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

덤프버전 :


경술국치
庚戌國恥


[ 펼치기 · 접기 ]
배경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병합 과정
전개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 · 시모노세키 조약 · 영일동맹 · 한일의정서 · 가쓰라-태프트 밀약 · 포츠머스 조약 · 을사조약 · 정미 7조약 · 대한제국군 해산 · 기유각서 · 경술국치
관련 인물
을사조약
관련자

이지용 · 박제순 · 권중현 · 이완용 · 이근택 · 이하영 · 민영기 · 이재극 · 이토 히로부미 · 하야시 곤스케
정미7조약
관련자

이완용 · 임선준 · 조중응 · 고영희 · 송병준 · 이재곤 · 이병무 · 이토 히로부미
경술국치
관련자

이완용 · 윤덕영 · 민병석 · 박제순 · 고영희 · 조중응 · 이병무 · 조민희 · 데라우치 마사타케
기타 인물
조선 총독 · 왕공족 · 이왕 · 조선귀족
영향
순국 지사
민영환 · 박승환 · 이한응 · 이범진 · 조병세 · 황현 · 홍만식 · 홍범식
저항
을미의병 · 을사의병 · 정미의병 (최익현 · 신돌석 · 민종식 · 임병찬 · 이범윤 · 이인영 · 허위 · 이강년 · 홍범도) · 13도 창의군 · 헤이그 특사 (이상설 · 이위종 · 이준) ·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안중근) · 오적 암살단 (나철 · 오기호 · 기산도) · 황제 대리 의식 집행 거부 & 관료 암살 시도 (남정철 · 박영효 · 이도재)[a] ·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기타
한일병합 (일제강점기 · 한국통감부 · 조선총독부 · 무단 통치 · 친일반민족행위자 · 토지 조사 사업) · 일본어 잔재설 · 식민사관 · 식민지 근대화론 · 한일 무역 분쟁
관련 문서
식민지 · 강점기 · 병합
[a] 박영효 등이 고종의 퇴위에 협조한 대신들을 암살하려다 처벌된 사건은 이완용이 고종 퇴위를 반대하던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음.



파일:시일야방성대곡.png
1. 개요
2. 내용
2.1. 원문
2.2. 영역본[1]
2.3. 현대어 역



1. 개요[편집]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이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라는 의미다. 장지연은 이 글에서 황제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토 히로부미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을사오적 친일파들을 규탄했다.

한편 양기탁어니스트 베델이 공동 발행했던 신문인 대한매일신보도 이 사설을 게재하였다. 한글판인 '대한 매일 신보'의 경우 사진으로 보도하였고, 영문판인 'The Korea Daily News'는 시일야방성대곡을 영문판으로 번역해 게재하여 부당함을 알렸다. 해당 사실은 2017 수능 한국사 영역에 대한 매일 신보에 관한 문제인 14번에서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었다'는 선지가 등장하여 복수 정답 처리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9년 도전 골든벨 구리인창고 편에서 골든벨 문제로 출제되었다.


2. 내용[편집]



2.1. 원문[편집]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

曩日(낭일伊藤侯(이등후韓國(한국(ᄒᆞᆷᄋᆡ愚我人民(우아인민逐逐相謂曰(축축상위왈(ᄂᆞᆫ平日(평일東洋三國(동양삼국鼎足安寧(정족안녕自擔周旋(자담주선ᄒᆞ던(이라今日(금일來韓(래한ᄒᆞᆷ이必也(필야我國獨立(아국독립鞏固(공고扶植(부식ᄒᆞᆯ方略(방략勸告(권고ᄒᆞ리라ᄒᆞ야自港至京(자항지경官民上下(관민상하歡迎(환영ᄒᆞᆷ을不勝(불승ᄒᆞ얏더니天下事(천하사難測者(난측자(ᄒᆞ도다千萬夢外(천만몽외五條件(오조건((ᄒᆞ야提出(제출ᄒᆞ얏ᄂᆞᆫ고此條件(차조건非但(비단我韓(아한이라東洋三國(동양삼국分裂(분열ᄒᆞᄂᆞᆫ兆漸(조점釀出(양출ᄒᆞᆷ인즉伊藤侯(이등후原初主意(원초주의((ᄒᆞᆫ고雖然(수연이나(

大皇帝陛下(대황제폐하[A]

强硬(강경ᄒᆞ신 聖意(성의拒絶(거절ᄒᆞᆷ을不已(불이ᄒᆞ셧스니該約(해약不成立(불성립ᄒᆞᆷ은想像(상상컨ᄃᆡ伊藤侯(이등후自知自破(자지자파ᄒᆞᆯ바어ᄂᆞᆯ (彼豚犬不若(피돈견불약ᄒᆞᆫ 所謂(소위我政府大臣者(아정부대신자榮利(영리希覬(희기ᄒᆞ고假嚇(가혁恇劫(광겁ᄒᆞ야逡巡然(준순연觳觫然(곡속연賣國(매국(甘作(감작ᄒᆞ야四千年(사천년疆土(강토五百年(오백년 宗社(종사他人(타인에게奉獻(봉헌ᄒᆞ고二千萬(이천만生靈(생령으로他人(타인奴隸(노예敺作(구작ᄒᆞ니彼等(피등[[개돼지|豚犬]]不若(돈견불약ᄒᆞᆫ外大(외대朴齊純(박제순(各大臣(각대신(深責(심책ᄒᆞᆯ 것이(ᄒᆞ거니와名爲(명위叅政大臣者(참정대신자ᄂᆞᆫ 政府(정부首揆(수규(以否字(이부자塞責(색책ᄒᆞ야要名(요명((ᄒᆞ얏던가金淸陰(김청음裂書哭(열서곡不能(불능ᄒᆞ고鄭桐溪(정동계刃剚腹(인사복不能(불능ᄒᆞ고偃然(언연生存(생존ᄒᆞ야世上(세상㪅立(갱립ᄒᆞ니何面目(하면목으로强硬(강경ᄒᆞ신

皇上陛下(황상폐하[A]

㪅對(갱대ᄒᆞ며何面目(하면목으로二千萬(이천만同胞(동포ᄅᆞᆯ㪅對(갱대ᄒᆞ리오嗚乎痛矣(오호통의嗚乎憤矣(오호분의(二千萬(이천만爲人奴隸之同胞(위인노예지동포生乎(생호死乎(사호檀箕以來(단기이래四千年(사천년國民精神(국민정신一夜之間(일야지간猝然(졸연滅兦而止乎(멸망이지호痛哉痛哉(통재통재同胞(동포同胞(동포



2.2. 영역본[2][편집]


When it was recently made known that Marquis Ito would come to Korea our deluded people all said, with one voice, that he is the man who will be responsible for the maintenance of friendship between the three countries of the Far East (Japan, China, and Korea), and, believing that his visit to Korea was for the sole purpose of devising good plans for strictly maintaining the promised integrity and independence of Korea, our people, from the sea-coast to the capital, united in extending to him a hearty welcome. But oh! How difficult is it to anticipate affairs in this world. Without warning a proposal containing five clauses was laid before the Emperor, and we then saw how mistaken we were about the object of Marquis Ito's visit. However, the Emperor firmly refused to have anything to do with these proposals and Marquis Ito should then, properly, have abandoned his attempt and returned to his own country. But the Ministers of our Government, who are worse than pigs or dogs, coveting honours and advantages for themselves, and, frightened by empty threats, were trembling in every limb, and were willing to become traitors to their country and betray to Japan the integrity of a nation which has stood for 4,000 years, the foundation and honour of a dynasty 500 years old, and the rights and freedom of twenty million people. We do not wish to too deeply blame Pak Che Sun and the other Ministers, of whom, as they are little better than brute animals, too much was not to be expected, but what can be said of the Vice-Prime Minister, the chief of the Cabinet, whose early opposition to the proposals of Marquis Ito was an empty form devised to enhance his reputation with the people? Can he not now repudiate the agreement or can he not rid the world of his presence? How can he again stand before the Emperor and with what face can he ever look upon any one of his twenty million compatriots? Is it worth while for any of us to live any longer? Our people have become the slaves of others, and the spirit of a nation which has stood for 4,000 years, since the days of Tun Kun and Ke-ja has perished in a single night. Alas! fellow-countrymen. Alas!



2.3. 현대어 역[편집]


지난번 이토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 상하가 환영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 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즉, 그렇다면 이등 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 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 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 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 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3]

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4]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5]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4천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1] 1주일 뒤 대한매일신보 영문판에 실린 번역본이다.[A] A B 한자문화권에서는 임금의 칭호가 나오면 평대(平擡)라고 강제로 그 황제의 칭호가 맨 앞으로 나오도록 줄을 바꿔 적는 습관이 있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나대(挪擡)라고 앞에 공백을 넣었다. 본문에도 존재한다.[2] 1주일 뒤 대한매일신보 영문판에 실린 번역본이다.[3] 김상헌을 말한다. 청음은 그의 호.[4] 병자호란 때 이조 참판이었던 정온이 인조의 항복을 반대하여 할복하려고 하였으나 사람들이 달려들어 치료해서 산 것을 말한다. 동계는 그의 호.[5] 이 부분은 영역본에서는 번역되지 않았다. 조선 역사에 대한 외국인의 이해 문제상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13:16:44에 나무위키 시일야방성대곡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