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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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
Бої за Сіверський Донець[우]
Бои за Северский Донец[러]
Battle of Siverskyi Donets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5월 2일 ~ 5월 10일




공격을 당한 지역 일대 좌표

파일:시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1).jpg


파일:시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2).webp

파괴되고 침수된 러시아군 기갑장비와 부교
교전국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display: none; display: 우크라이나"
행정구
]]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병력
파일:우크라이나군 엠블럼.svg 우크라이나군
파일:우크라이나 육군기.svg 우크라이나 육군
파일:제17전차여단 엠블럼.svg 제17전차여단
파일:제30기계화여단 엠블럼.svg 제30기계화여단
파일:우크라이나 공수군 엠블럼.svg 우크라이나 공수군
파일:우크라이나 공수군 엠블럼.svg 제80 공중강습여단

총 인원 불명
파일:러시아 연방군기.svg 러시아 연방군
파일:러시아 육군기.svg 러시아 육군
파일:러시아 육군기.svg 제41제병합동군
파일:러시아 육군기.svg제74차량화소총병여단
파일:러시아 육군기.svg제90근위전차사단

총 인원 불명
피해규모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수 대의 장비 손실
파일:러시아 국기.svg
기갑장비 80대 이상
대대급 병력 손실
(더 타임즈 보도: 1000~1500명 전사 추정#)
결과
우크라이나군의 승리
영향
리시찬시크 포위 실패로 인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동부 공세 능력 약화

1. 개요
2. 경과
3. 주요 사건들
4. 분석
4.1. 러시아군
4.1.1. 러시아군의 조급함
4.1.2. 비효율적인 병력 운용
4.2. 우크라이나군
4.2.1. 철저한 정찰 및 관측
4.2.2. 병력의 효율적인 유기적 운용
5. 작전 참가자의 증언
6. 관련 자료



1. 개요[편집]


2022년 5월 2일부터 2022년 5월 10일 경까지 러시아 육군 제90근위전차사단이 시베르스키도네츠강에서 도하 작전을 펼치다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 및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전투. 가장 큰 교전은 2022년 5월 8일 경에 있었다.

예로부터 도하 작전은 손자병법 같은 고대 병법서에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니 도하하는 측은 극도로 주의해서 강을 할 수 있는 한 빨리 건너 전투 태세를 갖춰야 하고 방어자는 적이 도하하는 순간을 노려서 강물을 반쯤 지나갔을 때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누누히 강조하였고, 실제 역사에서도 도하 작전[1]은 매우 치밀하게 해야하는 종류의 작전이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루한시크 코앞까지 우크라이나군이 밀려오자 어쨌든 공격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정찰도 제대로 않고 무작정 도하하려 한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이미 며칠 전부터 도하가 준비되는 정황을 파악하고 도하가 가장 쉬울 만한 곳을 사전 정찰하여 포격 좌표를 산출한 뒤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러시아군이 모여 도하하려고 하자 그런 곳마다 화력 유도를 해 처참하게 박살냈다.

우크라이나군은 목표 좌표를 포병 자산과 손쉽게 공유해서 화력지원 요청을 돕는 앱인 GIS 아르타(Arta)를 이용해서 공격했다고 한다. #

한쪽에서 후속 병력과 장비가 증원되어 밀어내지 않는 한 이 전선은 강변을 중심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2] 하지만 세베르도네츠크-리시찬스크 전투의 결과로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그 후로 전투가 벌어진 해당지역은 러시아 점령하에 있었고, 우크라이나의 가을 공세로 다시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탈환되었다.

2. 경과[편집]


파일:1652523226.jpg
대략적인 이 전투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 1 - 5월 2일 러시아군 병력이 슈필리우카 교량을 통해 시베르스키도네츠 강을 건너 진격 시도.
  • 2 - 3일까지 국지적인 전투가 프리빌랴, 빌로호리우카 방면에서 벌어짐.
  • 3 - 5월 4일 우크라이나군이 건너 온 러시아군을 격파 후 슈필리우카 교량을 폭파함.
  • 4 - 5월 5일 러시아군이 세레브랸카 교량을 통해 진격을 시도했으나 격퇴됨.
  • 5 - 5월 7-8일 러시아군이 7개 이상의 부교를 투입해 연대 단위의 기갑병력을 도하시키며 전투가 벌어짐
  • 6 - 5월 9-10일 러시아군의 모든 부대 격파. 일부는 후퇴용으로 가설한 부교를 통해 도주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부교도 후속 포격으로 파괴되어 전멸.

3. 주요 사건들[편집]


  • 5월 7일, 우크라이나군은 정찰을 통해 부교가 어디에 설치될 지를 파악했다.#
  • 5월 8일 러시아군의 도하 작전에 맞춰 공격이 시작되었다.
    • 러시아군은 교란을 위해 들판에 불을 질렀다. 그러면서 도하를 위해 병력을 집결시키고 부교까지 설치했으나, 우크라이나군에게 집중 공격을 받아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
  • 한국 시각으로 5월 12일, 러시아군은 피해 복구를 시도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
  • 이번 전투로 90근위전차사단은 병력의 4분의 1 가량을 손실했다고 한다. 해당 사단이 전차 연대 3개, 차량화소총병연대 1개로 구성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서방식 기준으로는 전멸 혹은 전멸 직전 판정이다. 디시인사이드 군사 갤러리의 어느 유저의 분석 결과, 이 사건은 해당 지역 러시아군의 마지막 남은 공세의 창을 부러뜨린 결과로 보인다. 즉, 제1근위전차군도 엄청난 손실을 입고 이지움에서 방어 태세로 전환했고, 제4근위전차사단도 전력 외 판정을 받고 쿠퍈스크 후방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그나마 이 사단이 공세할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 심지어 동일 지점에 또 집결해 도하를 시도하다 기갑차량들이 또 터져나간 듯 하다.## 전투 이후 빌로호리우카에 남겨진 러시아군 기갑 잔해
  • 추가적으로 집계되고 있는 파괴된 러시아 기갑차량이 80대를 넘어섰다. 사진으로만 파괴 댓수를 계산하는 Oryx도 이 보고를 리트윗하고 있다.#
  • 이 전투 후 반대로 강 너머 루한시크로 향하려는 우크라이나군의 부교를 마찬가지로 공격하여 파괴하는 러시아측의 영상도 공개되었다.#
  • 시베르스키도네츠 강 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정확한 사격에는 미국이 공여한 M777 155mm 곡사포의 활약이 컸던 것으로 밝혀졌다.#
  • ISW는 이 전투로 인해 많은 수의 구독자가 있는 친러 밀리터리 블로거들에게 러시아군의 능력에 큰 의문을 심어줬다며 러시아쪽 반응을 기재했으며 이런 반응이 나온 다음 위에 나온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군 부교 파괴 동영상이 올라왔다고 보고서에 언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우크라이나 전쟁 5월 15일 ISW 보고서 부분을 참고.

4. 분석[편집]



4.1. 러시아군[편집]



4.1.1. 러시아군의 조급함[편집]


러시아군 수뇌부 자체가, 러시아 정부의 주축인 구 KGB 중심의 실로비키들에게 어떻게든 돈바스 방면의 우크라이나군을 포위섬멸하고 루간스크도네츠크 주의 행정 경계까지는 완벽히 점령하라는 압박을 심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천 대의 기갑차량들이 터져나가고 서방의 제재로 개량 및 개발에 필수적인 부품들을 수급하지 못 하는 건 필연이니, 러시아인들에게 가시적인 전과라도 보여주기 위해서다.

더군다나 지속적으로 전선이 점점 러시아 국경과 가까워지고 있고, 러시아는 장비 및 병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해 가는 데 비해 우크라이나 측에는 지속적으로 서방세계의 병기 지원이 들어오고 있는 점에서, 아무리 우크라이나군의 교환비 이득이 수비적 병기와 전투의 덕이 크다 해도 앞으로의 전황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 이상 병력이 소모되면 여론의 힘이 약한 여타 공화국들이 아니라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 출신들이 많은 부대들까지 투입될지도 모를 상황인데, 정말 이들이 투입되어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지금까지 훈련이니 특별군사작전이니 둘러대며 전쟁은 절대 아니라던 언론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한 치의 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는 어떻게든 자랑거리를 만들고 전쟁을 빨리 끝내야 내부 여론을 잠재우고 푸틴의 정권을 유지시킬 수 있다. 협상도 여의치 않은 이유가 지금 군사를 전부 빼자니 얕봤던 우크라이나에게 얻어터지고 장비만 실컷 빼앗긴 꼴이니 자존심이 상할 것 같고,[3] 돈바스를 비롯한 동부를 내놓으라고 하자니 우크라이나가 그럴 바에 같이 죽자고 악을 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뭐라도 해 보라는 압박이 들어오니 현지 지휘관들은 미칠 노릇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이런 행동을 개시했을 것이다.

4.1.2. 비효율적인 병력 운용[편집]


전쟁 초반부터 따져봐야 하는 문제인데, 러시아군은 개전 초부터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하기 위해 키이우 방면, 하르키우 방면, 돈바스 방면, 남부 방면으로 전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해당 전략이 통하려면 가장 중요한 제공권이 확보되어 공군을 통해 방어자를 제압해야 하는데, 제공권을 잡지 못하고 각 방면으로 공군 병력을 전투기 한두 대 수준으로 투입하다가 각개격파당한 결과, 각지에서 지상군도 각개격파를 당하게 되었고, 결국 전쟁발발 1달이 되어서야 키이우 포위작전 실패를 인정한 뒤 키이우 방면과 하르키우 방면 군대를 철수해 사실상 북부 전선이 소멸되었고, 크림 반도를 지키고 돈바스를 확보하기 위해 동부와 헤르손, 마리우폴이 위치한 남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여러 부대에서 산발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면서 집중하기로 한 전력조차 제대로 재편성된 병력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머릿수가 어느 정도는 먹혀들어 한 곳에 집중하는 전략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제공하기로 한 공세무기를 받기 전까지는 어느정도 성과를 얻기는 했고, 마리우폴도 발발 40일이 지나서야 승기를 굳히며 병력을 돌리는 등의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러시아군의 피해가 너무 심해 도하 작전이 아니라 그냥 진격하는 것 자체도 어려움을 겪는 상태였다. VDV도 강하를 할 줄 아는 정예 병력은 진작에 키이우, 하르키우 방면에서 다 소모되고, 그냥 육군 따라서 투입되는 보병으로 전락한 상태가 되다 보니 18살 VDV 병사가 우크라이나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일까지 있었다.

애초에 위압감을 주기 위해 호스토멜 공항에 축차투입했다가 전멸당한 VDV를 그렇게 투입하지 말고, 처음부터 전력을 돈바스 방면에만 집중해 도하 작전 시에 강 건너 교두보를 마련하는 식으로 사용했다면, 정예 병력이 멀쩡히 살아 있는 상태니 도하 작전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4]

4.2. 우크라이나군[편집]



4.2.1. 철저한 정찰 및 관측[편집]


하술한 우크라이나군 공병의 증언에서 보듯, 우크라이나군은 가용 정보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진작에 시베르스키도네츠 강 주변을 샅샅이 정찰하여 러시아군이 도하 작전을 할 만한 장소를 사전에 다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불리한 공격자 입장인 러시아군이 정찰마저 소홀히 한 결과 이들 정찰 병력이 자신들을 마음껏 지켜보게 놔두는 꼴이 되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군에게 대응 계획을 짤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4.2.2. 병력의 효율적인 유기적 운용[편집]


러시아군이 도하하려는 장소를 확인한 우크라이나군은 아르타를 활용한 신속한 전후방간 연계로 그 곳에 포병 화력을 집중하였고, 기갑 및 보병 전력도 이미 장소를 알고 있었기에 빠른 투입이 가능했다. 또한 항공 전력으로 화력 지원 및 러시아군이 후퇴할 부교까지 격파하여, 강을 건너 온 러시아군 부대를 섬멸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2014년 이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 군의 교리를 대대적으로 서방식으로 바꾸고 장비 도입이나 군사 훈련도 그에 맞춰 개편한 것의 성과가 결과로 증명된 것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군은 오히려 도하에 성공하면서 보우찬스크로 진격하고 있다.

5. 작전 참가자의 증언[편집]


이 전투에 큰 역할을 한 우크라이나군 공병대 장교가 트위터에 증언을 남겨 이번 작전이 우크라이나 측의 시점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I am UA military engineering + EOD officer. I have served one turn in Donbas prior to the recent invasion. Recently, I have accomplished a mission which made huge impact on Russian losses and completely screwed up their plans to encircle Lysychansk.

Initially, there was intelligence from frontline units that there are Russians on the other side of the river and they gather various vehicles. So, my commander asked on 6th May me as one of the best military engineers to do engineering reconnaissance on Siverskyi Donets river.

Together with recon units for backup, I went to explore the area of Hryhorivka and Bilohorivka on 7th May. Frontline units in Bilohorivka reported multiple RU vehicles gathering on the other side of the river.

I explored the area and suggested a location where Russians might attempt to mount a pontone bridge to get to the other side. And, used rangefinders to figure out river is 80m wide, thus Russians would need 8 parts (10m each) of the bridge connected to get to the other side.

With that flow of the river, I knew they would need motorized boats to arrange such a bridge, and it would take them at least two hours of work. Took me a day to check everything. And I had to do it on 8th of May as well. So, reported this information I had to my commanders.

Also, I told the unit who observed that part of the river that they need to be on the look out for sound of motor boats. Visibility was shit in the area because Russians put fields & forests on fire, and were throwing a lot of smoke grenades. On top of that, it was foggy.

They had to hear the sound. And they did on May 8th early morning. Right at the place I said. I was there to check it as well - and I have seen with my drone as Russians do the pontonne bridge. Reported immediately to commanders.

Looking back, I think my recon + hints to the river unit made the biggest impact. I outplayed RU mil engineers. Russians attempted to place a bridge RIGHT in the place where I guessed. River unit didn’t see RU units, but was able to hear motor boats and report it immediately.

Artillery was ready. We have been able to confirm Russians mounted 7 parts of the bridge out of 8. Russians have even succeeded to move some troops and vehicles over the river. Combats started.

In ~20 minutes after recon unit confirmed Russian bridge being mounted, HEAVY ARTILLERY engaged against Russian forces, and then aviation chipped in as well. I was still in the area, and I have never seen / heard such heavy combat in my life.

After one day of combats, 9th May morning the bridge was down. Some Russian forces (~30-50 vehicles + infantry) were stuck on Ukrainian side of the river with no way back. They tried to run away using broken bridge. Then they tried to arrange a new bridge.

Then, Aviation started heavy bombing of the area and it destroyed all the remains of Russians there, and other bridge they tried to make. Rumors say it’s ~1500 RU dead. Their strategic objective was to cross the river and then encircle Lysychansk. They miserably failed.

10th May pontonne bridge was completely down. That’s about time when you started to get all the pictures from the area. I was on the ground, doing the work there, alongside with other Ukrainian heroes. I did my part and it had significant impact. Proud to serve Ukraine!

저는 우크라이나군의 공병 및 폭발물처리반 장교입니다. 이번 침공 전에는 돈바스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고, 최근에 러시아군의 리시찬시크 포위 계획을 완전히 돈좌시켜 큰 피해를 준 작전을 완수했습니다.

처음에는 강 건너편에 다양한 러시아군 차량들이 모이고 있다는 전선군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지휘관은 5월 6일에 최고의 공병 중 하나로서 저를 꼽아 시베르스키도네츠강으로 보냈습니다.

5월 7일 정찰 병력의 지원과 함께 흐리호리우카와 빌로호리우카 지역을 정찰하기 위해 나섰고, 빌로호리우카의 병력들도 러시아군 차량들이 강 건너에 모이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지역을 정찰한 후 러시아군이 부교를 가설할만한 위치를 예상해 보고했습니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강의 폭이 80m임을 확인한 후, 각 부교의 폭이 10m이니 부교 8개를 띄워야 할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강의 수류를 감안했을 때 부교를 띄우려면 보트를 동원해야 할 것임을 짐작했는데, 그런 작업은 최소한 2시간은 걸릴 것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것을 확인했고, 8일에도 다시 한 번 점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휘관에게 이를 보고했습니다.

또한 그 지역을 경계하고 있는 병력에게 보트 엔진 소리에 주의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러시아군이 들판과 숲에 불을 지르고 연막탄을 피운데다, 안개도 끼어 있었기 때문에 시야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도착하는지 여부는 소리로 판별해야 했습니다. 8일 아침에 제가 예상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저도 그 자리에서 사실을 확인했고, 드론을 통해 러시아군이 부교를 가져왔음을 보았습니다. 지휘관에게 이를 즉시 보고했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제 정찰과 현지 병력들의 정보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러시아군 공병은 완전히 놀아난 것이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바로 그 자리에 부교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보트 소리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포병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부교 8개 중 7개가 이미 조립되었고 일부 병력은 이미 도하에 성공해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20분 후 다리가 완성되었음을 육안으로 확인했고, 대규모의 포병 공격이 시작된 뒤 항공 병력도 동참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지역에 있었고, 그 정도로 격렬한 전투는 평생 겪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꼬박 하루의 전투가 끝난 뒤 9일 아침, 다리는 파괴되었습니다. 일부 러시아 병력(약 30-50대의 차량+보병)은 우크라이나 방면에 고립되었고, 부서진 부교라도 이용해 퇴각하려고도 했고 새 부교를 가설하려고도 했습니다.

그 뒤 공군이 일대를 맹렬히 폭격했고 남은 러시아 병력과 새 다리를 모두 파괴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약 1500명의 러시아군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전술적 목표는 도하 후 리시찬시크를 포위하는 것이었지만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10일 들어 부교는 완전히 사라졌고, 여러분이 접하는 사진도 이 때쯤 촬영된 것입니다. 저는 그 때에도 현장에 남아 다른 우크라이나 영웅들과 함게 작업 중이었습니다. 저는 제 역할을 다했고,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복무할 수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6. 관련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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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크라이나어[러] 러시아어[1] 과거 초한전쟁 시절 한의 대원수 한신은 배신한 위표를 칠 때 본대로 도하하려는 낌새를 보여 상대의 어그로를 끌고 그 사이 별동대를 감시가 닿지 않는 외진 곳에 도하시켜 위표의 군대를 무너뜨린 적이 있다. 그만큼 도하는 창, 칼, 활을 다루는 냉병기 시절에도 아군이 강을 건너는 동안 무방비해져서 신중히 해야했으며 빠르게 강을 건너기 위해 가장 얕은 곳을 찾아 강을 건너는 전술기동을 하였다.[2] 지상군이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이 도하 및 상륙하거나, 혹은 병력이 밀집되는 좁은 다리를 건널 때다. 이를 역이용해 강은 중요한 방어선 혹은 국경선으로 작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적인 사례로 따졌을 때 로마 제국이 라인 강도나우 강, 유프라테스 강을 기본 국경선으로 삼아 방어했고 조선의 경우 압록강두만강을 자연국경선으로 삼았으며 현재의 대한민국도 임진강-한강 하구 유역을 중요 방어선 중 하나로 넣고 있다. 요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오사카 성도 북/동쪽에 강을 끼고 서쪽에 강과 바다가 있는 천연 지형을 갖추어 일본 최고의 요새라고 불린다. 그리고 프랑스도 역사적으로 라인 강 서안을 자연 국경선으로 삼고자 나폴레옹 시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했다.[3] 사실 진짜 문제는 러시아가 물러나면 기껏 점령했던 돈바스 지역과 크림 반도를 도로 빼앗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1991년의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우리 점령했던 땅 들어오지 마라"고 말해봤자 우크라이나군을 물리적으로 저지할 군대가 없는 한 공허한 협박일 뿐이고, 러시아군이 나가자마자 이 지역들은 우크라이나에게 재점령당할 것이며, 전쟁은 러시아의 완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엉망진창인 전황에도 러시아가 자진해서 후퇴를 못하는 것이다.[4] 이러한 비일관적인 전략수행은 이른바 '우크라이나 침공 동남부 주공 계획설'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실제로 일부에서 러시아의 이런 정신없는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서 키이우 등의 북부 전선을 처음부터 조공(2차 목표)이라거나 심하면 주의를 끌기 위한 미끼 작전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러시아의 당초 목표가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획득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키이우 방면에 대한 공격보다 4월 이후 (변화한) 상황처럼 키이우 방면 벨라루스 국경에 병력을 위협용으로만 주둔시켜 놓고 이전부터 분쟁지였던 돈바스 전선과 크림 반도에서만 진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음이 명백하다. 즉, 현 러시아의 전환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초기 계획의 난항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본 전투 역시 모호한 목표를 위하여 변동성이 높고 정교하지 못한 계획으로 불필요하게 전력을 소모하는 러시아군의 현황을 방증한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