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수(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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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신경수(申敬守)
이명
신영수(申英秀)·신경수(申敬秀)

영집(泳執)
본관
고령 신씨[1]
생몰
1876년[2] ~ 1909년 11월 28일
출생지
전라도 장성도호부 북이면 용산리
(현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백암리 용산마을)[3]#
사망지
대구형무소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신경수는 1876년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백암리 용산마을에서 아버지 신양호(申養浩)와 어머니 고흥 류씨 류경선(柳景善)의 딸 사이의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8년경 김영백(金永伯)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고, 그해 11월 동지 3명과 함께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오덕군 반룡리의 민가에 들어가 금 40량을 모급했다. 또한 12월 23일에는 장성군 북상면 송산리에 거주하는 유용경(劉用景)의 집에 찾아가 엽전 50량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체포되었고, 1909년 5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소위 강도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그는 공소했고, 6월 24일 대구공소원에서 징역 1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1909년 11월 28일 대구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신경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귀래정공파 27세 수(秀) 항렬. 족보명은 신영수(申英秀).[2] 고령 신씨 대동보에는 1877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3] 고령 신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