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닦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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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현실에서
1.2. 절차
2. 도시전설
3. 각종 매체에서


1. 개요[편집]


말 그대로 시체를 닦는 행위. 장례 과정의 염습(殮襲) 중 '염'과 그전에 행해지는 수시에 해당한다.

사람이 사망하면 가장 먼저 영안실로 옮겨지는데, 장례를 진행하기 위해선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오물들을 닦아낼 필요가 있다. 상의부터 바지까지 차례로 벗긴 뒤 마지막으로 팬티를 벗긴다. 그 뒤 시신을 닦고 안치하게 되는 데, 소위 말하는 시체닦기는 이를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염습은 동성 간에 하는 것으로 오래도록 여겨져 왔었고 최근 들어 여성 장례지도사가 늘면서 젊은 여성의 유가족들이 남성 장례지도사보다 여성 장례지도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정작 시신을 안치하는 건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에 의전 이상의 의미는 없다.[1] 드물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염습과는 달리 유가족이 참관하기 않기 때문에 과거엔 일부 비양심적인 장례업체 측에서 사기나 다름 없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시신을 벗기거나 닦지도 않고 안치해두고는 관련 비용을 청구한다거나, 멋대로 수시복을 입혀버리고 그 가격을 청구하는 등...[2] 다행히 이건 10년대 이전의 이야기이고 장례식장 간의 경쟁이 치열한 요즘엔 몇몇 업체만 빼면 요즘엔 그런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이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사기죄가 성립된다.


1.1. 현실에서[편집]


동아시아권에서는 주로 장례식 직전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고 염습을 거행한다. 이 일에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면 전국의 많은 보건대에 개설된 장의학과나 장례지도과 진학을 추천한다. 최저시급에 불과한 월급과, 시신을 다루니 불결하다는 사회적 인식, 장례식장에서 외박하며 수면시간이 없는 3D업종에 버금가는 근무환경을 버틸 수 있다면 말이다.

흔히 '시체닦기'하면 떠오르는, 철제 염습대에 누운 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즈로 닦아 내려가는 작업은 영안실에 들어온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과정중에 하나일 뿐이고 알바생을 구해 써야할 만큼 인력이 부족한 작업도 아니다. 병원에서 고용한 인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 유족들의 참관하에 엄격한 절차와 예의를 지켜 행해지는 염습과는 달리, 외부에서 들어온 시신은 소지품을 통한 신원 확인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안치가 끝난 뒤에야 유족들이 도착하는 경우가 많아 영안실의 직원만으로도 수월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4년 전 창원의 한 남자 중학생이 하교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영안실로 이송된 적이 있었는데, 교복을 입고 있어 소속 학교를 특정지을 수 있었지만 학생이 이름표를 떼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 때문에 유가족이 통보를 받고 도착하는 데 2시간 정도가 소요된 적이 있다. 응급실을 거쳐 내려오는 시간을 합쳐도 그렇다는 이야기. 즉 유가족의 간섭이 적기 때문에 벗기내기 힘든 교복 바지는 가위로 잘라내고 씻길 때도 사타구니 등을 따로 가리는 일 없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3] 반대로 등교중에 사망한 여고생의 경우엔 함게 있던 친구의 연락으로 가족들이 병원에 모두 도착한 상황이었고 여학생의 아버지가 교복을 온전히 반환 받아 보관하고 싶다고 부탁하여 이를 수락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 여학생이 입고 있던 교복이 치마가 아니라 몸에 맞춰 줄여 입은 교복 바지였고, 왼쪽 다리가 굽혀진 상태인데다 동복 특유의 기모 스판 재질에 시신에서 새어 나온 오물이 적셔져 탈의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바람에 두 시간 넘게 씨름한 끝에 성공한 적이 있다. 게다가 교복 바지를 입는 여학생들이 그렇듯 보이쇼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구조상 대변이 좌우로 퍼지지 못한 채 음부 안까지 말라붙어 몸을 씻기기도 쉽지 않았다. 옷가지 하나까지도 간직하고 싶은 유가족의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여학생 입장에선 영 좋지만은 않은 일.[4]

염습이란 말 자체가 시체를 씻기는 '염' 과 수의를 입히는 '습' 을 가리킨다.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시한 예식으로 아르바이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서구에서는 교회 관계자들이 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으로 장례과정을 중시하는 대만에서는 염습과정을 비롯한 장례절차 전반을 관리하는 전문 장례사가 존재하며, 높은 연봉과 전문직으로 대우받는다고 한다. 물론 한국은 그런 거 없다. 상조회사 같은 경우에는 1년간 무보수로 온갖 장례식장을 따라다니며 월급없이 견습생 시기를 거쳐야할만큼 극악하다.


1.2. 절차[편집]


1. 영안실로 옮겨진 시신을 염습대로[5] 옮긴다. 내원환자인 경우 상관없지만 집에서 임종했다거나 사고등을 당해 이송중 사망한 경우엔 사후경직이 오기 전 시신을 바르게 펴주어야 한다. 특히 사고사 등 외인사인 경우 더 그렇다.

2. 시신에 카데터 등의 구급 장비가 남아있다면 제거한다. 구급대측에서 계속 사용하는 장비는 응급실에서 사망시 알아서 제거하기 때문에 시신에 남아있는 튜브나 바늘은 일회용이므로 폐기하면 된다.

3. 시신을 닦기 전 입고 있던 옷을 벗긴다. 성의 있게 하는 경우 옷을 찢지 않고 벗겨내지만, 시신을 안치할 땐 인력이 한 명 밖에 붙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편의상 가위로 찢어 벗겨내는 경우가 많다.[6] 사고사인 경우 팬티를 벗기기 전 소지품에서 신원 확인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7]을 찾아내 넘긴다. 이 후 팬티를 벗긴다. 팬티를 마지막으로 벗기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그 사이 시신에서 배설물이 새어 나오더라도 팬티에 가둬져 염습대를 더럽히지 않기 때문. 같은 외인사여도 교통사고 등으로 숨진 경우엔 시신을 다 닦아낸 뒤 검시를 받지만, 자살이라면 발가벗긴 그대로 안치하여 조사를 기다리게 된다.

4. 시신을 별도의 세척대로 옮겨 미지근한 물을 이용해 닦아낸다. 샤워기 호스를 들고 물을 뿌려가며 흙과 피, 배설물등을 닦아내며 잘 닦아지지 않는 경우엔 장갑을 낀 손으로 문질러 닦아낸다.

5. 물기를 말끔히 닦아 낸 시신을 다시 염습대로 옮겨 안치를 위한 작업을 한다. 시신의 주요 구멍을 솜으로 막는 충이 작업을 하는데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신은 요도와 항문 정도만 막는다.[8] 그 다음 알코올을 묻힌 거즈로 온몸 구석구석을 닦아낸다.

6. 수의가 준비된 경우엔 수시복을 입힌다. 시신이 고령이거나 젊더라도 암, 백혈병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치료를 진행할 수 없어 죽을 날짜만 기다려서 임종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경우에는 수의를 미리 준비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시복을 입히지만, 젊은 경우엔 갑작스러운 사망이 대부분이고 유족은 아직 연락조차 받기 전인 경우가 많아서 수시복을 입히는 대신 속옷을 입힌다.[9] 팬티로는 사이즈와 성별 구분 없이 입힐 수 있는 신축성 있는 재질의 드로즈를 많이 이용한다.

7. 시신을 냉동고에 안치한다. 외인사의 경우엔 한두시간 정도는 냉동고 외부에 안치해 두기도 한다.[10] 이후 유족의 의사에 따라 장례가 진행된다. 유족이 전통 수의를 입히길 원하는 경우엔 염습 전 다시 속옷을 벗겨내고 수시복을 입히며, 그 외의 종류의 수의를 입힐 경우 망자의 성별과 망자가 입을 수의 특성에 맞는 속옷을 입힌다. 시신이 영안실에 머무르는 기간은 하루 정도로, 염습을 마친 뒤엔 빈소에 딸린 안치실로 시신을 옮긴다.[11]


2. 도시전설[편집]


'아르바이트 중에는 시체닦기라는 것이 있는데 시간에 비해 엄청난 보수가 나온다' 는 도시전설이 존재한다. 모든 알바생들은 높은 보수를 받았으며, 그 중에는 시체를 닦아주는 이도 있었다 한 구당 몇십만 원을 준다는 소문까지 도는 판. 힘들기도 하거니와 워낙 겁나는 일이라서 지원자를 받아 일을 시키는데 그 대신 보수는 매우 두둑하게 치러준다는 카더라 통신이다.[12]

이런 아르바이트는 위생 문제 때문에 존재하면 매우 위험하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에서는 시신을 보관·안치·염습·운구 등을 할 때에는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위생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반드시 장례지도사가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았다.[13] 즉 법적으로 아르바이트 자체가 금지되진 않았다. 그러나 염습하는 것 그 자체는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데다가 유족이 참관하여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단순히 시체를 닦는 것만 아니라 시체 처리와 관련된 충분한 전문 지식과 요령, 그리고 고인에 대한 예의 등을 갖추어야 하는 일이기에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처리하는 곳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의 가족의 유해를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알바생에게 맡기지 않는다.

연고자 없는 유해나 의과 실습용 시체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더더욱 전문가가 관리해야만 한다. 시체는 해부학과를 졸업한 '의사'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시관이나 시체 유기중인 범죄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시체를 닦을 일은 결코 없다.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닦았다가 시체가 훼손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떠안고 일반인을 고용할 일은 없다.

시체닦기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며 경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으며 하기 전에 술을 마시게 한다, 일단 시체 닦는 방으로 들어가면 다 닦을 때까지 밖에서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다, 닦다가 어딜 잘못 건드렸더니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심장 멎는 줄 알았다 등등. 물론 장례식장에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위의 말은 전부 헛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 인터넷에 떠도는 경험담들을 보면 영안실 안에 누워 있던 시신이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니, 시체 썩는 냄새에 토를 했다니 하는 묘사가 있는 데, 영안실의 일처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나면 말도 안되는 소리임이 드러난다. 시신을 닦는 건 안치 전의 일로[14], 싸늘하기는 커녕 생전에 흘린 땀조차 마르지 않고 끈적하게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시신을 닦는 건 안치 전 단계이며, 사고사등의 경우엔 유가족이 도착하기 전에 작업을 끝내두는 게 일반적이다.[15] 시신의 성별이나 상태를 가지고 고인 앞에서 농담을 하는 묘사도 있는 데, 유가족들도 사망 후에도 귀가 3일동안 열려 있다고 여기는 전통에 따라 크게 우는 것을 지양하는 것을 생각해보면...[16]
  • 영안실 내부에서 부패가 진행된 시신을 볼 수 있는 건 고독사 정도가 전부인데, 이 경우 장의업체보다 검경이 먼저 손을 대며 뿜어져나온 시취도 즉시 이루어지는 환기와 소독, 청소로 금새 사라진다.[17]
  • 영안실을 어두침침한 공간으로 묘사하여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실제로는 일반 병실이나 사무실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다. 단지 벽 한켠에 늘어선 냉동고들과 일상 생활에선 보기 드문 각종 금속재 설비들이 일반인들에게 위화감을 줄 뿐이다.
  • 염습 및 입관을 거행하는 입관실이 따로 있는 건 맞지만, 문을 밖에서 잠그는 일은 없다. 염습 과정은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며, 마지막 작별을 위해 유족을 입관실에 들여보내기도 한다.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내려오는 권고사항에는 염습실 내부의 위생상태는 감정이 격해진 유가족의 돌발 행동[18]까지도 감안하여 유지하도록 되어있다. 염습은 조명히 환하게 켜진 깔끔한 방 안에서 이루어지며, 행동 하나 하나에 절차적 의미가 담긴 예식에 가까운 양상으로 진행된다.
  • 시체가 다시 일어나는 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죽은 시체는 절대로 저절로 움직이지 않으며, 시신은 사망을 의사가 직접 확인한 뒤에야 영안실로 옮겨진다 .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하면 곧장 영안실로 보내버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장에서 이미 사망한 상태라 하더라도 우선은 응급실로 옮겨 소생술을 실시하다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의사에 의해 영안실로 보내지는 것이다. '배를 눌렀더니 입에서 썩은 물이 나오더라', '어딜 만졌더니 벌떡 일어났다', 같은 경험담은 루머로, 시신을 닦기 시작하는 건 사망한 지[19]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부패는 커녕 체온도 식지 않았고 사후경직도 오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있지도 않은 부패액이 배를 누른다고 해서 뿜어져 나올 순 없다. 사후경직이 오기 전까지 시신은 축 처져 있기 때문에 신체부위가 저절로 움직이는 일도 있을 수 없다.
  • 라자로 징후(Lazarus sign)라고 해서 뇌사한 유체의 신체의 일부가 중추신경계의 억제가 사라진 후에 척수 반응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있기도 하다. 비슷한 이름의 라자로 증후군(Lazarus syndrome)라고 해서, 심폐소생 실패 이후, 즉 사망 선고 이후에, 자발적인 소생을 하는 경우도 보고되어 있지만, 아주 드물다.[20]

이 도시전설은 일본에서 훨씬 유명하다. 빨간 마스크처럼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으로 건너온 괴담으로 추정. 단순히 시체를 닦는 것을 넘어 아르바이트생이 어두침침한 지하실에 상주하며 포르말린에 담가둔 해부 실습용 시체를 떠오르는 족족 막대로 찔러 밀어 넣는다는 등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 시체가 잠길 정도로 대량의 포르말린이 있는 방이라면 그 방의 공기는 한숨 들이쉬자마자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막대기와 함께 방독면을 준다는 황당한 보완 버전도 있다. (…)
일본에서 이 도시전설이 퍼진 이유로, 일본의 시신 손질에 대한 인식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 유교 의식 때문에 시신을 만지고 수습하는 장례 일은 학식과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이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현대에도 장의사란 직업에 대해선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하는 것'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당연히 이 시신 손질에 대한 인식도 엄숙하고 중요한 일로 대했다. 유교의 발상지인 중화권에서는 한국이 생각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전문직에 준하여 높은 연봉과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런 장례 일은 천민인 부라쿠민이 행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장례 일=천한 것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게다가 일본에선 아직도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 의식이 많이 남아 있어서 장례 일을 천대하는 인식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천시가 시신 자체에 대한 혐오와 겹쳐서 도시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유족의 처지로 한번이라도 장례식을 치뤄본 사람은 유족이 시신의 염습과 입관 과정을 참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로 알바를 못 쓴다. 심지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조차 알바로 못 쓴다. 염습이나 입관할 때 그 알바가 혹시라도 실수나 무례를 범할 경우에 말 그대로 끝장나기 때문이다.[21] 하다못해 사회인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해본 경험이 있다면 장례 절차상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 학창시절에나 통할 법한 도시괴담.

간혹 장례식이 현대화한 요즘은 불가능하지만 옛날엔 또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당연히 장의사가 직접 집으로 방문해서 염습했다. 이게 1980년대, 농촌지역에서는 1990년대까지 벌어졌던 장례식 풍경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보면 이런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람들이 장례를 집이 아닌 외부 전문 장례시설을 이용해 치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 점진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신풍속도였다.

다만 과거에는(정확히 80년대 민주화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낸 부모님 세대들) 무연고 시신의 경우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에 음지에서는 있었을 수도 있다. 의외로 부모님 세대에서 비밀리에 이런 알바를 했다는 증언이 꽤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사산아를 가지고 술을 담가 먹느니 하는 도시 전설이 추적60분에서 사실로 판명되었던 것처럼 1990년도 까지는 비밀리에 쉬쉬하면서 이런것이 있었을수도. 다만 이런 무연고 시신의 경우 대학병원 실습용으로 종종 쓰였던 70~80년대의 현실로 봤을 때 그때 의과대학생들의 경험담이 와전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는 사후 사체 기증을 승락하고 그 유가족이 받아들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무연고 시신을 실습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에 글에서 나온 것처럼 1990년대 들어서 전문 장례시설을 이용해 치르기 시작하기 전까지 노숙자등 무연고 시신이 경찰을 통해서 들어왔을 경우 가끔 대학병원으로 들어왔는데 그 경우에 의대생들이나 인턴들이 꺼려해서 희망자가 없는 관계로 병원측에서 수고비를 조금 쥐어준 것이 와전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공식적인 돈이 아니기 때문에 쉬쉬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90년대 이후로 장례식장이 활성화되면서 이런 무연고 시신의 경우 대학병원에 들어온 장례업체에서 하게 되었다. 그후로는 당연히 도시전설이다.

원칙적으로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할 필요는 없다.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처리는 일반적으로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다만 서류상의 공적인 사망에는 무조건 사망진단서 내지 사체검안서가 필요한데, 이 절차를 소규모 의원에서 밟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응급실이 있어 의사가 매시간 상주하는 2차병원급은 되는 곳에서 하므로 무연고 사망자를 대학병원에서 처리한다는 일종의 편견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든 (비정규직일 수는 있어도) 시신은 병원 직원, 장례식장 직원, 무연고 시신의 관할 지자체 공무원 등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처리하게 된다. 차라리 무연고 시신이라 유가족 감시가 없는 것, 따로 뽀찌 및 영업의 여지가 없는 것을 이유로[22] 염이고 뭐고 대충하고 화장하거나, 유관 공무원들과 장례식장이 정부 보조금 가지고 유착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확률이 더 높다.

그리고 장례지도사라는 자격증은 1990년도가 지나서 나왔다. 1990년도 전에는 자격증이 없으니 관련 법도 없었다. 무연고자의 경우는 충분히 아르바이트를 써서 대충 염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연고자를 국가에서 정식 장의사 불러서 염할 정도로 정부가 돈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 의대생이나 인턴이 아닌 일반인이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식으로 표현한 말들은 100프로 구라다. 결론을 내자면 시체닦기 아르바이트는 20세기 무렵 음지에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21세기 현재로서는 절대 없다. 물론 이런 도시전설은 20세기 시절부터 있어 왔다.

단, 일부 응급실을 갖춘 병원에서 사고(자살 포함)를 당해 들어오는 시신의 안치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아르바이트는 아니다.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직업이나 길가에 치인 동물 잔해를 치우는 일 또한 있는데 이런 일 역시 전문가 내지 동물보호단체 자원봉사자가 처리하니 아르바이트로 해 봤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3. 각종 매체에서[편집]


  • 죽은 자의 사치(死者の奢り)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23]가 1957년에 발표한 출세작. 작품의 주인공시체닦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로 설정되어 있다. 적어도 1950년대부터 이러한 도시전설이 존재했다는 증거. 혹은 이 소설을 근거로 해당 도시전설을 진실로 믿는 사람도 있다.

  •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 국내 개봉명 굿' 바이)
2008년작 일본 영화. 본격 시체닦기 영화. 시놉시스만 보면 엽기 영화처럼 느껴지겠지만 내용은 납관사의 모습을 다룬 상당히 진중하고 감동적인 영화다. 2009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을 정도. 다만 오카마의 시체를 염습하는 등의 웃지 못할 상황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로 시체닦기를 시작해 정식 납관사가 된다. 정확히 말하면 견습생이지만 주인공은 처음에 그 일이 생업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고 아내에게도 숨긴 채 일시적 돈벌이 차원에서 시작한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납관사 일을 매우 천시한다. 이 천시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주인공의 감정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이다.

시체닦기를 테마로 한 에로게.

물론 이 항목은 인터넷에서 이야기가 와전된 경우다.

드라마 CD에서 를르슈 람페르지가 한번 했다. 정확히는 시체를 닦진 않고 위에 적혀 있는 막대기로 떠오르는 시체 쿡쿡 누루는 거. 리발한테 알바를 소개받게 되는데 리발이 저 일이라고 하자 를르슈가 상술된 이유를 대면서 그런 게 있을 리 없다고 한다. 그러자 보완 버전이었는지 리발이 방독면과 막대기를 줘서 결국 그 일을 하게된다. 근데 다음 장면에서 C.C가 포르말린탕에서 푸와아아앗 치솟아 오르며 를르슈 깜놀.[24]

번외편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소노하라 기지에서 비밀리에 전사자의 유해를 처치해 임시로 입관하는 일을 하는 부분이 있다. 포르말린탕에서 시체를 건지고, 결손된 부위를 찾아 처치하고 천으로 싸서 관에 드라이아이스 같은 냉각재와 함께 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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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유가족들에겐 심적인 위안이 될 것이다.[2] 수시복은 수의와 세트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수의를 통째로 팔아먹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3] 위생 상 그럴 수도 없지만 만약 염습처럼 유가족이 참관한다면 옷을 벗기고 씻기는 데에만 몇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4] 누구라도 다른 유가족들의 출입이 있는 영안실 한가운데의 염습대에 얼굴부터 배꼽 아래쪽까지 드러낸 채로 두시간 넘게 누워있는 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수치심을 못느낀다지만 그런 논리라면 고인에 대한 예의조차도 그 의미가 없어진다. [5] 영안실에 비치하는 염습대는 2층 구조로 아래엔 시신에서 벗겨낸 옷가지들과 시신을 닦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물들을 처리하기 위한 공간이 있다. 염습대는 스테인레스 재질로 된 것을 쓰기 때문에 물이 닿아도 부식되지 않는 장점이 있으며 배수가 용이한 구조로 되어있다.[6] 가위 날에 의한 시신의 손상을 막기 위해 ㄱ자로 구부러지고 날이 뭉특하게 엇갈린 의료용 가위를 사용한다.[7] 신분증, 휴대폰, 카드[8] 냉동고에 안치하고 나면 다음 날 염습 할 때나 꺼내기 때문에 시신이 상할 틈도 없어서 배설물 외엔 신경쓸 거리가 적다. 보통 3일장을 치루기 때문에 냉동고의 온도는 영상 0도~2도 사이가 일반적. 장기 안치가 아닌이상 시신을 얼려봤자 시신만 상한다.[9] 그냥 알몸으로 안치하는 경우도 있는 데 유족이 신원 확인을 위해 한 번은 보기 때문에 속옷이라도 입히는 게 보통이다.[10] 소식을 들은 유가족측에서 본인들이 도착할때 까지 냉동고에 넣지 말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냉동고에 넣어버렸다고 따지는 경우도 많고 해서 사망한 직후 옮겨진 시신은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영안실을 찾은 방문객들과 맞물리는 경우가 있는데 굳이 시선을 주거나 하지 않는 게 고인을 배려하는 길이다.[11] 물론 안치실의 출입은 직원을 동반해야만 한다.[12]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라면 한창 소문이 유행하던 2000년대 초 부터 2010년 사이에는 하루에도 몇 번 씩은 일을 시켜 달라는 전화가 오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13] 애초 공인자격증이란 전문 지식/기술을 공적으로 인증하는 것일 뿐 자격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면허 받은 자 외에는 행위가 금지되는 면허증과 구분되는 점이다.[14] 시신이 들어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버리고 염습 전에야 꺼내 눈가림하던 수준이하의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속에서 대부분 도태되었다. 대도시의 장례 업체라면 아무리 돈만 밝히는 업자도 적어도 유족의 눈이 닿는 영역에서는 의전에 모든 걸 건다.[15] 업체간의 경쟁이 주는 순기능으로, 위생적으로나 예의상으로나 고인을 방치해 두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다. 또한 시신을 확인한 유가족들이 해당 장례식장에서 그대로 장례를 치루게끔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장례식장을 미리 알아보는 등의 준비가 가능한 고령 자연사에 비해 갑작스러운 죽음의 경우엔 고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시겠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믿음을 주고, 이를통해 자연스럽게 장례계약을 맺고 고인을 모실 수 있다.[16] 안타까운 것은 현실에서도 일부 수준 이하의 사람들에 의해 고인에 대한 실례가 이따금 일어난다는 점이다. 고인의 연령이 젊은 경우엔 존칭조차 붙이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17] 4급 암모늄염, 계면활성제, 염소 및 염소화합물등이 들어간 여러 종류의 약품으로 철저하게 소독한다. 고인에 대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시신을 만져가며 일하는 근무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이를 소홀히하면 영안실 출입자들이 각종 병균에 노출되게 된다.[18] 바닥에 주저 않는다거나 고인과 인사하는 과정에 염습실 내부 설비에 손이 닿는 등[19] 정확히는 사망 판정을 받은 지[20] 말 그대로 아주 드물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21] 이런 자세는 장례식의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된다. 심지어, 매장할 때도 관을 내리고 흙을 덮는 인부 아저씨들조차 관의 일부라도 절대로 밟지 않는다. 모든 문화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장례의식은 매우 경건하고 엄숙하며, 유족의 심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니 당연.[22] 점차 사라지고는 있으나, 유가족들이 고인 의전을 담당하는 장례지도사에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돈을 쥐어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는 과거 장의사에게 급여를 에둘러 준 것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장례지도사에게 소속이 생기고 월급을 주는 곳이 생기면서 비리가 된 상황으로 촌지의 시대적 변화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장례절차는 죄다 돈이므로 영업을 할 수록 이득이 된다.[23]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24] 다른 에피소드의 사건에서 잘못 엮여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