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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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성
New Silver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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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신은성 (新銀星)
본명
정나라
출생
1978년 12월 15일 (45세)[1]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
신체
168cm, 43kg, O형
가족
2녀 중 둘째[2]
종교
개신교
학력
상명대학교 (영화학과 / 졸업)
데뷔
2003년 정규 1집 《New Silver Star》

1. 개요
2. 활동
3. 생애
4. 사기 혐의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가수.

2003년, 정규 1집 'Go Away'로 가수로 데뷔했으며, 총 2장의 정규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했다. 데뷔 당시 소속사는 N&F 엔터테인먼트. 현재는 후술할 사기 사건 이후로 연예계에서 사실상 은퇴한 상태다.


2. 활동[편집]


데뷔 이전에 영화를 준비했는데 감독이 사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서 뛰쳐나왔고 소속사에서 계약금 3배를 물어줘서 데뷔하기도 전에 빚을 졌다가, 가수를 하면 좋은 얼굴이라고 들어서 가수를 시작했다고... 브레이크 뉴스.

데뷔 당시 차세대 섹시 가수로 주목받았으나, 제대로 활동하기도 전에 과거사(학창시절 모 아이돌 그룹 멤버와의 열애설, 학력, 나이), 성형수술 논란, 음악방송 라이브 가창력 논란, 어머니가 무속인이라 귀신을 본다는 둥의 언플에 휩쌓여서 오히려 스캔들 메이커로 더 유명해졌다. 브레이크 뉴스.

2003년 정규 1집 《New Silver Star》의 타이틀곡 Go Away와 후속곡 발라드 'Autumn Leaves', 2004년 정규 2집 타이틀곡 Bye Bye, 후속곡 'Stay' 이후 잠시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



1집 데뷔곡 Go Away의 안무는 선배가수 이효리의 10 Minutes의 댄서팀이었던 '나나스쿨'이 함께 무대에 올랐었다.[3] 덕분에 컨셉과 무대 구성이 선배가수 이효리, 미나와 비슷하다는 평이 많았다. 사실 무대에서의 활약보다는 위에 서술됐듯 소속사의 말도 안되는 무리한 언플들로 인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래저래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조롱거리로 주로 소비됐다.

2집 Bye Bye의 뮤직비디오에서 2절 끝나고 댄스브레이크 씬에서 전지현의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모 CF와 똑같은 장면(의상, 무대세트, 카메라 기법)이 나와 잠시 표절 논란이 일며 신은성이 온라인에서 욕을 먹었으나, 사실 이 CF는 신은성의 2집 발매후 한창 활동 더 뒤에 나온 광고라 시기만 따지면 이 CF가 신은성의 뮤직비디오를 따라한 셈이 되었고 경위가 밝혀진 이후 논란은 그냥 조용히 묻혔다.신인의 비애[4] 2집의 컨셉은 데뷔 때의 섹시 컨셉을 버리고 매니쉬한 남장 컨셉을 택했는데, 기존 비호감 이미지 탓에 여성팬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남성팬들이 선호하지 않는 컨셉으로 앨범을 발표해 이 앨범은 처참하게 망했다. 차라리 무대에서 잘 소화라도 했다면 새롭게 팬층을 쌓았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다만 전 앨범에 비해 라이브 실력은 상승한 편.



2005년 연말 정규 3집 앨범 <난동(暖冬)>을 발표하고 타이틀곡 White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알렸으나, 타이틀곡까지 발표한 시점에서 정작 정규 3집 앨범은 모종의 이유로 발매 계획이 엎어져 끝내 발매되지 못했다.

2008년 상반기부터 힘찬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래 다시 정규 3집을 준비한 것으로 보이나 이 역시 모종의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다. 관계자가 팬카페에 올린 글에 의하면 10월에는 예능으로 방송 복귀, 11월에 음반 발매, 12월에 연이어 예능 방송을 진행하고 이듬해 3월에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할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09년 3월, 섹시 모바일 화보로 5년 만에 컴백했다. 섹시 화보는 2009년 2월에 말레이시아 코타키나의 개인 휴양지에서 윤병석 작가와 2주 동안 매일 12시간 이상 촬영하며 비밀리에 작업을 했다고...

스포츠서울 인터뷰에 따르면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도쿄의 시오도메(しおどめ)에서 라이브 공연을 다니며 무대 활동을 하고 지냈다고 한다. 국내에서 하도 안티와 루머가 많았다 보니 악플 때문에 '인터넷 공포증'에 걸려서 메일 외에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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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했던 가수 유니와 함께 일본에서 한국 솔로 여가수들의 옴니버스 형식의 음반을 발매하기 위해 이 두명이 일본의 소속사 '제트링크'와 계약했고, 유니는 제트링크와 계약 후 국내 앨범곡을 번안한 1~2장의 싱글을 발매했지만 정작 신은성 등 다른 여가수들과의 협업 앨범은 끝내 발매 무산되고 말았다. 스포츠한국.

이후 향수병으로 국내로 돌아와 자신 명의의 기획사인 '처음마음 엔터테인먼트'를 차렸으나, 2015년 폐업했다. 그리고 몇년 후 아래 서술된 사기 혐의로 또 한번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3. 생애[편집]



3.1. 출생의 비밀(?!)[편집]


신은성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굉장히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는데...

신은성을 임신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부도가 나서 어머니가 딸만 데리고 할머니가 사는 산골로 들어 갔는데, 이 때 신은성의 언니가 죽어서 극도의 스트레스로 7개월 만에 조산하고 선천적 천식을 타고 낫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아무도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신은성이 태어나기 전에 큰언니가 사망했는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어수선하여 사망신고를 하지 못하고 '정나라'라는 언니의 호적으로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신은성의 언니는 호적상으로는 두 살 어리지만 실제로는 두 살 많다고 한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태어났으머, 어릴 때부터 천식이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나 친척들은 신은성을 '저주받은 아이'라고 여기며 멀리했다고 한다. 천식이 심해서 한달에 보름 이상은 병원에서 생활하고, 학교에서도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일이 많았다고...

그러나 정작 소속사에서는 신은성의 학력을 상명대학교 97학번이라고 소개하였는데, 그렇게 되면 신은성은 4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하여 15살에 대학에 갔어야 했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이라고 했으며 이로 인해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았다.[5]


3.2. 괴담[편집]


뉴스에 따르면 남자 귀신이 따라다닌 적이 있단다. 경향게임스.

고등학교 때 신은성에게 편지를 몇 번 보내면서 짝사랑을 보내던 선배가 유서를 남기고 12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했는데, 신은성은 충격을 받고 한 동안 남자를 두려워하고 끼니조차 챙겨먹지 못했단다.

게다가 어머니무속인이며, 곧 신내림을 받게 될 같은 반 친구의 말로는, 어떤 남자의 혼령이 신은성의 뒤를 따라다닌다고(…). 선배의 자살 사건을 잘 모르는 친구였는데, 귀신의 생김새라며 죽은 선배의 모습을 묘사해서 신은성은 기겁하고 친구에게 굿을 받았으며, 그 뒤로 친구는 6개월 넘게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4. 사기 혐의[편집]


세계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신은성은 BIGBANG승리에게 투자를 명목으로 20억 대의 돈을 받은 뒤 잠적했단다.

2014년 6월, 승리에게 부동산 수익으로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투자를 하라며 참조. 유인을 했는데, 승리는 신은성과 평소 동향 사람이고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거액의 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같은 해 8월에는 부동산 투자 법인의 출자금으로 5천만 원을 요구하여, 피해액은 총 20억 5천만 원대이다. 세계일보.

그러나 신은성은 1년이 지난 뒤에도 법인을 만들지 않았고, 2015년 12월 29일, 승리는 신은성을 사기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였다. YG엔터테인먼트 측은 승리의 충격이 컸으며, 소속사와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고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일보. 신은성 역시 한달 후 뒤늦게 언론사 더팩트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했으나, 또 다른 진실을 알려하지 않는 대중들의 특성상 그대로 묻혔다.

게다가 이 사건이 거의 잊혀질즘 승리는 신은성을 오해했다며 고소를 취하했으나 이 사건의 결말이었던 이 소식조차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아 이미 잊혀진 연예인이었던 신은성의 이미지 추락과 손해는 큰 타격을 입었다. 아직도 횡령한 사기꾼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고 유튜브 사이버렉카들 역시 이 사건의 결과는 쏙 빼놓고 자극적인 과거 당시의 논란 내용만으로 영상을 퍼트리고 있어 아직도 신은성에게 대뜸 악플을 남기는 사람이 많을 정도.

이후로는 이렇다 할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해당 사태로 인하여 사실상 사회적 매장을 당한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승리도 4년 후 더한 물의를 빚게 된다.


5. 여담[편집]


  • 성형수술 논란에 대해서 신은성은 눈과 코는 했다고 밝혔고, 턱과 입술, 보톡스 수술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입술은 두툼해서 어릴 때부터 컴플렉스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 데뷔곡 'Go Away' 라이브 무대에서 음원과는 다르게 딱딱 끊어 부르는 창법으로 가창력 논란이 이슈가 된 적 있다. 2집 'Bye Bye'부터는 정상적인 라이브를 선보였지만 1집보다는 화제성과 인기가 하락했다.

  • 2005년에 SBS 웃찾사 '단무지 아카데미'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 '섹시한 나레이터 모델' 연기를 했다. 조이뉴스.



  • 걸크러쉬의 대표격 가수였던 춘자의 절친이다. 서로 공공연히 언급하던 인맥이기도 하고 당시 이 둘의 조합으로 온갖 시내에 누비며 돌아다니는걸 목격한 사람이 꽤나 되기도 했다.

  • 트렌스젠더 유튜버 파티마가 신은성의 열렬한 팬이었다며 고백했다.#

  • 데뷔 전 젝스키스의 멤버 장수원과 사귀었으나 헤어졌다. 공식적인 열애 발표만 없었을뿐 당시 젝스키스 팬들 앞에서 대놓고 스킨십을 하고 당당하게 열애를 했었다. 비슷한 시기에 타 아이돌 팬덤에게 온갖 협박을 받던 간미연과 대조했을 때 운이 좋았다. 당시엔 일반인 신분이기도 했고 장수원 자체도 젝키에서 팬덤 순위가 상위권은 아니었던 멤버였기에 가능했다.

  • 국제전화 CF에 출연해서 깜찍한 연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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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탈사이트 등지에는 1982년 생이라고 나지만, 1978년이 진짜 태어난 해다. 아래 출생 논란 내역을 참고.[2] 다만, 언니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여서 차녀라기보다는 사실상 외동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3] 당시 데뷔전이었던 나나스쿨 소속 댄서 길건이 신은성의 무대에 댄서로 올라가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4] 비슷한 일례로 이효리의 2집 'Shall We Dance'의 뮤직비디오가 해외스타 비욘세의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갖다 베꼈다고 논란이 일어난 적 있었으나 시기상 이효리가 훨씬 먼저 내놓은 것으로 밝혀지자 이효리만 초반에 욕 먹고 논란은 사그러 들었다. 대중안티들의 심리 상 자신들이 생각한 '상위' 연예인이 '하위' 연예인의 작품을 표절한 건 말도 안된다는 편견이 작용한 셈.[5]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미나도 25살이라고 나이를 속여 데뷔를 하였는데, 실제로는 30이 넘어 데뷔를 하였다는 게 알려졌다. 미나의 실제 출생년도는 197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