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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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시대 북위의 관료로 농서군(隴西郡) 적도현(狄道縣) 출신.
5대조인 신이(辛怡)는 서진에서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다. 부친인 신연(辛淵)은 서량에서 효기장군(驍騎將軍)을 지냈고 이흠으로부터도 후한 대우를 받았다.
439년, 북위의 태무제가 북량을 평정한 뒤 신소선은 진양(晉陽)으로 옮겨 살았다. 총명하고 식견과 도량이 있었으며, 유명근(游明根), 노도세(盧度世), 이승(李承) 등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 또한 효성도 지극해서 신연이 죽은 뒤 3년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고 3년 동안 머리를 빗거나 목욕을 하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기에 항상 남루한 차림새를 했다.
신소선은 뒤에 중서박사(中書博士)에서 신부령(神部令)으로 전임되었다. 한편 유송의 장수 설안도가 귀순한 뒤 조정에서는 새로 귀순한 이들을 달래고자 신소선을 하비태수(下邳太守)로 임명하고 영삭장군(寧朔將軍)을 더했다. 신소선은 하비에 부임한 뒤 분명한 판단을 구하지 않고 대강만 잡았으며, 백성들에게는 침공에 방비하라고만 조언했다. 이후 진현달, 소도성, 소순지가 북위를 침공할 때 소도성이 소순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국 소도성 등은 하비를 지나지 않고 곧장 여량(呂梁)에 주둔하였다.
신소선은 이후 489년에 사망하여 관군장군(冠軍將軍), 병주자사(幷州刺史), 진양공(晉陽公)으로 추증되고 혜(惠)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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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紹先 신소선 | |
작위 | 평서후(平舒侯) |
성 | 신(辛) |
이름 | 소선(紹先) |
생몰 | ? ~ 489년 |
부친 | 신연(辛淵)[1] 당나라 때 편찬된 북사에서는 고조 이연을 피휘하여 신심(辛深)으로 나온다. |
본관 | 농서군(隴西郡) 적도현(狄道縣) |
1. 개요[편집]
남북조시대 북위의 관료로 농서군(隴西郡) 적도현(狄道縣) 출신.
2. 생애[편집]
5대조인 신이(辛怡)는 서진에서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다. 부친인 신연(辛淵)은 서량에서 효기장군(驍騎將軍)을 지냈고 이흠으로부터도 후한 대우를 받았다.
439년, 북위의 태무제가 북량을 평정한 뒤 신소선은 진양(晉陽)으로 옮겨 살았다. 총명하고 식견과 도량이 있었으며, 유명근(游明根), 노도세(盧度世), 이승(李承) 등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 또한 효성도 지극해서 신연이 죽은 뒤 3년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고 3년 동안 머리를 빗거나 목욕을 하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기에 항상 남루한 차림새를 했다.
신소선은 뒤에 중서박사(中書博士)에서 신부령(神部令)으로 전임되었다. 한편 유송의 장수 설안도가 귀순한 뒤 조정에서는 새로 귀순한 이들을 달래고자 신소선을 하비태수(下邳太守)로 임명하고 영삭장군(寧朔將軍)을 더했다. 신소선은 하비에 부임한 뒤 분명한 판단을 구하지 않고 대강만 잡았으며, 백성들에게는 침공에 방비하라고만 조언했다. 이후 진현달, 소도성, 소순지가 북위를 침공할 때 소도성이 소순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소선에 대해서는 경솔하게 침공하지 말고 의당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오.
결국 소도성 등은 하비를 지나지 않고 곧장 여량(呂梁)에 주둔하였다.
신소선은 이후 489년에 사망하여 관군장군(冠軍將軍), 병주자사(幷州刺史), 진양공(晉陽公)으로 추증되고 혜(惠)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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