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r2021030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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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영어
Sadness, Sorrow, Grief
중국어
悲哀
일본어
悲しみ
베트남어
nỗi buồn
에스페란토
malĝojo, funebro

1. 개요
2. 상세
3. 기타
4. 관련 어록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 중 하나. 울면 감정표현이 된다.
이것이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2. 상세[편집]


자신, 또는 남의 불행이나 실패의 경험, 예측 또는 회고(回顧)를 수반한 우울한 정서를 말한다. 혈액순환이 약해지고, 호흡이 느려지며, 안색이 창백해지고, 흔히 눈물을 흘린다.

감정들 중 나약함과 무기력함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기도 하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이 슬퍼해야 할 것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1] 비인간적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노나 증오와 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감정들은 슬픔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뒤흔든 사회운동들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 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 감정은 때로 좌절과 고통을 수반하고, 지나칠 경우 자해자살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수많은 문화나 성인 및 문명의 발전은 이 감정을 통해 이루어졌다.[2] 슬픔은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 흥분이 심해지다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데, 분노와 슬픔이 주로 그렇다. 분노의 경우에는 제대로 폭발시켜서 신중을 잃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지만, 슬픔은 진정시키고 현재 상황을 검토시키는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축 처지면 역시 건강과 인간 관계상 좋지 않고, 분노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가 되기도한다.

슬픔은 기쁨보다 훨씬 보편적인 감정이다. 슬픔을 겪은 사람은 타인의 슬픔에 반응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알며, 위로할 줄 안다. 위로받은 슬픔은 인생의 실패나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설 원동력이 된다. [3]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바로 슬픔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장기간 슬픈 경우 우울증이 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슬픔을 배제해버리면 오히려 그 상처가 곪아 조울증이나 증오분노같은 감정으로 바뀌어, 현실적이지 못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기에, 슬픔 또한 어느정도 받아들여야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기타[편집]


신파적인 분위기의 문학작품의 대부분은 이것을 주로하여 이야기를 서술해나간다. 또한 문학적으로 슬픔을 이용하여 보편적인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슬픔조차 선이다."라고 한다.

원래 8대 악성(식탐, 색욕, 인색함, 슬픔[4], 분노, 태만, 허영심, 교만) 중 하나였으나, 나중에 8대 악성이 칠죄종으로 재정립되면서 허영심과 함께 빠져나가고 질투가 대신 들어갔다.

인간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으로 외부적으로 표출할 경우 우울증이나 조울증 발병 확률이 저하되기도 한다.


4. 관련 어록[편집]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 윤동주, 〈팔복〉 [5]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슬픔은 찰나의 고뇌이며, 슬픔에 빠지면 인생을 망친다."

- 벤자민 디즈레일리


"슬픔만큼 불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 초기의 슬픔은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지만, 슬픔이 만성화되면 조소를 받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 세네카


지나친 슬픔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파괴를 낳고

파괴는 죽음을 낳고

죽음은 다시 슬픔을 낳는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 엘라 윌콕스[6]


슬픔이라는 감정은 지속되면 이라는 감정을 낳게 된다.

슬픔이 지속되면 한은 급격히 커지게 되고,

그 극대화 된 한은 고통, 분노, 증오 보다도 더 강하다.

라르 - 판도라의 아이들[7]



5. 관련 문서[편집]



[1] 사단에서도 말하는 측은지심.[2]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이 감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3]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퍼서 쳐진 빙봉을 위로할 수 있었던 건 기쁨이가 아니라 슬픔이었다. 또, 고장난 계기판을 고치고 박살난 인격 섬을 복원한 것도 절반 이상 슬픔이의 공적이다. 이 영화가 심리학적 고증이 매우 잘 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상황이 상당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4] 단 여기서 말하는 슬픔은 영어론 despair로, 슬픔보단 절망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잘 맞는다.[5]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마태복음 5장 4절에 유사한 문구가 있으나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6] 고독이란 시의 구절. 영화 올드보이에서도 인용되었다.[7] 케이넷 피 에서 만든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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