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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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시리아 국장.svg 시리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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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1]
시리아 아랍 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عربية السورية | Syrian Arab Republic
파일:시리아 국기.svg
파일:시리아 국장.svg
국기
국장
وحدة ، حرية ، اشتراكية
연합, 자유, 사회주의[2]
상징
국가
조국의 파수꾼
국화
재스민[3]
국조
[4]
역사
1920년 3월 8일 시리아 아랍 왕국 선포
1924년 12월 1일 프랑스의 식민지로 합병
1946년 4월 17일 독립
1961년 9월 28일 아랍 연합 공화국 탈퇴
1963년 3월 8일 바트당의 쿠데타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내전 발발
2012년 2월 27일 현행 헌법 제정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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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85.180 km² / 세계 87위
수도
최대 도시

다마스쿠스(دِمَشقُ / Damascus)
내수면 비율
1.1%
접경국
파일:튀르키예 국기.svg튀르키예, 파일:요르단 국기.svg요르단, 파일:이라크 국기.svg이라크, 파일:레바논 국기.svg레바논, 파일:이스라엘 국기.svg이스라엘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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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18,275,704명(2021년)[1] | 세계 66위
인구밀도
118.3명/km²(2020년) / 세계 70위
민족 구성
아랍인 90.3%, 쿠르드족 6.3%, 기타 3.4%
출산율
2.80명(2022년) 출처
HDI
0.576(2019년) / 세계 151위
공용 언어
아랍어
공용 문자
아랍 문자
종교
이슬람 87%[2], 기독교 10%, 드루즈 3%
군대
시리아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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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60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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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사실상 대통령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62위(2021년)[권위주의]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Bashar al-Assad / بشار الأسد)
부통령
파룩 알샤라
(Farouk al-Sharaa / فاروق الشرع)
나자 알아타르
(Najah al-Attar / نجاح العطار)
총리
후세인 아르누스
(Hussein Arnous / حسين عرنوس)
인민회의 의장[1]
함무다 사바흐
(Hammouda Sabbagh / حمودة الصباغ)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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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시장경제
GDP
명목 GDP
$155억(2020년) / 세계 167위
GDP(PPP)
$502억 8,000만(2015년) / 세계 162위
1인당 GDP
명목 GDP
1,331달러[1]
GDP(PPP)
5,040달러
국부
$210억 / 세계 120위(2019년)
화폐
공식 화폐
파운드 (S£)
ISO 3166
SY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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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UTC+2
UTC+3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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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미수교
북한 (단독 수교): 1966년 7월 25일
무비자 입국
15일간 도착비자 (USD 33) (여행금지 국가)
주한대사관
없음

ccTLD
.sy, سوريا.
국가 코드
760, SYR, SY
국제전화 코드
+963
여행경보
여행금지
전 지역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1px-Syria_on_the_globe_%28Afro-Eurasia_centered%29.svg.png





1. 개요
2. 자연
4. 정치
4.1. 군사
6. 사회
6.1. 언어
6.2. 종교
7. 문화
7.1. 스포츠
7.2. 애니메이션
9. 국기
10. 국가
11. 출신 인물
12. 교육
13. 관광 정보
14. 여담



1. 개요[편집]


서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정식 국명은 수리야 아랍 공화국(الجمهورية العربية السورية, Al-Jumhūriyyah Al-‘Arabīyah As-Sūriyyah). 친서방 반정부 단체 시리아 국민연합도 같은 국명을 사용하고 있다. 아랍어로는 수리야라는 발음으로 불린다.[5] 시리아(Syria)는 라틴어 표기다.[6]

면적 185,180km², 인구 약 2,200만 명 내외였으나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인구 유출이 많기 때문에 이후 출생자를 합해 2,000만 명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 중에 거주지가 확실한 사람은 인구의 50% 정도로, 이들은 비교적 상황이 안정적인 수도 다마스쿠스라타키아, 타르투스 등 서부 지중해 해안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중동전쟁에서 아랍군 진영으로 이스라엘전쟁을 벌였던 나라 중 하나 또는 이라크와 요르단, 레바논, 터키 사이에 끼어 있는 여러 아랍 국가들 중 하나로만 기억되던 국가였지만, 2011년에 내전이 일어나면서 언론 매스컴 등의 영향으로 정부군과 반군, IS와의 잔혹한 전쟁과 독재자 아사드와 바트당의 독재 정치 등으로 인한 혼란이 알려지게 되면서 사담 후세인의 독재 통치,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 등 혼란과 내홍을 겪었던 이웃 아랍 국가인 이라크와 함께 일반 대중들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자세한 것은 밑의 시리아 내전 문서 참고.

북쪽에는 터키, 동쪽 - 동남쪽에는 이라크, 남쪽 - 서남쪽에는 요르단, 서남쪽에 이스라엘, 서쪽에 레바논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고 서쪽에 지중해와도 접해 있어서 지중해를 건너면 키프로스남유럽 국가들이 나온다.

수도다마스쿠스(다마스커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며 기독교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오로가 회심했다는 도시이기도 하다.

인기있는 애완동물인 골든햄스터가 이 나라에서 포획되어 이후 실험, 애완용으로 널리 길러지게 된다.

어쌔신이 탄생한 곳이 바로 시리아다. 시리아 암살단의 근거지인 마시아프 성은 아직도 남아있으며 어쌔신 크리드에 등장하며 매우 유명해졌다.

레바논과 더불어 아랍권에서 미인이 많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7] 오스만 제국 시절에 파디샤(황제)들이 시리아 여인들을 데려왔을 정도였다고, 생긴 건 남유럽인들과 비슷하게 생긴 편이다. 애초에 북아프리카와 레반트 지역의 아랍인들은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등 남유럽 지역의 라틴계와 그리스인과 외형적으로 상당히 흡사한 편이다.

참고

그리고 생각 외로 중남미 국가들과 관계가 깊다. 2016 리우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 알 수 있지만 19세기 중순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민붐이 일어서 상당수 시리아인들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중남미 국가로 대거 이주했으며[8] 외형상으로는 남유럽 백인들과 차이점이 적기 때문에 나름대로 주류에 진입하는 경우도 많아서 아르헨티나에서 대통령도 배출했을 정도이다(1989~99년 제 50대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9]). 그리고 현 마우리시오 마크리(2015~) 대통령의 영부인 율리아나 아와다도 레바논-시리아계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 아랍계 주민들이 많이 살고있다는 건 잘 알려져있지만 의외로 중남미에서 주거하는 아랍계 주민들이 상당하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적었기에 미국과의 관계는 그리 깊지는 않지만,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시리아계다. 다만 스티브 잡스는 아주 어렸을 때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특별히 시리아계라는 걸 인식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여하튼 그 이후로는 이민은 비교적 적었지만 간헐적으로 학살사건이나 독재등의 문제로 이웃 아랍국가로 이민가는 경우는 있었으며 2010년대 와서는 내전이 벌어져서 터키나 레바논, 이라크,[10] 요르단, 유럽, 캐나다 등 해외로 이민이 급증하여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시기를 훨씬 넘어서는 이민붐이 불고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사회에 정착한 중남미에서의 경우와는 다르게 유럽권에서는 여러모로 차별을 당하거나 비하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슬람권 국가에 정착했다 해도 사정이 좋은 건 아니라서 레바논이나 터키, 요르단 등지에서도 저임금 노동자 취급받으면서 거지나 범죄자, 테러리스트로 비하되는 경우가 많다.

2. 자연[편집]


중동에 위치한 사막 국가라고[11] 생각하고 입국했다가 꽤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시리아 사막과 같이 사막성 기후와 지형을 띠는 지역도 있지만 은근히 남유럽 분위기가 나는 초원 지대부터 시작해 이 내리는 지역도 있고 지중해와 맞닿는 곳도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곡창지대도 풍요로운 편이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시리아 여자 대학교수가 한국에 눈이 오자 일절 신기해하지도 않았으며 시리아에도 눈이 오냐는 신문 기자에게 '내 고향은 눈이 자주 와서 신기해할 것도 없습니다' 라고 답변한 적도 있다.

시리아의 북부는 남한과 비슷한 위도(수도인 다마스쿠스가 33°)에 위치한다. 남부는 제주도와 위도가 비슷하다. 위도만으로는 남한과 꽤 많이 겹친다. 그러나 대륙의 서부에 위치하므로 대륙의 동부에 위치하여 시베리아 기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국에 비해 기온은 넘사벽으로 높다. 해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 지대며, 내륙 지방은 스텝 기후와 사막 기후 지대에 속한다. 전반적으로 겨울철은 대륙 동부에 비해 기온이 상당히 높아 크게 춥지는 않고 강수량이 많은 편이고, 여름철은 사막의 영향으로 기온이 많이 올라가나 강수량이 매우 적어 건조하다.

북부에 있는 알레포대전광역시와 비슷한 위도[12]에 위치하나, 겨울철 평균기온은 제주도와 비슷하다.

7~8월의 평균 최고기온은 35°C 이상으로 대구광역시보다 훨씬 높다. 대구의 7~8월 평균 최고기온은 30°C ~ 31°C 내외다.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시와 거의 비슷한 위도(정확하게는 다마스쿠스의 위도가 아주 약간 더 높다.)에 위치하고 해발 약 700m의 고지대에 있으나 제주도보다 기온이 훨씬 높다. 다마스쿠스의 겨울 평균기온은 제주도보다 약간 더 높고, 여름철에는 건조하여 최저기온은 낮지만 평균 최고기온은 35°C 이상으로 상당히 덥다.

그런데 시리아의 위도가 대한민국과 비슷할 정도로 높은 편이기 때문에 북쪽의 찬 공기가 종종 내려오기도 하며 이럴 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때때로 까지 내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마스쿠스나 알레포에 눈이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다. 매년 오는 것은 아니며, 수년에 한차례씩 온다. 다만 지중해성 기후에 가까워 겨울철 강수량이 많고 가끔 폭설이 되어 내려 눈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나고는 한다. 다마스쿠스에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 보도

중동전쟁 중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골란 고원 일대를 빼앗고 이의 반환을 꺼리는 것은 군사적 요충지라는 문제 외에도 이 지역의 물과 곡창지대가 값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다 이 지역에 이미 10만이 넘는 유태인이 농장을 짓고 2만여 시리아인과 공존하는데(마즈엘 샴스 지역) 여기서도 이스라엘이 걸핏하면 시리아인들을 뭉개고 있다. 일단 자국민이 엄청나게 사는 만큼 그냥 돌려주긴 껄끄러울 것이다. 이 점을 노렸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이것도 옛날 얘기. 지금은 난민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함부로 뭉개기가 힘들 지경이 되었다. 이스라엘 극우들조차도 구경해야 할 정도다. 난민 숫자가 이스라엘인들이랑 맞먹을 정도고 계속 몰려들고 있는데 예전처럼 뭉개다가 난민들이 죽어라 덤벼들 수도 있거니와 안 그래도 다에시가 욕 먹던 걸 도로 이스라엘이 욕 먹게 될 일이니까. 여기 살던 이스라엘인들이 시리아인들을 피해 다닐 지경이다.

게다가 최근엔 중동의 급격한 사막화를 시리아도 피할수가 없어 극심한 가뭄까지 닥쳐 물부족까지 시작되었다.[13] 특히 내전으로 수도 시설이 많이 파괴되다보니 식수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내전으로 개막장이 된 시리아를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다.[14] 최근에는 물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조차 제한 급수가 실시되었고 물값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또한 물을 불법적으로 밀거래하는 워터 마피아까지 등장해 정부에서 단속에 나서는 상황이다.#


3. 역사[편집]



4. 정치[편집]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아 창설된 바트당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쭉 집권여당이다.

또 시리아의 지도자는 50년 넘게 대통령으로서 세습 독재를 펼치고 있는 알아사드 부자다. 아랍권에서 왕국이 아닌 공화국인 나라로서 자식에게 권좌를 물려준 사례는 시리아가 유일하다. 이건 사담 후세인이나 호스니 무바라크, 무아마르 카다피도 실패한 것이다.[15]

아랍 독재자가 다 그렇듯 상당히 세속적이다. 바샤르 알아사드(بشار الأسد, -1965~ )는 영국 유학파로 개방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로 서구 대중 문화의 유입을 특별히 제재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1930-حافظ الأسد ,2000)도 종교적으로 꽤나 관대했다.

원래 아랍의 세속 독재자들은 다 이렇다. 무바라크와 후세인도 종교적으론 소수파에게 관대했다. 오히려 정권에 위협되는 다수파를 세속주의와 군사력으로 찍어눌렀다. 이들에 대한 불만으로 1980년 6월 26일 이슬람 과격파의 암살 미수 사건까지 있었다. 하페즈는 위기를 모면하지만 그의 친구이자 2인자인 국방장관이 사망한다.

이에 분노한 하페즈는 동생 리파아트 장군에게 토벌 명령을 내려 1980년 이들의 거점 지역인 하마 시를 불바다로 만든다. 이로 인하여 시리아 내 이슬람 극단주의 강경파는 큰 타격을 입으며 아버지인 하페즈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바샤르는 정쟁 끝에 숙부인 부통령 리파아트 알 아사드(رفعت الأسد, 1937~ )를 필두로 한 보수파를 숙청하며 세속 정책을 유지한다. 리파아트는 영국으로 망명하여 2013년 이후 런던에서 거주하며 현 시리아 정권과 조카 바샤르를 비난한다.[16]

시리아 내전 초기 2012년에 유화책으로 개헌을 했다. 대표적인 개정 사항으로 '민중민주적 사회주의 국가', '바트당의 지도적 역할' 등을 삭제하고 대통령 임기 제한(7년 무제한 → 7년 중임)을 둔다.

여담으로 투표 용지가 꽤 특이한데 후보자의 사진이 복사되어 있고 기호가 정해져있지 않고 용지마다 순서가 다르다.

4.1. 군사[편집]


시리아군 문서 참조.


5. 경제[편집]


시리아/경제 문서 참조.


6. 사회[편집]


국민 절대다수가 아랍인이 대부분이지만 이 나라에도 쿠르드족이 30~50만 정도로 꽤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터키이란, 이라크에 사는 수백만 쿠르드인들에 견주면 수가 적어서인지 커다란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사는 중. 하지만 차별은 이곳도 마찬가지인지라 1986년과 2004년에 몆 차례씩 시리아 중앙정부와 대립하는 소요사태를 일으킨 적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변변한 직업 구하기도 어려워서인지 소매치기 같은 일로 살아갈 지경이라고 한다. 결국 시리아 내전의 와중에 북부에서 로자바라는 자치구역을 선포했다.


6.1. 언어[편집]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쿠르드족들은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아르메니아어, 아람어 사용자도 존재한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어 사용자도 소수가 존재하지만, 레바논에 비하면 사용이 적다. 그리고 2014년부터 러시아어가 시리아의 중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지정되었다.# 러시아어의 인기가 매우 높은 편이다.#(러시아어 원문)


6.2. 종교[편집]


"중동은 다양한 민족, 종교, 종파로 구성됐다. 그 가운데서도 시리아에는 그러한 다양성이 특히 높다. 시리아는 중동 세계의 활성단층이다. 당신이 이것을 갖고 놀고자 하면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지진이 일어난다.

바샤르 알 아사드, 2011년 12월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66px-Syria-Religion-Map.jpg
시리아의 종교 분포도. 연두색은 수니파 이슬람교, 녹색은 알라위파시아파 이슬람교, 주황색은 기독교, 파란색은 드루즈교, 보라색은 야지디교 우세 지역이다.

2022년 이슬람교가 62%다. 가장 큰 종파는 수니파로 48%로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계 수니파와 9% 남짓한 쿠르드족 수니파로 나뉜다. 또 시아파 인구는 14%인데, 시아파 대다수인 12%가 이 나라의 기득권층인 알라위파이며, 주로 시리아 중부와 북부 해안가에 몰려 있다. 또 이스마일파 같은 소수 시아파 분파도 있다. 그외에 종교학적으로 일단은 이슬람으로 분류하는 드루즈교 인구도 3% 있다.

또 시리아는 아랍 지역에서도 유달리 기독교 신자[17]가 많다. 2022년 시리아 국민의 13%가 기독교인이며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들을 합치면 대략 2백만 명이 더 있다. 따라서 총 인구 비율이 약 25% 정도인 이 숫자를 모두 합치면 아랍권 제2의 기독교 나라다. 첫 번째는 약 7백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콥트 기독교도가 사는 이집트로 인구의 8~9% 정도가 기독교다. 비율로 따지면 인구의 40% 가량이 기독교도(마론파 가톨릭, 정교회,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등 다양한 종파가 있다)인 레바논이 중동 1위 기독교 나라다.

시리아는 초대 교회 시절부터 동방 기독교의 중심지 중 하나며 수도 다마스쿠스사도 바오로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회심한 역사적인 기독교의 성지급 도시다. 340년 안티오키아가 로마 제국의 다섯 총대주교좌 중 하나가 되면서 정교회가 크게 융성한다. 시리아 교회는 이집트 교회와 더불어 동방에서 가장 권위있는 교회 중 하나나 5세기경 합성론 논쟁으로 인해 합성론을 거부한 정교회와 단성론을 수용한 오리엔트 정교회로 분열한다. 기타 다른 기독교 종파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으며 이는 십자군 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에는 추기경도 있다. 중동에서 추기경이 있는 나라는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등 총 3곳이다.

그래도 이웃 레바논과 달리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에 두드러지는 갈등은 없고 현재도 무슬림 극단주의자가 많은 반군이 장악한 곳에서는 소수종교 박해가 있지만 수도 다마스쿠스 대부분 구역을 비롯해 아사드 정부군이 완전히 장악한 지역에서는 내전 이전과 똑같은 종교 공존이 이뤄진다. 시리아 지방의 기독교도는 아랍 민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는 데 적극 참여했다. 바트당의 초기 창립 멤버를 보면 정교회와 시리아 정교회 신자가 상당히 많다. 바트당 초기 이론가인 미셸 아프라크도 다마스쿠스 출신 정교회 신자다.

기독교도가 많은 것도 아사드 정권의 영향이 크다. 아사드 일가는 이슬람에서도 극소수 종파인 알라위파이다. 시아파에 속하는 종파인데 전 세계적으로 고작 3백만 명이라는 극소수 종파로서 이슬람 대다수인 순니파(8억~9억 명)와 알라위파를 제외한 나머지 시아파(1억 정도)에게도 절대적으로 밀린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시리아에서도 알라위파 신도 수는 전체 인구 2300여만 중 고작해야 1백만 명이다. 알라위파가 자기네 종파로만 정권을 다 장악하는 건 무력이나 선거로 힘들다. 덕분에 아사드 정권은 종교적으로 세속적 정책을 취하고 다른 극소수 종교들도 인정하면서[18] 그들의 지지를 받아내고 이를 계기로 과격파를 피로 응징한다.

이 와중에 터줏대감이지만 오랫동안 숨어서 믿어야 하던 오리엔탈 정교회신도들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군이나 정치인, 공무원 요직에도 오리엔트 정교회 기독교인 수가 꽤 많고 공식적인 국법 상으로도 기독교와 이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며 특정 종교에 대한 우대와 차별을 금지한다. 물론 주류인 알라위파가 이슬람이라서 이슬람에 대한 실질적 우대가 있다.

또 비슷하게 세속적인 국가인 이웃 레바논과 더불어 아랍 지역 이슬람권 나라로 드물게 여군 장교이 있다. 사실 여성들을 몸 수색하려면 여성이 해야 돼 이라크이란도 여군 특수부대가 있고 막장인 아프가니스탄도 여군 특수부대와 여경이 있지만 시리아와 레바논은 일반 여군 장교를 인정하기에 상황이 꽤 다르다. 더불어 문화적으로 여성에게 매우 개방적이라 아랍권에선 드물게 교향악단이 있으며 여성 연주자도 얼마든지 받는다. 물론 히잡을 쓰든 말든 일절 상관하지 않아 서구적인 차림의 여성이 많다. 그런데 대다수가 알라위파 및 기독교인이다.

위의 상황이 아랍의 봄 때도 작용했다. 이집트는 토착 기독교인 콥트 정교회 신도들이 온갖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민주화 시위에 꽤 동참하고 튀니지는 원래 기독교도가 극소수라서 큰 영향을 못 끼쳤다. 시리아는 기독교인 수가 상당하며 차별이 다른 이웃나라에 견주면 훨씬 적었다. 그래서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시리아 기독교인에겐 이웃 강성 이슬람 국가와 다를 바 없는 끔찍한 박해가 시작될 것이 불보듯 뻔해 아사드를 지지한다. 내전이 해를 거듭할수록 이슬람 극단주의화된 시리아 반군들이 들어찬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아예 인간취급 못 받고 노예화되고 죽임당하는 걸 보게 된 뒤로는 더더욱 그렇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군부 엘리트들 다수가 알라위파이긴 하지만 무조건 알라위파=지배층, 수니파=피지배층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알라위파가 극소수라서 기독교도들과 연합해 봤자 소수파다. 당장 아사드의 부인도 수니파고[19] 시리아 내전기인 2012년부터 4년간 총리를 지냈던 와엘 나데르 알할키(Wael Nader al-Halqi)도 그렇다. 친정부 수니파들은 대체로 세속주의 성향의 도시 거주민이다. 특이점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수니파지만 아사드 지지 성향이 강고해 민병대를 조직해 반군과 싸운다. 만에 하나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내전에서 승리한다면 이들도 코란에서 말하는 '위선자'라는 이름으로 학살당할 것이 뻔하다.

여담으로 시리아는 이슬람 때문에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주말은 금요일, 토요일이다.

부활절크리스마스가 모두 공휴일이다. 부활절은 두번 보내고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만 지낸다. 다만 부활절은 일요일이라 항상 공휴일이지만 크리스마스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일 경우는 공휴일이 하나 날아간다.[20]

7. 문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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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식당이 바로 시리아에 있었다. 다마스쿠스에 있는 바와벳 뒤마시끄(بوابة دمشق, 다마스쿠스 문이라는 뜻) 식당으로 2002년에 문을 열었는데 총 면적은 54,000㎡에 달하며 주방 면적만도 2,500㎡, 좌석이 6,014석에 이르며 성수기 때는 종업원이 무려 1,800명, 주방 담당이 500명이 넘는다. 건립비만 4,000만 달러라는 식당으로 사실상 음식 공장에 가깝다라고 인정했다. 시리아 및 아랍과 아랍화된 인도중국 음식이 전문으로 30명이 먹을 후무스를 5분 안에 만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후무스는 콩을 으깨 마늘, 고기, 채소, 올리브유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여긴 2008년 기네스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으로 등록되어 있다. 방콕에 있는 5천 명 좌석을 가진 식당 기록을 깼다. 그러나 밑에 나왔듯이 여행금지 때문에 한국인은 갈 수가 없었다. 다마스쿠스의 경우 정부군 세력 내에 들어온 곳이라서 사실 파괴되진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여행금지국가라 한국인의 방문이 불가능했을 뿐. 물론 손님이 안 와서 영업이 중단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다마스쿠스의 호텔들은 내전 발발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확인 결과, 당연하게도 바와벳 디마시크는 현재 영업을 접은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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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초기인 2011년 6월경 위성사진이다. 이때까지는 내전 초기인지라 그럭저럭 운영 중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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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이 일어난 지 6년이 다 돼가던 2017년 1월경 모습, 주변이 황폐해진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내전이 일어나고 1년 정도 지났던 2012년 8월 때 이미 분수대 물도 메마르고 황폐해지고 있었다. 내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수 밖에 없다.

2018년에도 시리아는 내전중이지만, 시리아 관광청은 페이스북에 다시 관광홍보영상을 올려놓자 논란을 빚고 있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1. 스포츠[편집]


축구가 인기가 많다. 전북 현대 모터스가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 이 나라의 알 카라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득실차 우세로 우승했는데, 이때 시리아 관중의 열기가 대단했으며 아사드가 직접 관전해서 알 카라마팀을 격려했다. 전북이 결국 우승했지만 아사드는 직접 시상대를 찾아가 전북팀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원정 응원을 간 몇 명 안 되는 전북 서포터들은 이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무용담 비슷하게 말한다고 한다. 참고로 알 카라마는 이후로 리그 랭킹 추락으로 AFC컵에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내전으로의 아픔을 축구로 평화를 꿈꾼다는 희망의 의지가 강해보인다. # 이 나라의 축구에 대한 자세한 것은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조.

또한 시리아는 육상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는데 가다 쇼우아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7종경기에서 시리아 역사상 유일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농구 역시 인기가 많은 나라이다. 현재는 축구에 비해 인기가 많이 하락했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열기가 대단했으며, 이따금씩 국제대회에서 아시아 강호들을 잡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었다.


7.2. 애니메이션[편집]


시리아의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2005년에 나왔다. 전세계적으로 자국 극장 애니를 만들기라도 한 나라는 유럽권의 선진국들을 포함해서 정말 얼마 안되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다. 세계에서 애니를 가장 많이 만드는 일본과 그 다음인 미국의 애니들이 많이 수입되고 마음껏 볼 수 있는 한국에서 상상도 못하겠지만 아랍에서는 2000년대 와서야 생긴 일이다. 그동안 대중 문화를 금기시한 사우디아라비아까지도 자국 애니를 제작하고 있는 중. 제목은 The Thread of Life이며 2008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8. 외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시리아/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국기[편집]


파일:320px-Flag_of_Syria_(1932–1958,_1961–1963).svg.png

시리아 공화국(1946~1963) 시기의 국기. 1930년대 프랑스 위임 통치령 시기에 제정되어 독립 후에도 국기로 공식 제정되어 사용되어 왔으며 가로 녹백흑의 3색기 안에 3개의 붉은 별이 새겨져 있었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는 시리아 반군이 아사드 정권을 부정하려는 의미에서 채택해 반군의 상징기로도 사용한 적이 있으며, 아사드 독재정권과 시리아 내전 시기 해외로 망명한 시리아인 사이에서도 현 아사드 정권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이 옛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파일:시리아 국기.svg

현재 시리아의 국기(1980~)이자 이집트와 시리아가 통합해 구성한 아랍 연합 공화국(1958~1961) 시기에 사용했던 국기. 시리아가 1961년 쿠데타로 탈퇴하고 이집트와의 통합 결성 이전의 시리아 공화국 시기의 국기를 다시 쓰게 되면서 이 국기는 1980년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 중반에 다시 시리아 국기로 제정될때까지 근 19년간 쓰이지 않았다.

파일:시리아 국기(1963-1972).png

1963년 바트당의 쿠데타 직후 1960년대에서 70년대 초까지 쓰인 국기(1963~1972). 적백흑의 삼색기 안에 초록색 별 3개가 그려져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바트당이 집권했던 이웃나라 이라크도 이 국기를 사용했었다. 다만 1970년대 초반기까지밖에 쓰지 않았던 시리아와 달리 이라크는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이 국기를 사용했었다.

파일:Flag_of_Syria_(1972-1980)_svg.png

1970년대 이집트, 리비아와 통일해 구성한 아랍 공화국 연방 시기의 국기(1972~1980). 적백흑 가로 삼색기 안에 쿠라이시의 매 문장이 그려져 있었으며 같은 시기 이집트리비아도 유사한 국기를 사용했었다[21]. 그러나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종전 뒤인 1977년 이집트가 이스라엘과의 화해 정책을 취하면서 이스라엘과의 평화 조약에 격분한 리비아와 시리아가 이집트와의 관계를 단절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은 해체되었고 이후 리비아는 1977년에 녹색으로만 이뤄진 국기를 제정해 쓰고, 시리아도 1980년 아랍 연합 공화국 시절의 국기를 다시 채택하면서 이 국기는 사라졌다. 한편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화해 정책으로 인해 아랍 공화국 연방이 깨진 뒤에도 1980년대 초까지 계속해서 이집트 국기로 사용하다가 1984년에 이집트에서 살라흐 앗딘의 독수리 국장을 새 국장으로 제정하고 새 국장이 그려진 국기를 새로 채택하면서 폐지했다.

10. 국가[편집]




11. 출신 인물[편집]


시라아의 유명 인물이라면 킹덤 오브 헤븐에서 살라흐 앗 딘 역을 맡았던 시리아 배우 겸 영화 제작자인 가산 마수드가 알려져 있다. 더불어 10년간 시리아에서 무대 예술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고. 또 스티브 잡스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압둘파타존 잔달리가 이 나라 출신이다. 앤트워스 밀러도 하프 시리안이다. 시리아 내전이 벌어지고부터는 독재 대통령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 알 아사드 부자와 타이거 대령으로 잘 알려진 수헤일 알 하산 소장이 유명해졌다.


12. 교육[편집]


  • 이 나라는 중학교 없이 초등학교를 9년 다니고 3년 동안 고등학교에 다닌다. 우리나라의 중1은 현지 초등학교 7학년, 중2는 초등학교 8학년, 중3은 초등학교 9학년이 되는 셈.
  • 아직도 PBT TOEFL이 존재한다.


13. 관광 정보[편집]


파일:palmyra.syria.before.civil.war.jpg
팔미라 유적

파일:por-Troels-Myrup-cc.jpg
십자군 전쟁기에 구호 기사단에 의해 지어진 크라크 데 슈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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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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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모스크

파일:보스라 로마 이집트.jpg
보스라 로마 유적

역사가 오래된 나라이기 때문에 자연 관광 자원과 옛 그리스, 로마 시대 유적, 기독교 유적지들도 많고, 이슬람 제국 전성기때 만들어진 멋들어진 모스크나 성채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관광 대국의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자유 진영과 적대관계인데다 내정이 워낙 불안정해 이걸 살리지 못하고 있을 뿐인 상황. 팔미라를 위시한 로마 유적지들도 규모가 크고 보존도 잘 된 게 많다. 그 밖에 중세 유적지인 마시아프 요새(어쌔신 크리드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 등 볼 만한 곳들이 많다. 그러나 팔미라 유적은 IS의 반달리즘으로 파괴되었고, 남은 유적들도 내전으로 인해 파괴 위기인 것들이 많다.

알 아사드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깔아놓은 비밀 경찰과 사복 경찰들이 쫙 깔려있어서 오히려 중동 국가 중에 치안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 과거의 영광 때문에 이곳에서는 한국어로 말하더라도 아사드라는 단어 자체를 거론하지 않는 게 좋다. 알아듣고 사복 경찰이 따라온다. 그런데 지금 시리아 내전 때문에 치안이 소말리아아프가니스탄급이 되고 말았다.

물가는 요르단, 터키, 이집트에 비해 상당히 싼 편이었다. 거기다 바가지로 악명 높은 이집트에 비해 관광객 바가지도 적고 학생이면 입장 할인 폭도 컸다. 시설 입장 요금이 150 시리아 파운드(한화 1000원)인데 학생증 지참시 10파운드(한화 70원 가량)으로 할인해준다. 또 반미, 친북 국가라는 편견과 다르게 여행하기 좋다. 동양인을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아서 관광하다 보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기본이요 몰래 사진을 찍거나 아님 같이 찍자고 다가온다. 물론 이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의 얘기이고 최근에는 물가가 갈수록 오르고 있다. 특히 물부족이 심해져서 물값이 이전보다 굉장히 많이 올랐다.

특히 2011년 사태 이래 한국인이 절대 여행 가면 안 되는 곳이 되고 말았으니... 안습. 더 안습인 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때문에 치안막장이라는 거다. 이로인해 에미레이트 항공, 카타르 항공 등 시리아 영공을 마음대로 지나다니던 항공사들도 이란 서부 ~ 터키 중부를 거쳐서 유럽, 미주로 향한다. 내전이 터지기 전에는 중동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터키에서 시작해서 시리아를 지나 레바논 요르단 등지로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 루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전으로 여행금지크리에 국경이 다 폐쇄되었고 난민 수용소가 밀집되어있는 상태라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전 중인 상황에서 시리아 관광부가 시리아 관광을 홍보하고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 편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정부군이 장악한 지역들은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정부군의 감시가 심하다고 한다. 어느 일본인 기자가 다마스쿠스를 방문하면서 촬영했을 때도 정부군 쪽의 경찰들에게 잠깐 붙잡히다가 자신이 관광객이라고 속인 후에 겨우 풀려났다고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한국과는 미수교국이기 때문에 여행금지령이 가장 늦게 풀릴것으로 보이고 있다.


14. 여담[편집]


  • 간혹 영미권에서 리비아와 나라 이름이 헷갈려 Sirya라고 쓰는 경우가 있다.
  • 한국인이 아이폰 앞에서 이 나라 이름을 말하면 99% 확률로 반응한다.(...) 그래서 시리아와 축구경기 할 때는 애플 전자제품을 꺼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 수도인 다마스쿠스 못지 않게 유명한 마루라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의 언어인 아람어를 현재까지도 모어로 쓰는 마지막 마을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 북한, 크림 반도, 러시아와 더불어 넷플릭스가 서비스가 안되는 5개의 지역 중 하나이다.[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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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교부에서 인지하고 있는 명칭 https://www.mofa.go.kr/www/nation/m_3458/view.do?seq=187[2] 바트당 표어[3] 공식적으로 정부가 지정한 국화는 아니지만 시리아인들은 재스민을 사실상의 국화로 본다.[4] 시리아 국장도 매의 모습이다.[5] 실제로 북한은 이 나라를 '수리아'라고 표기한다.[6] 본래 y는 라틴어에서 현재의 프랑스어의 u와 독일어의 ü 발음과 유사한 발음을 내는 문자였다. 때문에 아람어인 수리아를 옮기는 과정에서 Syria라는 표기가 생겼는데 중세 이후 y 발음이 i 발음으로 변하는 바람에 한글 표기 또한 이를 따라 시리아라고 표기를 하였다.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에서는 아예 Siria라고 표기한다. y의 /y/ 발음(불어 u나 독일어 ü)은 스웨덴어노르웨이어에도 남아있다.[7] 모로코나 이라크도 경우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는 듯 하다.[8] 남미에서는 이들을 투르코(turco)라고 불렀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왔기 때문. 이들은 주로 장사를 하면서 먹고살았는데 도심지와 오지를 오가며 몇 배의 이득을 보면서 파는 식으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의외로 대성을 한 경우가 많다고 하며 중남미 정재계에서 아랍계의 영향력이 생각외로 센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아랍인들이 잘사는 건 아니고 빈민촌에서 어렵게 사는 아랍계 주민들도 있기는 하다.[9] 무슬림이었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다만 메넴은 1995년 대통령 재선 직후에 이스라엘 지지로 틀어져서, 현지 아랍계 주민들로부터 불멘소리를 많이 듣는다. 물론 비 아랍계 주민들로부터도 비단 경제난으로 초래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에 욕을 많이 먹는다.[10] 이 둘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을 끝내는 등 시리아보다는 비교적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11] 지리적으로는 사막 비중이 높지만, 시리아 사람들도 사람이니 만큼 당연히 살기 좋은 곳에 밀집해서 산다. 한반도가 산악 지형이라고 한들 한국인이 산골짜기에 살지는 않는 것과 같다.[12] 알레포가 북위 36도 13분, 대전광역시가 북위 36도 21분이다.[13] 사실 시리아는 내전과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기 그 이전부터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인구증가로 인해 물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정부의 수자원 보존 정책이 연달아 실패했기에 수자원 관리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이었다. 특히 지하수까지 한계에 도달해 고갈 위기에 온 상황이다.[14] 사실 시리아는 원래부터 국토의 75%가 사막인 척박한 땅이다. 특히 경작가능한 땅은 그나마 물이 있는 유프라테스 강 연안과 지중해 해안가, 골란고원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시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인구의 대부분이 이 지역들에 몰려있다.[15] 이들도 아들들에게 권좌를 세습하려는 계획 시도가 있었으나 이라크 전쟁아랍의 봄으로 권좌에서 쫓겨나면서 흐지부지된다.[16] 아랫나라 요르단에서 현 국왕인 압둘라 2세와 선왕 후세인 1세의 남동생이자 숙부인 하산 왕자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17] 주로 정교회(아랍인)와 오리엔탈 정교회(시리아 정교회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아르메니아인)[18] 다만 가톨릭과 개신교 같은 서방의 기독교는 예외라서 선교를 철저하게 막았다.[19]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세속적이라 베일을 쓰지 않고 서구적인 차림이다.[20] 2021년은 한국과 시리아 모두 크리스마스 휴일이 날아가는데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이라서다.[21] 문장 안에 국호가 적혀 있고, 이것만 달랐다.[22] 중국은 미중관계로 인한 미국과의 갈등,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인해, 시리아는 내전 문제로 서비스가 안되고,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귀속 문제, 새로 추가된 러시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경제제제 조치로 인해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23] 다만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에서 탈레반이 집권하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으로 변모한 아프가니스탄 역시 넷플릭스 서비스 지원이 끊길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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