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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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sidney-govou-photo-progres-stephane-guiochon-1645470076.jpg

이름
시드니 고부
Sidney Govou
본명
시드니 로드리그 눅포 고부
Sidney Rodrigue Noukpo Govou
출생
1979년 7월 27일 (44세)
오베르뉴론알프 오트루아르주 르퓌앙블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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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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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베냉|

베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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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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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5cm / 체중 75kg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선수
올랭피크 리옹 (1996~2000 / 유스)
올랭피크 리옹 (2000~2010)
파나티나이코스 FC (2010~2011)
에비앙 토농 가야르 FC (2011~2013)
올랭피크 리옹 (2013~2014)
Monts d'Or Azergues (2014~2015)
마이애미 FC (2015)
FC Limonest (2015~2017)
국가대표
파일: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원정).svg 49경기 10골 (프랑스 / 2002~2010)
1. 개요
2. 클럽 경력
2.1. 올랭피크 리옹
2.2. 파나티나아코스 FC
2.3. 에비앙 토농 가야르
2.4. 올랭피크 리옹 복귀
2.5. 커리어 말년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사건사고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윙어스트라이커였다.

오베르뉴론알프의 오베르뉴 레지옹에서 태어나 인접한 론알프 소재의 올랭피크 리옹 유스팀 졸업생 출신으로 올랭피크 리옹에서만 11시즌을 보낸 리옹의 레전드이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올랭피크 리옹[편집]


1996년 올림피크 리옹과 유스계약을 맺은 시드니 고부는 2000년 1군 계약을 체결하였다. 불과 20세의 나이에 리그와 쿠프 드 프랑스, 리그컵, 심지어는 UEFA 챔피언스 리그를 포함해 42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넣는 좋은 활약을 보이며 2001년 프랑스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하면서 혜성처럼 데뷔했다. 그리고 매시즌 리옹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여 10개 이상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리옹이 2001-02 시즌부터 2007-08 시즌까지 리그 앙 7연패라는 대위업을 세우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04-05 시즌 폴 르 구엥 감독 시절 원래 주장이었던 수비수 클라우디오 카사파가 장기 부상을 당하자 그때부터 리옹의 주장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 플로랑 말루다, 실뱅 윌토르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뤄 리옹 전성시대의 핵심 역할을 했고, 후반기에는 스트라이커 카림 벤제마를 받쳐주며 벤제마가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전성기 시절 빅클럽들과 많은 링크가 났지만 리옹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기 위해 거절했으며 2010년까지 리옹에서 통산 408경기 75골 31도움을 기록했다.

2.2. 파나티나아코스 FC[편집]


어느덧 노화로 전성기가 지나자 2010년 오랫동안 충성을 다했던 올랭피크 리옹을 떠나 그리스의 명문 클럽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한다. 그곳에서 1시즌을 뛰며 24경기 3골을 기록한 뒤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2.3. 에비앙 토농 가야르[편집]


2011년 리그 앙 승격팀 에비앙 토농 가야르 FC로 전격 이적, 로테이션 멤버로 승격팀 에비앙의 돌풍에 일조했다. 당시 에비앙은 승격팀으로서 리그 9위를 기록하고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 진출하는 등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2013년까지 에비앙에서 뛰다가 2013년 여름 자유계약으로 팀을 나왔다.

2.4. 올랭피크 리옹 복귀[편집]


2013년 10월 친정팀 리옹과 계약을 맺었으나 경기에 나오지는 못했고 2군 경기에 2회 출전했다.

2.5. 커리어 말년[편집]


2014년부터 2015년까지 Monts d'Or Azergues라는 하부리그 클럽에서 뛰다가 2015년 미국마이애미 FC에서 한 시즌간 뛰며 11경기 출전, 3골을 넣었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미프로-아마추어 클럽인 Limonest에서 뛰다가 현역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2년 8월 튀니지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지브릴 시세와의 교체로 투입되어 첫 출전한 이래 2002년 10월 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유로 2004 지역예선에서 A매치 첫 골을 기록했다. 49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득점했으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유로 2008 예선전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한 적이 있다. 2003년 프랑스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멤버였고, 2004년 부상당한 루도빅 지울리를 대신해 유로 2004에, 2006년 부상당한 지브릴 시세를 대신해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 각각 선발된 바 있다.레이몽 도메네크 감독 재임 시절 그는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좋든 안좋든 매번 도메네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었는데 이로인하여 그가 도메네크 감독의 양아들이 아니냐는 썰이 한때 돌기도 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올랭피크 리옹의 레전드이자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핵심선수였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장단점이 뚜렷해서 평가가 미묘하게 갈리는 선수.

뛰어난 신체능력과 운동신경을 자랑했던 선수로, 개인기와 드리블 실력이 뛰어났고 스피드도 빨랐으며 유연성도 좋은 편이었다. 또한 경기흐름을 읽는 능력과 위치선정 또한 우수해서 이를 토대로 리옹의 전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새가슴'이라는 악명이 있을정도로 평정심이 부족해 문전 앞에서의 마무리가 아쉬웠고 압박에 취약했다.그래서 운동능력이 좋고 심지어 헤딩에도 일가견이 있음에도 스트라이커보다는 윙어로서 더 자질을 발휘했고 은근 유리몸 기질이 있어서 선수생활 내내 자잘한 부상들을 달고 다녔다.

5. 사건사고[편집]


2010년 아동 성매매혐의로 조사받은 적이 있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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