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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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북한의 전직 마라톤 선수며, 1960년대 중거리 세계육상 최강자였다.

2. 생애[편집]


1938년 함경남도 리원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신문준은 6.25 전쟁 중 1.4 후퇴 때 징집을 피해 홀로 월남하게 되어, 가족을 이북에 두고 오게 되었다. 딸을 북에 두고올 때 나이가 고작 12살이였다고 하니,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셈이다. 6.25 전쟁 이후 신금단의 자세한 삶은 알려지지 않으나, 선반공으로 일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선수로서의 삶은 대략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1960년 모스크바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북한의 육상 선수로 등장한다.[1] 이후 1963년 11월10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신흥국 경기 대회(가네포 대회)에서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200m까지 석권하며 3관왕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1964 도쿄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연치 않게 자신의 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신문에 대서특필된 신금단의 사진을 보고 자신의 딸임을 발견한 것.

우선 아버지 신문준이 올림픽위원회에 연락하여 분단 이후 한번도 보지 못했던 딸을 만나고 싶다고 하였고, 위원회는 이를 승낙하여 신문준을 일본으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IOC가 가네포 대회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판단하여 북한 선수단의 출전자격을 박탈하여 북한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금단과 아버지 신문준은 우에노 기차역에서 약 7분이라는 시간 동안 상봉하게 된다. 공식적인 첫 이산가족 상봉이였고, 부녀는 14년을 기다린 끝에 7분 동안 상봉할 수 있었다. 이후 신 부녀는 다시는 볼 수 없었고, 기약없는 이산가족 상봉을 기다리다가 신문준은 1983년에 사망하게 된다.

추가로 부녀 상봉으로 신금단이 남자 아니냐는 헛소문이 있었는데 쏙 들어가게 된 바 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북한에서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받았다.

현재까지 살아 있으며, 압록강체육단의 지도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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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0m 53초, 800m 2분 1초로 2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