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조직폭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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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申寧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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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신영균.
별명
닷또상
출생
1916년[1]
사망
1987년 이후 추정 (향년 71세 이상)
신체
160cm 미만, 80kg 전후
직업
조직폭력배, 정치깡패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야인시대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활동했던 정치깡패. 별명은 닷또상[2]으로 키는 160cm도 되지 않았지만,[3] 80kg 가까운 체중과 엄청난 근력 또는 큰 발을 지녔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상욱과 유사한 격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4]


2. 생애[편집]


파일:Screenshot_2017-10-07-14-49-34-1.png[5]

일제강점기 시절 김두한의 부하로 해방 이후 김두한이 대한민청(대한민주청년총동맹)의 감찰부장으로 있을 때, 그 밑의 조사과장을 맡았고, 좌우대립과정에 정진룡을 직접 살해한 장본인이었다.

정진룡은 한때 우미관에서 김두한과 한솥밥을 먹던 동료였으나 해방 이후 활개치는 공산주의자들에 회유되어 신불출 휘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좌익주먹패로 앞장서 김두한과 조선청년전위대를 결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두한은 부친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전위대를 빠져나와 대한민청에 소속, 별동대를 이끌고 좌익단체 및 좌익인사들을 테러하는 반공활동을 하였고 시대의 비극으로 정진룡과 김두한은 극심한 충돌을 빚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1947년 4월 19일 저녁 8시 경, 정진룡 패거리 측 주최로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내용의 악극 '청춘의 봄'을 공연하고 있던 국제극장에 김두한이 출입하여 정진룡과의 트러블이 있었고, 바로 다음날 4월 20일 낮 1시 경 김두한의 결정 및 지시 하에 정진룡을 기습하여 그의 일당 김천호를 포함 좌익전위대 35명을 권총위협으로 사로잡아 납치 후 모두 대한민청 별동대 본부 지하로 끌고가 감금시켰다. 일전에 정진룡이 김두한에게 선전포고했었던 기억에[6] 화가 치밀어 오른 신영균이 홧김에 두 명을 쇠파이프로 각각 세 차례 씩 흉부를 강타하여 정진룡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중상을 입은 김천호는 현장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경을 헤매다 악화로 사망. 기적적으로 살아나 월북했다는 설이 있으나 밝혀진 바 없다.[7]

김두한과 그의 부하들인 신영균, 김영태, 김관철, 홍만길, 조희창(상하이 조), 고경주(휘발유) 등등 총 14명의 인물들이 이 폭력, 살인사건에 가담했다. 신영균은 이 사건으로 인해 형을 선고받았으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기에 풀려난 후, 대한민청의 후신 단체인 청년조선총동맹의 제3대 회장을 역임했다.[8]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휴전이 되자 김두한이 조직을 해산하였다는데, 그 이후에도 김두한을 따라다니면서 일을 봐주고 살았던 듯 하다. 단적인 예가 김두한이 김관철을 위협사격하여 기소 된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에서 김두한은 위협사격 외에도 병적계 이동수속을 밟지 않아서 병역법 위반으로도 기소된 상태였는데, 이 때 김두한의 증언이 '바쁘다 보니 신영균에게 맡겼는데 걔가 까먹었나보다' 였었고, 신영균이 증인으로 나와서 '나한테 맡겼는데 내가 동생에게 지시한걸 걔가 안 했으니 내 잘못이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한 게 신문기사로 나오기 때문... 결론은 부하에게 짬때린 걸 그 부하가 그 밑의 부하에게 짬때렸다

파일:사본_-우미관 식구들 근황(1987).png[9]
1987년, 경향신문에서 대한민청에대한 연재기사를 냈을 때 김두한의 우미관 식구들과 함께 근황이 공개되며 '청년운동 반세기'에서 자신의 정치깡패 행위를 미화하는 인터뷰를 하고, 김두한의 추모행사에 꼬박꼬박 모습을 드러내는 사진을 보낸 것으로 보아 1987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10] 어쨌든 또래의 조폭들치고는 장수한 것.[11]


3. 대중매체에서[편집]



3.1. 드라마 야인시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영균(야인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해당 링크.1987년 당시 71세라고 한다.[2] 일본 자동차회사 닛산(日産) 최초의 소형승용차 DATSUN에서 따왔다.[3] 다만,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이 160대 초중반이었음을 감안하면 아주 작은 수준까지는 아니다. 현대로 치자면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신장이 165~167cm정도 되는 것이다.[4] 이상욱은 상대의 품으로 파고 든 뒤 날아오르며 들이받는 주특기가 있었다고 한다.[5] 맨앞 오른쪽의 두번째인 사람이다. 저화질이지만 맨앞 오른쪽의 두번째인 사람을 자세히 보면 키는 작지만 근육량이 많아보이고 큰 발이 보인다. 맨앞 왼쪽 첫번째 사람은 김두한.[6] 선전포고라니까 뭔가 거창한 거 같지만, 신영균의 증언에 따르면 김두한 패거리 다섯과 정진룡 패거리 다섯이 하필 같은 술집에서 술을 쳐먹다가 어찌어찌 서로의 상황을 탐색도 해 볼 겸 해서 합석을 했는데, 거기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정진룡이 "내가 니 손에 죽지 않는다면 너는 내 손에 죽는다. 남조선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따위의 소리를 했다고 했다. 이승만이 귀국한다는 소식에 수도경찰청장이던 장택상의 부탁을 받고 정진룡과 김천호 등등을 잡아다 놨는데 걔네를 보는 순간 불바다 운운하는 말이 생각나 빡치는 바람에 홧김에 패버렸다고.... 어디까지나 신영균의 증언에 따른 이야기다.[7] 정진룡, 김천호 외 다수 좌익전위대원들 모두 감금과 구타로 중경상을 입었다.[8] 참고로 초대 회장은 야인시대에도 등장한 상관인 유진산, 제2대 회장은 역시 야인시대에 등장한 박용직이다.[9] 빨간색 원 안에 있는 김관철 맨 오른쪽에 있는 여성은 신영균의 아내이고 신영균은 아내 밑에 있다.[10] 사망연도를 빨리 잡아서 기사가 나온 1987년 당해로 가정하면 나이가 향년 71세가 된다.[11] 또래의 조폭치고는 운운하는 말도 어폐가 있는게, 드라마 야인시대와는 다르게 저 기사가 나온 1987년 당시 김두한과 정치깡패질 하던 사람들은 꽤 많이 생존해있었다. 신영균부터 홍만길 고경주(휘발유) 조희창(상하이조) 김관철 김영태 박용직 등등이 멀쩡하게 살아있었으니 김두한이 명이 좀 짧았을 뿐 저 또래 조폭들 명이 짧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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