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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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히브리어
ביבליה
아람어
ܟܬܒܐ ܩܕܝܫܐ
코이네 그리스어
τὰ βιβλία
라틴어
Biblia
영어
(Holy) Bible
한국어
성경(聖經), 성서(聖書)

1. 개요
2. 명칭
3. 영향력
4. 권수
5. 정경과 외경
6. 구약
6.1. 명칭
6.2. 상세
6.3. 구약 정립의 역사
6.3.1. 구약성경 성립에 관한 근래의 견해
6.4. 성서 주석학적 연대 정리
6.5. 타낙의 3분 구조와 구약의 4분 구조의 해석학적 체계
6.6. 히브리 성경의 판본
7. 신약
8. 읽거나 해석하는 방법
8.1. 성경에서 근거하는 태도와 방법
8.2. 성서주석학을 통한 성경 읽기
8.2.1. 주의: 구약의 폐기는 신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8.3.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 읽기
8.4. 성경을 읽는 순서
11. 성경의 책들
11.1. 히브리 성경
11.3. 동방교회의 구약성경
11.3.1. 정교회 구약성경
11.3.2. 시리아 구약성경
11.3.3. 아르메니아 구약성경
11.3.4. 에티오피아 구약성경
11.4. 신약성경
11.5. 외경 및 위경
12. 등장인물(등장순)
12.1. 오경
12.2. 역사서
12.3. 지혜문학
12.4. 예언서
12.6. 서간 및 묵시록
13. 에피소드
14. 지명
15. 학문
16. 성경 디자인 선택 요령
17. 참고: 성경 속의 화폐 단위와 도량형
18. 참고: 성경 속의 달력
19. 연표
20. 기타
20.1. 성경 없음 구절
21. 주요 문헌
21.1. 성경
21.2. 입문 및 개론
21.3. 심화 연구
21.4. 고대 문헌 및 자료
21.5. 사전
21.6. 주석
21.7. 문헌 개론
22.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파일:구텐베르크성경.jpg
최초로 인쇄된 성경인 구텐베르크 성경
성경() 혹은 성서(聖書)는 유대교그리스도교경전 문헌 모음집이다. 가장 좁게는 오경[1]을 그 범위로 하며, 오늘날의 랍비 유다교에서는 타낙[2]을,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3] 및 신약을 경전 범위로 한다.

또한 이슬람쿠란 속에서 내용과 구절들을 뒷받침할 때 많이 언급되는 책이다.[4]


2. 명칭[편집]


성경3(聖經)

발음[성ː경]

「명사」

「1」 종교상 신앙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 그리스도교의 성경, 불교의 팔만대장경, 유교의 사서오경, 이슬람교의 코란 등이 있다. ≒성전.

「2」 『기독교』 기독교의 경전. 신약과 구약으로 되어 있다. ≒성경전서, 성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성경(聖經)은 넓게는 종교 일반의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다만 현대 한국어에서 이런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사실상 용례가 소멸하다시피 했고, 압도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책에 대해 쓰인다. 기타 한자 문화권에서도 성경이란 단어를 그리스도교의 경전만을 가리키고 있으며 기타 다른 종교의 경전은 고유 명사(쿠란, 베다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5][6]

영어의 Bible은 이집트파피루스와 어원이 같다. 당시에는 서적이 동물의 가죽[7]을 나무막대 등에 돌돌 말아서 한 면에만 글을 쓰던 형태와, 지금의 과 비슷하게 제본하여 양면에 글을 쓰는 형태가 있었다. 이때 지금의 과 비슷하게 만들던 것이 파피루스다. 영어의 Bible이라는 단어는, 이 파피루스를 당시 전 세계로 수출하던 페니키아비블로스(Byblos)라는 도시에서 따왔다. 단순히 파피루스의 발음이 순화되어 비블로스로, 그리고 그 비블로스가 바이블로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다. 둘 중 어느 경우이든 Bible을 직역하면 '서적(書籍)'이 된다.

또한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는, 그냥 별도의 수식어 없이 '그 책(영어로 'the book')' 이라고만 해도 성경을 뜻한다. 여기에 '위대한, 존귀한, 성스러운' 따위의 표현이 붙거나 'THE BOOK'과 같이 대문자로 강조된다면 빼박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 표현이 쿠란을 가리킨다.

3. 영향력[편집]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 2023년 기준으로 통산 70억 부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추측되며 집계 이전까지 감안하면 그보다 더 많은 수가 팔린 것으로 예상된다. 선교의 목적으로 성경을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출판되고 읽힌 성경의 부수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수도 있다.

성경 속 인물들에서 따온 사람들의 이름[8], 성경을 소재로 한 서양 예술작품들과 각종 문학, 음악, 조각, 그리고 성경 속 사건들을 기념하는 부활절성탄절 문화 등 전 세계에 널리 퍼진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상당 부분이 성경에 기반한 기독교적 관습에서 비롯되었다.[9]

현재의 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며,[10] 이슬람 문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11] 이슬람그리스도교와 같이 유대교를 뿌리로 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쿠란도 성경과 내용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유사하거나 비슷한 부분이 많다. 문학적으로 변형한 다른 버전의 성경이라고 해도 틀린말이 아닐 정도. 그래서 저자가 무신론자인 책에서도 성경 구절이 직접 인용되거나, 성경에서 비롯된 일화나 인명, 지명 등이 사용될 정도. 또, 많은 창작물들에서 성경이 소재로 사용된다. 당장 서구권만 가도 (요한), 피터(베드로), 메리(마리아) 등 성경에서 따온 이름들이 굉장히 많다. 예수의 경우는 서구[12]보다는 오히려 이슬람 세계에서 '이사'라는 인명으로 가끔 쓰인다. 근대 이후로 지구상에 그리스도교 선교사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어지면서 그리스도교 문화와 거의 무관했던 곳은 전근대의 동아시아나 서아프리카·남아프리카[13],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정도. 이외에도 동양 문화에도 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현대에는 그나마 한국을 제외한 동북아시아가 기독교와 좀 동떨어져 있는 편이지만, 그마저도 서구 문명의 영향을 깊게 받아 천사, 악마나 천국 지옥과 같이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도교 세계관의 요소에 익숙해져 있는 등, 종교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문화적으론 기독교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그리고 불교도 기독교적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하거나 일부 학자들에 의해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점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게 과해서 예수불자설이나 불교도 이슬람교처럼 기독교에서 갈라저나온 것으로 주장해서 문제이긴 하다. 또한 사람들이 유교, 불교 경전[14]보다 성경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등 성경 그 자체의 영향력도 상당하고 할 수 있다.[15]

성경을 열성적으로 가르쳐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요즘에야 성경 내용을 한 줄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워낙 다양한 주제와[16] 다양한 형식이[17] 한데 엮여 있어서 내용을 요약하기가 힘든 책이다. 성경 내용의 주요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를 요약하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교 교파마다 달라서 통일되고 확정된 요약은 거의 없다. 현대에 들어 오락거리로 크게 환영받는 그리스 로마 신화북유럽 신화에 비하면 오락거리로서의 성격은 희미하다.[18] 기본적으로 무대가 사람 사는 땅에 맞춰져 있어서 성격 자체도 차이가 나는 편이고.[19] 하지만 서양 대중문화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기에 각종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연극 등에서도 성경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 경우가 많고 등장인물도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변형시킨 경우도 많기에 그 흔적을 아는 사람은 찾기 쉽다.

어떤 분야에서 성경처럼 떠받드는 책을 '무엇무엇의 바이블'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가령, 카를 마르크스자본론공산주의의 바이블, 동의보감한의학의 바이블이라는 식으로.

현재 한국 그리스도교 성경은 개신교천주교의 번역본이 다르다. 개신교 측에서 천주교와 함께 공동번역성서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개역한글판을 주로 사용했다. 개신교는 단일교파인 천주교와 달리 의견이 통일되지도 않기 때문에, 어느 번역본을 쓰는지는 교파나 예배당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20] 반면 천주교는 줄곧 공동번역판을 쓰다가, 결국 2005년 11월 말(대림 시기)부터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천주교 신자들은 최소한 공동번역성경을 하나쯤 소장하고 있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성경/번역 문서 참고. 그 외에 상기한 대로 성경 목록도 좀 다르다.

4. 권수[편집]


현대에는 단일한 책 1권으로 엮어져 나오지만, 실제로는 여러 문서들을 한데 묶어서 만든 전집(全集)이다. 때문에 성경전서라고도 불리며 총 73권(가톨릭)[21] 또는 66권(개신교)이다.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에서는 일찍이 유대교의 마소라 본문에 포함되지 않았던 7권을 외경이라 부르며 제외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이 7권을 '제2경전'으로서 정경으로 분류한다.[22] 여기에 예수를 기준으로 기록 시기를 구분하여 구약 39권(개신교) · 46권(가톨릭) · 신약 27권으로 나뉘며, 세세하게 들어가면 역사서, 예언서, 시집, 복음경, 서간문 등등 여러 구분이 있지만 성경공부 많이 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여기까지는 잘 모르고 대부분이 구약과 신약 정도만 구분한다.

여기서 약(約)은 와 인간 사이의 약속(約束)을 뜻한다. 즉, 구약은 구세주를 보내주겠다는 옛날의 약속, 신약은 구세주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새로운 약속이다. 다만 신약이 있으니 구약이 무의미하다는 식으로는 기독교에서 간주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구약은 성경이라는 올리브 나무의 뿌리이며, 신약은 열매이다.

신구약을 영어로는 각각 Old Testament, New Testament라고 하는데, 일반명사 'testament'는 증언, 유언이라는 뜻이나 성경의 'Testament'는 약속이 적힌 증명서라는 뜻이다. 어두의 대소문자 차이에 주목하자.

기록 연대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기원후 200년대까지 추정하지만, 고문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정확한 작성 연대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오래전에 기록된 책부터 가장 최근에 기록된 책 사이의 연대가 약 1,200년이나 되어서 당연히 저자도 여러 명. 한 사람이 1권만 쓰기도 하고 여러 권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저자가 누구인지 언급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생각보다 세간에 알려진 저자가 실제 저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고, 많은 책이 저자 불명. 몇몇 책은 후대에 가필된 내용이 있다는 의심 혹은 확증도 있기도 하다. 구약의 정립 역사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현재의 신약 성경 목록이 완성된 건 로마 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경의 경우는 그 이전에 유대교에서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었으나, 신약의 경우는 느슨하고 통일되지 않았었다. 지역 교회마다 경전으로 인식하는 문서가 달랐을 정도. 그러다가 서기 367년에 성 아타나시오가 현재의 신약 27권 목록을 제안한 것이 397년에 열린 카르타고 공의회를 통하여 동/서방 교회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구약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46권을 확정하였지만 이는 서방교회에서만 받아들여졌다. 그 후 개신교에서는 교단별로 공회를 열어서 구약을 39권으로 축소하는 데 합의하였다. 자세한 것은 외경 참고.


5. 정경과 외경[편집]


교파별 정경 일람 (한국어 위키백과)
교파별 정경 일람 (그리스어 위키백과)
외경 (히브리어 위키백과)

해당 교파가 공식적인 성경으로 인정한 복음서나 기록들을 정경(正經), 그 안에 포함되지 않은 성경들을 외경(外經)이나 위경이라고 한다.

일단 천주교는 구약에서 제2경전(총 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23], 개신교는 이를 외경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구약성경이 어디까지 경전이고 아닌지는 교회내에서도 논란거리였다. 70인역이 정경인지 히브리어 경전이 더 우월한지 의견차가 있었으나 70인역을 따르는 집단이 다수였다. 이는 397년 서방교회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24][25] 구약 정경을 규정할 당시 제2경전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 성서를 주된 기준[26]으로 정했다. 반면 개신교마르틴 루터히브리어 성서의 우월성을 중시한 소수 교부[27]들의 의견대로 구약정경 39권만을 따른 이후 대부분의 종교 개혁가들이 루터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원전이 존재하는 성서만으로 이루어진 루터 기준의 구약 정경 목록 확립은 기원후 90년경 유대교 바리새파에 의해 기원후 90년경 얌니아(Jamnia, 지금의 야브네/Yavneh)에서 개최된 것으로 전해지는 소위 "얌니아 회의"에서 정해졌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성경의 원류에 해당하는 유대인의 성경 타나크는 대략 B.C. 1500~400년대 사이에 오랜 세월을 거쳐 바벨론, 블레셋,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낱권들로 기록된 경전들이 제시하는 사상들에 대한 대안적인 사상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제시하려고 저술한 문서들로, 오랜 세월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얌니아 회의를 통해 현재의 분류가 확립되었다는 전승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예루살렘 멸망 후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가 얌니아에 세운 학교에서 유대교인들이 타나크(구약성서)의 경전 목록을 완결시켰다는 전승으로, 유대학자 하인리히 그래츠(Heinrich Graetz)가 1871년 처음 제시한 이래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던 정설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서 이들은 바리새파 유대교로서 방향을 설정하고, 기독교와 관계를 단절하고, 경전의 정경 범위를 규정하는 의결을 내렸다고 한다.

개신교의 정경은 본래 구약이 히브리어로 쓰인 만큼 '그리스어 성서보다 히브리어 성서가 더 오래되었고 더 정경에 가까울 것'이라는 의견[28]에 따라 70인역을 배제하여 결정된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장 칼뱅이나 모두 '외경은 정경만큼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읽으면 유익하다'고 평가했으므로, 오늘날 개신교에서 외경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쓰여진 내용의 진실성이나 역사적 가치 등도 상당 부분 인정한다. 단지 경전으로서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의 상당수 학자들은 얌니아 회의 자체가 실제로 개최되었는지, 외경을 읽는 자들을 저주내렸는지, 설령 회의가 개최되었더라도 '구약 정경 39권'이라는 결론이 여기서 도출되었는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학계에선 집회서 읽는 이단 저주기도문 얘기로 얌니아 회의는 개신교 정통성을 무너뜨리려는 가톨릭 학계의 음모론 취급도 한다. 실제로 얌니아 회의가 있었더라도 여기서 정경을 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 회의의 존재자체에도 회의적인 경우도 늘고있다. 실제로 오늘날 얌니아회의는 존재가 부정되는 추세다.[29]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1947년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사해문서히브리어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어 70인역 성경에 포함된 제2경전의 일부[30]희년서 등의 위경을 포함한다. 다만 이 문서는 그냥 유대 신비주의 에세네파 문서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본래 그전까지 2천 년간 제2경전은 원문인 히브리어 경전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개신교, 유대교로부터 제2경전이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있다. 설령 사해문서가 발견됐다 하더라도, 초기 교회 시절부터 히브리어 원본이 안 보였던 제2정경(외경)은 그 권위가 의심스럽다면서 개신교에선 신경쓰지 않는다.

교부들의 경우 통상적으로는 제2경전의 정경성을 인정하였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는 제2경전을 정경으로 봤다.

이러한 고찰의 대상이 되어 성경 정전 목록 전체에 들어가는 것은 다음과 같다:

모세 오경, 즉 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예수 나베의 책 한 권[31]

, 판관기 한 권, 룻이라고 부르는데 열왕기 첫 대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책자 한 권, 그다음 열왕기 네 권, (사상적으로는) 연속되지 않지만 이 책들과 나란히 이어지고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역대기 두 권이다. 이것은 역사(서)이며 (서로) 연관되는 시대를 담고 있고 사건의 순서를 지키고 있다.

차원을 달리하는 다른 책들은 이 순서나 자체들끼리도 연관이 없다: 욥기와 토빗기, 에스테르기와 유딧기, 마카베오기 두 권과 에즈라기 두 권인데, 이들은 열왕기 혹은 역대기에까지 끝난 정연한 역사를 뒤잇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예언서들이 나타나는데 다윗의 시편 한 권, 솔로몬 세 권, 즉 잠언·아가·코헬렛이다.

그리고 다음 두 책, 즉 지혜서라는 책과 집회서라고 일컫는 책은 어떤 유사성 때문에 솔로몬의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시라의 아들 예수가 이 (두) 책을 썼으리라는 개연성이 훨씬 높다. 그러나 이 책들은 권위에 있어서 그럴듯하기 때문에 예언서에 넣을 수 있겠다.

그 나머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언서라고 일컫을 책으로, 열두 예언자에게 한 권씩으로 되어 있다. (이 책들은) 서로 연관이 있고 한 번도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한 책으로 간주되고 있다: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

그러고 나서 네 예언서는 부피가 크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 에제키엘서, 이 마흔네 책으로 구약의 권위는 끝난다.

신약의 (권위는) 네 권의 복음서, 곧 마태오와 마르코와 루카와 요한이 쓴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 열네 편, 즉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갈라티아와 에페소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티토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 있다. 베드로의 (서간) 두 편, 요한의 (서간) 세 편, 야고보 (서간) 한 편, 유다 (서간) 한 편이 있다. 또 사도행전과 요한묵시록이 있다.[32]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 2,8,13, AD 396~397 저술,[33]

성염 역주


다소 복잡한 건 불가타의 번역자인 예로니모(히에로니무스)인데, 불가타 번역 당시에는 제2경전의 경전성을 부인했으나, 이후에는 제2경전을 다시 성경으로 인용하였다.

베들레헴에서 예로니모는 히브리 성경만을 라틴어로 번역하기로 결정하고 집회서와 지혜서의 경전성을 분명하게 배제하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분명한 입장 표명과 달리 행동한다. 404년부터 그는 집회서의 한 구절을 성경으로 인용하고, 지혜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모리스 질베Maurice Gilbert, 《하늘의 지혜: 잠언, 욥기, 코헬렛, 집회서, 지혜서》Les cinq des Sages: Proverbs, Job, Qohélet, Ben Sira, Sagesse, 안소근 번역, 성서와함께, 2016, p.198


기독교가 정경화 작업을 완료한 것은 4세기다. 그 이전에도 기독교에서 성경의 정경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목할 만한 권위있는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유대교에서 내부의 기독교인들을 외경을 보았기에 멸망당해 마땅할 이단으로 몰아 축출했다는 정도이거나, 기독교 내적으로 당시 이미 확정된 유대교의 타낙 목록에 관심을 보이며 그들의 성경과 우리의 성경이 다르다는 점을 구분하는 정도일 뿐이며, 우리의 성경에 제2경전 혹은 외경이 포함되었다는 단편적인 정보만 전해질 뿐이다. 즉, 4세기에 들어서야 기독교 내적으로 확고한 결정이 내려진다는 점에서 어디에서 무슨 주장을 어떻게 하든 사실상 개연성이 부족해질 뿐이다.

그렇기에 '유대교 전통에는 속하지만 타낙(유대교 정경)은 아니되, 기독교 정경으로써의 지위에 논쟁이 있는 문서'를[34] 정경으로 인정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학술적인 문제 뿐 아니라,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간의 근본적인 신앙관의 충돌 문제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리하면 구약이라고 부르는 유대교의 답습 부분이든 아니면 신약이라는 기독교의 자체적인 경전이든 관계 없이 "유대교가 먼저 정하고 난 한참 다음에야 자체적으로 그동안 70인역을 따르자는 다수파 기준대로 기독교 내적으로 정한 것"인데, 이것이 나중에 "개신교가 생겨날 당시 자증성과 같은 자체적 교리 타당성과 과거 히브리어 경전을 더 중시한 소수교부의 의견에 따라 그동안의 주장을 무효화하고 새로이 성경관을 세운 것으로 보면 된다. 어차피 개신교는 성경이 무오하고 교황과 공의회도 오류가 있다고 보니 이거 가지고 논쟁하기도 그렇다.

개신교에선 제1경전과 제2경전 사이에는 신학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다고 본다. 제1경전이 의 권능과 은총을 중시한다면, 외경은 교회와 신앙 공동체(제2경전에 의하면 이스라엘)를 중시한다고. 그 외에도 마카베오기 하권의 구절 등을 거론하며 사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다. 또 다른 것은 신약성경의 인용성의 차이인데, 일반적 인용과 성경 권위로서의 인용이 있다는 것으로 신약성경의 인용한 구약의 구절들을 보면 성경 권위에 따른 인용에는 외경의 내용이 없다는 사례를 든다. 일반적인 인용으로는 그리스 철학자 말이나, 외경의 목록도 포함된다. 대한성서공회의 설명과 멋진비움의 블로그 내용에 나온다.

정교회는 76권을 정경으로서 인정하지만 각 국가별 교회에 따라서 약간의 시선 차이가 있으며, 주요국의 정교회는 공통적으로 제2경전에서 교리를 도출하지는 않는다.[35] 천주교는 이 70인역을 다시 라틴어로 번역한 성 히에로니무스불가타 성서를 주된 기준으로 70인역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므낫세의 기도와 에스드라 1, 2서가 빠져 있다.

유대교도 구약은 기독교와 공유하며, 그중 모세5경이라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토라(율법)로서 특히 중요시한다. 또 신약을 대신하여 탈무드가 성경에 준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대교와 정 반대로 초기 기독교의 이단 종파 중에는 아예 구약은 인정하지 않고 신약성경만 정경으로 인정한 교파도 있었다. 마르키온파 참고.

참고로 정경이나 외경과 대비되어 위경으로 분류된 문서들에 대해 위서 판별 같은 외적 판단 없이 순수하게 내용으로 평가하는 내적 평가로 비교하자면, 위경으로 분류된 문서들 대부분은 왜 교회에서 버려졌는지 현대적 기준에서 봐도 이해가 된다. 위경으로 분류된 문서들 대부분은 무슨무슨 묵시록 같은 말세 사상을 조장하는 종말론 문서들이다. 아무개가 바울 같은 사도나 예언자들의 도움으로 지옥 구경을 하고, 악마가 갖은 방법으로 죄지은 자들을 고문하는, 철학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장면들만 나오다가 예수를 만난다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다.

이런 문서들이 교회 내에 계속 있었다면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고 철학이나 종교적인 의미도 없으니, 어느 신학 노선이 주도권을 잡던 간에 사장될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음은 분명하다.

6. 구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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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명칭[편집]


율법과 예언서와 그 뒤를 이은 다른 글들을 통하여 위대한 가르침들이 우리에게 많이 전해졌습니다.

-집회서 머리글 1절[36]


오늘날의 유다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가리킬 때 미크라(Miqrq, 독본 곧 회당에서 읽히는 책)라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 성경의 각 부분, 곧 토라(Torah, 율법)와 느비임(Nebiim, 예언서)과 크투빔(Ketubim, 성문서)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타낙(Tanak)이라는[37]

용어를 사용한다.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18쪽


תנ"ך. 신구약 전체를 성경으로 인정하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오늘날 유대교에서는 히브리어 성경만을[38] 성경으로 인정한다. 이를 유대교에서는

  • 율법서(律法書)를 뜻하는 토라(Tōrāh, תורה)
  • 예언서(豫言書)를 뜻하는 느비임(Nebi’îm, נביאים)[※주의]
  • 성문서(聖文書)를 뜻하는 케투빔(Ketūbîm, כתובים)
의 앞자만을 따서 타낙(TaNaK, תנ"ך)이라 불러왔다.[39] 토라, 느비임, 케투빔의 삼분 구조는 유대교에서 인식하는 위계적 순서 및 회당 전례에서의 상이한 사용에도 상응한다. 토라가 가장 중심이고, 여기에 대해 주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느비임이고, 케투빔은 시편과 다섯 메길롯을[40]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때문에 유대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구약'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 대한 부당한 평가절하를 부른다는 반성에서 '타낙' 혹은 '히브리 성경'이 중립적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타낙과 구약은 (상당 부분 겹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동일한 개념인 것은 아니다. 개신교에서 인식하는 구약의 정경 목록은 타낙 정경 목록과 완전하게 동일하지만 가톨릭과 정교의 정경 목록이 타낙 정경 목록과 차이가 있다. 가령 지혜서의 경우, 유대교에서는 지혜서를 타낙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굳이 그리스도인이 지혜서를 타낙이라고 표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유대교 입장에서는 "지혜서는 구약이다"라는 말보다 "지혜서는 타낙이다"라는 말이 훨씬 더 기분 나쁘고 자극적일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 성경'이라는 표현도 중립 용어로 쓰기엔 유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구약이라는 표현이 구약 성경에 대한 부당한 평가절하를 부른다고 하기에는, 舊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뿌리깊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는 초창기부터 구약 성경을 '낡았으며 폐기되어야 할' 문서가 아닌 '뿌리'로 인식해왔다. 초창기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구약을 통해서' 보이려 했지, 이를 오래된 문서라며 치워버릴 의도가 없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두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루카 복음서 24장 25-27절, 44-46절(가톨릭)


맏물로 바치는 빵 반죽 덩이가 거룩하면 나머지 반죽도 거룩합니다.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들도 거룩합니다. 그런데 올리브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가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인 그대가 그 가지들 자리에 접붙여져 그 올리브 나무 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되었다면,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6-18절(가톨릭)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구약'이라는 표현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며, 오늘날 독어권 신학자들 일부는 구약성경(Alte Testament)이라는 용어 대신 의식적으로 첫째 성경(Erstes Testament)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이히슈테트 교구사제로 서품되어 뮌스터 대학교에서 구약성서학과 구약주석학 교수로 봉직한 가톨릭 성직자 에리히 쳉어(Erich Zenger)는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에서 구약성경이라는 명칭은 "아예 따옴표 속에 집어넣거나 다른 명칭으로 대체하거나 최소한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쳉어는 구약성경이라는 용어의 대안으로 '첫째 성경'(Erstes Testament)을 지지했는데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41]

  • 비록 '오래된/옛날의(舊)'라는 낱말이 반드시 부정적 함의를 지닌 것은 아니며 舊를 新과의 대립이 아니라 상관성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명칭은 구약성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유대교의 이해에도 상응하지 않는다. 유대교로부터 교회의 의도적 분리가 비로소 이 명칭을 만들어 냈거니와, 실질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을 '시효 지난' 부분으로 오독하게 했으며 '신약에 의해 능가되고' '낡아 버린' 문서들을 여전히 고수한다는 의미에서 유대교에 대한 평가절하와도 결부되어 있다.
  • '첫째 성경'이라는 명칭은,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타당한 다음 명제를 옳게 반영한다: ⓐ첫째 성경은 하느님이 당신의 '첫째/맏 아들(참조: 탈출 4,22; 호세 11,1)인 이스라엘과 맺은 저 '영원한' 계약을 증언한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민족들도 그 안에 이끌어 들이고자 하시는 거대한 '계약 운동'의 '시작'이다.
  • '첫째 성경'은 '둘째 성경'을 가리킨다. 후자가 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첫째 성경'이라는 그리스도교적 명칭 또한 첫째 성경 자체만으로는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볼 때) 온전한 그리스도교 성경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런식의 언어 순화 주장이 늘 그러하듯이, '첫째 성경'이라는 대안 용어가 그리스도교 신학 내부의 자명하고 합의된 용어인 것은 아니다.[42]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이라는 말에서 나오는 (유대교 입장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도 그릇된) 부적절한 오해에 대한 경계심을 키웠다는 데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6.2. 상세[편집]


타낙은 근대적인 저자 문학이 아니라 고대적인 전승 문학이기에, 수많은 전승들이 인용되어 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이 단일혈통이 그대로 쭈욱 이어져 온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여러 부분에서 당대 주변 민족들의 문화와 관습의 자취가 많이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천지창조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기원과 역사, 율법의 성립을 다룬 토라(모세오경), 역사서(히브리인과 왕국 시대의 역사), 찬미가, 여러 시와 문학들,(시편잠언, 욥기, 아가 등), 성전 건축과 각종 종교행사 관련 기록, 종교에 근거한 법률(율법)적인 문제에 대해 논하는 내용, 그리고 예언자들의 당대 유대 사회에 대한 경고와 미래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 예언서(호세아, 요나, 이사야, 느헤미야, 다니엘 등)와 제2경전(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하권, 바룩서, 지혜서, 집회서)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낙은 무척이나 긴 시간에 걸쳐서 여러 필자가 참여하여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모세는 기원전 15세기, 즉 기원전 1500~1400년대 가량에 모세오경을 작성하였다고 하고[43], 다윗시편의 대부분을 지었다고 하며, 솔로몬잠언의 대부분과 코헬렛아가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솔로몬 이후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까지 여러 예언자들이 예언서를 작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저자와 연대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먼저 기원전 10세기 전의 문헌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그전에는 애초에 팔레스티나에 독서 문화가 없었기 때문. 따라서 경전연구자들은 대부분 언어학적 지식이 있는 경우라면 기원전 10세기 이후의 기록된 것이라는 점을 정설로 볼 수밖에 없으며, 실상적으로는 문법이나 문체상의 문제가 있고 그 기록 방식의 엄격성을 고려하면 특히 오경의 경우 전통적인 연대의 개연성이 낮아진다. 참고로 현재까지 학자들이 발견한 성서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7세기경[44]에 기록된 민수기 6장. 연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성서 주석학적 연대 정리' 참조.

또 워낙 오랜 전승을 담고,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문헌이다 보니, 서로 다른 신학적 관점을 보여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요나 선지자는, 자신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이방인들의 도시가 심판받아 망하기를 바라다가 주님에게 혼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근데 잘 읽어보면 요나의 경우 소돔고모라 같은 케이스와 달리 이방인들의 도시(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은 건 왕부터 천민까지 철저히 회개한 결과다. 그래서 심판을 하지 않은 것. 또한 거기에 그치치 않고 회개한 요나서의 니느웨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믿는 자들과 함께 부활해 신약 시대의 타락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라는(루가 11장 30~32절) 엄청난 언급도 있다.

타낙에서 일관된 내용들을 보여주지 않고 서술 시각이 다른 것도 신학적 종파 간의 문제와 분쟁에서 기인한다. 구약 내에서 나타나는 관점의 경우는 정치적 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여러 분파주의적 관점이 섞여들고 정치적으로 볼 때 이건 넣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교차하게 되는 것을 고려해 보면 관점이 일관된 것이 더 이상하다.

정리해 보면 실질적으로 구약 경전이 수립된 것은 적어도 기원전 6세기 이후, 기원전 3~4세기경, 그리고 체계적인 경전이 나타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맞으며, 그것이 정경으로 확립된 것은 1세기 말엽으로 보는 것이 정석적인 견해다.

율법서(모세오경) 같은 경우는 고대 유대인들의 종교 의례·생활 규범에 대한 교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고대 부족사회를 반영한 율법이다 보니 좋은 율법도 있지만 현대 기준으로는 반인권적인 규정도 많다. 타낙에 묘사된 총 율법의 수는 613개나 된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성경/구약 교리 요약을 참고. 지금도 하레디유대인들 같은 극단적인 사람들은 이를 최대한 많이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예수십자가 희생과 사도들의 신학적 논쟁을 통해 율법에서 신자들을 해방[45]시켰기 때문에, 현재 기독교에서 십계명을 제외한 구약의 자잘하고 삶의 제약이 심한 율법들은 강제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정식 교리다.

성경은 종교적 관점을 중시하며 삼국유사와 비슷하게 신화적이나 설화적인 내용이 많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뿐만 아니라, 페니키아, 아나톨리아등 주변국과 고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등 이스라엘을 지배한 국가들의 역사도 같이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당대에 존재했던 중동과 지중해 강국들의 흥망성쇠도 알수있다. 또한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당대의 문헌가운데서는 가장 상세하고 분량도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많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성경을 주요 참고자료로 쓰면서 이집트, 이라크, 이란,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주변국들의 문헌자료들을 교차검증하여 고대 중동사를 연구한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개역본이 아닌 현대어 본으로 된 성경을 읽을때 아니 이 사람이 왜 성경에 나오냐 싶은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바빌론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와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 특히 키루스 대제(고레스)는 유대인을 해방시켜준 기름 부음 받은 이며,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가 에스더의 남편이란 것 등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페르시아에 호의적인 이야기가 많다. 또한 제2경전에 속하는 마카베오기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등 헬레니즘 시대의 인물들이 (부정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46] 또한 에스델서에는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남편 프톨레마이오스가 언급되며, 마카베오 상권 8장에서는 고대 로마의 공화정, 원로원, 집정관 등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다. 예언서의 경우에는, 주변 국가인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의 흥망성쇠가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기년법이 당시 그 지역에 영향을 끼치던 패권 국가를 따르는 경우도 흔하다. 이를테면 학개에서는 이 책의 배경이 다리우스 제2년이라고 1장 1절부터 밝히고 있고, 신약의 경우도 루카 복음서 3장 1절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 시기가 티베리우스 15년이라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역덕들이 보면 의외로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다만 성경을 가지고 중동 역사를 공부할 때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주로 서술하기 때문에 중동 전역의 역사를 아우르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명심해야되고, 비록 성경이 당시 중동의 역사를 반영은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히브리인들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기에 이점에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47] 물론 두 권의 마카베오기처럼 정말 본격적으로 역사를 서술할 목적으로 쓰인 책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감안해도 성경만으로 중동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라는 관점에 한정해서 보자면) 불경만으로 고대 인도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계점이 많다. 성경의 저자들이 실제 역사를 말하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화법이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역사책과는 차이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구약을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로 나누었는데, 성문서에는 지혜 문학과[48] 역사서, 시서 등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경(율법서)도 예언서도 아니라면 성문서로 취급되며, 약간 의외이게도 다니엘은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로 분류되어 있다. 유대교에선 율법서>예언서>성문서 순으로 그 권위를 해석한다.

또 타낙을 제대로 읽다보면 그야말로 방대한 분량에 걸맞은 온갖 종류의 범죄나 논란이 되는 사건들, 전쟁들이 등장한다. 창세기 초부터 동생을 죽이는 카인이 나오질 않나, 창세기에서 죄로 인해 멸망받았다는 소돔에서 유일하게 구제받은 롯은 의로운 인물로 대접받지만, 자신을 구해주러 온 천사등짝을 보려는 마을 폭도들을 달랜답시고 자기 딸의 등짝을 대신 보라는 제안을 한다거나[49], 이후에 배우자가 없어 대를 못 잇게 된 들의 의기투합에 의하여 근친상간당하게 된다거나 등. 그 다음에 그 딸들의 자손이 저주받으며 그들이 저주받은 이유는 저 역강간 때문인데, 여기에도 현대인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힘든 연좌제가 적용된다. 죄를 지은 것은 의 딸들인데 그 자손들까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50]

그 외에도 사사기에 마을 무뢰배들에게 레위인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죽임을 당하자 그 시체를 인수분해해서 각 지파에게 보냈다는 내용부터[51] 서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옆구리를 칼로 뿍찍뿍찍했다는 내용까지… 이 정도면 고어물을 능가한다. 또한 옛 조상이 사는 땅,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온 유대민족은 지금껏 그곳에 살던 타 민족들과의 전쟁을 벌여 땅을 점령해가는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죄가 너무나 만연하여 소돔과 고모라같이 너무나 악한 민족을 멸절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예리코의 전투나 가나안 정복기 등을 들 수 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멸망당하는 가나안 족속의 죄목도,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몇 백 년 전 기록인 창세기와 구약 제2경전인 <지혜서> 등지에 기록되어 있다.

흔히 유대 민족이 타 민족을 전멸시키고 노략질을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했다는 오해를 하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학살과 노략은 모두 극선하다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시행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심지어 사울의 경우처럼 다른 민족의 소유를 전멸치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이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들의 좋은 떡밥거리가 되기도 한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와 민족들은 수간, 인신공양, 문란한 문화 등 야만적인 관습이 많았는데 성경에서는 이를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낙, 특히 모세오경 중에는 이런 식으로 현대 가치관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내용이 심심찮게 나온다. 이런 서술은 고대 유대인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면 롯의 자손들이 대대로 저주를 받는 것은 당시 연좌제가 당연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기준으론 축복은 자손 대대로(수천 대까지) 받는 것이고 저주도 자손 대대로 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 시대야 그것이 수용될 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현대에서도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6.3. 구약 정립의 역사[편집]


그라츠(H. Graetz, 1871) 이후의 지배적인 이론에 따르면, 구약 경전의 세 부분은 - 이 부분을 이루는 책들이 오래된 것이라는 속단을 배제한 채 -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토라는 페르시아 시대 말기 이전, 늦어도 400년 330년 사이에 집대성되었으며,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가 잇따라 배열된) 지금 형태대로의 느비임은 기원전 200년경(Steck, 1991 참조),[52]

다시 말해서 팔레스티나에서의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말기에 출간되었다. 한편 크투빔은 훨씬 불규칙적이며 보다 개방적인 하나의 총서를 이루고 있었다. 이 총서는 기원후 1세기 말 '야브네(Yabne)[53] 종교회의'에 라삐 유다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비로소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본다. 기원후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난 다음 크투빔 수집이 마감되었으며, 그 결과 성경 전체가 완성을 보게 된다. 이로써 유다교의 위경적인 종교문학 양산에 종지부가 찍히고, 이단적이라 평가된 작품들, 특히 묵시적 또는 그리스도교적인 작품들이 유다교 경전에 삽입되는 일이 차단된다. 야브네의 라삐들은 팔레스티나와 디아스포라의 유다교 공동체에 확고하면서도 공인된 '기록들'을 제공함으로써 유다교가 새로운 국가적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을 부여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의 히브리어 성경이 탄생한 배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4-25쪽


유대교는 타낙(히브리 성경)을 율법서(토라, 기독교에서는 모세오경이라 부름), 예언서, 성문서(시편 등)로 분류한다. 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율법서이며, 유대교의 구약관은 율법서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율법서에 적혀있는 내용들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으며, 부분적인 기록이나 구전 등으로 흩어져 내려오던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597-587년의 바빌론 유배는 유대인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이스라엘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모든 기둥들이 뿌리째 흔들린 것인데, 왕은 유배 당했고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은 파괴되었고, 하느님의 선물인 '약속의 땅'은 이방인에게 점령 당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도대체 누구이시고 그분은 어떤 방법으로 백성에게 개입하시는지를 말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은 기존 문헌들을 총합하여 '움직이는 조국'이라 할 수 있는 율법서를 써내게 된다. 특히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뒤를 이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피지배 민족에게 종교적 자치권을 부여하였고, 히브리인들이 종교적인 전승들을 법전의 형태로 엮는 데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이 율법서는 고전적인 가설에 따르면 크게 네 가지 계통의 문헌이 합쳐져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주의: 20세기 중반 이후 반론들이 상당히 많이 쌓인 상태이므로, 고전적인 견해는 이렇다는 정도로만 알아 두자. 이 4출전 모델은 1970년경까지는 천하를 통일할 기세로 학계를 호령했고 따라서 알아 둘 필요는 충분하지만, "1970년대부터 확고부동한 것처럼 보이던 이 가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54] "그 고전적 형태는 이제 동조자가 거의 없"다.[55] 비록 고전적 모델이 전적으로 완전히 거부된 것은 아니고 D와 P의 존재는 그 후로도 연구자들의 폭넓은(그러나 개별적 강조점들은 상이한) 동의를 얻고 있지만, J와 E는 "극히 의문시되거나 단호히 부인되고 있다."[56]

첫 번째는 J문헌(야훼계 문헌)이다. 이는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지칭하기 위해 기원 설화로부터 시작해서 오로지 야훼라는 고유 명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J문헌은 인간 창조로부터(창세 2, 4ㄴ-25) 모세의 죽음(신명 34), 더 나아가 땅의 정복에(여호 19)[57]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백성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J문헌은 왕정 초기, 좀 더 자세히는 솔로몬 시대(기원전 94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J문헌의 핵심 본문은 창세기 12,1-3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소명 이야기로 보이며, J문헌 계통의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이 본문에서 이루어진 약속들이 다윗과 그의 후계자가 주도한 왕정 제도의 설정과 함께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상기시키려 노력한다. 또한 J문헌은 유다 지파를 다소 편애하는 감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가 유다 지파 출신임을 알 수 있다.[58]

2번째 문헌은 E문헌(엘로힘계 문헌)으로, 이 문헌은 하느님을 엘로힘이라 부르기에 이렇게 불린다. 독일어로는 '야비스트'(Jahwist), 영어로는 '야위스트(Yahwist)'나 '저호비스트(Jehovist)'라 불리는 편집자를 통해 야훼계 문헌과 일찌감치 결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그 결과 창세기 20-22장의 아브라함 이야기의 경우 엘로힘계 문헌은 단편으로만 남게 되었다. 탈출기부터는 E문헌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야훼계 문헌에서 엘로힘계 문헌을 떼어 내는 작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E문헌은 경외심과 도덕적 자세를 강조한다. 또한 E문헌은 북 왕국 예언자들과 가깝다는 점에서, 북 왕국에서 나온 문헌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후 북 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면서 남 왕국에 유입되어 받아들여진 것을 보인다.

3번째 문헌은 D문헌(신명기계 문헌)이다. 이 문헌은 신명기의 최초 본문을 가리키며, 기원전 622년 요시야 임금의 개혁을,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합법적인 유일한 성소로 격상시킨 중앙 집권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D문헌은 계약과 선택을 주제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또한 D문헌이 율법을 말하는 부분은, 또한 반복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독특한 문체로 율법을 설명한다.[59] 물론 D문헌은 신명기에만 쓰인 것은 아니고, 신명기 이외의 율법서에서도 문체의 연속성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조상들의 하느님' 등의 표현은 D문헌의 문체다.

4번째 문헌은 P문헌(사제계 문헌)으로,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의 첫 번째 이야기로 시작해서 모세의 죽음 또는 약속의 땅 진입으로 마감된다. 이 문헌의 의도는 사제 제도, 할례, 파스카 축제 등 제의 제도의 정당화에 있다. P문헌은 가장 늦은 시기에 작성된 최후의 문헌이자 율법서의 기초 문헌으로, 다른 문헌들은 P문헌의 보충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바빌론 유배 시대나 그 이후 히브리인들의 정치적 자립이 결여되어 있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P본문들은 표현이 간결하며, 수적 정확성과 족보에 관심을 가지며, 경신례와 전례에 관계 된 모든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P문헌의 특징은, 바빌론 유배로 인한 공간적 분산을 전제로 하면서도, 페르시아 시대에 사제단과 재건된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인 공동체를 조직하려는 시도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유대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제시되는 제의와 축일들을 자주 언급한다.

이와 같이 여러 본문이 합쳐져서, 페르시아 시기 때 우리가 아는 율법서의 최종형태(혹은 최종형태에 매우 근접한 모습)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율법서는 에즈라가 이를 확정하고 기원전 398년 공포한 이래 공적인 결정의 척도가 되었다. 페르시아 정부는 이때부터 다섯 권으로 된 '모세의 책들'을 제국의 모든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헌장으로 인정하였으며, 제국의 유대인들 또한 이 책들에 신앙과 실천 생활에 관한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규범적 가치를 부여했다.

율법서에 이어서 집대성 된 모음집은 '예언서'이다.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후기 예언서로(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12개의 소예언서) 나뉜다. 예언서는 토라에 버금가는 규범적 권위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율법을 실천적으로 주해하는 기초가 되었고 율법의 효력을 넓혀 나갔다.

마지막으로 확정된 것은 '성문서'이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의 경신례와 회당 집회 때 사용되었고, '시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성문서의 책들은 권위나 수용 면에서 그 사정이 각기 달랐다. 각 권의 권위는 그 용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렇게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가 합쳐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구약의 기초 형태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는 정경목록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대교와 구약은 변화를 맞이한다. 한 히브리 공동체가 기원전 4세기 말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졌으며, 이때에 팔레스타인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강역에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페르시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종교적 특권을 히브리 공동체에 허용했으며, 이 특권으로 히브리인들은 국가의 보호 아래 고유한 율법으로 관리되는 '민족'을 이루면서 자신들의 경신례와 문화적 특수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의 유대인들은 점차 일상에서 그리스어를 쓰게 되면서, 율법 역시 그리스어로 곧 번역되었다. '아리스테아의 편지'라 불리는 문서에 의하면 이 번역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시대에 왕명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루어졌으며, 예루살렘의 대사제가 선정한 팔레스티나의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일을 맡았다고 한다. 여기서 번역된 책을 '칠십인역'이라 불리게 된다. 또한 아리스테아의 편지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율법이 히브리어 율법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고 인정한 것이 드러난다.

처음에 칠십인역은 율법만을 번역하였으나, 후에 율법에 이어 유대교의 신앙과 삶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도 번역하게 되었다. 예언서와 시편이 먼저 번역되었고 기타 문서들이 작품의 영향력과 권위에 따라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마저도, 유대교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경전의 범위를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단편적인 사실들은 그나마 남아있는데, 로마인들에게 맞섰던 유대인들의 최후 저항 요새였던 마싸다(기원전 73년 함락)에서 집회서 두루마리 하나가 발견되었기에 회당에서는 집회서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분파별로는 여전히 복잡하다. 사두가이는 오직 율법서만을 인정했으며, 오늘날의 용어를 쓰자면 '가장 좁은 정경 목록'을 사용했다. 한편 쿰란의 에세네 공동체는 토빗기와 집회서는 물론 바룩서도 사용했으며, 에녹서나 희년서와 같은 몇몇 외경들과, 공동체 생활을 규제했던 공적인 문서(공동체 규칙서, 성전(聖戰) 규칙서, 성가책, 새 예루살렘서 등)에도 똑같은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래츠에 따르면 기원후 80년에서 100년 사이쯤에, 바리사이 유대인 학자들은 얌니아에 모여 경전 목록을 작성한다. 우선 이들은 논란이 되던 몇몇 책들의 권위를 확인했으며(코헬렛, 아가, 에스테르기), 그들이 보기에 최후의 예언서라 할 수 있는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와 말라키서 이후의 책들은 경전 목록에서 제외했다. 이와는 달리,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사회는 70인 역을 보았기에 제2경전에 속하는 책들은 물론 주요 외경들까지 경전으로 받아들여 사용하였고, 이는 그곳에서 주로 활동하던 기독교 세력에게 계승되었다.

기독교는 앞서 설명하였듯이 1세기에는 유대교 회당에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활동하였기에 당연히 유대교에서 쓰던 경전들을 계승했다. 다만 1세기 유대교는 하나의 통일되고 일관된 공동체가 아니었고 '정경 목록' 역시도 유대교 내부에서는 통일되지 않았었다.[60] 다만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얌니아 회의에서 제외된 상당수의 책들을, 이미 작업이 끝난 그리스어 역본을 바탕으로 계속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세기 초 랍비 아키바의 할라카와, 3세기 초반 오리게네스의 증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랍비 아키바는 집회서 등의 외경을 보는 무리(당시 나자렛파로 불리던 유대계 기독교인)들을 멸망당해 마땅한 이단으로 저주하며 유대교 안에서 축출을 시도하였다.[61] 오리게네스는 얌니아에서 확정된 유대교 성경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기울어 있던 자들을 반박하며, 구약 성경의 그리스말 역본을 기초로 한 '기독교 성경'의 권위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기독교 경전은 서방 교회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확정되어 나갔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경전을 확정할 규범 마련을 위해 어떠한 법적인 결정도 내려 본 적이 없으므로, 오늘날까지도 정경목록에 대해 통일되지 않은 입장을 보여 왔고, 정교회권 신학자들의 견해도 약간씩 다르다. 반면 서방 및 북아프리카 교회는 카르타고 공의회와 인노체시오 1세 교황의 편지가 입증하고 있듯이 4세기 말경부터는 제2경전을 포함한 공통 목록을 소유하게 되었다.


6.3.1. 구약성경 성립에 관한 근래의 견해[편집]


위의 주의문에서도 미리 경고했듯이, JEPD라는 4출전 가설은 오늘날 좋은 의미로는 나쁜 의미로든 '고전적 학설'이며, 1980년대 이후로는 4출전 학설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는 거의 앖다. D와 P에 대해서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지지가 있으나, J와 E를 나누지는 않는다. 4출전 가설이 오늘날의 성서학 개론서에 실리는 것은 저자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고전적 학설을 교육상의 이유로 반드시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일단 1970년대까지의 정설이던 4출전 가설을 교육한 다음, 이를 크든 작든 수정하여 백가쟁명이 되어버린 현재의 다양한 가설로 나아가는 것이다. 가령 4출전 모델을 교정한 가설인 뮌스터 오경 모델에서는 벨하우젠의 JE와 동일 범위인 Das Jerusalemer Geschichtswerk(예루살렘 역사서)를 상정하는데, 일단 J가 뭐고 E가 뭔지는 알아야 가르치든 말든 하는 것이다.

이는 애초에 하느님을 야훼라 부르느냐 엘로힘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문헌을 분류한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기 때문이며, 당대의 한 시기에 야훼를 부르는 명칭이 일관되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근현대 문학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시대착오적인 가정이다. 또 그러한 호칭들은 칼로 자르듯 딱딱 나뉘는 것이 아니다. p문헌을 창세기 일부부터 민수기까지로 배정하는 것 또한 현재는 논파되었다. 또 다시 원 논지로 돌아가서 엘로힘계 문헌 설명에 야휘스트 이론을 언급했는데, 신명기계 이론과 야휘스트 이론은 서로 상충하는 이론이다. 애초에 신명기를 독립된 자료로 파악하는것 자체가 야휘스트 이론을 반박하면서 나온 이론이다. 신명기계 이론은 오경 형성 이론 중 전통적인 이스라엘 역사서사 별도로 존재했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며 유배 역사서와 신명기계 사서, 예언서와 합쳐지며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현대의 오경/역사서/예언서 체제가 정립되었다는 소위 ‘육경이론’을 반박하며 나온 ‘사경이론’에서 도출된 것인데, 이 사경이론에 따르면 ‘야휘스트’라고 일관되게 특정할 수 있을 만한 문체의 존재는 부정된다. 그리고 하나 더, J문헌의 경우 예외적으로 현대에도 그 존재가 인정된다. 윗 문단에 나온 문헌 분류이론들 중 신명기계 이론을 제외하고 현대에도 유일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만, 현대적 견해에서 J문헌의 존재는 오직 창세기에 한해 인정된다. 현대적 견해라고 해서 오경 형성에 관한 아주 확고한 정설이 있는 것은 아니나 라인하르트 크라츠의 이론을 인용해보면, J계 문헌은 창세기 2장부터 나오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부분부터 창세기 뒷부분의 야곱에 대한 전승까지 광범위하게 합쳐져 형성된 것으로, 초기 이스라엘 족장사와 이스라엘 이외의 여러 민족들의 기원에 대한 전승들이 포함된다. 이 문헌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후대의 역사서들과 다르게 선민사상, 즉 ‘하느님에게 유일하게 선택받은 우월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아예 드러나지 않으며,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들 또한 하느님의 자손으로 인식하는 것이 드러난다. 반면 유대교 특유의 선민사상과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출애굽 2장부터 시작하는 출애굽 전승~여호수아에 관해 언급하는 민수기 8장까지를 묶은 E(exodus)계 문헌에서 매우 강력히 드러난다. 여기의 E계 문헌은 전통적인 엘로힘계 문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엑소두스, 즉 탈출과 그 이후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후 E계 문헌은 출애굽기의 언약과 율법에 관한 언약법전 전승, 신명기계 문헌들, 사울과 다윗, 솔로몬, 그리고 열왕기의 기원이 된 역사서와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과정을 거쳐 융합되어 소위 ‘구경’이라 불리는 문헌을 만들어낸다. 이 문헌의 특징은 위에서도 이야기한 대로 타 민족에 대한 매우 강경한 배타성과 선민의식이다.

이후 구약성경에는 창세기 45-50장, 출애굽기 1장이 삽입되고 최종적으로 ‘하느님에 의한 창조’를 암시하는 창세기 1장이 맨 앞에 삽입되는 한편[62] 여호수아서가 분리되어 최종적으로 현재의 창세기-열왕기의 형태가 정립되었다.

6.4. 성서 주석학적 연대 정리[편집]


구약 성경의 시기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63]

BC 981 ~ 722 북 왕국
BC 981 ~ 586 남 왕국
탈출기 34장 일부의 특전법과 계약법(BC 900년경)
엘리야 이야기(BC 9세기)
아모스서와 호세아서(BC 8세기 중엽)
원이사야서와 미카서(BC 8세기 말)
예루살렘 역사서Das Jerusalemer Geschichtswerk[64](7세기)
(요시야) 신명기(BC 622)
스바니야서, 나훔서, 하바쿡서(BC 7세기 말)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BC 6세기 초)
BC 586 ~ 538 바빌론의 지배
BC 538 ~ 332 페르시아의 지배
BC 332 ~ 129 헬레니즘 국가의 지배
BC 129 ~ 63 하스모네아 왕조
BC 63 ~ AD 324 로마의 지배
신명기계 역사서(BC 6세기 중엽)
제2이사야서(BC 6세기 중엽)
애가(BC 6세기)[65]
사제계 문서,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BC 520~518)
룻기(BC 5세기)
토라(모세오경)의 완결(BC 400년경)
욥기(BC 5 ~ 2세기)[66]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토빗기, 에스테르기, 잠언, 코헬렛, 아가(BC 3 ~ 2세기)
열두 소예언서(BC 240년경)
시편(BC 6 ~ 2세기)[67]
집회서(BC 2세기)[68]
다니엘서(BC 150년경), 유딧기(BC 150~100), 1/2마카베오기(BC 100년경)[69]
지혜서(BC 1세기 ~ AD 1세기)[70]
유다교 정경의 완결(AD 100년경)


6.5. 타낙의 3분 구조와 구약의 4분 구조의 해석학적 체계[편집]


타낙의 3분 구조(토라, 느비임, 케투빔)는 바탕에서 서로 연결된다.

토라의 끝과 느비임의 시작: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가득 찼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실천하였다.(신명 34,9)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오직 너는 더욱더 힘과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율법을 명심하여 실천하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이 율법서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것을 밤낮으로 되뇌어, 거기에 쓰인 것을 모두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네 길이 번창하고 네가 성공할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주님의 종 모세께서 ··· 너희에게 이르신 말씀을 기억하여라.(여호 1,7-8.13)


느비임의 끝과 케투빔의 시작:

너희는 나의 종 모세의 율법,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내린

규정과 법규들을 기억하여라.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 3,22-24)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토라)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의인들의 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시편 1,1-3.6)


토라와 느비임의 연결에 의해서, 여호수아가 '율법서'로서의 모세의 토라를 글자그대로 준수하는 첫 사람이라는 점이, 바로 그렇기에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그의 길이 성공한다는 언명이 강조된다. 그리고 느비임과 케투빔의 연결에 의해서 ㄱ. 악인과 의인의 대비 ㄴ. 야훼의 심판과 연결된 종말론적 관점 ㄷ. 야훼의 가르침(토라)을 통한 구원이 강조된다.

느비임에 관하여 스텍(O.H. Steck, 1991)은 이 거대한 경전 일체가 정리되어 나간 단계를 추적했다. Corpus propheticum 곧 네 권의 예언 신탁집(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열두 소예언서)은 기원전 220년 이전에 문학적 구성이 완료되었을 것이며, 기원전 200년경에 신명기계 '역사'의 둘째 부분, 곧 미래의 '전기 예언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가 삽입됨으로써 지금의 느비임으로 그 폭을 넓혀갔을 것이다. 이 예언집은 매우 인상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 모세오경에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 역사와 관련된 예언 신탁 모음을 열거한다. 따라서 이 예언집은 '이야기'와 '받침 본문'을 병치시키고 있다. 느비임은, 서언과 결어가 증명하고 있듯이, 정리 단계부터 토라에 분명하게 연결되고 토라와의 종속적인 관계 속에 자리하게 된 작품이다.

서언(여호 1,1-2.7-8)

《1절) 야훼의 종 모세가 죽은 뒤, 야훼께서 모세의 시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나의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니 이제 너와 이 모든 백성은 일어나 저 요르단을 건너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 7) 오직 너는 더욱더 힘과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율법을 명심하여 실천하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이 율법서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것을 밤낮으로 되뇌어, 거기에 쓰인 것을 모두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네 길이 번창하고 네가 성공할 것이다(..)”》.

결어(말라 3,22)

《22절) 너희는 나의 종 모세의 율법,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내린 규정과 법규들을 기억하여라. 23) 보라, 야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아울러 느비임의 결어는, 비록 엘리야의 역할이 아직은 여전히 토라의 설교자의 역할로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종말론적인 나아가 메시아적인 관점을 향해 열려 있는 것 같다. 이 결어는 예언자들의 시대가 마감될 것임을 예고하는 즈카 13,2-5에서도 강조된다.

2절)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다. 그날에 나는 이 땅에서 우상들의 이름을 없애 버려, 그들이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겠다. 또한 나는 예언자들과 더러운 영을 이 땅에서 치워 버리겠다. 3절) 그런데도 어떤 사람이 계속 예언하면, 그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너는 주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제 더 이상 살지 못한다.’ 할 것이다. (···) 4절) 그날에 예언자들은 예언을 하면서도 저희가 본 환시를 부끄럽게 여기며, 속이려고 입던 털옷을 걸치지 않을 것이다. 5절) 그러면서 '나는 예언자가 아니라 땅을 일구는 사람이오. 사실 젊어서부터 땅이 나의 전 재산이었소.' 하고 말할 것이다.(즈카 13,2-5)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42-44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투빔의 마지막인 역대기에 의해서 타낙은 종결되는데, 이를 통해 AD 1세기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극복하고자 하는 종결 의도가 드러난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역대 36,22-23)


한편 그리스도교의 구약 성경이 취하는 4분 구조(오경, 역사서, 지혜문학, 예언서)는 시나이에서의 '원계시'인 토라가 처음에 자리잡고, 다음의 3가지 블록에 의해 일종의 '역사신학적' 도식을 의도한다:
I
창세기~신명기
이스라엘의 원역사
권고와 요구로서의 토라
II
여호수아기~2마카베오기
이스라엘 땅에서의 이스라엘 역사
과거
III
욥기~집회서
삶의 지혜
현재
IV
이사야서~말라키서
예언
미래
[71]
그리고 바로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구약과 신약이 병렬적으로 연계된다:
바탕
토라(오경)
복음서
과거
현재
미래
역사서
지혜문학서
예언서
사도행전
사도 서간
요한 묵시록
[72]


6.6. 히브리 성경의 판본[편집]


본래 히브리말 성경들은 모음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히브리어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이를테면 '축복'이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어근을 로마자로 나타내면 BRK이다. 그리고 barek은 '축복하다', berak은 '그가 축복했다', bereku는 '그들이 축복했다', yebarek은 '그가 축복할 것이다', baruk은 '축복된 자'(남성형), beruka는 '축복된 자'(여성형), beraka는 '축복'을 의미한다. 때문에 문맥에 따라 낱말을 다르게 읽었고, 이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히브리어가 사어가 되면서, 모음을 표기할 필요성이 생겼다. 때문에 AD 7세기경 유대교 학자들은 자음으로 된 본문에서 각종 점과 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모음을 기록하였고, AD 10세기경 유대교는 공식적으로 확정된 히브리말 성경 본문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마소라 본문'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마소라 수사본은 AD 820-850년경 필사된 것으로 모세 오경만을 전한다. 마소라 본문 전체를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수사본은 AD 10세기 초기에 필사된 것으로, 코덱스 알레프(Codex Alep)라 불리나 오늘날에는 불행히도 훼손되어 전해진다. 현재 가장 널리 인용되는 마소라 수사본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된 수사본으로, 1008년경 필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마소라 본문 역시도 완벽한 것은 아니며, 쿰란 본문(이른바 사해문서)과 비교할 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또한 칠십인역이 참고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가상의 히브리 성경과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마소라의 원본인 자음 본문(원 마소라 본문)은 이미 AD 1세기 말 유대교에서 다른 본문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인정 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역시 그렇다 하더라도 마소라 본문을 100% 완전히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번역자들은 마소라 본문이 변질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다른 본문들을 참조하여 이를 땜빵하곤 한다.

6.7. 히브리 성경/요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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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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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상세[편집]


신약 성경은 히브리 성경과 달리 그리스어(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이는 당시의 예수를 믿고 따르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지역들에 따른 언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헬레니즘 시대의 공용어였던 그리스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고대 시절부터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에서는 라틴어보다 그리스어가 더 많이 쓰였다.

내용은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하고 해석한 4권의 복음서, 예수부활하고 승천한 뒤 교회를 수립하고 복음을 전하며 박해받은 사도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사도행전, 사도 바오로가 각 지방의 교회들에게 보낸 바오로 서간과 바오로 이외의 서간들, 마지막으로 종말론적 내용을 다룬 요한묵시록까지 합계 27권으로 되어 있다. 즉,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 교훈(복음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비 유대인에게로 전파된 과정(사도행전), 복음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자세(서간서), 종말론적 신앙과 최후 승리(요한묵시록)을 집대성한 문서다. 현재의 문서는 서기 50-150년(100년간)에 걸쳐 성립되었다.

또한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서간문은 정식 신약성경으로 인정받기 전에도, '신앙을 올바로 전하는 글'이라 하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참고문헌처럼 널리 읽혀졌다.

20개가 넘는 복음서 후보(?)들 중에서, 모순이 적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행적이라고 판단된 '정경'을 추려낸건 카르타고 공의회 때다. 그래도 복음서마다 모순되고 상이하거나 없는 내용이 적지 않다. 하지만 각 복음서의 기본골격이 한 증인의 목격담과 회상, 기록임을 분명히 하기에 각 화자마다 이 디테일한 차이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지 않고 있다. 다만, 각 복음서가 모두 독립적인 것은 아니고 서로가 서로의 자료를 베끼며 자신의 자료(혹은 주장)을 끼워 넣은 것이 많다. 때문에, 어떤 복음서가 먼저 나왔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도 있다. Q 사본 참고.[73]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에서는 지금도 알려진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그리스 사람들을 기독교 신자로 전도하려다 올림포스 12신 숭배자들에게 몰매 맞을 뻔하는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도 나오고, 윤리와 철학을 배우는 사람이면 반가울 에피쿠로스학파스토아학파의 지식인들도 지나가듯 나오긴 하지만 출현한다.

신약은 367년에 성 아타나시오가 신약성서 '정경' 27서를 확립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정경과 외경의 구분이 느슨했다. 당시 문헌들은 손으로 직접 베껴 쓴 필사본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다문화로 이루어진 로마 제국이기에 번역과정과 배포과정에서 필사자가 가진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여 첨삭하며 얼마든지 내용을 수정할 수 있었다. 또한 누구든지 성서를 쓸 수 있었고, 유명한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서 글을 쓰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다. 이에 이교도 비평가 켈수스나 교부인 오리게네스 등의 사람들은, 신약뿐 아니라 구약조차도 신학적 풍토와 필요성에 의해 여러 번 첨삭되고 가필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현대에는 성서비평학적으로 가짜 서신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문서나 첨삭된 부분들을 어느정도 추려낼 수 있는데, 이를 테면 바오로 친서로 추정되는 문서들과 문체가 상이하다거나,[74] 당시(1세기 안팎)에는 없던 후대(3세기~)의 단어들을 사용하거나, 당시의 확인된 역사와 모순이 있거나 등등의 경우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당연히 신약 정경 중에도 가짜 서신으로 의심되는 서간들이 몇몇 확인 되었으나[75], 그렇다고 성서적 권위가 없어진 것은 아니며 내용에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육도삼략이 태공망의 저서이든 이름만 빌려 쓴 책이든 간에, 그 내용은 어느 병법가라도 명심해야 하는 훌륭한 내용이기에 병법가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신경을 쓸 필요도 없이 공부했던 것과 비슷할 것이다.


7.2. 신약성경의 형성 과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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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신약성경/요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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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신약성경의 구약성경 인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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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읽거나 해석하는 방법[편집]


주님께서는 성경에서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셨기에 성경 해석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성경 저자들이 정말로 뜻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며, 주님께서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문학 유형들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예언적·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자들은 성경 저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그 시대와 문화의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려 하였고 또 표현한 그 뜻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 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 방식, 언어 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類比)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성경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경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 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주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계시헌장12


기독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놓고 종파가 갈라진다. 같은 기독교인끼리 증오하고 정죄하는 경우도 많다. 신학적 견해가 판이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비슷한 신학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파고 들면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주요 교단에서 이단, 사이비로 판정한 자들은 분별해야 하나 성경은 어지간히 심각한 문제가 아닌 이상 다투지 말고 사랑으로 하나되라고 말한다.[76]

교인 중 성경을 인간이 해석해서는 안되고, 성서무오설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 신학자 중 성서무오설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회 현장에서는 설교의 편의성과 교인들의 신앙심 고취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서무오설을 전할 따름이다. 성경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므로 모든 말씀이 지금 2천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몇 천 년 전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여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인도 있다. 그러나 신학계 주류 입장은 성경의 모든 구절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77] 말씀을 들어 구원 받기 위해서는 할례, 5대 제사를 비롯한 구약의 613개 율법을 현재에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교인이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통 신학자의 견해에 따라 성경을 성경 전체, 또는 각 문헌 전체를 기준으로 해석하지 않고 일부 구절을 떼어서 그것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단의 주장을 하게 된다.

8.1. 성경에서 근거하는 태도와 방법[편집]


  • 온유함으로 받는다(약1:21)
  •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다(딤후1:13; 히4:2; 11:6)
  • 말씀을 사랑한다(시119:48, 97,113, 167; 딤후1:13)
  • 말씀이 풍성히 거하도록 한다(골3:16)
  • 말씀을 마음에 둔다[78](눅2:19-51; 시119:11)
  • 말씀을 즐거워한다(시119;99, 148)
  • 날마다 상고한다(요5:39; 행17:11)
  • 종일 묵상한다(시119:97)
  • 주야로 묵상한다[79](수1:8; 시1:2)
  • 성령의 조명을 받아 상고한다[80](요14:16-17; 벧후1:20-21)
  • 말씀을 따라 삼간다(시119:9)
  • 항상 곁에 두고 읽는다(신17:19; 수1:8)
  • 자세히 읽는다[81](사34:16)
  •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깨닫는다(행8:30-31; 17:2)
  • 말씀에 순종한다(약1:22; 벧전2:8; 계1:3)
  • 자녀들에게 가르친다(신11:19)
  • 논쟁이 아니라 유익을 위해 힘쓴다[82](딤후2:14; 딛3:9)


8.2. 성서주석학을 통한 성경 읽기[편집]


성경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문자적 의미(literal sense)다. 문자적 의미는 눈이 보이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다. 대부분의 경우 문자적 의미만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이 의미만으로 성경의 깊은 가르침을 파악할 수 없다. 문자적 의미만을 고집하는 축자주의(literalism)는 때로 근본주의 해석을 낳고 이 해석이 반인륜적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

둘째는 문학적 의미(literary sense)다. 문학적 의미는 성경 저자가 본문 안에 담아 전달하려는 메시지다. 이 의미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역사비평의 제반 방법이 유용하다. 그러나 문학적 의미에만 매달리게 되면 성경 본문을 과거의 틀에 가둘 수 있다. 또한 본문 해석에 대한 수많은 가설과 이론으로 본문 자체를 해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는 영적 의미(spiritual sense)다. 영적 의미는 문자적 의미와 문학적 의미를 넘어서 성경을 읽는 오늘의 독자에게 성령께서 선물하시는 현실적 의미다.

-바오로딸, 《거룩한 독서를 위한 성경 주해》 총서 머리말

우리는 일상에서 말을 할때든 진지한 문어체를 구사할때든, 문자적 의미와 비유, 수사적 의문 등을 자연스럽게 섞어가며 발언한다. 요컨대, 우리는 서로간에 '문학적 의미'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성경 역시도 글이니만큼, 본문 자체는 '문학적 의미'에서 독자에게 말을 한다. 그렇기에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혹은 비유로만 파악하려는 것은 올바른 독법이라 할 수 없다. 다만 저자와 독자 사이에 놓인 시공간의 격차 때문에 본문의 문학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그렇기에 진지하고 열정적인 학습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83]

가령 신명기에서 전쟁에 관한 율법을 보자. 신명기는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모조리 전멸시켜야 한다"(신명 20,17)고 말한다. 이는 마치 전쟁 중인 이스라엘인 독자에게 가나안인 전멸을 의도하는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그러한 독법은 단지 현대인의 감수성과 충돌하는 것을 넘어, 신명기 본문이 의도하는 1차적 의미와도 거리가 멀다. 여기 제시된 민족들은 신명기가 저술될때 이미 사라졌기에 이들 민족에 대해 유다인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현대 한국인이 거란족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실생활에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었다. 아래에서 게오르크 브라울리크가 지적하듯, "이 법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꼬집어 열거하고(20,17), 훗날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절멸 전술은 분명히 반대한다. 실제로 가나안인들의 근절을 겨냥했다면, 이 법은 대상 없는 요구를 한 셈이다." 오히려 신명기는 이미 쇠퇴한 과거의 민족들에 대해서는 절멸을 말하지만, 독자와 인접하여 사는 인근 민족들에 대해서는 절멸 언급을 피하는 곡예를 구사한다.[84]

신명기가 서술하고 또 명령하는 가차없는 폭력에 의한 땅 정복은 하나의 관념적 구상물이다. 이것은 신앙이 요구하는 철저함의 상징,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역사 안에서 완수하신다는 사실의 상징이다. 이민족 전멸 명령의 정형화된 적용은, 가나안 땅 점유 이후의 전쟁들뿐 아니라 훗날 유배로부터 이스라엘의 귀향과 관련해서도, 단호히 배제된다.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곳 주민 전체를 전멸시켰다는 전쟁은, 그 가설을 신명기가 설계하고 그 가설의 성취를 여호수아기가 보도하지만, 역사상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땅 주민들의 씨를 말린 잔혹하고 거룩한 전쟁이라는 표상은, 오래된 전승 요소들[예컨대 전리품 획득을 포기하고 신에게 사람·가축·물적 재화를 완전(절멸) 봉헌하는 승전, 이른바 헤렘herœm전쟁에 관한 보도들. 이미 멸망한, 부분적으로는 전설적인 종족들 목록. 토박이 종족들의 추방을 포함한 땅 약속들]을 의도적으로 체계화하고 일반화한다. 이 은유Metaphrik의 개별적 모티브들(예컨대 군사적인 테러 위협)은 아무래도 신아시리아의 선전포고와 언어와 표상 세계에서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스라엘 초창기의 '사실史實적' 재구성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니, 이민족 절멸 계명은 문학적으로 처음부터 우화적·종교적인 의미에서 말해진 것이다. 과연 이 계명은 일러야 요시야 시대에서, 즉 이 계명이 적용되는 종족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7세기 말엽인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미 자기 땅의 큰 부분을 다시 잃었다. 적과 적의 소유물을 절멸시킨다는 헤렘이라는 개념은, 온 땅이 너희 소유이며, 너희가 하느님을 철저히 신뢰하기만 하면, 그분은 그것을 너희에게 넘겨주실 것이다, 또는 잃어버린 땅을 다시 마련해 주실 것임을 암시하고자 했다. 하느님은 당신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당신께 맞서는 모든 자에게 압도적 승리를 거두신다. 여호수아기의 경우도 비슷한데, 이 책은 (신명기계 가나안 땅 정복 설화의) 이 발생사적 단계에서 신명기와 조화를 이룬다. 가나안 땅 점유가 처음에는 정탐자들의 보고를 듣고 난 이스라엘의 불신 때문에 좌절되었고(신명 1,32; 참조: 9.23-24), 여호수아 주도하에 성공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었다(요약: 여호 21,43-45). 여기서 묘사하는 전투들의 철저성은, 여호수아기의 본디 의미에 따르더라도, 이스라엘 역사 초창기의 초토화 전술에 대한 사실史實적 확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 신뢰의 철저성에 관한 설화적 상징이다. 이 철저한 하느님 신앙(이에 근거해 이스라엘은 초창기에 자기 땅을, 즉 자신의 행운을 얻었다)의 전쟁 은유는 또한 훗날 수백 년간의 국가 존립 이후 실패한 역사의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모세가 요르단 동쪽의 아모리족 임금들과의 헤렘 전쟁을 약설略說하기 전에, 신명기 화자話者의 중간 언급은 뒤이어질 야훼와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들과 이민족 절멸을 세계사적 '통례적'인 현상들로 상대화한다. 야훼께서 편을 드셨던(2,21.22) 이스라엘 이웃 종족들(2,12.23)도 이미 당시의 전 주민들을 결딴냈다.

신명기 7장의 관점에 따르면, 헤렘은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 애착의 한 귀결이며, 이스라엘이 하찮고 숫자 적고 힘없지만 야훼에게 선택된 것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역사적 행동의 도구가 되기 위함이다. 약속의 땅의 강력한 일곱 민족을 절멸(완전) 봉헌하라는 명령의 배경에는, 전쟁을 역사 안에서의 신의 '심판'으로 여기는 근동의 통상적 견해가 있다. 여기서는 인종차별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며, 참으로 겨냥하는 바는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끝끝내 신뢰해야 할 이 세상에서 하느님 행동의 절대주권임을 이 관념의 보편주의적·신학적 단초가 분명히 알려 준다.

9,1-7에서 요르단 서쪽 땅의 정복이란, 은총과 공로에 관한 엄밀한 신학적 논증의 표현 수단일 따름이다. 이 논증은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염두에 두고, 가나안인들의 악함을 평준화한다. 그러므로 양쪽 모두 땅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끊임없는 거부·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얻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야훼께서 우두머리 조상들에게 하셨던 맹세에 충실하신 덕분이다. 다시 말해, 순전한 은총의 선물이다.

20,10-20의 전쟁에 관한 법은 후대의 전쟁들과, 여호수아 지휘하의 유일회적 주민 절멸 정복 전쟁을 명백히 구별하고 있다(20,15-18). 이 법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꼬집어 열거하고(20,17), 훗날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절멸 진술은 분명히 반대한다. 실제로 가나안인들의 근절을 겨냥했다면, 이 법은 대상 없는 요구를 한 셈이다.

29,21-27은 유배를 앞서 내다본다. 그때에는 다른 민족들에게 대항하는 일이 아예 없어질 것이다. 다른 민족들은 이 재앙의 원인을 묻다가, 자신들의 대답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역사 안에서 당신의 권리를 관철하셨다고 이스라엘과 함께 신앙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가나안의 일곱 민족을 그렇게 위험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던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이스라엘을 자기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미혹할 터였다.

이어지는 30,1-10의 귀향 예언은 유배된 자들을 이민족들 사이에서 데려옴과 관련하여, 이집트 탈출 때와는 달리, 하느님의 폭력 행위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특히 약속의 땅의 새로운 소유에 관한 예언에, 이민족 절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스라엘의 집합과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은 이스라엘의 폭력 행위 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게오르크 브라울리크G. Braulik OSB, "신명기",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259-261쪽

또한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후대 독자들의 '수용 미학'[85] 관점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성경 역시도 많은 문학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경원시할 수는 없지만, 많은 문학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어쩌면 저자가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가령 구약성경의 아가에서 이러한 예를 볼 수 있다. 아가는 유대교에서도 그리스도교에서도, 하느님과 '여성으로 표현된 백성'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본문 그 자체로만 보자면 아가는 그냥 남녀간의 사랑노래이며, 신학적인 이야기는 본문 안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의 주석학자들은 아가의 문학적 의미를 주석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의 우의적 감상이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구약 정경에 아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본문 그 자체에서는 보이지 않는 우의적 해석을 맥락적 의미에서 옹호해준다.

아가의 신학에 관한 물음에 관련하여 거듭 숙고되는 문제를 쿨C. Kuhl은 이렇게 둘러 말한다: "아가에는 종교적 사상이라는 게 전혀 없다. 과연 책 전체에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하느님도 종교도 ··· 나오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 책이 정경이 될 수 있었고 더구나 축제 두루마리에 들어가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회피할 수 없다."(C. Kuhl, Das Hohelied und seine Deutung, 1937, 141). 아가에 대한 우의적이고 제의적인 해석은 이른바 매우 세속적인 이 사랑 노래 모음집에서, 텍스트 자체는 제공하지 않는 신학적 의미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라고 흔히 비판받는다. 하지만 문학 기호론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우의적 해석을 아예 그릇된 것으로 평가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한 텍스트의 의미는 그때그때의 맥락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하나의 문학적인 텍스트, 다시 말해 다소간 '열려 있는 텍스트'는 다양한 맥락화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획득한다.아가를 성경이라는 맥락 안에서 읽는 독자에게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관계의 길고 긴 여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성경에서, 이 관계는 사랑과 혼인이라는 개념과 은유를 통해서 표현되거니와{{{-2 (참조: 호세 2장; 예레 2장; 에제 16장; 23장)}}}] 우의적·예형론적 이해가 실로 수긍이 간다. 아가의 이른바 '원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것은 반맥락화 또는 재맥락화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루트거 슈빈호르스트쇤베르거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 "아가",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680-681쪽


구체적인 성경 해석의 예시로 '노예제'를 생각해보자. "과연 성경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신구약 저자들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1차적인 문필적 의도에서 말하자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인간 저자들은 분명하게 노예제를 전제하고 있다. 가령 바울로는 필레몬서에서 노예제를 하나의 사회적 현실로서 전제하고 있으며,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결국 성경의 인간 저자들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의도했을 의미에서만 보자면, 성경은 노예제 폐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노예제는 하느님의 뜻에 반대된다'는 결론은 성경의 내부 논리로부터 합리적인 연역적 귀결로서 도출이 된다. 이런 견해는 고대, 중세, 근대를 거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점점 확산되었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리스도인들의 건전한 '상식'이 되었다. 결국 "인간 저자들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가(과거형)"에서는 성경이 노예제 반대에 근거를 주지 않지만, "성경이 지금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현재형)에서는 분명하게 노예제 반대의 근거가 된다. 후자의 독서법은 비그리스도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 의도의 정당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책의 의미를 벗어난 것이지만, 성경을 '인간 저자와 성령의 공동 저작'으로 보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당한 것이다. 물론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인간 저자의 문필적 의도를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가지 의미 모두가 중요하다. 바울로는 노예제를 전제하였었지만(과거형), 바울로 서간은 노예제를 반대하고 있다(현재형).

성경이 쓰여진 시대는 인쇄 기술이 미발달하였고, 일일이 필사를 하여 옮기던 시대였다. 때문에 간혹 앞뒤 일관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나 많은 기독교 종파들은 대체적으로 하나의 성령 아래에서 씌어졌기에 내용상의 오류나 불일치는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예수가 태어날 것을 가브리엘 천사가 예고하는 장면에서는,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나자렛의 요셉에게 예고하는 것으로 나오나 루카 복음서에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예고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복음서의 상이한 차이를 '모두 다 받아들여'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수태고지 장면은 처음에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후, 성모 마리아의 정절을 의심하던 나자렛의 요셉에게 다시 한번 예고한 것이라는 식으로. 복음서마다 상이한 십자가상 7언(가상칠언)의 발언 차이도 복음서마다 묘사된 모든 말을 예수가 다 했다고 보는 게 신학계 정설이다.

성경은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과정에서 편집되거나 첨가된 것이 많다. 그래서 후대에 첨가된(혹은 그렇다고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현대 번역에서 해당 부분을 괄호 치고 주석으로 '오래된 사본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고 표시한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의 끝자락 또는 요한복음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이야기가 있다. 필사자들의 의도적인 왜곡도 있을 수 있지만 기독교는 공인되기 이전에는 탄압받고 숨어서 믿는 종교였기에 기록물 역시 은밀한 방법으로만 전수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확인·대조를 못 한 것이 한 원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그 내용이 역사적 배경이 나오지만 모든 서술이 실제 사건에 100% 기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상기되었듯, 성경에는 비슷한 내용인데 논점은 다른 경우도 있다. '누구누구가 멸절당했다'라는 내용과 '누구누구는 구원받았다'라는 기록(예리코 vs 니느웨)들이 그 예시. 다만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예를 들어 예리코는 악의 길을 걸어 멸절되는 원리를, 니느웨는 전도자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식으로 서로 다른 논점을 가지고 파악함으로써 모순을 피해갈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 점은 고려하자.


8.2.1. 주의: 구약의 폐기는 신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편집]


아래 문헌에서도 강조되다시피, 그리스도인 독자가 구약을 신약에 의해 폐기되었거나 철 지난 문서로 보는 건 올바른 독법이 아니다.이러한 왜곡된 독법을 바로잡는 것은 유다교의 시선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한다.

그리스도인 독자가 구약의 내적 역동성의 종착점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이것은 소급적인 인식이며 그 출발점은 본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선포된 신약의 사건들에 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본문 안에서 선포된 내용을 보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비추어, 그리고 성령 안에서 본문 안에 숨겨져 있던 잉여 의미(surplus de sens)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교황청 성서위원회(위원장: 요제프 라칭거),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 제2부 가.6.[86]


여기서 관건은 결국 성경의 개개 텍스트들의, 그리고 그리스도교 성경의 경우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두 부분의 고유한 가치와 의의를 인정해 주고, 그것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규범적 토론으로 이끄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해석학을 규범적 토론의 해석학이라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론상으로 또는 대화상으로 이 토론은 이를테면 같은 눈높이에서 이루어지거니와, 여기서는 그때그때 논의되는 하느님 인식들과 하느님 이해들이 신중히 비교되고 관련지어지고 분석되어야 한다.

...... 간단한 예를 통해 설명해 보자.

코헬렛이 죽음을 인생의 종지부로 주장한다고 해서, 신약성경의 부활 소식에 근거하여 그 책을 신학적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비난하고 또 거기서 신약성경에 의해 지양되어야 마땅한 구약성경의 전형적 한계를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매우 유익한 코헬렛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더 나아가 신약성경의 부활신학에서 한 중요한 차원을 빼앗는 것인즉, 이 차원은 바로 코헬렛과의 대화에서 명료해진다. 코헬렛은 죽음이 인간 삶을 끝장내며 이것은 하느님도 취소하시지 않는다고 도발적이고 매정하게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코헬렛에게 인간의 삶이 의미 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죽음의 권세에 맞서 코헬렛은 즐거움을 촉구하거니와, 즐거움은 하느님의 선물이요(3,13) 그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신다.(5,19). 이렇게 즐거움은 인간이 자신의 필멸성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고, 또 자기 삶을 하느님의 현존 안의 삶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이 된다. 코헬렛의 하느님은 현재의 하느님이니, 그분은 현재의 삶을 안배하시고 사람을 가상의 세계로의 혹은 아예 환상적인 미래로의 도피에서 지켜 주고자 하신다. 그런 도피를 코헬렛은 가로막는다. "네가 가야 하는 저승에는 일도 계산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9,10). 코헬렛이 '죽음 후의 삶'이라는 관념을 거부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하느님 현존의 시간으로서 '죽음 의 삶'에 대한 중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아도 고유한 중요성을 지닌 언명인즉, 신약성경과 상충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죽음 전의 삶'과 근본적 연장선상에 있는) '죽음 후의 삶'에 대한 믿음에 하찮지 않은 심층 차원을 선사한다.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이종한 옮김, 33-34쪽.[87]


28. ... 신약 성경이 존재하기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관계에 대한 질문, 예를 들어 신약 성경의 내용이 구약 성경의 내용을 대신하거나 무효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2세기에 마르키온이 이러한 입장을 내세웠다. 그는 신약 성경이 약속의 책인 구약 성경을 낡아 버린 것으로 만들어, 해가 떠오르면 달빛이 더 이상 필요 없듯이 새로운 것의 광채 안에서 구약 성경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히브리 성경과 그리스도 성경의 뚜렷한 단절은 결코 그리스도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리스도 교회는 144년에 마르키온을 쫓아내며 그가 주장한, 구약 성경의 모든 요소를 제거한 순수한 그리스도 성경이라는 개념을 배척하였다. 그리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주인이신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증언하여 두 성경의 일치, 곧 계약들의 일치(concordia testamentorum)를 견지하였다.

29. 물론 이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맺고 있는 관계의 일부일 뿐이다. 구약 성경의 공동 유산은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유대의 중요한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두 신앙 공동체들의 관계에 근본적 긴장을 야기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성경에 비추어 구약 성경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한 확신을 지닌 것이다.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구약 칠경 발췌 주해」[Quaestiones in Heptateuchum], 2,73). 이러한 의미에서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의 선포이며 신약 성경은 구약의 최고의 주해라고 정의하였다(「에제키엘서 강론」[Homiliae in Ezechielem], I, VI, 1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16항 참조).

30.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주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성경을 구약 성경의 완성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쉽게 줄 수 있다. 이러한 인상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서기 70년의 제2성전 파괴라는 재난 이후에 유다교도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성전에 묶여 있던 사두가이들은 이 재난에서 살아남지 못하였기에,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고유한 방식을 이미 발전시켰던 바리사이들을 따르는 랍비들이 유다교 신앙의 중심이 되어 성전 없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된 것이다.

31. 이에 따라 이 상황에 대한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을 읽는 새로운 두 방식, 곧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론적 주해와 역사적으로 발전하게 된 유다교의 랍비 방식의 주해가 나타난 것이다. 이 두 방식의 주해는 저마다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을 담고 있기에 그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회와 성전 파괴 이후의 랍비 중심의 유다교는 나란히 발전하였지만 서로 대립하고 서로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기에 이 문제를 신약 성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수세기에 걸친 이러한 상반된 입장을 넘어서서, 성경을 읽는 새로운 이 두 방식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어 “풍요로운 상호 보완성”을 이해하고 “하느님 말씀의 부요를 깊이 이해하도록 서로 돕도록”(「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49항) 하는 것이 유다교와 가톨릭이 나누는 대화의 과제가 되었다. 2001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 발표한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The Jewish People and Their Sacred Scriptures in the Christian Bible)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다교의 성경 해석이 가능한 해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고 또한 인정해야 하며 “그것은 제2성전 시대의 유다교 성서와 연속성을 지닌 해석으로서 병행적으로 발전한 그리스도교 해석과 유사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각자의 신앙관과 연관되어 있는데, 해석은 그 신앙관의 결과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가지 해석을 다른 해석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22항).

-교황청 유다교위원회, 〈가톨릭과 유다교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문제에 대한 숙고〉[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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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예시로 이사야서 7장 10-17절을 들어 말히자면, 이 예언은 1차적으로 당시 남왕국의 왕자 탄생을 예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서는 1차적으로 동시대 유다인들이 들으라고 나온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남왕국의 왕자 탄생을 넘어, 더 미래의 어떤 신적인 사건을 예고한 것으로 보는 것은 신약의 시선에서 뿐만 아니라, 유다교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한다. 왜냐하면 칠십인역에서도 이미 이 구절을 과거 남왕국의 왕자 탄생 예고를 넘어, 미래에 있을 '동정녀에 의한 메시아 탄생 예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은,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예언이나 예형이 먼저 있었던 사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집트 탈출을 바빌론 탈출의 예형으로 보았다고 해서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이 이집트 탈출의 의의를 부정한 게 아니며, 베드로 1서 3장 20-21절이 노아의 방주를 세례의 예형으로 해석했다고 해서 저자가 노아의 방주를 무슨 동화책 읽듯이 한 게 아니듯, '남왕국 왕자 탄생'과 '동정녀에 의한 메시아 탄생'은 서로를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이사 7,10-17의 단락에서도 일차적으로는 아하즈 시대를 배경으로 이 말씀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그다음에 비로소 마태오 복음서가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피해야 할 가장 큰 오류는, 이 예언을 아하즈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같은 본문을 예수님께는 적용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다. 구약의 예언서들에서도 어떤 시대의 예언이 다른 시대에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의 본문은 어느 한 시대에 매이지 않고 계속적인 재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 지녔던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그와 다른 의미를 더 지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소근 수녀,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이사야서 1-39장》, 바오로딸, 2016, 137쪽

현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하나의 텍스트가 이렇게 재해석되는 과정이 기이하게 보일 수 있으나, 성경은 기본적으로 히브리 문화권에서 그들의 문체와 이야기 방식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엔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도 미드라쉬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이웃 종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신약이 구약을 보는 시선과 고대 그리스도고 교부들의 성경 주해에서 '히브리적 사고'가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가령 바울로만 하더라도, 오늘날 현대인의 사고 과정으로 그의 서간을 읽으면 사고 과정이 매우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히브리 문화의 예형론과 미드리쉬적 논법을 고려한다면, 바울로의 말하기 방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미드라시적인 서술은 구약성서(집회 7:27-28, 1마카 7:16-17)와 신약성서(갈라 4:21-31, 히브 3:7-4:11, 7:1-10) 및 쿰란문학에서 나타난다. 요한 6:31-60과 지혜 11:2-19:22는 미드라시적인 설교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가톨릭대사전, '미드라시' 항목


어떤 교부들은 아주 일찍부터 성경 해석에 대한 유다인들의 전승에 몰두하였다. 오리게네스, 에우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는 무수한 해석에 유다 전승을 근거로 끌어 댄다. 에프렘과 아프라하트 같은 시리아 교부의 저서에서 라삐들의 성경 해석 전승과 병행하는 구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오리게네스와 히에로니무스는 팔레스티나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당대의 유다인들과 접촉한 것이 분명하고, 그 전승들이 유다인들에게서 왔다고 명확히 밝히기도 한다. ... 히에로니무스가 유다인들의 문헌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이는 퍽 확실한 것 같다. 그의 서한 36번에서 그는 유다인의 회당에서 적지 않은 책을 빌렸다고 했고, 카인의 죽음에 대한 유다인들의 전승를 인용하면서 "히브리인들의 문서 보관실에서" 재확인했다고 한다.

-귄터 스템베르거(Günter Stemberger) 씀. 이수민 번역. 《미드라쉬 입문 ―라삐들은 성경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개론, 선택과 본문》 333-334쪽

그리고 교황청 성서위원회 문헌인 《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에서 잉여 의미(surplus de sens)라는 과감한 단어를 선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예형론적 사고에서는 '예형'[89] 그 자체를 통해 '본형'[90]을 유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집트 탈출만으로는 바빌론 탈출을 유추할 수 없듯[91], 구약의 사건 그 자체에서는 신약을 유추할 수 없다. 다시 이사야서의 예를 들자면, 남왕국 왕자 탄생 자체에서는 당연히 예수 탄생을 유추할 수 없다. 그러나 칠십인역이 이를 동정녀에 의한 메시아 탄생으로 읽었고, 훗날 예수 사건이 경험되었기에,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예수 탄생'이라는 의미가 자명해진 것이다. 곧, 바빌론을 탈출한 유다인들이 이집트 탈출 사건의 의의를 치워버려서는 안되듯이, 그리스도인이 구약의 의의를 치워버려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동일한 원리로, AD 1세기의 통일되지 않은 수많은 메시아관을 어리석다느니 무식하다느니 하면서 조롱하면 안된다.

1세기의 유다인들은 모두 메시아를 기다렸는가? 확실히 아니다. _사정이 그런 만큼 신약성서의 독자는 당시의 모든 유다인들이 폭넓게 받아들인 통일된 메시아니즘을 이 시대에 투사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_ 사실 예수의 면모에 다양한 메시아적 동기를 환원적으로 적용시킨 사람들은 바로 베드로 내지 나아가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노선을 따르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에 속한 이들이었다. 쿰란을 비롯하여 1세기 유다교 안에서 상황은 모호하였다. 그러기에 유다인들은 모두 군사적(軍士的)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예수는 사랑를 설파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자들을 찬양함으로써 권위를 인정받았다는 식의 단순한 설명에 너무 조급하게 동조해서는 안 된다.

-Charles Perrot 씀. 백운철 번역.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231-232쪽

신약의 관점으로도, "예수는 메시아이다"라는 신앙고백은 구약성경 책 자체만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며, '예수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구약 텍스트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교 관점에서도 구약 텍스트의 1차적 의미는 보존됨이 당연하다.

신약성경 문서들이 이스라엘 성경에 터하여 쓰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성경 독해의 해석학적 단초는 분명해진다. 신약성경은 이스라엘 성경(또는 그냥 구약성경)의 빛 안에서 읽혀야 한다. 자주 인용되는 고대 교회의 성서학자요 번역자인 히에로니무스의 말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를, '구약성경을 알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살짝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이종한 옮김, 23쪽.[92]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 성전(聖殿)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구약 시대의 유다교에서 성전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비록 제의(祭儀)를 겉치레로만 할 경우 비판 받기도 하며, 성전이 없던 시대도 구약이 다루고는 있으나, 성전이 구약에서 얼마나 강조되는지는 두 말하면 입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종말론적 대사제로 고백하면서 예루살렘 성전 제의의 문자적 준수를 하지 않게 되었으며, 유다교 역시 〈가톨릭과 유다교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문제에 대한 숙고〉 30항에서 볼 수 있듯, 성전 파괴 이후에 '성전 없는 유다교'인 라삐식 유다교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구약에서 성전을 가리키는 구체적인 구절들을, 21세기 그리스도교와 유다교가 '철 지난 구절'로 읽을 수는 없다. 이 구절들의 문자적 준수는 21세기에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에 이 구절을 적은 저자가 의도한 1차적인 문필적 의미를 고려할 때,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고유한 성전 이해를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8.3.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 읽기[편집]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경을 읽는 방법이 특별히 설명할 가치가 있다. 토마스는 당대까지 통용되던 교부들의 성경 해석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현대 성서학의 기본 전제를 함축하고 있는 매우 중용적인 가르침을 남겼다.

제9절: 성경은 은유적·상징적 화법을 써야 할 것인가[93]

아홉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경은 은유를 쓰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사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94]

최하위 가르침의 고유한 것은, 모든 학문 중에 최상위를 차지하는 이 학문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가지가지의 유사(類似)나 표상(表象, 표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은 모든 가르침 중에 최하위에 있는 시가(詩歌) 고유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유사를 사용하는 것은 이 학문에는 적합하지 않다.

1.그 밖에도 이 가르침의 임무는 진리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들에게는 포상도 약속되어 있다. 「집회서」 제24장 제31절에서는 "나를 빛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사를 통해서는 진리가 은폐된다. 물체적 사물들의 유사 밑에 신적인 것들을 전달하려는 것은 이 가르침에 적합하지 않다.

1.그 밖에도 어떤 피조물들은 탁월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신적 유사에 접근한다. 따라서 만일 피조물들에서 어떤 것은 하느님한테로 (하느님과 비슷한 것으로) 취해진다면 이런 채택은 할 수 있는 한 탁월한 피조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최하위의 피조물들에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흔히 이런 사례가 발견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다.

「호세아서」 제12장 제10절에서는 "나는 그들에게 환상을 많게 하였으며 예언자로 하여금 내 유사를 사용케 하였다."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사에 의해 전하는 것은 은유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은유를 쓰는 것은 거룩한 가르침에 속한다.

나는 이상의 것에 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물체적 유사 밑에 전하는 것은 성경에 적합하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그 본성에 따라 배려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감각적인 것을 통해 초감각적인 것, 가지적인 것에 이르는 것이 본성적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인식이 감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영적인 것이 물체적 사물들의 은유 밑에 우리에게 전달되게 되는 것은 적절한 것이다. 또 디오니시우스가 「천상위계론(天上位階論)」 제1장에서 "신적인 광명은 여러 거룩한 베일로 감싸이지 않고서는 달리 우리에게 비쳐질 수 없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점을 말한 것이다. 영적인 것들이 물체적 사물들의 은유 밑에 제시되게 되는 것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1장 제14절에서도 "나는 유식한 사람에게나 무식한 사람에게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한 바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주어지는 성경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것은 초감각적인 것을 그 자체로서는 이해하기에 적합하지 못할 만큼 무식한 사람들도 어떻든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그러므로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시가(詩歌)는 그 표현을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그것은 표현이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이 은유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필요하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1.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신적 계시의 빛은 디오니시우스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것을 가리고 있는 감각적 형상 때문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진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계시를 받은 정신들로 하여금 유사성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히려 초감각적인 것들의 인식으로 그 정신들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다. 또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세계에 대해 가르침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성경의 한 곳에서 은유로 전해지는 것이 다른 데서는 더 명백히 설명되는 것이다. 또한 형상적(形像的) 숨김 자체는 탐구자들의 훈련을 위해서도, 불신자들의 조소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유용하다. 여기에 대해 「마태오 복음서」 제7장 제6절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마시오."라고 한다.

1.셋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디오니시우스가 「천상위계론」 제2장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성경에서 신적인 것들을 고귀한 물체의 형상들로보다는 천한 물체의 형상들로 전하는 것은 더 적절한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쨰로는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 정신이 더 쉽게 오류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신적인 것들에 대해 말해지는 것은 고유한 의미로 말해지는 것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만일 고귀한 물체의 형상들로 신적인 것들이 표현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물체보다 고귀한 어떤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주 의심스러울 것이다. ─둘째로는 이 방법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갖는 인식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무엇인가보다는 무엇이 아닌가가 우리에게 더 명백하다. 따라서 그 유사가 하느님에게서 멀면 멀수록 더욱더 그런 유사는 하느님에 대해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에 대한 더 참된 평가를 하게 된다. 셋째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써, 신적인 것이 부당한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감추어지는 것이다.

제10절: 성경은 한 자구(字句) 안에 여러 의미를 갖는가[95]

열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경은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 다시 말해 역사적 혹은 자의적(字義的) 의미, 우의적(寓意的) 의미, 전의적(轉義的) 내지는 도덕적, 신비적(천상적) 의미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사실 한 성경 안에서의 여러 의미는 혼란과 기만을 조성하며 논증의 견고성도 없게 된다. 따라서 의미가 다양한 명제들에서는 논증이 진행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논증에 따른 어떤 오류들이 지적된다. 그런데 성경은 어떠한 오류도 없이 진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 효과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가 전해지면 안 된다.

1.그 밖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의 유익론」에서 "구약이라고 불리는 책은 네 가지로 전달된다. 즉 역사적으로, 원인론적으로 소급하여, 유비적으로, 우의적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넷은 앞서 말한 넷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경의 같은 자구가 앞서 말한 네 가지 의미로 해설되는 것은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그 밖에도 앞서 말한 의미 외에도 그것들에 내포되지 않는 비유적 의미가 발견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도덕론」 제20권에서 "성경은 그 화법 자체로 모든 학문을 초월한다. 그것은 같은 언사(言辭)를 통해 행적을 말함과 동시에 비의(秘義)를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상의 것에 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성경의 작가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말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사물 자체도 제공하는 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에 있어서 말은 의미를 표현하는데, 이 학문은 말로 표현된 사물들이 또한 다른 어떤 것을 의미케 하는 고유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말이 사물을 표현하는 첫째 표현이 첫째 의미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첫째 의미는 역사적 내지는 자의적 의미다. 그런데 말을 통해 표현된 사물들이 다시 다른 사물들을 표현하는 의미 표현은 영적 의미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런 영적 의미는 자의적(字義的) 의미에 기초를 갖고 있으며 또 그것을 전제로 한다.

이 영적 의미는 세 가지 모양으로 구분된다. 사실 사도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제7장 제19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옛 법은 새 법의 상징이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가 「교회위계론」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새 법 자체는 '미래 영광의 상징'이다. 또한 새 법에 있어서는, 머리(그리스도)에서 행해진 것은 우리가 행해야 할 것들의 징표다. 그러므로 옛 법의 것들이 새 법의 것들을 의미한다는 데는 우의적 의미가 있으며, 그리스도에 있어서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들 안에 이루어진 것들이 우리가 행해야 할 것들의 상징이라는 데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영원한 영광 안에 있는 것들을 의미할 때는 천상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작가가 의도하는 바는 자의적 의미이며, 또한 성경의 작가는 모든 것을 동시에 그 지성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자의적 의미를 따라 성경의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를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론」 제12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부적(不適)한 것이 아니다.

1.그러므로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다수성은 다의성 혹은 (이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다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나의 말이 많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의미들이 다수화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말을 통해 의미가 표현된 사물 자체들이 다른 사물들의 징표일 수 있으므로 다수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안에서는 어떠한 혼란도 야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의미는 하나의 의미, 즉 자의적 의미에 기초를 갖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점에서만 논증이 이끌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스파인 빈센티우스를 반박하는 서간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의적 의미로 말해지는 바에서 논증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성경에서 어떤 것이 잃어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의미 안에 내포된 신앙에 필요한 것으로서, 성경의 다른 곳에서 자의적 의미로 명백하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1.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이미 말한 셋, 즉 역사, 소급적 원인, 유비 등은 자의적인 의미라는 하나에 속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설명하는 바와 같이 역사는 어떤 것이 단적으로 서술될 때이고, 소급적 원인이란 말해지는 것의 원인이 지적되는 경우인데, 예컨대 「마태오 복음서」 제19장 제8절에서 모세가 왜 아내를 버릴 허락을 주었는지의 원인을 주께서 직접 지적하시는 경우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유비는 성경의 한 곳의 진리가 다른 곳의 진리에 배치되지 않는 경우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네 (의미) 중 우의적인 것만이 세 영적 의미를 위해 제시된다. 예컨대 성 빅토르의 위고는 우의적 의미 안에 신비적(천상적) 의미도 포함시킨다. 그는 그의 「명제론집」 제3권에서 세가지 의미, 즉 역사적·우의적·전의적(비유적) 의미만을 제시한다.

1.셋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비유적 의미는 자의적 의미에 내포된다. 그것은 어떤 것은 말을 통해 고유하게 표현되고 또 어떤 것은 형상적(形像的)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자의적 의미는 형상(形像) 자체가 아니고 형상화된 것이다. 예컨대 성경에서 하느님의 팔이라고 할 때 자의적 의미는 하느님이 이런 지체를 지녔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지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 즉 작용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성경의 자의적 의미에는 결코 거짓이 내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제1부 제1문 9-10절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대까지 통용되던 교부들의 성경해석법을 간단히 짚어야 한다. 교부들의 성경해석법은 기본적으로 약간의 바리에이션 차이만 있을 뿐 오리게네스가 틀을 잡은 것인데, 오리게네스는 성경의 의미를 다음 세 가지로 구분했다.
ㄱ. 영적 의미 = 영성적 의미
ㄴ. 혼적 의미 = 도덕적 의미
ㄷ. 신체적 의미 = 자의적(字義的, 문자적)) 의미[96]
오리게네스는 ㄷ보다 ㄴ에, ㄴ보다 ㄱ의 가치를 높이 보았으며, 성경 해석의 목표로 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해석법이 신학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에는 그 어떤 이견의 여지도 없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97] 성경 저자가 의도한 의미보다는 해석자의 주관을 중시할 위험이 있었다.[98]

토마스의 해석이 지니는 특징은, 이러한 구분법을 계승하되 문자적 의미가 성경 해석의 기초라는 데 초점을 찍음으로써 주관주의의 위험을 극복한 것이다. 토마스는 성경의 의미를 다음과 깉이 구분하였다.
ㄱ. 자의적(字義的, literal, 문자적)) 의미 = 역사적(historical) 의미
ㄴ. 영적(spiritual) 의미
-우의적(allegorical) 의미
-도덕적(moral) 의미 = 전의적(轉義的, tropological) 의미
-천상적(anagogical) 의미

이러한 구분법은 근본적으로 오리게네스의 바리에이션이며 따라서 교부들의 구분을 계승한 것이지만, 토마스는 성경의 모든 의미가 문자적 의미에 기초한다고 보았다. 곧, 성경 텍스트 자체가 독자들에게 의도하는 1차적인 문필적 의미를 이해하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필적 의미를 해석한 후에야, 그냥 문필적 의미에서 머무르던가, 혹은 그 문필적 의미에 기초하여 영적 의미로 나아가든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의 해석법은, 근본적으로는 교부들의 해석법을 계승한 매우 전통적인 해석법이면서도, 성경 해석자의 기초적인 작업은 텍스트 자체의 문필적 의미라는 것에 초점을 찍음으로써, 현대적인 성서주석학을 함축하고 있다.


8.4. 성경을 읽는 순서[편집]


성경을 읽는 획일적인 순서가 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독자가 원하는 순서대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처음으로 성경 통독을 도전하는 사람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순서는 추천할 수 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대강의 이야기 뼈대를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이야기 성격을 갖는 책들을 먼저 읽는 게 좋다.

우선 신약의 경우는 루가 복음서사도행전을 연속으로 읽는다. 이 두 책은 (전통적 견해로든, 현대 성서학의 견해로든) 단일 저자의 2부작이기 때문에 함께 붙여서 읽어야 줄거리와 주제, 문학적 구조가 쉽게 파악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육화부터 로마 제국 전역으로의 교회 확산까지 전체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바울로 서간 중 친서[99]들의 경우는 저작 연대순으로 읽으면 신학이 원숙해져가는 과정을 따라갈 수 있어서 매우 좋다.[100] 친서들의 저작 시점은 데살로니카 전서-필립비서-고린토 전서-고린토 후서-갈라디아서-로마서-필레몬서 순이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신약에서 뼈대는 잡은 것이니, 나머지는 취향껏 순서를 조절하며 읽으면 된다.

구약의 경우도 역사 이야기를 중심으로 뼈대를 잡아야 한다. 우선 모세오경을 하나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모세오경은 비록 여러 문헌들의 합성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인 편집 형태에서는 모세오경 전체가 하나의 책으로 읽히길 의도하고 완성되었다. 하나의 책이 다섯 경전으로 나누어진 건 단지 분량샹의 이유 때문이며, 전통적 견해로든 학술적 견해로든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단일한 책이다. 이 순서로 읽으면, 성조들이 받은 약속 및 가나안을 향한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 모세오경을 다 읽었으면 열왕기 하권까지 연속으로 읽는다.[101] 비록 이외에도 바빌론으로부터의 귀환 등 역사 이야기가 구약에 더 남아있지만, 여기까지 읽었으면 구약 역사의 핵심 뼈대를 튼튼하게 잡은 것이다. 나머지 구약 책들은 취향껏 순서를 섞어 읽으면 된다.

신약과 구약 중 무엇을 먼저 읽을지는 딱히 무엇이 정답이라 할 것은 없지만, 신약을 먼저 읽거나, 혹은 신구약을 병행해가며 읽는 게 더 쉽다.

9. 번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경/번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역사가 오래된 책이고 인기도 많다보니 번역본 수도 많고 번역과 관련된 설왕설래도 무지하게 많다.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

한국어에서는 외래어 표기도 가톨릭, 개신교, 공동번역 성서, 외래어 표기법이 다 달라 문제가 되고 있다.


10.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경/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성경/논란/모순



11. 성경의 책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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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공동번역성경을 따랐다. 우선 한국 가톨릭에서는 변형없이 제목의 앞 두 자를 약자로 쓴다. 상, 하, 첫째, 둘째 등은 앞에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한다. 예를 들면 사무엘기 상권은 '1사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책장에 세 권씩 표시해 놓을 때는 중복되건 말건 첫 번째 글자만, 변형 없이 표기한다. 아래에서 말하는 '학슥말', '딤딛몬', '히약벧'과 같은 경우도 '하즈말', '티티필', '히야베' 등으로 매우 깔끔하게 표시된다(일부 판형은 '창세탈출레위', '티모티토필레'처럼 두 글자씩 된 것도 있다).

한국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각 권 제목의 첫 글자를 사용하지만, 첫 글자가 겹칠 경우 2번째 글자를, 그도 겹칠 경우는 세 번째 글자를 쓰거나, 특정 글자를 뽑은 뒤 그 뒷자의 초성을 받침으로 끌어다가 쓴다. 참고로 성경에는 원하는 경서를 찾기 쉽게 보통 세 권씩 묶은 다음 책장 옆면에 동그랗게 공간을 내어 '창출레', '민신수' 등으로 약자를 표시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뒤로 갈수록 글자가 안드로메다로 가기 때문에 생각없이 표시들을 읽다 보면 '학슥말', '딤딛몬', '히약벧' 등과 같은 외계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약자로만 쓰이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긴 하다.

한국과 달리 영어 성경은 가톨릭, 개신교 가릴 것 없이 상, 하, 첫째, 둘째 등은 앞에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한다. (예: 고린도후서 → 2 Corinthians)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한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독어권의 경우 동일한 고린도전서를 가톨릭에선 1 Kor라고 띄어쓰고 Eins Korinther라고 읽지만, 개신교에선 1Kor라고 붙여쓰고 Erster Korinther라 읽는다.

장과 절을 나누는 기호의 경우 가톨릭과 개신교를 불문하고 유럽 대륙에서는 콤마(,)를, 영어권에서는 콜론(
:
)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대륙 신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 가톨릭은 콤마(,)를 쓰고, 영어권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 개신교에서는 콜론(
:
)을 쓰는 전통이 각각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콜론과 콤마를 바꾸어 써도 서로 다 알아보긴 한다.

물론 이건 신학적 차이라기 보다는 각 공동체 정체성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뭐가 옳다 그르다로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하자.

11.1. 히브리 성경[편집]


히브리 성경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정경이다. 그 외의 구약 책들은 각 교파의 인정 여부에 따라 제2경전 혹은 외경으로 불린다. 원문은 히브리어 및 아람어로 되어있다.

다음 표의 셀 배치는 그리스도교에서 인식하는 히브리 성경 순서 및 그리스도교의 4분 구조(오경, 역사서, 지혜문학, 예언서)를 따랐다. 다만 가장 오른쪽 열의 숫자는 타낙의 순서를 의미하며, 해당 열의 T, N(n), K는 순서대로 토라, 느비임,[102] 케투빔이다. 밑줄은 '축제 두루마리들'(megillōt)을 의미한다.[103]

대분류
가톨릭 성경
공동번역 성서
개신교 개역·새번역 성경
영어 약칭[NRSV]
타낙의 순서 및 분류
모세오경[104]
창세기 (창세)
창세기
창세기 (창)
Gen
T1
탈출기 (탈출)
출애굽기
출애굽기 (출)
Ex
T2
레위기 (레위)
레위기
레위기 (레)
Lev
T3
민수기 (민수)
민수기
민수기 (민)
Num
T4
신명기 (신명)
신명기
신명기 (신)
Deut
T5
역사서
여호수아기 (여호)
여호수아
여호수아 (수)
Josh
N6
판관기 (판관)
판관기
사사기 (삿)
Judg
N7
룻기 (룻)
룻기
룻기 (룻)
Ruth
K30
사무엘기 상권 (1사무)
사무엘 상
사무엘상 (삼상)
1 Sam
N8
사무엘기 하권 (2사무)
사무엘 하
사무엘하 (삼하)
2 Sam
N9
열왕기 상권 (1열왕)
열왕기
열왕기상 (왕상)
1 Kings
N10
열왕기 하권 (2열왕)
열왕기 하
열왕기하 (왕하)
2 Kings
N11
역대기 상권 (1역대)
역대기
역대상 (대상)
1 Chr
K38
역대기 하권 (2역대)
역대기 하
역대하 (대하)
2 Chr
K39
에즈라기 (에즈)
에즈라
에스라 (스[105])
Ezra
K36
느헤미야기 (느헤)
느헤미야
느헤미야 (느)
Neh
K37
에스테르 (에스)
에스델
에스더 (에[106])
Esth
K34
지혜문학[107]
욥기 (욥)
욥기
욥기 (욥)
Job
K28
시편 (시편)
시편
시편 (시)
Ps(s)
K27
잠언 (잠언)
잠언
잠언 (잠)
Prov
K29
코헬렛 (코헬)
전도서
전도서 (전)
Eccl
K32
아가 (아가)
아가
아가 (아)
Song
K31
대예언서
이사야서 (이사)
이사야
이사야 (사)
Isa
n12
예레미야서 (예레)
예레미야
예레미야 (렘)
Jer
n13
애가 (애가)
애가
예레미야애가 (애)
Lam
K33
에제키엘서 (에제)
에제키엘
에스겔 (겔)
Ezek
n14
다니엘서 (다니)
다니엘
다니엘 (단)
Dan
K35
소예언서
호세아서 (호세)
호세아
호세아 (호)
Hos
n15
요엘서 (요엘)
요엘
요엘 (욜)
Joel
n16
아모스서 (아모)
아모스
아모스 (암)
Am
n17
오바드야서 (오바)
오바디야
오바댜 (옵)
Ob
n18
요나서 (요나)
요나
요나 (욘)
Jon
n19
미카서 (미카)
미가
미가 (미)
Mic
n20
나훔서 (나훔)
나훔
나훔 (나)
Nah
n21
하바쿡서 (하바)
하바꾹
하박국 (합)
Hab
n22
스바니야서 (스바)
스바니야
스바냐 (습)
Zeph
n23
하까이서 (하까)
하깨
학개 (학)
Hag
n24
즈카르야서 (즈카)
즈가리야
스가랴 (슥)
Zech
n25
말라키서[108] (말라)
말라기
말라기 (말)
Mal
n26


11.2. 제2경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2경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히브리어 성경 39권 외에 가톨릭이 구약으로 인식하는 경전들을 말한다. 한국어로는 가톨릭 성경공동번역성서에서 읽을 수 있다.

현대 개신교에서는 교파에 따라 입장은 다른데, 아예 교회 공동체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대표적으로 개혁주의 계통 근본주의 교단, 성경침례교 등)이 있는가 하면, 의 말씀으로서 따를 수는 없지만 역사적인 가치나 학문적인 가치는 있다고 보는 입장(대표적으로 성공회[109])도 있다. 이 때문에 성서학이나 신구약 중간사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자 제2경전이 수록된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성경까지 구비해 놓는 개신교 목사들도 있다. 다만 18세기 말까지 모든 전승의 개신교는 제2경전을 (정경으로서는 아니더라도) 성경에 실었다.

프로테스탄 전승은 이 책들을 경전으로 인정하기를 유보한 나머지 결국 어떤 경전적 지위도 부여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신앙에 필요하다기보다는 '유익한' 작품으로 취급됨으로써 그야말로 완전히 거부되었던 것은 아니다(묵시록들은 루터[M. Luther]의 다양한 성경 판에서 늘 자리하고 있다). ('숨기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파생한) '외경'(Apocrypha)이라는 명칭으로 묶여, 이 책들은 성경 판에서 부차적인 자리로 밀려났다. 18세기 말까지 모든 전승의 개신교는 이 책들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에, 또는 성경 끄트머리에 모아 놓았으나, 이후 규모가 큰 성서학회의 영향 아래 외경들은 (Segond,[110]

Osterwald 등과 같은) 개신교 성경 판에서 점차 사라져 갔으며, 오늘날 이 책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50쪽[111]

엄밀히 말하면 1세기 경의 원시 교회 공동체에서 확정된 성경 목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 목록 확정 작업이 이루어지는 4세기 경에 좁은성경 목록과 넓은성경 목록을 지지하는 주장이 맞섰으나 결국 동서방에서 모두 넓은성경 목록이 보편적으로 채택되었다. 서방의 경우 불가타를 번역하던 시절의 히에로니무스가 대표적인 소수파 교부로서 좁은 목록을 지지했으나 이후 히에로니무스 본인부터가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용하면서 태도가 바뀌었고, 동시대의 카르타고 시노드에서 현재의 가톨릭 정경목록이 확정되었다. 다만 중세엔 좁은 목록을 지지한다고 해서 파문된 것은 아니고 가톨릭 내부의 소수파 견해로서 묵인은 되었으나, 종교개혁 때 가톨릭vs개신교의 논쟁이 정경목록과 결부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근현대에는 "넓은목록을 믿어야 가톨릭, 좁은목록을 믿어야 개신교"라는 교단 정체성으로 다뤄지고 있다. 가령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 정경목록을 개신교를 겨냥한 교의로서 다뤘으며,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외경이 정경은 아니지만 유익한 책이다"라는 초기 태도가 점점 강경해졌다. 그래서 초기 개신교 성경들엔 유익하다고 실린 제2경전들이 현대 개신교 성경엔 아예 없다.

아래의 7권은 가톨릭, 정교회에서 인정하는 소위 '제2경전'이다.[112] 이 책들은 유대교카논이 확립되기 전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인 70인역(Septuagint)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이후 유대교 정경으로 확립된 마소라 사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책들이다. 개신교에서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으로 분류한 표면적 이유는 종교개혁 시기 '마소라 사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리스어판만 있고 히브리어 원본이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었지만, 훗날 사해문서를 통해 이들 경전의 히브리어 원본이 발굴되었다.

이들은 원래 그리스어로 쓰인 책들과 히브리어/아람어에서 번역된 책들로 나눌 수 있는데, 유딧기, 지혜서, 마카베오 하권, 에스테르기 칠십인역 추가분, 칠십인역 다니엘서 14장은 전자에 속한다. 반면 마카베오 상권, 집회서, 토빗기, 칠십인역 다니엘서 13장은 후자에 속한다.
대분류
가톨릭 성경
공동번역 성서
영어 약칭[NRSV]
역사서
토빗기(토빗)
토비트
Tob
유딧기(유딧)
유딧
Jdt
에스테르기(에스)[LXX+]
에스델[LXX+]
Esth
마카베오기 상권(1마카)
마카베오상
1 Macc
마카베오기 하권(2마카)[113]
마카베오하
2 Macc
지혜문학
지혜서(지혜)
지혜서
Wis
집회서(집회)
집회서
Sir
예언서
바룩서(바룩)[114]
바룩
Bar
다니엘서(다니)[LXX+]
다니엘[LXX+]
Dan

11.3. 동방교회의 구약성경[편집]


동방의 교회들은 대부분 경전 목록에 대하여 결정을 내린 적이 없기에 엄격하지 않은 목록을 가지고 있다. 가령 정교의 정경 목록이 시리아의 목록과 다를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정교 안에서도 획일적인 정경 목록은 없다.


11.3.1. 정교회 구약성경[편집]


정교회 경전은 칠십인역성경이라는 (에스테르기와 다니엘서를 포함한) 그리스어 역본의 히브리어 경전 책 전체를 포함하며, 여기에 그리스어로 anagignōskomena('인정받은 책', 이 의미에서 유래한 '읽힌 책')로 규정되어 권위가 문제시되지 않는 열 권의 책이 덧붙여진다. 우리는 여기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제2경전, 정교회 경전 구분에 따르면 (유딧기, 토빗기, 마카베오기 상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편지 등) 여덟 권의 책을 더 만나며, 서방교회 경전에 없는 마카베오기 3권(그리스어 에즈라기 상권과 고대 슬라브어 에즈라기 하권이라 불리는) 에즈라기 3권 등 두 권이 포함된다.

다른 책들의 경전성은, 이 문제에 대하여 결정을 내린 적이 없는 정교회 안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들 가운데는 흔히 (이미 다른 곳에서 확인된 다른 오데스[Odes, 송가들]와 함께) 므나쎄의 기도시편 151편이 거론된다. 마카베오기 3권과 에즈라기 3권은 각각 (그리스 정교회에서) 마카베오기 4권(에즈라기 3권이라 부르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에즈라기 4권으로 자주 보충된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8쪽



11.3.2. 시리아 구약성경[편집]


시리아 성경들은 (에스테르기, 욥기, 아가, 에즈라-느헤미야기, 또는 역대기에 있어 몇 가지 난제와 함께) 히브리어 경전 책 대부분을 취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경전도 모두 수용되었으며, 가끔 에즈라기 3-4권, 마카베오기 3-4권, 므나쎄의 기도, 시편 151편도 발견된다. 바룩의 서간 또한 여러 차례 등장하며, 마소라 수사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바룩의 서간을 포함하는) 바룩의 시리아어 묵시록은 가끔 확인되었다가 결국 시리아어 성경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은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했던 시리아 저자들에 의해 수차례 인용되었다. 오데스 역시 전례 수사본 밖으로 밀려났으며, 시리아어 외경 시편들과 지혜서는 시리아 성경에 들어선 적이 없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8-379쪽



11.3.3. 아르메니아 구약성경[편집]


아르메니아 경전 목록은 여러 개가 있으나, 이 목록들은 그리스어로 번역되(거나 그리스어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실질적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이다. 아르메니아 성경과 전례 독서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쉽게 - 칠십인역성경의 통상적인 제2경전 이외에 - 요셉과 아세넷, 요셉의 생애, 열두 성조의 유훈, 예언자들의 생애, (아르메니아어로 에즈라기 3권이라 불리는) 에즈라기 4권, 므나쎄의 기도와 같은 그리스어 또는 시리아어 번역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책들은 아르메니아 구약성경에서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에녹의 환시모세의 죽음과 예언자들의 기타 다수의 '생애' 또는 '죽음'의 경우이다. 이 작품들이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누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9쪽



11.3.4. 에티오피아 구약성경[편집]


에티오피아의 다양한 경전 목록 연구는 2개의 경전을 밝혀냈다. 두 경전 모두 (구·신약) 성경 전체를 합쳐 81권에 이르나, 그 차이와 구성은 다양하다.

현대 에티오피아 성경에 의해 받아들여진 '협의의 경전'은 그리스어 역본으로 - 에스테르기와 다니엘서의 첨가 부분과 시편 151편을 포함하여 - 히브리어 성경책 전체를 담고 있다. 여기에 에녹서, 희년서, 에즈라기 3-4권,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1-4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경전에 빠져있는) 에티오피아어 마카베오기 1-3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나머지'라 불리는 책을 애가와 함께 엮은 예레미야의 역대기 또는 '바룩의 나머지 말씀들'이 덧붙어 있다. 나아가 므나쎄의 기도가 있으나 (2역대 33,12에 이어) 역대기에 통합된 채 별도의 온전한 책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광의의 경전'은 성경책들의 다른 셈법을 제안한다. 에즈라-느헤미야기를 제외하는 대신에, 요셉 벤 고리온 유다인들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 책은 그러나 지금은 에티오피아의 통합 정교회에 의해 사용되지 않는다. 이사야의 승천과 같은 다른 작품들은 협의의 경전에도, 광의의 경전에도 속하지 않는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9-380쪽



11.4. 신약성경[편집]


복음서, 사도행전[115], 서간서(서신서), 예언서(요한묵시록)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의 서간에서 ●로 표시된 것은 주석학적 관점에서 바울로 친서이다.[116]

대분류
가톨릭 성경
공동번역
개신교 개역·새번역 성경
영어 약칭[NRSV]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마태)
마태오의 복음서
마태복음 (마)
Mt
마르코 복음서 (마르)
마르코의 복음서
마가복음 (막)
Mk
루카 복음서 (루카)
루가의 복음서
누가복음 (눅)
Lk
요한 복음서 (요한)
요한의 복음서
요한복음 (요)
Jn
사도행전[117]
사도행전 (사도)
사도행전
사도행전 (행)
Acts
서간[118]
●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로마)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서 (롬)
Rom
●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코린)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고린도전서 (고전)
1 Cor
●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코린)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 고린도후서 (고후)
2 Cor
●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갈라)
●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 갈라디아서 (갈)
Gal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베소서 (엡)
Eph
●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리)
●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 빌립보서 (빌)
Phil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새서 (골)
Col
●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테살)
●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1 Thess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테살)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데살로니가후서 (살후)
2 Thess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티모)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디모데전서 (딤전)
1 Tim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티모)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디모데후서 (딤후)
2 Tim
티토에게 보낸 서간 (티토)
디도에게 보낸 편지
디도서 (딛)
Titus
●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필레)
●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 빌레몬서 (몬)
Philem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히브)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서 (히)
Heb
야고보 서간 (야고)
야고보의 편지
야고보서 (약)
Jas
베드로의 첫째 서간 (1베드)
베드로의 첫째 편지
베드로전서 (벧전)
1 Pet
베드로의 둘째 서간 (2베드)
베드로의 둘째 편지
베드로후서 (벧후)
2 Pet
요한의 첫째 서간 (1요한)
요한의 첫째 편지
요한일서 (요일)
1 Jn
요한의 둘째 서간 (2요한)
요한의 둘째 편지
요한이서 (요이)
2 Jn
요한의 셋째 서간 (3요한)
요한의 셋째 편지
요한삼서 (요삼)
3 Jn
유다 서간 (유다)
유다의 편지
유다서 (유)
Jude
요한묵시록
요한묵시록 (묵시)
요한의 묵시록
요한계시록 (계)
Rev

가톨릭 성경 / 공동번역 성서 / 개신교 성경은 각각 성경의 제목을 붙이는 데에 규칙이 있다. 가톨릭 성경과 공동번역 성서는 '~에게'나 '~의' 등과 같은 조사를 쓰는 반면에, 개신교 성경에서는 조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짧고 간결하게 제목을 붙인다. 천주교 성경에서는 복음서와 단 한편으로만 이루어진 서간은 '~의'를 빼고, 베드로 서간과 요한 서간같이 두 편 이상인 서간에서는 '~의'를 사용하는 반면에, 공동번역 성서는 모든 복음서와 서간에 '~의'를 사용하고 있다. 천주교 성경에서는 특정 지역의 교회로 보낸 바울로의 서간들은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라 하고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 하는 반면에,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모두 '~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통일하였다.

공동번역 성서의 각각의 제목들 가운데 천주교 성경 명칭과 개신교 성경 명칭을 섞은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다.[119]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신약의 책들의 배열은 가톨릭과 개신교 간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오늘날에도 성경 판본들은 그 사용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준다. 눈 밝은 사람은 목차만 보고도, 그 독자가 어떤 교파에 속해 있는지 또는 어디에 귀속감을 느끼는지 알아챈다. ...... 신약성경에서도 서간들의 순서가 판본에 따라 상당히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다. 한 가톨릭 성경 판본에서는 야고보서가 '가톨릭 서간들'을 이끈다. 반면 한 루터 성경은 야고보서를 서간 전체의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가톨릭 서간들'이라는 분류는 기피한다. 가톨릭 성경 판본에서는 바오로 서간집을 종결짓는 히브리서 역시, 루터 성경 판본에서는 뒤로 밀려나 야고보서 앞에 자리잡고 있다. 취리히 성경은 가톨릭 성경 판본의 순서와 일치하지만, 히브리서는 바오로 서간집에서 집어내어 '나머지 서간들' 맨 앞에 놓았다(1955년 판본: 그러나 2007년 판본은 전혀 세분하지 않았다).

||<tablewidth=100%><width=34%> 독일어 공동번역 성경 ||<width=33%> 루터 성경 ||<width=33%> 취리히 성경(1955) ||

||<^|1>···

바오로 서간들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가톨릭 서간들
야고보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1>···
서간들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1>···
바오로 서간들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나머지 서간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

이 상이한 순서는 신학적 결단에 기인한다: 루터에게 야고보서는 '짚북데기 편지'였다. (바오로 서간들과는 달리) 믿음에 비해 행업을 너무 강조하기(야고 2,14) 때문이다. 히브리서 역시, 이른바 두 번째 회개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히브 6,4-8) 것만으로도, 루터에게 호감을 얻지 못했다. (믿는 이의 죄의 용서는 오직 은총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루터 신학의 한 핵심이었다.)

-Martin Ebner/Stefan Schreiber (Hrsg.), 『신약성경 개론』,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13, 13-15쪽[120]


가령 독일어 성경 번역들을 보면 공동번역에서는[121] 서간을 바울로 서간과 가톨릭 서간으로 구분하고, 바울로 서간의 맨 마지막에 히브리서가 온다. 반면 루터 성경에서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의 순서를 뒤로 옮겼으며 취리히 성경(1955)에서는 책의 배열 순서는 전통을 따르되 히브리서를 바울로 서간에서 제외했다. 이는 신학적인 이유보다는 각자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122] 물론 각 번역이 반드시 위에서 설명한 카테고리 3개 중 하나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막기 위해선 어느정도는 이 배열법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11.5. 외경 및 위경[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외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위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정경에서 제외된 문헌이다. 특히 가톨릭이나 정교회제2경전 부분을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 표현한다. 후대의 창작물의 경우 위경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개신교에서 외경으로 통칭하는 경우도 있으며, 가톨릭에서는 보통 이러한 문서를 외경으로 표현하므로 외경이라는 말이 주로 쓰이고 있다.

나무위키에서는 구분을 위하여 일반적인 내용은 외경 문서로, 거의 대부분의 주류 종파에서 인정하지 않는 경전은 위경 문서로 분리하여 서술한다.

한편 신약의 경우는 기독교의 거의 모든 종파에서 27권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 27권에 들어가지 않는 책은 모두 위경 또는 외경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위경으로 토마스 복음서유다 복음서가 있다. 4세기 이전의 초기 기독교에서는 클레멘트 1서·2서, 헤르마스의 목자, 디다케[123], 바르나바 서간, 베드로 묵시록, 야고보 원복음, 코린토 3서, 테클라행전 등을 정경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었으나, 27권의 신약 정경 목록이 확정되면서 이들은 외경으로 빠졌다.


12. 등장인물(등장순)[편집]




12.1. 오경[편집]




12.2. 역사서[편집]




12.3. 지혜문학[편집]




12.4. 예언서[편집]




12.5. 복음서사도행전[편집]




12.6. 서간 및 묵시록[편집]




13. 에피소드[편집]




14. 지명[편집]



15. 학문[편집]




16. 성경 디자인 선택 요령[편집]


  • 판본을 고려하는 경우: 성경은 다양한 크기의 판본으로 출판되고 있는데, 용도에 따라 적절한 판본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포켓, 특소형(A6 이하, 국반판 이하) - 휴대하기에 매우 좋다. 그러나 글자가 너무 작아서 책상에 앉아 통독하기에는 무리이며, 빠뜨리거나 잃어버리기도 쉽다. 주로 학교 주변이나 군부대 등을 상대로 배포하는 성경의 사이즈가 이렇다.
    • 소형(B6 계열, 46판) - 포켓·특소형과 중형 사이의 중간 포지션. 예배용이나 휴대용으로 중형이 무겁다 싶으면 이쪽이 좋지만, 진지한 통독용이 주된 용도라면 중형을 고려하는 게 낫다.
    • 중형(A5 계열, 국판) - 다용도로 쓰이기에 적당한 크기. 통독용으로도 괜찮고, 예배용으로도 괜찮고, 휴대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수준.
    • 대형(B5 이상 크기, 46배판~국배판) - 책상 위에서 진지하게 통독할 용도라면 분위기도 나고 글자도 비교적 커서 특히 시력이 나쁜 사람이 보기에 편하다. 그러나 휴대용이나 예배용으로 쓰기에는 크고 무겁다.
  • 제본 유형을 고려하는 경우
    • 하드 커버 - 가죽 커버 장정에 비해 값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휴대용으로는 좋지 않으며, 탁상용, 장서용으로 적합하다. 만약 자신의 성향이 집 밖에선 그냥 스마트폰으로 성경 보는 스타일이라면(=즉 종이 성경을 집 안에서만 읽는다면) 하드 커버가 가장 실용적이다. 무선제본(glued binding)된 것도 있고 실제본(sewn binding)된 것도 있다. 국외에서는 하드 커버에 가죽을 씌운 성경(독서대에 놓고 쓰는 전례용 대형 성경)을 볼 수 있는데, 2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된다. 휴대성을 포기한다면 실제본 된 하드커버가 가장 가성비가 좋다.
    • 비닐 커버 - 보급형 성경책에 흔히 사용된다.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지만, 표지가 쉽게 너덜너덜해지는 단점이 있다. 비닐커버는 자주 쓰다보면 접질려지는 부위에 금이 가면서 결국은 뜯겨나간다.자주 읽어볼 것이라면 양장본이나 가죽(인조가죽·천연가죽·재생가죽)커버를 쓴 성경책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 가죽 커버 - 천연가죽이냐 인조가죽이냐에 따라 가격 및 내구도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천연가죽이면 사실상 성경에 투자할 수 있는 최고액이며 그만큼 내구성도 가죽갑옷급이지만, 인조가죽이면 그냥 소모품이라 생각해야 한다. 오픈형과 지퍼형이 있는데, 한국 개신교 성경책은 오픈형보다 지퍼형이 더 일반적이다. 가죽 중에서도 천연가죽을 쓴 것이 가장 비싸고 그 가치를 가장 높게 쳐주지만, 오늘날 나오는 가죽커버의 성경의 대부분은 천연가죽이 아닌 인조가죽(PU)이다. 1990년대까지 나온 가죽커버 성경들은 인조가죽이 아닌 돼지가죽이나 소가죽을 쓴 것이 많았지만, 제작비용을 낮추기 위해 점차 인조가죽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단 가죽커버을 쓰는 영미판 성경책 중에 bonded leather라는 설명이 있는 책은 인조가죽이 아닌 재생가죽을 쓴 책이다. 참고로 인조가죽도, 재생가죽도 아닌, 진짜 천연가죽커버를 쓴 책은 정말 비싸다.그중에서도 염소 가죽커버(goat skin leather)를 쓴 성경책이 가장 비싸, 그 가격이 최소 10만 원대다.[128] 영미권의 영어성경책을 기준으로, 비교적 하급인 돼지가죽이나 소내피가죽을 쓴 것도 최소 5만 원. 한국에서는 일부 성경 수집가가 아닌 이상 가죽의 품질과 종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이 때문에, 한국어 성경책은 인조가죽커버를 쓴 것들이 지배) 서양에서는 성경 커버 덕후들이 적지 않아 일부 출판사에서는 고급 천연가죽 커버를 사용한 성경을 내놓기도 한다. 천연표피가죽은 너무 거칠게 다루거왔거나 관리를 엉망으로 하지 않는 이상 원형을 상당히 오래 유지하며[129], 천연내피가죽은 사용을 반복하다보면 겉면 코팅이 벗겨지는 수준이고[130], 재생가죽과 인조가죽은 사용을 반복하다보면 가죽과 코팅이 점점 떨어져나간다. 인조가죽의 경우 아예 가죽이 가루로 떨어져나간다! 최근에는 개신교, 천주교 막론하고 국내 성경출판업계에서는 천연가죽커버 사용을 장기적으로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인조가죽커버 내구성에 관한 클레임 때문인 듯. 2020년대인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는 천연가죽커버를 쓰는 경우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 천연가죽 커버 - 가장 품질(내구성)이 좋고, 가장 비싸다. 재생가죽, 인조가죽과 다르게 칼로 일부러 찢거나 관리를 엉망으로 하거나 그러지 않는 이상 가죽 커버자체가 갈라지거나 부스러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염소가죽을 제일로 쳐준다. 품질은 염소가죽 > 소가죽 > 돼지가죽[124] 순이다. 그리고 표피가죽(skin 또는 top-grain)은 내피가죽(split)보다도 더 고급이다. 외피가죽은 흔히 goatskin, calfskin으로 불리는 가죽이 이쪽이며 천연가죽 재질의 지갑처럼 견고하고 질기다. 내죽(split)가죽은 벨트에 쓰이는 가죽과 비슷하며 표피가죽보다는 내구성이 떨어진다. 물론 내피가죽이라도 재생가죽, 인조가죽에 비해 내구성은 훨 낫다. 양가죽 커버는 흠집이 잘 난다는 단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고, 외국에서도 그리 고급으로 쳐주지는 않는다. 아무런 설명(goatskin, calfskin, calf-split, cowhide 등) 없이 단지 'genuine leather'로 홍보하는 성경책은 십중팔구 하급의 돼지내피가죽(pig split)을 썼다고 보면 된다. 고급 천연가죽 커버를 사용하는 출판사로 케임브리지대 출판부, Allan 등으로 알려져 있다.[125]
      • 재생가죽 커버 - 인조가죽에 비해 천연가죽 느낌에 가깝지만 내구성은 천연가죽에 비하면 떨어진다. 천연가죽 조각과 합성수지를 섞어 접착제로 가공하여 만든다. 가죽계의 MDF라 할 수 있는 가죽. 재생가죽이라도 천연가죽 성분 포함율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가죽 섬유 이외의 잡다한 것을 집어넣은 비율이 클수록 품질이 떨어진다. 다만, '내구성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마라'는 일반적인 평가 답게, 저렴하게 마구 쓸 용도가 아닌, 오래 두고두고 쓸 용도라면 천연가죽 커버를 쓴 것을 선택하는 것이 훨 낫다. 가격은 인조가죽 커버를 쓴 성경책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미권에는 재생가죽 커버를 쓴 성경책이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성경책이 거의 없다.
      • 인조가죽 커버 - 요즘 나오는 가죽 커버 성경책 중 특별히 천연가죽이나 재생가죽를 썼다고 명기하지 않는 이상 거의 이쪽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에 나온 가죽커버 성경은 거의 이쪽이다.[126]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것이 일반적이지만, 영미권의 일부 초염가판 성경책처럼 종이와 합성수지를 섞어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 TruTone, Duo-Tone과 같은 이탈리아제 인조가죽은 매우 부드럽고 탄력성과 신축성이 매우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흠집이 잘 나며, 무더위 때 방치하면 합성수지 성분이 녹아서 다른 물건에 달라붙는 경우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내구성 측면에서는 아무리 좋은 인조가죽도 천연가죽 보다 한 등급 아래로 쳐준다. 인조가죽은 천연가죽처럼 오래 갈 것 같지만, 몇 년을 쓰다보면 반드시 인조가죽이 가루처럼 떨어져나간다.[127] 따라서 인조가죽을 쓴 성경책은 곱게 오래 모시라는 용도로 쓰기 보다는 그냥 싼값에 쓰는 것으로 쳐주자. 이렇게 인조가죽의 내구성이 안 좋다보니, 인조가죽 커버가 너덜너덜해진 성경을 리폼해주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가죽 공방에서는 단순한 표지갈이, 예술제본 공방에서는 무선제본된 책을 분해하여 수작업으로 다시 제본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지만, 비싼 가격을 들여 맡길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 천(fabric/canvas) 커버 - 가죽 커버만큼이나 견고하고 오래 간다. 하드 커버에 천을 씌울 수도 있고, 소프트 커버로 제작할 수도 있다. 주로 청바지와 동일한 재질의 천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페이퍼백(paperback) - 국내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지만 유럽, 미주 등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성경을 자주 참고해야 하는 신학생, 목회자 및 신자들이 서브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가죽커버를 사용한 성경과 다르게 보조용으로 마구 쓰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는 것. 페이퍼백 성경책 중 대부분은 떡제본(glued binding)이라 견고하지 못하다.
  • 종이: 일반적으로 고급 박엽지가 사용된다. 성경책에 쓰인 종이의 품질은 변색이 잘 안 되는 등 다른 책에 비해 좋은 편이지만, 박엽지의 높은 단가는 커버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주요 원인이다. 다만 영미권의 페이퍼백 성경책의 경우 일반 단행본 페이퍼백과 다를바 없다.
  • 찬송가 합본 여부: 찬송가 합본판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따로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어 예배용으로 많이 사용된다.[131]
  • 색인: 옆면에 반달 색인이 있을 경우 성경 구절을 좀 더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 주석, 해설 여부: 한편 개역 성경 중에는 관주[132]가 붙어 있는 것도 있으며, 톰슨 주석성경처럼 주해, 해설이 덧붙여진 성경이나 일러스트, 도판 등이 첨부된 성경도 있다.
  • 외국어 병기: 국한문 혼용, 영한, 일한, 중한, 불한 성경 등이 판매되고 있다.
  • 세로쓰기/가로쓰기: 개역한글판 성경은 70년대까지는 거의 세로쓰기로 출판되었으나 80년대부터 가로쓰기로 편집된 개역한글판 성경이 나오면서 빠르게 소멸되어 갔고 90년대에 이르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세로쓰기로 된 개역한글판 성경은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헌책방에 가면 세로쓰기로 된 개역한글판 성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색상: 개신교 성경의 경우 과거에는 비닐, 가죽, 하드커버 불문하고 검은색 표지가 압도적이었으나, 지금은 표지 색상이 다채로워지면서 오히려 검은색 표지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책 태두리를 빨간색 물감으로 도색하거나 마블링한 것, 금박, 은박을 입힌 것 등이 있다.
  • 오픈식/지퍼식: 일반 책 형태로 된 오픈식과 지퍼가 달려 열고 닫을 수 있는 지퍼식이 있다. 대체로 지퍼식이 더 비싸다. 지퍼식은 휴대하기가 편해서 근래의 개신교 예배용 성경들은 오픈식보다 지퍼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반면 집에 주고 통독하기에는 오픈형이 편하며, 대형 사이즈처럼 휴대성을 포기하고 아예 통독에만 올인한 경우에는 지퍼가 의미가 없다.
  • 기타 편집 방식에 따라: 특수한 의도 하에 편집된 성경들도 시중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디오북, 낱권 성경, 시대 순으로 성경 텍스트를 재배치한 통독 성경이다.
  • 한편 인쇄 매체가 아닌 오디오나 전자책 형태로 나오는 성경도 있다.
    • 오디오 성경: 카세트 테이프나 오디오 CD, MP3로 나온 성경으로 낭독 방식이나 녹음 속도에 따라 몇 가지로 구별된다.
      • 평면 낭독: 성경 텍스트를 그대로 낭독한 것.
      • 입체 낭독: 성경 텍스트에 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낭독한 것으로 대화체의 경우 남성 화자의 경우 남성 성우가, 여성 화자의 경우 여성 성우가 분담하며 배경 음악이나 효과음 등을 삽입하기도 한다.
      • 정속 낭독: 일반적인 낭독 속도로 녹음된 것.
      • 고속 낭독: 고배속으로 녹음된 것으로 보다 짧은 시간에 집중하여 들을 때 효과적이다.
    • 전자 성경: PMP, MP4, 스마트폰을 통해 열람할 수 있도록 E-Book 형태로 나온 성경.

번역본 선택 요령은 성경/번역 문서 참고.


17. 참고: 성경 속의 화폐 단위와 도량형[편집]


화폐 단위(구약)

||단위 ||정도 || 우리 화폐(원)[133]

||

||게라 ||1/10 베카 || 2천||

||베카 ||10게라, 1/2세켈 || 2만||

||세켈[134]

(하루 품삯) ||2베카, 20게라 || 4만||

||미나 ||50세켈, 100베카 || 100만||

||탈렌트 ||60미나, 3000세켈 || 1억 2천만||

||금 1세켈 ||은의 16배 || 64만||

||금 1미나 || || 3,200만||

||금 1탈렌트 || || 19억2천만원||

(신약)

||유다 화폐 ||그리스 화폐 || 로마 화폐||

|| ||1렙톤[135]

[136] || ||

|| ||2렙톤 || 1콰드란스||

|| || || 4콰드란스=1아스||

|| ||1드라크마 || 16아스=1데나리온[137]

||

|| ||2드라크마=1디드라크마 || 2데나리온||

||1세켈 ||1스타테르 || 4데나리온||

|| ||25드라크마 || 1아우레우스||

||30세켈 ||1미나 || 100데나리온||

||<-3> *1탈렌트=60미나, 6천데나리온=240아우레우스||

무게 단위

||단위 ||정도 || 미터법(g)||

||게라 ||1/20세켈 || 0.6||

||베카 ||10게라, 1/2세켈 || 5||

||핌 ||1.5베카, 3/4세켈 || 7||

||세켈 ||2베카, 1.5핌 || 11.5||

||미나 ||75핌, 50세켈 || 685||

||탈렌트 ||60미나, 3000세켈 || 41.1Kg||

길이 단위

||단위 ||정도 || 미터법(cm)||

||손마디 ||1/12[138]

|| 2||

||엄지-검지사이 ||4손마디, 1/3테파 || 7.5||

||테파 ||12마디, 3엄지-검지 || 22.5||

||손목-팔꿈치사이 ||3.75엄지-검지, 1.25테파 || 30||

||암마/페키스 ||6·7엄지-검지, 2뼘 || 46||

||두 팔 ||4암마, 8테파 || 2m||

||스타디온 || || 185m||

부피(고체) 단위

||단위 ||정도 || 미터법(l)||

||록 ||1/4캅 || 0.5||

||캅 ||4록 || 2.2||

||오메르 ||7록, 1.8캅 || 4||

||스아 ||3.33오메르 || 13||

||에파 ||1/10호메르, 3스아 || 40||

||레텍 ||15스아, 5에파 || 200||

||호메르 ||10에파, 2레텍 || 400||

부피(액체) 단위

||단위 ||정도 || 미터법(l)||

||록 ||1/12힌 || 0.5||

||캅 ||4록, 1/3힌 || 2.2||

||힌 ||12록, 3캅 || 6.5||

||스아 ||6캅, 2힌 || 13||

||밧 ||3스아, 6힌 || 40||

||호메르 ||10밧, 60힌 || 400||

-정태현 《성서 입문 상권》 개정판 73쪽



18. 참고: 성경 속의 달력[편집]


||순번식 ||우리식 ||가나안식 ||바빌론식 ||히브리식 || 농사||

||첫째 달 || 3월||아빕 ||니사누 ||니산 || 보리, 아마 수확
햇곡식 축일||

||둘째 달 || 4월||지우||아야루 ||이야르 || ||

||셋째 달 || 5월|| ||시바누 ||시완 || 이른 무화과 수확||

||넷째 달 || 6월|| ||두우주 ||탐무즈 || 포도 수확||

||다섯째 달 || 7월|| ||아부 ||압 || 올리브 수확||

||여섯째 달 || 8월|| ||울룰루 ||엘룰 || 대추야자, 여름 무화과 수확||

||일곱째 달 || 9월||에타님 ||테쉬리루 ||티쉬리 || ||

||여덟째 달 || 10월||불 ||아라삼누 ||마르헤쉬반 || 밭갈기, 겨울 무화과 수확||

||아홉째 달 || 11월|| || 키슬리무||키슬레우 || 씨뿌리기||

||열째 달 || 12월|| ||테비투 ||테벳 || ||

||열한째 달 || 1월|| ||샤바투 ||스밧, 세바트 || 아몬드 꽃 핌||

||열두째 달|| 2월|| ||아다루 ||아다르 || 감귤류 과일 수확||

||윤달 || || || ||베아 || ||

-정태현 《성서 입문 상권》 개정판 78쪽



19. 연표[편집]


출처는 한결이 지은 '만화 성경'에서 발췌. 창세기 족장 시대를 기원전 2000년대에서 기원전 1800년대로 서술했는데 고고학적으로는 기원전 1700년대(기원전 18세기)가 족장 시대의 배경으로 추측하고 있다. 마소라 본문(AD 9세기)을 참고한 것으로 추정. 출애굽기는 전기설을 따랐다.

구약

  • B.C.?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함 (창 1:1-225) 대홍수 사건이 일어남 (창 6:1-929) 바벨 사건이 일어남 (창 11:1-9)[139]
  • 2091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얻은 소유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감 (창 12:5-6)
  • 2066 사라가 브엘세바에서 이삭을 낳음 (창 212-31)[140]
  • 2006 리브가가 야곱에서 낳음 (창 25:26)
  • 1915 라헬이 요셉을 낳음 (창 30:23)
  • 1885 요셉이 애굽(이집트)의 총리대신으로 발탁 (창41:41)[141]
  • 1876 이스라엘이[142]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남(창 46:1-7)
  • 1805 요셉이 110세에 죽음 (창50:26)
  • 1527 모세가 애굽 땅에서 태어남 (출 2:1-10)
  • 1487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도피함 (출 2:16-25)
  • 1447 하나님께서 애굽에 10대 재앙을 내림 (출 7:14-12:36)
  • 144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옴 (출 12:37-42)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체결함 (출 19:3-24:11)
  • 1446-1406 모세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을 기록[143]
  • 1445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건축함 (출 35:4-40:38) 모세가 레위기 율법을 전함 (레 1:1-7:38)
  • 1406 미리암이 신 광야 가데스에서 죽음 (민 20:1),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음 (민 20:28-29)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됨 (민 27:12-23) 모세가 120세의 나이에 모압 땅에서 죽음 (신 34:1-12) 요단 동편 땅 점령 및 분할 (신 2:24-3:28)
  • 1405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함 (수 1:1-12:24)
  • 1400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함 (수 13:1-21:45)
  • 1390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어 딤낫세라에 장사됨 (수 24:29-30)
  • 1374 옷니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를 받음 (삿 3:9-11)
  • 1316 왼손잡이 용사인 에훗이 두 번째 사사로 부름 받음 (삿 3:15-30)
  • 1216 선지자이며 사사인 드보라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노래를 지어 부름 (삿 5:1-31)
  • 1169 기드온이 다섯 번째 사사로 미디안 족속을 격퇴한 후 40년간 통치 (삿 8:22-28)[144]
  • 1103 한나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사무엘을 낳음 (삼상 1:20)[145]
  • 1075 삼손이 사사로 20년간 지냄 (삿 15:20)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여 회개함 (삼상 7:36)
  • 1050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음 (삼상 9:1~10:13)
  • 1040 다윗이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남
  • 1025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음 (삼상 16:1-13)
  • 1020 다윗이 물매와 돌로 거인 골리앗을 죽임 (삼상 17:1-54)
  • 1017 사무엘이 죽음 (삼상 25:1)
  • 1010 사울이 죽음(삼상 31:1-13) 다윗이 유다 왕이 됨 (삼하 2:1-44)
  • 1003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예루살렘 성을 정복 (삼하 5:6-10)
  • 991 다윗이 밧세바를 취함 (삼하 11:1-27)
  • 990 밧세바가 솔로몬을 낳음 (삼하 12:24-25)
  • 979 압살롬이 반역을 꾀함 (삼하 15:7-12)
  • 970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됨 (왕상 1:32-49) 다윗이 사십 년을 통치한 후 죽음 (왕상 2:1-10)
  • 959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 완성됨 (왕상 6:37-38)
  • 946 솔로몬이 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완성함 (왕상 7:1)
  • 938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킴 (11:26-40)
  • 930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됨 (왕상 11:41-43)
  • 874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을 통치함 (왕상 16:29)
  • 848 엘리사가 이적을 행하여 요단 강을 건념 왕하 2:14)
  • 835 요아스가 유다의 제9대 왕으로 등극(왕하 11:12)
  • 798 엘리사가 죽은 뒤에도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이적을 행함 (왕하 13:20-21)
  • 793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요나가 활동함 (왕하 14:29)
  • 746 하나님의 명령으로 호세아가 음란한 고멜과 결혼함 (호1:3)
  • 740 하나님께서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말씀을 선포함 (미 1:1)
  • 739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계시를 받음 (사 1:1)
  • 728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유다 제13대 왕으로 등극 (왕하 16:20)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함 (왕하 18:40)
  • 722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 (왕하 17:6 18:10 12
  • 697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12세에 유다 제14대 왕으로 등극 20
  • 640 엘고스 사람 나훔이 니느웨에 대해 예언함
  • 630 하나님께서 구시의 아들 스바냐에게 말씀을 선포함
  • 627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 (렘 1:4-5)
  • 622 요시야가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함 (대하 34:7-13) 요시야가 종교를 개혁함 (왕하 23:3).
  • 612 앗수르가 멸망함 (습 2:13-15)
  • 609 유다 왕 요시야의 넷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23세에 왕으로 등극 (왕하 23:30-31)
  • 608 애굽 왕 느고가 요시아의 둘째 아들 엘리아김을 유다 왕으로 세움 (왕하 23:34)
  • 593 에스겔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는 중에 예언을 선포함 (갤 1:1-2)
  • 58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2차에 걸친 공격에 남왕국 유다가 멸망함 (단 1:1-6).
  • 580 다니엘의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 불에서 살아 나오는 이적을 보임 (단 3:1-30)
  • 562 느부갓네살이 회개하고 죽음 (단 4:34-37)
  • 550 다니엘이 네 짐승의 환상을 기록함 (단 7:1-28)
  • 539 메대 사람 다리오가 62세에 바벨론의 왕으로 등극 (단 5:30, 31)[146]
  • 538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길에 오름 (스 1:1-4),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 나옴 (단 6:16-24)
  • 537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1차 귀환함 (스 2:1-67)
  • 536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시작함 (스 3:8-13)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중단함 (스 4:4)
  • 516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봉헌식을 행함 ( 6:15-18)
  • 483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베품 (에 1:3-8)[147]
  • 479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왕후로 간택함 (에 2:16-17)
  • 474 하만이 유대인들을 전멸하려고 음모를 꾸밈에 3:1-15)
  • 458 에스라가 유다 사람 일행과 예루살렘으로 귀환함 (스 7:1-10)
  • 445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요청을 허락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함 (느 2:1-18)
  • 432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종교개혁함 (느 13:6-31).

신약

  • BC 37 헤롯이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유대 왕으로 즉위
  • 5 세례 요한이 태어남 (눅 1:57-80),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림 (눅 2:1-2)
  • 4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남 (눅2:4-7)
  • AD 8 예수님께서 12살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 (눅 2:41-52)
  • 26 본디오 빌라도가 제5대 로마 총독이 됨.
  • 27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함 (마 3:1).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집에서 첫 이적을 행함 (요 2:1-11)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됨 (마 3:13)
  • 28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름 (마 10:1-4)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파송함 (눅 9:1-6) 세례 요한이 죽음 (마 14:1-12)
  • 29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오천 명을 먹임 (요 6.1~13),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함 (막 8:27-30)
  • 3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힘 (마 27:35-38),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12제자에게 사명을 줌 (마 28:1-20),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함 (막 11:1-11),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행함 (막 14:17-25),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구원함 (눅 19:1-10), 스데반이 순교함 (행 7:54-60)
  • 37 바울이 1차 예루살렘을 방문함 (행 9:26-30)
  • 47-49 바울이 바나바, 마가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떠남 (행 13:1-14:28)
  • 49 예루살렘 종교 회의가 열림 (행 15:1-35), 예루살렘 종교 회의에 바울이 디도와 더불어 참석함 (갈 2:1-3)
  • 49-52 바울이 실라와 함께 2차 전도 여행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에베소)을 떠남 (행 15:36-18:22)
  • 53-57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에베소, 마게도냐, 고린도)을 떠남 (행 18:24-21:16)
  • 58 바울이 붙잡혀 가이사랴로 호송됨 (행 21:27-24:27)
  • 61-63 바울이 로마에서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침 (행28:16-31)
  • 62 바울이 로마에서 연금되어 있을 때 빌레몬서를 기록함.
  • 63-65 바울이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디모데전서를 기록함.
  • 64 베드로가 실루아노(실래)의 도움을 받아 베드로전서를 기록함.
  • 66 바울이 디도서를 기록함 (딛 1:1)
  • 66-67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기록함 (딤후 1:1), 베드로가 로마에서 베드로후서를 기록함 (벧후 1:1)
  • 67 바울이 순교함.
  • 68 베드로가 순교함.
  • 70 예루살렘이 멸망함.
  • 81-96 로마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함, 사도 요한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 등을 기록함,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됨 (계 1:9).
  • 100 사도 요한이 죽음.

20. 기타[편집]


  • 성경에 수록된 책들 중 가장 긴 책은 시편이며[148][149], 가장 짧은 책은 요한 2서다.[150] 또한 가장 긴 장은 시편 119편이며[151], 가장 짧은 장은 시편 117편이다.[152] 한편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절은 사사기 6장 13절이며[153], 가장 짧은 절은 테살로니카 1서/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이다.[154]


  •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보급판 성경의 옆면은 빨간색으로 처리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환경규제 강화, 생산단가 절감 문제 등으로 지금은 성경의 옆면은 빨간색으로 처리되어 있지 않다.[155]

  • 국제기드온연합회에서 학교, 병원, 군부대(특히 훈련소), 교도소, 호텔 등 숙박시설에 무료로 성경을 배포해 주기도 한다. 국내에는 신약전서에 시편, 잠언이 부록으로 추가된 휴대용 크기(B7 크기)의 파란색 비닐표지 성경이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그밖에 국문과 영문이 병행된 신약성경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156]

  • 성경은 같은 언어라 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거듭 번역되었기에 언어, 특히 문자로 기록된 언어의 발달, 변천 과정을 연구할 때 중요하고도 유용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킹 제임스 성경을 보면 17-18세기 영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개역한글판 성경을 보면 20세기 전반의 한국어의 모습을 대강 알 수 있다. 그래서 전세계 언어학자들이 (주로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각 나라이나 민족들의 언어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내는 핵심 참고 서적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며, 현재는 쓰이지 않더라도 과거에 쓰인 사어의 어휘나 문장에 대해 알아볼때 성경이 핵심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 천주교 신자가 제2경전이 포함된 일부 개신교 영어 성경을 구입할 경우, 반드시 With Deuterocanonicals (apocrypha), 또는 Catholic edition 문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만, With Deuterocanonicals 문구가 있는 성경은 우리나라의 공동번역성서 초판처럼 제2경전 문서들이 따로 모아서 배열되는 식으로 되어 있기에, 가톨릭 성경처럼 제2경전이 배열된 것을 원한다면 Catholic edition 문구가 있는 성경책으로 고르자. 사실 Catholic edition 문구가 붙은 개신교 성경 대부분은 가톨릭 교회의 인준을 받았다는 의미로 imprimatur를 받았다.

  • 신학대학이나 신학대학원 등에 입학할 사람들, 특히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사람들이라면 학부든 대학원이든, 신입학이든 편입학이든 성경 시험은 거의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특히 총신대학교 같은 보수적인 색채의 학교 같은 경우는 지망하는 과가 신학과가 아니어도 성경 시험이 필수이니 유념할 것.


  • 나무위키에서는 성경의 각 서의 호칭을 공동번역의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 현재 세계 성경의 최대 산지는 놀랍게도 기독교에 대하여 비우호적인 중국이라고 한다. 전세계 성경의 25% 물량을 책임진다고 하며 이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이 아무리 심해도 성경만큼은 절대 관세인상 품목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 조선 역대왕 이름을 외울 때 태정태세문단세하는것처럼 한국의 개신교인들 중에서 성서목록을 외우기 위한 한글자 줄임말[157] 늘어놓기도 있다. 구약은 '창출레민신수삿룻삼상삼하왕상왕하대상대하스느에욥시잠전아사렘애겔단호욜암옵욘미나합습학슥말' 신약은 '마막눅요행롬고전고후갈엡빌골살전살후딤전딤후딛몬히약벧전벧후요일요이요삼유계' 심지어 목록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도 있다.



  • 당연히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쪽도 스노비즘이 심해 확실히 알려면 나름대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 반신론자 혹은 일부 무신론자[158]들로부터 소설책 드립을 듣는다. 더 나아가 세계 1위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놀림받기도 한다. 이런 묘사는 반종교인 사이에서 흔한 비판 방식으로, 유명한 반신론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에서 성경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유대인 신화[159]라고 표현했다. 물론 성경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신화(미신)으로 본다는 의미다. 사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성경을 사실로 봐야할 의무는 없으며 종교가 없거나 불가지론자인 이들에게는 유대계의 역사와 신화를 담은 경전 정도로 보는것이 주류 시각이다.

  • 2022년 11월 14일 Steam에서 디지털 성경 The Bible이 출시되었다.


20.1. 성경 없음 구절[편집]


'절없음'에 관한 대한성서공회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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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신약 성경 속에 (없음)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왜 이런 부분이 있나요?
답변
이전까지의 성서본문은 장절 구분이 없었지만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 1506~1559)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4판부터는 지금 우리의 성경과 같이 장절을 구분하여 인쇄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말 위에서 장절구분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오늘날 신약성서에서 절 구분이 어색한 부분들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절없음’ 현상이 생겨서 후대에 추가된 문장이라 삭제되었음을 의미하는 ‘절없음’ 문장과 함께 ‘어떤 사본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라는 각주가 있게 되었습니다.
- 사도행전 15장 30~35절
- 사도행전 8장 34~38절
‘절없음’ 부분은 번역자들이 실수하여 빠뜨린 것이 아니라, 앞뒤 문맥과 내용을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하여 후세에 편의로 첨부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본문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원본문과 같이 삽입한 내용을 빼고 ‘절없음’으로 남겼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1절을 찾아보면, 본문이 있어야 할 곳에 본문은 없고, 그 대신에, 괄호가 쳐 있고 그 괄호 안에 "21절 없음"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난외주 1번을 보라는 지시가 있습니다. 그 지시를 따라서 난외주 1번을 보면, "어떤 사본에, 21절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 사본이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 따다가 첨가한 것입니다.
18장 11절도, 본문이 없고 난외주에 "어떤 사본에는, 11절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사본이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가져다가 여기에 첨가시킨 것입니다.
"-절 없음"이라고 된 부분은 고대 사본에 없는 본문입니다. 3세기 전후의 파피루스 사본이나, 4-5세기의 대문자 사본에는 없는 본문들입니다. 11세기 전후의 소문자 사본에만 나오는 본문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을 가지고 절을 구분하고 거기에 고유 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고대 사본에 없는 구절의 경우는, 절만 빼고, 절 번호는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은 확대된 사본입니다. 확대된 내용은 다른 어느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관련 구절에서 온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있는 난외주에서 거기에 첨가되어 있던 본문을 보면 결코 생소한 본문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은 1551년 인쇄업자 스테파누스가 자신의 그리스어 성경 4판을 찍으면서 처음 도입하였다. 장과 절은 성령님께서 정해주신 것이 아니라 스테파누스가 자신의 성경을 다른 인쇄업자의 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워낙 편리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퍼졌고 현재까지도 스테파누스의 장과 절 구분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스테파누스 성경은 에라스무스가 편찬한 원어 성경 인쇄본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에라스무스 성경 계통을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이라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고, 에라스무스가 편찬한 성경은 최초의 원어 성경 인쇄본이었다. 종교개혁 시기 에라스무스 계통의 원어 성경이 신교 쪽 거의 모든 번역 성경의 대본이 되었다. 영어 비숍 성경, 영어 킹 제임스 성경, 독일어 루터 성경 등이 그 예이다.[160]

에라스무스는 늦은 시기의 그리스어 사본을 대본으로 사용했다. 현재 신학자들은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 11세기 사본이 대부분이다. 이 그리스어 사본에는 천 년의 시간 동안 필사하며 필사자들이 첨가한 이문(異文)이 들어 있었다. 본문비평학 학자들은 성경 사본을 연구하여 성경을 원본에 가깝게 재구성한다. 성경 원본에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그 부분을 삭제한다. 이러다보면 스테파누스 성경 기준에서 절 전체가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 운동장에 줄 서있는 학생들처럼 절을 하나씩 앞으로 다 당길 수는 없으므로 이런 부분은 절 번호를 남겨두고 내용에 '없음'이라고 쓴다. 현재 없음이 13곳에 나온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 마르코의 복음서 16장 9절 이후 내용, 마태오의 복음서 6장 13절[161]처럼 후대에 첨가된 것이 확실하지만 교회 역사에서 너무 중요해서 뺄 수 없는 부분은 대괄호 두 개로 묶어 둔다. 일부 고대 사본들에 없고, 본문비평학자들의 연구 결과 성경 원본에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을 때는 대괄호 한 개로 묶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성경 원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성경에는 있었지만 현재 성경에서 삭제된 이문들을 살펴보면 필사자들이 이문을 넣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 사도행전 15장 34절의 '없음' 구절은 스테파누스 성경에서 『실라는 거기에 머무르기로 작정하였다.』이다. 33절에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나온다. 그런데 40절에 실라가 바오로와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실라는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했는데 안 가고 안티오키아에 있었던 것이다. 필사자는 이 부분을 필사하다가 '왜 말이 안맞지?'라는 고민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는 구절을 첨가했다.

  • 사도행전 8장 37절의 '없음' 구절은 『필립보가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자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이다.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는 장면에 필사자는 문답을 추가했다. 초기 크리스트교부터 세례 받을 때 문답을 하였다. 그런데 성경에 세례 받는 장면은 나오지만, 문답하는 장면이 안나온다. 필사자가 필사를 하다가 성경에 세례 문답을 하는 근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는 이 장면에 문답을 추가했을 것이다. 성경 원본에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냥 뺄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당시 교회 신자들은 세례 문답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 마태복음 17장 21절 '없음' 구절은 『그러나 이런 종류의 마귀는 기도와 단식을 하지 않고서는 쫓아낼 수 없다.』이다. 마가복음의 고대 사본 중 일부는 9장 29절이 『기도와 단식을 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라고 되어있다.[162] 필사하는 과정에서 마가복음의 이 구절이 마태복음으로 들어갔다.

  • 마태복음 18장 11절의 '없음' 구절은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이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의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구절이 필사하는 과정에서 마태복음으로 들어갔다.

  • '없음'은 아니지만 중세에는 매우 중요한 구문이었다가 현재 성경에서 빠진 예로 요한의 콤마 구문이 있다. 성경이 삼위일체론을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다보니 필사자가 필사를 하다가 삼위일체를 정확히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이문을 넣은 것이다. 브루스 메츠거 교수는 이 구절이 이전 사본에는 없다가 6세기 이후 만들어진 라틴어 사본에 점점 더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약 6세기 경에 성경을 라틴어로 읽던 필사자가 이 구절을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현재 대괄호로 묶어둔 구절의 예로 마태복음 21장 44절이 있다.[163] 이 구문은 본문비평학자들 사이에서 마태복음 원본에 없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원본에 있었는데 후대 일부 사본에서 빠진 것이다 의견이 팽팽하다.

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43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44 (그리고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 밑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45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46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1장 (공동번역)
문장이 어색한 위치에 들어가 있다. 문맥이 맞으려면 이 문장은 42절 뒤에 나와서 머릿돌-그 돌로 이어져야 한다. 더하여 누가복음 20장 18절에 같은 구문이 나온다.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신 성경 말씀은 무슨 뜻이냐?
18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누구나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19 율법학자들과 대사제들은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알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무서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누가복음 20장 (공동번역)

일부 고대 사본에 없고, 어색한 위치에 있고, 누가복음에 똑같은 문장이 있는 상황이다. 우리도 지금 볼펜으로 성경 필사를 하다가 문장을 하나 빼먹으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 힘드니까 옆의 여백에 빠뜨린 문장을 쓰는 경우가 있다. 옛날 성경 필사를 하던 사람들도 같은 행동을 했다. 그러면 다음 필사자는 그 내용을 본문에 넣어서 다시 깔끔하게 필사한다. 마태복음 21장 44절은 마태복음 필사본을 읽던 사람이 누가복음의 문장이 떠올라서 옆에 메모해 두었는데, 다음에 필사하던 사람이 빠뜨린 구절을 옆에 적어놓은 줄 알고 본문 속으로 집어넣었을 확률이 높다. 만약 초기에 필사되었고, 이문이 거의 없어 신뢰할 수 있으며, 21장 44절이 없는 마태복음 필사본이 발견되면 이 구절을 삭제할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현재까지 발견된 신뢰할 수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거의 다 들어있다는 의미이다.

  • 인터넷에서 성경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이단인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사람들이 성경에 이문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1611년 출판한 킹 제임스 성경을 기준으로 이후 삭제된 구절을 다 복구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는 글 끝에 자신들만 보는 킹 제임스 성경 한글 번역본의 한 구절을 적어 놓는다. 요한계시록 22장 19절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안타깝게도 이단들이 애지중지하는 이 구절마저도 이문이 있다. 생명책은 생명의 나무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이다. 공동번역 성서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버리실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1. 주요 문헌[편집]



21.1. 성경[편집]


원문 성경:
  • 《슈투트가르트 히브리어 구약성서》. 대한성서공회, 2016.
  • 《네스틀레 알란트 그리스어 신약성서》. 대한성서공회, 2016.

자료 비교:
  • Richard Elliott Friedman: The Bible with Sources Revealed. HarperCollins, 2009, 4판.
  • Robert W. Funk: The Five Gospels: What Did Jesus Really Say?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Words of Jesus. HarperCollins, 1997, 4판.

21.2. 입문 및 개론[편집]


성경 입문:
  • Bart D. Ehrman: The Bible: A Historical and Literary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2판.
  • 더글라스 스튜어트 및 고든 D. 피: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선교회, 2016 (trans. 길성남).
  • 진규선: 《두근두근 성경공부》. 수와진, 2021.

성서주석학 개론:
  • Judith M. Lieu 및 J. W. Rogerson (ed.): The Oxford Handbook of Biblical Studies.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3판.
  • 스티븐 매킨지 및 스티븐 헤인즈 (ed.):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한국기독교연구소, 2022 (trans. 유연희 등).
  • 스티븐 L. 매킨지 및 존 캘트너 (ed.): 《최근의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고대 본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다》. 한국기독교연구소, 2023 (trans. 유연희 등).
  • 로버트 H. 스타인: 《성경해석학》. 기독교문서선교회, 2011 (trans. 배성진).
  • 모세 실바: 《교회는 성경을 오석해 왔는가》. 솔로몬, 2001 (trans. 심상법).
  • D. 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trans. 박대영).

성서신학 개론:
  • Steven L. McKenzie: How to Read the Bible: History, Prophecy, Literature--Why Modern Readers Need to Know the Difference and What It Means for Faith Today.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 스티븐 M. 개릿 및 제임스 메릭 (ed.): 《성경 무오성 논쟁》. 새물결플러스, 2016 (trans. 방정열).
  • 김근주: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성서유니온선교회, 2017.
  • 루돌프 불트만: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한국로고스연구원, 2023 (trans. 이동영).
  • 더글라스 스튜어트 및 고든 D. 피: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선교회, 2016 (trans, 박대영 및 오광만).
  • 바트 어만: 《예수 왜곡의 역사》. 청림출판, 2010 (trans. 강주헌).
  • 앤서니 티슬턴: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 새물결플러스, 2012 (trans. 김동규).
  • 피터 엔즈: 《성경 영감설(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trans. 김구원).

성서고고학 개론:
  • William G. Dever: Beyond the Texts: An Archaeological Portrait of Ancient Israel and Judah. SBL Press, 2017.
  • Amihai Mazar: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10,000-586 B.C.E.. Anchor Bible, 1990.
  • 윌리엄 G, 데버: 《이스라엘의 기원》. 삼인, 2020.

구약비평 및 신학 개론:
  • Jan Christian Gertz: Grundinformation Altes Testament. UTB, 2006, 4판.
  • J. Maxwell Miller: The Old Testament and the Historian. Fortress Press, 1976.
  • 김영진 등: 《구약성서개론》. 대한기독교서회, 2005.
  • 게르하르트 폰 라트: 《구약성서 신학 1》, 《2》, 및 《3》. 분도출판사, 1990–2000 (trans. 허혁).
  • 크리스토프 레빈: 《구약성서 해석학》. 동연, 2009 (trans. 원진희).
  • 토마스 뢰머 등: 《구약신학 연구동향》.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trans. 민경구).
  • 토마스 뢰머 등: 《구약성경 입문 1》 및 《2》 (2판).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trans. 김건태).
  • 마틴 뢰젤: 《구약성경 입문》 (2015, 9판).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trans. 김정훈).
  • 토드 리나펠트 및 월터 브루그만: 《구약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trans. 김은호 및 홍국평).
  • 데이비드 W. 베이커 및 빌 T. 아놀드 (ed.): 《현대 구약성서 연구》. 새물결플러스, 2019 (trans. 강소라).
  • 엘리스 R. 브로츠만: 《구약 본문 비평의 이론과 실제》.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trans. 이창배).
  • 한스크리스토프 슈미트: 《구약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대한기독교서회, 2014 (trans. 김정훈 및 차준희).
  • 발터 아이히로트: 《구약성서신학 1》 및 《2》. 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4 (trans. 박문재).
  • 버나드 W. 앤더슨: 《구약성서 이해》. 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4 (trans. 강성열 및 노항규).
  • 에리히 쳉어 등: 《구약성경 개론》 (2004, 5판). 분도출판사, 2012 (trans. 이종한).
  • 발터 침멀리: 《구약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76 (trans. 김정준).
  • 존 J. 콜린스: 《히브리성서 개론》. (trans. 유연희).
  • 제임스 L. 쿠걸: 《구약성경 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11 (trans. 김구원).
  • 지크프리트 크로이처 등: 《구약성경 주석 방법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11 (trans. 김정훈).
  • 게오르크 포오러: 《구약성서개론(상)》 및 《(하)》. 성광문화사, 1991 (trans. 방석종).

중간기 개론:
  • Michael Avi-Yonah: The Holy Land: A Historical Geography from the Persian to the Arab Conquest. 1972.
  • John R. Bartlett: Jews in the Hellenistic and Roman Cities. Routledge, 2002.
  • G. W. Bowersock: Roman Arabi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4.
  • 에두아르트 로제: 《신약성서 배경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90 (trans. 박창건).

신약비평 및 신학 개론:
  • Udo Schnell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UTB, 2016.
  • 니제이 K. 굽타: 《신약학 강의노트》. 감은사, 2020 (trans. 이영욱).
  • 요아힘 그닐카: 《신약성경신학》. 분도출판사, 2014 (trans. 이종한).
  • 해롤드 그린리: 《신약 본문 비평의 이론과 실제》. 기독교문서선교회, 2012 (trans. 고영렬 및 장민석).
  • 김경희 등: 《신약성서개론》. 대한기독교서회, 2002.
  • 더글라스 나이트 및 진 M. 터커: 《히브리 성서와 현대의 해석자들》. 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6 (trans. 박문재).
  • 제임스 D. G. 던: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솔로몬, 1991 (trans. 김득중 및 이광훈).
  • 데이비드 A. 드실바: 《신약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trans. 김경식 등).
  • 에두아르트 로제: 《신약성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한국신학연구소, 1998 (trans. 박두환 등).
  • 마틴 마이저: 《신약성경 주석 방법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trans. 김병모).
  • 데일 마틴: 《신약 읽기: 역사와 문헌》. 문학동네, 2019 (trans. 권루시안).
  • 스캇 맥나이트 및 그랜트 R. 오스본 (ed.): 《현대 신약성서 연구》. 새물결플러스, 2018 (trans. 송일).
  • 루돌프 불트만: 《신약성서신학》. 성광문화사, 1997 (trans. 허혁).
  • 우도 슈넬레: 《우도 슈넬레의 신약정경개론》 (2012, 8판). 대한기독교서회, 2023 (trans. 김문경, 문병구, 및 임진수).
  • 슈테판 슈라이버 및 마르틴 에브너: 《신약성경 개론》. 분도출판사, 2013 (trans. 이종한).
  • 요아킴 예레미아스: 《예레미아스 신약신학》.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9 (trans. 정충하).
  • 한스 콘첼만: 《신약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국신학연구소, 2000 (trans. 박두환).
  • W. G. 큄멜: 《신약정경개론》. 대한기독교서회, 1999 (trans. 박익수).
  • 하워드 클락 키이: 《신약성서 이해》. 한국신학연구소, 1990 (trans. 서중석).
  • 게르트 타이센: 《그리스도인 교양을 위한 신약성서》. 다산글방, 2005 (trans. 노태성).
  • G. F. 하젤: 《현대 신약신학의 동향》. 대한기독교서회, 2003.


21.3. 심화 연구[편집]


본문의 역사 및 사본학:
  • James Barr: Holy Scripture: Canon, Authority, Criticism. Oxford University Press, 1983.
  • Timothy H. Lim: The Formation of the Jewish Canon. Yale University Press, 2013.
  • Bruce M. Metzger 및 Bart D. Ehrman: 《신약의 본문》. 한국성서학연구소, 2009 (trans. 라병원 등).
  • Brent Nongbri: God's Library: The Archaeology of the Earliest Christian Manuscripts. Yale University Press, 2018.
  • Michael Satlow: How the Bible Became Holy. Yale University Press, 2015.
  • Konrad Schmid 및 Jens Schröter: Die Entstehung der Bibel: Von den ersten Texten zu den heiligen Schriften. C. H. Beck, 2020.
  • 김구원: 《70인역 성경으로의 초대》.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 브루스 M. 메쯔거: 《사본학》.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trans. 강유중 및 장국원).
  • 바트 어만: 《성경 왜곡의 역사》. 청림출판, 2006 (trans. 민경식).
  • 천사무엘: 《사해사본과 쿰란공동체》. 대한기독교서회, 2004.

종교사적 연구:
  • Jan Asmann: Das kulturelle Gedächtnis: Schrift, Erinnerung und politische Identität in frühen Hochkulturen. C. H. Beck, 2005.
  • John Day: God's Conflict with the Dragon and the Sea: Echoes of a Canaanite Myth in the Old Testament.
  • Dag Øistein Endsjø: Greek Resurrection Beliefs and the Success of Christianity. Palgrave Macmillan, 2009.
  • Irving Finkel: The Ark Before Noah: Decoding the Story of the Flood. 2014.
  • M. David Litwa: How the Gospels Became History: Jesus and Mediterranean Myths. Yale University Press, 2019.
  • 얀 아스만: 《이집트인 모세》. 그린비, 2010 (trans. 변학수).
  • 에드윈 M. 야마우찌: 《페르시아와 성경》.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trans. 박응규).
  • 조재형: 《그리스-로마 종교와 신약성서》. 감은사, 2021.
  • 주원준: 《구약성경과 신들》. 한님성서연구소, 2018.
  • 마르틴 헹엘: 《유대교와 헬레니즘 1》, 《2》, 및 《3》. 나남, 2012 (trans. 박정수).

사회-문화적 연구:
  • Ronald E. Clements (ed.): The World of Ancient Israel: Sociological, Anthropological and Political Perspectiv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 Burton L. Mack: The Rise and Fall of the Christian Myth: Restoring Our Democratic Ideals. Yale University Press, 2017.
  • 더글라스 A. 나이트 (ed): 《고대 이스라엘 문화》.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trans. 임미영).
  • 브루스 J. 말리나: 《신약의 세계》. 솔로몬, 2001 (trans. 심상법).
  • 요아킴 예레미아스: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1992.

이스라엘 또는 유대교의 역사:
  • John J. Bimson: Redating the Exodus and Conquest. University of Sheffield, 1978.
  • Diana Vikander Edelman (ed.): The Fabric of History: Text, Artifact and Israel's Past. Sheffield Academic Press, 1991.
  • Israel Finkelstein: The Archaeology of the Israelite Settlement. Israel Exploration Society, 1988.
  • Philippe Guillaume 및 Axel Knauf: A History of Biblical Israel: The Fate of the Tribes and Kingdoms from Merenptah to Bar Kochba. Equinox Publishing, 2016.
  • John H. Hayes 및 J. Maxwell Miller (ed.): Israelite and Judean History.
  • John W. Rogerson: Atlas of the Bible. Facts on File, 1985.
  • Emil Schürer: Geschichte des jüdischen Volkes im Zeitalter Jesu Christi.
  • John Van Seters: In Search of History: Historiography in the Ancient World and the Origins of Biblical History. Yale University Press, 1983.
  • J. 맥스웰 밀러 및 존 H. 헤이스: 《고대 이스라엘 역사》.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3 (trans. 박문재).
  • 율리우스 벨하우젠: 《이스라엘-유대 종교》.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허셜 생크스 (ed.): 《고대 이스라엘》. 한국신학연구소, 2005 (trans. 김유기).
  •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까치, 2002 (trans. 오성환).
  • 키스 W. 휘틀럼: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이산, 2003 (trans. 김문호).

오경 연구:
  • Joel S. Baden: The Composition of the Pentateuch: Renewing the Documentary Hypothesis. Yale University Press, 2012.
  • 헤르만 궁켈: 《창세기 설화》. 감은사, 2020 (trans. 진규선).

지혜문학 연구:
  • 천사무엘: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동연출판사, 2009.

역사적 예수 연구:
  • Richard Carrier: On the Historicity of Jesus: Why We Might Have Reason for Doubt. Sheffield Phoenix Press, 2014.
  •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분도출판사, 2002 (trans. 정한교).
  • 김기흥: 《역사적 예수》. 창비, 2016.
  • 조나단 리드 및 존 도미닉 크로산: 《예수의 역사》. 한국기독교연구소, 2010 (trans. 김기철).
  • 아네테 메르츠 및 게르트 타이쎈: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2010 (trans. 손성현).
  • 마커스 보그: 《예수 새로 보기》. 한국신학연구소, 1997 (trans. 김기석).
  • 윌리엄 브레데: 《윌리엄 브레데의 메시야의 비밀》. 한들출판사, 2018 (trans. 최태관).
  • E. P. 샌더스: 《예수와 유대교》.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8 (trans. 황종구).
  • Ibid. 《예수운동과 하나님나라》. 한국신학연구소, 2003 (trans. 이정희).
  • 에밀 쉬러: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 수와진, 2022 (trans. 진규선).
  •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2009 (trans. 김병학).
  • 알베르트 슈바이처: 《예수의 생애 연구사》. 대한기독교서회, 1995 (trans. 허혁).
  • 루톨프 오토: 《예수》.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진규선: 《마리아의 아들》. 수와진, 2023.
  • 마르틴 캘러: 《역사학의 예수와 성서의 역사적 그리스도》. 수와진, 2022 (trans. 진규선).
  • 존 도미닉 크로산: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trans. 김준우).
  • 로버트 펑크: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trans. 김준우).
  • 로버트 M. 프라이스: 《복음서의 탄생》. 예린출판, 2022 (trans. 이해청).
  • 리처드 호슬리: 《예수와 제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trans. 김준우).

복음서 연구:
  • Bart D. Ehrman: Jesus Before the Gospels: How the Earliest Christians Remembered, Changed, and Invented Their Stories of the Savior. HarperCollins, 2016.
  • Mark Goodacre: The Case Against Q: Studies in Markan Priority and the Synoptic Problem.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2.
  • Dennis McDonald: The Homeric Epics and the Gospel of Mark. Yale University Press, 2000.
  • 버튼 맥: 《잃어버린 복음서》.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trans. 김덕순).
  • 루돌프 불트만: 《공관복음서 전승사》. 대한기독교서회, 2000 (trans. 허혁).
  • Ibid. 《요한복음서 연구》. 성광문화사, 1990 (trans. 허혁).
  • E. P. 샌더스: 《공관복음서 연구》. 대한기독교서회, 1999 (trans. 이광훈).
  • 존 도미닉 크로산: 《비유의 위력》. 한국기독교연구소, 2012 (trans. 김준우).

바울로 및 바울로 서신 연구:
  • E. P. Sanders: Paul: The Apostle's Life, Letters, and Thought. Fortress Press, 2015.
  • Udo Schnelle: Paulus: Leben Und Denken. De Gruyter, 2014.
  • William O. Walker Jr.: Some Surprises from the Apostle Paul. Polebridge Press, 2017.
  • 제임스 D. G. 던: 《바울신학》.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9 (trans. 박문재).
  • Ibid. 《바울에 관한 새 관점》. 감은사, 2018 (trans. 김선용).
  • 존 M. G. 바클레이: 《바울과 선물》. 새물결플러스, 2019 (trans. 송일).
  • E. P. 샌더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알맹e, 2018 (trans. 박규태).

초기 기독교 연구:
  • James Tabor: Paul and Jesus: How the Apostle Transformed Christianity. Simon & Schuster, 2013.
  • Geza Vermes: Christian Beginnings. 2013.
  • 빌헬름 부세트: 《퀴리오스 크리스토스(상)》.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루돌프 불트만: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1993 (trans. 허혁).
  • 바트 어만: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갈라파고스, 2015 (trans. 오강남).
  • 래리 허타도: 《주 예수 그리스도》. 새물결플러스, 2010 (trans. 박규태).

내세 및 부활 교리 연구:
  • Gerd Lüdemann: The Resurrection of Christ. Prometheus.
  • Tryggve N. D. Mettinger, The Riddle of Resurrection: "Dying and Rising Gods" in the Ancient Near East. Eisenbrauns, 2013.
  • Markus Vinzent: Christ's Resurrection in Early Christianity. Routledge, 2011.
  • 요한네스 바이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바트 어만: 《두렵고 황홀한 역사》. 갈라파고스, 2020 (trans. 허형은).

영지주의 및 외경 연구:
  • 바트 어만: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이제, 2008 (trans. 박철현).
  • 크레이그 A. 에반스: 《고대문헌개론》. 솔로몬, 2018 (trans. 김주한 및 박정훈).
  •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동연출판사, 2020.

탈구조주의 비평:
  • 제임스 K. A. 스미스: 《해석의 타락》. 대장간, 2015 (trans. 임형권).
  • 케빈 밴후저: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IVP, 2008 (trans. 김재영).

페미니즘 비평:
  • Carol Meyers: Discovering Eve: Ancient Israelite Women in Context.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탈식민주의 비평:
  • R. S. 수기르타라자: 《탈식민주의 성서비평》. 분도출판사, 2019 (trans. 양권석 및 이해청).

퀴어 비평:
  • 야마구찌 사토꼬: 《동성애와 성경의 진실》. 무지개신학연구소, 2018 (trans. 양희매).


21.4. 고대 문헌 및 자료[편집]


  • https://www.deadseascrolls.org.il
  • https://www.earlychristianwritings.com
  • https://www.earlyjewishwritings.com
  • F. 마르티네즈 및 E. 티그셸라아르 (ed.): 《사해문서 1》, 《2》, 《3》, 및 《4》. 나남, 2008 (trans. 강성열).
  •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1》 및 《2》. 나남, 2008 (trans. 박정수 및 박찬웅).
  • 이정순 (ed.): 《나그함마디 문서》. 동연, 2022 (trans. 이규호).
  • 제임스 B. 프리처드 (ed.): 《고대 근동 문학 선집》 (1969, 3판).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trans. 강승일 등).
  • 필론: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작품집 1》. 아카넷, 2022 (trans. 문유일).


21.5. 사전[편집]


  • Horst Balz 등: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ThRE). De Gruyter, 1993–2006.
  • Bob Becking 등: Dictionary of Deities and Demons in the Bible (DDD). Brill, 1999, 2판.
  • Hans Dieter Betz 등: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 (RGG). Mohr Siebeck.
  • Charles Augustus Briggs 등: Brown–Driver–Briggs (BDB).
  • Gerhard Kittel: Theologisches Wörterbuch zum Neuen Testament (ThWNT; 영어: TDNT). W. Kohlhammer.
  • Stanley E. Porter: Dictionary of Biblical Criticism and Interpretation. Routledge, 2006.
  • 발터 바우어: 《바우어 헬라어 사전》. 생명의말씀사, 2017 (trans. 이정의).
  • 아서 G. 팻지아 및 앤서니 J. 페트로타: 《성서학 용어 사전》. IVP, 2021 (trans. 맹호성 및 하늘샘).


21.6. 주석[편집]


  • A Postcoloni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Writings
  •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series
  • Evangelisch-Katholischer Kommentar (EKK)
  • Hermeneia Commentary series
  • IVP 성경비평주석 (영어: Eerdmans Commentary on the Bible)
  • NICNT 시리즈 (영어: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 NICOT 시리즈 (영어: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 NIGTC 시리즈 (영어: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series)
  • WBC 시리즈 (영어: World Biblical Commentary series)
  • 국제비평주석 시리즈 (영어: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series; ICC)
  • 국제성서주석
  • 사크라 파지나 성경 연구 시리즈 (영어: Sacra Pagina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 아빙돈 성경주석 (영어: The Abingdon BIble commentary)
  • 알맹e 크리티가 성경주석 시리즈
  • 앵커바이블 주석 시리즈 (영어: Anchor Yale Bible Commentary series; AncBC)
  • 어빙던 주석 (영어: Abingdon Commentaries)
  •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영어: The Women’s Bible Commentary)
  • 《제롬 성경 주해》(영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JBC, 1968)
    • 《새 제롬 성경 주해》(영어: The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 1990)
    •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영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2022)
  • 퀴어 성서 주석 (영어: The Queer Bible Commentary)


21.7. 문헌 개론[편집]


  • John F. Evans: A Guide for Biblical Commentaries & Reference Works. 2010.
  • 데이비드 R. 바우어: 《성경 연구를 위한 손안의 서재》. 새물결플러스, 2014 (trans. 왕희광 및 황의무).

22. 외부 링크[편집]


  • 웹사이트로도 성경 본문이 제공된다. 대한성서공회[164] 한국천주교주교회의[165] 홀리넷[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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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두가이, 사마리아의 관점[2] 히브리 성경이라고도 한다.[3] 개신교에 의하면 타낙과 같고, 가톨릭에 의하면 타낙 및 제2경전. 정교는 복잡하므로 11.3 '동방교회의 구약성경' 참조.[4] 성경 중 모세오경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구약성서 후반부 예언서들과 겹치는 부분은 적은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이사야같은 선지자들이 매우 중요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게 쿠란에는 아주 간략하게만 등장한다. 따라서 이슬람 학자들도 성경의 단편적인 번역이나마 자주 참조해야만 했다.[5] 이에 대해 왜 하필 그리스도교 경전만 성스럽다고 특별취급하냐며 영어 '바이블'로 대체하자는 말도 있지만, 이건 언어의 사회성에 무지한 태클이다. 가톨릭 신자가 '대승불교'라는 말을 쓴다고 대승불교가 상좌부불교보다 낫다고 인정하는 건 아니며, 개신교 신자가 '정교회'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자신들을 '틀린 교회'로 보는 게 아니고, 한국인이 옆 나라를 '일본'이라 부른다고 해서 그 나라가 태양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6] 불교의 경전을 불경이라고 하듯 과거 기독교의 명칭이 성교(聖敎)였기 때문에 여기에 기인해 성경이라고 부르게 된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것이라고 한다.[7] 의 가죽으로 만들면 양피지.[8] 이게 제일 대표적인데, 요한(John), 마태오(Matthew), 바오로(Paul), 야곱(Jacob), 시몬(Simon), 베드로(Peter) 등등. 여담이지만 영어 표기를 독일어 발음법으로 읽어보면 실제 이름에 근접하는 소리가 난다.[9] 그렇기 때문에 딱히 그리스도교랑은 관련없어 보이는 작품들도 의외로 몇 가지 기독교적인 소재(또는 오마주)들로 채워진 경우가 많다.[10] 다만 '악마의 이름은 루시퍼'라는 식으로 성경 본문 자체에서는 기인하지 않는 것도 있다.[11] 다만 이슬람교에선 예수도 25명의 예언자들 중 한명으로 보기 때문에 그 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당 부분 참고.[12] 예외적으로 스페인어권의 헤수스가 있다.[13] 지금이야 이슬람교 문화권에 속하지만, 고대 북아프리카는 메이저 초대 교회들이 터를 잡고 있던 곳이었다. 중아프리카도 이보다는 덜하지만 그리스도교 문화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참고.[14] 이 쪽은 아예 팔만대장경, 반야심경을 제외하면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15] 물론 중국에서는 소홍서라는 특이 케이스가 있지만, 이것도 이젠 옛말이다. 오리지널 판본이라 할 수 있는 공산당 제작본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는 성경의 기록을 깨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을정도로 많이 찍어대서 헌책방이나 인터넷 서점 등에서 구하기는 매우 쉽기는 하다. 이렇게 된것은 중국내에서도 마오쩌둥이 비판적으로 재평가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을 정부차원에서 부정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실책이라고 비판받으며,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엇갈린다.[16] 심지어는 성경 각 책의 주제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마서야고보서의 관계가 이러한데, 신중하게 학습하면 둘을 모순 없이 이해할 순 있지만 일단 겉으로 보이는 주제는 어느정도의 긴장 관계를 이룬다.[17] 역사서, 운문, 소설, 서간.[18] 부주의하게 다루면 논란거리가 발생할 수 있는데다가, 사실 그리스 신화만 하더라도 고전기 아테네 시절에는 "시인들이 신들을 소재로 불경한 이야기를 쓴다"고 비판 받았다. 올림포스 종교가 소멸하고, 옛 그리스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믿었을 이야기에 시인들의 이야기들도 이것 저것 섞여 '그리스 신화'라는 이름으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시인들의 이야기를 올림포스 종교 그 자체와 동일시하지는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9] 성경의 내용은 어느 신이 어느 신을 사랑했는데 어느 신이 질투했다는 식의 이야기나, "제우스가 형제들과 연합하여 크로노스를 이기고 왕이 되었다" 류의 이야기보다는, 고대 근동 법전이나 종교적인 역사 체험담, 신탁 등에 가깝다.[20] 대체적으로 개역개정판을 쓰고 있지만, 일부 교파나 교회에서는 개역한글판 혹은 새번역, 혹은 공동번역을 쓰는 경우가 있다.[21] 전문 다운로드[22] 정교회의 경우는 동일한 정교회 내부에서도 구약의 범위 및 권위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23] 나머지 정경들과 '완전하게' 동일한 권위를 지닌다고 본다.# [24] 카르타고 공의회는 세계공의회가 아니라 지역공의회이지만, 여기서 나온 정경 목록을 교회는 쭈욱 인용하였다. (신약의 정경이 정해진 것도 바로 카르타고 공의회다.) 이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기존의 목록을 그대로 '세계공의회의 자격으로' 재확인하였다. 참고로 공의회 전 불가타에서 에스드라 3, 4 등이 들어있어 그 책들이 정경이었다고 오인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책들은 정경으로서 불가타에 들어있는 게 아니라 '참고용'으로 실려있던 것들이다. 물론 교리적으로는 그 책들이 정경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최초로 정경 목록을 정했다고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잘못된 이해 탓이다.[25] 에스드라 3권과 4권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에스드라 상권과 하권이다. 왜냐하면 불가타에 실려있던 에스드라 1~4권 중에서 1권과 2권은 정경으로 인정되고(이 두 책은 오늘날 각각 에즈라와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에스드라 3권과 4권은 정경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노바 불가타 성경에는 LIBER ESDRÆ가 실려있는데, 이건 에즈라서이다. 사실 에즈라와 에스드라는 둘 다 같은 뜻인데 그냥 히브리어냐 라틴어냐의 차이뿐이다. 하지만 보통 에스드라라고 부르면 서방교회가 모두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 두권을 몰한다.[26] 하지만 천주교의 정경이 70인역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마카베오기 제3서, 제4서 등이 대표적인 예. 이들은 70인역에는 포함되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으로 규정되지 않았고, 당연히 천주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27] 히에로니무스, 아타나시오[28] 불가타 성경의 번역으로 가톨릭에 큰 영향을 끼친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어 성서의 권위를 그리스어 성서보다 더 인정했다는 점을 근거로 드는 경우도 있다.[29] 이외에도 초대 교회에서 이미 추려서 '정경'이라는 것을 대체적으로 정해놓고 썼다는 등 여러 가지 신학적 견해가 있다.[30] 토빗기, 집회서, 바룩서의 6장 '예레미아의 편지'[31] (번역자 주석) Jesu Nave라는 이름은 카르타고 목록에 쓰이고 있다. 눈(Nun)의 아들 요수에(Josue/여호수아)를 가리킨다.[32] Totus autem canon scripturarum in quo istam considerationem versandam dicimus, his libris continetur. Quinque Moyseos, id est Genesi, Exodo, Levitico, Numeris, Deuteronomio, et uno libro Iesu Nave, uno Judicum, uno libello qui appellatur Ruth, qui magis ad regnorum principia videtur pertinere. Deinde quatuor Regum et duobus Paralipomenon, non consequentibus, sed quasi a latere adjunctis simulque pergentibus. Hæc est historia quæ sibimet annexa tempora continet, atque ordinem rerum. Sunt aliæ tanquam ex diverso ordine, quæ neque huic ordini, neque inter se connectuntur, sicut est Job et Tobias et Hester et Judith et Maccabæorum 345libri duo, et Esdræ duo, qui magis subsequi videntur ordinatam illam historiam, usque ad Regnorum vel Paralipomenon terminatam. Deinde Prophetæ, in quibus David unus liber Psalmorum et Salomonis tres, Proverbiorum, Cantica canticorum, et Ecclesiastes. Nam illi duo libri, unus qui Sapientia, et alius qui Ecclesiasticus inscribitur, de quadam similitudine Salomonis esse dicuntur. Nam Jesus filius Sirach eos scripsisse constantissime perhibetur. Qui tamen quoniam in authoritatem recipi meruerunt, inter Propheticos numerandi sunt. Reliqui sunt eorum libri qui proprie Prophetæ appellati sunt, duodecim Prophetarum libri singuli; qui connexi sibimet, quoniam nunquam sejuncti sunt pro uno habentur. Quorum prophetarum nomina sunt hæc, Osee, Joel, Amos, Abdias, Jonas, Michæas, Naum, Abacuk, Sophonias, Aggæus, Zacharias, Malachias. Deinde quatuor Prophetæ sunt majorum voluminum, Esaias, Hieremias, Daniel, Ezechiel. His quadragintaquatuor libris veteris testamenti terminatur authoritas. Novi autem quatuor libris Evangelii secundum Matthæum, secundum Marcum, secundum Lucam, secundum Joannem; quatuordecim Epistolis Pauli Apostoli, ad Romanos, ad Corinthios duabus, ad Galatas, ad Ephesios, ad Philippenses, ad Thessalonicenses duabus, ad Colossenses, ad Timotheum duabus, ad Titum, ad Philemonem, ad Hebræos, Petri duabus, tribus Joannis, una Judæ, et una Jacobi, Actibus Apostolorum libro uno, et Apocalypsis Joannis libro uno.[33]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은 두 단계로 저술되었다. "전반부(서론~3,25,35)가 집필된 시기는 그의 주교직 초기에 해당하는 396년, 늦어도 397년 초로 추정한다. ... 후반부(3,25,36~4 끝까지)의 집필 연대는 426년경으로 추정한다."(by 성염 역주, 같은 책 32-33쪽)[34] 제2경전이란 단어는 일부러 피하였다. 왜냐하면 최소한 이 문서에서 제2경전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정경 목록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만을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경을 비교하면 이 문서에서 제2경전이라고 언급한 7권 외에도 눈에 띄는 차이가 더 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 성경의 다니엘서 3장 24-90절은 개신교 성경에는 빠져 있다.[35] 후술하겠지만, 정교회는 가톨릭의 트리엔트 공의회처럼 세계 공의회 차원에서 정경을 정한 바가 없다. 그렇기에 지역 교회마다 시선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의 경우 카르타고 공의회를 기본으로 정경 목록을 유지해 왔지만, 이 떡밥을 완전히 종결시켜 버린 건 세계 공의회인 트리엔트 공의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개신교에서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비판적이다. 애초에 개신교를 반박하기 위해 나온 공의회이므로 좋아할 리가 만무하지만.[36] 집회서 자체는 유대교의 정경이 아니지만, 이는 토라, 느비임, 케투빔의 삼분 구조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구절이다.[37] '타나크'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래어 표기 차이.[38] '히브리어 성경'은 개신교의 구약 목록과 범위가 일치하며, 가톨릭의 구약 목록보다는 범위가 좁다.[※주의] 느비임의 범위는 그리스도교가 인식하는 예언서의 범위와 다르다. 가령 그리스도인이 생각하기에 여호수아기는 (율법서도 예언서도 아니니) 타낙의 케투빔 카테고리에 해당할 것 같지만, 유대교에서는 느비임으로 본다.[39] 칠십인역 및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을 문서의 성격에 따라 오경,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이렇게 4 부분으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이 중 역사서 부분은 느비임과 케투빔에 나누어 들어가 있다.[40] Megillōt(두루마리들): 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를 의미한다.[41]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순수 중립 명칭으로서 Erstes Testament(첫째 성경)를 민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용어로서는 '구약 성경'보다 '첫째 성경'이 낫다는 것이다.[42] 무엇보다도 위에서 소개한 에리히 쳉어의 책 제목부터가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이다.[43] 이것이 전승이나 실제로는 몇 백 년 후의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44] 요시야왕 재위 시기로, 한국사에서는 고조선 시대이다.[45]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제적 율법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완성시켰다고 표현한다.[46] 알렉산드로스의 경우는 마음이 오만해졌다고 디스 당하기는 하는데, 그 구절 외에는 의외로 역사적 행적과 잘 들어맞게 설명되어 있다.[47] 역사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당시의 패권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어떻게 인식되었을까?'라는 식의 의문에 대해서는 의외로 성경이 나쁘지 않은 참고 서적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똑같은 패권 국가인데 아시리아와 페르시아는 성경에서 대우가 전혀 다르다.[48] 지혜서라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지혜문학에 속한 제2경전인 지혜서와 혼동의 여지가 있어서 이렇게 적었다.[49] 타낙은 물론 신약시대까지도 여성아버지남편의 소유물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또 모세 시대에는 아들 없이 죽은 자의 유산을 들이 물려 받는 경우도 있다.[50] 사실 다윗의 조상 룻(나오미의 며느리)은 롯의 딸의 후손인 모압족속이다. 또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따라서 인간이 선하고 정결해서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유다 지파가 쓰여져서 예수가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구원은 인간의 노력, 힘으로 이룰 수 없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이루어 졌다는 걸 알려준다.[51] 물론 이 일 때문에 그 고대사회에서도 다들 충격먹는다. 사실 이 사건은 사사기(판관기)에 등장하는데, 남편은 레위인으로 율법으로 첩을 끼면 안 되고 피해 여성 역시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처가로 되돌아가 남편이 데리러 갔는데 이 역시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들이 나그네가 되어 베냐민 지파 쪽의 지역에서 숙박했을 때, 조상들의 나그네를 선대하라는 율법을 어기고 쳐들어와서 강간하려던 것을, 남편이 아내를 제물로 바치고 해가 떠서 돌아가려 할 때쯤엔 이미 죽어있었다. 완전 혼돈의 카오스. 결국 이 문제로 인해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겨 결국 내전이 터지고 베냐민 지파는 궤멸당한다.[52] 발췌자 주석: Odil Hannes Steck, 《Der Abschluss der Prophetie im Alten Testament: Ein Versuch zur Frage der Vorgeschichte des Kanons》 (BthSt 17), Neukirchen-Vluyn, 1991.[53] 발췌자 주석: 얌니아[54] 정태현, 《성서 입문 하권》, 109쪽[55] Erick Zenger u.a, 이종한 옮김, 《구약성경 개론》 163쪽[56] Erick Zenger u.a, 이종한 옮김, 《구약성경 개론》 163쪽[57] 여호수아기는 율법서는 아니지만, 율법서의 후속편 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58]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저자'라는 개념은 전승 수집자 겸 엮은이라 할 수 있다.[59] 쉽게 알 수 있는 예로, 지금 당장 신명기와 레위기에서 아무 율법이나 골라서 문체를 대조해보자. 전자는 열정적이며, 후자는 건조하며 간결하다.[60] 물론 복음서들을 보면 바리사이가 사두가이보다 상대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차이는 있지만, 바리사이가 정통이고 나머지는 짝퉁이라는 식의 관점을 가질 필요는 없다.[61] 다만 얌니아 회의는 현재 부정하는 추세이고 저주기도문이 유대사회에 보편적으로 수용됐는지, 아님 후대의것인지는 좀더 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62] 전통적으로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는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거부하며,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생각은 바빌론 포로 시기에 생겨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창세기문서 참조. [63] 루트거 슈빈호르스트쇤베르거(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 실비아 슈뢰어(Silvia Schroer),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요한네스 마르뵈크(Johannes Marböck)의 연대 언급은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등의 《구약성경 개론》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을 근거로 한다. 만약 연대 언급에 별도의 주석이 없다면 같은 책 1013쪽을 출처로 한다. 에른스트 알렉스 크나우프(Ernst Alex Knauf), 티에리 르그랑(Thierry Legrnad), 필리프 기욤(Philippe Guillaume), 필리프 아바디(Philippe Abadie)의 연대 언급은 Th. 뢰머Thomas Römer 등의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을 근거로 한다.[64] 고전적인 4출전 모델의 문제점을 교정한 학설인 '뮌스터 오경 모델'에서 사용하는 용어. 문학적 경계 설정에서는 벨하우젠의 JE(=예호비스트 역사서)와 범위가 비슷한 개념이지만, 문학적 전사前史를 벨하우젠과는 다르게 본다.[65] "애가의 익명성과 다양성은 저작 시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애가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구성된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애가에 담긴 모든 시가 기원전 538년 유배 시대가 끝나기 이전에 지어졌다는 사실과, (특히 둘째 시와 넷째 시가 제공하는) 상당한 자료들이 기원전 587년의 사건들과 가깝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 성경》[66] 에른스트 알렉스 크나우프Ernst Alex Knauf와 필리프 기욤Philippe Guillaume에 의하면 BC 5세기; 루트거 슈빈호르스트쇤베르거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에 의하면 BC 5~2세기[67] 에리히 쳉어(Erich Zenger)는 3-14편(9/10편 없는), 15-24편(16·19·23편 없는), 26-32.35-41편(37·39·40편 없는)을 BC 6세기로 잡고, BC 200년에서 BC 150년 사이에 1-150편으로 이루어진 최종 형태를 갖추었다고 본다.[68] Johannes Marböck은 BC 2세기의 첫 4분기로 본다. 집회서 머리글에 의하면 저자의 손자가 에우에르게테스 임금 치세 제38년, 즉 BC 132년에 이집트에서 집회서를 번역했다고 보고한다. Thierry Legrnad는 BC 190년경 집필되었다고 본다.[69] 필리프 아바디Philippe Abadie에 의하면, 로마인에 관한 찬사가 마카베오기 상권이 BC 63년 이전의 것임을 밝힌다. Helmut Engel은 상권의 집필을 BC 100년경으로, 하권의 집필을 BC 124년 직후로 본다.[70] 티에리 르그랑Thierry Legrand에 의하면 BC 1세기 하반기; 실비아 슈뢰어Silvia Schroer에 의하면 하한선 BC 30년 상한선 AD 41년.[71] 표 출처: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책", 에리히 쳉어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52쪽[72] 표 출처: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책", 에리히 쳉어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53쪽[73] 당연하지만 고대 교부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해결법이 나왔자만,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해결법은 오리게네스가 주장한 '알레고리아' 해석법이다.[74] 친서보다 문체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령 다수의 학자가 친서임을 부정하는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품격 있는 문서로 ....... 수사학적 재능은 바오로를 능가한다."(마르틴 에브너(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이종한 옮김)[75] 베드로전·후서, 콜로새서, 티모데 전·후서, 에페소서[76]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골로사이서 3:13-14)[77] 마태오의 복음서 5:17-18[78]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면 사실상 한계가 있다.[79] 사실상 위의 내용과 같이 보면 평생을 이 책과 같이하라는 얘기가 된다[80] 상당히 추상적인 부분이라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대목[81]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통독에 힘쓰는데 사실 이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82] 흔히 속칭 예수쟁이들이 어기는 부분[83] 물론 성경은 최종학력이 국민학교인 아저씨도 즐기는 책이며, 반드시 주석서를 학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세 학설이든 요즘 학설이든 일단 주석서가 있으면 훨씬 낫다. 안타까운 점은, 성경이 접근성이 높으면서 비로소 이해하기에 난이도도 높은 문헌이라, 인터넷에서 주관적인 독후감에 의한 잘못된 정보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이든 무신론자에 의해서이든) 범람한다는 점이다.[84] 신명기는 에돔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 마라. 내가 세이르 산을 에사우에게 소유지로 주었으므로, 너희들에게는 그들의 땅을 한 치도 주지 않을 것"(신명 2,5)이라 말하며, 비슷하게 모압에 대해서도 "모압을 괴롭히지도 말고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도 마라. 내가 아르를 롯의 자손들에게 소유지로 주었으므로, 너희에게는 그 땅 어느 곳도 소유지로 주지 않을 것이다."(신명 2,9)라고 한다. 현대 한국인이 애증을 느끼는 대상이 거란족이나 선비족이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임을 고려하면, 신명기가 얼마나 의도적이고 정교한 곡예를 구사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85] 독어 Rezeptionsästhetik: 텍스트가 내용을 그릇처럼 자체 안에 담고 있지 않으며, 텍스트의 의미는 오히려 독서 행위를 통해 창출·성립된다는 데서 출발하는 문학 이론. 여기서 텍스트는 독자와 상호 작용을 해야 하는, 반쯤 비어 있는 독서 지침으로 파악된다. Rezeptionsästhetik에 의하면 문학 유형에 따라서 텍스트의 의미는 많거나(예: 기술적인 사용 설명서) 혹은 적게(예: 픽션) 확정되어 있다.[86] 다음 링크에서 각 언어 번역을 볼 수 있다: # 원문은 프랑스어이다.[87] 굵은 글씨는 책에서 강조된 것이다.[88] 굵은 글씨는 원문에서 강조한 것.[89] 시간적으로 앞에 오는 것[90] 시간적으로 뒤에 오는 것이자, 예형이 가리키는 것[91] 예레미야 등이 바빌론 탈출을 제2의 이집트 탈출로 예고했고, 바빌론의 멸망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이 경험되었기에 이런 유추가 성경 독자들에게 자명해진 것이다.[92] 굵은 글씨는 책에서 강조된 것이다.[93] 병행문헌: 「명제론집」 제1권 서문 제5절: 제34구분 제3문제 제1절, 제2절. 「이교도논박대전」 제3권 제119장. 「보에티우스의 삼위일체론 주해」 제2문제 제4절 참고.[94] 제1문제 제5절[95] 병행문헌: 「명제론집」 제1권 서문 제5절, 제4권 제21구분 제1문제 제2절 제1소문제 제3이론에 대한 해답. 「능력론」 제4문제 제1절. 「임의(자유)문제토론집」 제3권 제14문제 제1절, 제7권 제6문제 전체.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4장, 제7강 참고.[96] 주의를 주자면, 여기서 말하는 '문자적' 의미는 근본주의식 성경 해석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의 텍스트 자체가 의도하는 문필적(문학적) 의미를 말한다.[97] 특히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읽어내는 데 매우 큰 공헌을 하였다.[98]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정작 이 해석법의 창시자인 오리게네스는 통념과 달리 대부분의 해석이 문자적 해석이며, 구절의 문자적 의미가 불분명하다거나 혹은 도덕적, 영성적 의미가 분명한 경우에 매우 신중하게 도덕적이거나 영성적 의미를 탐색하였다. 즉 이 해석법의 문제점은 오리게네스 당사자보다는 후대인들의 오남용에 있다. 지금도 아마추어나 사이비 해석자들이 (오리게네스의 해석법을 악용하여) 주관적인 독후감을 성경 해석법이라고 끄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99] 로마서, 갈라디아서, 두 개의 고린토 서간, 데살로니카 전서, 필립비서, 필레몬서[100] 바울로의 문체는 격정적인 파이터 논객의 문체에 가깝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맨 처음 배치된 바울로 서간이 하필이면 로마서라서 처음부터 도전하면 매우 어렵다.[101]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은 구약학에서 DtrG(Deuteronomistisches Geschichtswerk,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부르는 역사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명기를 편집한 학파가 이 책들을 작성했으며, 따라서 하나의 연속된 역사 시리즈라고 봐야한다. 여기서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룻기를 끼워넣으면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구약 배치에 부합한다. 엄밀히 말하면 룻기는 DtrG에 속하지는 않으니 나중에 읽어도 나쁘지는 않으나, 책이 짧아서 DtrG의 전체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데다가 배경 시대도 사무엘기 직전이니까 이왕이면 같이 읽는 게 좋다.[102] 대문자 N은 타낙 분류상 '전기 예언서'에 속한다. 여기에 신명기를 추가하면, Martin Noth가 말하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일치한다. 소문자 n은 타낙 분류상 '후기 예언서'에 속한다.[103] 타낙의 순서와 카테고리 출처: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책",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37쪽의 표;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1-22쪽의 표[NRSV] A B C 영어 번역마다 약칭은 다르며, 여기선 NRSV를 기준으로 했다.[104] 다른 이름: 모세오경[105] 새번역에서는 '라'[106] 새번역에서는 '더'[107] 다른 이름: 시가서, 문학서[108] 구약성경의 마지막 권[109]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 비치된 공동번역 성경책들은 모두 다 제2경전이 포함된 가톨릭판이다.[110] 발췌자 주석: La noubelle Bible Segond(NBS) : 개신교 목사 Segond의 작품을 기초로 한 불어권 개신교 성경.[111] 한국어판은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출판했으나, 원서는 불어권의 에큐메니컬 구약 입문서이다. 집필진도 가톨릭에 한정되지 않았다.[112] (영어)Deuterocanonical Books. 주의를 주자면 신명기(Book of Deuteronomy)가 '하급 계명'이 결코 아니듯이, 제2(Deuter)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하급'을 확정하지 않는다. 이 범위의 책들은 가톨릭에서 히브리 성경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반면 동방 정교회는 제2경전의 성서적 권위에 관하여 한 번도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적이 없었다.[LXX+] A B C D 칠십인역 추가분[113] 가톨릭전구 교리와 연옥 교리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또한 개신교의 정경 목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여기에 적혀있어서 성서 주석학적으로도 중요한 책이다. 항목 참조.[114] 예레미야의 편지를 포함한다.[115] 루가 복음서의 저자 루가가 작성한 문서로 루가 복음서의 속편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문서가 아니므로 복음서에 들지도 못하고, 교회로 보내는 편지가 아니므로 서간서에 들지도 못해 일반적으로 이렇게 따로 분류한다. 혹은 구약성경열왕기역대기, 여호수아, 판관기 같은 역사서로 분류하기도 한다.[116] 친서 목록은 Martin Ebner와 Stefan Schreiber의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를 따랐다.[117] 저자는 루가[118]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가톨릭) 혹은 필레몬서까지(개신교)가 전통적인 바울로 서간 목록에 속한다. 그러나 주석학적인 관점에서는 에페소서, 디모테오서, 디도서, 히브리서 등은 다른 저자가 쓴 것으로 본다.[119] 시기 상으로는 개신교 개역 성경(1961, 1998년 개정) → 공동번역(1977) → 가톨릭(2005) 순으로 출간되었다. 섞었다기 보다는 시대에 따라 표기가 변화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가톨릭 성경은 현재의 외래어 표기법이나 현대식 지명을 적극 반영한 판본이기도 하다. (예: 바로→파라오)[120] 볼드체로 강조된 것은 책에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121] 에큐메니컬로 계획된 번역이지만 현재는 개신교에서 쓰지 않는다.[122] (주석학적으로 친저성이 부정되는) 히브리서를 바울로 서간에 넣는 가톨릭도, 히브리서는 제외하지만 (역시 주석학적으로는 친저성이 부정되는) 에페소서는 바울로 서간에 넣는 개신교도, 카테고리 분류에서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카테고리 분류가 아니라 학문적인 친저성 논의에서는 가톨릭 학자가 히브리서의 친저성을 부정할 수도, 개신교 학자가 에페소서의 친저성을 부정할 수도 있다.[123] 서기 100년경의 시리아 지역 시골 교회의 교리서+전례 지침서다.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생활을 잘 알수있는 자료지만, 후에 사도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경에서 밀려났다.[JESUS] [124] 가성비는 돼지가죽이 가장 좋다고 한다.[125] 고급 가죽성경책의 대부분이 KJV와 같은 개신교 성경책(+NRSV 같은 일부 공동번역 에큐메니컬 성경책)이며 고급 가죽을 쓴 가톨릭 성경이 드문 편이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리 좋은 가죽성경책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게 된 것.[126] 업계 관계자말에 따르면, 인조가죽 커버를 하급 돼지가죽으로 재질을 바꾸는 것으로도 1~2만 원이 인상된다고 한다.[127] 특히 2000년대 초, 중반에 유행했던 소위 '이탈리아제 고급 인조가죽'을 쓴 개신교 성경책들과 2015년 이전에 인쇄된 천주교(한국어 새번역) 성경책들은 1년도 지나지 않아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나갔다는 문제점이 많이 보고되었다.[128] 염소 가죽커버를 쓴 한국어 성경책이 양산되는 것 같지는 않다.[129] 천연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130] 가죽 벨트가 낡아지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131] 여담이지만 통일 찬송가가 채택되기 이전인 1983년 이전까지는 교단마다 사용하는 찬송가가 서로 달라 성경과 찬송가의 합본이 곤란했다.[132] “관주(貫珠 혹은 串珠)” 성서란 전후참조(前後參照) 표시가 되어 있는 성서를 일컫는다. 출처-대한성서공회 "관주 성서"[133] 발췌자 주석: 출처가 되는 책의 초판은 2000년에, 개정판은 2010년에 나왔다. 이를 감안하고 볼 것.[134] 이 단어는 현대 이스라엘의 화폐 단위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135] 책 속 주석: 화폐의 최소 단위.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해당한다.[136] 발췌자 주석: 이 책에 실려있는 신약 시대 화폐표를 기반으로 환산할 경우, 1랩톤은 1/128데나리온이다. 즉 노동자의 하루 좋은 품삯의 1/128.[137] 책 속 주석: 데나리온은 로마 시대에 나온 화폐 단위로서 노동자의 하루 좋은 품삯(현재 7만원쯤)이다. 그런데 구약의 하루 품삯이던 1세켈이 신약에 와서는 4데나리온으로 바뀐다. 따라서 신약의 1세켈은 4일 품삯에 해당한다.[138] 발췌자 주: 무슨 단위인지 책에서 누락되어있다. 추정컨대, 1/12테파를 말하는 듯하다.[139]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아 ? 표시를 하였다.[140] 이 연도라면 연표에는 안 나왔지만 아브라함은 기원전 2166년생이라는 의미다.[141] 이때 이집트는 이집트 중왕국 시대다.[142] 야곱이 개명한 이름.[143] 이른바 모세오경이다.[144] 다만 해당연도는 통치가 종료된 시기로 보인다 [145] 다만 기원전 1070년경에 태어났다는 견해도 있다.[146] 다만 실제로 이때는 키루스 2세의 시대다.[147] 에스델서의 이야기는 전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문학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고고학적으로 그런 거고 신앙인들 개개인들은 사실이라고 믿는 편.[148] 신약에서 가장 긴 책은 사도행전.[149] 장 수만 자그마치 150장이고 절 수가 176절이 넘게 있는 119편이 존재한다!![150]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은 오바드야/오바댜.[151] 총 176절이 있다[152] 신약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은 마태오 복음서/마태복음 26장, 가장 짧은 장은 요한 묵시록/요한 계시록 15장.[153] 신약에서 가장 긴 절은 로마서 4장 16절.[154] 구약에서 가장 짧은 절은 레위기 11장 15절.[155] 1980년대에 나온 반공소설 중에는 빨간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목사 행세를 한 간첩 이야기가 있다.[156] 최근 이 성경책의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판형이 미세하게 작아진 것으로 보아 표지갈이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157] 한글자라고 썼지만, 일부 목차는 2음절로 축약했다.[158] 꼭 무교가 아니더라도 타종교인들도 포함되기도 한다.[159] 이스라엘 신화, 유대 신화라고도 쓰인다.[160] 이 글은 에라스무스 성경의 오류를 주로 다루지만 에라스무스가 원어 성경을 인쇄한 것은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161] 주기도문의 송영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유대인들은 기도를 마칠 때 꼭 송영을 하였다. 송영이 없는 마태오의 복음서 원본이 특이한 것이다. 원본에 없으므로 예수님께서 송영을 하였을거라고 확실할 순 없지만, 당시 관습 상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주기도문을 외운 후 송영을 하였을 것이다.[162] 올바른 성경 구절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163] 한글 번역본에 따라 표시하지 않기도 하고, 괄호로 묶기도 한다.[164] 대한성서공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개역개정, 개역한글, 표준새번역, 새번역, 공동번역, 공동번역 개정판, CEV(현대영어역)이 제공된다.[165]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05년판 성경, 200주년 신약성서, 공동번역 성서, 최민순 역 시편, 주석 성경이 제공된다.[166] 개신교 계열 사이트. 개역개정, 개역한글,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NIV, KJV, NASB이 제공된다. 부가기능으로 새찬송가, 찬송가, 성경용어빈도조사 기능이 제공된다. '다국어성경'답게 중국어판 성경인 简体中文和合本 (CUV Simplified, 간체 중문 화합본), 繁體中文和合本 (CUV Traditional, 번체 중문 화합본), 아제르바이잔어판 성경인 2010년판 아제르바이잔어 성경도 제공된다. 일본어판 성경은 신공동역, 신개역, 구어역을 제공하지만, 메뉴에서 바로 접근할 수는 없고, 타 역본 성경에서 대역으로 접근할 수 있다. 중국어판은 옛 번역본이라 일부 글자(嗎·吗)는 과거의 맞춤법(麼)을 따르고 있으니 주의.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