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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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라 대방광불화엄경1.png
사진 출처

1. 개요
2. 가타카나와의 연관성
3.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新羅 大方廣佛華嚴經. 신라 효성왕 4년(740)에 신라인이 제작한 대방광불화엄경. 현재 일본 나라시(奈良) 도다이지(東大寺)가 소장 중인데,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 가타카나와의 연관성[편집]



파일:신라 대방광불화엄경2.png

KBS 뉴스 영상 : 일본 글자 ‘가타카나’ 신라서 유래 가능성

서기 740년쯤 신라에서 제작한 불경의 원본으로, 현재 일본 동대사에 소장되었다.

파일:신라 대방광불화엄경3.jpg
사진 출처

2013년 9월 2일 일본 NHK 뉴스에서 히로시마대학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교수와 한국 연구진이 740년경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연구하던 중 신라의 각필(角筆) 문자 360구를 발견했다. 확인 결과 이러한 신라 고유의 문자 체계가 가타카나의 기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日학자 "일본문자 가타카나 신라서 유래 가능성" 고바야시 히로시마대 교수 "日가타카나, 신라서 유래"

신라의 각필이란 으로 쓰인 한자 옆에 나무나 상아 등 단단하고 뾰족한 물체로 종이를 눌러 작은 글자 자국을 새겼는데, 촛불이나 햇살에 비스듬히 비추면 볼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 일본의 고바야시 교수는 이러한 신라 각필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신라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발견된 신라의 각필문자는 대부분 가타카나의 조성 원리와 똑같이 한자를 축약한 형태였다. 예컨대 왕(王)이라는 한자 옆에는 이(伊)에서 인(亻) 변을 떼어낸 윤(尹)이 새겨져 있었다. '왕이∼했다'는 의미를 전달할 때 주격조사인 '이'를 한자 축약으로 표기한 것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이들 각필문자는 당시 신라인이 신라어로 한문을 읽어내기 위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를 축약해 발음을 표시하기 위해 만든 일본 가타카나의 기원이 한반도일 가능성이 있다." 하고 말했다.



일본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가타카나헤이안 시대(平安: 794-1185)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주류였으나, 그보다 최소 100년 전에 신라에서 만들어진 각필이 전해졌으니 각필이 일본 가타카나의 기원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좀 더 앞선 시기 중국 곳곳에서 이미 각필과 유사한 방식으로 음을 적는 시도들이 있었음이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학적 탐구 조사로 밝혀지며 신라 각필이 일본 가타카나의 독자적 기원이라는 주장은 크게 힘을 잃었다.

특히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물만을 기준으로 보면, 신라 대광불화엄경[1]보다 이른 시기인 7세기와 8세기 초에 작성된 일본 공문서들에서 현대 가타카나와 히라가나의 ム, ツ, つ 등의 기원이 되는 원시적 형태의 가나가 쓰인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신라가 가나를 만들어줬다”라거나 “한반도에서 가나가 기원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2] 따라서 가나의 기원이 구결이라는 가설은 한중일 학계에서 주류 정설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가나 자체가 철저히 일본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보수적으로 해석하더라도, 가나 문자 중 일부 문자의 형성 혹은 발전에 있어서 구결의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은 현재 확보 가능한 자료들을 기준으로도 충분히 제기 가능한 해석이다.

판비량론과 함께 신라시대 각필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3.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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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바야시 교수 주장의 근거 중 하나[2] 그렇다고 신라 혹은 한반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 가능한 상황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