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빈엘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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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شبين الكوم
영어: Shibin El Kom
1. 개요[편집]
이집트 북부 메누피아 주의 주도. 탄타에서 남쪽으로 20km, 반하에서 서북쪽으로 15km, 자가지그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평야에 위치한다. 시가지는 탄타아 카이로를 잇는 시빈 운하 양안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20만명이다. 시가지 남쪽 교외인 카프르 엘 무사일라는 1923년 이집트 헌법의 저자이기도 한 압델 아지즈 파흐미 파샤와 이집트의 전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의 고향이다. 그외에도 10여명의 장관들이 일대에서 배출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낮은 인지도에 비해 현대적인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고 시가지가 깔끔한 편이다. 메누피아 대학을 비롯한 각종 교육 시설들과 병원, 경기장, 전신국, 무역회, 각종 스포츠 팀과 정당들의 거점이 위치한다. 시내의 볼거리로는 이집트 독립 운동의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는 덴쉬와이 박물관이 있다.
2. 역사[편집]
맘루크 왕조 시절부터 마을이 있었고, 당시 지명은 회색과 연관된 샤이빈 엘사라 (شيبين السرى)였다. 본래 서남쪽으로 10km 떨어진 메누프의 관할이었으나 1826년 메흐메트 알리 파샤에 의해 메누피아 주의 주도가 되었다. 다만 기르가 -> 소하그 주의 경우처럼 바뀐 주도에 맞춰 주명이 변하지는 않은 사례이다. 1906년에는 서북쪽 10km 지점에서 이집트 근대사의 주요 이정표 중 하나인 덴샤와이 사건이 버러졌다.
2.1. 덴샤와이 사건[편집]
6월 13일 영국 군인들이 덴샤와이 마을에서 비둘기 사냥에 나섰는데, 사냥된 비둘기들은 동네 주민들이 식용으로 기르던 거라 분쟁이 벌어졌다. 이후 몸싸움이 일던 중, 한 영국인 병사가 병영으로 도주하다가 앞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이에 뒤따라오던 현지인이 그를 부축하려 하였는데, 병영의 경비병이 살해하는 동작으로 오해해 사살되었다. 이후 영국군이 덴샤와이로 출동하여 52명의 주민을 체포하였다. 이어진 재판에서 주민 4명이 사형, 2명이 무기징역, 26명은 태형과 중노동형을 받는 판결이 나왔다. 영국 당국이 이집트 민족주의를 공포로 억누르려 과중 처벌한 것이지만, 오히려 독립 운동에 기름을 부어 1921년 이집트 왕국 성립의 기반이 되었다. 1999년 시빈엘콤에는 이를 기념하는 덴샤와이 박물관이 세워졌다.
2.2. 참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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