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위(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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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시나위 (Sinawe)
역대 참여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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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 기타리스트: 신대철
보컬리스트
주준석[1]
(데뷔 전)
진찬규[2]
(데뷔 전)
김종서
(데뷔 전)
임재범
(1집 초판)
이병문
(1집 재녹음)
김종서
(2집/4집)
김성헌
(3집)
손성훈
(5집)
김바다
(6 ~7집)
김용
(8집)
강한
(9집)
윤지현
(10집)
기타리스트
제이크장[3]
(10집)

베이시스트
박영배
(1집)
강기영[4]
(2집)
김영진
(3집)
서태지
(4집)
정한종
(5 ~ 6집)
김경원
(7 ~ 8집)
이경한
(9집)
김정욱
(10집)
드러머
강종수
(1집)
김민기#드러머
(2 ~ 3집)
오경환[5]
(4집)
신동현
(5 ~ 8집)
이동엽
(9집)
남궁연
(나가수)
양혜승
(나가수)
신석철,
양혜승
이현송[6]
(10집 투어)
박계수
(10집 투어)
키보디스트
김형준
(1집)
Shaun[7]
(10집)
음반
시나위/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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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시나위(Sinawe)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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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음반
파일:2pLFGti.jpg
파일:f8IE4a2.jpg
파일:ISPoR1Y.png
파일:시나위(Sinawe) - Four.jpg
1집
Heavy Metal Sinawe
(1986)
2집
Down and Up
(1987)
3집
Free-Man
(1988)
4집
Four
(1990)
파일:kjTuFba.jpg
파일:SBWaUlc.jpg
파일:mNgcOJB.jpg
파일:7y5I6dY.jpg
5집
매 맞는 아이
(1995)
6집
은퇴선언
(1997)
7집
Psychedelos
(1998)
8집
Cheerleading Fan
(2001)
파일:EJWCPDF.jpg



9집
Reason of Dead Bugs
(2006)
S I
N A
W E
주요 비정규 / Live / 싱글
두 그림자
베스트 콜렉션
파일:uZmTW9w.jpg
파일:LOhf8yz.jpg
두 그림자
(1988)
베스트 콜렉션
(1988)
Circus(Mini-CD)
(1996)
Mini Album
(2000)
파일:external/www.metalkingdom.net/69808_sinawe_mirrorview.jpg
밤이 늦었어
미정
Mirrorview
(2013)
밤이 늦었어
(2014)



{{{#white 시나위
Sinawe

파일:YgcTzTy.jpg

2015년 멤버 김바다신대철
데뷔
1986년
활동년대
1983년~ 2016년
멤버
신대철(리더, 기타)
김정욱(베이스)
김바다(보컬, 기타)

데뷔 음반
Heavy Metal Sinawe (1986년)
소속사
에코브리드[1]
팬덤
해랑사
1. 개요
2. 역사
2.1. 1983년~1990년
2.2. 1990년대
2.3. 2000년대
2.4. 2010년대
4. 나는 가수다 2에서 불렀던 곡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헤비 메탈 & 얼터너티브 록 밴드.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밴드의 중심이다.

2. 역사[편집]



2.1. 1983년~1990년[편집]


1983년 신대철이 서울고등학교 재학 중 기타에 신대철, 베이스에 안준섭, 드럼에 김정휴, 그리고 보컬에 주준석으로 결성되었다. 신대철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20대였지만 밴드의 리더는 고등학생 신대철이었다.

주준석이 군입대 한 후 AC/DC의 브라이언 존슨 스타일의 보컬리스트 진찬규를 영입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신대철은 그런 음악밖에 할 수 없는 보컬 역량에 실망하여 다시 새로운 보컬을 찾는데, 이때 영입된 보컬이 김종서다. 그러나 잘 알려졌다시피 김종서도 단 한 번의 공연을 끝으로 퇴출당했고[2], 임재범을 영입해서 첫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나위의 첫 데뷔조는 신대철, 임재범 그리고 베이스 박영배, 드럼 강종수, 키보드 김형준 이었다.

1집 타이틀곡인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2006년 영화라디오 스타에서 나오듯 당시의 인기는 대단 그 자체였다. 타이틀 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로니 제임스 디오 재적시의 블랙사바스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곡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곡들이 아틀란티스의 꿈,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같은 곡들이었다.

그 후 신대철 본인을 제외한 멤버를 모두 교체했고, 베이스 강기영(달파란)과 드럼 김민기, 그리고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돌아온 김종서의 고음에 맞춰 사운드 변화를 시도한[3] 2집 《Down and Up》을 발표했는데, 당시로서는 쇼킹했던 김종서의 초고음을 무기로한 타이틀곡인 '새가 되어가리', '빈 하늘', 연주곡 '연착' 등이 크게 히트했다. 1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2집은 한국 헤비메탈계의 최고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2집 발표 전후가 헤비메탈을 구사하던 시나위의 최대 전성기로 반헤일런 을 연상시키는 신대철의 화려한 기타 솔로와, 김종서의 빈스닐을 연상시키는 음색과 보컬레인지로 인해 완벽한 80년대 LA 헤비메탈을 구현해 낼수 있었고, 가요에 헤비메탈 적인 분위기를 입혔던 라이벌 밴드들과의 극명한 수준차이를 보여주었다.

2집 이후 김종서와 신대철의 음악적 견해의 차이에 의해 김종서가 다시 탈퇴하자 시나위는 작은하늘 출신의 보컬 김성헌[4]을 투입해 3집 《Free-Man》을 발표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시나위 최고의 앨범으로 기록된 4집 《Four》는 서태지베이시스트로, 또 다시 돌아온 김종서를 보컬리스트로 영입해 '겨울비' 같은 히트곡을 내세웠지만, 당시 락 문화의 침체와 홍보 부족으로 인해 흥행이나 앨범 판매량으로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겨울비는 오히려 김종서가 솔로 활동한 뒤에 더 뜨게 되었다.

4집 발매 후 김종서가 서태지와 함께 동반탈퇴[5]하면서 시나위는 인원의 부재로 인해 활동중지 상태가 되었다. 이후 1991년 8월에 오랜만에 콘서트를 감행했으나 부실한 기획에서 어긋나 버렸고, 콘서트 직후 팀이 해체[6]되는 비운을 맞는다. #


2.2. 1990년대[편집]


1995년, '전사'라는 밴드 출신의 손성훈과 신대철이 얘기를 하던 중 "시나위를 다시 하고 싶다."는 신대철의 빈말에 손성훈이 정한종, 신동현을 갑작스레 데리고 와 5집을 만들었다. 신대철은 당시의 상황을 "손성훈만 빼고 밴드를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앨범 발매후 손성훈이 탈퇴하고 드러머 신동현은 당시 언더그룹 'Tomcat'의 보컬이었던 김바다 를 추천, 영입했고 결과적으로 앨범은 손성훈이 녹음했는데 실제 공연에서는 전부 김바다가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시나위는 김바다 보컬이 들어간 앨범을 급하게 녹음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5.5집 개념의 미니 앨범이다.

미니 앨범답게 곡은 총 5곡이 녹음 되어 있는데 A면에는 죽은 나무와 서커스, B면에는 고기 덩어리와 크게 라디오를 켜고, 매맞는 아이 라이브 버전이 실려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매맞는 아이 라이브 버전이 들어가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이 출시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매맞는 아이가 들어있는 버전의 앨범을 구매한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참고로 이 앨범이 출시되던 당시는 90년 중반 즈음인데 이 때 한국에도 서서히 언더그라운드 혹은 인디음악의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나 서울의 홍대 앞 거리에 있는 드럭 레스토랑이라는 클럽에서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을 필두로 타카피, 와이낫 등의 펑크 밴드들이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헤비메탈 밴드들도 있었지만 너바나의 영향 때문인지 메탈 스타일보다는 얼터너티브 성향의 팀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타 신대철, 드럼 신동현, 베이스 정한종 보컬 김바다 의 라인업은 헤비메탈이 아닌 얼터너티브록으로 변신한 시나위 제2기의 라인업이다.

5집 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새로운 보컬을 알리기 위해 미니앨범인 《Circus》를 발매하는데, 이게 예상외로 대단한 판매량을 보여주면서 시나위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 게다가 미니앨범에만 포함된 재편곡버전 '크게 라디오를 켜고' 역시 대단한 인기를 누리며 이 여파로 노래방에 추가됐을 정도였다.

미니앨범 발매 후 시나위는 얼터너티브 록으로 변신한 6집 《은퇴선언》을 발매했다. 25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는데, 당시 시궁창에 가까웠던 락 씬의 상황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였고 가요차트에서도 중위권에 들 정도로 선전했다. 이 앨범에서 시나위는 더 이상 기존의 헤비메탈, 하드 록을 추구하지 않고 완벽하게 얼터너티브로 음악적 변화를 성공시켰다. 단, 리더 신대철은 인터뷰에서 얼터너티브로의 변화는 자의적인 것이 아닌 밴드를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베이스가 김경원으로 바뀌고 7집 《Psychedelos》을 발매했으며,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희망가'는 시나위 곡 중에서 최초로 뮤직비디오가 제작되어 케이블 방송인 MnetMTV 방송까지 탔다.

김바다는 이 앨범 발매 후 얼마 동안 공연하다가 1999년에 탈퇴한다.


2.3. 2000년대[편집]


이후 하드 록 밴드 출신 보컬 김용을 영입하면서 미니 앨범 발매 후 8집 《Cheerleading Fan》을 발매했다.

8집의 경우 본 앨범인 8집과 예전의 곡[7]들의 영어 버전을 함께 포함해 발매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김바다 시절은 메인 스트림에서 김경호가 크게 히트한 덕을 봤지만, 김용 때는 대세가 SG워너비의 소몰이창법을 필두로 한 발라드 쪽으로 흘러갔기 때문.

8집 발매 5년 후인 2006년, 리더인 신대철을 제외하고 전부 뉴 페이스로 바꿔서 9집인 《Reason of Dead Bugs》를 발매하지만 성적은 저조했다. 그나마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했지만 큰 성과는 이루지 못했다.


2.4. 2010년대[편집]


2012년 9월, 시나위가 재결성되어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했다. 멤버는 기타에 신대철,보컬에 김바다, 드럼에 남궁연, 베이스에 김정욱. 신시사이저를 담당한 칵스의 숀이 세션 멤버로 함께했다.

첫 무대에서 이장희의 '그건 너'를 얼터너티브 락으로 편곡해 신대철의 강렬한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내세웠지만 아쉽게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다만 넷상에서는 시나위가 왜 하위권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들. 이 후의 경연들은 1, 2위를 하는 등 좋은 성적을 얻었다. 기타 리프 대신 멜로딕한 신스음을 중심으로 배치시키고 김바다의 쇳소리도 많이 절제되었다. 나가수 2 경연 후반 즈음 남궁연이 개인적 사정으로 나갔고 그 자리에 피아의 드러머 양혜승이 들어왔다.

나가수 2 출연 종료 이후 시나위의 2013년 활동을 함께 할 보컬을 오디션으로 모집했고, 그 결과 대구 출신의 윤지현이 선발되었다.

2013년 7월 10집 MirrorView를 발매했고, 새 보컬 윤지현의 J-Rock 스타일의 보컬을 앞세우며 전국 투어와 방송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당시 기타리스트 이자 에코브리드 수석프로듀서 였던 제이크장 이 녹음과 투어 기타리스트로 참여 하였다. 그후 윤지현은 단 한장의 EP 앨범을 발표하고 해고 된다

2014년 3월에 싱글 '밤이 늦었어'를 발매했다. 매우 개성있는 곡이었지만 홍보 부족으로 많이 알려지지않았다.

2015년 7월 17일, 브이홀에서 시나위 컴백을 기념하는 공연을 열었다. 공연 제목은 '완전체' 그러나 제대로 된 음반 발표 없이 시나위는 김바다와 다시 결별한다.


3. 음반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시나위(밴드)/디스코그래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나는 가수다 2에서 불렀던 곡들[편집]


경연
노래
순위
9월 A조
그건 너 - 이장희
6위
고별가수전
나 어떡해 - 샌드페블즈
1위
10월 A조
강남스타일 - 싸이
2위
10월의 가수전
제발 - 들국화
5위
11월의 가수전 예선전
세상만사 - 송골매
11월 가수전 진출
11월의 가수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산울림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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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대철 대표이사.[2] 다만 올드팬들에 의하면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와 같은 시나위 초기곡들의 데모버젼을 녹음했던것으로 알려져있다.[3] 1집과 2집은 서로 다른 밴드로 보일 정도로 사운드의 변화가 컸다. 헤비메탈 밴드로서의 시나위의 특징은 보컬이 바뀔때마다 신대철의 기타 사운드 자체도 달라졌다는 것 이다.[4] 아이러니 하게도 작은하늘의 초대 보컬이 바로 김종서다.[5] 이때 김종서와 서태지는 <무궁화밴드>라는 이름으로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다녔다. 이렇게 밤무대를 뛰던 와중에 어느날 서태지는 우연히 자신의 다음 순서였던 <박남정과 친구들>의 공연을 보고 댄스뮤직에 빠져들게 되고, 곧바로 춤을 배우고 싶다며 박남정의 백댄서였던 양현석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약 2년의 시간이 흐른뒤에 서태지와 아이들으로 이어지게 된다.[6] 해체 후 1992년에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고 김종서도 솔로 데뷔를 하여 성공을 거두자 젊음의 행진에서 특별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드럼은 4집 멤버 오경환이 아닌 2집과 3집의 멤버였던 김민기가 연주했다. #[7]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5집 이후의 곡들만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