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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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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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ee1c25><width=33%> 초대 ||<width=33%> 제2대 ||<width=33%> 제3대 ||
||<rowbgcolor=#ffffff,#191919> 마오쩌둥 || 덩샤오핑 || 장쩌민 ||
|| 제4대 || 제5대 ||
||<rowbgcolor=#ffffff,#191919> 후진타오 || 시진핑 ||
||<-3> 1.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는 공식적인 직책이 아니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역임한 최고 실권자를 의미한다.
2. 화궈펑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비록 역임했으나 집권 기간이 짧고 사실상 덩샤오핑이 집권했기에 이 틀에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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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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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역임한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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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제7대 주석
시진핑
((Jìn(píng(習近平, 습근평[1]) | Xi Jinping


파일:시진핑.png

출생
1953년 6월 15일 (70세)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2]
재임 기간
제8대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2008년 3월 15일 ~ 2013년 3월 14일
제6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2012년 11월 15일 ~ 현직
제16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2012년 11월 15일 ~ 현직
제7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2013년 3월 14일 ~ 현직
서명
파일:시진핑 서명.svg
링크
파일:pngwinsg.com.png
시진핑 사상
파일:pngsseg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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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양양 습씨(襄陽習氏)[1][2]
조부모
증조부 시용셩(習永盛)
조부 시쭝더(習宗德)
조모 차이차이화(柴菜花)
부모
부친 시중쉰(習仲勛)
모친 치신(齊心)
형제자매
이복형 시정닝(习正宁),
이복누나 시허핑(習和平)[3], 시간핑(習乾平)
누나 치차오차오(齊橋橋), 치안안(齊安安)
남동생 시위안핑(習遠平)
배우자
전처 커링링(柯玲玲) (이혼)[4]
배우자 펑리위안(彭麗媛)[5]
자녀
딸 시밍쩌(習明澤)[6]
학력
베이징베이하이유치원 (수료)
베이징81학교 초등부 (졸업)
베이징101중등학교 (졸업)
칭화대학 (화학공학 / 학사)[7]
칭화대학 인문사회학원 (법학 / 박사)[8]
종교
무종교 (무신론)
신체
180cm[9] | 100kg 이상[10] | B형
소속 정당


1. 개요
2. 생애
3. 집권
5. 정치력 평가
8. 저서
9. 필모그래피
10. 국제 여론
10.1. 2020년
12. 어록
13. 매체에서
14. 여담
1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20차 당대회 시진핑.jpg

국가주석 3연임이 확정된
2022년 20차 당대회의 시진핑


中国人民也绝不允许任何外来势力欺负、压迫、奴役我们,谁妄想这样干,必将在14亿多中国人民用血肉筑成的钢铁长城面前碰得头破血流!
중국 인민은 또한 어떤 외세도 우리를 괴롭히고, 억압하고, 노예로 부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것들을 망상한다면, 14억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쌓은 강철같은 장성에 반드시 머리가 깨어져 피를 흘리게 될 것입니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연설 中[3]

#


중화인민공화국의 제7대 주석이자 독재자.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 되었다. 또한 제6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역대 중국 최고영도인 중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출생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중국 헌법에 명시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하며 종신집권의 야욕을 드러냈으며,[4] 2021년 중국공산당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통해 종신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2022년 10월 22일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 폐막에서 3연임을 확정했다. 이로써 2연임 초과 금지 원칙을 깨고 사실상 영구집권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동일한 반열에 올렸다.

2. 생애[편집]



파일:Xi_Jinping,_Xi_Yuanping_and_Xi_Zhongxun_in_1958.jpg

5세때 촬영된 사진 맨 왼쪽의 인물이 시진핑.

1953년 6월 15일, 베이징에서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중쉰은 동료 공산당원 하오밍주(郝明珠)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낳고 1943년 이혼한 후, 1944년 치신(齐心)과 재혼하여 2남 2녀를 두었는데, 시진핑은 그중 셋째이다. 즉, 총 3남 4녀 중에서 6번째 자녀인 셈.

1962년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5]에서 시중쉰이 펑더화이[6]로 몰려 반당(反黨) 집단의 낙인이 찍혀 오지로 귀양갔고, 당시 16살이었던 시진핑도 아버지를 따라 산시 성 시골로 하방(추방)되어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이 당시 시진핑이 토굴에서 7년간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어렵게 산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실각해서 평민이 되었는데다,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아버지가 마오에게 대약진운동에 대해 항의하다가 실각해서 대역죄인으로 찍힌 펑더화이의 부하에다가 반동을 미화한 소설을 펴낸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박해를 받았다. 이때, 아버지가 전처와 낳은 이복 맏누나 시허핑(习和平)은 '반동의 딸'로 홍위병에게 두들겨 맞다가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시진핑도 이 당시 상당히 힘든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일:FPQc-fykcpru8013304.jpg

1973년 촬영된 사진 왼쪽에서 2번째에 있다.

소싯적부터 리더십이 있었는지 하방 당한 곳에서 노동자들을 지도하여 최고의 생산량을 올렸다고 한다.[7] 입당 신청을 했으나, 아버지가 반동으로 찍혔기 때문에 여러 번 퇴짜를 맞다가 문화대혁명이 완화된 1973년에야 겨우 입당했다. 이어 1975년 칭화대학의 화학공학과에 '공농병(工农兵) 추천 청강생' 신분으로 무시험 입학했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화궈펑이 정권을 잡고 중앙군사위 주석, 당 총서기, 국무원 총리 세 자리를 모두 장악했지만 리더십이 모자랐기 때문에 결국 1979년 부총리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실각했고, 실권은 부총리이자 인민정치협상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 장악했다. 덩샤오핑은 부총리던 1978년 1962년 이래 16년간 죽 야인으로 지냈던 시중쉰을 정계로 복귀시켰고, 시중쉰은 1970년대 말부터 당 고위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즈음 대학을 졸업하게 된 시진핑도 당당히 태자당에 진입하게 되었다.

약력을 보면 <1979—1982년 국무원 판공청,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비서(현역)>으로 나오는데 갓 화공학부를 졸업한 대학생이 한국으로 치면 국방부 장관 비서진으로 3년간 활동한 것이다.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최고 지도자는 군사적 능력을 중요히 여기는 중국에서, 혁명 원로인 아버지의 후광을 받아 새파랗게 젊은 대학 졸업생부터 군부에 인맥을 형성했다. 이후에도 당부에서 일하며 총서기에 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군부에 끈이 있다고 평가를 받는다. 전 총서기 후진타오가 군부에 끈이 없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상당히 늦게 인계받은 것에 비해 (후진타오의 뜻도 있었지만) 바로 받은 시진핑은 처음부터 최고 지도자로서 군권 쪽은 훨씬 영향력이 크고, 중국 입장에서 군부 개혁에 내부적으로는 다른 대안이 없다 본다고 한다.

대학 졸업 3년 후인 1982년부터 허베이성의 정딩현의 당부서기를 맡는 것을 시작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이후 허베이성을 거쳤다가 1990년대부터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보이는 남부로 전직했다. 그리하여 푸젠 성, 저장 성 등 동남부 지방 정부에서 지냈는데,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를 지내면서 장쩌민주룽지의 파벌인 상하이방과도 관계를 맺게 되어 태자당과 상하이방 양쪽의 후원을 받는 거물로 성장했다. 1998년 5월, 1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도 역임해 왔으며 2002년 11월, 1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상하이시를, 2018년부터는 내몽골 자치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2007년 10월, 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은 아예 건너뛰고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파격적으로 승진하였다.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 직에 올랐다. 하지만 이때까지 보시라이와 리커창에 비해 외국에 덜 알려졌으며 한국에서도 그가 중국의 주석에 오를 것으로 미리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부주석을 지냈던 쩡칭훙 외에도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지지와 후원 모두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주석 겸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처 제1서기를 역임하다가 2010년에 당 중앙 군사위 부주석 직에 오르면서 후진타오를 이을 차기 지도자로 공인되었다.

영국 주재 대사의 딸이었던 첫 아내와는 성격 차이로 이혼했고, 재혼한 현 부인 펑리위안중국 인민해방군 예술단 소속의 가수[8]로 중국의 국민 가수로 불리는 사람인데, 펑리위안의 인기도 시진핑의 권력 상승에 도움이 되었다.


3. 집권[편집]


시진핑의 집권은 이전 주석들인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미묘한 권력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날 상하이방장쩌민공청단후진타오에게 정권을 양도한 것은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덩샤오핑이 생전에 장쩌민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되 후진타오를 장쩌민의 후계자로 하는 조건으로 정권을 인수인계 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에 장쩌민은 정권 자체는 후진타오에게 인계해 주었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들은 대부분 상하이방으로 채우는 꼼수를 썼고 결국, 후진타오를 반쪽 짜리 주석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4세대 지도부가 출범할 때 지도부 9명 중 6명이 전부 상하이방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2006년 장쩌민이 차기 주석으로 밀던 상하이방황태자 천량위가 비리 문제로 낙마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말하자면 후진타오의 공청단이 일격을 가한 것이다. 천량위의 비리 수준은 장쩌민조차도 실드를 쳐주지 못할 정도였기에 그로서도 이 숙청은 불가항력이었다. 후진타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해 2007년에 17차 공산당 대회에서 기회를 놓칠 새라 자기가 후계자로 밀던 공청단의 리커창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리커창을 주석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쩌민과 상하이방으로서는 리커창의 집권만은 막아야 했기 때문. 결국 상하이방도, 공청단도 아닌 태자당의 시진핑이 대안으로 올라오고, 리커창은 주석이 되지 못하고 총리로 만족해야 했다.[9]

시진핑의 빠른 부상엔 후진타오의 협조도 한몫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주석직에는 2003년에 올랐으나, 장쩌민이 권력을 내놓지 않겠다고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바람에 5년 동안 반쪽짜리 권력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3년 중국 공산당 제18회 당 대회 때 후진타오로부터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동시에 이양받았고,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국가 주석 임기가 끝나면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국가 주석 직도 승계하였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2013년 3월 14일부터 다른 일이 없는 한 2018년 3월 14일의 연임을 거쳐서 2023년 3월 14일까지 중국과 중국 공산당 전체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하고 관리형 주석으로 보였던 시진핑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10년 임기는 물론이고 종신임기까지 바라보는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는 후술한다.


4. 임기 중 행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시진핑/행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정치력 평가[편집]


시진핑이 주석으로 갑자기 등극하기 전까지 후보로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며, 실제로 조용한 성격이다. 후진타오 시대에 태자당의 선두주자였던 보시라이가 스스로 무리수를 범하다가 몰락하지 않았다면 시진핑은 절대 후보로 발돋움할 수 없었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시진핑은 푸젠성 위 부서기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 후보위원 150명 중에서 151등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진핑이 특채 위원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관례상 150명만 뽑는 중앙위 후보위원 자리에 당 고위 간부들이 시진핑을 억지로 밀어넣어서 151위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 원로였던 아버지 시중쉰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은 불문가지다. 도올 김용옥은 핸디캡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당 총서기가 된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번지수 틀린 찬양을 늘어놓았는데, 위에서 봤듯이 당 간부들이 특채해서 중앙위 후보위원이 됐기 때문에 명목 서열상 꼴찌였을 뿐, 아직 깜냥도 안되는 중앙위 후보위원 자리에 덥썩 뽑힌 것은 누가 봐도 핸디캡이 아닌 특혜인 것이다.[10]

다만 잘해봐야 말석으로나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대권을 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원래 금수저인 시진핑이 당 고위 간부에 진입하는 것은 쉬웠어도, 당 최고위직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본인의 능력뿐 아니라 공산당 내부의 살벌한 경쟁을 뚫어야 하며, 이것을 뚫고 대권을 장악한 것은 아버지 덕이 아니라 혈통 외의 시대적 운이 따라줬고 본인이 이루어낸 것이다. 보시라이의 자충수와 파벌 간 타협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운이 따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운도 좋았지만, 운이 다가왔을 때 놓치지 않고 거머쥘 만큼 능력도 있긴 있었다는 것이다.

총서기가 된 이후 절대 권력자가 된 것에는 시진핑의 정치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총서기가 된 2012년에는 사람들은 그가 강력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공청단이나 상하이방 계파 소속이 아니라서 2012년 당시에는 자기 세력이 없었고 온화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몸을 낮춰 적을 만들지 않아 당내 계파들의 타협으로 총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11] 공산당 서열 2위이자 국무원의 총리인 리커창은 사실 성격이 호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진핑은 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무색무취하고 안정지향적으로 보였다. 때문에 계파의 타협을 통해 총서기가 된 시진핑은 집단지도체제허수아비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임자였던 후진타오도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덩샤오핑이 죽기 전에 장쩌민의 후계자로 직접 지목했다는 정통성이 있었고 공청단이라는 지지 세력이 있었던 반면 그런 스토리와 뒷배경이 없었던 시진핑은 후진타오보다도 약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2011년~2012년 당시 기사들을 보면 시진핑은 '조심스럽다', '튀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위키리크스에서는 중국 공산당 내부자들로부터 지도력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총서기 취임 이후에도 반부패 운동 초기에는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일시적인 백일 엄포로 고위직은 무사할 것'이라는 과소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자기 성격까지 숨기며 몸을 낮추던 시진핑은 총서기 취임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내 생각에 나와 당신은 성격이 닮았다."[12]라고 말하며 절대 권력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랑이든 파리든 모조리 때려잡겠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반부패 정책을 펴기 시작해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차례 숙청해 나가며 반대 세력을 일소했다. 물론 자기 밑에 있던 지지 세력들이 저지르는 부패 행위는 봐줬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3월 11일에는 개헌을 통해 국가 주석직은 세 번 이상 맡을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하여 종신 집권으로 가는 문까지 열어버렸다.[13][14]

그전까지 중국 권력 승계 규범[15]에는 최고 지도자는 10년 이상 하지 않고, 승계 10년 전부터 후계자 구도를 몇 명으로 간추려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경험을 시켰는데, 시진핑에게는 후계자로 확실시 되는 인물이 없었다. 이유로는 2가지가 제시되었는데, 첫째는 후계자가 있을 때 최고 지도자에 승계 압력이 거세서 생기는 최고지도자의 레임덕을 방지한다는 것, 둘째는 승계를 안 하고 당시까지의 규범인 10년을 넘어 더해먹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해외에서의 시진핑의 정치력 평가는 이전 주석들에 비하면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해졌으며, 대외관계에 강압적인 노선을 타면서 자국의 이미지를 제대로 망치고 있다는 게 주요 평가다.


6. 비판과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시진핑/비판과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저서[편집]


파일:시진핑, 국정운영을 말하다.jpg파일:시진핑, 국정운영을 말하다.png


9. 필모그래피[편집]




10. 국제 여론[편집]



10.1. 2020년[편집]


파일:PG_2020.10.06_Global-Views-China_0-03.png

2020년 퓨처 리서치 센터에서 세계 14개국 국민들에 대해 시진핑에 대한 신뢰 여부를 질문한 결과, 불신(No Confidence)한다는 응답이 전 세계에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이번 조사에서 시진핑에 대해 가장 강한 불신을 보인 국민은 일본인들이며, 전체 응답자의 84%가 시진핑을 불신한다고 답했다. 한국인들 역시 시진핑에 대한 불신 강도가 83%에 달해 일본 다음으로 시진핑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은 시진핑에 대한 불신 강도가 2019년 50%에서 2020년 77%로 1년 사이에 27%p나 급등했다. 다른 나라(특히 서양 나라)들도 2020년 코로나19의 여파로 불신도가 큰 폭으로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PG_2020.10.06_Global-Views-China_0-12.png

시진핑에 대한 각국의 여론 추이 변화. 링크 한국은 유일하게 시진핑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았다가(비호감 29%)[16] 비호감(비호감 83%)으로 바뀐 나라다.[17]

호주 역시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긴 했지만, 비호감도도 37%에 달하는 등 무작정 시진핑에 대해 호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이나 머니 유치를 위해 호주의 각종 섬과 항만을 2013년부터 중국 국영기업들에게 99년차 계약으로 팔아치우고 있었고 이게 대중들에게 문제시되기 시작한 건 2018년 이후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시진핑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후 2021년 호주-중국 무역 분쟁이 점화되고 나서부터는 시진핑의 대한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11. 별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시진핑/별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어록[편집]


각급 지도 간부들은 모두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고 권력을 엄격히 사용하며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또한 일함에 있어 실속이 있고 착실하게 창업하며 성실해야 한다.[18]

2014년 3월 9일, 안휘대표단 심의 참가 때.


국제사회에서 법률은 공동의 준칙이어야 한다.[19]

2014년 6월 28일, 평화공존 5대 원칙 선포 60주년 기념대회에서의 발언.


신형의 정부와 기업가 관계를 총화하면 바로 ‘친(親)’과 ‘청(清)’ 두 글자이다.

2016년 3월 4일, 중국민주건국회, 공상업연합회 위원 방문 때.


모든 입법안이 헌법정신에 부합하고 여론을 반영하며 민심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20]

2014년 9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창립 60주년 경축행사에서의 발언.


자신의 눈을 아끼듯이 민족 단결을 아끼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듯이 민족단결을 소중히 여기며 석류알처럼 굳게 뭉쳐야 한다.

2017년 3월 10일, 신강대표단 심의 참가 때.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다.[21]

2017년 8월 1일,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을 맞아 국영 매체로 생중계된 베이징 인민대회당 기념식 연설에서.


인권 '가정교사'는 필요 없다.[22]

2020년 9월.


패권을 추구하려는 세력에겐 죽음의 길만 있을 뿐입니다.

2020년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


시진핑 : (태국 총리에게) "총리님도 축구 좋아하십니까?"

세타 타위신 : (시진핑에게) "네. 좋아합니다. 어제 중국이 태국을 이겼잖아요."

시진핑 : (통역사에게 중국이 태국을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요?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지금 우리 축구 대표팀의 수준에 대해 (잘 한다고) 확신할 수 없어요. 기복이 있습니다."

- 2023년 APEC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세타 타위신의 대화에서 나온 장면이다. 물론, 외교적 매너 차원에서 겸손한 대답을 한 것이겠지만 한때 축구굴기를 기치로 걸고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축구에 쏟아부었다가 실패했던 기억이 있는 시진핑이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이 더욱 화제가 되었다. 그 오만한 성격의 시진핑마저 중국 축구 대표팀의 실력을 믿지 못하면서 형편없다고 겸허하게 인정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13. 매체에서[편집]


파일:강철비2 시진핑1.png
파일:강철비2 시진핑2.png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배우 신훈희가 연기했다. 중반에 조앤 마틴 부통령과 전화로 대화하는 장면으로 잠시 나온다. 미국에 대한 위로를 전하면서 스무트 대통령의 녹취록 자백을 들으며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라고 말하는 것으로 장면이 나온다.


14. 여담[편집]


  • 삼국지에 등장하는 습정의 후손이다. 정확하게는 습정의 후손인 동진의 역사가 습착치의 후손이라고 한다.

  • 축빠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는 메시유니폼까지 선물 받고 좋아할 정도다. # 2011년 당시 민주당 대표이던 손학규와 만남 당시 "중국이 월드컵에 나가고, 월드컵을 유치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내 3가지 소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영향력 때문인지 중국의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서 체육 과목 구기 테스트 종목에 축구가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 그래서 그런지 AC 밀란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잇따른 삽질로 현재는 중국 국가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접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23] 대신 중국 슈퍼 리그를 무지막지하게 키우자는 걸로 방향 전환을 했다고 한다. 축구굴기라 해서 중국 축구 산업을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전국에 축구 전문 학교 2만 개 설립을 하고 있는데, 2만 개면 대한민국 전국에 있는 학교 수보다 많다. 시진핑의 음성을 변조해 시진핑의 축구 사랑과 독재를 한데 엮어 패러디한 인간관악기 영상도 있다. 간체자로 되어있고 중화인민공화국 내부의 정치사정에 해박한 걸 봐선 시진핑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해외거주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이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 젊은 시절 권투를 배웠었다고 하며, 자세를 취해보인 적도 있다. # 이와 별개로 기사가 쓰였던 2014년 당시에는 국내에서 시진핑의 인상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그런 지 시진핑을 좋게 보는 댓글들이 꽤 된다.

  • 바둑을 즐긴다고 하며, 이창호의 팬이기도 하다. 2014년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이창호의 얼굴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악수하기도 했다. # 청와대에서 국가 간 선물 교환 시에도 한국에선 바둑알을 선물했다.

  • 2014년 7월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서울대에 책 기증 의사를 밝혔고, 약 1년 후 서울대 도서관에 책, 정기 간행물, 영상물 약 1만 점을 기증하여 약속을 지켰다. #

  • 글로벌공학교육센터(38동)에는 시진핑의 방문 강연을 기념하여 대강당(520호)을 '시진핑홀'로 명명했다.#

  • 2015년에는 중앙도서관에 '시진핑 자료실'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서울대 안에는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한 어느 서방 국가 전·현직 국가원수 도서·자료실도 없고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자료실조차 없는데도 위와 같이 별도 공간이 마련된 데에 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 베이징(北京)이 베이핑(北平)이던 시절 베이핑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이름이 近平(진핑)이다. 동생은 가족들이 베이징과 멀리 있을 때 태어나 이름이 위안핑(遠平).

  • 인도의 한 뉴스 앵커가 Xi Jinping의 Xi를 로마 숫자 11로 착각해 Eleven Jinping으로 읽었다가 해고된 적이 있다.[출처1]

  •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나폴레옹이 중국한테 했던 "중국은 잠자는 사자다. 잠에서 깨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라는 말을 인용해서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이 사자는 평화적이고 친절한 문명 사자다."라고 말했다. # 뒷 말은 확실히 그냥 해본 말인 듯



  • 중국 대학생 네티즌들이 뽑은 카리스마형 훈남이라고 한다. 참고로 미국 순위 선정 매체 ‘하티스트 헤즈 오브 스테이트’(Hottest Heads of State)[24]에서는 196위를 했다. 즉, 전 세계의 지도자들 중에서 외모가 최하위권. 참고로 꼴찌는 북한의 김씨.

  • 김용옥차이나는 도올 방송에서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과 더불어 매우 칭찬했다. 서방이나 국내 언론에서 시진핑의 부패 척결이 권력 강화의 수단이기만 하다는 일각의 견해를 부정하고, 시중쉰이 어린 나이에 큰 공산주의 조직을 세웠던 것이나 천안문 사태후야오방을 지지했던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장기집권 의도를 드러내면서 독재와 우상화를 본격화하고 나선 2018년 시점에는 방송에서 스스로 자신이 "똥이 됐다." 하고 탄식하며 비판파로 돌아섰다.



  • 전원책 변호사에 따르면 시진핑은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닌 이상 말을 최대한 아낀다고 한다. 아마 과거에 있었던 아버지 시중쉰이 숙청당하면서 온갖 고초를 경험하는 걸 봤기에 말 한 마디가 나중에 발목 잡힐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출처2]

  • 2014년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 애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시진핑의 지지율은 내치(內治) 94.8% 외치(外治) 93.8%라고 조사되었다고 한다.[출처2]

  • 사드 배치 논란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호감도가 의외로 높았던 인물이다. 2013년에는 호감 40% 비호감 20%로 호감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가당시에는 호감도가 55.1%로 오르기까지 했다. 사드 논란 이후에는 혐오 대상이 되어 호감도가 20%대로 떨어졌지만 트럼프, 푸틴, 아베 등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괜찮았다. 하지만 당선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던 트럼프는 방한 이후 한국에서 트럼프의 호감도가 괜찮아졌고 시진핑이 장기 집권에 성공하면서 호감도가 또 내려가는 중이다. 결국 트럼프에게 역전당했다. 지금은 아예 혐중감정으로 인해 트럼프가 상당한 지지를 얻게 된 상황이다.


  • 머리숱이 엄청나다. 아버지 시중쉰도 머리숱이 엄청난데 유전인 듯하다. 그 동안 흰 머리를 감추다가 공식 석상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




  • 미얀마를 방문하는 글 시진핑의 페이스북 자동번역 결과 '똥구덩이'로 번역되는 소동이 있었다.#

  • 중화민국에 대해 엄청난 강경책을 펼치고 대중음악을 탄압하는 시진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화민국의 군통령이자 아시아의 가희로 유명했던 등려군의 광팬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등려군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의 필름이 다 늘어질 정도로 매일 즐겨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등려군이 살아있었다면 시진핑의 초청으로 중국에 방문하지 않았을까 라고 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짤이 있다. 자금성에 초빙한 도널드 트럼프와 회견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2017년 11월이라 날씨가 꽤 쌀쌀했다. 이때 시진핑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트럼프와 눈이 마주치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굳어진 얼굴로 뻘쭘한 것처럼 보였다. 이게 개그 아닌 개그로 움짤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촬영된 영상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진핑은 트럼프와 대화하면서 계속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한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두 명 모두 대화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 # 그런 와중 자금성을 둘러보던 트럼프가 시진핑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우연히 시진핑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게 촬영되어 앞뒤 자르고 그 부분만 와전되어 퍼진 듯하다. 또한 시진핑 특유의 굳어진 표정은 외국 정상이나 대사를 만날 때 으레 하는 표정으로 꽤 유명하다. #, #

  • 의외로 불교와 인연이 있다. 80년대 징딩현 당부서기 시절 당시, 국공내전으로 폐사가 되어버린 당나라 시대 사찰 임제사(臨濟寺) 재건에 크게 기여했다. # 모친 치신은 아예 티베트 불교 신자라는 루머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무신론에 따라 종교인은 중국공산당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시진핑은 무종교인이고 우상화를 위해 티베트인들을 탄압하고 불교유적들을 부수고 있다.[25]

  • 2019년 11월 내지는 12월부터 펑리위안과 딸 시밍쩌랑 별거에 들어 갔다는 소문이 있다. #, #

  • 영어는 그럭저럭 알아 듣는 편이지만 말하기는 부족한 편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전 주석 중 한 명인 장쩌민은 영어실력이 좋은 편이었으며 심지어 미국에서 영어로 연설하기도 했다.

  •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건국 이후에 태어난 인물이다.[26]


  • 그의 외동딸 시밍쩌는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였다. 그리고 살이 제법 있는 시진핑과는 다르게 날씬한 체형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그녀의 사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2022년 8월, 중국 관영매체가 판다 새끼 이름 공모전을 전격 중단했다. 자이언트 판다 이름 취취(翠翠)가 화제가 되었는데 "취취를 위해 기도하자"(让我们一起来祈翠)는 등의 네티즌들의 많은 글이 올라왔다. 그런데 파자하면 习, 习, 이 되어 시진핑이 죽는다는 의미가 된다. 취취를 위해 기도하자는 글도 시진핑이 죽기를 기도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 시진핑과 관련된 은어를 제로화 하는 것이 코로나19를 제로화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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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년생임에도 키가 큰편이다. 젊은시절에는 180cm였고 현재는 177cm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70대의 나이를 생각하면 키가 큰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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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룬 씨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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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진핑
미겔 디아스카넬

재위 중인 군주 · 재임 중인 대통령 및 총통
재임 중인 총리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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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변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습근평이라고 표기한다. 시진핑이 저술한 서적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출판된 저서가 '시진핑 국정 운영을 말하다'인데,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습근평 국정 운영을 론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도 한국 한자음으로 뉴스에서 습근평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2010년대 초반 한때 중국 인·지명을 중국식 발음으로 도입하려 시도했으나, 정착에 실패한 적이 있다.)[2] 진핑(近平)이라는 이름도 베이핑(北, 베이징의 중화민국 시절 이름) 가까이()에서 태어났다는 뜻. 여담으로 베이핑에서 베이징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1949년이다.[3] 이 연설에서 시진핑은 '중화민족당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서방에선 시진핑이 패권주의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신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두파혈류'(头破血流 : 머리가 깨어져 피를 흘림)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도 큰 화제가 되었다.[4] 전인대는 2,964표 가운데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9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개헌 전 중국 지도자의 임기는 10년으로 제한됐었지만 개헌 후에는 종신집권도 가능할 수 있게 됐다.[5] 1954년 시중쉰의 동료인 류즈단의 전기가 나왔는데, 중공 정권 수립 후 처음으로 숙청된 '반동' 가오강이 미화되었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이 다친 사건이다. 작가뿐 아니라 이를 펴낸 시중쉰 또한 반동이 되었다.[6] 시중쉰은 중공 정권 수립 후 서북 지역 제1서기, 군정 위원회 주석이던 펑더화이가 6.25 전쟁 지휘관으로 불려가면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9월까지 서북 지역 군정위 부주석, 주석 대리와 경제 총책을 맡았다.[7] 다만 이런 류의 일화는 어린이 위인전마냥 후대의 미화가 상당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한다.[8] 2012년 기준 현역으로 계급은 소장이다.[9] 이 와중에 치열한 라이벌이었던 태자당의 보시라이의 몰락도 한몫했다.[10] 여담으로 한때 시진핑을 '중국의 축복'이라고까지 찬양하던 김용옥은 시진핑이 종신 집권을 추구하는 걸 보며 자신의 안목이 틀렸음을 마지못해 인정했다.[11] 보시라이와 같은 태자당이지만 시진핑은 그 같은 강경파가 아닌 온건파 지도자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12] 하지만 푸틴의 성격은 꼼꼼하다 못해 편집증적인 면이 있을 정도로 신중한 반면, 시진핑은 정치적 결정에 있어 상당히 즉흥적이다. 둘 다 조용한 성격에 권력욕이 매우 강하다는 점만 같다.[13] 여담으로, 김정은도 비록 김정일이 지정해 주었다는 강력한 정통성은 있었을지언정 워낙에 개인적인 약점이 많았던 데다가 북한 군부에 워낙에 쟁쟁한 어르신들이 많아서 그냥 눌려지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국엔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숙청에 숙청을 거듭하여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런 면에서는 시진핑과 행보가 유사한 셈이다.[14] 본인 딴에는 닮았다고 했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을 쓰기 때문에 민주주의 원칙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매우 교묘하고 조용한 방법으로 독재의 틀을 마련했지만, 시진핑은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안 쓰고 헌법을 독재에 알맞게 뜯어고쳤다.[15] 법=규칙이 아닌, 수뇌부들의 합의인 규범[16] 한국의 경우, 시진핑은 임기 초에는 박근혜친중 정책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에 대해 그럭저럭 호의적인 편이었다.[17] 허나 어떤 나라들은 2017년부터 조사한 자료밖에 없다.[18] 정작 시진핑 본인은 독재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측근들에게는 매우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 있다. 또한 성실하게 일해온 마윈을 사실상 알리바바에서 내쫓았으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 초기에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은폐했다. 여담으로, 마윈은 중국공산당의 주요 간부는 아니지만 중국공산당 소속이다.[19] 정작 시진핑 본인은 유엔 헌장이나 세계 인권선언, 국민주권 같은 국제사회의 원칙을 제대로 안 지키고 미얀마, 대만, 한국 등 내정간섭을 하거나 아프리카로의 일대일로로 식민화 정책을 시도하는 등의 제국주의 정책을 진행해 왔다.[20] 정작 시진핑 본인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에 철퇴를 마구 때리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21] 중국 입장에선 UN군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인 상태에서 참전해 결과적으로 휴전선까지 밀어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참전 목적은 한반도의 적화 통일은 부차적인 것이고 제1세계와의 완충지대 형성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이 이런 말을 했으면 명백히 정신승리가 맞다.[22] 비슷하게 아돌프 히틀러나의 투쟁에서 "민주주의는 유대인의 음모다. 아리아인 같이 위대한 민족에게 평등 같은 것은 필요없는데 유대인들이 자꾸 민주주의나 평등 같은 쓸데없는 사상을 퍼트려 아리아인을 쇠퇴시키려 한다." 라거나, "민주주의는 다수결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의 소재를 흐리게 하며, 또한 바보 100명에게서 천재 1명이 나올 리는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폐지시켜야만 한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23] 실제로 시진핑은 2023년 APEC 정상회의에 갔다가 만난 태국 총리와 잡담을 하던 중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자국 축구팀의 기량을 믿을 수 없으며 기복이 너무 심하다고 대놓고 깠다.[출처1] BBC, WSJ, 연합뉴스.[24] 'Hot'을 평가하는 것이면 단순히 미남이 아닌 매력남을 보는 것이다.[출처2] A B Tvn 유식한 아재들의 독한 인물 평존. 유아독존[25] 물론 불교말고도 기독교와 이슬람도 강경하게 탄압하고 있다.[26] 구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가 소련 성립 이후 태어난 서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