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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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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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1. 개요
2. 承 (이을 승)
2.1. 유래
2.2. 인물
3. 昇 (오를 승)
3.1. 유래
3.2. 인물


1. 개요[편집]


표기에 따라서 송씨와 헷갈릴 수 있는 성씨다.


2. 承 (이을 승)[편집]



2.1. 유래[편집]


본관은 연일(延日), 광산(光山) 2본. 시조는 고려 정종 때 대장군 승개. 그는 고려 정종 때 대장군을 지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연일으로 하였다. 광산 승씨도 승개의 후손이며 광산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광산으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선 3,000명밖에 안되는 희성이지만 북한 지역에는 승씨가 많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국세조사에 의하면, 당시 평안북도 정주군 신안면 안흥동(현 정주시 독장리)에 연일 승씨가 157가구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1], 그 밖에 정주군 신안면·동주면 일대에 358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했다. 또한 당시 전국에 사는 승씨 1032가구 중 694가구(약 67.2%)가 평안북도 지역에 분포했다[2].

2015년에는 남한 전체에 2,61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통일되면 국내 승씨 인구가 많이 늘어날 듯하다.

승씨의 대표적인 남한 인물로는 건축가 승효상[3]동화그룹 회장 승명호, 서부트럭터미널(서부T&D) 회장 승만호, 핸즈코퍼레이션 회장 승현창, 교육인 승광은, 여류바둑기사 승순선, 독립운동가 승병일, 독립운동가 승일상, 한국보이스카우트 사무총장 승병구, 연극배우 승주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승재현 등이 있다.

북한에는 문화상 승정규, 북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향심, 동창군당위원장 승건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장 승경철, 국가검사위원회 정주시 1비서 승보경, 삭주군당위원장 승상범, 조선인민군 소장 승용근, 정주가죽가공공장 지배인 승응표, 로동신문 부주필 승재순, 삭주군수출피복공장 지배인 승정숙, 창성종이공장 지배인 승태호 등이 있다.

여기에 북한 언론을 통해 정주기관차대 소속 기관사 승병국, 승경호가 보도되는 등[4] 집성촌인 정주시를 중심으로 한 평안북도 남부 및 서부 지역에서 한가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는 텍사스 주 오스틴대학 석좌교수인 철학자 승계호와 그 아들인 AI공학자 세바스찬 현준 승[5] 부자가 있다.


2.2. 인물[편집]


  • 승광은 - 교육인
  • 승만호 - 서부T&D 회장
  • 승명호 - 동화그룹 회장
  • 승병일 - 독립운동가
  • 승영호 - 독립운동가
  • 승은호 - 코린도그룹 회장
  • 승일상 - 독립운동가
  • 승주영 - 연극배우
  • 승효상 - 건축가
  • 승이도 - 법조인(헌법연구관)
  • 승지환 - 야구 선수(유신고등학교 - 한화 이글스)
  • 승민재 - 야구 선수(유신고등학교)[6]

3. 昇 (오를 승)[편집]



3.1. 유래[편집]


본관은 밀양(密陽), 창평(昌平), 남원(南原).

원나라 말 건립된 명하(明夏) 왕조의 황제 명옥진(明玉珍)의 아들, 2세 황제인 명승(明昇)이 명나라의 전우덕(傳友德)에 패하고 이듬해인 서기 1372년(고려 공민왕 21년)에 모후(母后) 팽씨를 모시고 고려의 서해안으로 망명, 밀양에 머물다 개경으로 이주, 현 평산(平山)군에 사방 30리의 땅과 노비를 하사 받고 안착하였고 이후 조선 태종(조선)대에 화촉군(華蜀君)으로 봉해졌다.

그의 4남 명신(明信)은 망국의 황족임을 부끄럽게 여겨 부친의 이름인 승(昇)자를 성으로 삼고 본관을 밀양(密陽)으로 정하여 승신(昇信)이 되었다. 이에 서촉 명씨와는 같은 계보라서 통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영(先塋)은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운봉리에 위치하고 시조(始祖)이신 승신(昇信)으로부터 14세조까지 안치되어 있으며 매년 10월에 추계시향을 봉행하여 왔다.

원조(遠祖) 명옥진(明玉珍) - 중조(中祖) 명승(明昇) - 시조(始祖) 승신(昇信) - 2세(世) 승조(昇遭) - 3세 승수(昇峀) - 4세 승두경(昇斗經) - 5세 승길중(昇吉重)

1930년 국세조사에서는 전국에 79가구가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6.25 전쟁 이전까지 황해도 금천군 금천면 갈현리 승씨 집성촌에 약 50호를 포함하여 황해도에 80호 정도가 살고 있었다. 2015년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811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인물로는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은 독립유공자 승천일과 1930년대 OK레코드사의 문예부장으로 '휘파람, 타향살이, 사막의 한, 안해의 노래' 등을 작사한 17세손 승응순(昇應順, 1911-1937)[7]이 있다.


3.2.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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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안북도 정주시를 고향으로 둔 시인 백석의 시 《여우난 곬족》에서도 승씨가 언급된다. 고모가 시집간 집안의 성씨가 승씨인 모양.[2] 그 밖에 황해도 110가구, 평안남도 103가구, 함경남도 20가구, 함경북도 4가구 등 현재 북한편입되어 있는 강원·경기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931가구, 즉 약 90.2%가 북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3]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승씨 인물일 것이다.[4] 두 사람은 수송계획 초과수행 성과로 종종 언론에 이름이 나온다.[5] 2019년 4월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영입되었다.[6] 승지환과 친형제로, 2살 터울이다.[7] 예명은 금능인(金陵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