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주연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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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주연합당
공식명칭
신민주연합당(新民主聯合黨, New United Democratic Party)
약칭
신민당
창당일
1987년 11월 12일 (평화민주당)
당명변경
1991년 4월 9일 (신민주연합당)
해산일
1991년 9월 16일 (민주당으로 신설 합당)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33 (여의도동)
총재
김대중 / 5선 (5-8·13대)
원내총무
허경만 / 4선 (10-13대)
사무총장
김원기 / 3선 (10·12·13대)
정책위의장
류준상 / 3선 (11-13대)
당 색

연녹색 (#70BA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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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0B338E)

1. 개요
2. 창당 과정
3. 특징
4. 짧은 존속 기간
5. 역대 선거 결과
6. 역대 당직자
6.1. 총재
6.2. 원내총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신민주연합당_출범.jpg


1991년 평화민주당과 재야세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당. 중앙당사는 평민당 때 썼던 여의도백화점 건물에 있었다.


2. 창당 과정[편집]


3당 합당으로 정국의 주도권이 민주자유당으로 넘어가자 평화민주당은 '호남 정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고, 김대중 측은 이를 탈피하기 위해 이른바 '친DJ계 재야 세력'과 세 규합을 통해 신진 세력을 수혈하고자 했다. 그렇게 일부 재야인사들은 정치 개혁 등을 내세우며 (가칭)'신민주연합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활동에 나선다. 평민당은 이들과 당대당 통합을 하겠다고 나섰고, 당내 의사결정 기구(오늘날의 '최고위원회'에 해당) 배분을 50%:50%으로 합당명을 '신민당'으로 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의도 한다. 하지만 실상 이면에는 호남 지역으로 위축된 평화민주당 세력의 전국정당화 목적도 있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호남 지역의 평민당 조직을 활용하고, 영남 지역의 신민주연합당 세력이 규합되는 식이 될것이라는 기사가 있었을 정도.

'창당대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지만 당명을 변경하는 전당대회를 열고, 그 다음 재야 인사들이 주축이 된 '신민주연합당 정당설립준비(주비)위원회' 인원들이 개별입당하는 식이었다.[1] 참고 기사1 기사2 이런 배경 때문에 당시 상황을 '합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즉 법령상으로는 당명변경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신설합당의 외관을 보인 것이다. 어차피 호남 지역정치 세력과 김대중 지지 그룹과의 결합이었으므로 큰 탈은 없었다. 당시 창당식을 보면 이해찬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3. 특징[편집]


신민주연합당이라는 이름은 신민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서 지은 당명이며, 실제로 신민당이라는 약칭을 대외적으로 더 많이 쓰기도 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대표 야당이 신민당[2]이었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 세력에게 신민당은 남다른 이름값이 있는 당명이었다.

당 초창기의 전망은 민주자유당의 실정으로 상당히 밝은 편으로 수도권에서 선전할 것이라는 평이 많았지만, 1991년 지방선거에서 투표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참패하고 말았다. 선거 공보물에서는 다들 그냥 '신민당'이라는 약칭을 썼지만, 호남 지역에서는 김대중의 후광 효과를 얻고자 '신민당(구 평화민주당)'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후보들도 많았다. 당시 여건상 평민당에서의 당명 변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


4. 짧은 존속 기간[편집]


애초부터 오늘날의 정치용어로는 '야권통합', '야권연대' 등을 내세운 정당이었다. 그렇게 '더 큰 야권 통합'을 이루겠다며 '꼬마민주당'이라 불리던 민주당(1990년)과 통합, '민주당'으로 신설합당한다.


5. 역대 선거 결과[편집]




6. 역대 당직자[편집]



6.1. 총재[편집]






6.2. 원내총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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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eee,#222><width=33%> 초대
김영배 ||<width=33%> 2대
김봉호 ||<width=33%> 3대
허경만 ||
||<-3><bgcolor=#fff,#111> ||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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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방식은 민주통합당 때와 어느정도 비슷하다. 다만 당시에 문재인 등은 시민통합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당대당 합당을 했다.[2] 참고로 전두환 시절에는 신한민주당이었다. 당시에는 신민당이라는 명칭 사용이 불허되어 할 수 없이 약칭을 신민당으로 할 수 있는 이름으로 지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