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사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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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五代史
중국의
이십사사 중 하나이다. 사적을 기전체로 서술했다.
북송 인종이 구양수에게 편찬하도록 지시해 1023년에 완성했다. 설거정의 《
구오대사》와 구별하기 위해 《신오대사》로 지칭한다. 별칭으로 구양수의 성을 따서 《구양사》(歐陽史), 《신오대사》의 본래 이름이었던 《오대사기》(五代史記)라고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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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기(本紀) ]
1·2권 「양본기1·2(太祖紀一二)」 | 3권 「양본기3(梁本紀三)」 | 주황 | 주우정 | 4·5권 「당본기1·2(唐本紀一二)」 | 6권 「당본기3(唐本紀三)」 | 7권 「당본기4(唐本紀四)」 | 이존욱 | 이사원 | 이종후 · 이종가 | 8권 「진본기1(晉本紀一)」 | 9권 「진본기2(晉本紀二)」 | 석경당 | 석중귀 | 10권 「한본기(漢本紀)」 | 유고 · 유승우 | 11권 「주본기1(周本紀一)」 | 12권 「주본기2(周本紀二)」 | 곽위 | 시영 · 시종훈 |
- [ 열전(列傳) ]
(1) 구오대사 진서에서는 심빈(沈贇)으로 표기되며, 신오대사에서는 심빈(沈斌)으로 표기된다. ※ 58권 ~ 60권은 考에 해당. 신오대사 문서 참고
- [ 세가(世家) ]
61권 「오세가(吳世家)」 | 62권 「남당세가(南唐世家)」 | 양행밀 · 서온 | 이변 | 63권 「전촉세가(前蜀世家)」 | 왕건 | 64권 「후촉세가(後蜀世家)」 | 65권 「남한세가(南漢世家)」 | 66권 「초세가(楚世家)」 | 맹지상 | 유은 | 마은 · 유언 · 주행봉 | 67권 「오월세가(吳越世家)」 | 68권 「민세가(閩世家)」 | 전류 | 왕심지 | 69권 「남평세가(南平世家)」 | 70권 「동한세가(東漢世家)」 | 고계흥 | 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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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本紀) 12권, <열전>(列傳) 45권, <고>(考) 3건, <세가>(世家) 10권, <연보>(年譜) 1권, <부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오대사》 <본기>(本紀) 구성 |
권1,2 양본기1, 2 (梁本紀) | 주황(朱晃) |
권3 양본기3 (梁本紀) | 주우정(朱友貞) |
권4,5 당본기1,2 (唐本紀) | 이존욱(李存勗) |
권6 당본기3 (唐本紀) | 이사원(李嗣源) |
권7 당본기4 (唐本紀) | 이종후(李從厚), 이종가(李從珂) |
권8 진본기1 (晉本紀) | 석경당(石敬瑭) |
권9 진본기2 (晉本紀) | 석중귀(石重貴) |
권10 한본기 (漢本紀) | 유지원(劉知遠), 유승우(劉承祐) |
권11 주본기1 (周本紀) | 곽위(郭威) |
권12 주본기2 (周本紀) | 시영(柴榮), 시종훈(柴宗訓) |
구양수는 《신오대사》를 저술하며, 5대 10국의 10국을 구성한 국가들을 <세가>에 기록했다.
《신오대사》 <세가>(世家) 구성 |
권61 | 오세가 (吳世家) | 양행밀(楊行密) |
권62 | 남당세가 (南唐世家) | 이변(李昪) |
권63 | 전촉세가 (前蜀世家) | 왕건(王建) |
권64 | 후촉세가 (後蜀世家) | 맹지상(孟知祥) |
권65 | 남한세가 (南漢世家) | 유은(劉隱) |
권66 | 초세가 (楚世家) | 마은(馬殷), 유언(劉言), 주행봉(周行逢) |
권67 | 오월세가 (吳越世家) | 전류(錢鏐) |
권68 | 민세가 (閩世家) | 왕심지(王審知) |
권69 | 남평세가 (南平世家) | 고계흥(高季興) |
권70 | 북한세가 (北漢世家) | 유민(劉旻) |
권71 | 십국세가(十國世家) 연보(年譜) |
《신오대사》의 <부록>은 <사이부록>(四夷附錄)으로 칭하며, 요나라와 그외 이민족의 사정을 다루었다. <사이부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중화사상이 반영되었다.
《신오대사》 <부록>(附錄) 구성 |
권72 | 사이부록1 (四夷附錄) | 거란(契丹) |
권73 |
권74 | 사이부록2 (四夷附錄) | 해(奚), 토혼(吐渾), 달단(達靼), 당항(黨項), 돌궐(突厥), 토번(吐蕃), 회골(回鶻), 우전(于闐) 고려(高麗), 발해(渤海), 신라(新羅), 흑수말갈(黑水靺鞨), 남조만(南詔蠻), 장가만(牂牁蠻), 곤명부락(昆明部落), 점성(占城) |
원사료인 《구오대사》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신오대사》는 특이하게 《
사기》와 더불어 <세가>가 쓰여 있다.
[1] 《구오대사》에서는 10국의 군주들을 <열전>으로 분류하며 각각 <참위 열전>과 <세습 열전>에 수록했다.
[2] 본래 제후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세가>였으나, 한나라 시절부터 사실상 독립적인 제후국이 사라졌기에 반고의 《한서》부터는 제후왕들 역시 <열전>에 기록되었다. 또 <세가>로 기록될만한 5호 16국시대의 나라들은 《진서》에 <재기>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기록되었기에 <세가>가 기록된 정사는 《사기》와 《신오대사》 둘이 전부이다.
구양수는 지방에 파견나가 있을 때 《신오대사》를 편수했다. 그는 《
춘추》의 필법을 이용했는데, 봉건적인 질서를 강조하는 부분이 적지 않게 있다. 또한 그의 필체 덕분에 글이 간결하고 구수하다.
그러나,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쓰인 《구오대사》와 달리 《신오대사》는 화이사상 내지는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그런 점에서 《신오대사》와 더불어 원사료인 《구오대사》를 필히 참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대조영의
발해 건국을 다룬 내용을 보면, 《
구당서》와 《
신당서》의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비해서 《신오대사》의 내용은 상당히 차이가 있어서
천문령 전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동북공정이 이 책을 좋아합니다.그래도 발해사, 후삼국시대와 고려사 연구에 있어 당대에 쓰인 사료이기 때문에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도 가치 있는 사료이다.
[3] 특히나 당대에 쓰인 사료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 마치 초기 삼국시대와 가야, 백제의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 《삼국사기》보다 《한서》, 《후한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일본서기》를 주로 참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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