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덤프버전 :

1. 신라 자장이 설립한 사찰
1.1. 개요
1.2. 역사
1.3. 소장 문화재
1.3.1. 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1.3.2.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1.3.3.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1.3.4.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1.3.5. 속초 신흥사 부도군
1.3.6. 기타 건축물
1.3.7. 비석 목록
1.3.8. 성보박물관 소장 문화재
1.4. 기타
2. 고려 태조가 설립한 사찰
2.1. 개요
2.2. 공신당
2.2.1. 삼한공신
3. 기타


한자 : 神興寺 / 로마자 : Sinheungsa
홈페이지


1. 신라 자장이 설립한 사찰[편집]




[ 펼치기 · 접기 ]
직할교구
제2교구
제3교구
제4교구
제5교구
조계사
용주사
신흥사
월정사
법주사
제6교구
제7교구
제8교구
제9교구
제10교구
마곡사
수덕사
직지사
동화사
은해사
제11교구
제12교구
제13교구
제14교구
제15교구
불국사
해인사
쌍계사
범어사
통도사
제16교구
제17교구
제18교구
제19교구
제20교구
고운사
금산사
백양사
화엄사
제21교구
제22교구
제23교구
제24교구
제25교구
송광사
대흥사
관음사
선운사
봉선사

군종특별교구 · 해외특별교구




파일:속초시 CI_네거티브.svg

[ 펼치기 · 접기 ]
관광지
교동
석봉도자기미술관 ‧ 설악로데오거리(금호동 ‧ 중앙동 ‧ 청학동)청초호 호수공원(조양동) ‧ 칠성조선소
금호동
설악로데오거리(교동 ‧ 중앙동 ‧ 청학동)속초관광수산시장영랑호(동명동 ‧ 영랑동 ‧ 장사동)신세계영랑호리조트
노학동
국립산악박물관 ‧ 설악산 자생식물원 ‧ 속초시립박물관 ‧ 얼라이브 하트(다이나믹메이즈 속초)척산온천 ‧ 테디베어팜
대포동
대포항 ‧ 바다향기로 ‧ 외옹치 해수욕장 ‧ 롯데리조트 속초 ‧ 설악해맞이공원
중앙동
갯배(청호동) ‧ 설악로데오거리(교동 ‧ 금호동 ‧ 청학동)속초청년몰 갯배st
설악동
설악산(흔들바위토왕성 폭포 ‧ 권금성 ‧ 비선대 ‧ 금강굴 ‧ 울산바위 ‧ 설악산 케이블카)신흥사
영랑동
속초등대전망대 ‧ 속초문화예술회관영금정 ‧ 영랑호(금호동 ‧ 동명동 ‧ 장사동)
장사동
한화리조트 설악(설악 워터피아 ‧ 설악 씨네라마) ‧ 영랑호(금호동 ‧ 동명동 ‧ 영랑동)
조양동
속초해수욕장속초아이속초 조양동 유적청초호 호수공원(교동) ‧ 엑스포 잔디광장 ‧ 청대산
청학동
설악로데오거리(교동 ‧ 금호동 ‧ 중앙동)
청호동
갯배(중앙동)아바이마을 ‧ 아트플랫폼 갯배 ‧ 설악대교 ‧ 청호동 벽화골목 '아바이길'
축제
실향민문화축제 ‧ 설악문화제
※ 관광객들이 명소로 많이 찾는 곳은
색상으로 표시.





파일:신흥사1 강원도청, 한국문화정보원(공공누리).jpg
속초 신흥사 전경

1.1. 개요[편집]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1.2. 역사[편집]


신라 진덕여왕 7년(653년) 자장(慈藏)이 창건하고 부처님사리를 봉안한 9층사리탑을 세워 향성사(香城寺)라고 불렀다. 효소왕 10년(701년) 수천 칸에 달하는 대사찰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 후 의상(義湘)이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能仁庵) 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禪定寺)라고 하였다. 선정사는 이후 약 900여 년간 번창했으나 조선 중기 인조 22년(1644년)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1681년 양양 대지진으로 인하여 다시 붕괴되고 다시 지어졌다. 불상은 선정사 때 봉안된 것으로 의상이 직접 조성한 3불상의 하나이다. 당시 지은 대웅전, 명부전, 보제루, 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한다.

6.25 전쟁 때 신흥사에 소장되어 있던 경판(목판)이 국군에 의해 땔감으로 소각된 흑역사가 있다. 1951년 신흥사에 육군 1군사령부 임시연대본부가 차려지고 연대수색중대 병사들이 미리 와 있었는데, 추위에 모닥불을 피운다고 보제루에 보관중이던 경판 등을 가져다 땔감으로 썼다고... 이 어처구니 없는 꼴을 뒤늦게 발견하고 부연대장에게 알려 소각을 막은 것이 당시 1군사령부 예하 11사단 9연대 소속 중위였던 리영희 선생.리영희 선생 기고(법보신문), 불교신문 기사 당시 소각된 경판들은 조선 중기에 제작된 것인데, 한자, 한글,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쓰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이런 목판은 신흥사 것이 유일했다는 이야기도 있기에 온전히 보존되지 못했음이 애석할 따름. 그나마 277판이라도 남은 것이 다행.

1.3. 소장 문화재[편집]



1.3.1. 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편집]



대한민국

1~200
201~400
401~600
601~800
801~1000

1001~1200

1201~1400

1401~1600

1601~1800

1801~2000

2001~2142~


파일:향성사지.jpg}}}
향성사지 삼층석탑
향성사는 신흥사의 전신이 되는 절로, 현재는 통일신라기 삼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제443호로 지정되었다.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형태가 다소 형식적이라 무겁게 느껴지기는 하나 동해안에서는 최북단에 위치한 신라시대 탑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9세기 조성했다고 추정한다. 1966년에는 해체보수공사가 있었으며, 사리공에서는 달리 발견된 것이 없다.[1]

1.3.2.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편집]


파일:신흥사삼존불.jpg}}}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조선 중기 만들어진 삼존불상이다. 보물 제1721호로 지정되었다.
복장발원문에 따르면 1651년에 무염이 만들었다고 한다. 제작연대가 확실하기 때문에 타 불상 연구에도 기준이 된다.

1.3.3.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편집]


파일:신흥사지장보살.jpg}}}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조선 중기 제작된 지장삼존상이다. 보물 제1749호로 지정되었다.
위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함께 1651년 제작되었음이 복장에서 발견된 축원문을 통해 확인된다. 역시 무염의 작품이다. 시왕상들과 권속상들 없이 지장보살삼존만이 남았다.


1.3.4.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편집]


파일:신흥사극락보전.jpg
신흥사 극락보전
조선 중기 건립된 신흥사의 중심법당이다. 보물 제1981호로 지정되었다.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천왕문 - 보제루(普濟樓)로 이어지는 가람배치의 중심축상에 위치한다. 창살에는 다양한 꽃을 묘사하고 기단에는 삼태극, 용두 등 특이한 조각들이 여럿 새겼다. 총 4차례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어 건물의 연혁을 잘 확인할 수 있다.


1.3.5. 속초 신흥사 부도군[편집]


파일:신흥사 부도군 강원도청, 한국문화정보원(공공누리).jpg
신흥사 부도군
1991년 2월 25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1.3.6. 기타 건축물[편집]


  • 보제루 - 도유형문화재 제106호
  • 명부전 - 도유형문화재 제166호
  • 신흥사 - 문화재자료 제7호[2]


1.3.7. 비석 목록[편집]


  • 신흥사 사적비
  • 신흥사 용암당대선사비
  • 신흥사 대원당대선사비


1.3.8. 성보박물관 소장 문화재[편집]


  • 신흥사경판 - 도유형문화재 제15호
  • 금고(金鼓)[3] - 도유형문화재 제163호
  • 동종 - 도유형문화재 제164호


1.4. 기타[편집]


  •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 울산바위, 흔들바위, 비룡폭포, 토왕성 폭포, 설악 케이블카(권금성), 비선대, 천불동 계곡, 금강굴, 마등령, 공룡능선 등 외설악의 주요 명소 중 상당수가 이 신흥사 소유의 땅에 속해있기 때문에 신흥사를 방문하지 않아도 통행료를 내야 한다. 2007년에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후 국립공원 내 사찰 중 사찰에 방문하지 않고 등산로만 이용하는 경우에도 문화재 구역 입장료라는 명목으로 사찰에 통행료를 내야 하는 사찰들이 있어 논란이 있는데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절이다.[4]

  • 상기 외설악의 주요 명소들 대부분이 신흥사가 있는 소공원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사시사철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항상 붐비는 절이다. 재수 없으면 1시간 가까이 길에 갇혀 있어야 할 수도 있다.

  • 네이버 웹툰 정글쥬스 시즌 1에서 수찬 일행과 펫샵의 기간티아 인간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인다. 전투 과정에서 통일대불의 목을 뜯어버리는 등 시설이 꽤 파괴되었다.

2. 고려 태조가 설립한 사찰[편집]



고려의 왕립 사찰
·
보제사
·
display:inline-block; margin:.2em 0; width:4.5em"
왕륜사
·
신흥사
·
display:inline-block; margin:.2em 0; width:4.5em"
현화사
·
중흥사
·
안화사
·
국청사
·
천수사
·
홍경사
·
대봉은사
·
제석원
·
흥국사
·
개태사
·
display:inline-block; margin:.2em 0; width:4.5em"
영통사
·
display:inline-block; margin:.2em 0; width:4.5em"
사나사
·
진관사중수
·
전등사중수
·
중수



2.1. 개요[편집]


新興寺

만월대 황성 부근에 있던 사찰이다. 또한 신흥사는 고려 태조가 재위 2년(919) 개경에 지은 10개의 사찰 중 하나이다.

2.2. 공신당[편집]


10대 사찰 중 신흥사는 태조 23년(940)에 추가로 중축해 공신당(功臣堂)을 설치했다. 이 공신당의 동서쪽 벽엔 태조가 봉한 삼한공신(三韓功臣)의 초상화를 걸고 이들을 위한 불교의례를 거행했다. 삼한공신을 삼한벽상(壁上)공신이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벽 위에 초상화를 걸었기 때문.

고려의 정계에서는 이 곳에 초상화가 걸리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겼고 개국공신 이외에도 강감찬, 양규 등 위대한 업적을 세운 신하들도 신흥사 공신당에 삼한벽상공신으로서 초상화가 걸렸다. 이자겸, 척준경, 정중부, 이의방, 이고, 두경승, 최충헌 등 권신들도 이 곳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었었다.

2.2.1. 삼한공신[편집]


태조 대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려진 개국공신들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불렸다. 현종여요전쟁 이후 추가로 올려진 공신들은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으로 불렸다. 그리하여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공신호는 개국공신뿐만 아니라 신흥사 공신당에 올라간 모든 공신들을 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삼한공신은 삼한벽상공신의 줄임말인 듯하다. 삼한벽상공신은 벽상삼한공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즉 삼한공신, 삼한벽상공신, 벽상삼한공신은 같은 개념이고, 위 단락에 서술했듯이 삼한공신은 작은 의미로 개국공신만을 칭하거나 포괄적인 의미로 삼한후벽상공신까지 포함해서 불렀던 듯하다.

가끔 묘지명을 비롯한 고려시대 금석문에는 '태조성조공신(太祖聖朝公臣)' 공신호가 등장하는데 이는 '신성한 태조의 공신'이란 뜻으로 삼한공신과 같은 것 같다.

3. 기타[편집]


  • 태조가 서경에 설립한 중흥사와는 이름의 뜻이 반대이다. 중흥사는 '다시 부흥하다.'란 뜻인데 신흥사는 '새롭게 부흥하다.'란 뜻이다.
  • 전라남도 완도군에도 신흥사라는 비구니 사찰이 있다. 영국남자 유튜브 '아르망&맥스' 전라남도 여행 시리즈에서 로케지로 나왔는데, 맥스가 한국 고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섭외했다는 듯. 참고로 이 편에 출연한 비구니(여승)가 영국남자 채널의 팬이었다고 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6 06:56:40에 나무위키 신흥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대개 석탑들은 사리장치가 도굴된 경우가 많다.[2] 신흥사 자체가 문화재자료로 별도로 지정되어 있다.[3] 쇠(金)로 된 북(鼓)이란 뜻이다.[4] 속리산법주사, 지리산화엄사, 계룡산동학사 등 현재 24개의 사찰이 이런 상황.