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영(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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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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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박창준(Park Chang Joon)
활동명
신주영(Shin Joo Young)
출생
1977년 12월 17일 (46세)
대전광역시 서구
국적
대한민국
종족
저그
부종족
프로토스
現 소속
무소속
ID
Honest[SG]
소속 기록
무소속
1999-01-01 ~ 1999-07-01
KTF 매직엔스
2004-11-01 ~ 2005-03-01

1. 개요
2. 수상 경력
2.1. 프로게이머 이전 시절
2.2.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시절
2.3. 입대
2.4. 전역 후
3. 그가 남긴 것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국내 최초의 프로게이머이자 이기석, 임요환, 김태형, 봉준구 등과 함께 전설적인 스타크래프트 1세대 프로게이머였다. ID는 Honest. 종족은 저그프로토스.

참고로 신주영은 본명이 아니다. 본명은 박창준이며 좋아했던 누나의 이름을 예명으로 썼다고 한다. 프로게이머가 예명을 사용한 드문 사례다.[1]

2. 수상 경력[편집]


  • 1998년 12월 블리자드 시즌3 16강 래더 토너먼트 우승
  • 1999년 1월 두루넷배 TNT 스타크래프트 대회 준우승
  • 1999년 4월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 시즌1 8강
  • 1999년 제3회 KPGL 스타크래프트 단체전 준우승
  • 1999년 넷클럽배 스타크래프트 개인전 우승


2.1. 프로게이머 이전 시절[편집]


고향인 대전에서 상당한 실력을 가진 격투 게임 게이머로서(자격) 활동했다. 당시 유행하던 버추어 파이터, 스트리트 파이터, 아랑전설 등의 게임에 능통했다고 한다.[2]

당시 격투 게이머들은 지금과 달리 자료 공유 시스템이 부족하여 상당수의 실력파들이 독자적으로 연구를 했는데 신주영도 자신이 콤보를 직접 연구하여 친분 있는 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한다.


2.2.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시절[편집]


이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던 1998년부터 게이머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시절에는 저그였으며, 브루드 워가 출시된 이후로는 프로토스로 플레이했다. 별명은 Fast finger.[3] 미국 프로게이머 리그(PGL)에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등록되어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다.[4]

여기서 더 발전해서 팬층을 거느리게 되자 PC방 홍보수단으로 특정 PC방에서 게임을 하면 월급을 주는 식으로 발전한 것이 초창기 프로게이머였다. 당시 신주영이 소속되어 있던 PC방이 후술할 '슬기방'[5]이다. 프로게이머계에서 유일한 개척자는 아니지만, 게임을 업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이니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는 1998년 12월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여 세간의 큰 화제를 모았다.[6]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이기석이 CF 스타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1999년, 신주영은 군입대를 하게 되면서 프로게이머 경력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군입대 이후에 자잘한 논란거리가 나왔고, 이기석과 마찬가지로 어뷰징 논란이 일면서 이미지에 있어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제대 이후에는 사실상 활동이 멈췄다.[7] 그러다가 2004년 KTF 매직엔스에 입단하면서 복귀를 선언하지만, 스타판은 이미 신주영이 활약하던 시기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2005년 하릴없이 은퇴하게 된다.


2.3. 입대[편집]


한창 활동하던 1999년 8월 군에 입대했으며, 이후로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입대 전 프로게이머로 활동했기에 16시간 내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해서 군대 훈련소에서 몸을 혹사했는지 자대배치 받고 얼마 안 되어 후송을 갔고, 휴가 때마다 게임을 즐기느라 복귀일을 맞추지 못해 9개월간 국군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8] 같은 시기에 군생활 했다는 이의 증언에 따르면 사람은 착한데 머리속에 스타크래프트 밖에 없었다고.


2.4. 전역 후[편집]


2002년 군 전역 (제대는 예비군 훈련까지 마무리했을 때 사용) 직후 신주영의 부활을 놓고 언론의 관심이 대단했고 국내 최초로 1억 연봉계약설이 나돌았으나 게임계의 살아있는 신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몇몇 이들과 공백기로 인한 본인의 뒤쳐진 게임실력으로 끝내 부활에 실패했다. 이후 주위 지인들과도 연락이 두절되었고 협회에서 실시하는 정기 소양교육에 여러 차례 불참해서 제명되었다. 이 시점의 신주영은 스타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그랬던것으로 보인다.

2004년 10월 KTF 매직엔스에 입단했다가 2005년 4월에 다시 은퇴했고 이후 코치 제의도 들어왔으나 거절, 고향인 대전에서 PC방을 개업했다.

2016년 인벤 인터뷰에 따르면 리니지를 플레이하면서 개인방송을 진행했으며, 4월 "당분간 개인방송 쉽니다"라는 공지를 걸었다.

2021년에 알려진 근황으로 고향인 대전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작은 사업을 운영중이라 한다.


3. 그가 남긴 것[편집]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TV 방송되기 시작한 1999~2000년에 전성기를 보낸 이기석에게 인지도 면에서 밀려, 많은 이들이 '프로게이머의 원조'하면 이기석을 많이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신주영 역시 한국 프로게임(e스포츠)계의 살아있는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SG팀의 막내 이기석은 신주영의 빌드를 따라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신주영에 대한 플레이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군대를 간 시점부터 대회가 TV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TV 방영에 의해 이기석이 프로게이머의 원조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하나 스타크래프트에 일정이상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신주영이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게이머임을 알고있다.

주로 연습하던 PC방인 '슬기방'의 이름을 따 창단한 '청오정보통신 슬기방'(SG) 팀에서 활동하였으며, SG 소속으로 1999년 4월 KPGL 스타크래프트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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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타크래프트 공략집인 '스타크래프트 무작정 따라하기'를 발매했다.[9]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당시 수많은 '스타 관련 책'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거의 최초로 등장한 '게임 공략 메뉴얼'로 당시 2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스타크래프트의 간략한 역사와 종족별 특징과 캠페인 공략, 각종 주요 빌드, PC방 가는법과 IPX 멀티플레이를 하는 방법, 거기다 저자인 본인과 쌈장 이기석과의 대결영상을 수록한 부록CD를 제공하는 등, 지금 보아도 상당히 알찬 구성으로 되어 있다.

소개된 주요 빌드들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히 유용한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게임에 리플레이 기능이 없었고 인터넷에서도 게임 커뮤니티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적화된 빌드나 변칙적인 전략을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조차도 쉽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헌데 이 책에서는 종족별로 각종 전략의 빌드를 일꾼 수와 건물을 짓는 순서, 운영 방법까지 자세하게 정리해놓았기 때문에 스타 초보들뿐만이 아니고 어느정도 실력이 있는 게이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일반 게이머들 수준에서는 빌드만 따라해서 모은 병력으로 러쉬를 가도 필살기처럼 쓸 수 있던 시기였다. 4드론, 패스트 다템 등 스타 초창기에 있었던 주요 빌드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으며, . 특히 저그의 1.08 패치 이전 확장의 개념은 저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3해처리와 유사하다.[10] 또한 빅터 마틴, wayne chiang같은 외국 프로게이머에게 배워온 빌드를 수록하기도 했다.

다만 분량 때문인지 흥미를 위해서인지 다소 개성이 강한 예능성 전략들도 수록되어 있다. 생마린 40~50기를 동원한 러시방법도 소개되어있고 마린 한부대에 베슬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걸은 일명 '수퍼 머린'전략도 있다. [11] 뮤탈 컨트롤이 발생하기 전이라 뮤탈의 활용은 저글링+뮤탈에만 간혹가다 쓰이고, 멀티에서 미네랄 양쪽끝과 커맨드 옆에 벙커를 지으면 공중유닛을 '완벽 방어'할 수 있다는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저그 상대로 스카웃 1부대를 모아서 오버로드를 잡는다는 전략도 있었다. 또한 출간시기가 오리지날과 브루드워가 공존하던 시기였기에 '오리지날 전용' 전략이 수록되어있다. 브루드워 편 전략도 소개되어있는데, 마린 메딕의 바이오닉 테란 조합, 본진 러커 난입, 커세어의 오버로드 사냥, 골리앗 사업, 디바우러의 사용법 등이 나와있다. 이 중에 골리앗 사업, 바이오닉 테란, 커세어의 오버로드 사냥은 2022년인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시대를 앞서간 서술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록 CD에는 '스피드 웹'이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화선'을 연결해서 인터넷 통신으로 상대방과 배틀넷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1시간당 1400~1600원의 전화료가 나오는데 당시는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가 공존하던 시기로 ADSL, 메가패스가 등장하지 않았을 무렵이었기에 그렇게 배틀넷을 즐겼던 것.

1.08 패치에 맞춘 개정판이 나오기도 했다. 대형 서점이나 옛날 책을 주로 파는 곳 위주로 찾아보면 구할 수 있을지도.

그의 저서를 보다보면 유닛을 부르는 명칭이 독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린 - 머린, 시즈 탱크 - 시지 탱크, 드랍십 - 드롭십, 서플라이 디포 - 서플라이 데포우, 뮤탈리스크 - 무탈리스크, 울트라리스크 캐번 - 울트라리스크 케이번, 질럿 - 젤럿, 드라군 - 드러군, 옵저버 - 업저버(옵저버터리도 마찬가지), 파일런 - 파일론, 포톤 캐논 - 포턴 캐논 등이 있다.[12] 물론 이 중에 몇몇 유닛은 몇몇 다른 게이머도 동일하게 부르기도 하는데, 마린과 질럿은 동세대 게이머였던 최진우도 똑같이 칭했고, 뮤탈리스크는 안기효아구가 무탈리스크라 부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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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시에 프로게이머 겸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던 임영수와 소설 스타크래프트를 쓰기도 했다. 스토리는 오리지날 스토리로, 태사다르초월체와 자폭했을 때까지인데 1권만 신주영, 임영수가 쓴 걸로 되어있고 2권 이후는 다른 사람이 쓴 걸로 되어있다.[13] 이것도 구하기는 힘들고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에 가보면 간간히 볼 수 있다.

[1] 유일하진 않았다. 초창기 스타크래프트 여성 프로게이머 장미도 본명이 김혜섭이었으나 장미로 활동했고, 워크래프트 3 프로게이머 김대호도 자기 아이디였던 쇼타임을 아예 예명으로 쓰면서 활동한 사례가 있다. 또한 최수범도 프로게이머 활동중에 정식으로 개명 절차를 밟고 최우범이라는 본명을 찾았으나 선수 은퇴를 할 때까지는 선수 등록 당시에 썼던 이름이던 최수범으로 활동했다. 최우범의 경우 할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호적에 올릴 때 宇를 守로 오기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오랫동안 최수범으로 살다가 개명을 통해 원래 이름을 찾은 케이스.[2] 어렸을 적의 그가 오락실 게임비 50원이었던 시절에 게임실력이 워낙 좋다보니 원코인으로 장시간 게임기 앞에 죽치고 앉아있는것을 보다 못한 오락실 업주가 호통치며 강퇴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3] 최근 선수의 별명들이 해설자들의 설정에서 나오는데 반해 신주영의 별명은 외국인들이 직접 붙여준 것이라 의미가 남다르다.[4] 참고로 세계 최초의 프로게이머는 트래시 펑이다.[5] 슬기방은 부산에서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신촌 연세대학교 앞에 위치한 독수리빌딩에 지점을 내면서 유명세를 탔다.기사 1, 기사 2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쯤 PC 게임잡지를 열심히 사 모은 사람이라면 슬기방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6] 이 대회에서 신주영은 16강에서 김태형을 2:0으로 꺾고 8강에서 이기석을 2:1로 꺾은 뒤, 4강과 결승에서는 외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게이머들을 모두 꺾고 우승하였다.[7] 사실 2002년 iTV 명인전에 출연해 이기석과 한 경기 치러 불과 5분만에 GG친 적이 있다. 이 때면 이기석도 이미 퇴물이 된지 오래였건만... 또한 MBC GAME에서 MBC 명인전이라는 프로로 이기석, 국기봉과 같이 올드 게이머로 출연하여 후배 프로게이머였던 김정민, 장진남과도 경기하였지만 패배하였다. [8] 다만 다행히도 전과기록은 남겨지지 않았다. 자대의 군 간부들이 상급부대에 선처를 빌었고 상급부대에서도 "신주영 이병/일병/상병/병장은 누구를 때렸거나 가혹행위 등 병영부조리를 저지른 게 아니라, 단순히 컴퓨터 게임에 미쳐서 휴가 복귀일을 맞추지 못한 것이기에 전과기록은 약간 과하다."라는 논지를 통해 이를 받아들였기에 전과기록은 면했다.[9] 출판사 길벗사의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 중 하나로 냈다.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는 지금도 있지만 게임 관련 무작정 따라하기는 신주영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10] 지금 3해처리와 유사하게 스포닝풀 + 3해처리의 개념이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전엔 이 전략을 주로 써서 자신이 '맵핵 유저'로 의심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효과적이었던 전략이란 소리.[11] 그러나 저 디펜시브 매트릭스 스킬은 현재에 들어서는 이레디에이트 못지않게 상당히 자주 애용되는 스킬이 되었다. 토스의 러시를 막기 위해서 시즈탱크 한마리에 디펜시브를 걸어서 시간을 벌거나 드랍십에 디펜시브 메트릭스를 걸기도 하고, 마린 한부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수의 마린에게 디펜시브를 걸어서 성큰 밭을 뚫어버리는 '개량된(?) 수퍼 머린' 전략이 나오기도 했다. 겉으로 봐서는 엽기 전략인 것처럼 보였더라도 현재 메타를 생각해보면 시대를 넘어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뛰어났던 셈.[12] 그 밖에 배틀크루저의 이명인 베헤모스를 비히모스라 부르기도 했고, 영웅 유닛의 경우에는 아크튜러스 멩스크 - 아크러스 멩스크, 사미르 듀란 - 자미르 듀란, 태사다르 - 테서더, 피닉스 - 페닉스 등이 있다.[13] 신주영은 1권만 이름을 올렸고, 변성철, 문상헌, 임영수가 들어갔다 나갔다하면 5권까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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