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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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20년부터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K리그 최초로 60-60 클럽을 달성한 성남 일화 천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등번호는 7번이었다.[4] 별명은 '그라운드의 여우'.
현역 은퇴 이후로는 2009년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 대행으로 시작해 스페인 피스컵에서 스페인의 세비야FC와 0:0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켰고[5] 감독으로 AFC챔피언스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2010클럽월드컵 4위, 2012피스컵에서 잉글랜드의 선덜랜드AFC를 격파하며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K리그 홍보대사, TBS 교통방송의 해설위원 등을 맡았다.
관운(官運)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 초기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2015아시안컵 준우승 달성하였고, 그 후 23세 이하 대표팀 이광종 감독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진출해서 독일과 3:3 승점 1점 획득, 금메달 디펜딩챔피언 멕시코에게 승리 및 탈락시키며, 올림픽 8강 5위로 마쳤고, 그 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던 안익수가 U-20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한, 2016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2승 1패 대회 9위로[6] 탈락의 수모를 당해서 갑자기 경질된 뒤[7] , 리우 올림픽에서의 지도력을 검증받은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신태용이 이끈 U-20 대표팀은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U20 최다우승팀 아르헨티나[8] 에게 승리 및 탈락시키며, 16강 10위로 마감, 그 다음에는 울리 슈틸리케가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중국과 카타르에게 패하며 갑자기 경질되면서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급하게 임명되며 힘겹게 월드컵 진출시켰고 그 후 2017일본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하며,[9] 2006월드컵 우승 리피 감독의 중국까지 제치고 우승[10] 하였다.
감독 커리어 내내 조별리그 탈락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성남 일화 감독 시절 한요윤으로 요약되는 폭망의 2012시즌에서조차 신태용의 성남은 2012 AFC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다만 A대표팀 감독으로 도전한 러시아 월드컵전까지 5승 3무 1패 13득점 7실점이라는 좋은 결과와 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4-4-2 포메이션 대신 월드컵에서는 브라질과 공동 8강 스웨덴[11] 상대로 4-3-3이라는 도박수를 던졌다가 너무 수비적으로 경기하다가 아쉽게 PK 0:1패하는 등[12] 1~2차전에서 패배하면서 여론의 질타도 많이 받았고 2라운드 진출에는 사실상 실패한 상태였지만, 그런 와중에 마지막 3차전에서 주 포메이션인 4-4-2를 들고 나와 원정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피파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 요아힘 뢰브 감독의 독일을 2:0 승리 및 탈락시키면서 1승 2패 2018월드컵 19위를 기록했다.[13]
독일전의 통쾌한 승리로 신태용 감독 재계약론도 힘을 얻었지만, 축구협회에서는 김판곤을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앉히면서 슈틸리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검증된 외국인 감독을 선임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원했다. 체계적인 국대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했고 그 결과 파울루 벤투에게 바통을 넘기게 되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편집]
신태용이 K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범상치 않다. 현역 시절 행적을 따라가보면 윤상철[14] 이나 울산 현대의 레전드 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이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K리그의 레전드. 참고로 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 얻은 우승 트로피의 숫자는 K리그 최다이며 2010년 기준, 여기의 90% 이상이 그가 선수 시절에 얻은 업적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일화 천마[15] 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화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당시 일화 감독은 이름난 맹장 박종환이었고, 발레리 사리체프, 고정운, 이상윤, 박남열 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더 신태용이 있었다. 특히, 박남열과의 황금 콤비는 지금도 골수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찬양을 받을 정도다.
1995년 신태용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했고, 리그 MVP를 차지한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여담으로 이 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는다.
1996년 일화 천마는 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적한다. 또한,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일화는 꼴찌까지 떨어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신태용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이 때는 아예 리그 득점왕까지 먹었는데, 미드필더로 뛰면서 먹은 득점왕인데다가 K리그 MVP를 수상했다. 특히, K리그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것은 2020년 기준 신태용과 이동국(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단 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며, 신인상과 MVP, 득점왕을 모두 수상한 적이 있는 경력 역시 신태용과 이동국, 그리고 정조국 단 세 사람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또한, 라피도 컵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2번째로(첫 번째는 1986년 정해원) 기록한다. 역시, 그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이때까지 신태용은 프로데뷔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7년 천안 일화는 이장수 감독 대신 벨기에 출신의 레네[16] 감독을 영입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 때 독일 분데스리가의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 했으나 무산이 되었다. #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같은 해에 일화 천마는 연고지를 성남시로 옮겨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한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성남은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K리그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신태용은, 리그 3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2003년 K리그 최초로 60득점 60도움을 기록한다. 또한 팀이 성남 일화로 재도약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2019년 현재까지 60-6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신태용, 에닝요, 이동국, 몰리나, 염기훈 단 다섯 뿐이다. 1979년생 김은중이 50-50 기록을 달성했고, 두 번째 60-60클럽 가입은 2013년에 에닝요가 달성했다. 이어서 이동국이 2014년 7월 20일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K리그 통산 세 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2003 시즌에는 K리그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장면 2개를 선사한 적도 있다. 하나는 모란(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마계대전 경기.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17] 가 코너킥을 차러 가던 신태용을 향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자, 신태용은 그걸 집어들어서 원샷을 하고 따봉을 선사해 준 일화가 있다. 또다른 경기인 대전 시티즌 원정경기에서는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키고,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김해운을 대신하여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두 골을 먹기는 했으나, 팀은 3-2로 승리했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한 은퇴식조차 갖지 못해서 성남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신태용은 성남에서 더 뛰고 싶어서 플레잉 코치도 괜찮고 연봉도 구단측에 맡기겠다는 등 재계약에 의욕적이었는데 불발된건 좀 의문이다.#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신태용이 남긴 도움 기록은 무려 2015년에 가서야 염기훈이 경신한다.
2017년 현재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단 8명 뿐이다. 데얀(141골) 이동국(180골), 김은중(120골),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윤상철(101골)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포워드지만, 신태용은 미드필더였다. 사실 꿈의 100골 달성도 가능했지만, 100번째 골은 필드골로 넣겠다는 공약 때문에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18]
또한, K리그1 시즌 베스트11 최다 수상자(총 9회 수상)이며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장 기록도 신태용이 세웠다. 이 기록은 한동안 최다출장 기록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한 선수는 김병지 골키퍼로 2006년에 갱신했다. 이후 필드 플레이어로는 2007년에 김기동이 기록을 깼으며, 최고 출장 기록은 김병지[19] 가 보유하고 있다.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최고 출장 기록, 최고령 골, 최고령 도움은 김기동이 가지고 있다.[20]
한편, 2023년 연맹이 기록 세분화와 기록 체계 개편을 하는 도중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의 누락된 기록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신태용의 골을 추가할 가능성이 스포츠조선 발 보도로 제기되고 있다. 만일 기록이 추가될 경우 신태용의 통산 기록은 405경기 102골-69도움이 될 전망.
2.1.2. 퀸즐랜드 로어 FC (2005)[편집]
그리고 2005년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해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그 해 9월에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며 곧바로 퀸즐랜드 로어 FC의 코치가 되었다. 이때 알게 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를 나중에 성남 감독으로 부임한 뒤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 그리고 선발 수비수 겸 주장으로 중용했다.
그가 코치를 맡을 당시 2006년 퀸즐랜드에 갓 부임한 감독이 프랭크 파리나였는데, 언어 문제와 지도 방향에 이견을 보여 그다지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파리나 감독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파리나 감독이 2016리우 올림픽 16강 조별리그에서 피지 축구올림픽대표팀을 맡으면서 U-23 사령탑으로 서로 재회하게 됐다. 결과는 한국이 8-0으로 대승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다만, 이렇게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해 대표팀 커리어는 아쉬움이 남는다.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친[21]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K리그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에서 통산 23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리그에서 신태용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다.
1992년에 아랍에미리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지만 1994 FIFA 월드컵 미국[22] 에는 뛰지 못했고, 국가대표로서 유일하게 참가했던 메이저 대회인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23] 8강 이란전의 2:6 참패 탈락(7위)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신태용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없었다.[24]
차범근 감독 체제에서 1997년 상반기 평가전까지는 뽑혔으나[25] 월드컵 최종예선 때부터는 제외되었고, 이후 허정무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 때에도 소속팀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도 대표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당시 신태용은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였음에도 여전히 K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26]
혹자들은 신태용이 레전드급 선수이면서도, 기본기나 퍼스트 터치와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말들도 한다.[27][28] 또 당시 한국 축구의 플레이메이커는 홍명보로 고정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K리그에서 뛰어난 미드필더라고 해도 홍명보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국가대표에서 미드필더로 뛸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신태용은 윤정환과 함께 그런 류의 대표격인 선수였고,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신태용/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기록[편집]
4.1. 선수[편집]
4.1.1. 대회 기록[편집]
- 영남대학교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1991
-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 K리그: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 FA컵: 1999
- 리그컵: 1992, 2002, 2004
- 슈퍼컵: 2002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5
- 아시안 슈퍼컵: 1996
-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6
- A3 챔피언스컵: 2004
4.1.2. 개인 수상[편집]
- K리그 MVP: 2001
- K리그 영플레이어상: 1992
- K리그 득점왕: 1996
- K리그 골든볼: 1994
- K리그 베스트 XI: 1992, 1993, 1994, 1995, 1996, 2000, 2001, 2002, 2003
-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2013
- K리그 명예의 전당: 2023
4.1.3. 통산 성적[편집]
4.1.3.1. 국가대표[편집]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4.2. 감독[편집]
4.2.1. 대회 기록[편집]
- 성남 일화 천마 (2009~2012)[29]
- FA컵: 2011
- AFC 챔피언스 리그: 2010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15~2016)
-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6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4 / 2017~2018)
- EAFF E-1 챔피언십: 2017
-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2020~)
- AFF 챔피언십 준우승: 2020
- 인도네시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20~)
- 동남아시안 게임 동메달: 2021
- AFF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23
4.2.2. 개인 수상[편집]
5. 해설 위원 경력[편집]
2018년 12월 20일, JTBC의 해설 위원으로 선임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시안컵 동안만 단기간으로 맡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조금씩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려지고 있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24강 조별리그 필리핀전부터 해설을 맡게 되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신태용 본인에게도 쓰라린 기억이 있는 땅인데, 상기한 국가대표 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23년 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있었던 한국 축구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였던 그 경기에 신태용 본인이 출전하여 골까지 기록했었고, 이 대회의 참패 이후 국가대표팀과 멀어지게 된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마지막 날에 홍보 영상이 공개 되었다.#
공개 직후 얼마되지 않아 지워졌다가 재업로드 되었는데 마지막 대사가 수정되었다. 'JTBC가 중계하면 맨날 진다며?'라는 언급이 실현될 줄은 몰랐다.
첫 해설의 평은 상당히 안 좋다. 감독 출신 답게 경기를 보는 안목도 있고 설명을 하는 능력도 괜찮은데, 문제는 발음이 장점을 다 잡아먹을 정도로 굉장히 안 좋다. 시청자들에게 경기 상황을 전하는 입장에서 발음의 중요성이 매우 높은데 정작 이것이 잘 안되고 있다.[30] 그런데 이상하게 아시안컵에서 벤투호의 경기력이 안 좋은 상황이라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다행히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중국전부터는 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발음이 보다 정확해져 전의 부정확한 발음으로 잘 전달되지 않아 좋은 설명을 깎아먹던 점이 훨씬 나아졌다. 해설진간의 소통이 보다 원활해지기도 했다. 이때 임경진 캐스터가 들은 신태용 위원의 발음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카타르전 이후 다시 재평가를 받는 중. 신태용이 상대의 전술에 따라 유연하게 전술을 바꿔 나갔고 점유율에 대한 집착이 없이 철퇴 축구로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던 것에 비해[31] 벤투가 점유율과 같은 멤버들로의 4-2-3-1 전술에만 집착해서 8강(5위)에서 떨어진 것이 대비가 크다. 해설 중에도 후반전에는 차라리 황의조와 손흥민을 투톱으로[32] 써서 수비벽을 분산시키는 쪽으로 전술을 바꾸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벤투 감독은 손흥민과 황의조를 투톱으로 기용하는[33] 4-4-2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4-1-3-2, 흔히 다이아몬드 4-4-2로 부르는 형태다.
6. 별명[편집]
- 소방수 :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팀과 U-20 월드컵 대표팀, A대표팀의 지휘봉을 급작스럽게 잡으며 얻은 별명이다.
- 맥콜라리 : 신태용은 예전에 뛰었던 팀의 모기업에서 생산하는 보리탄산음료인 "맥콜"을 본따서 스콜라리와 조합해서 만든 별명이다. 즉 스콜라리+맥콜이었다.
- 꾀돌이 : 미드필드에서 공수를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며 붙여진 별명이다.
- 난 놈 : 이 별명은 평소 저돌적인 신태용 감독에 붙은 별명 중 하나다. 신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스스로 “난 난 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신태용 감독이 스스로 좋아하는 별명 중 하나이다.
- 그라운드 여우 : 감각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로 패스할 때와 드리블 할 때를 확실히 구분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 아시아의 뢰브 쌍둥이, 가짜 뢰브 : 신태용 감독이 패션 등을 비롯해 요아힘 뢰브 감독을 따라했다는 점을 들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에 독일 언론 등지에서 붙인 별명이다. 가짜 뢰브가 이겼다면서 악몽같은 일이라고 표현 한 것이다. 이후 뢰브가 오히려 짭태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트릭좌 :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 전 직전에 인터뷰에서 나온 '트릭' 발언을 가지고 놀린 별명이었으나, 역대급 이변의 독일전을 선보인 후에는 신태용을 칭찬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그 밖에 신태용이 국가대표 시절의 행보가 나비효과를 불렀을 때도이 모두가 신태용 감독 덕분이었으며, 그가 노린 트릭이었다 등의 드립과 함께 불린다. 이 때문에 베니테스, 무리뉴, 벵거와 함께 축구계 4대 마법사라는 드립도 나왔다.
- 신의 한 수 : 2019년 연말에 뭉찬에 출연했을때 뭉찬 제작진이 트릭술사라는 별명을 순화해서 '신의 한 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 태용스트레인지 : 독일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라는 드립과 함께 시작됐으며, 심지어 "손흥민의 군 면제 달성 조건으로 월드컵을 포기하고 아시안게임에 올인하기 위해 빛을 발굴하고 다른 빛은 숨겨두어야 했다"는 역대급 드립과 함께 이 별명이 추가되었다.
7. 어록[편집]
솔직히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레저다. 배 나온 선수가 어떻게 운동선수냐. 경기 도중 자장면 먹어가면서도 할수 있는 것이 야구다. 공수교대시간 막간에 화장실서 담배를 피우는 선수까지 있는 것으로 안다. 친한 친구인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에게 이런 얘기 했더니 반박을 못하더라.
나랑 김도훈 코치가 (현역 시절에) 합작해서 넣은 골이 200개가 넘는다. 그런데, 너는 뭔데 빈둥거리냐?
- 성남 일화 감독 시절에 선수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 질책하던 잔소리였다고 한다. 신태용의 말대로, 김도훈과 현역 시절에 같이 활약하면서 기록한 득점이 200개가 넘었다.
라돈치치요? 싸가지 없는 놈이죠.
방송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그에 대한 감독의 답변.
내 차보다 훨씬 좋길래 차를 발로 한 대 차고 라커룸에 들어가 "정우 임마, 차 키 좀 줘 봐. 나 한 번 몰아보자. 차 좋으면 나도 사게."
주차장에 못 보던 신형 포르쉐가 보였는데, 알고 보니 김정우가 상무에서 제대하고 새로 뽑은 차였을 때의 반응.
오늘이 화이트 데이다. 오늘 너희들이 잘하면 경기 끝나고 애인과 웃으면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겠지만, 오늘 너희가 지면 인상쓰고 얼굴 찌푸리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선택은 너희 몫이다.
2010년 3월 14일, 성남 일화 감독 시절 인천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던진 말. 이 날 성남은 인천을 6:0으로 제압했다.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35]
[36]
트릭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난 난 놈이다.
2010년 ACL 우승 후 나온 발언, '트릭, 야구는 레저다' 못지 않게 유명한 발언 중 하나이다.[38]
한국은 월드컵 기간만 되면 3천만명이 감독이 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던 FC코리아들을 저격한 발언. 이 문장은 FC 코리아의 정곡을 찌르는 팩트인 이유가 자국리그를 무시하면서 국가대표는 축구 강국이 되길 원하는 것이 어불성실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축구 강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은 자국 리그가 약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39]
워낙 솔직하고 거침없는 언행 탓에 인터뷰 기술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관련기사
8. 여담[편집]
- 좋아하는 음악은 뽕짝, 트로트라고 한다.
- 2003년 7월 27일 대전 시티즌과의 원정 경기에서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소진한 이후 골키퍼 김해운이 부상으로 아웃되자 잔여 경기 시간 동안 골키퍼를 본 경험이 있고 이 경기에서 2실점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신태용의 K리그 통산 기록은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이 된다.
- 2012년 4월 AFC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치루는 도중, 보온병에 담긴 차를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장면이 화면에 잡히면서 친환경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다. 위 사진은 이후 팬이 제작해 보내준 머그컵[40] 을 쓰는 모습이다.
- K리그에서 박경훈 감독과 쌍벽을 이루는 K리그의 패셔니스타로 칭송받고 있다. 비록 감독 초기에는 무척 젊은 40대 초반이라 과감한 패션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군살없는 준수한 몸매에 적절하게 옷발이 받쳐준다. 여담으로, 2012년 7월 피스컵에 참가했던 함부르크의 지역 언론은 신태용 감독의 패션에 관심을 보였다.
- 선수 시절에도 팬 서비스가 훌륭했던 축구인이었다. 오른발로 코너킥을 차려다가도 "태용이형 왼발!"을 외치던 팬을 위해 왼발로 코너킥을 차기도 한 사례가 유명하다. 그 외에는 수원 삼성 원정 경기에서 수원 팬이 물병을 던지자 그걸 주워서 마시기도 했다.[41] 국가 대표 감독이 되어서도 선수들에게 팬 서비스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2017년 11월 세르비아와의 평가전 경기 시작 1시간 전 쯤 골대 근처의 잔디 상황을 홀로 확인하던 신태용 감독에게 한 축구팬이 화이팅을 외쳐주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 양준혁과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 그런지 친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친분과는 별개로 야구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다가 야구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는데, 축구팬들이 흔히 야구를 깔때 쓰는 말인스포츠가 아닌 레저라는 말의 출처가 바로 신태용이다. 나중에 달수네 유튜브에서 이 레저 발언을 얘기했는데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양준혁이 하도 쳐먹어 살이 너무 많이 찌니까 그거 놀리려고 레저 드립친거고 양준혁도 크게 웃고 넘어갔다." 라면서 나와 양준혁은 이러고 놀았다는 썰을 푼건데 그 기자가 이걸 멋대로 과장했다고. 이 레저 드립은 야구를 증오하다시피 하는 자칭 축빠들이 지금까지도 열심히 사용중이다.
- 모교인 대구공고 선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장 아끼던 선수였다. 결혼 당시 축하한다고 연희동 자택에 초대해 칼국수를 대접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신태용의 스승인 박종환 감독과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 일베가 신태용 감독이 콜롬비아 선수들에게 뇌물을 제공해 경기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
- 장남 신재원이 U-16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승우를 비롯한 당시 U-16 대표팀이 축구팬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는데, 신재원이 뛰어난 활약만 보여준다면 부자가 사이좋게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42] 하지만 신태용이 코치시절에도, 감독시절에도 발탁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쉽게 팬들이 기대한 풍경이 펼쳐지지는 못했다. U-20 월드컵에는 발탁될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었지만, 당시 감독으로 선임된 신태용이 선임 직후 신재원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재원은 2018년 FC서울과 5년 계약을 맺었으나(2019년 데뷔) 2020년에 안산 그리너스 FC에 임대되었다가 2022년 수원 FC를 거쳐 2023년 아버지가 뛰었던 성남 FC에 자유계약으로 입단, 성남도 부자(父子) 클럽이 되었다. 공격수였다 수비수로 바뀐 영향인지 아직 뚜럿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걸로 봐서는, 아버지가 냉철하게 판단한 것 같다[43] .
- 둘째 신재혁도 축구선수로, 형이 2020년 임대 신분으로 뛰었던 안산에 1년 뒤 데뷔하였고 2년 뒤 형이 2부로 내려온 성남에 입단히면서 신태용네 형제 대결이, 그것도 시즌 첫 경기부터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다.
- 국가대표에서 그리 많이 뛰지는 않았지만 친화력이 강한 성격으로 친한 선후배와 동료들이 꽤 있는 편이다. 특히 선배들에겐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한편, 위에 있는 박항서 감독과의 모습처럼 어울리는 모습이 언론에 종종 찍힌다. 단, 서로 동남아 축구에서 국가 자존심을 건 지략대결에 입씨름이 더해지며 박항서와는 소원해진 듯하다. #
- 감독직을 맡고 있을 때는 선수들과 굉장히 격식없이 친구 대하듯 편하게 해준다고 한다. 덕분에 선수들이 신태용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태용타 영상 역시 오늘 왜 그것 밖에 못했냐며 장난스럽게 질책하는 장면이라고 이야기했다.
- 축구선수로서는 크지 않은 체격에 깔끔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터프가이 기질이 있다. K리그의 레전드 외국인 사샤 드라쿨리치가 다소 거만한 기질이 있어서 일화시절에 한번 신태용 앞에서 가오를 잡다가 신태용이 사샤에게 풀스윙 싸대기를 때린 적이 있었다. 일반인 평균키 정도의 신태용이 190cm에 타고난 완력을 가진 백형을 상대로 주저없이 한방 갈길 정도로 상당한 터프함의 소유자다. 그 이후 샤샤는 신태용 앞에서는 예의바른 청년이 되었다 한다.
- 관중석에서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짤방이 있는데, 넋 나간 채 관망하는듯한 표정이라 해충갤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보통 '쪼옵쪼옵'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된다. 나중에 슛포러브에서 이 짤방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햄버거 세트를 먹으면서 선수들을 보던 중에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 컵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KFC로 추정된다.
- 인터뷰 도중 눈을 꽉 감고 찡그린 사진도 인기를 끌었다. 보통 "하나.... 둘... 셋! 꿈이다!"라는 글과 함께 대표팀이 실점하거나 처참한 경기력을 보이는 등의 상황에서 신태용이 현실부정을 하는 것처럼 쓰인다.
- 2019 AFC 아시안컵 조추첨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기 때문에 우승컵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남겼으나, 벤투호 체제로 바뀌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아시안컵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 2019년 10월 13일 박문성의 달수네 라이브에 출연해 여러가지 썰을 풀었다. 방종 직전 능숙한 별풍선 유도를 시전하며 빠른 메타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 수도권 생활이 오래되었지만 억양뿐만 아니라 어휘도 가벼운 사투리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 일본의 영화감독 츠카모토 신야와 닮은꼴이다.
- 상대했던 감독 중 가장 분석하기 까다로웠던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당시 멕시코 감독이라고 한다.
- 그 누구보다 FC코리아의 음해에 크게 시달린 인물이다. 심지어 영남대 출신임에도 연세대 파벌이라는 조작까지 당했을 정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신태용은 FC코리아 몰락의 서막을 연 인물인데, 원체 요란했던 논란 탓에 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학벌 논란이 거짓임을 알게 된데다가 탈락 위기였던 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 빠르게 수습해 베스트 11과 플랜 A를 구축하는데 성공하며 능력을 입증했고, 개막 직전까지 계속된 실험 역시 출국 직전 베스트 11 중 3분의 1 가량이 부상으로 갈려나가며 울며 겨자먹기로 실행한 것이어서[44] 월드컵 종료 이후 동정의 여론이 생겼다. 게다가 전술 자체는 괜찮았지만 이를 수행할 선수들의 역량이 부족했다거나[45] , 독일전에서는 이를 깨닫고 우리가 잘 하는 단순한 전술을 내세워 기어이 승리를 따냈다는 점 등이 주목받아 부임 타이밍이 영 안좋아서 그렇지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고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FC코리아를 위시한 이들은 끝까지 뽀록, 축협의 개 등의 인신공격을 해댔고, 축협도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기 위한 협상카드로만 써먹었다.[46] 이때 생긴 FC코리아에 대한 반발 여론은 아시안게임, 벤투호를 거치며 점점 커져갔고, 2019년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FC코리아는 거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FC코리아에 반감을 갖고 있는 축구팬들은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분'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 결혼을 일찍 했다.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당시 신태용은 대학교 축구부 훈련으로 인해 까무잡잡한 피부를 갖고있었고 유행하던 울프컷 에 빨간 나팔바지와 노란 남방을 코디했지만 연애는 잘 풀려서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자인 차영주는 KBS 아침방송 리포터와 나레이터모델 경력이 있으나 아내가 새벽스케줄 다니는 것이 안쓰러웠던 신태용이 내조에 전념해줄 것을 부탁했고 아이가 생기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한다.
- 골프 마니아로 알려져있다. 술과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놀고 마지막 차시는 신혼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골프를 배우고 나서는 일부러 경기 다음날 새벽 라운딩을 잡아서 밤에 혼자 약간 술을 마신 뒤 일찍 자고 아침 5시에 카트 없이 골프 18홀을 돌고 오후에 팀 회복훈련에 참석했다고 한다. 신태용은 자기관리가 부족해 선수생활이 짧을 것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골프 습관 덕에 결국 36세까지 현역으로 머물렀다.
- 요아힘 뢰프와 닮은점이 많아서[47] 해외 팬들(특히 독일 축구 팬들)에게 짝퉁 뢰브 취급을 받았는데 그걸 들은 뢰브 본인조차도 신태용 감독에게 짝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에서 만났을 때는 짝퉁 소리를 듣던 신태용이 원본 뢰브에게 조 최하위로 탈락(22등)이라는 대굴욕을 선사했다.독일에서는 아예 "짝퉁 요기(뢰브의 별명)가 이겼다."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 신태용이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이후, 농심에서 인도네시아 현지 시장을 타겟으로 라면 CF를 광고모델로 촬영하였는데 매우 코믹한 모습을 보여줘서 네티즌들로부터 밈이 되고 있는 중이다.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누리당 신영수 후보를 지지했었다. 이를 보아 보수정당 지지자인 것으로 보인다.[48]
9. 둘러보기[편집]
그래서 신태용은 "K리그 MVP가 이 정도 조건으로는 J리그로 가지 않는다." 같은 의미로 이야기한 것인데 K리그 MVP 출신인만큼 J리그와 비교가 되는 자존심 문제도 있거니와 높은 연봉으로 협상을 하는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후배들도 좋은 조건으로 이적을 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길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이후 달수네 라이브에서 한번 더 언급됐는데, J2리그에서 오퍼가 왔었다고 한다.[36] 속뜻은 다르지만, 기성용이 남긴 "대한민국의 주장은 중국에 가지 않는다."라는 유사한 어록이 있어 비교되기도 한다. 신태용의 경우 K리그 MVP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헐값에 이적하지 않고 본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곳을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면, 기성용은 대한민국의 주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돈을 좇기보다는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뛰며 좋은 경기력과 대표팀 주장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37] 슛포러브에서 이 발언에 대해 설명했는데, 스웨덴전에 김신욱을 내보내는 것을 스웨덴 감독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위해 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트릭은 엉뚱한 경기에서 터졌다.[38] 슛포러브에서 해명하기를 예상을 뒤엎고 ACL 우승을 이루자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줬다. 난 이렇게 난 놈 같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앞뒤 다 자르고 기사에 '신태용, 난 난 놈이다'라고 작성했다고 밝혔다.[39] 여기서 "모로코는 월드컵 4강 진출했고, 크로아티아는 월드컵 준우승도 해봤는데?" 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모로코는 이집트와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의 50개 이상 되는 국가에서도 축구 리그가 강한 나라이며, 크로아티아는 자국 리그 출신의 월드 클래스급 선수들이 셀 수 없이 많다.[40] 성남 로고와 신태용 감독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41] 훗날 슛 포 러브에 출연해 밝히기를, 선수생활을 성남에서만 한다는 보장도 없고, 타 팀의 팬에게 반감을 사는 일을 했다가 나중에 그 팀으로 이적을 하면 곤란해 질수 있으니 일부러 감정적인 대응을 안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성남의 원클럽맨이 되기도 했고, 이러한 마인드 덕에 K리그 팬들의 호감을 사서 FC코리아의 음해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했다.[42] 이렇게 된다면 김찬기-김석원 부자, 차범근-차두리 부자에 이어 세 번째로 대를 이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43] 다른 부자들도 본인이 지도자하면서 아들을 선발한 적이 없다.[44] 이 정도면 웬만한 팀은 그대로 시즌 말아먹는다. 심지어 클럽팀들도 이거보다 덜한 핵심 1~2명의 장기 부상만으로 트레블할 기세로 달리다가 고꾸라져 무관을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당시 한국은 손흥민과의 조합에 핵심이었던 주전 스트라이커 이근호, 대회 전 감독과 팬들에게 골을 기록할 것이라며 가장 촉망받던 주전 미드필더 권창훈, 주전 레프트백 김진수, 역시나 촉망받던 준주전급 센터백 김민재, 예리한 왼발 킥을 바탕으로 조커카드로 기용될 베테랑 미드필더 염기훈 등이 모조리 부상으로 나가리를 당해버린다. 심지어 본선가서도 기껏 정해놓은 레프트백 박주호와 팀 핵심 플레이메이커 기성용까지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독일전을 앞두고 전술적으로 쓸 카드가 바닥나버린 암울한 상황이었다.[45] 벤투의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이 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46] 이른바 '억까'를 하도 심하게 당하고 인도네시아 감독으로 옮겼다 보니 항간에는 신태용이 진짜 인정받아야할 부분은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란 평이 있을정도다.[47] 외모가 묘하게 닮았다.[48] 신영수는 6회 지방선거에서는 이재명에 패해 낙선했고, 20대 총선은 경선에서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