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배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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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신영수(申榮秀)
생년월일
1982년 7월 1일
출생지
대전광역시
출신학교
대전중앙고 - 한양대
포지션
레프트, 라이트
십이지
개띠
별자리
게자리
혈액형
A형
가족
1남 1녀 중 둘째
신체
신장 197cm, 체중 93kg
프로입단
2005 V리그 1라운드 1순위
(대한항공)[1]
소속팀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2005 ~ 2018)
응원가
노브레인의 Radio Radio[2]
종교
개신교

대한항공 점보스의 역대 주장
2012-13

2013-15

2015-20
김학민
신영수
한선수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반지
2018

1. 소개
2. 선수생활
3. 은퇴 이후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現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 과장, 별명은 영숙씨.[3]



2. 선수생활[편집]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소속으로, 포지션은 레프트다. 2005년 이경수 파동 당시 이경수를 양도하는 대신 LIG가 대한항공에 2005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양도하였는데, 그 때 1순위로 뽑혔다. 레프트로 출전해 김학민의 공백을 메우며 대한항공의 주포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으나 동메달에 그치며 군대 확정....... 2010-2011 시즌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치고 2013년에 소집해제되었다.

제대후 맞게 된 2013-14시즌 당시에는 김학민, 한선수상근 입대로 인해 생긴 공백 속에서 주장으로 부임해 팀의 호성적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4] 한선수가 제대한 후에는 주장직을 한선수에게 넘겼다.

2014 코보컵에서도 상당히 전력 평가가 나빴던 대한항공의 세 번째 컵대회 우승을 안기고 커리어 최초로 MVP가 되었다.

파워도 좋고 신장도 큰 괜찮은 공격수지만, 신영수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바로 귀신같은 범실이다. 원래도 한양대출신 장신 거포들 일부가 프로나 실업에서 공갈포로 폭망하는 경향이 있던 편이었고, 이인구정도로 공갈포는 아닌 나름 국가대표급 장신 거포였지만, 신영수는 대한항공이나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로써 클러치 상황마다 홈런이 꽤 눈에 띄던 편이라. 덕분에 오래전부터 신영수를 부르는 배구팬들의 별명이 범실영수다. 그 당시 같이 인천에서 기회를 말아먹고 있던 이호준에 비견되기도 하였다. 오죽했으면 배구 갤러리 팬들이 가장 무서운 상황으로 스코어 23-24에서 신영수가 오픈 공격하는 장면을 뽑았겠는가(...)...

2017-18시즌 종료후 FA를 취득하였으나, 3차 교섭까지 가는 끝에 결국은 계약을 맺지 못하고 미계약 하였다. 2018-19시즌은 뛸 수 없게 되었고, 이후 은퇴선언을 하였다. 미계약으로 인한 마지못한 은퇴선언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신영수는 시즌 종료 이전부터 은퇴를 결정했으며, 이는 대한항공의 배려로 남은 잔여 연봉을 모두 지급하기 위해서였다.


3. 은퇴 이후[편집]


여타 대한항공에서 오랫동안 뛰고 은퇴했던 선수들이 그랬듯이[5] 정직원으로 채용되었고, 스포츠단 사무국 과장으로 발령났다. 팬들은 아쉬워 하면서도 신영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엑셀+워드도 다루지만, 대한항공 구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리틀 배구클럽 담당자이자 강사 역할도 하고 있다. 가끔은 용인 훈련장으로 출장을 가서 선수들과도 이야기를 나눈다고.

10월 13일 현대캐피탈과의 개막식에서 2세트 종료 이후 은퇴식을 가졌으며, SBS Sports의 18-19시즌 V리그 개막전 특별해설을 맡았다. 하지만 팀은 깔끔하게 패하였다.


[1] 이 해 1라운드 1순위를 가져가야 할 팀은 LG화재지만,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1순위를 넘겨주고, 으로 그 해 1라운드 지명권까지 줘야만 했다. 즉, 아예 뽑을 자격조차 얻지 못한 것다. 이 때 1라운드 2순위로 뽑은 선수는 김형우.[2] 신영수! 신영수! 신영수! 신영수! 오예~ 오~예~ 대한항공 신~ 영수[3] 초창기 여자처럼 소심한 플레이가 많이 보여서...[4] 배구는 상대적으로 공익근무로 빠지면 이후 커리어가 폭망한 사례가 워낙 많았다. 게다가 당시 항공 프런트도 당시 성적인 리그 3위에 감지덕지 할 정도면...[5]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