강했다. 이 시기 스페인의 영향력을 벗어난 곳은 베네치아 공화국-제노바 공화국사보이아 공국[1] 정도였다. 이런 스페인의 이탈리아 지배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0~1713)으로 인해 종결되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이후 나폴리-시칠리아 왕국과 파르마 공국이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방계가문[2]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면서 16~17세기의 영향력까지는 아니나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회복하였다. 이후 사보이아 공국이 승격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주도로 19세기 중반에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스페인의 영향력은 종식되었다.


2.5. 20세기 전반[편집]


스페인 내전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공식적으로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비롯한 우익 쿠데타 세력에 대한 동맹을 천명하며 대규모로 군사적 지원을 스페인 국민진영 측으로 보냈다. 같이 프랑코 진영을 지원한 아돌프 히틀러나치 독일은 소규모 군사지원단, 공군 지원단 같은 특정화된 분야에서 소규모만 보냈고 반대로 스페인 제2공화국을 지원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철저하게 돈계산하며 받을 건 다 받으며 지원한 반면 이탈리아는 바로 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미개한 아프리카인들' 상대로 깔끔하게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걸 만회도 해야 한 데자 어차피 국제연맹에서 쫒겨난 거 반공을 기조로 한 새로운 국제 질서 세력 개편을 주도하겠다는 목적 아래 수지타산도 안 가리고 직접 파견한 육상 전투부대만 수만 단위로, 돈으로 계산하면 연간 예산의 15% 가까운 지원을 퍼부었다.

이런 이탈리아의 대규모 지원은 바르셀로나 폭격부터 지중해 해안 해상 봉쇄까지 분명 국가군의 승리에 큰 도움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더 적은 수의 공화파 국제여단 상대로 빌빌대다 결국 내전기 내내 프랑코군의 몇 안 되는 야전에서 정직하게 패전한 과달라하라 전투 같은 추태도 보였고 오히려 적대하는 공화인민군도 이탈리아군을 오히려 적대하는 동포들보다도 약한 국가군 전열에서 소위 '약한 고리'로 인식하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결국 무솔리니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프랑코군의 승리를 통한 지중해의 우방 반공 우익 정권 창출이란 목적 자체는 달성했지만 그 과정의 부실함으로 인해 이탈리아의 군사적, 정치적 위상 상승이란 더 큰 정치적 이득은 얻지 못한 셈이고 무엇보다 이 스페인 내전에서 이탈리아가 까먹은 투자는 바로 뒤에 터질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부대 편제나 신무기 개발이나 전부 나가리로 만들어 훗날의 유명해질 수치의 역사를 쌓는 데 큰 일조를 했다. 당시 스페인 국민군 군인들이 과달라하라의 패전 이후 동맹인 이탈리아군을 놀리면서 부른 노래를 보자.

Guadalajara no es Abisinia[3]

,

Los españoles, aunque rojos, son valientes,

Menos camiones y más cojones

에스파냐는 아비시니아가 아니고

에스파냐인들은 설령 빨갱이라도 용감하네

(이탈리아인들은) 트럭 말고 불알[4]

이 더 필요하네

'스페인 사람들은 거칠지만 용맹하고 상무정신이 높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더 풍요로워도 고생을 싫어하고 나약하다'는 이 동네의 유서 깊은 국뽕, 이웃나라 비하 코드가 그대로 반영된 듯한 노래다.

어쨋든 무솔리니 정권의 도움이 우익 진영의 내전 승리와 프랑코 독재 설립에 이만큼 기여한 게 많았으면 프랑코를 싫어하는 민주화 세력과 좌익 성향 스페인인들은 이탈리아를 싫어할 법도 한데 그건 또 아니다. 왜냐하면 스페인 내전 중 분명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정부는 프랑코군을 지원했어도 여전히 파시스트 정권에 반대하던 반체제 성향 이탈리아인들은 반대로 대거 스페인 공화국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마자 프랑스, 소련 등지로 망명했던 팔미로 톨리아티 같은 이탈리아 공산당, 사회당 등에 소속된 인물들 중심으로 망명했던 반체제 이탈리아 정치단체들은 전유럽 규모로 스페인 공화국에 대한 지원 모금과 국제여단원 모집 & 파견에[5] 전력을 기울였으며 당시 이 사람들의 형편을 생각해 보면 그리 적은 숫자도 아닌 3,500명에 가까운 반체제 이탈리아인들이 결국 스페인 공화국 편에서 싸웠고 이는 국제여단원 중에서 가장 수가 많았던 프랑스어권, 그 다음으로 많았던 독일+오스트리아 다음가는 3번째로 많은 사례다.

내전 기간 내내 카를로 로셀리, 넬로 로셀리 같은 망명 나가 있던 유명한 반파시스트 지식인, 정치인들은 공화국을 지지하며 파시스트 쿠데타군, 침략군을 성토하는 여론을 조성했고 훗날 톨리아티에 이어 이탈리아 공산당 당수가 된 루이지 롱고 같은 몇몇은 아예 현장에서 국제여단 지휘관으로 경력을 쌓았다. 스페인 내전 전황이 쿠데타군 쪽으로 기울면서 1938년 말 국제여단은 해산됐지만 안전하게 돌아갈 고향도 사라진 이탈리아 의용군은 대부분 잔류하며 수용소나 총살장의 이슬이 되거나 소수의 악바리 같이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페인 공화국 패잔병, 난민들과 함께 프랑스, 북아프리카 등으로 탈출해 훗날 외인부대 등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그 스페인 공화파 잔당과 같이 레지스탕스에 합류해 싸우고 이 와중에 몇몇은 이탈리아 전선이 개전하면서 연합군의 선봉대로 고향에 돌아가기도 했다. 이러니 전후 들어선 민주 이탈리아 공화국에서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처럼 반프랑코 스페인 망명객들도 많이 받아들이고 프랑코 정권의 국제적 고립에도 일조했다. 이런 식으로 국가간의 관계는 아니지만 망명 정치세력들끼리는 좌익 스페인, 이탈리아 정당, 단체들도 양국의 극우 독재 정권에 맞서 연대와 협조를 지속했던 역사 때문에 복잡하고 대립적으로 얽힌 근대사 속에서도 양국 국민 감정은 정치성향 불문하고 좋은 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에 대조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의 대불감정은 우파는 우파 나름대로 신성한 카톨릭 신앙에 기반한 국체를 무너뜨린 세속주의를 전파한 나라라며 미워하고 좌파는 또 부르봉 왕실부터 시작하여 자국의 우익 독재정들을 지원했다고 미워하는 등 스페인 자국 내 이념 분열과 대립의 역사와 크게 관련있다는 점에서 구도는 이탈리아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지만 결론은 반대로 좌우익 모두 한 마음으로 이유는 달라도 반불감정 자체는 공유하는 형세이다(...). 아래는 각각 당시 프랑코 지원군으로 파견된 이탈리아 의용군 군단 (Corpo Truppe Volontarie) 행진곡과 반대로 스페인 공화파 측에서 싸운 이탈리아인 중심 제12국제여단 가리발디 부대의 노래다. 이념과 싸우는 동기는 정반대의 두 부류의 이탈리아인들이 남의 나라 내전에서 서로 동포한테 총질하는 기묘한 상황에서도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역사 문화적 유대감을 강조하며 스페인에서의 승리가 곧 세계적인 파시즘/반파시즘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공통된 내용이 인상적이다.






2.6. 현대[편집]


현재는 두 국가 모두 민주주의 국가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또 종교(천주교), 언어, 혈통에서는 매우 가깝고 이탈리아에서도 스페인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두나라 유럽 연합, 나토, 라틴 연합에도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둘 다 높은 청년실업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한 큰 피해 때문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또 두 나라는 커피 클럽에 가입되어 있어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견제하고 있다.

경제 구조나 2010년대의 유럽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은 달라도, 근본적으로 더 부유한 북유럽 국가들의 등쌀에 눌려 산다는 자격지심은 공유하고, 서로 언어를 배우는것도 쉬우며, 상술한 공유하는 역사도 많기 때문에 양 나라의 시민 운동가, 반긴축정책 운동가들의 상호 교류도 깊은 편이다. 이러나 저러나 서로 이미 깊은 역사, 문화적 동질감이 있는 판에 현대 자본주의, 국민국가의 관점으로도 공유하는 사회 문제 같은게 많으니 서로 감정적으로 가까울수밖에 없다.

축구에서는 완전 라이벌이다. 유로나 월드컵에서 만나면 유럽 축구 전통 강호라는 자존심을 걸고 경쟁할 정도이다.

2018년에 몰타와 이탈리아가 난민수송선을 거부하자 스페인측은 난민수송선의 입항을 허가했다.# 6월 24일에 산체스 총리는 EU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EU포비아라고 비판하면서 이탈리아의 반이민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했다.# 거기에다 난민비극을 둘러싸고 스페인 NGO와 이탈리아는 날선 공방을 벌였다.#

2019년 5월 8일에 스페인 국왕이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 실수로 프랑코 시대의 국가를 연주하는 외교결례를 이탈리아 측이 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7월 8일에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와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는 마드리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유럽국가들에게 EU 경제회복기금 합의를 촉구했다.#


3. 관련 문서[편집]



[1] 다만 당시 사보이아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의 어머니 베아트리즈가 카를 5세의 황후 포르투갈의 이자벨과 친자매지간이었고,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사보이아 공국을 프랑스로부터 탈환할때 스페인의 도움을 받았던지라 스페인과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의 아들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펠리페 2세의 딸 카탈리나 미카엘라와 결혼하여 스페인과의 우호관계를 이어나갔다.[2] 파르마 공국은 펠리페 5세의 4남 필리포 1세, 나폴리-시칠리아 왕국은 펠리페 5세의 3남 카를로스 3세의 3남 페르디난도 4세들이 통치했다.[3] 아비시니아는 옛날부터 라틴 유럽어권에서 에티오피아를 부르던 명칭이다.[4] 즉, 배짱[5]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대부분 정부들이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뚜렷한 자국민들이 남의 나라 내전에 참여해 싸우러 가는 걸 안 좋게 봤고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같은 우익 정권들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아예 탈출해서 스페인으로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미션이라서 국제여단원들을 모으고 위조 여권, 차편 등을 마련해 주는 기본적인 모집 & 배치 작업 자체가 코민테른이 총력을 기울인 하나의 작전이었다.[6] 과거에는 스페인 지역과 이탈리아 지역이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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