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

최근 편집일시 :



파일:external/img.newspim.com/20120926000049_0.jpg
농심그룹 회장
농심그룹 창업

1대 신춘호

현직

농심그룹 초대 회장
신춘호
辛春浩


파일:external/www.ilyosisa.co.kr/70539_12521_115.jpg

성명
신춘호(辛春浩)
출생
1930년[1] 12월 1일
경상남도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사망
2021년 3월 27일 (향년 90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서울대학교병원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본관
영산 신씨
부모
아버지 신진수 어머니 김필순
형제자매
5남 5녀 중 3남
[상세]
신격호[1](1921 ~ 2020)
형 신철호(1923 ~ 1999)
동생 신선호(1934년생)
동생 신준호[2](1941년생)
동생 신정희(1946년생)

배우자
김낙양
자녀
슬하 3남 2녀
[상세]
장녀 신현주(1955년생)
장남 신동원(1958년생)
차남 신동윤(1958년생)
삼남 신동익(1960년생)
차녀 신윤경(1968년생)

신체
180cm
학력
경남중학교 (졸업)
동아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법학과 / 학사)

율촌(栗村)

1. 개요
2. 생애
3. 기업 활동
3.1. 작명가 신춘호
3.2. 사망
3.3. 제품명 짓는 회장님
4. 사건/사고
5. 수상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농심그룹 창립자 및 초대 회장.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둘째 동생이며 원래는 형이 운영했던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공업 사장이었지만 1965년 롯데그룹을 탈퇴하고 롯데공업을 계열분리하여 농심을 설립하였다.


2. 생애[편집]


1932년[2] 3월 27일, 울산광역시에서 신격호의 둘째 남동생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혼란 속에 경찰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3세에 동아고등학교, 27세에 동아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3], 학업과 병행하면서 국제시장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당시 유통기한이 지난 을 싸게 판매하려다가 실패한 뒤로 식품의 가격보다 질을 우선시해야 함을 알았다. 그리고 형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갈등이 생기면서 1965년 롯데그룹에서 떠나 롯데공업을 세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2대째에 걸쳐 벌어진 롯데 가문 형제의 난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다.[4]


3. 기업 활동[편집]


국민 라면으로 유명한 신라면을 출시해 라면 업계 판매 1위 자리를 단숨에 거머쥐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신라면을 출시하기 전부터 안성탕면, 농심 너구리를 출시하며 당시 한국 라면 업계 부동의 1위였던 삼양을 바짝 뒤쫒다가 마침내 거둔 승리였다. 국물 라면에 이어 한국 최초의 짜장 라면인 짜파게티와 각종 스낵으로 사업을 넓혔다.

굵은 면발의 고급 짜장라면 짜왕을 출시했다. 짜왕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국내 라면 시장 부동의 1위인 신라면에 이어 2위에 오를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2020년대까지 중국 전역에서 1조 원어치 백산수를 팔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형과 사이가 안 좋은 것과는 별개로 범롯데가의 다른 가족들처럼 언론에 얼굴을 잘 내비치지 않는데, 신춘호 회장은 유독 심한 은둔형 스타일이다. 그동안 농심그룹 신년사를 직접 연설한 적이 없었으나, 창립 50주년이 되어서야 나서서 직접 소감을 밝혔다. 역시나 그가 나온 사진은 없었다.[5][6]

2021년 2월 사내이사에서 연임을 포기하면서 56년만에 농심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미 농심그룹의 대표이사는 장남 신동원이 맡고 있었고 본인은 회장직만 갖고 있었지만 사내이사에서도 물러나면서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그리고 본인도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신동원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3.1. 작명가 신춘호[편집]


특이하게도 농심에서 판매하는 유명 제품 중에는 신춘호 회장이 제품명이나 제품 광고 카피를 직접 지은 사례가 많다. 대한민국 부동의 원톱 라면인 신라면은 "한국인 입맛에 맞는 얼큰한 라면"이라는 이미지와 농심 오너로서의 자존심을 걸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본인의 성씨 글자인 매울 신 자를 직접 썼다. 특히 신라면 광고 카피인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부터 시작해 신라면의 제품 포장 디자인까지 신 회장이 일일이 다 손을 썼다고 한다.

새우깡 역시 신춘호 회장이 지은 이름인데 신춘호 회장의 막내딸인 신윤경이 어릴 적 민요 아리랑을 부를 때 "아리 아리 아라리요"라고 불렀던 것에서 착안해 '새우깡'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새우깡이 대히트를 치면서 이후에 나온 스낵 제품에는 유독 "깡"자 돌림으로 끝나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양파깡, 고구마깡, 감자깡 등등. 이런 작명 덕분에 나중에는 깡 신드롬도 가능했다 여기에 짜장 라면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짜파게티라는 이름도 신 회장이 작명했는데 스파게티처럼 짜장 소스를 면에 비벼먹는다는 방법에서 착안해 작명했다고 한다. 이 단순하지만 찰진 이름들은 이후 광고 CM송을 타고 전국적으로 불리우게 된다.


3.2. 사망[편집]


파일:신춘호 농심 회장 영결식.jpg
2021년 3월 27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형 신격호가 세상을 떠나고 바로 다음 해였으며, 1932년생이 맞다면 만 89세 생일[7]에 사망한 것이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오랫동안 지병 치료를 받아왔고 사망하기 전 치료에 힘써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자 병원 측에 10억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롯데그룹가족들답게 언론에 얼굴을 잘 내비치지 않는데 이분은 유독 심한 은둔형 스타일이다. 그가 나온 사진이 거의 전무할 정도로 위에사진 하나만 나와있을 정도다. 그동안 농심그룹 신년사를 직접 연설한 적이 없었으나, 창립 50주년이 되어서야 나서서 직접 소감을 밝혔다. 역시나 그가 나온 사진은 없었다.[8][9]


3.3. 제품명 짓는 회장님[편집]


특이하게도 농심에서 판매하는 유명 제품 중에는 신 회장이 제품명이나 제품 광고 카피를 직접 지은 사례가 많다. 대한민국 부동의 원톱 라면인 신라면은 "한국인 입맛에 맞는 얼큰한 라면"이라는 이미지와 농심 오너로서의 자존심을 걸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본인의 성씨 글자인 매울 신자를 직접 썼다. 특히 신라면 광고 카피인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부터 시작해 신라면의 제품 포장 디자인까지 신 회장이 일일이 다 손을 썼다고 한다.

새우깡 역시 신 회장이 지은 이름인데 신 회장의 막내딸인 신윤경 씨[10]가 어릴 적 민요아리랑을 부를 때 "아리 아리 아라리요"라고 불렀던 것에서 착안해 '새우깡'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새우깡이 대히트를 치면서 이후에 나온 스낵 제품에는 유독 "깡"자 돌림으로 끝나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양파깡, 고구마깡, 감자깡 등등. 여기에 짜장 라면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짜파게티라는 이름도 신 회장이 작명했는데 스파게티처럼 짜장 소스를 면에 비벼먹는다는 방법에서 착안해 작명했다고 한다.


4. 사건/사고[편집]


2013년 6월 17일 지점별로 부과된 매출목표를 채우기 위해 농심 직원들이 이른바 삥처리를 강요해 왔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은 2014년 7월 농심 본사에 투입해 관련 회계자료를 입수했다. 비자금 조성 혐의를 조사하는 팀을 만들어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농심이 판매목표를 할당하면서 일정수준 이상의 판매를 강제한 행위로 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5. 수상경력[편집]


  • 철탑산업훈장 (1984)


6. 가계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 롯데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범 롯데가 참고.

동갑내기인 부인 김낙양씨 사이에 슬하 3남 2녀를 두었다. 이 중 장남 신동원과 차남 신동윤은 일란성 쌍둥이라고 한다.[11]

농심그룹 경영권은 부회장인 장남 신동원이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차남 신동윤은 현재 율촌화학 부회장, 3남 신동익은 메가마트 대표를 맡고 있다. 막내사위는 서성환 창업주의 아들 서경배아모레퍼시픽 회장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6 06:27:06에 나무위키 신춘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호적상 1932년생이나, 주요 언론사에는 1930년 12월 1일생이라서 향년 92세로 별세했다고 주장한다. [2] 주류 언론들에 보도된 것처럼 1930년 12월 1일생일 수도 있다. 원래 이 세대가 호적상 나이랑 실제 나이, 주민등록상 나이가 서로 맞지 않고 오락가락한다. [3] 맏형 신격호는 일본으로 돈 벌러 나간 상태여서 국내에 없는 상황이고 둘째형인 신철호는 평소에 건강이 좋지 않아 돈을 벌수 있는 건강상태가 아니었다.[4] 신격호와는 아예 의절한 관계다. 선친에 대한 제사도 따로 지낼 정도라고 한다. 결국 신격호-신춘호 형제는 이승에서 끝내 화해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신격호의 사망 당시 신선호 산사스식품 사장이나 신준호 푸르밀 사장 등 다른 동생들은 신격호의 빈소를 찾았지만 신춘호는 영결식까지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아들 신동원-신동윤 형제를 대신 빈소에 보냈다.[5]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막내 아들 조욱래 DSDL회장, 하이트진로 회장 박문효 등이 있다.[6] 신춘호 회장이 뉴스 영상에 등장한 적이 있는데 바로 부친인 신진수의 묘소 도굴사건 때문이었다.[7] 구순을 맞이하는 날이 된다.[8]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효성그룹가 막내아들 조욱래, 하이트진로산업 회장 박문효 등이 있다.[9] 신춘호 회장이 뉴스영상에 등장한적 있는데 바로 부친 묘소 도굴사건 때문이었다(...).[10]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부인.[11] 둘 다 고려대학교 76학번으로, 신동원은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신동윤은 산업공학과이다. 신춘호의 3남 신동익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79학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