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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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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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화_Only One.jpg


파일:신화_First Mythology: 2001 1st Live Concert.jpg


정규 1집

해결사
(1998.05.09)

정규 2집

T.O.P.
(1999.04.15)

정규 3집

Only One
(2000.05.27)

라이브 앨범

First Mythology: 2001 1st Live Concert
(2001.04.01)

파일:신화_Hey, Come On!.jpg


파일:신화_My Choice.jpg


파일:신화_Perfect Ma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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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4집

Hey, Come On!
(2001.06.28)

베스트 앨범

My Choice
(2002.01.26)

정규 5집

Perfect Man
(2002.03.09)

정규 6집

너의 결혼식
(2002.12.27)

파일:신화_The Everlasting Mythology: Shinhwa 2nd Concert.jpg


파일:신화_Winter Story.jpg


파일:신화_Brand New.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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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앨범

The Everlasting Mythology: Shinhwa 2nd Concert
(2003.10.07)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3.12.30)

정규 7집

Brand New
(2004.08.27)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4-05
(2004.12.17)

파일:신화_Hey, Dude!.jpg


파일:신화_Summer Story 2005.jpg


파일:신화_Shinhwa 2005 Japan Tour Live.jpg


파일:신화_State Of The Art.jpg


디지털 싱글

Hey, Dude!
(2005.04.14)

비정규 앨범

Summer Story 2005
(2005.08.05)

라이브 앨범

Shinhwa 2005 Japan Tour Live
(2006.03.15)

정규 8집

State Of The Art
(2006.05.11)

파일:신화_僕らの心には太陽がある.jpg


파일:신화_Winter Story 2006-2007.jpg


파일:신화_Winter Story 2007.jpg


파일:신화_다시 한 번만.jpg


일본 싱글

僕らの心には太陽がある
(2006.09.07)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6-2007
(2007.01.25)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7
(2007.12.05)

디지털 싱글

다시 한 번만
(2008.03.24)

파일:신화_10th Anniversary - RUN.jpg


파일:신화_The Retu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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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9집

10th Anniversary - RUN
(2008.04.03)

정규 10집

The Return
(2012.03.23)

정규 11집

The Classic
(2013.05.16)

디지털 싱글

MEMORY
(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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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2집

WE
(2015.02.26)

디지털 싱글

아는 사이
(2016.10.22)

정규 13집

UNCHANGING PART 1 - ORANGE
(2016.11.29)

정규 13집

UNCHANGING - TOUCH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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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화_SHINHWA TWENTY SPECIAL ALBUM 'HEART'.jpg




디지털 싱글

SHINHWA TWENTY GIFT SINGLE 'All Your Dreams'
(2018.03.26)

스페셜 앨범

SHINHWA TWENTY SPECIAL ALBUM 'HEART'
(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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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신화컴퍼니
SHINHWA COMPANY


파일:external/s10.postimg.org/C12024435_35.jpg

정식 명칭
(주)신화컴퍼니
영문 명칭
SHINHWA COMPANY Inc.
설립일
2011년 6월 29일
대표자명
문정혁, 이민우
업종명
매니저업
기업규모
중소기업
주소
서울 마포구 성암로 189 DMC타워[1]
링크
파일:신화컴퍼니 로고.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설립 배경
2.1.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1998년 ~ 2003년)
2.2. GOOD EMG 소속 시절 (2003년 ~ 2011년)
2.3. 신화컴퍼니 설립 이후 (2011년 ~ 현재)
3. 개인 소속사
4. 그 외
5. 소속 연예인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s10.postimg.org/tumblr_inline_o9e0gt62_BV1qz9nuy_500.jpg

신화컴퍼니의 대표 에릭민우.

전진 나부랭이 회사 신화컴퍼니 대표가 그렇게 악질이라던데.

랑은 상관없으니까.

- 스파이 명월 中 에릭 대사


대한민국연예 기획사. 2011년 6월 29일에 설립되었으며 소속 연예인으론 신화가 소속되어있다.

신화 멤버 전원이 주주로서 똑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에릭이민우공동 대표로서 머지 버들이사로서 직접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신화는 2015년 5월 27일 신화 상표권을 양도받았으며 2015년 6월 11일 상표권 명의 이전을 완료했다.

신화의 음반 유통사, 국내/일본공연에 대한 부분은 CJ E&M에서 맡는다.


2. 설립 배경[편집]


신화는 2003년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소속사를 나오면서 SM에서 자신들과 함께 일하던 스텝들까지 데리고 나왔고, 그 스텝들이 차린 회사가 신화의 전 소속사인 굿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러나 굿엔터테인먼트는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인해 회사가 기울면서 자동차 회사에 합병되어 연예부서 'GOOD EMG'로 강등되었다. 때문에 사실상 신화 같은 대형그룹의 연예활동을 전적으로 전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멤버들은 2000년대 후반경부터 개인 활동을 전담해줄 각기 다른 기획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2008년 신화의 군복무로 인해 수입이 완전히 끊겨버리자 회사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당시 굿엔터는 신인 아이돌 그룹도 몇몇 키우고 있었는데 기획 단계에 있던 오소녀는 데뷔가 무산되었고, 신인그룹이던 배틀은 아예 해체에 이르렀다.[2]

군복무를 마친 신화는 신화의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본인들이 직접 자본을 투자해 기획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렇게 2011년 6월 29일 신화컴퍼니가 탄생하였다.

설립 당시 신화의 상표권은 준미디어(전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에 있었고, 신화는 2012년부터 준미디어와 상표권 소송을 진행해왔으며, 2015년 5월 27일 재판부의 조정안을 받아들여 신화 상표권을 돌려받았다. 신화는 당시 원활한 소송을 위해 2014년 신화컴퍼니의 명칭을 '신컴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으며, 2015년 6월 11일 상표권 명의 이전을 완료한 후 '신화컴퍼니'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상표권 문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 문서에서 '상표권 분쟁' 목차를 참고.


2.1.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1998년 ~ 2003년)[편집]


1998년 3월 24일 KMTV <쇼 뮤직탱크>에서 데뷔하였다. 1집 <해결사>의 성과가 그다지 좋지 못한 탓에[3] 직전 H.O.T.와 S.E.S.의 메가히트를 맛 본 SM엔터테인먼트는 공 들여서 데뷔시킨 신화의 활동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이 때문에 신화는 데뷔하자마자 해체 위기에 놓이기도 하였다. 보통 1세대 아이돌 그룹은 활동 3~4개월이면 성패가 판가름 났는데 신화는 특이하게도 2집부터 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신화는 1999년 2집 <T.O.P>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며 당대 정상급 아이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 5월 발매된 3집 <Only One>부터는 음악과 컨셉 면에서 기존의 다른 아이돌 댄스 가수들과 차별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바로 그 당시 아이돌치고는 거의 유일하게 남성미를 강하게 어필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중적이기보다는 매니악하고 코어한 컨셉의 아이돌로 평가받았으며, 당시에는 보기 드문 과격하고 절도 있는 군무와 남성미 넘치는 컨셉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요즘 군무돌짐승돌의 원조 아이돌로 꼽히고 있다.

꾸준히 상승세를 타며 늘어나던 팬덤은 2001년 6월 발매된 4집 <Hey, Come On!>으로 절정을 찍었고 H.O.T. 이후 처음으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팬미팅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타이틀곡인 <Hey, Come On!>보다는 후속곡인 <Wild Eyes>와 해당곡의 의자춤 퍼포먼스가 더 유명세를 탄 앨범으로, 이 활동으로 신화는 퍼포먼스 아이돌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신화의 짐승돌 노선은 이 4집부터 더욱 공고해져서 아이돌 최초로 세미누드집을 발매하기도 하였다.[4]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4집 활동은 신화에게도 신화창조에게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 활동이었는데, 이 시기에 앤디가 비자 문제와 어머니의 병세로 4집 활동에 불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5] 앤디는 잠실 주경기장 팬미팅 막바지에 등장해 재합류하였고, 무대 위에서 멤버들과 포옹을 하며 눈물을 쏟았다.

앤디가 다시 합류한 후 신화는 2002년 3월 발매된 5집 <Perfect Man>에서 스탠딩 마이크 퍼포먼스와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였고, 같은 해 연말 '죽음의 안무'로 악명 높은 6집 <너의 결혼식>을 통해 '퍼포먼스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공고히 했다. 또한 5집 마무리 후 SMTOWN 앨범에 수록된 <Hero>라는 곡으로 활동하며 일본에 진출했다.


2.2. GOOD EMG 소속 시절 (2003년 ~ 2011년)[편집]


6집 활동을 마친 후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종료되었고 SM엔터테인먼트 출신 매니저들이 설립한 'GOOD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였다.[6] 당시 아이돌 그룹 최초로 그룹을 유지한 상태에서 멤버 전원이 소속사를 옮겨 여러모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7] 당시 아이돌의 수명이 짧고 전망이 어두웠던 만큼 SM은 신화 멤버들이 그룹을 해체하고 솔로로 재계약하길 원했으나 멤버들 모두 회사의 제의를 거절하였고 결국 멤버들은 상의 끝에 회사를 이적하기로 결심했다. 이 GOOD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끝날 무렵 에릭은 드라마 불새로 톱스타 자리에 오른 후 한 회사로부터 수십억대의 계약금을 제의받았으나 멤버들과 같은 소속사에 있기 위해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8]

소속사 이적 후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를 나가서 잘된 사례가 없다며 신화를 간접적으로 디스했지만, 2004년 8월 7집 <Brand New> 발매 후 신화는 데뷔 7년차에 최전성기를 찍으며 그 해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2004~2005년은 신화의 해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가요계 뿐만 아니라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X맨을 찾아라와 같은 각종 예능 프로의 주역으로 종횡무진 활약하였다. 가요프로를 틀어도 신화가 나오고 드라마를 틀어도 신화가 나오고 예능을 틀어도 신화가 나오던 시절이라서 미디어만 틀면 신화가 나와 스케줄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팬들도 있었을 정도. 2005년에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또한 '따로 또 같이' 라는 명칭으로,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의 병행을 시도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다. 아이돌이라는 사실이 솔로 가수로서 또한 배우로서 메리트가 없던 시절, 신화는 아이돌과 팀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다른 아이돌 출신 연예인들보다 개인 활동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아이돌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민우와 신혜성을 솔로 앨범으로 골든디스크 시상식SBS 가요대전에서 본상을 수상하였고, 에릭은 드라마 <불새>에서 대박을 거두며 톱스타로 거듭났다.[9] 당시 CF를 휩쓸던 에릭은 멤버들에게 보너스라며 CF수입을 나눠주기도 하였다. 개인 활동으로 멤버들 모두 한번씩은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에 앤디가 시트콤 <논스톱4>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는, '드디어 막내까지 다 떴다'라는 기사도 터졌다.

7집 <Brand New> 활동과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대박 행진을 치른 후 신화는 일견 승승장구해 가는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다. 신화가 한참 전성기를 찍던 2005년 1월, 신화의 소속사 이적을 존중한다고 했던 SM엔터테인먼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신화의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한 것. 이후 2006년 SM엔터테인먼트는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에 신화 상표권을 양도했다. 이에 따라 신화와 굿엔터는 오픈월드와 상표권 협약 체결을 맺었으며,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신화의 스케줄 조정 및 해외업무가 오픈월드의 관리로 넘어갔다. 이때부터 신화는 해외 투어 위주로 활동하게 되며 신화를 오로지 상품으로 밖에 보지 않는 오픈월드의 횡포 때문에 플랜도 건강도 처참히 망가지게 되었다.[10]

2006년 5월 8집 <State of the Art>를 발매하였으나 전작 7집의 히트에 비해 대중적인 반응은 영 미묘했고, 역시 오픈월드의 횡포로 국내 활동이라고는 음악방송 출연 몇번에 그치고 다시 해외 투어에 전념해야 했다.[11] 그럼에도 이 시기 신화는 데뷔 8년차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당대 정상급 아이돌로서의 입지가 굳건했으며[12], 8집 앨범은 2006년 연간 앨범판매량 3위(약 21만장)를 기록했고[13] 타이틀곡 <Once in a Lifetime>은 월드컵 지정 응원곡을 선정되었다.

또한 국내 8집 활동과 거의 동시기인 2006년 6월 첫 일본 싱글 <우리들의 마음에는 태양이 있어>를 발매해 오리콘 차트 9위에 진입했고, 2006년 8월 첫 일본 정규 앨범 <Inspiration #1>를 발매해 오리콘 차트 4위에 진입했다. 신화는 이 음반으로 일본 골든디스크 본상과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을 받으며 2002년 흐지부지 되었던 일본 진출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한편 굿엔터는 신화가 벌어들인 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신화 뮤직비디오 판권을 사는데[14] 큰 수익을 쓰면서 빚이 늘고 회사가 기울게 되었다. 결국 굿엔터는 자동차 회사에 합병되어 연예부서 'GOOD EMG'로 강등되었고 사실상 신화 같은 대형그룹의 연예 활동을 모두 전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각 멤버들은 신화로서의 활동만 굿이엠지에 맡기고 개별 활동을 전담해줄 각기 다른 기획사를 찾아나서야 했다.

이렇게 개인 소속사가 갈라진 상태에서, 2008년 4월 신화는 데뷔 10주년 앨범인 9집 <RUN>을 발매했으나, 방송 활동을 일체 진행하지 않아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 실패했다. 그 이유인 즉슨 당시 굿이엠지는 상장 폐지 위기에 놓여있었고, 굿이엠지와 오픈월드와의 상표권 협약 역시 만료되어 오픈월드의 횡포가 더욱 심해지는 등 당시 신화의 내부적인 상황이 가히 최악이었기 때문.[15] 다만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10주년 기념콘서트 전석 매진, 음반 불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2008년 당시 9집이 12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여전히 탄탄한 팬덤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신화는 아쉬움 가득한 9집 활동을 마치고 군입대로 인해 4년간의 그룹 활동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2.3. 신화컴퍼니 설립 이후 (2011년 ~ 현재)[편집]


2009년 10월, 신화가 군입대를 한 사이 수입이 없어지자 굿이엠지는 상장 폐지가 되었고, 설마 이대로 해체 수순을 밟는건가 싶었지만 2011년 5월 4일 에릭과 이민우가 공동대표를 맡고 모든 멤버가 똑같은 지분을 투자해, 신화의 독자적 활동을 위한 기획사인 신화컴퍼니를 설립하였다. 현재 신화는 활동 기획, 앨범 제작, 프로듀싱, 디렉팅, 안무 메이킹까지 모두 본인들이 맡고 있는 아이돌계의 자영업자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끊임 없는 법정 공방과 협상을 통해, 2015년 5월 본인들의 상표권을 찾아오게 되었다. 이로써 신화는 자기 그룹의 상표권을 자신들이 소유한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군복무 후 컴백한 최초의 아이돌이다. 군복무와 공백기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2012년 4년전과 마찬가지로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컴백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이때 신화는 서울 곳곳에 "신화는 약속을 지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신화창조도 이에 맞춰 "신화창조도 약속을 지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4년 전 신화와 신화창조가 했던 약속, 즉 신화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신화창조는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 신화창조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감동의 순간 중 하나이다.

이처럼 병역 문제로 인해 4년간의 공백기를 가지면서 "병역 문제로 사실상 해체하는 것인데도 말로만 해체가 아니라고 한다."라는 비아냥도 종종 있었지만 그런 말들이 무색하게 2012년 3월 10집 <The Return>으로 컴백하여 최장수 아이돌의 위엄을 보여주었다.[16] 또한 10집 컴백 바로 이전 신화방송이라는 단독 예능을 통해 먼저 방송에 컴백했고, 신화는 이 신화방송을 기점으로 또 다시 어린 팬들을 유입하는데 성공한다.[17]

10집 <The Return>은 4년만의 컴백인 만큼 9집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전 멤버가 매주 회의에 참여해 앨범의 방향을 의논하고 300곡이 넘는 후보곡들을 계속 들어가며 수록곡들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이 10집을 기점으로 신화는 활동 기획과 더불어 프로듀싱과 디렉팅까지 전적으로 자신들이 담당하게 된다.

11집을 기점으로 댄스 그룹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전통 신화 스타일과는 다른 색다른 컨셉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2013년 5월 발매한 11집 <The Classic>의 타이틀곡 <This Love>에서는 신화 특유의 군무를 버리고 국내 최초로 보깅댄스를 시도하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15년 2월 발매한 12집 <We>의 타이틀곡 <표적> 역시 기존의 뚜렷한 파트별 구획 나눔을 버리고 파트를 세분화시켰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무대 구성을 선보였다. 신화는 이 12집 타이틀곡 <표적>으로 총 10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신화의 역대 최고 1위 기록을 갱신하였다.

2017년 1월 발매한 13집 <Unchanging>은 작업 막바지에 타이틀곡을 엎으며 컴백이 늦어졌으며, 신화 앨범 최초로 Part1과 Part2가 나뉜 앨범이었다. 12집 타이틀곡 <표적>과 유사한 스타일의 곡인 <Super Power>를 뒤로 한 채 역시 퓨처베이스라는 생소한 장르의 곡인 <Touch>를 타이틀곡으로 선택했다. 활동을 했던 Part2의 경우 신화만이 할 수 있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의 댄스곡으로 채워져 퀄리티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악한 기획력 탓에 데뷔초 1집과 활동이 전혀 없었던 9집을 제외하면 신화 역사상 가장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18] 그럼에도 신화 앨범 최초로 포토카드딱지를 도입하면서 높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는 여전히 팬덤이 건재함을 알렸다.

2017년 1월 22일 SBS 인기가요 출연을 끝으로 신화는 13집 활동을 마무리하며 한국식 나이로 '30대 아이돌'로서 마지막 활동을 끝마쳤다.[19]

2018년, 신화의 20주년을 맞이해서 1월 1일이 되자 마자 SNS에 20주년 독수리 로고가 있는 'All Your 2018' 포스터를 공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예고해 팬들에게 기대감을 안겼다. 그리고 원래라면 매년 3월에는 데뷔 기념 콘서트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하게 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팬파티로 대체하였으며 팬파티 후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단체활동 기간에도 개인이나 유닛을 이뤄 예능프로그램을 촬영해 거의 몇 달동안 tv에 꾸준히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0] 8월 28일, 새 앨범 발매 소식이 알려졌는 데 매번 정규앨범으로 컴백했던 전례와 달리 6곡이 담긴 미니앨범 형태의 스페셜 앨범으로 발표하였으며, 앨범 발매와 동시에 2012년 이후로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3주 동안 음악방송 활동을 했다. 20주년 기프트 싱글 앨범 <HEART>는 20주년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준 신화창조 팬들을 위한 앨범이라는 의미에서 <HEART>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타이틀곡 <Kiss Me Like That>은 레트로 컨셉에 어쿠스틱 기타를 베이스로 한 비트가 담긴 세련된 곡이다. 한번 들으면 계속해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특징이며 여자 댄서들과 하는 섹시한 안무가 독보적인 곡이다. 본 앨범은 1집 이후 처음으로 1위 트로피 없이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는 데 음원차트 집계 방식이 많이 바뀐데다가 화력이 이전보다 축소된 점이 주 요인인 듯 하다. 20주년을 맞이한 해에 발표된 기념비적인 음반임에 반해 대외적인 성과가 없어 아쉬움이 남았던 앨범.


3. 개인 소속사[편집]


신화컴퍼니는 신화의 그룹활동만 책임지는 소속사이며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굿엔터테인먼트가 GOOD EMG으로 강등되었을 때 멤버들의 개인 소속사가 갈라졌다. 현재 멤버들의 개인 활동은 티오피미디어(에릭, 앤디), 라이브웍스컴퍼니(이민우, 신혜성, 전진, 김동완)가 담당한다. 개인 소속사 계약에 있어서 최우선 사항은 신화컴퍼니 운영과 신화 활동에 협조할 것이라고 한다.

라이브웍스컴퍼니의 경우 굿엔터 때 인력들이 새로 차린 회사로, 신화컴퍼니와 건물을 공유하고 있으며 소속 연예인도 신혜성과 이민우가 전부이기에 사실상 신화컴퍼니의 자회사 개념이다. E&J 엔터테인먼트는 10년째 신화와 같이 일해온 매니저 동생과 에릭이 함께 세운 회사.[21] 티오피미디어는 처음에는 앤디의 1인 기획사로 설립되었으며 신화 2집 타이틀곡 <T.O.P.>에서 회사명을 따왔다. 때문에 앤디를 티오피미디어의 사장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많고 심지어 기사나 방송에도 사장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 프로듀서일 뿐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22] 그리고 2019년에 에릭도 티오피미디어 소속이 되었다. office DH[23]는 김동완의 1인 기획사이며 씨아이ENT는 과거 김동완과 전진이 함께 속해있었지만 김동완이 독립해서 전진만이 소속되어있었다. 전진은 씨아이와의 계약 만료 이후 2021년부터 라이브웍스컴퍼니로 이적함에 따라 신혜성, 이민우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2022년 김동완이 라이브웍스컴퍼니로 이적했다.[24]


4. 그 외[편집]


  • 신화컴퍼니가 회의를 할 때는 멤버들이 그냥 커피숍에 모여서 A4용지에 일년 동안의 그룹 활동 플랜을 적는다고 한다. 대주주회의

  • 당연한거지만 신화와 신화컴퍼니 사이에도 계약서가 존재한다. 법률상 몇년마다 갱신해줘야 하는 듯.

  • 회사 운영을 본인들이 하는데다 에릭과 이민우가 프로듀싱을 하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꽤 긴 편. 때문에 정규 활동 1년 전에 미리 플랜을 다 짜놓아야 한다고. 배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에릭의 경우 신화 활동에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먼저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고사한다.

  • 활동 때 1위 기념으로 전 직원에게 보너스를 돌렸다고 한다. 사실 이외에도 신화는 같은 사람과 오래 일하는 걸 선호하고 통이 큰 걸로 유명하다. 전진은 백업 댄서에게 차를 뽑아주었고, 에릭은 매니저들에게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를 선물해줬다. 김동완은 같이 일했던 매니저가 생활고를 겪었을 때 3천만원을 지원해준 바 있다. #


5. 소속 연예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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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민우, 신혜성, 전진의 개인 소속사인 라이브웍스컴퍼니와 주소가 동일하다.[2] mnet <배틀신화>라는 오디션 프로를 통해 신화 멤버들이 직접 멤버들을 선발한 그룹이었다.[3] 타이틀곡 <해결사>는 무려 2개월 간 활동한 덕에 차트 10위 안에는 꾸준히 랭크되었으나 IMF 여파로 그 이상의 성과는 내지 못했고, 후속곡 <으쌰으쌰>는 가요 프로그램 순위 제도가 폐지되었던 때에 뮤직뱅크 MVP 후보에 한 번 오른 적이 있으나 뚜렷한 성과는 전무했다. 또 하필이면 데뷔 무대가 케이블TV였는데, 90년대와 2000년대 초에는 케이블TV 가입대수가 많지 않았다.[4] 본인들은 물론 팬들도 흑역사 취급하지만 당시 잘 나가던 사진작가 김중만이 참여해서 나름대로의 미(美)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전진은 나름대로 만족했는지 결혼 후 아내와 함께 누드집을 찍어 개인소장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5] 자세한 내용은 앤디 문서 참조.[6] '신화가 원활하게 이적했던 이유는 이적 회사가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였기에 가능했다'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굿엔터는 SM 출신 매니저들이 제작자로 나서면서 독립한 회사였고, 이 때문에 이적시 SM에서 쥐고 있는 신화의 이름을 계속 쓸 수 있을지 없을지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7] 당시 굿엔터로부터 받은 계약금이 멤버당 7억씩 총 42억원이었는데, 이 액수 또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8] 에릭은 언급한 적이 없는데 멤버들이 자랑하듯 자주 이야기했다. 우리는 리더가 에릭이다[9] 에릭은 수지와 더불어 연기 최우수상을 수상한 둘 밖에 없는 현역 아이돌이자, 연기 대상 후보에 올랐던 유일한 현역 아이돌이다.[10] 한번은 팬들이 아픈 전진을 제발 쉬게 해달라며 난리를 치자, '전진은 우리의 상품이니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11] SBS 인기가요는 첫 무대를 포함하여 3주, 쇼 음악중심뮤직뱅크는 1주, 엠카운트다운 2주.[12] SBS의 연예편지/X맨에서 멤버들의 활약이 도드라졌고, MBC 무한도전에서는 8집 컴백 당시 김태호 PD가 아예 신화 특집을 편성해 무한도전 멤버들과 게임을 하는 기획을 하기도 했다.[13] 1위는 동방신기, 2위는 SG워너비, 4위는 이수영이었다.[14] 이유인 즉슨 팬들이 신화의 뮤직비디오에 더 이상 SM엔터테인먼트의 로고가 찍히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15] 이러한 사정은 전진이 하하를 대신해 무한도전에 합류해 활동할 당시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전진은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김태호 PD의 눈밖에 나면서 무한도전 하차 이후에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16] 또한 신화 공백기 당시 A급 배우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에릭은 항상 "신화의 에릭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17] 참고로 1화 프롤로그에 컴백 관련 기자회견 현장이 잠시 공개되었다.[18] 연말 가요축제에서의 선공개 후 음원과 뮤직비디오 공개의 간극이 길었으며, 뮤비 공개 후에야 음악방송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설연휴와 겹치게 되면서 활동기간도 8집보다 짧았다.[19] 신화의 맏형들인 에릭, 민우, 동완, 혜성은 2018년부터 40대에 돌입한다.[20] 멤버들이 밝히기를 6명이 단체로 출연할 만한 예능이 많이 없어서 스케줄 회의할 때 보드판에 예능 이름을 다 적어놓고 가능한 인원 수 대로 나갈 사람을 손들어서 정했다고 한다.[21] 2019년 1월 에릭이 티오피미디어와 계약을 하면서 E&J 엔터테인먼트는 사실상 사라졌다.[22] 신인 시절 틴탑 홍보 목적으로 앤디를 사장님으로 내세운 탓에 빚어진 오해. 실제로는 초반 제작 과정에만 참여했다.[23] 이후 스튜디오완으로 사명을 바꿨다.[24] 사실 김동완도 과거에 라이브웍스컴퍼니에 소속되었다가 씨아이ENT로 이적했고 결별 후 스튜디오완을 세워서 활동하다가 예전에 몸담았었던 라이브웍스컴퍼니로 다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