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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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편집]
신군부(新軍部)는 군 내부의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아 대한민국 제5공화국을 세운 군대 내부 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던 '구(舊)군부'와 구분 짓기 위해 '신(新)군부'라고 부른다.
2. 내용[편집]
하나회는 육군사관학교 11기와 12기 졸업생들 중심으로 조직된 군 내 사조직으로 경상도 출신[1]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박정희의 암묵적 비호 하에[2] 세력을 키우던 중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사망하자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1980년 5.17 내란(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으로 서울의 봄을 짓밟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 초법적 기관 국보위를 설치해 다단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1980년 8월 27일 하나회 수장이었던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 제5공화국 헌법과 민주정의당을 만들고 제5공화국 대통령이 된다.
신군부 인사들은 199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 정관계의 요직 곳곳에 배치되며 영화를 누렸으나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후 하나회 숙청 작업에서 대부분 현직에서 물러났고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법정에 세워져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3. 인물[편집]
아래 명단에 표기된 소속 부대명과 계급은 12.12 군사반란 당시의 소속 부대와 계급이다.
- 국군보안사령관 소장 전두환 (육 11)
- 제9보병사단장 소장 노태우 (육 11)
- 제50보병사단장 소장 정호용[3] (육 11)
- 국방부 군수차관보 중장 유학성 (정훈사관 1)
- 제1군단장 중장 황영시 (육 10)
- 수도군단장 중장 차규헌 (육 8)
-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대령 허화평 (육 17)
-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대령 허삼수 (육 17)
- 국군보안사령부 대공과장 중령 이학봉 (육 18)
-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 대령 장세동[A] (육 16)
- 수도경비사령부 제33경비단장 대령 김진영[A] (육 17)
-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 대령 조홍[A] (육 12)
-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 중령 신윤희[A] (육 21)
-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대령 우경윤[4] (육 13)
-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 대령 성환옥[5] (육 13)
- 제20보병사단장 소장 박준병 (육 12)
- 제71방위사단장 준장 백운택 (육 11)
- 제1공수특전여단장 준장 박희도[B] (육 12)
- 제3공수특전여단장 준장 최세창[B] (육 13)
- 제5공수특전여단장 준장 장기오[B] (육 12)
-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 준장 정동호 (육 13)
- 대통령경호실 작전과장 대령 고명승 (육 15)
- 대통령경호실 제33헌병대장 중령 최석립 (육 19)
보통 여기에 육군보병학교장을 지낸 김윤호 장군(육 10)과 3사단장을 지낸 박세직 장군(육 12)을 더하지만 이 두 사람은 12.12 군사반란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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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중에서도 주로 대구·경북 출신이 많았다. 핵심 인사인 전두환은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났지만 4세 때 대구로 이주한 뒤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자랐기에 실질적 고향은 대구다. 아울러 그의 동기인 노태우는 아예 대구에서 태어나서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전두환, 노태우의 동기인 정호용도 대구 출신이다.[2] 공교롭게도 그 박정희 역시 TK(경상북도 구미시) 출신이다.[3] 군사반란 성공 이후 육군특수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아래 사진은 특전사령관으로 취임한 다음날에 찍은 것이다.[A] A B C D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직속부하[4] 당시 계엄사 합수본으로 파견[5] 헌병감 김진기 준장 직속[B] A B C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