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당(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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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1~1982년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중도 완충 정당을 표방했다. 중앙당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89-22 신문빌딩[1] 4층에 소재했다.
1980년 12월 5일 코리아나 호텔에서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이후 1981년 1월 27일 창당하였다. 총재는 창준위원장이었던 김갑수가 그대로 선출되었다. # 부총재에는 이대엽이 선출되었다.
창당 당시 당원 수는 15,444명이었고 지구당은 30개였다.
2. 상징[편집]
당의 심볼은 해와 달이었다. # '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었다. # 당기는 전국 13개 도(道)를 상징하는 햇살무늬 속에 해와 달이 들어가 있는 형상으로 천문학자 조경철이 디자인 한 것이다. 깃발 자체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의 기사를 통해 존재가 알려져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 실제 모습이 불분명했는데, 2021년 번개장터 중고물품 항목에 똑같은 도안에 한자 新政이 새겨진 신정당 당기가 올라오면서 실체가 밝혀지게 되었다. # 하늘색 바탕에 금색 글씨가 특징이다.
3. 역사[편집]
3.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당시 박정희 정권 때 친여 성향인 인물들이 많았다. ‘때 안 묻고 지성 있는 양심적인 인사들의 정당’, ‘여야 극한대립의 지양을 추구하는 중용의 제3세력’이 될 것임을 천명하였지다. 사실상 1981년 3월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를 노리고 만든 정당. 김갑수 대표가 전국구 1번으로 나섰다.
3월 13일, 부산직할시 북구에서 무투표 당선을 가져온 민권당 후보의 사퇴에 반발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
하지만 이대엽, 이원형 등 2명의 당선자만 배출하였다.
3.2. 합당과 소멸[편집]
이후 군소정당이 되었다.
1981년 5월 20일, 국회 회기를 앞두고 정부 보조금 888만원을 받았다. # 그러나 이는 전체 국고보조금의 2.2%의 규모에 불과했다.
1981년 7월 17일, 대변인 성명으로 청소년 전담 정부 부처 신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
1982년 3월 민주사회당과 통합하여 신정사회당(약칭 신사당)이 되었다.
이외에 아폴로 박사 조경철 등이 이 정당에 속하였다.
1982년 3월 24일 이대엽 부총재와 4명의 지구당 위원장이 합당에 반대해 탈당하였다. 이대엽 의원은 신정당 주도 통합이 아니라 민주사회당의 당세만 확장시키는 합당에 반대한다며 탈당 이유를 밝혔다.[2] 이대엽 부총재는 이후 한국국민당에 입당하여 재선하였다.
4. 역대 지도부[편집]
5. 정강과 정책[편집]
(4) 자유민주주의는 인류가 도달한 최선의 단계임을 확신하고 민주정치제도의 확립을 기한다.
(6) 자유경제체제를 기본으로 하되 국가실정에 입각한 합리적 계획성을 가미하여 착실한 경제발전을 기한다.
[1] 현 주소는 새문안로 58로, LG 광화문빌딩 자리다.[2] 20년 뒤 성남시 시장이 된다. 1935년생으로 당시 벌써 47세였다. 대부분의 정치 이력이 1987년을 넘지 못하는 제5공화국의 군소정치인 중에는 특이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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